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화 - 회귀
라칸이 준 성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
티그리스는 과거로 돌아왔다.
티그리스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왔다는 증거들을 살폈다.
손에는 검을 연습하다 생긴 굳은살이 박혀 있었으나, 단 한 번도 날카로움을
겪어보지 못한 듯 손등이 흉터 없이 매끈했다.
거기에 이런 폭신한 이불과 침대라니. 외계의 존재 아르펨과 로타가 황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감행한 이후로 티그리스는 이런 고급 침대와 이불에서 잠을
잔 기억이 없었다. 기껏해야 장교용 야전 침대가 끝이었다.
그것 외에도 가구 배치와 티그리스가 자주 사용하는 라벤더 방향제 냄새까지.
모든 것이 오랜만이지만 익숙했다.
이곳은 티그리스의 방이었다.
티그리스는 달빛이 비치는 창가를 봤다. 아침 해도 뜨지 않은 야심한 밤이었
다. 시계를 보니 5시 10분 전이다.
티그리스는 왜 이 시간에 일어났는지 알고 있었다. 이 시간은 개인 훈련을 하
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사용인이 티그리스를 깨워주기로 되어 있지
만 단 한 번도 사용인에게 깨워진 적이 없었다. 남에게도 엄격하지만 자신에
게는 더 엄격한 강박증과 같은 성격 때문에 4시 50분이 되면 바로 일어났다.
똑- 똑-
문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거라.”
이해 불가능한 상황에 당황할 법도 하지만 티그리스는 침착했다. 라칸이 과거
로 돌아올 것이라 얘기해준 것도 있었지만, 티그리스는 귀족 중에 귀족이다.
호들갑을 떨거나 품위를 훼손하는 언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사용인 하나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사용인은 카트를 밀면서 세숫물과 크리스
탈 병에 담겨져 있는 시원한 물을 갖고 왔다.
사용인은 나이가 10대 중반으로 보였다. 그녀는 잔뜩 긴장했는지 티그리스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티그리스 님.”
티그리스는 저 아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보다 3살이 적은 그녀
는 분명 ‘레니’라는 이름의 평민이었다. 티그리스가 레니를 기억하는 것은 레
니는 무너져가던 노르베르드 변경백의 가문을 끝까지 지킨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좋은 아침이다. 레니.”
레니는 순간 어깨를 떨었다. 레니는 지금까지 티그리스에게 제대로 인사를 받
아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용인이 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매번
실수하기 바빠서 티그리스는 레니를 벌레 보듯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세숫물을 가져와라.”
“아···!”
레니는 단단히 혼이 날 것이라 생각했다. 순간 머리가 멍해져서 세숫물을 드
리는 게 늦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고 시원한 물로 세수를 했다. 레니
의 침이 꼴깍 꼴깍 넘어갔다. 자기도 모르게 긴장한 것이었다.
“수건을 다오.”
“아.”
또 늦었다.
이번은 정말로 혼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티그리스는 혼을 내지 않았다. 티그리
스는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뒤 레니에게 건넸다. 레니는 이번엔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크리스탈 병에 담긴 물을 건넸다.
“여기 물 있습니다.”
“컵을 다오.”
“컵···히끅!”
컵이 없다.
레니는 크리스탈 병에 담긴 생수를 담아올 생각만 했지, 컵을 준비하는 것을
깜빡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잊은 물건이 없는지 꼼꼼히 검사했건만 컵을 놓
치고 말았다.
레니는 넙죽 엎드렸다.
“죄···죄송합니다! 제가 컵을···!”
“컵을 안 가져온 모양이군. 되었으니 물병만 주거라.”
“···네?”
레니는 의아했다. 이틀 전에 뵈었을 때도 제대로 인사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
냐면서 꾸중을 들었는데 오늘따라 굉장히 인자했다.
티그리스는 물을 물병째로 한 모금을 마시곤 카트 위에 올려두었다.
귀족답지 않은 품위 없는 행동이었지만 수년간 전쟁을 치러온 티그리스로선
이런 크리스탈 병에 담긴 생수조차도 사치라고 느껴졌다.
“그만 가서 쉬거라.”
“아···. 그 오늘 아침 훈련 시중은···.”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넌 모자란 잠을 채우거라.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나.”
레니는 지금 대하고 있는 사람이 티그리스가 맞는지 의심이 갔다. 이렇게 포
근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말을 할 사람이 절대로 아닌데···.
“그리고 내일부턴 수건을 줄 땐 받기 편하도록 최대한 넓혀서 주거라. 그리고
카트는 침대 옆까지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침대를 나설 때 방해가 된다. 마
지막으로 너무 긴장하여 말을 떠는구나. 말을 떠는 것은 듣는 사람으로 하여
금 듣기 거북하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하도록 해라.”
“···죄송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질책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
역시 티그리스는 티그리스였다. 세세한 것을 하나하나 봐두었다가 한 번에 지
적했다.
“내게 보인 실수를 다른 손님이나 가족들에게 보이면 꾸중을 받을 수 있으니
다음부턴 실수하지 않도록 하거라. 그것 외엔 잘했다.”
레니는 움찔했다.
잘했다.
저 말 한 마디가 왜 이렇게 사람을 들뜨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말
투는 또 왜 저렇게 자상한 걸까? 혼을 내는 게 맞긴 한 걸까? 혼을 내는 게
아니라 친절한 선생님이 학생에게 조곤조곤 가르쳐 주는 듯한 느낌이다.
아무튼 어제 저녁과 오늘 새벽에 제대로 연습한 보람이 있었다. 세숫물을 늦
게 드리고, 수건을 잘못 드리고, 카트를 침대 가까이 대고, 컵을 안 가져오
고, 말을 떠는 실수밖에 하지 않았다.
‘처음인데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닐까?’
레니는 자신을 칭찬하며 작게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티그리스 님.”
레니의 목소리에 작은 자신감이 묻어나왔다.
“그럼 가보거라.”
레니는 끝까지 기억한 대로 예법을 지켜 카트를 끌고 나갔다. 티그리스는 그
런 레니를 보며 생각했다.
‘옷의 주름도 지적할 걸 그랬나?’
레니는 티그리스에게 있어서 굉장히 고마운 사람이었다. 노르베르드 가문이
사용인들에게 제대로 된 봉급을 주지 못할 때도 끝까지 남아 지켜주었다.
그렇기에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최대한 신경 써서
알려주었다. 레니는 어렸을 적에 유난히 덜렁거리는 성격 탓에 티그리스뿐만
이 아니라 집사장 세바스찬에게 엄청 혼이 났었다.
만에 하나 레니가 다른 귀족들에게 지적을 받아 혼이 난다면 티그리스는 화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레니가 아니라 그 귀족에게.
그건 되었고.
티그리스는 침대 옆에 있는 서랍을 열었다. 역시 일기가 있었다. 티그리스는
언제나 자기 전에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평범한 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날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적는 것이 아니
라, 자신의 검술을 어떻게 하면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 오답 노트에
가까웠다.
티그리스는 일기를 펼쳤다.
<제국력 337년 10월 2일>
날씨가 화창하다.
연무장에서 검을 수련하기 좋은 날이다.
나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노르베르드 류 검술 훈련을 했다.
노르베르드 류 5번 초식에서 7번으로 넘어갈 때 오른 발목에서 불편함이 느껴
졌다.
제국 공통 오러 운용술 ‘뿌리내리기’로 발목을 강하게 고정시켰더니 문제가
해결되었다.
그렇지만 7번에서 1번으로 마무리를 지을 때, 0.08초 정도 지연되었다.
체술로 극복할 수 없는 것이라 오러 고리가 하나 더 필요하거나, ‘뿌리내리
기’를 캔슬함과 동시에 어깨로 오러를 이동시키는 오러 운용술 개발이 필요할
것 같다.
···
제국력 337년 10월이면 티그리스의 나이는 19살이다. 마지막 최후의 전쟁이
일어나기 정확하기 10년 전이었다.
티그리스는 일기를 뒤로 계속 넘겼다.
검술. 검술. 검술. 또 검술.
검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미쳤
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검술에 집착했다.
왜 그랬는지는 티그리스도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티그리스가 검술을
연마하는 것은 논리가 아닌 감정의 영역이었다. 티그리스는 그저 검을 단련하
여 강해지는 것이 좋았다. 거기에 티그리스는 검술의 천재였기에 하루가 다르
게 발전하는 것이 체감이 되니 재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런 사람이었군.’
일기를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티그리스는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이며 오만
한 사람이었다. 검술 천재인데다가 잠자기 전까지 검술 훈련을 하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직 나만이 아르펨과 로타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론 둘 모두를 티그리스가 죽인 것이 맞지만 아르펨과 로타는 개인이
아니다. ‘로타의 신체’와 ‘깎아내는 자’라는 집단의 수장이었다. 개인의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한 손으론 열 손을 막지 못하는 법이다. 티그리스는 그
이치를 너무 늦게 깨닫고 말았다.
티그리스는 일기를 닫았다.
‘나만 강해져선 안 된다.’
로타와 아르펨은 간악하게도 뛰어난 인재들이 꽃을 피우기 전에 죽였다. 차도
살인지계는 물론이고 권속들을 부려 암살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모두 살
아 있다면 티그리스가 봤던 고독하고 붉은 전장의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티그리스는 질문을 던졌다.
그들을 모두 살리려면 지금은 무엇을 해야 할까?
답은 금방 나왔다.
‘우선 내가 강해져야 한다.’
티그리스는 옷을 갈아입고 연무장으로 나왔다. 그리고 검을 쥐었다.
불편하다.
8개 오러 고리를 완성한 소드 마스터의 강인한 육체가 아닌 겨우 고리가 2개
뿐인 유약한 몸이다. 열아홉의 나이에 오러 고리가 2개인 것은 가히 천재라고
불릴 만하다. 하지만 체감상 30분 전까지만해도 티그리스는 소드 마스터의 영
역에 오른 강인한 육체로 검을 휘둘렀다.
만약 소드 마스터에 오를 때 얻었던 심득을 바탕으로 무작정 검을 휘두르면,
온몸의 근육이 끊어지고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 분명했다.
티그리스는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고 중단세를 취했다. 그리고 검을 머리 위로
든 뒤 내리그었다.
마치 달팽이가 기어가는 속도였다. 검술이 아니라 천천히 검을 내려놓는 것
같았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무리하지 않고 세세한 근육들의 움직임과 소리에 집중했다.
뚜둑-! 툭-!
굉장히 느릿한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두 개
의 오러 고리는 순식간에 과부하 되었고,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한 땀이 차가
운 새벽 공기와 만나 순식간에 기화되었다.
그렇게 티그리스는 장장 15분에 걸쳐 내려치기를 한 번 할 수 있었다.
“후···.”
티그리스의 폐에서 뜨거운 숨이 터져 나왔다. 마치 열차가 수증기를 뿜는 듯
했다.
‘약하다.’
티그리스의 심득은 저 멀리 있는데 육체의 수준은 밑바닥이다. 단 한 번도 경
험해보지 못한 괴리감에 티그리스는 당혹스러웠다. 심득을 얻는 것이 육체를
단련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었다. 이젠 반대가 되니 육체가 티그리스의 검로
를 받아들이질 못했다.
티그리스는 다시 중단세를 취했다. 그 자세 그대로 명상에 잠겼다. 근육과 뼈
는 단숨에 질기고 단단하게 만들 수 없다. 그것은 오랜 시간 동안 훈련과 오
러 연공법을 통해 단련 해야할 일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
‘오러 고리를 하나 더 만든다.’
현재 티그리스의 심장 부근에 위치한 오러 고리는 총 두 개. 티그리스의 육체
를 점검해 봤을 때, 오러 고리 세 개를 만들어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강
도를 갖고 있었다. 티그리스가 그간 열심히 훈련한 덕분이었다.
이미 올랐던 경지인 만큼 쉽게 오를 수 있다. 티그리스는 두 개의 오러 고리
를 달궜다. 온몸에 퍼진 마력 회로를 따라 질주하는 오러들을 심장 부근으로
모으기 시작한다.
탁! 타닥! 탁!
오러가 강하고 거칠게 마력 회로를 따라 흐르자 티그리스의 몸 전체에서 폭죽
이 터지기 시작했다. 막힌 세맥들이 뚫리면서 나는 소리였다. 특히 심장 부근
에선 아예 망치질 소리가 났다.
쿵! 쿵! 쿵! 쿵!
오러들이 오러 고리를 타고 정해진 길을 따라 거세게 질주했다. 마치 철길을
따라 달리는 기차와 같았다. 그러다가 몇몇 오러들이 정해진 길을 벗어나 탈
선하기 시작했다. 티그리스는 거친 야생마처럼 튀어나오는 오러를 잡아내 능
숙하게 유도하여 하나의 고리로 만들기 시작했다.
강제로 오러 고리를 만드는 만큼 심장에 무리가 가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라면 지레 겁을 잡아먹고 멈췄겠지만 티그리스는 오히려 더 강하게 오러를 몰
아붙였다. 이 정도론 심장이 멈출 리도, 마력 회로가 훼손될 리도 없다는 확
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가 울기 시작하고 아침 해가 티그리스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할 무렵 티그리
스는 심장에 오러 고리 세 개를 만들 수 있었다.
“후···.”
티그리스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티그리스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쓸만해졌군.’
고리 두 개와 세 개의 차이는 극명했다. 육체의 괴리감이 많이 해소되었고,
오러들은 더욱 힘차게 마력 회로를 질주했다. 티그리스가 고리 세 개를 만든
때가 스물하나의 일이었으니 2년을 앞당긴 셈이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다시 휘둘렀다.
--!
검로가 안정되어 공기를 가르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썩 만족스럽진 않다.
하지만 타협은 가능한 수준이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집어넣었다.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다.
* * *
연무장을 벗어나 방으로 돌아가는 길, 땀도 식힐 겸 산책로를 걷다가 그리운
얼굴을 만났다.
비단처럼 찰랑이는 검은 머리칼을 뒤로 질끈 묶은 채 공터에서 검을 휘두르는
그녀의 이름은···
리니아 디 노르베르드.
티그리스의 유일한 여동생이었다.
리니아는 티그리스를 보자 검을 휘두르는 것을 황급히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오···오라버니. 좋은 아침입니다.”
리니아는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급하게 인사하느라 예법에 맞지않게 행동했고 말도 떨었다. 티그리스가 제일
싫어하는 것의 귀족의 품위를 지키지 않는 것이었다. 혼이 날까 두려웠다. 그
리고 그 무엇보다 겁이 나는 것은···
‘혹시 내 검을 보셨나?’
리니아의 검술은 티그리스의 검술에 비하면 굉장히 모자랐다. 그래서 항상 티
그리스는 리니아를 질책하곤 했는데, 그것이 무서워 연무장이 아닌 산책로 공
터에서 따로 훈련하고 있었다.
‘왜 아무 말씀이 없으시지?’
리니아는 티그리스가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 검술이 너무나 하찮아서. 티그리
스의 여동생이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쓰레기 같은 검술을 구사하고 있어서 화
가 난 것이라 생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티그리스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은 그 반대였다. 이렇게 살아있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너무나 기쁘고 기뻐서···
슬펐다.
리니아는 언제나 티그리스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홀로 검을 수련했다.
그녀가 제국 대학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을 때도, 티그리스 여동생답지 않게
검술이 모자라다는 말이 나올까봐 입학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숨어서 홀로 검술을 연마하던 리니아는 아버지가 저주에 걸려 돌아가
시고 극심한 죄책감에 빠졌다. 자신이 약해서 아버지를 잃었다고 생각한 것이
었다. 그녀의 짙은 슬픔을 알아챈 아르펨은 슬픔을 잊게 해주겠다고 유혹하여
그녀를 권속으로 삼았다.
결국 리니아는 ‘슬픔을 깎아내는 자’가 되어 노르베르드 가문의 기억을 모두
잃은 채 티그리스와 대적했고, 티그리스는 그녀를 직접 베고 말았다.
-아···. 왜 난 당신이 이렇게 두려운 거죠?
리니아는 죽어가면서까지 티그리스를 무서워하며 죽었다. 당시의 티그리스는
아르펨에게 넘어간 리니아를 증오했지만, 오만함을 벗은 지금은 그녀에게 너
무나도 미안했다.
무너지는 리니아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었다면, 티그리스가 리니아
를 베는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었다.
후회의 가시덩굴이 심장을 아프게 조여왔다.
티그리스는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아침이다.”
티그리스는 그 말을 끝으로 리니아를 스쳐 지나갔다. 그녀를 더 볼 자신이 없
었다.
적어도 지금은.
리니아는 티그리스의 뒤로 떨어진 은빛 물방울을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땀이겠지?”
그것보다 리니아는 티그리스가 아침 인사를 받아준 것이 기뻤다.
“집중해야지.”
리니아는 다시 검을 들고 숨을 내쉬었다. 지쳤던 몸이 다시 활기로 가득 차는
기분이었다.
3. 베오울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