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0화 (10/251)

#010화 – 밤 여우

대륙은 여전히 인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사람의 손길이 자주 닿지 않는 곳에는 몬스터들이 살고, 이해할 수 없는 마법

현상들이 나타났으며, 사람을 홀리는 신비와 던전과 미궁이 존재했다.

몇백 년을 지속해온 귀족 가문도 몬스터 웨이브와 전쟁으로 사라지는 야생 같

은 대륙에서 평생 고용은 우스갯소리로 여겨질 만큼 흔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맺고 끊는 게 간편한 프리랜서, 용병과 모험가를 여전히

필요로 했다.

그들은 마치 강줄기가 모두 바다로 모이듯이 그들은 자연스럽게 황도 빅토리

에로 모여들었다. 일거리를 쉽게 얻으려면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와야한다

는 진리를 그들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미들타운과 트레져 타운을 잇는 골드 브릿지를 걸었다. 골드 브릿

지를 통과하자 이상한 표지판이 등장했다.

본래 ‘레드 타운’이라 적힌 정식 표지판에 누군가 붉은 색 붓으로 크게 X자를

그려놨고, 그 위에 ‘트레져 타운’이라고 써져 있었다.

빅토리에의 작은 구역 중 하나였던 트레져 타운은 본래 레드 타운이라는 정식

명칭이 있었지만, 모험가들과 용병들이 모이면서 이름마저 바뀌게 된 특이한

케이스였다.

모험가와 용병들의 자유로운 기질이 도시에 묻어나기 시작하면서 네모반듯했

던 도로가 삐뚤빼뚤하게 변했고, 빌딩들은 값싼 자재들이나 중고 자재들로 건

축한 터라 낮고 형태가 다양했다.

무난함보단 독특함이 평범해진 트레져 타운에 이레귤러가 나타났다.

귀티 나는 외모, 깔끔한 코트와 금줄, 모델 워킹을 연상케 하는 깔끔한 걸음

걸이.

그 무엇하나 트레져 타운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로 조합된 티그리스는 마치

닭들 사이를 거니는 학처럼 고고하게 트레져 타운을 거닐었다.

-코트를 입은 걸 보니까 모험가인가?

-코트만 입었다고 다 모험가냐? 딱 봐도 업타운 출신이구먼.

-업타운 출신이 왜 여기에 오는 거지? 보통 시종을 시키지 않나?

-뭐 껄끄러운 의뢰라도 맞으려는 모양이지. 잠시만, 그런데 코트 안에 장검이

흘금 보인 것 같은데?

-어? 그러면 모험가 아니야?

-···잘 모르겠네.

사람들은 모두 티그리스의 코트를 주목했다. 코트는 모험가의 상징이나 다름

이 없었다. 코트는 안에 잔뜩 무언가를 담거나 숨기기를 좋아하는 모험가들에

게 안성맞춤이었다.

티그리스가 모험가로 오해를 받으면서까지 코트를 입고 다니는 이유는 단순했

다. 평상복 상태로 검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기 때문이었다.

검을 착용하고 다니려면 군복이나 기사들이 입는 경갑을 입고 다녀야 하는데,

티그리스는 아직 기사 서임도 받지 않았고 교관 제복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모험가 사무실이 밀집되어 있는 ‘모험가 빌딩’으로 향했다. 사람

들은 모두 자신들의 추측이 맞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험가 빌딩 내부는 굉장히 어지러웠다. 1층 전체는 간단한 음식과 술을 파는

펍으로 되어 있었기에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티그리스는 밤 여우의 말을 떠올렸다.

-여기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다 할 일 없어 보이는 사람 같지? 얘네들 다 위

에 있는 사무소 직원들이야.

바텐더에게 술을 사고 의뢰를 맡기면 바텐더는 적당한 사무소 사람들을 불러

내 소개시켜준다.

그 자리에서 약간의 흥정을 하고, 계약서 사인과 디테일한 정보 교환은 위층

사무실에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티그리스는 바텐더에게 다가갔다. 바텐더는 컵을 닦으며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코트를 입은 걸 보니 모험가 같긴 한데, 내게 찾아온 걸 보니 의뢰인인가 보

지?”

티그리스는 신분패를 꺼냈다.

노르베르드 가문의 상징인 늑대패를 보자 바텐더는 유리컵을 내려놓았다.

“이거 귀한 손님이 직접 찾아오셨군요. 보통 사람을 보내시는데···. 아무튼

어떤 의뢰를 원하십니까?”

말투와 자세도 공손해졌다. 아무리 막 나가는 모험가들이라도 티그리스 같은

대귀족 앞에선 몸가짐을 바르게 하는 당연했다.

“밤 여우를 찾아왔다.”

밤 여우란 말에 바텐더는 헛기침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혹시 그녀에게 악감정이 있어서 찾아오신 거면 잘못 찾아오셨습니다. 이곳은

의뢰만 받는 곳이지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곳이 아닙니다.”

밤 여우는 모험가지만 모험을 하지 않는 특이한 모험가였다.

그녀는 도둑질과 정보 수집을 주로 했는데, 특히 귀족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귀족들의 약점을 찾아내 다른 귀족에게 팔아넘기는 일을 주로 했다.

귀족들에게 있어서 찢어 죽이고 싶은 여자다보니 귀족들이 종종 찾아와 밤 여

우를 불러내곤 했다.

“노르베르드 가문과 밤 여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래도 밤 여우는 원래 귀족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바텐더는 티그리스의 장검을 흘금 봤다.

“검까지 들고 오셨으니···. 죄송하지만 말씀을 전해주시면 제가 대신 전달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티그리스는 이런 더러운 곳에서 말씨름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밤 여

우가 귀족과 직접 대화하는 것을 꺼려한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만 전해주게. 착수금 금화 하나. 이후 달성도에 따라 최소 은화 10개

에서 금화 다섯까지 추가 보수를 지급하지.”

“금···금화 말씀이십니까?”

금화 하나면 수도 변방에 작은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다. 모험가들의

평균 의뢰금이 은화 10개인 것을 감안하면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티그리스는 품속에서 가문 수표와 가문 반지를 꺼냈다. 그리고 티그리스는 수

표 위에 가문 반지를 찍었다. 가문 반지에 인챈트된 인장(印章) 마법이 발현

되며, 수표 위에 늑대 문양이 남겨졌다.

“받을 생각이 있으면 이 수표를 들고 나를 찾아오라고 하게.”

“어···어디에 계실 건지···.”

“내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면 그건 밤 여우가 아니겠지. 2시간만 기다

리겠다고 전하게.”

티그리스는 곧장 업타운으로 향했다. 업타운은 귀족들이 주로 사는 동네라 고

급 찻집들이 몰려있었다. 티그리스는 그 중 ‘레비올라 찻집’이라는 곳으로 향

했다.

그곳에서 정확히 2시간 정도 차를 마시고 있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검은 머리칼을 말총머리로 묶고 배를 시원하게 까고 다니는 여인이었다. 그녀

는 모험가임을 증명하듯이 코트를 입었는데, 코트는 그냥 장식인 듯 굉장히

얇았다.

초겨울에 저렇게 입고 다니는 여자는 단 하나뿐이었다. 이 여자가 바로 밤 여

우였다.

밤 여우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텐더에게 백지수표를 건네놓고 가는 귀족이 있을 줄이야. 아무리 모험가들

에 대해 모른다곤 하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아?”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 썩을 놈의 새끼가 백지수표 들고 튀려다가 나한테 걸려서 뒤통수가 깨졌

으니 무슨 일이 있는 거겠지.”

“그렇군.”

밤 여우는 눈썹을 찌푸렸다.

“뭐가 그리 담담해? 당신 생돈 날릴 뻔했다고.”

“그 수표에 문제가 있는 걸 알고서 찾아온 거 아닌가? 귀족들과 수표 거래를

많이 해봤으면 당연히 알 텐데?”

밤 여우는 헛웃음을 치면서 티그리스의 맞은 편에 앉았다.

“당신 일부러 수표에 사인을 안 해둔 거구나.”

수표에 가문 인장만 박힌다고 해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거기에 티그리

스의 사인이 반드시 필요했다. 그 사인이 은행에 보관되어있는 티그리스의 필

적과 완벽하게 일치해야 수표에 효력이 생겼다.

“그렇게 해야 밤 여우와 직접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당신 정말 19살 맞아? 나를 아는 것도 그렇고 모험가들과 의뢰를 몇 번 나눠

본 것처럼 능숙한데?”

“그건 됐고 의뢰를 받을 생각이 있나?”

밤 여우는 요염하게 다리를 꼬았다.

“뭐 일단 의뢰를 듣고 나서 생각해 보려고.”

“좋다.”

티그리스는 테이블 위에 있는 꽃병을 시계방향으로 살짝 돌렸다.

달칵!

무언가 걸리는 소리와 함께 마력 파장이 꽃병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밖으로

소리가 퍼져나가지 않게 막아주는 사운드 블록 마법과 인식 저해 마법을 발동

시킬 수 있는 아티팩트였다.

“괜히 레비올라 찻집에 온 게 아니었네. 뭐 여기라면 나도 안심할 수 있겠어.”

레비올라 찻집은 귀족들이 은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곳이었다. 정치ㆍ외교와

같은 민감한 사안이나 가문 간의 은밀한 거래들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물론 테이블 대여 비용은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그래서 의뢰 내용이 뭐야?”

“추적ㆍ관찰의뢰다.”

“누구를?”

“모리타 디 그리프.”

밤 여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주정뱅이를? 그리프 가문은 노르베르드 가문하고 전혀 관련도 없고 개인

적인 원한도 없잖아.”

“원한은 좀 전에 생겼다. 내가 모리타의 양팔을 잘라버렸으니까.”

밤 여우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우~ 굉장히 화끈하신 분이셨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가문을 모욕했다. 그리고 결투를 했지.”

밤 여우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왜 나한테 의뢰를 맡기려는 지 알 것 같아. 당신 거기서 멈출 생각은 없는

거지? 아예 죽이고 싶었는데 무슨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죽이지 못한 모양이네?”

귀족들은 생각보다 집요하다. 결투를 이겼음에도 앙심이 남아있다면 끝까지

추적하여 못살게 굴었다.

그러나 결투에서 진 상대를 또 괴롭히는 것은 품위에도 맞지 않고 명예롭지도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몰래 사람을 시키는 것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집요한 성격인 줄은 처음 알았어.”

“녀석에게 앙금이 남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 그럼 뭔데?”

티그리스는 정확히 어떤 과정을 거쳐서 모리타가 질투를 깎아내는 자가 된 것

인지 알지 못한다.

모리타가 로타의 입 레비스와 만났고, 레비스가 아르펨에게 소개를 해줬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중요한 시간과 장소를 알지 못했다.

그러니 밤 여우의 역할이 중요했다.

티그리스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 깎아내는 자들이나 로타의 신체들의 뛰어난

감지 능력을 벗어날 수 있는 은신술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개중에 돈으로 매수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이 밤 여우 하나뿐이었다.

“한 사람이 모리타를 찾아올 것이다. 양팔이 잘리고 가문으로부터 버려진 모

리타를 도와줄 사람은 거의 없을 테지만, 단 한 사람이 모리타를 적극적으로

도와줄 것이다. 그 사람을 발견하면 내게 즉각 보고해라.”

“···그 사람이 누군데?”

“이름은 중요치 않다. 어차피 그 사내는 자신의 이름도 얼굴도 속일 테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그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

단하겠어. 좀 더 구체적인 건 없어?”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다.”

밤 여우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뭐? 사람이지만 사람 같지 않은 사람? 도대체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 누구

야?”

“지금은 말해줄 수 없다.”

“이거 참···. 뒤가 대놓고 뒤가 구리다고 말하는 의뢰인은 처음 보네.”

티그리스는 테이블 위에 놓인 수표에 사인을 했다. 그리고 금액을 적는 란에

2골드를 집어넣었다.

“착수금 2골드. 이후 달성도에 따라 금화 10개까지 주겠다.”

“으음···.”

밤 여우는 눈을 감더니 굉장히 고민했다. 2골드는 정말로 큰돈이다. 게다가

완수금은 10골드라니. 밤 여우가 맡아본 의뢰 중 최고 액수였다.

밤 여우는 티그리스를 봤다. 티그리스의 깐깐한 표정으로 보아 이 이상 흥정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정보를 더 달라고 해도 주지 않을 것 같고.

“질문이 있어. 내가 발견한 사람이 당신이 찾는 사람인 줄은 어떻게 판단하

지? 녀석에게 동전이라도 던지는 사람이 보이면 바로 보고하면 되는 건가?”

“아마 너라면 내가 찾는 사람을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내가 바로 알아차린다고? 어떻게?”

“그 사람에겐 위험한 냄새가 날 테니까.”

“참나, 내가 무슨 개코도 아니고 그런 걸 어떻게 구분해.”

“개가 아니라 여우 아닌가? 내가 알고 있기론 여우로 알고 있는데?”

그 순간 밤 여우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그녀의 손톱이 길어지며 동공이

세로로 찢어지기 시작했다. 그 무엇보다 농축된 살기가 공기를 타고 흘러들어

왔다.

“당신···. 그걸 어떻게 알았어. 내가 수인족인걸.”

“비밀이다.”

“어서 말해!”

쾅!

테이블을 내려쳤지만 부서지지 않았다. 밤 여우가 테이블을 부수지 못할 정도

로 약해서가 아니라 힘 조절을 한 것이었다. 테이블이 부서지면 사운드 블록

마법과 인식 저해 마법이 풀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름 네메시스. 검은 여우 수인이고 수인 해방 집단 ‘리베르’ 소속. 황국에

잠입한 목적은 불법으로 유통되는 수인족들을 구출하기 위한 것이지. 주요 능

력은 은신과 잠입 그리고 정보 수집이고 특징으로는 코가 굉장히 좋다. 그리

고···”

“그만!”

밤 여우, 네메시스는 티그리스를 노려봤다.

“레몬 샤베트를 좋아하지.”

“···너 말고 내가 수인족인걸 아는 사람은 또 누가 있어?”

“없다.”

“그럼 너만 죽이면 내가 여기에 있는 줄 모르겠군.”

“수인족과 황국과의 불가침조약을 파기하려는 건가? 나는 변경백의 후계자다.

네가 나를 죽인다면 황국은 반드시 보복할 것이다.”

네메시스는 으르렁댔다.

“내가 너를 죽이고 조각내 하수구에 뿌리면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알 것 같아?”

“지금 이 카페에서 소리소문없이 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못할 것 같아?”

티그리스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런 거라면 자기 객관화가 덜 된 것이겠군.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더 대

화를 나누지.”

“개수작 부리지 마. 너와 나는 여기서 끝났어. 앞으로 목 간수 잘해. 세상이

갑자기 빙글빙글 돈다면 내가 네 목을 날려버린 것이니까.”

“그렇다면 블랙 마켓이 언제 어디에서 열리는지도 알 수 없겠군.”

“···뭐?”

티그리스는 여유롭게 네메시스를 쳐다보며 말했다.

“수인족들과 각종 불법 유물과 아티팩트가 사고 팔리는 귀족들의 블랙마켓 말

이다. 올해엔 언제 어디에서 열릴 것인지 나는 알고 있지.”

“···도대체 어떻게?”

“비밀이다.”

네메시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설마 노르베르드 가문이 그 더러운 블랙 마켓과 연관되어 있을 줄은 몰랐어.”

“가문을 향한 모욕은 참아줄 수 없으니 말을 가려서 해라. 노르베르드 가문은

블랙마켓과 일절 관련이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알았는데?”

“때가 되면 말해주지. 지금은 시기상조이니까. 자네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아직 티그리스는 네메시스를 믿을 수 없었다. 현재 수인족과 황국과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밀림 접경 지역에 위치한 가문들이 수인족 사냥을 못 본 척 하는 데다가 심지

어 브로커 역할을 하기까지 하는 가문들도 있었다.

중앙에서 이를 막아보려고 수사관들을 파견했지만 수사관들을 매수하거나 수

사를 방해하는 등 각종 공작을 펼쳤다.

이런 상황에서 티그리스가 네메시스에게 자신이 과거에서 회귀했다고 말한다

면 미친놈 취급을 할 것이다.

설령 믿어준다고 하더라도 이 정보를 로타나 아르펨에게 팔아 넘길지도 모르

는 일이었다. 그만큼 네메시스는 인간들, 특히 귀족들을 혐오하고 있었으니까.

티그리스와 지금의 네메시스와는 신뢰가 필요했다.

“그렇다면 블랙마켓이 언제 어디에서 열리는지 말해. 내가 확인해 볼 테니까.”

“확인하다가 정보가 샐 우려가 있다. 블랙 마켓이 열리기 보름 전에 모두 알

려주겠다.”

“당신의 뭘 믿고? 가짜 정보일 수도 있잖아.”

“난 노르베르드 가문의 후계자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다. 난 거짓을 입에 담

는 사람이 결코 아니다.”

“그렇게 말하는 귀족치고 제대로 된 사람은 한 명도 없던데?”

“그래서 블랙 마켓의 정보를 놓칠 건가?”

네메시스는 이를 뿌득 갈았다. 지금 상황은 절대적으로 네메시스에게 불리했

다. 출처를 알 수 없지만 블랙 마켓의 정보를 알고 있고, 티그리스는 자신이

리베르 소속의 수인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

확실한 선택지는 녀석의 목을 베고 도주하는 것이지만, 그렇다면 수인족이 귀

족을 죽였다는 것을 필연적으로 들키고 말 것이다.

가뜩이나 동남부 귀족들이 수인족들이 위험하다고 각종 정치 공작을 하는 와

중에, 황도에서 대놓고 귀족을 죽이면 황국 내 여론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어떻게 하지···.’

마음이 복잡해서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는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라. 일단 시간이 있으니 이번 의뢰로 서로 간의 신뢰

를 쌓아가는 편이 좋지 않겠나?”

“신뢰는 개뿔. 내가 네가 찾고 있는 사람에게 네 정보를 넘길 수 있는데도?”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너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

“나를 너무 믿는 거 아니야? 난 수틀리면 의뢰고 뭐고 다 집어 던질 수 있어.”

“아니. 네가 내가 찾는 놈의 체취를 맡는 순간 녀석이 네 적이라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테니까. 녀석에게서 수인족의 피 냄새가 진동할 것이다.”

“···뭐? 그 녀석이 수인족을 죽이고 다니는 놈이라도 된다는 거야?”

“그것보다 더한 놈이지.”

로타의 입 레비스는 수인족의 키메라 실험을 즐기는 미치광이다.

녀석의 몸에서 진하게 피어오르는 수인족의 피 냄새를 맡는 순간, 네메시스는

티그리스와 같은 배를 탈 수밖에 없는 운명임을 직감할 것이다.

“의뢰는 받아들인 것으로 알겠다. 충고를 하자면 괜히 접근하지 말고 네 코를

사용해라. 혹시 찾아올 일이 있다면 제국 대학 쪽을 통해 접근하도록.”

“제국 대학? 그러고 보니 넌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애송이였지. 내년에 입학

할 테니 자주 볼 수 있겠군.”

티그리스는 옷깃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입학이 아니다. 취임이지.”

“취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제국 공통어를 잘못 배웠나? 학생은 입학이라

고 하는 게 맞지 않아?”

“학생은 입학이 맞다. 하지만 나는 제국 대학을 학생 신분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다.”

티그리스는 꽃병을 돌려 마법을 해제했다.

“나는 제국 대학의 검술 교관이다.”

11. 안개의 숲(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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