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59화
53. 간파(1)
“허억…… 허억…….”
붉은 머리칼을 휘날리며 산길을 거의 떨어지듯 내려가는 제시.
“……허억…….”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죽어라 뛰었다.
상황을 알지 못했으니, 아직 승산이 있을 거라 계산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항복]
“……뭐?”
콰당.
항복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산길에서 굴러떨어져 버렸다.
한참 신나게 구른 뒤, 대자로 뻗어버린 그녀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봤다.
파란 하늘 한가운데 분명하게 적혀 있다.
[패배]
이젠 글씨가 바뀌었으나, 의미는 같았다.
“허억…… 하…….”
여전히 숨을 헐떡였으나 그녀는 뛰지 못했다. 뛰고 있는 건 심장뿐이다.
치이이이이이익……!
파란 하늘이 갈라지면서, 시야 위로 치켜 올라가 버리더니.
어느새 돔 경기장의 천장이 보인다.
“하.”
제시는 몸을 일으켜 머리를 휘저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캡슐을 바라봤다.
다들 상체만 일으킨 채 멍하니 앉아있었다.
저 반대편에선 이미 다 뛰쳐나와 방방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이겼다아아아아아!”
“으아아아아!”
코치석에 있는 싱크 탱크 팀까지 다 뛰어나와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제시는 떨떠름하게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인다.
“뭐…… 맵 선택권이니까.”
피식.
그녀답게 그냥 웃어넘기기로 했다.
“자. 다음 경기 준비하자!”
바이킹의 보조 지휘관들이 일어나며 선수들을 다독였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 * *
치이이이익.
하늘이 열린 후, 아몬드는 그제야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겼구나. 진짜로.’
그야 조선팀이 있는 경기장 쪽은 그야말로 함성으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으니.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가 몸을 일으키자, 더 큰 함성이 쏘아지며 팬들이 이름을 연호했다.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경기장의 거대한 스크린엔 벌룬스타즈 멤버들이 목이 터져라 아몬드를 외치고 있는 모습이 띄워지기도 했다.
미호가 카메라 쪽으로 웃으며 손을 흔들자, 더 큰 함성이 장내를 뒤덮었다.
“형! 혀어어엉! 으아아아아악!”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쩌렁쩌렁한 소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
싱크 탱크 팀이다.
“이겼어! 완전히! 완벽하게!!”
“형! 나와요! 나와!”
“아, 나. 땀. 땀. 만지지 마.”
“얼른!”
“알았어.”
아몬드가 웃으며 캡슐 밖으로 나가자, 그 순간 모든 선수들이 달려들었다.
그들은 모두 어깨동무를 하며 연습한 대로, 구호를 외쳤다.
“조선! 조선!”
커피가 이렇게 선창하면, 다 같이 외치는 거다.
“화이티이이잉!”
물론 여기서 끝은 아니다.
식빵이 다음 선창을 맡았다.
“괴수! 괴수!”
그러자 모두가 어깨동무를 풀며 손을 올린다.
“크아아아아아아!”
최대 스폰서를 연호해 주는 모습에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지나간다.
그럼에도 선수들은 흥분이 가시지 않았는지 한동안 서로 악수를 해대며 게임 얘기를 나눴다.
“팡어 형. 아까 진짜 지렸다. 어? 실전형 인간이네!”
“롸떼는 실전돼서야 팡어 형 화살에 안 죽고 적 도끼에 죽는구나!”
“아몬드 어딨어. 아몬드! 아몬드가 그냥 멱살 잡아버렸어!”
“오오, 고트, 아니, 너트시여……!”
상현은 한창 들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은 이방인 같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건 그의 몸에 짙게 배어버린 프로의 습관이다.
프로들은 게임이 완전히 끝나기 전엔 어지간하면 신을 내지 않는다.
“아몬드! 저깄다! 지렸다아! 어!?”
“씨바! 아몬드 형! 언제까지 캐리할 거야!”
팡어마저 형이라 부르며 달려오는 모습.
이럴 때 보면, 이들은 확실히 프로가 아니었다.
이들은 그저 게임이 좋아서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린 사람들이다.
예전의 상현이었다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선수들에게 한마디 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코치님이 이미 한바탕 고함을 내질렀을 거다.
그런데, 여긴 코치진이라 할 싱크 탱크 팀이 먼저 뛰어와서 난리를 피운다.
놀랍게도 상현은 싫지 않았다.
어쩌면 이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까지 생각됐다.
게임을 좋아하는, 활쏘기를 좋아하는…….
훈련되지 않은 원래의 모습.
어딘가 그리운 모습.
「상현아 넌 목표가 뭐냐?」
왜일까.
이때 코치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건.
「올림픽 우승이죠.」
「정말 그게 끝이야?」
「그게 끝이라뇨? 그거보다 더 뭐가 있어요?」
코치님도 제자가 올림픽 금메달 따면 좋아하실 거면서, 그게 목표라는 말을 듣는 코치님의 표정은 씁쓸해 보였다.
「그래. 지금은 그럴 때다. 하지만 이놈아. 왜 올림픽 금메달이 따고 싶은 건지는 생각해 본 게냐?」
왜라니.
양궁을 하기로 했으니까.
「그게 최고니까요.」
「그럼 넌 최고가 되는 게 좋은 게냐.」
「어…….」
그런 건가.
어린 시절의 상현은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혹 양궁에서 최고가 못되더라도 말이야. 넌 최고가 되는 게 좋은 게지?」
「음…….」
제가 양궁 말고 다른 데서 최고가 될 수 있어요?
상상할 수 없었다.
태어나 잘하는 게 그것뿐이었으니.
「그럼 다음엔 말이다. 최고가 되는 게 왜 좋은 건지. 그걸 한번 생각해 보거라.」
왜일까?
상현은 이미 그 시절부터 누구보다 올림픽 금메달에 가까운 사람이었는데.
코치는 양궁 이후의 삶에 대해 대비시키려는 것 같았다.
어쩌면 상현이 그곳에 너무 빠르게 오를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가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전 그냥 활 쏘는 게 좋은데요.」
「그래? 허허. 그럼 그건 다행이구나. 금메달을 따도 활은 계속 쏘겠구나.」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현은 금메달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활쏘기를 좋아했다.
그것의 끝이 금메달이길 바랄 뿐이었다.
시위를 당기고, 숨을 한 움큼 참으며 목표를 조준하면서, 과녁의 정중앙을 맞혀내는 그 쾌감을 좋아했다.
어쩌면 굳이 올림픽 우승을 하지 못했어도 그는 활을 계속 쐈을 것이다.
「넌 참 축복받은 놈이다.」
코치님이 말하신 건 그의 재능이 안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축복.
분명 가장 빛나는 축복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내 저주가 되어 돌아온다.
금메달로도 멈출 수 없던 그의 활쏘기에 대한 갈망이 멈춰야만 했던 순간.
이 축복은 깊게 새겨진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사고 후, 상현은 어떻게 해도 다시 활을 쏠 수 없었다.
마음 안에 크고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설사 그가 어느 다른 최고의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가슴에 생긴 이 거대한 구멍이 채워질까?
아무리 잘 만들어진 가상 현실에서 활을 계속 쏜다고 해도, 채워질까?
모른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상현은 계속 활쏘기 비슷한 걸 해나갈 뿐이다.
“와아아아아아아!”
“아몬드! 아몬드! 아몬드!”
동료들에게 껴안기며 대기실로 끌려가던 중, 스쳐 가듯 시야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코치석의 모두가 다 뛰어나와서 남은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가만히 모니터를 바라보는 한 사람.
저 사람도 같을까.
가슴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려 있을까.
* * *
선수들이 회의를 위해 각각 대기실로 흩어진 후에도 중계석에서만큼은 흥분이 멈추지 않았다.
리플레이도 보랴, 어떻게 이긴지 분석하랴,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기서 시간을 끌어주면서! 조선이! 가볍게! 승리로 가져갑니다!”
“예~! 가볍게! 이게 중요하거든요!? 조선이 가지고 온 모든 전략. 그리고 훈련을 통해 얻은 기술! 이게 다 먹혔어요. 전부 다 제대로 작동했습니다! 이건 고무적이거든요!?”
-크
-리플레이 다시봐도 지린다
-캬
-???: 크아아아아아!
-앞으로 감탄사는 ‘크아아아’로 통일한다.
-ㄹㅇ 너무 잘했다 ㅠㅠㅠ
-국대들 자랑스럽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승리의 성과에 동조하는 채팅을 쳤다.
그것만으로도 채팅창이 버벅거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현재 시청자는 무려 40만.
역대 국내 국가 대항전 시청자 중 최대였다.
그 인기 많은 릴의 난트전 최대 시청자와 비슷한 숫자였다.
조금 후면 릴챔스의 시청자를 역전할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중계진도 목에 더 힘이 들어갔다.
호응해 주는 시청자가 많으니, 힘이 솟구친다.
“예! 고무적이죠? 맵 선택권! 그리고 그간 훈련의 성과가 확실하게 발휘되면서! 그 바이킹을 상대로! 무려 2시대에 항복을 받았습니다! 3시대가 아니라요! 이것도 특이하죠?”
“맞습니다. 조선은 끝까지 3시대로 넘어가지도 않았거든요? 이건 바이킹은 거의 치욕사예요. 치욕사. 험준한 산골짜기가 바이킹한테 그렇게 불리한 맵도 원랜 아니거든요?!”
“아무래도 바이킹은 이 이상 뭔가 시도하다가 전략만 더 노출되고 질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그 정도로 상황이 암담했다는 거죠! 아, 데이터 나왔네요…….”
화면에 맵에서 문명별 승률이 나왔다.
오히려 조선의 승률이 바이킹보다도 4~5%가량 낮은 곳이었다.
이런 통계에서 5% 차이는 굉장한 차이였다.
“이거 보세요. 원래 활 문명이 힘을 못 쓰는 맵입니다. 더군다나 말도 운용하기 힘들어서. 바이킹이 굉장히 유리해요.”
“예. 막 바이킹 전용 맵이라 불리는 맵들 수준은 아니지만, 승률이 준수합니다? 여기 보시면 몽골 승률이 눈에 띄는데요?”
-몽골도 여기서 쪽 못쓰네 ㄷㄷ
-갓골조차 ㅋㅋㅋㅋ
-이걸 쿠키가 해냅니다!
-이야
-아 제발 이겨서 인터뷰 보고 싶다 ㅠㅠㅠ
조선뿐 아니라, 대표적인 기마 궁수 문명인 몽골도 이 맵에선 승률이 좋은 편이 못 됐다.
“몽골은 가장 많은 우승을 기록한 문명인데. 이런 식이면…… 바이킹들이 당황할 법합니다.”
“그렇죠. 이런 맵을 일부러 골라서 완전 대혼란을 일으킨 겁니다.”
“이야…….”
“쿠키. 제가 칭찬하고 싶은 게. 예전엔 소위 안전빵의 대명사로 불렸거든요? 그때도 지휘관 순위권으로 평가는 좋았는데. 안전빵만 한다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아, 그래요!?”
이번 연도의 쿠키만 보고 있던 캐스터로서는 놀라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쿠키는 안전빵은커녕 미친 도박사 같은 면모를 보여주고 있으니까.
“그런데! 쿠키가 이번 연도에 완전 다른 컨셉으로 지금 조선이란 문명을 해석하고 선보이고 있습니다. 정석으로는 이길 수 없다! 그간의 실패를 통해 완전히 쇄신하겠다! 이런 의지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통하고 있어요!”
“이야. 대단합니다? 정석도 잘하는 지휘관인데. 그 스타일을 또 완전 바꿔서 이렇게 지금 언더독의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렇죠! 쿠키 선수! 그간 얼마나 힘이 들었겠습니까! 알 사람은 다 아는! 막내 시절! 조선이 최초로 본선 진출 신화를 이뤘거든요!?”
“아. 그렇죠! 본선 딱 한 번 갔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때는 본선이 8강부터 시작이던 시절이라 8강이거든요?”
-ㄹㅇ??
-ㅈㄴ 옛날인가보네
-본선 시작부터 8강ㅋㅋㅋ
-아 8강 갔다는게 이거구나
-팀 별로 없을 때인가보다
“맞습니다. 그때는 시빌엠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고. 우리나라가 e스포츠 강국이라 초반 선점이 유리했거든요. 그래서 나온 성적이라고 다들 평가하고 있습니다만. 쿠키 본인에게는 그렇게 생각되지 않았겠죠? 자주 인터뷰에서도 언급했듯이! 자기가 문제라고 생각했을 거예요!”
“아…….”
e스포츠 문화가 진작에 널리 퍼져있던 한국.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게임에선 늘 두각을 보일 수밖에 없었으나.
점차 몽골, 중국, 일본, 이탈리아 등의 문명 강세를 가진 국가들이 e스포츠 산업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서 밀려났다.
이 시점부터 쿠키가 총지휘관을 맡았다.
“그때 최고의 신예로 주목받던 쿠키가 팀을 이끌자 곤두박질쳤거든요. 그게 사실은 지휘관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생각이 안 됐겠죠!”
“아. 그래도! 지금 5년간의 쇄신 끝에! 쿠키! 돌아왔습니다! 지금 최고 주목받는 신예! 아몬드 영입과 함께! 이거 완전 데자뷔인데요!?”
-캬
-쿠버지 ㅠㅠ
-돌아왔구나 쿠태식이
-ㄹㅇ 5년 전이랑 비슷하네
-ㅠㅠㅠ
-나 그때 봤었는데…… ㅠㅠㅠ
-저런 사연이
그때, 스크린에서 어떤 남자 하나를 비춰준다.
마흔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5년 전 조선의 총지휘관]
[이태용]
그가 웃으며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옆에는 부인과 자식들이 함께다.
-오오
-헐 보러왔구나
-ㅠㅠㅠㅠ
-와
“아아. 그때의 지휘관이군요! 아.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외 여러 설명을 진행하는 사이, 작전 시간이 끝났다.
“아! 말씀하는 사이! 금세 다시 선수들이 나옵니다!”
선수들이 대기실에서 하나씩 나오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각자 악수를 나누며 양쪽으로 갈라진다.
이번엔 서로 다른 방향으로.
“5년 전 팀의 신예였던 쿠키가 다시 5년 만에 팀을 이끌고 본선에 진출했습니다! 이제 그는 막내가 아닙니다! 그는 이 팀의 총지휘관입니다!”
캐스터는 비장한 목소리로 연이어 외쳤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을 신예들도 그와 함께입니다! 이번이 되지 않더라도! 다음에 되지 않더라도! 이 경기는 계속 역사에 남아서! 불씨를 지필 것입니다! 그전의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어쩌면 쿠키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도전.
그 2차전이 시작된다.
[조선 1 : 바이킹 0]
“맞습니다. 이미 본선에 온 것만으로! 쿠키는 또 다른 불씨를 남긴 거죠! 하지만! 오늘 경기력을 보니까! 욕심이 안 날 수가 없죠!? 그냥 작은 불씨로 끝나기 싫을 겁니다! 아주 화전민이 되어버리고 싶을 겁니다! 비옥한 땅을 남겨주고 싶을 거예요!”
“선수들! 모두 캡슐에 입장했습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
양측 응원단의 함성과 함께, 다시금 홀로그램이 경기장을 가득 메우면서 맵의 지형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경기 시작합니다! 이번 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