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17화
40. 트레스 vs 아몬드(4)
두두두둥!
북소리가 울려 퍼진다.
붉은 옷을 입은 자들이 고래고래 함성을 내지르고 있다.
관중석의 열기는 어느 때보다 끓어올랐다.
이번 경기만 이기면 본선.
이 생각이 이들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각 팀 에이스의 격돌.
“으아아아아아아!”
“이, 이겼어!? 죽였어어어어!!”
일반인들의 눈엔 그저 찰나의 순간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어!? 이긴 거 맞지!?”
“맞았어! 쓰러지잖아! 지금!”
아몬드가 트레스를 쫓아가고, 트레스가 뒤로 돌며 서로를 향해 돌진하며 스쳐 지나갔다.
그들의 눈이 따라갈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였다.
조금 더 집중력이 좋은 사람이라면 화살이 쏘아진 예리한 각도, 트레스의 짐승 같은 총검 패링 정도를 포착할 수 있겠다만.
그마저도 이 결투의 전부는 아니었다.
해설진 정도의 눈이 되면 보였을 것이다.
“아니, 킹귤 님! 마…… 마지막에 그거 뭐였습니까!?”
킹귤은 하도 소리를 질러대서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대답했다.
“총검을 휘두를 걸 예상한 거 같았죠?!”
마지막에 아몬드는 활시위를 미리 당겨놓은 채로 뒤로 누웠다.
“아몬드는 보통 보고 피하는데! 이번엔 예상으로 피한 거예요! 그래서 트레스가 당황한 겁니다!”
아몬드는 상대의 움직임을 끝까지 보고 피한다. 그러니 원거리에서 쏘는 예측샷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트레스는 근접해서 페인트 동작을 한다.
“지금 리플레이에서 나옵니다!”
느린 화면으로 보면 속이려는 의도가 확실하게 보였다.
“앞서서 계속 총을 ‘쏘기’만 했던 트레스가! 갑자기 쏘는 척 총을 ‘휘둘렀’거든요!? 이건 보고 피할 시간이 없죠?”
총구나 방아쇠를 의식하고 있었다면, 총검으로 휘두르는 공격에 무방비했을 것이다.
공격 각도나 방식이 아예 다르니까.
“피할 순 있더라도 반격이 되진 않죠!”
설사 귀신 같은 반응 속도로 피할 수 있었다고 해도, 지금처럼 단번에 반격을 넣는 건 불가능했다.
“맞습니다. 아몬드는 그 순간에 화살을 욱여넣는 반격을 해야 한다고 판단한 듯 보였어요. 트레스 역시나 굉장히 안 맞아주거든요!”
총은 총검술이라도 있지, 활은 화살을 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상대는 원거리 공격엔 어지간해선 안 당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몬드가 내린 결론은 카운터다.
그것도 보고 피하면서 반격하는 카운터가 아니라, 미리 시전하는 카운터.
상대의 동작과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이 짧은 예측 반격? 뭐라고 해야 할까요? 여튼 이 행동 덕분에 상대는 아예 대처를 못 했어요!”
-미쳤다
-리플 보니까 진짜인 듯
-ㄷㄷ
-산타할아버지 저를 아몬드로 만들어주세요! 산타할아버지 저를 아몬드로 만들어주세요! 산타할아버지 저를 아몬드로 만들어주세요!
-이제 예측까지…… 그저 너트……
-사륜안이냐? 어떻게 하는건데 ㅅㅂ
캐스터는 혀를 내두른다.
“이건 고무적입니다? 사실 다른 플레이어들이었다면 보고 피하는 게 더 고무적이라 했을 테지만! 아몬드라서! 아몬드가 예측으로 피할 수 있게 됐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거든요!?”
-ㅋㅋㅋㅋㅋㅋㅋㄹㅇ
-드디어 내장 호두가 장착된거냐……
-아몬드 저거 캡슐에 누가 usb 연결한거 없는지 잘 봐야함
-앜ㅋㅋㅋㅋㅋ그렇네
-게임 이해도가 높아졌나
킹귤도 그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날카로운 지적이에요! 아몬드가 예측을 해서 피했다? 그 말은! 게임에 대해서 지금 어느 정도 확신이 있다는 거예요!”
만약 일반적인 경우, 어떤 플레이어가 더 이상 보고 반응하지 않고, 예측으로 피하기 시작했다면 킹귤도 ‘에이징 커브’가 왔다거나 ‘컨디션이 안좋다’라거나 등의 말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엔 칭찬이 나간다.
그가 아몬드라서?
아니었다.
아몬드도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고, 에이징 커브는 진작 찾아왔을 수 있는 나이.
“아. 게임에 대한 확신이요!? 그 정도까지입니까!?”
“예측으로 피해야 하는 걸 정확하게 예측으로 피했고 나머지는 다 반응했거든요!? 이건 이해도가 굉장히 높아진 거라 할 수 있죠! 적어도 전투에 관해서는!”
아몬드의 예측 반응이 평가가 다른 이유는 정확히 그게 필요할 때 활용했기 때문이다.
부정적으로 평가받는 예측 반응은 어떤가.
상대가 쏘는 척만 해도 미리 반응해 버리거나, 상대가 다른 방식의 공격을 들어오면 제대로 못 피한다. 전투의 식을 외우듯이 전개하기 때문에, 변주가 나오면 대처가 안 되는 거다.
아몬드의 예측 반응은 그런 종류의 것은 확실히 아니었다.
물론 아몬드 역시 예측이 빗나갔다면 결과적으로 저런 꼴을 보일 수도 있었으나.
승부의 세계는 언제나 결과적인 것이다.
결국 아몬드는 예측을 성공시켰고, 1 대 1 전투에서 완전한 승리를 거뒀다.
-흠 그정둔가…… ㅋㅋㅋㅋㅋ
-ㄹㅇ 예측이 필요할 때만 쓴게 레전드
-걍 전투 능력은 고트임. 뭘 더 말해
-대박 ㅠㅠㅠㅠ
-아까 전투는 0.8전자파는 됨 ㄹㅇ 미쳤음
-트레스도 잘했는데 ㅋㅋㅋ 이 짤로 영고각
트레스가 쓰러진 후, 양상은 당연히 조선 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에스파냐 진영은 혼비백산이었다.
“아. 에스파냐! 크게 흔들립니다! 보조 지휘관이 죽는 건 얘기가 다르거든요!?”
일반 병사가 쓰러지면 다시 부활이 가능하다. 그러니 죽음의 무게가 무겁지 않다. 단지 자원적 손해의 문제일 뿐이다.
설사 죽게 된 그 병사가 에이스라고 해도 사기가 떨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애초에 다른 병사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함께 전투에 참여했던 병사들이나 겨우 알 뿐이다.
그런데 보조 지휘관은 달랐다.
“그렇죠. 일단 부활 안 하고. 인구수 하나 줄어들고요.”
다시 살릴 수도 없고, 전투 인력의 인구수 제한마저 199명으로 줄어든다.
“보조 지휘관이 바뀌니까, 거의 모든 병사가 다 알아요. 자기들 명령 내려주는 사람이 바뀌는데 모르겠습니까?”
지휘권의 특성상 모든 병사들이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아버린다.
“게임이라도! 이런 일에 사기 떨어지거든요! 이게 영향이 있습니다!?”
“그럼요! 결국 사람이 하는 거기 때문에! 영향 가죠! 게임이니 망정이지 실제 전쟁이었으면 그냥 난리 초토화죠!”
“예! 괜히 이순신 장군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게 아니잖아요!?”
그랬다.
목숨이 걸리지 않은 게임이라 할지라도, 패배와 승리가 걸려 있다.
특히나 에스파냐는 이번에 패배 시 본선 진출 가능성이 거의 사라져 버린다.
그 절망적인 상황이 지금 눈앞에 아른거릴 텐데. 보조 지휘관의 사망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다.
“기마 궁수들! 콩키스타도르를 완전히 제압합니다!”
“아아아! 사기 차이가 진짜 눈으로 보이는 거 같습니다! 이렇게까지 얻어터질 각은 아니었는데요!?”
“원래! 쿠키가 조금 무리하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기세가 올랐을 때 몰아붙이기로 결정한 쿠키의 판단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기마 궁수 부대의 사기는 최정상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초인적인 집중력과 조직력이 뿜어져 나오며 그들의 화살은 정확하게 적들의 이마를 뚫어버렸다.
반면에 그런 광경을 목격한 에스파냐는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주 작은 부분부터, 큰 부분까지.
“아…… 지금 콩키스타도르들이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못 잡습니다?”
“일꾼도 왠지 모르겠는데! 안 나와요!? 자원 채취량이! 고지대를 먹었는데도 지금 조선과 비슷해졌어요!”
조선은 그사이에 멀티를 더 챙겼고, 에스파냐의 고지대 자원줄은 제대로 돌아가지 않은 지 한참.
결국 자원 수급량에서 역전이 일어난다.
“조선! 이제 트레뷰셋도 나왔습니다!”
“본대가 치고들어갑니다아아아!”
기마 궁수의 휘젓기 덕에 안전하게 뒤로 빠져 있던 조선의 본대.
그들이 공성 병기를 이끌고 앞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뿌우우우우우──!
전장의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조선의 모든 병사들이 총공을 가했다.
“뒤에서 트레뷰셋만 써서 성을 무너뜨리고 들어갈 수도 있는데! 그냥 다 들어가는군요!?”
“쿠키가! 좀 놀 줄 아는 거죠! 기세를! 비트를 탈 줄 안다구요!!!”
-ㅋㅋㅋㅋㅋㅋ뭔ㅋㅋㅋ
-볼륨 최대로~!
-쿠시우 ㅋㅋㅋ
-화성 가즈아아아아아!
확실하고 안전한 방법은 트레뷰셋이라는 초장거리 투석기만으로 성을 부수는 것인데.
그랬다간 시간이 지체되면서 흐름이 이상해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었다.
“이거 결국 사람이 하는 거거든요! 흐름 왔을 때 미친듯이 몰아붙여서 때려야 합니다!”
“맞습니다! 괜~ 히 이거 확실하게 한다고 질질 끌리면 또 이상해져요! 시빌엠이 원래 역전이 잘 일어나잖아요!”
실제로 자주 있는 일이었다.
천천히 공성하는 과정 중에 적 병사들이 조금씩 모여서 반격을 시도하는 것.
혹은 이 병사들이 아군 본진으로 몰래 돌아와서 혼란을 야기한다든가.
역전이 일어나는 방법은 여러가지였다.
쿠키는 그런 모호한 요소들을 전부 막아버리기로 한 것이다.
“성이 무너집니다아아아!”
콰광……!
에스파냐의 성이 우르르 무너진다.
지을 때는 그리 오래 걸리더니, 무너질 땐 한순간이었다.
에스파냐 관중석의 표정이 카메라에 잡힌다.
전부 혼이 나간 듯한 표정이다.
서 있는 채로 앉는 걸 잊은 채 멍하니 내려보는 관중들도 있다.
-영혼가출ㅋㅋㅋㅋ
-앜ㅋㅋㅋㅋ꼬시다 ㅋㅋㅋ
-멘탈 나갔네 ㅋㅋㅋㅋㅋㅋㅋ
-억장이 와르르 맨션~
성이 무너지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콰아앙!
거대한 벽돌들이 비처럼 쏟아져내리고, 시커먼 분진이 고지대를 가득 덮는데.
그야말로 현장은 혼비백산이었다.
화르르륵!
거기에 보병들이 들어와 횃불로 불까지 질러대니.
이제 고지대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있는 멀티가 아니었다.
“아아아! 결국! 결국! 에스파냐는 고지대를 포기합니다!”
그들이 그리 자랑하던 선교사와 총병들도 항전했으나 기마 궁수의 치고빠지기에 선교사의 전향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고.
선교사들이 처리당하는 사이 검수들이 달려와 총병들을 썰어버렸다.
아무리 선교사가 힐을 넣어도, 직접 썰어버리는 검 앞에선 무리였다.
촤아아악!
“병사들! 빠져야죠!? 나쵸 지금 병사 흘렸습니다!?”
지금 당하고 있는 이 병사들은 심지어 본래 퇴각했어야 하는 병사들이다.
혼란스러운 와중 명령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이다.
“아니죠. 이건 나쵸가 명령을 못내렸다기보다…….”
“아. 못 본 건가요!?”
“그렇죠! 이 정도 규모의 전투 패배면 전체 명령을 쏠 테니까요!”
“아…… 이런 경우 많긴 합니다!? 너무 전투가 혼란스럽거나 선수들 멘탈이 나가면 명령 메시지가 와도 몰라요!”
에스파냐 병사들이 명령을 제대로 못 보기 시작했다.
집중력이 밑바닥으로 처박힌 것이다.
“쭉쭉 밀립니다! 진짜 속도를 겉잡을 수가 없어요!!”
“이게 군비에 올인한 힘인가요!? 에스파냐! 진짜 신나게 얻어터집니다!?”
-본진까지밀리네 ㅋㅋㅋ
-뎀프시롤ㄷㄷ
-시원하네
-헐 우리 본선가냐!?
미니맵 상에서 푸른 점들이 점점 빨간 점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고지대엔 이미 푸른 점들뿐이었고, 이제 그들은 빨간 점의 시작점까지 침투해 있다.
“아아아! 본진까지! 본진까지 중세 벌쳐들이!!”
기마 궁수 부대가 본진마저 완전히 휘젓고 있는 것이다.
* * *
“히랴아아!”
미친 듯이 말을 달리며 일꾼을 보이는 대로 다 쏴 죽였다.
아몬드의 눈에 걸리는 일꾼이 있다면, 수 초 안에 꼬챙이가 되어버렸다.
‘더…… 더 죽여야…….’
지금이 승기를 잡은 순간이라는 건 아몬드도 알 수 있을 만큼 뻔했다.
더군다나 이 게임은 승기를 잡았을 때 못 끝내면 그 뒤에 더 큰 후폭풍으로 당한다는 것도 뻔했다.
릴보다 역전에 훨씬 관대한 게임이 시빌엠이다.
그렇기에 그는 방심을 늦추지 않고 계속 최고 집중력을 유지했다.
아니, 끌어올렸다.
“더! 더 찾아!”
“아, 알았어!”
그의 저돌적인 돌진과 살상 덕에 뒤에 따라오는 기마 궁수 부대의 일원들도 감화되어 멈출 수가 없었다.
중간에 무슨 명령이 내려왔음에도, 그들 중 대부분이 알지 못했다.
보이지 않았다.
무아지경(無我之境).
머리가 완전한 백색으로 암전(暗轉), 아니, 광전(光轉)해 버린다.
시각뿐이 아니라, 청각조차 전부 사라져 차단된다.
활을 당기는 감촉과 적에게 화살이 꽂히는 제6의 초감각 따위만이 느껴진다.
피융…….
푹!
피융…….
푹!
자신이 말 위에 타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된다.
몸이 위아래로 진동한다는 것조차, 이 상태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조준하고 쏘는 데 있어 그런 장애는 인지조차 되지 않는 공기나 다름 없다.
‘완전히 쓸어 버려야 돼.’
이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울려 퍼진다.
팡어가 말했었다.
이 기마 궁수 부대가 쿠키가 뽑아낼 수 있는 마지막 자원이라고.
눈에 불을 켜고 적들을 더 죽일 수밖에 없었다.
더…… 더…….
일꾼들이 서넛 더 쓰러진다.
이후엔 어떤 생각으로 저들을 죽이게 되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그냥 쏴야 했다.
아몬드는 아마 중독되어 버렸다.
아무 의미도 기억나지 않았다.
말을 타고 활을 쏘는 이 행위 자체에 의미가 부여된다.
그때였다.
갑자기 리듬이 깨져 버린 것이.
‘어?’
고장난 테이프처럼, 모든 감각이 뒤엉켜 희한한 소리를 냈다.
시유우웅…….
‘아. 말이……?’
말이 느려지고 있다.
그제야 내가 말을 타고 있었구나 자각한다.
말이 지쳤나?
그렇다기엔 다른 선수들의 말도 죄다 느려지고 있었다.
표적들도 멈춘다.
마치 살아 있는 게 아닌 양, 일꾼들이 전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느려지던 말도 기어코 걷기 시작하더니 이내 멈춰 버렸다.
“……아.”
그제야 아몬드의 눈에 들어왔다.
[승리]
아까부터 떠 있던, 경기가 종료되었다는 메시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