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21화
41. 진출 이후(4)
조선의 본선 진출이 확정된 후.
본선 진출 소식은 꽤 많은 언론에 소개됐다.
보통 e스포츠를 잘 다루지 않는 언론에서도 하나둘 정도 기사를 일부러 내줄 정도였다.
아무리 비인기 게임이라도, 스포츠 중 아류인 e스포츠일지라도, 더 이상 무시할 수 있는 체급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만큼 가짜 국대와 시빌엠 국가대항전의 시청자는 계속해서 늘고 있었다.
릴드컵 라이브 시청자 국내 최고 집계가 약 170만 명이었는데, 지금 국가 대항전의 최고 집계가 40만대를 넘겼다.
릴드컵은 명실상부 e스포츠 중 최고 인기 대회이며 각종 언론에서도 앞다퉈서 보도하는 스포츠다.
시빌 엠파이어가 이미 이걸 1/4가량 따라잡았다.
이는 꽤나…….
“고무적인 거죠.”
주혁이 단호하게 내뱉었다.
“아직 결승도 안 했고. 이제 본선 진출이잖아요? 심지어 본선 32강이에요. 경기 수가 많다구요. 이거 8강만 가도 어떻게 되겠습니까?”
주혁은 지금 국가대항전이 몇 차례나 치러지는지를 강조하고 있다.
아마도 그 상품성을 주장하려는 듯했다.
“게다가 지금 국가대항전만 보실 게 아니잖아요. 가짜 국대도 보셔야죠.”
심지어 가짜 국대까지 거론한다.
왜일까?
“예? 가짜 국대에도 그럼 광고 넣어주십니까?”
말하고 있는 상대가 광고주이기 때문이다.
“아뇨…… 그건 따로 하셔야죠.”
주혁이 손을 내젓는다.
‘어딜 날로 먹으려고.’
광고주라도 할 말은 해야지.
이에 광고주 쪽은 기분 나쁘다는 듯 되묻는다.
“아니, 그럼 가짜 국대는 왜 얘기해요?”
“아…… 그냥 기세가 그렇다는 거죠. 기세가. 파급력이라는 게 보이잖아요?”
“참내…….”
한숨을 뱉으며 팔짱을 끼는 두 사람.
그들은 이번에 스폰서 제의를 해온 회사 즉, 광고주의 직원들이었다.
이들은 아몬드에게 광고를 넣는 것도, 가짜 국대에 광고를 넣는 것도 아니다.
“저희는 국가 대항전 팀에! 그 옷에다가 새기고 싶다니까요?”
국가대항전 팀을 스폰하고 싶다는 것이다.
축구 프로팀들이 가슴팍에 큼지막한 스폰서 로고를 새기듯이, 국가대항전에도 그렇게 하고 싶단다.
이게 문제다.
이게 지금 이야기가 계속 돌고 도는 이유다.
주혁의 옆에 앉은 여성이 다시 설명한다.
“아니…… 국가 대항전에선 그런 건 구현이 불가능하세요. 나라와 문명에 관련된 게임이라, 게임사에서 절대로 허락 안 해줍니다.”
그녀는 시빌엠 코리아에서 나온 직원이다. 자신을 ‘엘리시아’라고 소개했다. 회사에선 그렇게 불린다고.
이 엘리시아에게 광고주 쪽이 사정했다.
“그러니까…… 좀 허락을 어떻게 못 구합니까? 아니면 우리나라 중계만이라도 그렇게 CG를 입히든가!”
“예? 무, 무슨…… 그러면 배보다 배꼽이 크죠. CG 넣는 게 쉽나요!?”
엘리시아는 CG 얘기에 질색하며 거절한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말이 딱 맞다.
경제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얘기는 다시 돈다.
“아니…… 그러니까……!”
“그…… 안된다는…….”
“에휴…….”
주혁이 슬쩍 낀다.
“잠시만요.”
주혁은 슬쩍 시빌엠 코리아 쪽, 엘리시아에게 눈짓한다.
“저희끼리 잠깐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저희가 먼저 합의가 되야 할 거 같아서.”
광고주 쪽은 잠시 고민하더니 끄덕인다.
“예. 그러시죠. 저희도 담배 좀 한 대 피우고 오겠습니다.”
이로써 잠시 휴정이다.
주혁은 엘레시아를 붙잡고 오피스 구석으로 가서 물었다.
“아니. 정말 안 돼요? 단가를 높이면 해결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예? 안 되죠. 돈 적인 문제를 떠나서, 국가대표가 가슴팍에 혼다, 도요타 박고 나온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쪽은 국내 기업인데…… 저흰 가짜 국대고…….”
“아니, 그러니까 안 된다구요. 꼭 해외 기업이 아니더라도. 문명적 특색이 스폰서 로고에 가려지잖아요. 얼마나 꼴이 우습겠어요. 그러니까 시빌엠에서도 절대 허락 안 하고, 다른 팀 아무도 안 하잖아요?”
“하…….”
못내 아쉬워하는 주혁의 모습.
가슴팍에 박고 뛰면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부를 수 있을 텐데.
국가를 내걸고 하면 이런 게 불편했다.
“알겠습니다. 근데 가슴팍에 못 한다고 하면 스폰 안 할 수도 있잖아요.”
“그…… 그렇죠. 하지만 어떡해요? 안 되는 걸 하라는데.”
엘리시아는 분명 아쉬웠으나, 굳이 내색하지 않았다.
이럴 거면 없는 게 낫다! 그렇게 단호하게 나가기로 한 것.
“……하.”
주혁은 이마를 짚는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스폰서가 붙으면 진짜 큰 도움이 될 텐데.’
사실상 대회 참여 자체로 얻는 이득은 전무한 상황인데, 이 스폰서가 함께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선수들이 단순히 경기를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나눠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숫자가 너무 많아서 나누면 얼마 안 되겠지만…….
그래도 수입이 생긴다는 게 어딘가?
‘일단 시작이 중요해. 스폰이 하나 붙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달려들 거야.’
일단 이거부터 시작을 하게 되면, 또 다른 스폰서들이 붙고, 또 붙고, 또…….
이렇게 늘리면 어쩌면 정말 프로 활동이 가능한 수준까지 갈지도 모르지.
이번에는 힘들어도 적어도 다음 혹은 그 다음 국대들은.
‘내가 왜 이런거까지…….’
새삼 왜 다음 세대들까지 신경 쓰고 있는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현세대로서도 이 스폰서를 쿨하게 그냥 ‘에이 안 되면 가세요’라고 할 수가 없다. 앞에선 강한 척을 하더라도.
“하…… 그러면.”
고민 끝에 주혁은 작전을 바꿔보기로한다.
“이렇게 해보죠.”
엘리시아는 주혁의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갸웃한다.
정말 그런게 되겠냐는 듯이.
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되면 좋고. 안되면 어차피 갈 놈이죠.”
엘리시아 편하라고 말은 이렇게 했으나.
‘못 가.’
주혁은 어떻게든 붙잡을 생각이다.
「매니저님이 해주세요.」
희철이 자신에게 믿고 맡겨준 일이었다.
「저 광고 받아본 적이 없어서요.」
희철도 사업을 해본 사람인데, 여기 와서 못할 리가 없다.
그럼에도 그는 이 일을 주혁에게 넘겨줬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아몬드를 보고 들어오는 거라는 거.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일은 매니저님이 가시는 게 맞죠.」
그는 평소 내색은 하지 않았으나, 아몬드 덕분에 지금의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나 게임 외적으로 벌어지는 이 일들.
국내 시빌엠 스트리밍이 인기를 얻는다거나, 뒤에 감춰진 싱크 탱크 팀이 가짜 국대로 큰 관심을 받는다거나.
전부 아몬드가 참여한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나한테 준 일이잖아.’
무엇보다 그는 정말 주혁을 믿고 있었다.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매니저님이 이 일을 굉장히 잘하신다고. 저는 단지 이 일에 가장 뛰어난 사람을 알맞게 배치하는 거니까. 부담 갖지 마시죠.」
회사 그만두고 처음이었다.
상현 외에 누군가가 자신을 믿고 자신의 일을 대신 맡겨준 것.
‘그런데 그냥 보낼 수 없지.’
주혁은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회의실로 갔다.
* * *
잠시 후.
상대 직원 둘과 이쪽 둘.
그렇게 총 넷은 다시 회의실에 모였다.
“지금 잠시 얘기해 보니까, 가슴팍에 요구해 볼 수는 있어요.”
“……그래요?”
스폰서 쪽 직원들 표정이 밝아졌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하는 게 맞으십니까?”
“예? 그게 무슨…….”
툭.
주혁이 제시된 계약서에 빈 숫자 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에 얼마까지 쓰실지 정하셨을거 아닙니까. 근데 아까 제가 언뜻 듣기로는 한참 모자라세요. 완전히 이례적인 일을 만드는 거라, 당연히 비용이 더 듭니다.”
“…….”
직원 둘은 서로 잠시 눈치를 봤다.
하긴 다른 팀들은 다 로고가 없는데, 이쪽만 있게 되는 거다.
얼마나 눈에 띄겠나. 광고 비용은 더 많이 책정될 수밖에 없다.
거기에 게임사 설득까지 해야 하니…….
“현실적인 예산을 말씀해 주세요.”
“아…… 한…….”
척.
그들은 슬쩍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주혁의 눈썹이 꿈틀 거렸다.
“에이. 그럼 애초에 요구하는 의미 자체가 없습니다. 최소…….”
척.
주혁이 정확히 3배의 금액을 요구했다.
옆에 있던 엘리시아는 태연한 척 표정 연기를 위해 안면에 힘을 빡 주어야 했다.
“예!? 그건 곤란합니다.”
“그럼 배너 정도로 하시는 게 좋습니다.”
“……배너요?”
“예. 그게 상시 노출도 되고 더 좋을 수도 있어요.”
“아. 축구 경기장 관중석에 있는 배너 말씀이신가요?”
“아뇨. 그건 시빌엠 본사와 이야기하셔야 할 수준의 광고입니다. 그건 안 되구요. 중계 채널 배너죠.”
“음…….”
그들은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국대와 함께 한다는 느낌이 너무 사라져요. 그냥 경기 중계 스폰서 같습니다.”
아차.
주혁은 그들의 말에 동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느낌을 원하는 거구나.’
광고라 함은 당연히 기업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노리는 것인데.
중계 자체보다는 선수들을 후원한다는 느낌이 나길 원할 거다.
주혁은 잠시 머리를 굴렸다.
저들이 뭘 원하는지 알고 있으니, 이걸로 설득이 가능할 것 같았다.
“함께한다…… 음.”
주혁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이야기했다.
“그럼 가슴팍에 박아버리는 건 ‘함께한다’는 느낌 맞나요?”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당연하죠.”
“아뇨. 여기선 오히려 ‘침해한다’ 느낌이 되실 겁니다.”
“예?!”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조선군의 복장, 태극기, 장수들의 군기 같은 것들만 있는 곳에. 갑자기 현대적인 기업의 로고가 박힌다? 그게 함께하는 걸로 보일까요? 자본으로 침투한 것처럼 보일까요? 다 차치하더라도, 그게 보기 좋습니까? 어울립니까?”
“아…….”
“그 보기 좋지 않은 풍경에 기업 로고가 한 건 한다면, 그게 이미지에 도움이 되나요?”
“…….”
둘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e스포츠라길래, 대충 그들이 알던 스포츠 프로 리그에 맞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시빌엠파이어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국가간 색채가 오히려 현대 스포츠의 진짜 국가 대표보다 더 짙게 드러나고.
기업의 로고가 들어가면 그 색채를 해치는 그림이 되어버린다.
“돈도 정말 많이 들고, 오히려 기업 이미지만 버리는 광고예요.”
“……하.”
차마 ‘그렇네’라고 말은 못하지만, 이미 직원 둘은 아예 안을 바꿔야 한다고 서로 생각 중이었다.
“만약 정말 국가 대항전 팀과 ‘함께한다’라고 보여지고 싶다면. 제가 제안드리고 싶은 게 하나 있습니다. 아니, 사실 이 방법 외에 다른 게 없습니다.”
“……?”
그 말에 직원 둘, 아니, 셋이 동시에 돌아봤다.
엘리시아조차 주혁이 이제 뭘 말할지 몰랐다.
그녀가 들은 작전은 그냥 ‘가슴팍에 박는 건 가격이 엄청나다’라고 주장해서 회유책으로 배너를 제시한다는 것까지였다.
그 이후는 다 주혁이 현장에서 그냥 말한 것이다.
그러니까, 애초에 작전에서 멀어진지 한참인 셈이다.
“아까 가짜 국대 이야기 잠깐 들으셨죠?”
* * *
다음 날 저녁.
아몬드가 방송 중에 이야기를 꺼낸다.
“여러분. 중대한 발표가 있습니다.”
-??
-뭐지?
-중대 발표 ㄷㄷ
-설마 군대 가시나요?
-드디어 인류가 아니라 견과류라는 걸 밝히는구나…… 이 넛틸리언!
-오늘따라 말을 길게 하는게…… 광고 아님? ㅋㅋㅋㅋㅋ
그는 키보드를 조작하며 뭔가를 띄운다.
“짠.”
그가 띄운 것은 어느 회사의 로고였다.
[월수향]
“저희 팀이 스폰서를 갖게 되었습니다!”
-역시 광고였어 ㅋㅋㅋ무친ㅋㅋ
-오 ㅊㅊㅊㅊ
-스폰서 ㄷㄷ
-캬
-저게 어디임?
-설마 국대팀???와
그랬다.
이번에 국가 대항전 팀에 들어온 스폰서.
그걸 아몬드 채널에서 소개하기로 했던 것이다.
“저는 단순히 감사 표시로 소개해 드리는 거고. 앞으로 가짜 국대 영상에 자주 등장할 거예요.”
이후 이 브랜드는 가짜 국대에서 간접 광고 형식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ㄷㄷ
-크 ㅠㅠ 피피엘
-무직 함대가 광고를…… ㅠㅠ
-월수향? 술 파는 데인가?
-치승아 ㅠㅠㅠ 슈바ㅠㅠㅠ 성공했구나!
광고라 하면 부정적인 반응이 있을 수도 있었는데.
‘괜찮은 거 같은데?’
채팅창엔 축하한다는 댓글뿐이었다.
이때 아몬드는 느꼈다.
‘어쩌면…….’
미래에 있을 어떤 거대한 일의 시작이 지금이라는 것을.
“아. 그리고 이 브랜드를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이거 보면 뭔지 아실 거예요.”
슥.
아몬드는 책상 위로 뭔가를 꺼내놨다.
‘괴수’
스포츠 음료였다.
타악!
아몬드는 캔 뚜껑을 따버리고는 시원하게 들이켰다.
그리고, 약속된 행동을 보여줬는데.
-????
-미친ㅋㅋㅋㅋ
-앜ㅋㅋㅋㅋ
-진짴ㅋㅋㅋ
-이, 이게 광고의 힘??!
-엌ㅋㅋㅋ
순간 채팅창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