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궁수의 스트리밍 시즌3 167화
55. 4시대 전투(3)
조선은 3시대에 싸우는 게 유리하고, 바이킹은 3시대에 싸우는 게 불리했다.
3시대는 완전한 승패의 결착점이었다.
그런데 왜 쿠키는 전투를 4시대로 결정하게 됐는가?
이유는 의외로 단 한 명의 선수 때문이었다.
‘전투를 최소화해야 하니까.’
아몬드는 전용 캡슐이 아닌 곳에서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특히나 지구력이 낮아지고, 전투 지속 가능한 시간이 현저히 떨어진다.
한 게임에 전투는 2회 이하로 유지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도 전투 나름이다.
1경기에서 아몬드가 했던 전투는 거의 3~4회 전투를 연이어 해나간 수준이었다.
게다가 현재 2경기에서도 이미 한 차례 전투를 치렀다.
‘그땐 싸우지 않으면 지는 상황이었으니까.’
어쩔 수 없는 총력전을 감행하면서, 2경기에도 아몬드는 전투 최전방에서 활약했다.
이젠 그를 더 이상 전투 요원으로 쓸 수 없었다.
전략적 승부를 내야 했다.
그가 활시위를 당기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기마 궁수 전투는 에너지 소비가 너무 커진다.’
말 위에서 정신없이 적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건, 현재 아몬드에게 무리가 갈 수 있었다.
대신 쿠키는 가만히 서서 활시위만 당겨도 적을 유린할 수 있는 편전을 택한다.
거기에 아몬드에게 ‘체탐인’을 부여한다.
체탐인은 마음만 먹으면 꽤 성능 좋은 전투 인원이 되지만 사실 체탐인이 대규모 전투에 휘말릴 가능성은 매우 적다.
애초에 태생이 그렇다.
그러나 역할은 지대하다.
힘이 빠진 아몬드가 맡기에 최적화된 병과였다.
[이동]
그는 아몬드와 그의 안내자 역할인 커피에게 이동 명령을 내렸다.
체탐인 한 명에 보조 지휘관 하나.
그만큼 이번 임무가 중요했다.
[잠입]
바이킹의 본진에 잠입해야 하는 임무.
이게 성공한다면, 이번 4시대 전투는 조선의 승리가 될 것이고.
실패한다면 패배할 터다.
그래도 어느 쪽이든 아몬드는 그리 큰 전투에 휘말릴 일이 없었다.
전투는 다른 궁병들이 하게 된다.
그것을 위한 편전이었다.
‘이번 궁병들은 기마궁수보단 편전에 치중시켜 연습시켰으니까.’
중계진의 예상과는 다르게, 편전은 준비된 전략이었다.
물론 이게 바이킹을 상대로 연습한 건 아니다.
쿠키는 편전이 조선의 깜짝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궁병들에게 계속해 연습을 반복시킨 바 있다.
[저격 대기]
피잉.
쿠키는 편전 부대에게 특정한 장소를 찍으며 명령을 내린다.
팡어를 필두로 한 저격 부대가 한자리를 차지하고 모두 ‘통아’(*筒兒, 애깃살을 넣어 시위에 메길 수 있게 해주는 가느다란 나무통)를 꺼내 들었다.
현대의 저격수들이 그렇듯, 각궁을 통한 저격에도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들은 모두 통아 안에 애깃살을 넣은 뒤, 각자 자리를 잡고 몸을 고정시켰다.
그리고 저 멀리 격전지를 조준한다.
그곳엔 바이킹과 몸을 맞댈 검수 부대가 대열을 이루고 있었다.
척!
적들도 대열을 만들며 대치한다.
현재 유일하게 자원이 남은 중앙 지역.
그곳에 붉은 점과 푸른 점이 모여든다.
쿠르르르르……!
검수 부대뿐 아니라 공성 병기도 뒤에 대기한다.
바이킹들이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이들이 먼저 반응해 쏘게 될 것이다.
공성병기를 대인병기로 쓰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지만, 이들은 단순한 공성 병기가 아니었다.
[신기전 × 5]
지금 쿠키가 보유한 건 5대의 신기전.
수백 발의 화살을 장전했다가 한 번에 발사해 버리는 대인용 대량 살상 병기다.
기계 장비이므로 지휘관이 컨트롤해서 타격해야 하는 무기.
쿠키의 눈에 긴장감이 스쳤다.
“후.”
그는 얕은 숨을 내쉬며 맵을 슥 훑었다.
중앙에 거대한 병력이 집결하고 있다.
대치가 지속되자, 경기장이 조용해진다.
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
팽팽히 당겨지는 긴장감이 양 진영에 흘렀다.
누구 하나라도 움직이는 순간, 이 얇은 막이 끊어지며 순식간에 난장판이 될 것처럼, 고요했다.
쿵. 쿵. 쿵.
밖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인지, 심장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들려온다.
그 순간─
‘시작됐다.’
쿠구구구구……!
바이킹들이 달려든다.
“돌겨어어어어어어억!!”
빨간 점이 일제히 푸른 점으로 달려들고 있다.
그 기세가 마치 비구름이 몰려드는 듯 막막할 지경이다.
쿠키는 곧장 신기전으로 손을 뻗었다.
[장전]
그들이 공격 장소를 정한다.
[타격 지점]
화르륵!
신기전에 불을 붙는다.
불꽃이 타들어간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아!!!”
바이킹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온다.
저 초원 너머, 바이킹들이 보이기 시작한 병사들.
순간 그들의 기세에 질린 표정이다.
“우, 우린 언제 가?!”
병사들이 무기를 더 꽉 움켜쥐며 묻는다.
“언제 가냐고!!”
“기다려!”
스윽.
식빵이 손을 치켜든다.
저 손이 내려가는 순간 맞돌격이다.
식빵의 눈이 숲으로 향한다.
저격 부대가 신호를 보낼 거다.
‘아직.’
아직 없다.
식빵은 손을 여전히 치켜든 채 우측을 바라본다.
그때였다.
퍼엉──
신기전이 시뻘건 화력을 내뿜으며 수백 발의 화살을 전장으로 뱉어댔다.
[신기전! 신기전 쏩니다아아!]
[이게 조선의 총력전입니다아아! 이게 문명이다! 야만족들아아아아!]
불꽃놀이처럼 하늘을 수놓는 화살들의 향연에, 중계진이 극도로 흥분했다.
바이킹들마저 잠시 시선을 빼앗긴다.
[바이킹! 반응합니다!]
[방패를 위로 듭니다!]
그들은 전부 하늘 위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퍼버버벅!
퍼벙!
방패로 떨어진 화살들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러졌고, 몇몇 바이킹은 그것만으로 땅에 널브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바이킹들은 성공적으로 신기전의 화력을 막아낸 듯 보였다.
그때, 팡어가 외친다.
척!
깃발이 올라감과 동시에.
“사겨어어어어어억!”
온 숲에 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숲에 살던 새들이 위로 치솟아 흩어질 정도로 거센 파공음.
그러나 이 소리는 바이킹들의 귀까지 닿지 않는다.
화살이 소리보다 먼저였다.
퍼버버버버벅!
좌측에서 쏟아지는 저격 화살 세례.
신기전을 막느라 방패를 미처 옆으로 돌리지 못한 자들은 즉사했으며, 옆으로 든 자들조차 전장을 뒹굴며 쓰러졌다.
애깃살의 엄청난 속력과 관통력, 그리고 집중의 풀 스택이 담긴 대미지다.
빠직……!
방패는 종잇장처럼 찢겨, 널브러진다. 그것을 들고 있던 자들도 꼴은 마찬가지.
“크억!”
“대체 몇이나……!”
──슈우우우웅!!!
그제야 그들의 귀에 화살 소리가 들려왔다.
이 소리를 들은 자들은 그나마 살아남은 자들.
아직 반 이상이 살아 있다.
아니, 사실 전부가 살아 있었다.
[발할라]
바이킹들이 전부 일어서더니, 하얀빛을 머금고 다시 내달린다.
바이킹의 4시대 팩션, 발할라다.
착시일까?
한 바이킹의 등 뒤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빛은 날개가 되었다.
파앗!
그녀가 날개를 펼치며 외친다.
“가자아아아아! 발할라로!!!”
하얀빛이 모든 바이킹을 감싸며,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ㄷㄷ
-캬
-미쳤다
-발키리 버프 ㄷㄷ
-헐
-개무섭누
죽음을 모르는 전사들.
바이킹들의 완성된 모습이란 이런 것이었다.
[아아아! 저, 저거 특수 병과! 발키리죠!? 방어 버프! 이속 버프! 게다가 본인의 전투력도 발군!!!]
[예! 특수 버프를 주는 전장의 선봉자입니다! 원래 신화에선 발할라로 데려가는 여전사! 이런 건데!]
[지금도 역할이 다르지 않습니다! 저 사람 명령 따라 돌진하면 발할라 직행이에요!?]
-엌ㅋㅋㅋㅋㅋㅋㅋ
-그건그렇넼ㅋㅋㅋㅋ
-천국행 고속 열차 ㅋㅋㅋㅋ
-와 제시네 ㄷㄷ
-바이킹은 뭔가 팩션이 낭만있누
-캬
-멋지다
우우우웅!
방어력 버프와 이동 속도 버프가 함께 발동되며 바이킹과 조선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그러나 식빵의 손은 여전히 위로 향해 있었다.
아직도 대기.
‘후…….’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거의 안광을 줄줄 뿜는 듯 달려오는 바이킹 군대를 마주한다는 건 별로 유쾌한 기분이 아니다.
쿵. 쿵. 쿵.
그녀의 심장이 사방으로 요동쳤다.
‘될까.’
의구심이 슬그머니 고개를 치켜든다.
이런 상황이면 늘 생기는 일.
‘안 되면…….’
휘이이이이이!
그때, 매 날리기의 신호가 들려온다.
다른 보조 지휘관인 커피가 매 날리기를 사용한 것이다.
‘아몬드가 출발했다.’
이는 커피가 보낸 일종의 신호다.
이제 믿어보는 수밖에.
‘지금이다.’
그때 식빵의 손이 아래로 강단 있게 내려쳐진다.
척!
“돌겨어어어어어억!!”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조선의 검수 부대가 달려들고, 신기전은 느릿하게 뒤로 물러난다.
[바이킹 쪽도 공성병기들이 있어요!? 역공 들어갑니다!]
바이킹들이 준비한 공성병기들이 이제 역으로 불을 뿜기 시작한다.
퍼버벙……!
[편전은!? 편전도 화력 지원해…… 에엥?!]
[바이킹 쪽의 아너저 투석기가! 정확히 편전 부대가 있는 쪽을!!]
그들이 타격한 지점은 달려드는 검수 부대가 아니라, 편전 부대가 있는 숲이었다.
콰광!
불에 달궈진 시뻘게진 돌들이 날아가 숲을 태워 없앴다.
어쩌면 그 안에 들어있던 자들도 전부.
[궁병들이 저 아너저 투석기에! 너무 약해요! 이렇게 모여 있으면 한순간에 당합니다아아! 아아아아……!]
저격 부대의 지원이 한순간에 끊긴 채, 검수 부대와 바이킹들의 대결이 시작됐다.
[편전 지원 없이 근접 전투!? 이거 안 됩니다아아!]
[발할라가 안 빠진 바이킹이 아직 많은데요! 이건…….]
서로의 1열이 맞붙는 그 순간─
촤아아아아악!
제시는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한 번에 두 명을 썰어넘겼다.
“──커어억!”
쌍 도끼를 든 바이킹들이 검수 부대의 머리통을 쪼개고, 반으로 도륙 낸다.
퍼어억!
퍼벅!
그러나 검수 부대들도 응수하여 몇몇을 죽여낸다. 월도가 바이킹의 맨살을 파내며 피를 흩뿌린다.
촤아악!
“정신 차려! 최대한 데려간다아!”
식빵이 말을 달리며 외친다.
보조 지휘관들까지 들이닥친 총력전이었다.
어디선가 도끼가 날아들어, 말의 머리를 박살 냈다.
퍼엉!
“읏……!”
시스템상 말은 원거리 무기에 거의 당하지 않는데, 투척 도끼는 원거리 무기 취급이 아니었다.
바이킹이 기마병들에 그리 약하지 않은 이유다.
이히이잉……!
말이 피를 뿜으며 내동댕이쳐지고, 식빵이 말에서 떨어졌다.
“시, 식빵 지켜!”
“보조 지휘관 지켜라! 낙마했다!”
검수 부대의 1선들이 내달린다.
그들의 월도는 이미 철의 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시뻘겋다.
그런데, 그 칼에 묻은 피가 공중으로 부웅 떠오른다.
“!?”
이내 그것은 각자 주인이 있던 곳으로 날아가 흡수되었다.
검수 부대에게 죽었던 바이킹들이 다시 일어선 것이다.
“발할라로!!!”
“와아아아아아아!!!”
그들에게 검수 부대는 다시 썰려나간다.
등 뒤에서, 옆에서 다시 살아난 바이킹들이 도끼를 휘두르며 체력을 회복한다.
그래도 조선의 1선 검수들이다.
월도로 능숙하게 응수해 보지만.
[광전사]
광전사 팩션이 발동하며, 그들의 도끼질이 눈에 띄게 빨라진다.
카앙! 카가강!
월도가 불쌍하게 여겨질 정도로 이리저리 튀더니.
뻐억!
어느새 던져진 도끼가 그들의 목을 친다.
“끄아아악!”
마라탕이 전사해 쓰러진다.
체력도 더 높으며, 다시 살아나기까지 하는 이들에게 근접전 싸움을 건다는 건, 미친 짓이 분명했다.
“이런 씨…….”
식빵이 몸을 일으키며, 자신의 이름을 내뱉기 일보 직전.
──촤아악!
제시의 대검이 그녀의 목을 쳐버린다.
한 번 죽으면 회복될 수 없는 보조 지휘관마저 전사했다.
바이킹들의 전면 전투 능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이건 분명 대패.
[아아아! 전투! 너, 너무 무너지는데요!!]
[이거…… 조선은 결국! 결국 3경기로 가나요!?]
[조선 비사아아아앙!]
바이킹들은 승리의 함성을 지르며, 조선군의 시체를 밟고 신기전을 쫓는다.
신기전 하나가 이미 잡혀 불타고 있다.
쓰러진 식빵은 분한 표정으로 그 불길을 노려봤으나, 이미 영혼이 빠져나가 올라가고 있었다.
「난…… 사실 우승하고 싶어.」
부끄러운 잘못을 고하는 듯한 목소리가 울렸다.
두준의 목소리다.
그는 뭔가 큰 잘못이라도 한 듯이 그렇게 읊조렸다.
「그런데 말을 못 했어.」
「근데 왜 말은 그렇게 했어?」
그는 본선만 가도 만족한다고 늘 말하고 다녔다.
「다들 힘들어하잖아.」
「……?」
「다들 게임에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잖아. 이딴 거에 그렇게 진지하게 임하는 거…… 한심하게 생각하고, 귀찮아하잖아.」
바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대회에 나왔으면 우승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야.
그걸 왜 감춰?
「네가 질질 짜는 게 더 한심해. 정 꼬우면 다음에 네가 우승시켜.」
「뭐……? 다음? 너 다음에도 올 거야? 취업할 거라며?」
「서류 다 광탈했어. 처 울기나 하지 마.」
입으로 나간 말은 마음과 조금 달랐으나.
어찌 됐든 그녀도 우승하고 싶었다.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니까.
그녀도 하고 싶었다.
바름이 눈을 질끈 감는다.
차마 이 끝을 볼 수가 없었다.
‘그나마 지푸라기라도 잡은 줄 알았어.’
지휘관인 그녀가 더 잘 알고 있다.
여기서 지면 3차전은 더 희망이 없다.
강팀과 약팀의 가장 큰 차이가 장기전에선 나타나고 만다.
1선이 지치고 2선이 선발 장비를 받고 나가야 하는 상황을 조선은 감당할 수 없다.
패배할 수밖에 없다.
잡힐 듯 말 듯 한 희망이 흩어져 사라진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 이렇게나 더 아픈 거구나.
그런데─
‘어?’
하얀 빛의 날개.
‘아직 떨어지지 않았어.’
이렇게 말하는 것 같은 날개가 눈 앞에 아른거리며 펼쳐졌다.
우우우웅!
하얀빛이 발광하며, 그녀를 감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