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37화
45. 출국(2)
국가 대항전 팀 중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심지어 여기서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트리머인 상현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출국 날에 맞춰 팬들이 모여 이런 환호를 보내줄 거라고는.
“와아아아아아아아아!!!”
“가짜 국대 화이팅!”
“아몬드! 이겨라아아!”
마치 레드카펫처럼 일렬로 깔린 길 양옆으로, 수많은 팬들이 응원을 보내주고 있다.
언제 준비한 건지 거대한 플래카드를 들고 온 사람들도 있었다.
[조선의 활!? 아니죠! 킹덤의 활!? 맞죠!]
[킹갓제너럴충무공아몬드 ~ 덤!]
[킹~ 너네 나 못이겨~ 덤]
정말 간만에 보지만, 정말 끈질기다고 느끼는 문구들.
킹덤 팬들이 세운 듯한 것들이 가장 먼전 눈에 들어왔고.
[야! 아몬드! 지고 오면 나랑 릴 하는 거다!?]
레이나의 얼굴이 크게 박힌 협박조 플래카드도 있었다.
‘……데협?’
아마 데미안 협회인 것 같다. 아님 그냥 그들을 따라 하는 패러디이거나.
그 외에도 본래 릴 팬들인 듯 보이는 사람들의 카드도 많이 보였다.
[성소의 가호가 아몬드와 함께합니다!]
[각궁 말고 데미안 줘라!]
[릴드컵의 원한을 풀어줘!]
릴에서 꽤 많은 팬들이 넘어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Go! Nuts!]
[10킬이요? 0이 하나 모자란데요!?]
[치키챠! 지키자!]
그 외에도 수많은 밈이 담긴 아몬드의 응원 카드들이 곳곳에 떠올라 있었으며, 아몬드뿐 아니라 쿠키, 김치워리어, 팡어 등…….
인지도가 생긴 플레이어들을 위한 카드도 만들어져 있었다.
[치승아! 잘 땐 비행기 창문 닫아!]
[이제야 깨달아요! 쿠버지!]
[팡어 아재 지고 오면 평생 독신]
어떤 카드는 사실 저주에 가까운 문구가 담겨 있기도 했는데.
“야이! 난 왜 응원이 아니라 협박이야?!”
팡어의 반응에 그의 팬들은 더 자지러져라 웃을 뿐. 일말의 죄책감도 못 느끼는 모양새다.
“아…… 저, 저게 뭐야…… 하씨…….”
만두는 ‘김치 ♥ 만두’ 플랜 카드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투덜댔으나.
입가엔 누구보다 만개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하나같이 신기해하며 두리번거리면서 걸었다.
그건 상현도 마찬가지였다.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그는 다가오는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며, 심지어는 악수도 해주면서 꽤 능숙한 모습을 보였으나.
왠지 모르게 눈가는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 * *
공항 입구를 지난 후.
이제 그들은 면세점으로 들어섰다.
여기서부턴 외국도 한국도 아닌 지역이다.
그러니 팬들이 모여 있진 않았다.
“아. 나 화장품 좀.”
“전 엄마가 뭐 좀 사다 달라고 하셔서. 하하…….”
멤버들 각자 필요한 물건을 사는 시간을 가졌다.
그런 와중에 조용히 카트를 밀고 있는 아몬드 옆으로 당근이 다가왔다.
“오빠는 뭐 안 사요?”
“아…… 어?”
상현은 이때까지도 잠시 정신이 빠져 있었다.
왠지 모르게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다.
아까 입구에서 받은 환호성.
거기서 전해져 온 무언가가 계속 그의 심장을 두들기고 있었다.
“뭐 안 사시냐구요. 혹시 아프세요? 얼굴이 좀…… 붉은데.”
당근이 재차 묻고 나서야, 상현은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아. 난…… 됐어. 딱히 사고 싶은 게 없어서.”
잠시 침묵이 흐르자, 상현은 당근을 돌아보며 묻는다.
“넌 안 사?”
“이미 많아서…… 사도 짐만 될 거 같아요.”
다들 어디로 가고 당근과 상현만 카트를 끌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다들 뭐 사러 갔죠.”
뭔가 어색한 느낌에 상현은 요즘 방송이 어떠냐 물었다.
“그나저나. 당근. 방송한다며? 어때?”
주혁이 최근 국가 대항전 멤버들의 방송 활동에 관심이 많은데.
당근도 최근 방송을 하고 있어서 정보도 좀 알아낼 겸 물어본 거다.
“아. 방송…… 나름 잘돼요.”
그녀는 쑥스러운 듯 시선을 돌린다.
“몇 명 보는데?”
“한…… 천 명?”
“오.”
방송 초짜인데 천 명이면 상당한 숫자였다.
아마 국가 대항전과 가짜 국대의 힘일 터다.
그녀는 경기에서 활약한 적이 많았던 탓에 꽤 인기가 많았으니까.
“뭘 ‘오’예요. 오빤 시작부터 완전 날아올랐던데.”
“나랑 비교하면 안 되지.”
묘하게 담백한 기만질에 당근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뭐야. 상대가 나잖아도 아니고.”
“딱 그건데…… 아!”
상현은 그제야 기억났다는 듯, 갑자기 기다란 막대기를 짐에서 꺼내 들었다.
“나 방송 켜기로 했는데, 까먹었어.”
“……!?”
그 말에 당근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당황했다.
지금 방송을 켜겠다는 거잖아?
“저, 저도 나가요?”
이미 늦었다.
동작이 어찌나 간단하고 빠른지. 이미 상현은 방송을 켜버렸다.
* * *
띠링.
[아몬드 님이 스트리밍을 시작했습니다]
[출국 중~]
갑자기 켜진 방송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ㅎㅇ
-오 드디어
-야방 킨다더니 ㄹㅇ 켰누
-캬 약속을 지키는 견과류
이전에 일본에선 야외 방송 위주로 진행하겠다고 언질해 둔 덕이다.
-캬
-아몬드는 집 캠이 젤 구린거 실화냐?ㅋㅋㅋ
-와 외모 고트……
-아하!
카메라는 휴대폰으로 대체하고, 채팅은 상현의 손목에 찬 스마트워치로 계속 전송되고 있었다.
띠링.
후원 역시 스마트 워치의 홀로그램으로 띄워진다.
[루비소드 님이 3만 원 후원했습니다.]
[출국장에 있었는데! 다들 화이팅이에요!]
“아. 루비 님. 감사합니다. 거기 계셨다구요?”
상현은 잠시 기억을 더듬어본다.
루비소드의 얼굴은 기억하고 있는데. 아마 마스크 같은 걸로 가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관심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걸 꺼려 하는 편이었으니. 그럴 만했다.
[루비소드 님이 3만 원 후원했습니다.]
[마스크 쓰고 있었음~ ㅎㅎ]
역시나 마스크를 쓰고 있었던 모양.
-캬 루비 공주님ㅠㅠ 여느 관종 시키과는 궤를 달리하시네요!
-루비 찬양콘
-설마 일본 출국도 하시려나?
-엄마! 나 커서 루비소드가 될래요!
“아. 감사합니다. 루비소드 님. 여튼 여러분 오늘 출국장에서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거 말하려고 켰어요.”
이 대목에서 상현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던 것은 바로 옆에 있던 당근만 눈치챌 수 있었다.
‘응?’
뭔가 이상함에 올려다보던 그녀의 눈에 상현의 목젖이 비췄다. 필요 이상으로 울렁거리고 있었다.
‘감동받았나?’
팬들이 와줘서 감동했나 보다.
보기보다 감성적인 사람이네.
당근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뿐 별다른 티는 내지 않았다.
‘그나저나 후원 장난 아니다.’
확실히 상현의 방송은 스케일이 달랐다.
시작하자마자 후원이 마구 터져 나온다. 원래부터 늘상 상주하는 원년 멤버들부터 시작해서 새로 유입된 큰손들이 한 바퀴 돌기만 해도 얼마인지 가늠이 안 된다.
무엇보다 부러운 건 그런 후원이 자동적으로 방송 흐름을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띠링.
[소룡포 님이 1만 원 후원했습니다]
[옆엔~ 당근~~?]
누군가 당근을 알아본다.
“아, 네. 당근입니다.”
상현은 당근 쪽으로 카메라를 슬쩍 틀었다.
“아. 안녕하세요…….”
-현실에서도 브레인 옆에 같이 다니네 ㅋㅋㅋ
-응애. 아아가. 당근 필요해.
-아니 ㅋㅋㅋ아아가 보모냐고 ㅋㅋㅋ
-예뻐요 언니! (덜렁)
-유상현 문제 일으킬까봐 당근 배치한 쿠키 칭찬해
엄청난 속도의 채팅이 당근을 언급하며 쏟아진다.
일일이 따라가기 어지러울 지경이다.
새삼 스트리머가 대단해 보여, 상현을 올려보는 당근.
“당근 님도 요즘 스트리밍하시니까. 많이들 시청해 주세요.”
‘아…… 설마 그거 때문에?’
그녀는 그제야 왜 아몬드가 방송을 갑자기 켰는지 알았다.
원래 켜기로 되어 있었지만, 당근 방송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 타이밍에 켠 것이다.
-당근도 방송해?
-200명 다 스트리머 데뷔 ㄷㄷ
-당근 방송보면 전략 이해 ㅈㄹ 잘될듯
-당근 방송 아몬드님이 봐야하는거 아님?ㅋㅋㅋ
-오우 트리비??
천 명이 보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그녀가 방송을 하는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마 이번 기회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리라.
[의심병 님이 5천 원 후원했습니다.]
[그런데 아몬드 쉑~ 갑자기 방송 켜서 소통하는거 ㅈㄹ 수상하면 개추~ 일단 나부터~]
우스꽝스러운 목소리로 흘러나오는 후원 음성에, 당근은 괜히 찔려서 당황했으나.
-ㅋㅋㅋㅋㅋㅋㄱㅊ
-ㄹㅇㅋㅋ
-뭔 꿍꿍이냐
-???: 속았어! 이건 광고잖아!?
-광고 아님 또?
-아냐 야방 한다고했었어 ㅋㅋㅋ
당근을 겨냥한 말은 아니었다.
아몬드가 소통 방송을 그리 자주하는 편이 아니라,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것뿐이다.
대체로 광고라고 의심하는 중이다.
물론 광고는 아니었다.
그런데─
“사실, 오늘 항공사 광고가 있습니다.”
아몬드가 휴대폰으로 항공사 데스크 풍경을 슥 보여주며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
당근조차 깜짝 놀라 그의 카메라 워크를 따라 눈이 돌아갔다.
그런 건 언제 받았대?
-???
-ㅅㅂ
-미친ㅋㅋㅋ
-어디까지 받았냐고
“~라고 할 뻔.”
“하!?”
당근은 어이가 없어 웃어버렸다.
-당근도 속음ㅋㅋㅋㅋㅁㅊ
-이, 이게 10만 스트리머?!
-엌ㅋㅋ 커여워
-ㄴㅇㄱ
-하!? ㅋㅋㅋㅋ ㅁㅊㅋㅋㅋ
-하!
-아니 나도 진짜 속음 ㅁㅊ
시청자만 속이려 했던 상현은 돌아보며 당근에게 물었다.
“어? 속았어요?”
아마 방송이라 존대를 하는 거 같은데. 당근은 얼굴이 확 달아올라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뇨.”
-ㅋㅋㅋㅋㅋㅋ
-누가봐도 속음
-브레인인데 존심 상할듯ㅋㅋㅋ
-아몬드 페이크는 전프로인 단무지도 속음ㄱㅊ
-당근좌 ㅠㅠ
* * *
9시 30분.
모든 일행이 비행기에 탑승했다.
상현은 팡어의 옆자리였다.
‘떠나는구나.’
그는 잠시 조용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자기 짐을 체크하거나, 휴대폰 모드를 바꾸는 등 별말이 없이 조용했는데.
“지, 지금부터 열어도 되는 거야?”
아까부터 치승이 속삭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상현은 그 바로 뒷좌석이었는데.
“……이거 근데 겉에 껍데기만 열리는데?”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어린아이 같은 표정을 짓는 치승을 그대로 다 볼 수 있었다.
“이륙해야 열 수 있어. 기압 차 때문에.”
“아…… 기압…….”
만두는 지독하리만치 옆에서 그를 속이는 탓에, 상현은 웃음을 참느라 꽤 애써야 했다. 치승이 정말 여기까지 와서 속을 줄은 몰랐다.
“어휴. 낚싯바늘로 애 죽이겠다.”
팡어는 헛웃음과 함께 중얼거리더니.
눈을 감고 잠을 청한다.
도착지인 간사이 공항까지는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우리 비행기는 곧 이륙합니다.]
안내 방송이 나온 후.
안전벨트 등이 켜지고 비행기가 달리기 시작했다.
드르르르르르.
진동과 함께 비행기가 이륙하고, 하얀 구름을 뚫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창밖의 풍경을 감상하던 상현은 잠시 눈을 붙였다.
‘나도 좀 잘까.’
아까의 두근거림도 어느 정도 잦아들었고, 이제 잠시 근육을 이완시켜 쉬어주고 싶었다.
2시간이 채 안 되더라도 자두면 도움이 된다.
얕은 잠이라서일까?
상현은 꿈을 꿨다.
옛 동료들이 나오는 꿈이었다.
아마 오늘 국가 대표 출국식 같은 그 광경이 머릿속에 강렬히 남은 모양이다.
하얀 유니폼을 입은 그와 현주, 동수…….
‘아니, 동수는 국대는 못 할 텐데.’
동수까지 나오는 어처구니 없는 개연성에 이게 꿈인 걸 눈치챌 뻔했으나.
그다음 순간 그런 개연성 따위 집어치우고 꿈에 몰입하게 됐다.
‘야. 한소연.’
그가 이름을 부르자 환하게 웃으며 돌아보는 한 여학생.
신기하게도 그녀는 하얀 유니폼이 아닌 교복을 입은 채였다.
아마 상현이 가장 자주 봤을 모습으로 나타난 걸까.
‘응?’
소연이 환하게 웃으며 뒤돌아본다.
그에 상현이 자랑스레 말했다.
‘우리 드디어 나간다.’
국가대표가 되어 출국하고 있으니, 충분히 자랑스러워할 만했다.
‘축하해.’
‘너도 가는데. 뭔 축하야. 이기고 와서 축하해야지.’
상현은 소연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 여겼다.
그때, 맑은 바람이 불어온다.
쏴아아아아……!
그녀의 머리칼이 흩날리며, 시리도록 푸른 하늘과 바다가 펼쳐졌다.
바다……?
소연이랑 바닷가에 갔을 때.
그때의 모습과 똑같았다.
‘뭐해? 발이라도 담그자니까.’
바람에 휘날리는 치마를 살짝 들어 올리며, 바닷가로 가 보자고 말하는 모습.
뭐야. 나…… 돌아온 건가?
그렇다면 꼭 해야 하는 말이 있었다.
‘다음 올림픽, 그리스잖아. 거기 해변이 엄청 아름답다던데…….’
이 말을 듣는 순간 상현이 소리쳤다. 마치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말하듯.
‘나랑 같이 가! 데려갈게!’
아. 드디어 말했다.
돌아오고 나서야 말할 수 있구나.
그런데, 그때─
“!”
상현의 눈이 번쩍 뜨였다.
여긴 바다가 아니었다. 비행기 창가였다.
창밖은 푸른 하늘과 구름뿐이었다.
바다는 없었다.
물이라고는 눈가에 흐르는 게 전부였다.
‘뭐지.’
상현은 왜인지 기억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