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1화 (21/251)

#021화 - 성물

샤를로트는 젊은 피 토너먼트에서 티그리스가 1등을 하자 충격에 빠졌다.

믿을 수 없었다.

그가 1등을 했다는 것이 충격이 아니라 그의 실력을 믿을 수가 없었다.

티그리스는 기술, 힘, 속도 그 무엇하나 뒤지지 않았고 완벽하게 승리를 쟁취

했다. 특히 결승전 경쟁자였던 고든 데이커와 맞붙었을 땐 자신도 모르게 입

을 쩍 벌리고 봤을 정도였다.

샤를로트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19살에 불과한 티그리스가 어떻게 그렇게

강해질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고리가 무려 4개에다가 수많은 사람과 전투를 치러본 듯 노련했으며 고든이

보여준 다양한 귀족 가문들의 검술에도 당황하지 않고 모두 받아쳤다.

만약 샤를로트와 고든이 순수한 검술로 맞붙었다면 100% 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고든은 대단했다.

그런 고든을 이긴 티그리스를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를 평생 넘을 수 없다는 좌절감에 1달이 넘게 앓아눕고

말았다.

자신이 노력해왔던 긴 세월이 부정당한 것 같았다.

티그리스는 19살의 나이에 저 정도 경지에 올랐는데 왜 자신은 아직 고리가 2

개일까.

티그리스 그 녀석을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요 1년 반 동안 잠도

줄여가면서 검을 휘둘렀는데, 왜 나는 이것밖에 되지 않는 걸까. 영원히 티그

리스를 이길 수 없게 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에 잠식되어 죽어가고 있었다.

종강해도 본가에 돌아가지 않은 채 기숙사 숙소에서 가만히 침대에 누워만 있

자 친구들이 걱정했다.

-제발 어디 좀 나가라. 샬롯!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있듯 새해가 지나고 마음을 어느 정도 추스른 샤를로트

는 밖을 나가기로 했다. 쌀쌀한 강바람이 샤를로트를 스쳐 지나가자 정신이

조금 들었다.

‘그래. 티그리스는 천재지만 노력가다.’

티그리스도 지금까지 열심히 검을 휘둘러왔을 것이다. 그 녀석이 재수가 없긴

해도 작년 슈베어트에서 봤을 땐, 검에 미친놈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매일 새

벽같이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검만 휘두른 녀석이지 않던가.

녀석이 그 경지에 오른 이유는 천재라서가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은 경지라고

생각했다.

‘내가 많이 검을 수련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야. 녀석보다 더 많은 시간을

수련하는 게 중요하지.’

샬롯은 티그리스가 지금도 검을 휘두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녀석에게 평생 뒤처지는 것은 정말로 싫었다. 언젠간 녀석의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는데 이대로 포기하는 것은 싫었다.

아직 샬롯은 젊다. 녀석을 따라잡을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다.

‘그래. 다시 시작하자.’

유유히 흐르는 차가운 강물을 상대로 다짐하고 골드 브릿지를 나왔다.

그때 티그리스가 강변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했다.

“티그리스?”

티그리스가 자신을 쳐다봤다. 그리고 티그리스 옆에 아주 예쁜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녀의 손엔 다 먹어가는 크레이프가 들려 있었다. 티그리스는 작게 웃고 있

었다.

샤를로트는 안에서 부글부글 끓었다. 이 녀석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지

금 데이트? 밤낮 안 가리고 검만 휘두르는 줄 알았는데 지금 데이트하는 건

가? 설마 이 녀석은 할 거 다 하면서 그 경지에 오른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샤를로트는 어느새 자신이 티그리스의 앞에 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생각하

지 않고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이었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녀석 앞에서 펑펑 울어버리

고 싶었다.

샤를로트 자신의 노력이 모조리 부정당하는 것 같아서. 결코 넘을 수 없는 벽

이란 게 존재하는 것 같아서.

인정하기 싫었지만 현실은 냉혹하게 현상을 제시하니 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오라버니. 이분은 누구세요···?”

뭐? 오라버니?

설마 오빠가 아니라 오라버니라고 부르게 하는 취향이라도 있는 건가? 원래

천재란 새끼들이 머리가 이상한 녀석들이 많다는 데 이런 취향일 줄은 몰랐다.

“샤를로트 디 프리하르덴. 프리하르덴 백작의 후계자다.”

“아!”

여자는 급하게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못 알아봬서 죄송합니다. 리니아 디 노르베르드라고 합니다. 전 티그리스 오

라버니의 여동생입니다.”

“···여동생?”

여동생? 여동생?? 여동생???!!!

샤를로트는 순간 머리가 카오스로 변했다. 여동생이 있는 줄은 전혀 몰랐다.

“너···너한테 여동생이 있었어? 재작년 슈베어트에선 없었잖아?”

리니아가 대신 답했다.

“슈베어트에선 제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나오질 못했었어요.”

“하···! 하!”

샤를로트는 멍청하게 웃어버렸다. 그제야 자신이 얼마나 추한 망상을 해버렸

는지 깨달은 것이었다. 망치로 뒤통수에 거하게 맞은 것만 같았다.

“그럼 너희 둘은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노르베르드에 안 있고?”

“나는 이틀 뒤에 제국 대학에 출근해야 하니 온 것이고 여동생은 올해 라만

검술 아카데미에 입학할 예정이라서 미리 내려온 것이다.”

“아···. 너 진짜 검술 교관이 된 거야?”

“자격이 없어 보이나?”

샤를로트는 입술을 씹었다. 나이를 떠나서 젊은 피 토너먼트에서 우승까지 하

고 고리가 무려 4개인 사람을 인정 안 한다? 그건 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순순히 인정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가···가르치는 것하고 검을 잘 다루는 것하곤 다르니까. 잘 모르겠네.”

“오라버니는 검을 잘 가르쳐주시기도 해요. 그 덕분에 제 실력도 많이 늘었고

요.”

“티그리스가 네게 검을 알려준다고?”

“매일 아침 1~2시간 정도 가르쳐주고 계세요.”

“그럼 개인 훈련은?”

“월수금은 오후엔 검을 휘두르지 않고 명상을 하시다가 저녁을 드시고 난 후

에 늦게까지 검을 수련하세요. 화목토는 오후부터 밤늦게까지 검을 단련하시

고요.”

“그···그럼 일요일은?”

“일요일은 부족한 부분을 채우시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매일 새벽 5시부터 시

작해서 저녁 9시까지 꾸준하게 훈련하세요.”

점심 저녁 먹는 시간을 제외한다고 치면 거의 13~15시간은 꾸준히 훈련을 한

다는 게 아닌가?

샤를로트는 중간에 수업도 있어서 순수하게 검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은 10시

간 정도가 끝이다. 그런데 이 녀석은 자신보다 3~5시간은 더 훈련한다는 것이

었다.

“···그걸 언제부터 해온 거야?”

“검을 잡기 시작했을 때부터니까···. 10살이 되셨을 때부터요.”

“···그럼 거의 10년 동안 그런 스케줄을 계속해왔다고?”

“네. 맞아요. 그렇죠? 오라버니.”

티그리스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한데···. 리니아 너는 언제부터 내 훈련 시간표를 그렇게 잘 알고 있

었던 거지?”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워낙 어렸을 때부터라 잘 모르겠어요. 헤헤.”

리니아의 말을 들어보니 오늘 입은 속옷 색깔도 알 것 같은 분위기였다. 티그

리스는 자기도 모르게 리니아와 살짝 떨어졌다.

“그럼 오늘은 왜 훈련을 안 한 거야?”

“오늘 제가 수도에 처음 온 거거든요. 티그리스 오라버니가 저를 굉장히 걱정

해주셔서요. 나중에 리만 검술 아카데미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과 도시에 나왔

을 때 당황하지 말라고 알려주신 거예요.”

“그···그렇구나. 둘 사이 굉장히 좋네.”

티그리스는 오늘만 특별히 검술 훈련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녀석이 강한 것

도 자신보다 훨씬 노력을 많이 해서 그런 것이었고.

‘그럼 얘 출근하면 검술 훈련을 할 시간이 부족해지는 거 아니야?’

샤를로트는 이상하게도 안심이 되었다. 티그리스가 교관 생활 때문에 시간이

빼앗기는 사이 자신이 더욱 많이 노력하면 녀석을 추월할 수도 있을 거란 생

각이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추해 보였지만 샤를로트는 쿨하게 인정

하기로 했다.

‘그래. 나 질투 많은 년이야. 그래도 언젠간 이 녀석은 이겨야겠어.’

잿더미만 가득했던 마음에 불이 활활 타올랐다.

샤를로트는 리니아를 보며 밝게 미소를 지었다.

“리니아. 혹시 연극 본 적 있어?”

“네? 아뇨.”

“아~ 빅토리에에 오늘 처음 왔다고 그랬지? 여기 미들타운에 재미있는 연극이

어~엄청 많거든. 둘이 보고 올래?”

샤를로트는 품속에서 지갑을 꺼내 10실버짜리 은화를 꺼냈다.

“아뇨. 이렇게까지 해주실 것까진···.”

“네가 너무 예쁘기도 하고 이렇게 만나서 굉장히 반갑기도 해서 그래. VIP석

이 4~5실버 쯤하니까 이거면 충분할 거야.”

샤를로트는 리니아의 손에 은화를 들려주었다.

“오늘 꼭 봐. 아 혹시 재미있으면 내일도 보고. 모레도 다른 연극을 봐도 좋

아. 알겠지?”

“샤를로트 님···.”

리니아는 샤를로트의 손을 꽉 잡으며 눈을 반짝였다.

“샤를로트 님은 굉장히 좋으신 분이셨네요.”

“님은 무슨. 그냥 언니라고 불러.”

“네! 언니!”

샤를로트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너도 빅토리에에 온 지 얼마 안 됐을 테니까 연극 한 번도 안 봤을 거 아니

야. 그러니까 꼭 봐라. 이 누나가 사는 거니까.”

티그리스는 뭔가 알 수 없는 꺼림칙함에 눈썹을 찌푸렸지만, 리니아가 좋아하

니 그러려니 넘어가기로 했다.

“그럼 난 바빠서 이만. 나 할 일이 있어서.”

샤를로트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리니아는 10실버짜리 은화를 보며 빙긋 웃었다.

“오라버니 오늘 연극 보러 가실래요?”

“···흠.”

원래 저녁에 검술 훈련을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리니아가 저렇게 좋아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야호!”

리니아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아하니 티그리스는 작게 미소가 지

어졌다.

* * *

다음 날 티그리스는 황성으로 향했다.

황성은 노르베르드 장벽을 연상케 할 정도로 높은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황궁의 주변 1km 이내론 장벽보다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다는 법령이 제정되

어 있었기에 장벽 주변은 공원과 산책로로 구성되어 있었다.

장벽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사방 1km 이내로 모든 것이 한눈에 다 보일 것이다.

그 외에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철혈 마법 병단이 상시 관리하는 ‘드래곤의

보주’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한 보호막이 황궁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이처럼 보안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곳인 만큼 아무리 변경백의 후계자인

티그리스라고 하더라도 황궁 내로 검을 들고 갈 수 없었다.

티그리스는 신분패와 함께 검을 황금 기사단에 넘겼다.

“여기 방문객 패찰을 받으십시오. 상시 가슴에 패용하고 다니셔야 합니다.”

티그리스는 방문객 패찰을 가슴에 달았다. 방문객 패찰엔 숫자 3이 크게 그려

져 있었는데, 3등급 보안 등급 내의 건물만 출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2등

급 건물인 국정 회의장이라던가 1등급 건물인 황족들이 사는 봄의 궁전에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알겠네.”

“그럼 출입하십시오.”

티그리스는 입구를 걸었다. 기묘한 기류가 티그리스의 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

낌이 들었다. 아티팩트나 성물, 강철 등을 몰래 숨기고 들어가는 것인지 마지

막으로 확인하는 절차였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탁 트인 평원이 티그리스를 반겼다. 평원은 한겨울임에

도 불구하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제일 앞엔 황국을 세웠던 다섯의 영웅 동상이 웅장하게 서 있었고 그 동상 뒤

로 황금빛 찬란한 건물들이 아름답게 배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제일 뒤로 시선을 옮기니 황성의 상징이자 과거 골드 드래곤의 레어였

던 드라코레퀴엠 산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황성은 신비의 땅이 아님에도 신비 현상이 상시 발동 중인 공간이었다. 그

때문에 사시사철 따스한 봄의 계절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신비 현상은 드라코레퀴엠에서 발하고 있다는 것만 세간에 알려졌고, 정확

히 무슨 이유로 이런 봄이 이어지는 것인지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오직 0등급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황족과 수호기사 그리고 블랙 마이스터만

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티그리스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드라코레퀴엠 산에 봉인 당한

골드 드래곤이 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이유는 단

순했다.

아르펨이 골드 드래곤의 봉인을 풀고 강제로 키메라화시켜 황성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르펨이 골드 드래곤에게 접근하기 전에 골드 드래곤을 죽이던 아니면 신비

의 땅으로 보내버리던 둘 중에 하나를 해야 한다.’

키메라 화한 골드 드래곤의 힘은 티그리스조차 감당할 수 없었다. 그때 철혈

마법 병단이 대규모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할 때까지 티그리스가 버티지 못했

다면 진작에 인류가 멸망했을 것이었다.

잡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황성의 보고(寶庫) 앞에 섰다.

황성의 보고는 총 3개의 층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1층은 3등 보고, 2층은 2등

보고, 마지막 3층은 1등 보고로 구분되어 있었다. 티그리스는 2등 보고 출입

의 권한이 있었기 때문에 2층으로 곧바로 갈 예정이었다.

보고의 정문에 관리자로 보이는 사내 하나가 서 있었다. 사내는 황궁의 예법

대로 정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소식을 듣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보고지기 마테오 데 그람이라고 합니다.”

“반갑네.”

그람 남작 가문은 그랑드리아 남작 가문처럼 대대로 황족을 섬기는 가문이다.

그랑드리아 가문은 황족의 궁녀나 환관을 주로 배출하는 가문이었다면 그람

남작 가문은 본래 보물이나 자금을 관리하는 가문이었다.

“티그리스 님께선 2층에 있는 2등 보고만 출입이 가능하십니다. 혹시 1층에

있는 보물을 원하시거든 말씀해주시면 황제 폐하의 허가 후에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2등 보고만 열람할 계획이니 그럴 필요 없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저를 따라오십시오.”

마테오는 등불 하나를 들고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에 대기 중이던 황금 기사

단원들이 마테오를 보자 문을 열었다.

끼이이-

무거운 문이 열림과 동시에 끈적한 어둠이 눈 앞을 가렸다. 햇빛이 보고의 안

으로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둠은 빛을 먹어 치웠다.

오직 마테오의 등불만이 그 어둠을 몰아냈다.

“제 뒤를 잘 쫓아오십시오. 만약 저를 놓치셨거든 걷지 마시고 가만히 기다리

고 계십시오. 제가 찾아가겠습니다.”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테오의 뒤를 쫓았다. 보고 안쪽은 굉장히 복잡

했다. 마치 미궁처럼 구불구불했으며 양옆으로 눈을 옮겨도 칠흑 같은 어둠만

이 가득할 뿐이었다.

이윽고 계단이 나타났다. 위와 아래로 향하는 계단 중 마테오는 이상하게 아

래로 향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황궁의 보고는 건국의 다섯 영웅 중 8서클의 대마법사 파테가 제작한 특별한

마법 공간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면 올라가고 올라가면 내려가는 특별한 계단 또한 존재한다는

걸 티그리스는 알고 있었다.

이윽고 깊은 계단을 내려가자 마테오는 등불을 벽에 걸었다.

팟-!

천장에 환한 빛이 들어오며 2등 보고의 전경이 눈에 다 들어왔다. 2등 보고엔

없는 것이 없었다. 서적부터 시작해서 완드, 목걸이, 검, 창, 도끼 등 수백

개가 가득했다.

마테오는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혹시 원하시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답은 정해져 있었다.

“검을 보고 싶다.”

“알겠습니다.”

마테오는 티그리스에게 검이 모여 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이쪽은 아티팩트들이고 이쪽은 성물(星物)입니다. 찬찬히 둘러보시고 궁금하

신 점이 있으시다면 저를 부르시거나 제게 가져오시면 답변을 해드리겠습니다.”

“알겠네.”

티그리스는 성물(星物)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아티팩트는 쳐다볼 필요도 없

었다.

성물과 아티팩트의 차이는 간단했다. 아티팩트는 인간이나 드워프와 같은 지

성체가 만든 것이고 성물(星物)은 별들이 만든 것이었다.

아티팩트는 인챈트 마법으로 만들어진 물건으로 반드시 흠이 존재했다. 예를

들어 ‘완전 복구’마법이 걸려있는 검이라고 한다면 검날이 자동으로 세워지고

금이 가더라도 빠르게 복구가 가능하다.

하지만 인챈트도 마법의 종류다. 인챈트 마법에 걸린 보안 마법을 해제할 수

있는 수준 높은 마법사를 만난다면 해당 아티팩트를 고철 덩어리로 만들어 버

릴 수 있었다.

그러나 성물(星物)은 달랐다. 하늘에 고고하게 떠 있는 별들이 서로를 성좌

(星座)로 엮어 이름을 붙인 뒤 특별한 힘을 부여해 만든 물건이었다.

성좌의 힘을 받은 물건들은 마법처럼 특별한 기능이 담겨 있지만, 그 어떤 마

법사도 성물의 힘을 없애거나 추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왜 그런 것인지 명쾌하게 밝혀진 바는 없지만 몇몇 학자들이 예상하기로 성물

은 이 땅의 법칙이 아닌 우주 너머의 법칙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티그리스는 눈앞에 있는 검 하나를 들어봤다. 별들이 만든 검답게 무게중심은

소름 끼치도록 잘 잡혀 있었고 종이를 대면 곧바로 잘릴 정도로 날카로웠다.

티그리스는 검을 구분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대검, 롱소드, 바스타드 소드,

단검 등 검으로 된 것이라면 모두 잘 다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취향은 있었다.

티그리스는 롱소드를 중심으로 찾아다녔다. 검면은 넓지 않고 검은 일직선으

로 곧아야 하며 검신 길이는 티그리스의 팔 길이에서 조금 더 긴 것을 선호했다.

그중 티그리스의 눈을 사로잡는 검이 하나 있었다.

검신이 약간 붉은 것과 손잡이가 도마뱀의 비늘같이 생긴 것을 제외하면 별다

를 것이 없는 롱소드였다.

검신이 붉은 것도 사실 빛을 비춰봐야지 알 수 있을 정도다 보니 겉보기엔 정

말 평범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평범함에 집중했다.

다른 롱소드들은 가드에 휘황찬란한 보석이 열 개씩 박혀 있다거나 검신이 새

까맣거나 폼멜에 기이한 눈알이 박혀 있는 등 자기 주장이 강한 것들이 굉장

히 많았다.

그 검들은 모두 유명하지 않은 별자리가 만든 성물이다.

왜 그런 것인지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나 통계적으로 평범하거나 볼품이 없

어 보이거나 낡아 보이는 것일수록 굉장히 유명한 성좌가 만든 성물이었다.

실제로 노르베르드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드윈의 검도 폼멜에 에메랄드빛 보

석이 박혀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롱소드고, 황실이 보유

하고 있는 대적자의 검의 경우에는 검신이 위로 굽은 대검으로밖에 보이지 않

았다.

그러나 그 보물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마녀잡이 자리’와 ‘용 사냥꾼 자리’의

성좌가 만든 검이었다.

“이 검의 이름이 무엇이지?”

“붉은 도마뱀 자리가 만든 검. 샐러맨더의 검입니다.”

역시 예상했듯이 유명한 별자리의 검이었다.

붉은 도마뱀 자리는 6월을 대표하는 별자리이자 정남 쪽을 가리키는 별자리였다.

22. 레인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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