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38화
45. 출국(3)
“아이씨…… 기압 차 때문에 안 열리는 거 아니지? 그냥 안 열리는 거지!?”
치승이 잔뜩 뿔난 표정으로 물만두를 쏘아붙인다.
“아냐. 맞는데.”
그녀 옆에 앉은 또 다른 싱크 탱크 멤버, 곱스피어는 웃음을 참느라 아예 고개를 복도 쪽으로 빼고 있었다.
이 거짓말이 이렇게까지 진지하게 계속 되새김질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거짓말까진 아니었다.
“기압 차 때문에 안 열리는 거야.”
실제로 비행기 창문을 열 수 없는 이유가 기압 차 때문이긴 하니까.
“아니. 다 뜨고 나면 열린다며? 그럼 지금 왜 안 열려?”
“오늘따라 기압 차이가 심한가 보지~ 운이 없네~”
푸훕.
복도에 얼굴을 내밀고 있던 곱스피어는 이제 거의 토하고 있었다. 일본행은 기내식이 없어 다행이다.
“너…… 내가 승무원 누나한테 물어본다? 어? 같이 쪽팔리는 거야. 그럼.”
“그래라? 참내.”
가짜 국대 제작진은 이게 방송 각이라고 생각했는지 건너편 자리에 앉아 카메라 줌을 은근슬쩍 당기고 있었다.
“하.”
치승은 정말 열이 뻗쳤는지, 승무원이 지나갈 때 손을 번쩍 들어버렸다.
“저, 저기…….”
기세에 비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물어보는 치승.
“차, 창문…….”
승무원은 그럼에도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줬다.
“네. 창문에 불편하신 게 있나요?”
“창문 안 열리는 이유가……! 기, 기압 차이 때문인가요?!”
“?”
승문원은 다소 의문스러운 듯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초등학교 과학 선생님같이 활짝 웃으며 대답해 줬다.
“네. 승객님. 기압 차이 때문이 맞습니다. 혹시 답답하시면 탄산수라도 한 잔 드리겠습니다. 괜찮으실까요?”
“아…… 타, 탄산수는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즐거운 여행 되십시오.”
승무원이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사라지는 동안.
옆에 있던 물만두는 오만상을 찌푸린 채로 숨을 참고 있다.
웃음을 참는 건데, 치승의 눈엔 그게 화가 난 걸로 보였다.
“……미안. 의심했네.”
“후…… 후…….”
만두는 이젠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이 마구 새어 나왔다.
“후흐하하하학……!? 푸하합?!”
비행기 안이 아니었다면 아마 훨씬 크게 웃었을 거다.
“으이구. 그만 낚아라. 인마. 치어까지 씨가 마르겠다.”
쯔쯧.
뒤에 있던 팡어가 혀를 차며 나무란다.
그럼에도 치승은 어리둥절.
팡어는 고개를 내젓는다.
“어휴.”
그는 치승이 불쌍해서 쉬는 한숨인지, 한심해서 쉬는 한숨인지 모를 것을 내뱉으며 다시 등받이에 기댔다.
그러고는 상현을 향해 슬쩍 곁눈질하며 물었다.
“……뭔 악몽이라도 꾼 거야?”
“?”
상현이 왜 그러냐는 듯 쳐다보자, 팡어가 눈가를 가리키며 길게 내리그었다.
“꿈을…… 꾼 것 같긴 한데…….”
기억은 나지 않았다.
왜 눈물이 흘렀는지도 당연히 모른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추측해 본다.
“……기압 차 때문인가?”
“어휴. 너도 기압 차냐?”
팡어는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돌려 복도 쪽을 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이제 내리는데.”
“5분도 아깝다~”
* * *
잠시 후 비행기는 일본에 도착하여 하강했다.
바퀴가 땅에 닿을 때 온갖 호들갑을 떠는 치승을 보며 모두는 이 한 칸 전체가 국가 대항전 관련자들인 게 이렇게 다행스러울 수가 없었다.
쿵──
“으어어으아어아?!”
치승은 저도 모르게 물만두의 팔을 꼭 붙잡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쿠구구구구궁.
이내 한참 활주로를 달리던 비행기는 점차 자동차보다도 느린 속도로 전환했고.
머리를 슬그머니 돌리며 플랫폼에 끼워 맞췄다.
띵.
벨트를 풀 수 있다는 사인이 울림과 동시에 선수들이 하나둘 일어나 자신의 짐을 챙겼다.
한 칸 전체가 관계자들이다 보니, 먼저 나가려고 우당탕탕 짐이 쏟아지는 복잡함은 없었다.
“아. 저가 비행기지만 이렇게 다 같이 쓰니까 좋네.”
팡어가 기지개를 쭉 켜며 외쳤다.
“자. 가자! 니뽄! 이타다끼마~~쓰!”
상현은 일본어를 거의 모르지만, 저게 사람 만나서 하는 인사말은 아닌 거 알고 있었다.
‘밥 먹고 나서 하는 말 아닌가.’
대충 일본을 잡아먹고 말겠다는 뜻 정도로 알아먹기로 했다.
팡어는 상현이 반응이 없자 계속해서 어설픈 일본어를 남발하며 호응을 유도했다.
“무지끄 하무대! 이키마쓰!”
그러나 상현은 왠지 그래서 더 반응하고 싶지 않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아몬두사마! 혼또니 꼬ㅊ미나무데쓰~”
팡어는 계속해서 알짱거리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으나.
양궁으로 단련된 무신경함 앞에선 무의미했다.
신선 앞에서 광대 놀음하는 격이다.
“호오…… 버티느무가? 창그피 오뱌크배……! ”
창피를 500배 더해주겠다는 포부와는 다르게, 결국 상현은 처음 표정 그대로 입국장까지 걸어갔다.
“오케이. 졌다.”
더 이상 했다간 입국장에서 걸러질 걸 우려한 건지 팡어는 두 팔을 들었다.
“멘탈 걱정은 없겠군. 그래. 이게 다 시험이었다. 병사여. 자네는 합격이야.”
그 말에도 상현은 말없이 그냥 시험대만 통과했다.
“와…….”
팡어가 진짜로 포기하며 고개를 젓자, 그제야 상현은 피식거린다.
“어? 웃었지! 웃었어!?”
그렇게 입국장으로 들어서는 그때였다.
“에몬두 사마!”
아니. 아직도 포기 못 한 거야? 상현은 순간 팡어의 장난기가 또 발동한 줄로 알았는데.
“에몬두!”
“와아아아아!”
이 소리는 입국장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뭐야.’
출국장에서의 환호도 예상치 못했던 그이기에, 설마하니 타지인 일본에서 이런 환호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아몬두!!!”
“오빠아아!”
어설픈 한국어로 카드를 흔드는 사람들이 그를 반기고 있었다.
“와. 아몬드 인기 미쳤다.”
팡어가 옆으로 따라 나오며 혀를 내둘렀다.
반면 상현은 당황스러웠다.
‘왜 일본에서 이렇게 많이 알지?’
모르는 사람이야 그저 ‘아몬드가 일본에서도 인기 많구나’ 하고 넘어가겠으나.
상현은 아몬드가 일본 사람들이 알아줄 만한 일을 별로 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일본 서버에 간 적도 없고, 하다못해 올튜브에 일본어 댓글이 많이 달리는 것도 아니었다.
레이나 스토리 모드 클리어와 제시와의 만남 때문에 서양권에서는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었다만.
……일본?
솔직히 일본은 컨셉츄얼한 제목의 희생양으로 쓴 기억뿐이다.
세계가 찬양하고, 일본이 경악한 어쩌구저쩌구…….
‘대체 뭐지.’
그래서 상현은 더 아리송한 기분이었다.
본인이 제목을 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왠지 미안한 기분까지 든달까.
어쨌거나 손을 흔들어주면서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보아하니 교포가 아니라, 진짜 일본인들이다.
아무래도 전국에서 아몬드 아는 사람은 다 왔나 보다. 상현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팡어가 어딘가를 가리킨다.
“우린 저기다.”
큰 팻말을 든 사람이 열심히 이쪽을 향해 흔들고 있다.
[국가 대항전 한국팀! 환영합니다!]
* * *
버스는 여러 대가 구비되어 있었다.
아마 게임사에서 제공하는 건지, 큼지막한 시빌 엠파이어 포스터로 도배되어 있다.
좌석 버스이긴 했으나, 딱히 지정석이 있는 건 아니어서 이리저리 팀이 섞이기도 했다.
이 버스에 한국 팀만 탄 게 아니라는 걸, 상현은 팡어와 자리에 앉으려 할 때에서야 알았다.
“먼저 들어가.”
“네.”
상현이 먼저 창가로 들어간 후 팡어가 앉으려 할 때, 누군가 휙 그의 자리에 먼저 앉아버렸다.
“Dibs!”
그 자리엔 빨간 머리의 여성이 장난스레 웃고있다.
“Sorry~ my seat.”
“???”
팡어는 황당함에 어리둥절했지만, 상현은 그 이상으로 깜짝 놀란 얼굴이었다.
“제시……?”
“Hey~! Almond! wow! what a coincidence?! good to see you again.”
그녀는 마치 우연히 만난 것마냥 아몬드가 있다며 놀라워했다.
빨간 머리의 외국인이 이렇게 신나서 떠드는 걸 보니, 꼭 어릴 적 보던 하이틴 시트콤 같았다.
연기인 게 티가 난단 말이었다.
“뭐, 뭐야? 이 사람은?”
이 당돌하기 짝이 없는 빨간 머리 외국인 앞에, 팡어는 그저 손짓으로 ‘아는 애야?’ 물어보는 것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어…… 네. 그렇긴 한데.”
상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팡어는 그냥 다른 자리로 찾아갔다.
“어휴. 인싸들의 삶이란 피곤해.”
팡어는 뒤에 빈자리에 앉아 연신 중얼거렸다.
“피곤해서 난 인싸가 안 된 거야. 난 아싸를 선택한 거야. 응. 그런 거지.”
제시는 애초에 팡어 말을 알아들을 리가 전무하니 싹 무시한 채, 자기 가방을 뒤적였다.
휴대폰을 어떤 기기에 연결시키더니 마이크를 테스트한다.
“아. 아. 들려요? 이거 해석이 맞아?”
“오.”
“맞나 보네. 다행이다. 그나저나!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는지. 하. 하. 하.”
제시의 목소리를 기계로 재구성한 음성이라 그런가 뭔가 더 뻔뻔하게 들렸다.
“제시. 내가 온 걸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네가 올라온 경기도 봤어. 그 과정에 우리 팀까지 전부 환호했어.”
“와. 고마워. 기쁘다.”
“팀에 전해둘게.”
왠지 모르게 자신도 이상한 딱딱한 말투로 말하게 되는 상현이다.
뒤쪽에서 팡어의 피식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근데 아마 우리 팀뿐만이 아닐 거야. 조선이 올라온 건 전 세계에서 이슈야.”
“전 세계? 그 정도까지?”
“응. 스페인이랑 프랑스가 떨어졌으니까. 아주 잘했어. 주먹 인사~”
제시가 주먹을 들어 올린다.
상현도 뭔가 당연하다는 듯 주먹을 들이댔다.
퉁.
“예이~ 축하해! 귀여운 초보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그녀가 신나서 처음 만났을 때에 대해 말하며 머리를 흔들 때쯤. 버스가 슬슬 출발했다.
부우우웅.
가는 길에서 제시와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간의 안부도 얼추 물어보고, 좀비 스쿨 게임을 그 뒤에도 했는지도 물어봤다.
“오. 난 했어. 넌?”
“난 아직…… 해야 할 게임이 많아서.”
“해야 할 게임? 아. 스트리머! 스트리머라서!”
“응. 스트리머니까.”
본인 입으로 스트리머니까…… 라는 말을 해본 적이 처음인 것 같은 기분에 상현은 뭔가 부끄러웠다.
“그…… 제시는 덴마크팀이지?”
“맞아. 우린 바이킹이야.”
그랬다. 덴마크는 바이킹 문명이다.
노르웨이도 바이킹 문명을 고르는 게 가능하지만, 이번에 올라온 건 역시나 제시의 나라, 덴마크의 바이킹이었다.
“우리 조 1위로 왔어. 어쩌면 금세 또 만날지도?”
조 1위 팀은 조 2위 팀을 만나게 되어 있다.
조선은 조 2위고, 바이킹은 조 1위다.
만날 가능성은 농후하다.
“다 왔네. 내일 발표 때 봐.”
제시는 버스가 도착하자 후다닥 내렸다.
발표는 아마 대진표 발표를 말하는 것 같다.
“뒤에 아저씨 고마워!”
그녀는 팡어를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와. 차라리 그 말을 하지 말지.”
팡어는 휴대폰으로 슬픈 음악을 틀었다.
“?”
“그냥 내가 틀었다. 저 옆에 작가님들 표정 봐라. 이미 틀 거 같아.”
“……아.”
가짜 국대의 카메라도 옆에 붙어 있었구나.
상현은 미처 몰랐다.
왠지 뭔가…… 굉장히 창피한 장면이 실렸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나저나 너 오늘 브이로그? 뭐 그 인싸들이 하는 찍는다며?”
“아…….”
그랬다.
일본에 있는 동안 게임 방송을 못하니까, 브이로그 같은 거라도 찍어보겠다고 말하긴 했는데.
“뭐 찍는 거야? 도와줄까? 같은 방이잖아.”
“음…….”
“뭔 음……이여? 너 안 정해놨냐?”
“…….”
팡어는 잠시 고민하더니 물었다.
“그럼 먹방 어떠냐.”
“먹방요?”
“어차피 우리 식사는 해야 되잖냐. 혹시 먹고 싶었던 거 있어? 이 형님이 오사카는 자주 와봐서 알아.”
먹는 건 그렇게 자신 있지 않았다.
그의 환경상 가장 먼저 버려야 했던 욕심이 아마 먹는 욕심이었다.
「상현아 할머니 시장 가려는데. 뭐 먹고 싶은 건 없고?」
「나 먹을 거 별로 안 좋아해.」
그래서인지 딱히 먹을 것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일가견이 있지도 않았다.
그나마 특식이라고 먹던 게 집 앞에 있는 옛날 통닭인데…….
“음…….”
왠지는 모른다.
이때 상현의 머릿속에 불현듯 누군가의 맨질한 머리가 스쳐 갔다.
* * *
일본 도착 날 밤.
아마 저녁 시간 즈음이었다.
아몬드의 트리비 채널에서 스트리밍이 시작됐다.
이런 제목으로.
[브이로그 ep.1) 아몬드 vs 타코야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