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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3부-127화 (659/699)

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27화

43. 라이언 일병(2)

중계 화면 한편에 뜬 지도 상엔 로마는 빨간색, 조선은 파란색으로 표시되고 있었다.

어떤 복잡하고 참혹한 전쟁조차 이 거리에서 보면 조금 특이한 바둑에 불과해 보인다.

그렇다면 지금 적돌과 청돌의 바둑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걸까?

우선 파란색은 게임 시작부터 지금까지 처음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무슨 보이지 않는 울타리라도 있는 듯, 한자리에 뭉쳐 있다.

방어적인 전술을 내세우기엔 유리하나, 나아가지 못한다면 결국 안에서부터 터질 것이다.

반면에 빨간색은 맵 이곳저곳을 점유하며 활동 반경이 넓다.

넓게 둘러싼 채로 푸른색을 확실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밀집되어 있는 푸른색에 비해 면적당 분포된 머릿수는 현저히 낮겠으나, 그건 그들에게 그리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양치기 개가 양들을 몰아넣을 때 양보다 많은 머릿수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 * *

쿠키의 눈이 바삐 움직였다.

그는 현재 전장을 가장 위에서 내려보고 있었다만…….

아군이 모여 있는 장소 외에는 전부 어둠뿐이었다.

이따금씩 매 날리기를 쓴다고 해도 한계가 뚜렷했다.

조선 본진을 지키기 위해서 두른 성벽이 이젠 그들을 가두는 감옥이 됐다.

‘애초에 이렇게 유도했다.’

쿠키는 알고 있었다.

이게 안토의 의도였다는 걸.

전투를 지속하면 지속할수록 불리한 조선 입장에선 원할 때만 싸우기 위해서 성벽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안토는 그 점을 이미 알고 이렇게 공격 일변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쿠키가 몰랐던 점은 안토가 성벽 안의 적을 얼마나 잘 유린하는가이다.

아니, 잘한다는 건 알았다.

다만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마치 사방에 적이 다 200명씩 있는 것 같군.’

안토는 지휘관들 사이에서 ‘시야의 마법사’로 불리곤 했다.

막상 쿠키는 그 진가를 제대로 당해본 적이 없었다.

바로 지금 경기 전까지는.

‘다른 팀 경기를 분석했던 것과는 너무 달라.’

남의 집 불타버린 원인을 분석하는 것과 막상 우리 집이 불탈 때의 대처 능력은 완전히 다른 종류다.

특히나 시야에 관련된 세세한 트릭은 중계 관점에서 보는 사람에겐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지금 쿠키의 시야에서 로마군은 1,000명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어떤 입구에도 그들이 압박을 가해오고 있으며, 어디가 진짜 본대인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병사들의 면면도 계속해서 바뀌는 듯했다.

완전히 의도적이었다.

‘폐쇄공포증이라도 걸리겠어.’

쿠키는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당장 돌파구를 생각해 내기 힘들었다.

여기서 만약 돌파해 낸다고 해도 그건 순전히 운의 영역일 것이다.

주사위를 던져 6이 나오면 산다. 같은 게임에서 그냥 6이 나와서 산 것일 뿐이다.

‘……그래도 던져야지.’

지휘관은 때론 질 걸 알면서도 주사위를 던진다.

수학적으로는 주사위를 던지기 전과 던진 후의 확률이 바뀌지 않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던진 후와 전의 확률이 바뀌기 때문이다.

[집합]

티잉!

그는 몇몇 사람들을 본진의 보급소에 모으기 시작했다.

‘뚫어보자.’

어디가 진짜인지 알 수 없으나, 이대로 방어만 할 수 없다.

한 번의 공격 기회를 만들 것이다.

한 번의 주사위를 던질 것이다.

그 주사위가 6이 뜬다면, 그는 한 번의 기회를 더 얻게 된다.

* * *

“아. 로마!? 그야말로 공격 일변도입니다! 근데 이걸 감당하질 못합니다!?”

“안토의 운영 능력과! 무엇보다 선수풀 중간층이 두텁다! 이게 로마의 큰 장점이라서요!”

중계진도 선수층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사방으로 퍼진 로마군이 똘똘 뭉친 조선군을 몰아넣고 있는 게! 사실 실력 차이라고밖에 설명이 안 되거든요!”

-ㅠㅠㅠㅠ

-하긴

-마라탕 팔면서 겜하는데 어케 이기냐고ㅠ 슈바 ㅠㅠ

-치승이 알바 하나만 줄여도 이김 ㅅㄱ

-조선이 전면전이 안되는게 선수풀 때문도 있음

에이스들끼리의 대결로 가는 소규모 전투라면, 약팀도 강팀과 어떻게 해볼 만했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진다면?

“전투가 길어질수록 중간 순번들의 주요 전투 참여율이 높아집니다! 그러니까! 킹귤 님 말대로! 전투력의 평균치로 싸우는 게 돼요!”

에이스 부대 몇이 주요 미션을 해결하는 게 아닌, 군 전체의 평균치가 곧 군의 전투력이 되어버리게 된다.

“맞습니다! 시빌엠의 병사 평균 생존 시간을 고려하면! 아무리 에이스들이라도 전투 시작 후 10분 이상 살아 있기 힘들거든요?”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실력자들 수백이 날뛰는 전장에서 독보적일 순 없다.

모두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고 다시 모집되는 순간을 기다리게 된다.

“이렇게 전투가 사방에서 계속되면! 모집 누르는 속도도 점점 느려져요! 자원이 많이 들거든요!?”

“그렇습니다. 죽은 순서대로 모집되는 데다가! 같은 선수를 계속 모집하면…….”

원하는 병사를 골라서 모집할 수도 없다. 죽은 순서대로 모집될 뿐이다.

그렇다면 죽자마자 계속 모집을 누르면 되느냐? 하면 그도 아니다.

그땐 자원 문제가 발생한다.

“자원이 조금씩 더 들게 되어 있죠?”

“맞습니다!”

-재모집 광클하면 돈 녹음 ㄹㅇ

-이거 초보자들 실수함

-헐 선수풀이 이래서 중요하네;;

-골고루 쓰게끔 되어있네 ㅁㅊ

중복 모집에 추가 비용이 조금씩 붙는다.

예를 들어 팡어가 다섯 번 모집되는 거보다 골고루 여섯 명이 한 번씩 모집(부활)되는 게 더 저렴하다.

그러니 어떤 유능한 병사가 죽었다고해서 바로 모집을 눌러서 또 살리고, 또 살리고…… 하는 플레이를 구현하기 힘들다.

후반으로 갈수록 비용이 점점 늘어나, 지휘관은 모집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충분히 죽은 인원이 쌓인 다음 모집을 눌러주는 게 보통이다.

“안토는 반면에 이런 문제가 없죠!?”

“예! 자원 차이 때문이 아니라! 로마군은 병사가 아무리 로테이션 돌아도 수행 능력이 비슷해서입니다!”

이에 대한 해결 방법은 결국 200명의 평균적인 작전 수행 능력을 끌어올리는 것뿐이다.

말이 쉽지 사실상 제일 어려운 과제이다.

이걸 해결한 팀을 이곳에선 보통 ‘우승 전력’이라고 한다.

-압도적이네 ㄹㅇ

-이게 우승 전력이구나 ㅠ

-진짜 스페인은 아무것도 아니었누

-그냥 지고 본선 가면 그만이야~

-이 정도였어? 로마?

“로마! 압도적인 선수층을 바탕으로 계속해서 소모전!”

“조선 입장에선 밀릴 수밖에 없습니다!”

시청자들은 당황스러웠다.

사실 로마가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압도적으로 밀어붙인 적은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건 조선 경기만 골라서 보는 라이트 유저들의 생각이다.

“사실 로마가 다른 팀들과의 경기에서 이 정도 압박 보여주는 장면이 굉장히 흔했었죠?”

“맞습니다. 조선이 저번 경기에서 굉장히 잘해줬던 거예요!”

-졌잘싸도르 ㅋㅋㅋ

-이젠 경기 칭찬할 게 없으니 저번까지 가냐 ㅋㅋㅋ

-졌지만 잘 싸웠‘었’다 ㅋㅋㅋㅋㅋ

중계진이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기 위해 결국 과거 경기까지 끌어올 정도로 상황은 좋지 못했다.

사방에서 지속되고 있는 공성전. 연속으로 지출되는 모집 비용. 말라가는 자원줄.

로마의 3시대 공성 병기들이 등장한다면 그냥 게임의 마무리 단계로 진입할 기세다.

“지금 조선은 결단을 내려야 할 것 같은데요? 킹귤 님! 한 곳이라도 뚫고 나가면 안 됩니까!?”

현재 조선은 어떻게든 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시야도 확보되고, 자원을 캘 수도 있으며 적의 후방을 잡을 수도 있다.

“아…… 그게 쿠키 시야에서 보시면, 지금 어디가 빈 곳인지 알기 굉장히 어렵거든요?”

문제는 어디로 뚫고 나가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거다.

-아 시야 때문에???

-엥? 진짜?

-이게 애초에 지휘관 실력임 알못들아

-흠 그정둔가……

지금처럼 시야 트릭이 오고 가는 경우. 중계진의 표현만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상황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옵저버가 반응했다.

팟!

“아! 지금 시야 바꼈죠?”

“아……! 이, 이런 기분이군요!?”

-ㄷㄷㄷ

-엥?

-공포겜 ㅋㅋㅋ

-왜 디펜스 겜 시야로 바뀜?ㅋㅋㅋ

-앗……

-왜 월 마리아 안이냐?

쿠키의 개인 시야로 중계 화면이 바뀌자, 확연히 들어왔다.

닭장에 갇힌 닭 신세가 되어버린 조선군의 상황이.

이들은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거의 주사위를 던지는 심정으로.

“말씀드리는 순간! 조선이 기마대를 모았습니다!”

조선군 중앙에서 무기를 보급받고 있는 기마대가 보였다.

그들의 무기는 전부 커다란 월도였다.

아마 이들이 쿠키의 주사위가 되어 줄 자들이다.

“아. 월도에 중장갑! 이거 기마 돌격병입니다! 사실상 동양판 기사들이죠?”

“그렇습니다! 서양 기사들보다 방어력은 조금 낮지만! 기동력이 좋고! 특히 돌파력이 굉장히 좋아요!”

“역시 뚫고 나가는군요!”

약 서른 정도 모인 기마대에는 아몬드도 포함이었다.

-아몬드 ㄷㄷ

-아몬드 뭐야 궁수 아니야 이번에??

-엇 아몬드!?

-캬

중계진도 다시 눈을 크게 뜨고 쳐다보더니 언급했다.

“아니, 그리고 특이하게 아몬드가 포함됐어요?”

“어……?”

“아몬드라면 성벽 위에서 활만 쏘는 게 좋지 않을까 했는데. 어떤 판단인 걸까요 킹귤 님?

“게임 특징상 활을 위에서 쏘면 헤드샷이 어렵습니다. 아마 그래서 차라리 돌격 부대에 포함시킨 것 같습니다.”

“기마 궁수는 쓰기 어려운 상황이었군요?”

“예. 현재 작전에 어울리지도 않고, 그거 돈 많이 들거든요!”

-ㄹㅇ……

-너무 고급 병과임 ㅋㅋ

-ㅇㅈ

“국가대항전에서는 처음이죠?! 활과 관련이 없는 병과로 나온 거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쿠키가 뭔가 새로운 걸 테스트해 보려는 것 같기도 합니다?”

킹귤은 이게 단순히 비용을 아낀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경우의 수 하나를 늘려보려는 건가?’

조선이 다른 스타일도 소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달려 나갑니다!? 아, 어디로 갈까요!? 지금 사실 남쪽으로 나가면 최선인데!”

“그쵸? 반면에 북으로 가면 지옥입니다!? 한반도마냥!”

-엌ㅋㅋㅋ

-역시 같은 반도국가 ㅋㅋ

-헬조선 ㅋㅋㅋㅋ

-한반도 북쪽은 지옥이긴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

* * *

[기마 돌격병]

아몬드로서는 처음 받아보는 병과가 머리 위로 떠올랐다.

나름 조선이 자랑하는 특수한 병과였다. 아마 조선 근접 병과 중에선 최상급일 터다.

절대적인 스펙보단 효율이 좋다.

기마 궁수와 다르게 업그레이드 없이도 바로 쓸 수 있고, 기동성이 중갑 기병 중에선 상당한 편이며 이들이 쓰는 월도는 보병들도 바로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범용성이 높다.

“곧 출발이다. 자리 확인하고 정비해라!”

마라탕이 가장 선두로 나서며 외쳤다.

그 뒤를 따라 정확히 28기의 기마 돌격병들이 줄을 지었다.

아몬드로서는 친숙하진 않은 얼굴 들이다.

[돌파]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히랴아!”

마라탕이 앞서 달려가며 그 옆으로 하나씩 달리기 시작했다.

V자 형태로 포진하여 상대를 찌르듯이 돌파하는 식이었다.

우우웅……!

각자의 자리가 빛나며 표시됐다.

‘저기구나.’

아몬드는 이 쪽 병과에서는 순번이 밀리기 때문에 우측 날개 끝자락이다.

“하! 가자! 따라와!”

우측의 끝에서 두번째 순번이 출발하고, 아몬드 역시 박차를 가했다.

다그닥! 다그닥!

그들이 달리는 방향은 12시.

북쪽이었다.

다그닥!

말의 속력이 점점 올라간다. 말발굽 소리가 거세게 치달았다.

다그닥! 다그닥!

맨 선두에서 마라탕이 무어라 외치지만 소리가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우리 목…… 북문 쪽 적들의 진영…… 후방…… 거다!”

늘 옆에서 설명해 주던 당근이나 팡어가 없으니, 상황 파악이 힘들었다.

그나마 알 수 있는 건 쿠키가 직접 보낸 [돌파]라는 명령.

‘일단 돌파니까…….’

돌파라는 건 일단 적에게 달려 들이받는 행위를 말한다.

아몬드는 적어도 그렇게 이해했다.

애초에 이 기마 돌격병이라는 병과 자체가 그런 목적으로 만들어진 거니까.

“히랴아!”

“하아!”

주위 기마병들이 점점 속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문이다.’

곧 성문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동 속도 가속]

기마 돌격병의 특성으로 인해 점점 말에 가속이 붙었다.

[가속에 비례한 절단력 상승]

속도가 곧 전투력이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었다.

드르르르륵!

성문이 열렸다.

선두에 선 마라탕이 월도를 높이 치켜든다.

척!

“돌파아아아아아!”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이 고래고래 외쳤다.

“와아아아아아아!”

함성과 함께 기마대 전체가 성문을 통과했다.

그들이 나간 후, 성문이 곧바로 닫힌다.

쿵──!

“!”

이 소리는 마치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와도 비슷했다.

기마대는 성문을 나간 순간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렇게 많이?’

‘젠장…….’

쿠키가 굴린 주사위의 숫자는 ‘1’이 나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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