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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4화 (24/251)

#024화 – 증명(2)

다음 날 티그리스를 비롯한 모든 검술 교관들은 연무장에 모였다.

준비물은 딱히 없었다. 그저 균형이 잘 잡힌 검과 연무장만 있으면 끝이었다.

베드리안은 균형 잡힌 검을 들고 티그리스 앞에 마주 섰다. 베드리안의 눈은

퀭 해 보였다.

‘결국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어.’

베드리안의 고리는 4개로 티그리스와 동급이다. 하지만 어젯밤 거의 밤을 새

우며 티그리스의 심득을 모두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어도···. 모두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2주차까지는 완벽하게 이해했다는 것이었다. 오늘은 1주

차와 2주차를 강의하는 날이었으니 쪽팔릴 일은 없었다.

티그리스는 본 강의를 시작했다.

“내려치기의 이해와 파훼 강의를 맡은 검술 교관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다.

거두절미하고 수업을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다.”

티그리스는 검을 뽑아 들었다. 검신에 은은한 붉은색이 감도는 검.

얼마 전 황실의 2등 보고에서 받아왔다던 성물(星物) 샐러맨더의 검이었다.

티그리스가 검을 뽑은 채 자신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졌다.

“검을 이용한 공격은 총 다섯 가지로 구분된다. 내려치기 올려치기 횡베기 사

선베기 찌르기. 세상의 모든 검식은 이 다섯 개의 범주 안에서 끝이 난다. 그

중 이번 학기에 제군들은 내려치기에 관해 배울 것이다.”

티그리스는 베드리안을 보며 말했다.

“검을 내리쳐보게.”

“···어떻게 말입니까?”

“부모님의 원수를 세로로 양단 낸다는 생각으로.”

베드리안은 잠시 고민하다가 검을 뽑아 들었다.

‘대충 내려치자.’

지금은 교관이 아니라 학생이다. 가까스로 고리 1개를 만든 학생처럼 어설프

게 하면 될 것이었다.

훙-!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하지만 이 정도면 티그리스도 만

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예상과 달리 고개를 저었다.

“다시.”

“······?”

베드리안은 티그리스를 당황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다···다시?”

“제대로 내려치기를 해라. 대충할 생각이라면 이 강의를 나가도 좋다.”

베드리안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자신은 학생 신분이다. 고리가 4개인 교관이

아니라. 그런데 여기서 본심을 다하란 것인가?

“부모님의 원수를 상대로 그런 허접한 검술로 벨 것인가? 그런 검술론 썩은

나무토막도 잘라내지 못할 것이다. 살의와 진심을 담아서 내려쳐라.”

베드리안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뚜둑-!

‘그래 해보자 이거지?’

베드리안은 티그리스가 걸어온 시비를 받아들였다.

베드리안은 검을 들었다. 이번엔 살의를 담아서 검을 내리쳤다.

훙-!

묵직한 검풍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얼마나 강력했는지 연무장 끝에 있는 나

무들이 흔들릴 정도였다. 베드리안의 수준 높은 내려치기에 다른 교관들은 살

짝 놀란 듯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다시.”

“···지금 이게 부족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교관의 눈을 속일 생각하지 마라. 넌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베드리안은 열이 뻗쳤다.

“제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전 최선을 다했습니다.”

“마지막에 넌 오른 엄지발가락에 힘을 풀었지. 그러면서 몸의 균형이 미세하

게 흐트러졌다.”

“그건···!”

“실수라고 할 텐가?”

티그리스의 매서운 눈빛에 베드리안은 소름이 돋았다. 실제로 베드리안은 티

그리스를 시험할 생각으로 몸의 균형을 살짝 틀었다.

“마지막 기회다. 만약 이번에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 퇴출하겠다.”

베드리안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 정도 미세한 차이를 알아낼 수 있을 정도면

무슨 짓을 해도 다 알아차릴 것이 뻔했다.

‘좋아. 해주지.’

베드리안은 이번엔 진심으로 나오기로 했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이 짓거리를 하는 것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으면 내

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강의를 막을 거다.’

베드리안은 티그리스를 노려보며 검을 내질렀다. 묵직한 검풍이 아닌 살을 갈

기갈기 찢어버릴 듯한 날카로운 검풍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티그리스는 날카로운 검풍을 가벼운 횡 긋기 하나만으로 흩어냈다.

“나쁘지 않다.”

베드리안은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이게 나쁘지 않다고?’

이 내려치기는 단순한 내려치기가 아니었다. 베드리안이 20년간 검을 수련하

고 연구했던 모든 것이었다.

“지금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뭐 하자는···”

“다만 양팔에 오러를 집어넣는 타이밍이 조금 아쉽다. 너무 성급했다.”

티그리스는 검을 들었다.

“지금 이게 방금 네가 보여준 내려치기다.”

훙-!

사방으로 날카로운 검풍이 퍼져나갔다. 날카로운 바람 하나가 베드리안의 손

목 보호구를 스치고 지나갔다. 손목 보호구엔 희미한 흠집이 갔다.

‘···미친.’

베드리안은 눈을 의심했다. 방금 전 보여준 티그리스의 내려치기는 자신의 것

과 단 하나의 오차도 없이 똑같았다. 속도, 힘의 배분 그리고 오러를 근육에

집어넣는 타이밍까지 모두 똑같았다.

“내가 가르칠 4종류의 내려치기 중 묵직한 내려치기에 해당하는 검술이다. 오

러를 이용해 근육에 일부러 부하를 주어 검에 실린 힘을 극대화하는 방법이

지. 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이 검술에 대해 한 가지 조언을 해주자면.”

티그리스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디딤발인 왼발에 오러를 집어넣는 타이밍보다 양팔의 근육에 오러를 집어넣

는 타이밍을 미세하게 늦게 집어넣어라. 그렇게 하면···.”

훼에에에엥!

티그리스의 검에서 발한 검풍이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고 회오리치며 감겼다.

그리고 검신을 따라 미끄러지듯이 검끝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모이고 모였

던 한줄기의 바람이 앞으로 쇄도했다.

날카로운 바람 한 줄기가 연무장을 가로질렀다. 바람은 연무장 끝에 있는 굵

은 나뭇가지를 베어냈다.

베드리안은 물론이고 모든 교관은 입을 떡 벌렸다.

“사방으로 흩어지는 검풍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

베드리안은 어이가 없었다. 이 검술은 베드리안이 교관 생활을 하면서 독창적

으로 만든 검술이었다.

일명 폭풍매 검술.

검기 없이 오로지 검의 움직임만으로 날카로운 검풍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검

술이었다.

그러나 아직 미완성인 검술이었다.

검을 내지르면 검풍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하나로 어떻게든 모아보려고 연구했

지만 되지 않았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단번에 그 문제를 해결했다.

“어떻게 이 검술을···.”

“좋은 검술이다. 아직 완벽하지 않지만, 더 연구를 한다면 황궁의 서고에 들

어가도 충분할 정도로 잠재가치가 높은 검술이다.”

“아니 그러니까. 이 검술을 어떻게 배운···”

“배운 것이 아니다. 그냥 한번 보고 따라 한 것이지. 그리고 거기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은 것뿐이다.”

“그러니까 검을 한 번 보면 그냥 따라 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베드리안은 진심으로 존댓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를 정도로 머리가 복잡했다.

“그렇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이 검식을 한 번 보고 따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티그리스는 다른 가문들의 검술을 보는 순간 완전히 카피할 수 있다

는 뜻이었다.

“세상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고, 너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중에 하나를

맞닥뜨린 것뿐이다.”

오만한 말투로 느껴질 만했지만 베드리안을 포함한 모든 교관은 그것을 오만

이라 느끼지 못했다. 심지어 티그리스 자신조차도 오만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티그리스는 오만하지 않았다. 오만이라 말하기엔 그의 재능은 천부

적이었기에. 그 누구도 티그리스를 향해 천재라고 말하지 못할 존재는 없었다.

티그리스는 모두 일어나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교관들을 보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냐고 물어보셨습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지만 전 가능합니다.”

티그리스는 너무나도 당연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사람의 검술을 한 번 보면 그대로 따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이 잘못되었고 어떻게 고치면 될지도 모두 알 수 있습니다.”

티그리스는 베드리안을 보며 말했다.

“그럼 다시 수업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날 티그리스의 강의는 전 교관들에게 만점을 받았다.

* * *

네이션 학과장은 오늘 티그리스의 모의 강의 결과를 바스티얀 학교장님께 보

고드렸다.

바스티얀은 티그리스가 오늘 보여준 말도 안 되는 천재성을 듣곤 고개를 끄덕

였다.

“역시 그랬구먼.”

“···알고 계셨습니까?”

바스티얀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정도 인재가 아니라면 내가 교관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 생각하나? 그리

고 티그리스가 천재라는 사실은 꽤 유명하지 않았나?”

“이 정도 일 줄은 몰랐습니다. 한 번 본 검술을 그대로 따라 할 수 있다니···.”

베드리안이 새로운 검술을 만들고 있다는 것은 모든 교관들이 알고 있었다.

몇몇 교관들에게 시연을 해주면서 무엇이 부족한지 조언을 구하기도 했기 때

문이었다.

그러나 그 조언은 ‘검풍을 하나로 모으게 하는 게 좋지 않겠나?’, ‘검이 너무

느리다.’ 등의 애매모호한 수준의 조언일 뿐이다.

검술을 그대로 따라 하려면 오러의 기동 순서와 검로, 힘의 배분 결정적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검술사의 감각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그것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이해하고 따라 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티그리스는 제국 대학이 품을 인재가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제국 대학의 교관으로 썩기엔 너무 아깝습니다.”

“그럼 티그리스가 무엇을 하면 좋다고 생각하나?”

“저라면 황금 기사단에 들어갔을 겁니다. 황금 기사단에 들어가서 베르강 각

하에게 검을 지도받고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더욱 자신의 검술을 다듬었을 겁

니다. 티그리스는 기사들이라면 모두가 염원하던 9개의 고리를 완성할 수 있

을 겁니다.”

바스티얀은 수염을 만지며 말했다.

“그것이 자네와 티그리스의 차일세. 나와 자네와의 차이기도 하지.”

“···네?”

“자네도 알다시피 티그리스는 젊은 피 토너먼트에서 우승했었네. 황금 기사단

에 들어갈 수 있었다는 거지. 그런데도 왜 제국 대학을 선택했겠나?”

“···잘 모르겠습니다. 바스티얀 교장님께선 알고 계십니까?”

“나도 모르네.”

네이션은 순간 벙쪘다.

“네···? 그게 무슨···.”

“그러나 한 가지 알고 있는 것은 있네. 천재라면 아니지···. 7개의 고리나 7

개의 서클을 완성할 수 있는 자라면 남들이 다 정해진 길을 걸을 때 홀로 다

른 길을 걷네. 그들은 자신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 물

론 나를 포함해서 말이야.”

바스티얀은 현자라고 불리기 전에 ‘가짜 소환 마법사’라고 불렸다.

바스티얀은 화염 마법과 아티팩트 제작으로 유명했지만, 식물이나 동물을 키

우거나 구경하는 것을 더욱 좋아했다. 어느 정도냐면 자신의 재능이 무엇인지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과 식물 연구에 더 시간을 할애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결국 7서클 대마법사가 되었다. 동물과 식물 그리고 몬스터에 대

해 모르는 바가 없다고 하여 ‘현자’라는 칭호까지 받게 되었다.

그럼 베르강은 어떻던가? 베르강은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여행하는 것을 좋아

했다. 제국 대학을 다닐 당시에 출석수를 채우지 못해 유급을 무려 두 번이나

했을 정도로 여행을 좋아했다.

그러나 결국 베르강은 고리 7개를 완성시켰다.

범인들은 베르강과 바스티얀을 보면서 개탄한다.

어떻게 저런 사람들이 소드 마스터가 되고 대마법사가 되는지.

노력은 자신들이 더 많이 했는데 왜 하늘은 저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시는 것인지.

그들은 모르고 하는 이야기다. 노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르강과 바스티얀은 검

술과 마법 공부를 하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자신의 길을 잘 걷고 있는 걸세. 그러니 그의 걸음을 이해하려

들지 말게.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자신이 천재인 줄 아는 천재이니까.”

“···그럼 앞으로 티그리스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티그리스는 본 강의를

제외하고 다른 강의의 보조 교관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안 그러면 8학점을 채

울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다른 교관들은 모두 티그리스를 꺼리고 있습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였다.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티그리스와 자신을 비교하지 않

을까 하는 걱정을 하는 교관들도 있었고, 티그리스의 재능이 부담스럽다며 보

조 교관으로 받을 수 없다고 말하는 교관들도 있었다.

심지어 티그리스가 자신들이 연구하고 있는 검술을 베껴갈까 봐 걱정하는 교

관들도 있었다.

“흠···.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도록 하지. 다른 교관들이 부담스러워 하는 데

티그리스를 강제로 보조 교관으로 삼을 수 없으니 말일세.”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조심히 살펴 가게.”

네이션이 나가고 바스티얀은 의자를 등에 기대고 앉았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는 건가.”

티그리스는 3개의 고리를 가지고 있었을 때 검기를 방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바스티얀은 티그리스의 재능이 검술보단 오러 운용술에 더 치중된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티그리스는 검술과 오러 운용술 두 개 다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걸 숨겨 달라고 한 것일까?’

썩은 나뭇가지로 검기를 날려 바위를 베는 모습을 보여준 뒤, 침묵하기를 부

탁했다. 티그리스가 어마어마한 경지에 올라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충 감만 잡고 있을 뿐 수학처럼 명쾌하게 떨어지지 않았다.

바스티얀은 자꾸 시선이 수정구로 향했다. 베르강에게 티그리스가 보여준 경

지에 대해 물어보면 속 시원하게 답변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침묵하

기로 맹세했으니 물어볼 수도 없다.

“이거 참 궁금해 죽겠군···.”

바스티얀의 탄식 어린 한숨이 메아리쳤다.

마법사에게 호기심을 참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25. 라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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