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화 – 모리타(2)
모리타는 소리쳤다.
“지금 티그리스를 교관을 채용한다고 하셨습니까? 아직 면접은 안 끝났습니다!”
바스티얀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을 뽑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네. 아쉽네만 자네는 탈락일세.”
“설마 이번 면접 시험이 선착순이었던 겁니까? 그런 거라면 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미 모리타의 눈깔은 돌아갔다.
“검술 교관은 검술을 잘하고 경험이 많은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이제 겨우
19살인데다가 기사 서임도 받지 않은 검사에게 교관직을 주다니요?!”
“이미 티그리스는 자네가 오기 30분 전에 도착해서 면접을 실시했네. 그 결과
다른 사람을 뽑을 필요도 없이 완벽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판단했네.”
“어떤 자격을 갖추었는지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
“순수한 검술 실력이네. 티그리스 이상의 검술가는 찾을 수 없다고 판단했지.”
모리타는 이를 뿌득 갈았다. 저 재수 없는 놈한테 교관 자리마저 빼앗겼다는
것이 너무나도 분했다. 눈앞이 흐려지고 생각 없이 말이 나왔다.
“아, 이해했습니다. 저는 별볼일 없는 자작 가문의 삼남이고 티그리스는 노르
베르드 변경백의 후계자니까 그런 거군요. 혹시 은퇴하시고 노르베르드에게
뭘 받기로 하셨습니까?”
바스티얀은 발을 강하게 굴렀다.
흉포한 마력이 휘몰아치더니 붉은 화염으로 된 뱀이 등 뒤에 생겨났다.
“감히 자네가 나를 모욕하는 건가?! 아무리 흥분했다고 하지만 자넨 넘지 말
아야 할 선을 넘었어!”
바스티얀의 광포한 마력에 모리타의 분노가 공포로 진화되었다. 공포 끝에 찾
아온 것은 후회였다. 너무 흥분해서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그···그렇지만···.”
“자네는 변명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모르는 건
가?!”
모리타는 결국 넙죽 업드렸다.
“죄···죄송합니다. 제가 실언을 했습니다.”
“썩 나가게! 자네는 앞으로 제국 대학에 발붙일 생각도 하지 말게!”
그때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바스티얀 님. 죄송하지만 입회인을 맡아주실 수 있습니까?”
티그리스는 주머니에서 하얀 장갑을 꺼내들어 모리타에게 던졌다.
“노르베르드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킨 모리타에게 생사결을 신청한다.”
티그리스는 모리타를 죽일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 * *
모리타는 생사결이란 말에 너무 놀랐다.
이게 생사결까지 갈 일이었나? 노르베르드 가문을 모욕한 것은 잠깐 흥분해서
그런 거라고 하지만 그래도 목숨까지 걸 정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생···생사결이라니. 조금 흥분을 가라 앉히시고···”
“지금 내 결투를 받지 않겠다는 건가?”
“그건···.”
모리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귀족이나 기사가 결투를 받지 않으면 ‘겁쟁이’라
고 소문이 난다. 겁쟁이가 별거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귀족과 기사
사이에선 겁쟁이라 불리는 것은 최고의 불명예였다.
일단 겁쟁이라 불리는 사람은 취직이 거의 불가능하다. 겁쟁이가 어떻게 백성
과 주군을 지켜야 하는 기사가 될 수 있겠으며 큰일을 할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귀족이라면 가문에게 파문을 당할 수도 있었다. 겁쟁이를 배출한 가문
이라면서 불명예를 떠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결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생사결은 안된다.
여기서 티그리스를 죽이는 경우 노르베르드 가문의 분노를 받게 된다. 그 분
노를 감당할 뒷배가 없는 상황이니 거의 죽은 목숨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때 바스티얀이 입을 열었다.
“생사결은 학교 내에선 금지되어 있네.”
“그러나 저자는 노르베르드 가문과 저를 모욕했습니다.”
“결투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네. 대신 생결로 하지.”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 학교가 아닌 외부에서 결투를 하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꼭 피를 봐야겠는가? 모리타가 잘못한 것은 맞네만 생사결까지
갈 일은 아닐세. 이건 입회인으로서 엄중히 중재하는 것이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현자 바스티얀의 중재였다. 예의상이라도 고민이라도 하
는 것이 맞았다.
“그럼 잠시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얼마든지 주겠네.”
티그리스는 자기도 너무 흥분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녀석을 처리해도 되는 걸까?
잠시 생각한 티그리스는 결론을 내렸다.
아니다.
모리타가 질투를 깎아내는 자가 된 경위를 떠올렸다. 모리타가 질투를 깎아내
는 자가 된 이유는 바로 티그리스 때문이었다.
회귀 전, 티그리스가 제국 대학에 들어갔을 당시 티그리스는 모리타에게 첫
수업을 받았다.
모리타의 검술은 어느정도 괜찮으나 괜찮은 수준만으론 티그리스를 가르칠 수
없었다. 모리타가 가르쳐 주는 검술은 하루가 지나면 모두 익힐 수 있었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에게 더 이상 배울 것이 없어지자 결투를 신청했다.
-모리타 교관. 당신에게 배울 것이 더는 없으니 내가 이기면 당신의 수업을
듣지 않겠다.
모리타는 자신의 권위를 폄훼한 티그리스에게 혼쭐을 내주겠다며 결투를 받아
들였다.
그 결과는 모리타의 참패였다.
오히려 티그리스는 결투 와중에 모리타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악력이 약하군. 그런 악력으로 검을 어떻게 검을 휘두르는 거지?
-종베기를 할 때 몸이 너무 앞으로 쏠리는군. 그러면 이렇게 발을 걸면 넘어
지기 쉽지.
-너무 쉽게 흥분하는군. 기사는 평정심을 가져야 하는데 말이야.
티그리스는 다시 결투를 하자는 모리타의 말에 수차례 결투를 반복했다. 그러
나 승리의 여신은 단 한 번도 모리타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 모리타는 티그
리스에게 굴욕적으로 패배한 그 날 교관직을 그만두었다.
모리타는 그날 술독에 빠져 살면서 티그리스의 뛰어난 검술에 질투심을, 티그
리스의 오만함에 분노를 터뜨렸다.
‘마음으로 깎아내는 예술가’ 아르펨이 호기심을 가질 정도로.
티그리스는 처분을 기다리는 죄수처럼 벌벌 떨고 있는 모리타를 내려다봤다.
‘녀석을 이용하면 아르펨과 로타의 입 레비스를 당초 예상했던 것 보다 빠르
게 찾아낼 수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아르펨이 모리타를 발견한 것이 아니라 레비스가
최초로 발견하여 아르펨에게 소개 시켜준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레비스를 죽일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정말 운이 좋다면 음지에
서 암약하는 아르펨을 양지로 끌어올릴 수도 있었다.
“좋습니다. 생결로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군.”
모리타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결로 하기로 했으니 티그리스를 이
겨도 별 탈이 없을 것이다.
모리타는 절대로 자신이 패배하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이제 막 3개의 고리를 만든 새내기 검사일 뿐이다. 거기에 나이도
19살밖에 되지 않아 실전 경험도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자신은 그리프 자작 가문의 기사로 활동하면서 여러 실전경험을 쌓았다.
영지 간의 전쟁도 겪어봤고 몬스터들도 퇴치해본 경험도 있었다.
티그리스와 모리타는 공터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섰다. 관객은 없지만 입회인이
현자 바스티얀이다. 바스티얀이 입회를 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승패에 대한
증명을 따로 할 필요가 없었다.
바스티얀은 품속에서 완드를 들며 말했다.
“무기는 각자 가지고 있는 검만 사용한다. 동의하나?”
““동의한다.””
“둘은 원만한 대화로 해결할 생각이 있는가?”
““없다.””
“결투는 생사결이 아닌 생결로 진행한다. 검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해를 입은 경우 상해를 입은 자는 패배로 간주하겠다. 동의하나?”
학교 내부 학생들 사이에선 결투 시 치명적인 상해를 입으면 안 된다는 규정
이 있지만, 이들은 학교 관계자가 아니기 때문에 생결일지라도 회복 불가능한
상처를 입어도 상관이 없었다.
모리타는 피식 웃었다.
‘당분간 오른손으론 밥을 못 먹게 해드려야겠군.’
““동의한다.””
“마지막으로 결투의 종결 후 각자 패자에게 원하는 바를 말하라.”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패배 시 오른팔을 내놓아라.”
모리타는 표정이 굳어졌다. 기사에게 오른팔을 내놓으란 말은 죽으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오랫동안 생각을 하더니만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모리타가 입을 열었다.
“패배 시 내게 늙어 죽을 때까지 한 달에 금화 1개씩 주시오.”
원래는 오늘 있었던 일을 무마시켜달라고 하려 했지만 오른팔을 내놓라고 했
으니 패배 수위를 높였다.
‘뭐 오히려 좋은 건가?’
이번 결투 한 번으로 평생 매달 금화를 하나씩 얻을 수 있으니 늙어 죽을 때
까지 호화를 누리며 살 것이다. 그런 이런 맞지도 않는 교관직에 목맬 필요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할 말이 있는가?”
티그리스는 모리타를 보며 말했다.
“수준을 가늠할 수 없는 불쌍한 눈을 탓해야 할 것이다.”
“매달 금화는 현물로 주셔야 합니다. 공자님?”
바스티얀은 완드를 든 손을 내렸다.
“시작.”
티그리스는 모리타에게 달려들었다.
모리타는 무작정 돌진하는 티그리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공자님. 결투를 안 해본 티를 너무 많이 내시는···”
쩌어엉!
모리타의 검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모리타는 티그리스의 검을 적당히 막아주려다가 검을 놓친 것이었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방심했군.”
모리타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졌다.
오른팔과 지금 작별 인사를 해야한다는 생각에 모리타는 반사적으로 넙죽 엎
드렸다.
“공자님! 다시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제발!”
결투의 결과가 명백히 나왔음에도 번복하는 일은 명예롭지 못하다. 이 일이
알려지면 모리타는 귀족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오른팔을 잃는 것보단 훨씬 낫다.
티그리스는 모리타가 졌었던 날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그렇게 형편없는 악력으로 검을 잘도 휘둘러왔군.”
“제가! 제가 방심했습니다. 제발 한 번만 수를 물러주십시오.”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손을 싹싹 빌자 바스티얀이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하겠나?”
“한 수 물러주겠습니다.”
그러자 모리타는 눈물을 빠르게 닦아내고 엉금엉금 기어서 검을 주웠다.
모리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기분이었다.
‘방심···. 그래 방심해서 그런 거야. 저렇게 호리호리한 몸에서 그런 근력이
나올 줄 어떻게 알았겠어?’
모리타는 검을 부서져라 잡았다. 모리타가 준비가 다 된 듯하자 바스티얀이
다시 완드를 아래로 내렸다.
“시작.”
이번엔 모리타가 달려들었다. 모리타의 장기는 힘대 힘 싸움이 아니다. 빠른
반응속도를 기반으로 한 난타전이었다.
모리타는 종베기를 했다. 티그리스는 그저 중단세를 취하고 있었다. 너무 빨
라서 티그리스가 반응도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겼다.’
그러나 모리타가 간과한 점이 있었다. 티그리스의 눈은 모리타의 검을 끝까지
따라가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옆으로 살짝 피하는 것으로 모리타의 검을 피했다. 검이 허공을
가르자 모리타는 경악했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발을 걸었다.
돌진하며 종베기를 한 터라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모리타는 엎어지고 말았
다. 하지만 놀라운 반응 속도로 곧바로 대처했다.
모리타는 몸을 말아서 콩벌레처럼 데구르르 구른 뒤 뒤를 돌았다.
‘자세를 고쳐잡고 반격을 준비해야···’
“또 이겼군.”
모리타의 목젖에 티그리스의 검이 도착해 있었다. 모리타는 얼어붙었다.
“종베기를 할 때 몸이 너무 앞으로 쏠리는군. 아무리 돌진 공격을 했다고 하
나 바로 뒷수습이 안 되는 건 경험 부족인가?”
침을 꿀꺽이자 날카로운 검끝이 모리타의 목을 찔렀다. 피 한 방울이 식은땀
과 뒤섞여 목을 타고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다시 하지. 자네에게 가르칠 것이 너무나도 많군.”
모리타는 다시 주어진 기회에 검을 들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가면 오른팔을
잃기 때문이었다.
모리타는 이번엔 수비적으로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티그리스의 검이 또 모리
타의 목에 닿았다.
“이겼군.”
티그리스의 담담한 말투가 모리타의 정신을 난도질했다.
“다시.”
그 이후로 모리타는 얼마나 졌는지 알 수 없었다.
“또 이겼군. 다시.”
“네 패배다. 다시.”
“내가 이겼다. 다시.”
“나아지는 것이 없군. 다시.”
모리타의 눈동자가 죽어가기 시작했다. ‘다시’가 반복될 때마다 넌더리가 났다.
이 녀석은 천재가 아니었다.
괴물이었다.
티그리스와 평생 싸워도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들자 추악한 질투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모리타에겐 검술밖에 없다. 하지만 티그리스 이 녀석은 모든 것을 가졌다. 변
경백의 후계자라는 지위와 뛰어난 검술, 거기에 여자들이라면 흠모할 수밖에
없는 외모까지.
‘넌 내게서 검까지 뺏어가려는 것이냐!’
모리타의 추한 질투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모리타의 검이 포악해지고 패
도적으로 변했다.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내가 이겼군.”
“으아아아아!”
모리타의 목에 티그리스의 검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모리타는 검을 내질렀
다. 갑작스런 상황에 바스티얀이 실드를 걸려고 했지만 티그리스는 이미 모리
타가 이렇게 나올 것을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검을 피하고 폼멜로 모리타의 코를 깼다.
“컥!”
모리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무작정 달려들었다. 그 어떤
검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너죽고 나죽자는 식의 무차별적인 난격이었다.
빠르고 불규칙적이며 포악했지만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라 검
로가 단순했다. 티그리스는 가볍게 모리타의 검을 툭툭 쳐냈다.
“난잡하군. 이런 수준으로 교관이 되려고 한 건가?”
“닥쳐! 닥쳐어어어!”
티그리스는 다시 폼멜로 깨진 코를 다시 찍었다.
“컥!”
골을 뒤흔드는 고통에 모리타는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눈물
이 코피와 뒤섞여 흘렀다.
“넌···! 너어어언! 그렇다 가졌으면서 이것마저도 가져가려는 것이냐!”
“난 네게 분명히 패배를 순순히 인정할 기회를 주었다. 하지만 너는 그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았지.”
“닥쳐! 넌 그냥 나를 가지고 노는 게 즐거웠을 뿐이잖아! 안 그래?”
티그리스는 살기 어린 눈빛으로 모리타를 노려봤다.
“세상 사람들의 기준을 너로 두지 마라. 너처럼 추한 사람보다 고귀한 자들이
더 많으니.”
“닥쳐어어어!”
모리타는 검을 쥐고 다시 찔렀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검을 가볍게 쳐내고 폼멜로 모리타의 코를 다시 찍었다.
“컥!”
모리타는 결국 검을 떨어뜨리고 벌레처럼 기며 울부짖었다.
“으아아아! 으아아아아아!”
모리타의 추한 질투심에 바스티얀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승패는 일찍부터 난
상황이었다. 바스티얀이 결투를 멈추지 않은 것은 모리타가 순순히 패배했다
고 시인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야 녀석에게 패배를 인정했다는 명예라
도 주워 담을 수 있으니까.
‘티그리스가 몇 번이고 자비롭게 기회를 줬는데도···. 허···.’
바스티얀은 티그리스를 다시 보게 되었다. 패배자에게 패배의 명예라도 주기
위해 수십 번이고 기회를 주다니. 티그리스는 진정한 귀족이자 기사였다.
모리타는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바닥을 기었다. 더 이상 검을 들 힘도 없어
보였다.
결투를 이어나가는 것은 무의미했다.
티그리스는 폼멜에 묻은 피를 장갑으로 닦아내곤 모리타에게 던졌다.
“네게 오른팔을 가져가려고 했으나 너는 명예를 모두 잃어버렸으니 가져가지
않겠다. 꺼져라.”
모리타는 티그리스가 뒤를 돌자 검을 다시 들곤 덤벼들었다.
“닥쳐어어어!”
서걱!
티그리스는 뒤를 돌아 녀석의 양팔을 날렸다.
피가 용솟음치고 잘린 검을 붙잡은 양손이 호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끄아아아아아아!”
티그리스는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내곤 검집에 집어넣었다.
“바스티얀 학교장님. 이 자를 보건실로 이동시켜주십시오. 부탁드리겠습니다.”
바스티얀은 잘린 두 팔을 보며 울부짖는 모리타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넨 끝까지 자비롭군. 알겠네.”
바스티얀은 모리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이윽고 공간이 뒤집히며 바스티얀과
모리타는 사라졌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잘린 팔을 보며 생각했다.
‘과연 내가 잘한 것인가?’
모리타가 질투심 많고 전혀 기사답지 않은 인품을 갖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그런 모리타의 성질을 일부러 긁어냈다. 오로지 로타의
입 레비스가 모리타를 발견하여 접근하길 기대하는 마음으로.
티그리스는 귀족이자 기사다. 100명을 위해서 1명을 죽일 수 있냐고 묻는다면
1명을 가차없이 죽일 수 있는 사람이다. 그게 옳다곤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틀리다곤 할 수 없을 것이다.
티그리스는 지금껏 틀린 선택지만 골라 살아왔기 때문에, 옳은 선택지를 고르
는 것은 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이 적은 오답노트를 보며 틀리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래 이게 최선이다.’
그렇다면 해야할 일이 있다. 모리타를 이용해 로타의 입 레비스를 이끌어내기
로 결심했다면 확실하게 해야 한다. 모리타의 뒤에 꼬리를 붙여야 한다. 티그
리스는 남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 하나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밤 여우를 만나러 가야겠군.’
작가의말
눈깔을 -> 눈깔은
오타 수정했습니다!
10. 밤 여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