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30화
43. 라이언 일병(5)
달리기로 마음먹은 건 아몬드뿐만이 아니었다.
전부 같은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돌겨어어어어억!”
월도를 든 검수들이 이제 로마 보병들을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아몬드 역시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기 시작한다.
[가속도]
기마 돌격병의 팩션은 웃기게도 낙마 후에도 적용이 된다.
그들의 달리기는 가속이 붙으며 일반 보병보다 훨씬 빨라졌다. 아몬드도 그들의 뒤를 따라 내달렸다.
‘엄호 사격까지 온다.’
아군 궁수들이 엄호 사격을 쏴주기 시작했다. 든든하다.
멀리서 쏠 땐 화살이 위에서만 날아왔으나, 이젠 옆에서도 날아올 것이다.
로마군은 위쪽만 막으면 됐던 상황에서, 이제 위와 옆을 막아야 했다.
피융! 피유웅!
바람이 찢어지는 소리에 맞춰 로마군이 픽픽 쓰러진다.
[조선! 이때다 싶어서 뜁니다!]
[로마 방진이 지금 쓸모가 없어졌죠!?]
[예! 활을 이렇게 가까이서 쏘면 직선 사격으로도 충분히 맞히니까요! 이제 옆도 막아야 돼요!]
[아까부터 로마! 조선에게 옆구리를 자주 내줍니다! 흔들리나요!?]
로마군이 흔들린다라…… 그렇게만 된다면 조선군으로서는 바랄 게 없을 테지만 이는 결국 해설자들의 바람에 불과했다.
아마 로마 병사 몇은 흔들렸을 수도 있겠으나, 이 전장에선 한 사람만 정신을 제대로 붙잡아도 다시 군의 조직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뒤로 일보!”
바로 그들을 통솔하는 피에르.
그는 눈 하나 깜짝 안 한 채로 명령을 내렸다.
전혀 흔들리는 기색조차 없었다.
“좌측! 상향! 방패 벽!”
척!
이제 보병들이 위와 좌측을 동시에 막았다.
그러는 동안 생긴 동료들의 시체를 무심히 밀어내면서, 그들은 결국 새로운 방진을 구축해 냈다.
[아……! 아직 조직력이 살아 있습니다!]
[지금 저기에 로마 에이스가 들어가 있어요! 그 탓입니다!]
[괜히 여기가 메인 전장이 아니군요!?]
퍽! 퍼벅!
로마군의 두꺼운 방패에 화살이 막힌다. 아무리 화살이 관통력이 좋아도 방패를 뚫고 상대 갑옷까지 뚫어낼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 조선군은 궁수만 있는 게 아니었다.
[자! 월도를 든! 돌격병들이 부딪히기 직전입니다!]
[비록 말은 없지만! 팩션은 그대로거든요!?]
타다다다다다──
마라탕, 아몬드, 목이 등 살아남은 조선의 검수들이 아직 뛰고 있다.
이들을 저지할 석궁병들은 아직 충원되지 않았다.
게다가 저들이 방진을 바꾸면서 생긴 문제점을 아몬드는 포착했다.
‘방패가 퍼졌어.’
위와 앞만 막던 상황에서 우측까지 막고 있다. 어쩌면 약간의 후방까지도.
그 전환이 빠르고 부드러웠던 것은 분명 대단하나, 방패 개수는 정해져 있다. 그런데 막는 범위를 늘린다?
그럼 방패의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가장 선두로 달린 마라탕이 고함을 내질렀다.
“쳐라아아아아!”
그가 우렁차게 칼을 휘둘렀다.
──콰앙!
로마의 전열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그 뒤로 일제히 조선 병사들이 달려와 전열을 썰어내고 모든 병사들이 뒤엉키기 시작했다.
‘틈……!’
아몬드의 눈에 방패들 사이의 틈이 너무 훤히 들어왔다.
아몬드의 월도도 누군가의 복부를 찌르고 들어갔다.
푹!
“커억!”
다시 뽑아내자 시뻘건 피가 튀어오른다.
‘어? 피에르 어디로 간 거야.’
피에르를 노리고 뛰었는데. 방패로 가로막히더니, 갑자기 또 안 보인다.
쿠구구궁…….
방패 진형이 갑작스레 바뀐다. 움직이는 미로 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그 방패들 사이로 누군가 창을 찌른다. 어깨쯤을 노리고 들어오는 상단 공격.
아몬드는 상체를 숙이며 월도로 크게 하단을 훑었다.
촤아악──
빼곡한 방패 아래로 빨간 혈흔이 흩뿌려지며 쓰러진다.
공격했던 창병 하나가 쓰러져 진형 밖으로 튀어나왔다.
마무리로 월도를 내리찍는데─
“!?”
──턱.
놈이 아몬드의 검을 붙잡아 버렸다.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는 놈이 물귀신이 되려는 거다.
‘실수다.’
사실 이는 숙련도 문제였다. 월도는 기본이 베는 무기다.
워낙 무게감이 있어서 잘못 찔렀다가 늘 이런 상황에 처한다. 아몬드가 노련하지 못했던 것.
그때, 옆에서 검이 날아든다. 상당히 예리한 각도다.
아몬드는 선택권이 없었다.
칼을 놓아버린 후, 뒤로 물러나 상체를 휙 숙인다.
──스슥!
칼날이 목 뒤를 스쳐 간다.
찌릿한 느낌을 받으며 다시 상체를 일으켜 상대를 확인한다.
[피에르]
검의 주인은 피에르였다.
언제 또 여기로 왔지?
피에르도 비슷한 질문을 한다.
“너. 왜 여기 있지?”
상대가 왜 여기 있는지 의문인 건 피에르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아몬드를 알아보나??
-캬 유명인이여
-피에르가알아본다도르 쌉가능 크~
-활만 쏘던 애가 여깄으니 놀랄만함ㅋㅋㅋ
‘날 알아?’
아몬드는 조금 흥미로운 듯 그를 관찰했는데.
그 어깨너머에 펼쳐진 참상에 더 눈이 갔다.
조선군의 시체가 줄지어 누워 있었다.
아마 방패진으로 막으면서 자신이 측면에서 뛰어다니며 하나하나 썰어놓은 것 같다.
아마 다음 차례는 이쪽이다.
“무기는 떨어뜨렸나?”
아니나 다를까, 이런 말과 동시에 그의 검이 날아들었다.
쉬이익!
살벌한 소리가 울려 퍼졌으나, 아몬드는 가볍게 뒤로 물러나며 피했다.
-캬!
-미친 회피탱 ㅋㅋㅋ
-워우
이에 피에르는 물 흐르듯 다음 초식으로 넘어갔다.
훙!
역시나 허공, 피하기 어렵지 않았다.
피에르는 그 다음 동작도 곧바로 들어간다.
이번에도 피했다.
그런데─
“!”
마지막 초식.
그래,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자칫하다간 저게 마지막 검격이다.
피할 수 없는 궤적이다.
앞의 두 번의 회피로 이미 발이 꼬였고, 이건 피할 수 없다.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것이다.
급소만 피한다면 어떻게 해보겠으나, 체력이 11%다.
갑옷에 맞아도 즉사다.
막아줄 검도 없다.
피해야 산다.
그런데 피할 수 없다. 그럴 각이 없다.
이대로 그냥 죽어야 하나? 싫다. 이 녀석에게 뭐라도 하고 죽는 게 좋다.
‘아.’
그때 아몬드의 머리로 번뜩이는 게 스쳐 간다.
툭─
그는 마치 발을 구르듯 땅을 내리찍었다.
정확히는 땅에 놓여 있던 적의 기다란 창을 발로 밟았다.
시체 위에 어정쩡하게 놓여 있던 창이 지렛대처럼 치솟고, 피에르의 검격이 가로막힌다.
──카앙!
-ㄷㄷ
-???: 난 발로 해도 이겨
-와 미쳤다
-와 ㅁㅊ
-캬
-왓!?
아몬드는 곧장 그 창을 잡아채 찔러넣었다.
“!?”
일순 피에르의 당황이 찰나에 스쳐 간다.
아무리 그라도 없던 무기의 공격을 예상할 순 없다.
결국 그는 뒤로 물러나는 것이 늦었다.
심장 부근에 타격이 들어간다.
텅.
손끝이 저릿했다만, 갑옷을 뚫을 정도가 못되었다.
찌른 자세가 영 구렸고, 병과도 창병이 아니라서 벌어진 일이다.
다행히 피에르의 체력은 깎아놨다.
씨익.
피에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좋아서 올라간 게 아니라 열 받은 듯했다. 어찌 됐든 방금 심장을 내준 셈이니까.
그의 맹렬한 반격이 시작됐다.
스스스슥!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검초가 펼쳐진다.
하지만 이쪽도 아까와 달리 무기가 있다.
‘집중…….’
아몬드는 눈을 또렷이 뜨며 관찰했다.
피에르의 검이 익숙한 검로를 그리고 있다.
‘이건…….’
검격을 따라 붉은 머리칼이 아른거리며 흩날린다.
아몬드의 눈이 번뜩였다.
‘그거다.’
제시가 자주 썼던 리히테나워 검술.
아몬드의 창이 정확한 위치로 이동한다.
카앙!
불꽃이 튀며, 검이 튕겨나갔다.
완벽한 대처다.
-ㄷㄷ
-오오오오
-퍄!
공격이 막혔으나 피에르의 표정은 여전히 같다.
그야 리히테나워는 칼이 마주치면 끝나는 게 아니라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키이잉……!
검면과 창대가 마찰하며 귀신같은 경로로 다시 검날이 드리운다.
리히테나워의 숙련자와는 검을 맞대는 순간부터 이미 불리한 싸움이 시작된다.
이 검술의 원리를 알고 있는자와 모르는자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발생한다.
‘이젠 알잖아.’
아몬드는 그녀의 검술을 되뇌이며 창대를 비튼다.
살벌하게 다가오던 피에르의 검이 허공으로 미끄러졌다.
“!?”
둘의 눈이 잠시 마주쳤다.
‘궁수 아니었나?’
이런 질문을 하는 듯한 눈빛.
그 순간─
아몬드는 창대를 짧게 쥐었다.
그리고 힘껏 휘둘러 벤다.
──사악!
피에르의 목에 스쳐 간 한 줄의 흔적.
그것이 이내 빨갛게 물든다.
푸슛!
피가 솟구치며, 투구가 벗겨진다.
흘러내린 검고 긴 곱슬 사이의 눈이 아몬드를 맹렬히 노려본다.
“생각 이상이군.”
피에르는 아몬드를 높게 평가했다.
미안하게도 이쪽은 반대였다.
‘할 만한데?’
아몬드는 피에르가 전투 능력 자체로는 트레스보다 아래라고 느껴졌다.
이자는 분명 똑똑하고 민첩하지만 기습에 약했다.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범위에선 신기할 정도로 쉽게 자리를 내줬다.
테두리 밖에 있는 존재인 아몬드 같은 사람에겐 약할 수밖에 없다.
타닥─
피에르가 다시 달려든다. 길고 검은 곱슬을 휘날리며 맹렬한 검격을 퍼부었다.
쉬이익!
그러나 이미 자신감이 오른 아몬드의 창은 아까보다도 더 견고하고 빨랐다.
캉!
카앙!
검과 창이 허공에서 서로를 몇 번이나 밀어내고 당겼다.
-아니 설마 이기냐?
-왜 대등한거임
-궁수가 검술을 숨김 ㄷㄷ
-미쳤다;
허공에 튀어오르는 불꽃 사이로, 아몬드의 눈이 번뜩였다.
‘지금!’
아몬드는 마지막 일격을 찔러넣는다.
그런데─
‘!?’
텅!
창 뒤쪽이 뭔가에 걸려 버린다.
마치 돌에 걸려 넘어지듯, 창의 경로가 완전 바뀌어 찌르기 자체가 실패했다.
‘방패?’
뒤쪽에 선 다른 로마군의 방패였다.
언제 여기에 서 있었던 걸까?
그때─
피에르의 검이 기다렸다는 듯 아몬드의 복부를 찔러 올라왔다.
──푸욱!
[체력 0%]
체력이 다 날아갔다.
꾸욱.
피에르는 서로 어깨가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칼을 찔러넣으며 속삭였다.
“전쟁은 혼자 하는 거 아냐.”
그렇다.
그는 일부러 병사 하나를 뒤쪽에 배치시킨 것이다. 싸우는 와중에 그런 배치를 명령한 것이다. 그런데─
“!?”
피에르의 한쪽 눈에 화살이 날아든다.
──푹!
“아아아! 팡어어어 선수! 월척이에요! 렌즈를 깹니다아! 엑스 퉤에에엔!”
팡어다.
그가 여기까지 도달하여 엄호 사격을 해준 것이다.
-그게 왜 월척이냐곸ㅋㅋ
-렌즠ㅋㅋㅋㅋㅋ
-ㅅㅂㅋㅋㅋㅋ
-엌ㅋㅋㅋ
-렌즈는맞짘ㅋㅋ
피에르는 한쪽 눈을 잃었다.
이후 더 싸웠다면 궁수 부대가 그를 벌집으로 만들었을까?
아니면 피에르가 방패병들을 활용하며 압도했을까?
알 수 없었다.
경기가 끝났으니까.
[패배]
쿠키의 항복 선언이 울려 퍼졌다.
-엥?!
-뭐야
-ㅁㅊ
-헐 ㅠㅠ
-뭔데???
중계방이 아닌 아몬드 개인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 역시 어리둥절했다.
‘뭐지?’
아몬드 역시 대체 왜? 라는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찼으나.
이내 영혼 상태가 되어 위로 올라가 보니 깨달았다.
-앗……
-헐
-ㅈ망했네
서쪽에서 합류한 지원군에 기마 돌격대는 전멸, 추가로 밀고 나온 조선의 궁수부대도 사실상 거의 다 쓰러져 있다.
이 역시 서쪽에서 온 석궁병들에 당한 것이다.
로마군이 처음 당할 때와 똑같이 옆과 뒤에서 공격당하니 너무 쉽고 빠르게 쓸린 것이다.
다만 로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의 방진을 바탕으로 시간을 지체시켰고, 조선은 버티지 못했다.
아까 아몬드를 도와줬던 팡어조차 겨우 살아남았던 것에 불과했다.
-팡어좌 그냥 유종의 미였네 ㅠㅠ
-걍 꼬장으로 화살 박은거였냐고 팡어 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전쟁 어려워
중계진이 한탄하며 설명한다.
[아. 결정적인 판단이 아주 좋았네요. 안토.]
[예. 로마의 공성 병기가 북쪽에서부터 동쪽으로 한참 돌아가서! 거기서부터 공격을 감행했죠? 쿠키의 의도대로 북쪽에서 전장이 끝났어야 했는데!]
[쿠키는 북쪽 전장에 집중하느라, 동쪽으로 우회한 흐름을 놓치게 됐어요! 애초에 시야가 안 보이는 곳에서 돌았으니까!]
[그쵸! 알았다고 해도! 북쪽으로 이미 보낸 병사들을 후퇴시키는 게 쉽지 않았을 겁니다!]
[피에르가 아주 선수들을 잘 묶어뒀어요! 본대 시간이 너무 지체됐어요!]
아몬드는 깨달았다.
피에르는 처음부터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고, 그 목적을 완벽히 수행한 것뿐이었다.
* * *
스르르륵.
캡슐이 열리고, 상현이 상체를 일으켰다.
“후우…….”
그는 캡슐에서 나와 하얀 티셔츠를 벗어 던지더니, 의자에 걸터 앉았다.
땀은 이미 다 식었지만, 몸에선 열기가 계속 올라오는 느낌이었다.
「전쟁은 혼자 하는 거 아냐」
피에르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그 말이 의미한 건 단순히 자신을 도와줄 보병을 배치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전투 변수에 불과했다.
그는 ‘전쟁’이라고 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전쟁은 정말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 라이언 일병의 머릿속에선 그 말이 유달리 떠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