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27화 (27/251)

#027화 – 테스트

사내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역시 그랬군. 용잡이의 후손이었나.”

벨프 가문은 용을 사냥한 가문으로 유명했다. 벨프 가문의 손에 죽었던 용은

서쪽의 용이라 불리는 ‘그란티스’.

그란티스를 잡은 공로를 인정받아 백작으로 올라섰으며, 황국의 서쪽을 지배

하는 왕처럼 군림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명예와 영광은 용이 사라진 이후 점차 쥐가 치즈를 갉아먹는

것처럼 사라지기 시작하더니, 벨프 가문이 혈귀 사태로 멸망하자 그 어떤 가

문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

“벨프 가문은 대검술 뿐만이 아니라 바스타드 소드를 이용한 검술이 따로 있

는 것으로 아는데, 굳이 대검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이 검의 전 주인이 그럼···.”

“거기까지 해주세요.”

더 이상 자신에게 깊게 들어오지 말라는 소리였다.

“알겠네. 일단 이 검은 고쳐주지.”

“그럼 대금은···.”

“9실버.”

리니아는 티그리스가 건넨 수표를 꺼내서 사내에게 건넸다.

사내는 수표에 사인된 티그리스의 서명과 가문 인장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노르베르드 가문의 티그리스라. 이 사람과 친분이 있나?”

“제국 대학의 교관이십니다.”

“흠···.”

사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수표를 다시 돌려주었다.

“이렇게 하지. 대검은 무료로 고쳐주겠네.”

“···네? 왜죠?”

“대신 티그리스 교관을 한 번 이곳에 데려와 주게.”

“이 대장간을 소개해달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개인적으로 그 자에게 궁금한 게 있어서 말일세.”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티그리스 교관님이 이곳에 단 한 번도 오신 적이 없습니까?”

“그렇네만?”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티그리스 교관님이 추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티그리

스 교관님이 이곳을 잘 알고 있어서 추천해주신 줄 알았습니다.”

“허···. 허허허···.”

사내는 재밌다는 듯이 크게 웃었다.

“이미 나도 알고 있었던 건가?”

“네?”

“아니네. 그만 가게. 대검은 모레까지 고쳐줄 테니 가도 좋네.”

“그럼 대금은···.”

“필요 없네. 그저 자주 이곳을 애용해주게. 보아하니 자네는 이곳에 많이 올

것 같군.”

아이린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럴 순 없습니다.”

“안 받겠다니까?”

“전 드리겠습니다.”

“아니. 좀···!”

아이린은 수표를 대검 위에 올려놓았다.

“잔돈은 안 받겠습니다. 대신 남은 돈으로 그 대검에 맞는 검집을 하나 만들

어주시죠. 저는 이만···.”

아이린은 대장간을 나갔다.

사내는 황급히 나가는 아이린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거참···. 드워프보다 더 고집이 센 아가씨구먼.”

“그럼 안 받으면 되잖아요. 땅딸보 아저씨.”

사내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천장에는 고양이 귀의 여인이

대들보에 앉아서 발을 붕붕 젖고 있었다.

여인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헤실헤실 웃고 있었다.

“저 아이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니까. 상처가 많은 아이잖나.”

“그래도 나였으면 줬어요. 힘들게 사는 거 뻔히 아는데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받아요.”

“저 아이의 재능으로 봐선 돈은 얼마든지 벌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는

평생 가는 법이다. 저건 내가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종류의 상처다.”

“아저씨도 사람하고 부대끼다 보니까 참 인간다워진 것 같네요. 물론 좋은 의

미로요.”

“헛소리 집어치워라. 소라.”

소라는 대들보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소음은 전혀 없었다.

“뭐, 그건 됐고 이거 비상사태 아니에요? 티그리스 그 녀석이 아저씨 정체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도대체 어떤 루트로 나를 알게 된 건지 알 수 없군. 장로의 주술은 완벽할

텐데.”

“딱 봐도 그 키 아니에요? 암만 봐도 아저씨 같은 난장이는 인간들 사이에서

드무니까요.”

“말장난할 거면 닥쳐라 소라.”

“넵. 땅딸보 아저씨.”

사내가 망치를 집어 들고 소라를 향해 던지려고 하자 소라는 꺅! 소리를 지르

며 다시 대들보 위로 올라갔다.

“아저씨. 그러면 제가 티그리스 뒤를 캐볼까요?”

“아서라. 그러다가 들키면 큰일이 날 수 있으니. 아무리 봐도 녀석은 그냥 4

성 기사가 아니니까.”

“아니 그게 아니라. 아저씨처럼 땀 냄새 나는 드워프보다 티그리스처럼 잘생

긴 사람 구경하는 게 경호하는 재미가 있어서 그래요. 그 사람은 보기만 해도

얼굴이 재미있으··· 꺄아악!”

사내는 결국 망치를 집어 던졌다.

* * *

땅거미가 지는 어스름한 저녁.

레미올라 연무장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테스트로 수강인원을 자르는 건 진짜 오랜만이네.”

“하긴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리면 테스트로 뽑을만하지.”

테스트로 수강인원을 뽑는 일은 흔하지 않지만, 종종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검술학 과목인데 종이와 펜을 지참하라고 한 거지? 설마 필기시험이

있나?”

“검술에 무슨 필기시험이 있어.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겠지. 뭐 ‘펜촉으로 종

이를 잘라라!’ 이런 종류의 시험이 아닐까?”

해가 완전히 지자 가로등이 켜지며 연병장을 환하게 밝혔다. 그리고 티그리스

가 단상 위로 나타났다.

“···저 사람은 얼굴에서 후광이 비치냐.”

“가로등 때문이잖아 등신아.”

“아, 그렇구나.”

티그리스는 학생들을 둘러봤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 사이에서 아이린, 샤를

로트 그리고 라칸을 바로 찾아냈다.

아이린은 덤덤한 표정으로 티그리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대검은 전에 준 대

금으로 완벽하게 고친 듯 모양새가 깔끔했다.

그리고 샤를로트는 언제나 그렇듯 불만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으며, 라

칸은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당당하게 티그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있을 사람은 다 있군.’

티그리스는 곧바로 테스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공고문에 나왔던 대로 테스트를 시작하겠다. 전원 연무장 가운데를 비우도록.”

티그리스의 말에 학생들은 일단 연무장 가운데를 비웠다. 하늘 위에서 쳐다본

다면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처럼 보일 것이었다.

티그리스는 그 가운데로 들어가 검을 뽑았다.

“난 아무나 사람을 뽑지 않는다. 오직 내 강의를 따라올 의지가 있고 재능이

있는 사람만을 뽑아 가르칠 것이다.”

티그리스의 말에 마력이 담겨 있어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도 다 들을

수 있었다.

“그 기준은 간단하다. 나는 지금부터 검을 총 15분 동안 내리치기를 반복할

것이다. 내 내려치기를 보고 가져온 종이와 펜으로 감상문을 남기면 된다.”

감상문을 남기라는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감상문의 방식은 자유다. 그림으로 표현해도 좋고 글로 표현해도 좋다. 내가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악필만 아니면 된다.”

“교관님!”

그때 한 학생이 손을 들었다.

“말하게.”

“이게 무슨 인문학 강의도 아니고 감상문을 쓰시라고 하시는 겁니까? 이해를

돕게 더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티그리스는 백번의 말보다 한 번 보여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자네 이름이 뭐지?”

“리마르 폰 케른이라고 합니다.”

“마침 검을 갖고 있으니 아무 검술을 사용해보게.”

리마르는 살짝 당황했지만, 희대의 천재라고 불리는 티그리스에게 자신의 검

술을 시연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 않다는 것을 알았기에 거침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리마르는 숨을 내쉬고 검을 한 번 내질렀다.

웅-!

이어서 다시 올려 치려고 하자 티그리스는 중단시켰다.

“되었다. 멈춰라.”

“아··· 예.”

“만약 네 검술에 대한 감상을 쓴다면 이렇게 쓸 것이다. 단순한 내려치기로

보이지만 디딤발의 축이 왼쪽으로 틀어지는 것으로 보아 이어지는 연속동작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연속동작은 올려치기와 아래에서 위로 찌르기, 마지

막으로 파고들기 총 세 개의 파생 동작으로 나뉠 것이며 이에 대한 대처법으

로는 앞에 두 가지는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공격임으로 옆으로 피한 뒤 횡베

기로 반격을 할 것이다. 하지만 파고들기의 경우에는 검의 위치가 보이지 않

음으로 검로를 끝까지 보다가 막아낸 뒤 심리전을 걸 것이다. 그리고 오러의

유동으로 보아···”

티그리스는 장장 3분에 걸쳐 리마의 내려치기를 분석, 감상, 평가, 파훼까지

했다.

리마르는 너무 놀라서 검을 떨어뜨렸다. 티그리스는 지금 케른 류 검술 제1식

‘강물 모으기’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케른 류 검술은 처음엔 약하지만 검을 더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검에 힘과 속

력이 더해지는 검술이었다. 제1식 강물 모으기는 그런 케른 류 검술의 시작을

알리는 검식이었다.

티그리스는 강물 모으기의 오러의 기동과 힘의 배분까지 모두 파악했지만, 그

건 가문의 비전을 알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기에 말하지 않았다.

“방금 내가 리마르의 내려치기를 파악한 것처럼 너희들도 내 내려치기를 보고

감상을 쓰면 된다. 제출 기한은 내일 점심시간 전까지다. 이해했나?”

학생들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시작하겠다.”

티그리스는 검을 내리쳤다.

훙-!

묵직하고 거센 바람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단순한 검풍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센 바람이라 몇몇 학생들은 종이를 놓치고 말았다.

학생들이 당황할 때, 티그리스는 다시 검을 내리쳤다.

--!

이번엔 검에서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검을 내리쳤는지조차 알 수 없

을 정도로 너무 고요했다.

또다시 검을 내리쳤다

이번엔 검이 빨라졌다가 느려졌다.

마지막으로 검을 내리치다 말고 바로 옆으로 꺾어 횡으로 그었다.

티그리스는 이 네 종류의 내려치기를 반복했다.

묵직한 내려치기.

소리 없는 내려치기.

속도에 변화가 있는 내려치기.

검로에 변화가 있는 내려치기.

몇몇 학생들은 무언가 보이는지 종이에 적기 시작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네 종류의 검술에 변화가 있다는 것만 알아채곤 그 외엔 아무것도 적을 수 없

었다.

반면 처음부터 아무것도 적지 않는 쪽은 오직 샤를로트와 아이린뿐이었다.

아이린과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검술을 단 한 번도 놓치지 않겠다는 생각으

로 눈에 계속 담았다.

둘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게 한 사람이 선보일 수 있는 검술인가?’

보통 사람에겐 습관이 있다. 주로 사용하는 손이 다르듯이 오러를 움직일 때

주로 사용하는 마력 회로도 다르고, 주로 사용하는 근육도 다르며, 호흡의 패

턴도 다르다. 그러나 티그리스에겐 그런 습관이 보이지 않았다.

검식이 바뀔 때마다 마치 전혀 다른 네 사람이 검을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샤를로트는 입술을 씹었다.

‘저걸 어떻게 이기지?’

일정 영역에 오르면 오러의 개수나 근력과 순발력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인

간의 육체엔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결국 비등비

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패는 반드시 갈린다.

승패를 가르는 주요한 요인은 두 가지다. 검술의 상성과 심리전이다.

검술의 상성은 기사가 검술을 배울 때부터 생기는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심

리전은 다르다.

상성 상 불리한 검술이라고 할지라도 심리전만 잘 건다면 승리할 수 있다.

그리고 심리전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 것이 바로 습관이다. 그 말은 상대방

의 습관을 파악하여 먼저 파훼하는 쪽이 승리를 거머쥔다는 것이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그런 습관 자체가 없으니 심리전을 걸 수도 파훼할 수도

없었다.

티그리스가 약속한 15분이 지났다. 티그리스는 검을 집어넣었다.

학생들은 탄식했다. 대단한 검식을 사용하는 것이 분명했는데 모두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내일 점심 전까지 제출하도록.”

* * *

티그리스는 학생들이 제출한 테스트지를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었다. 형식은

자유였지만 대부분이 글이었다.

“···어렵군.”

합격자를 고르는 것은 굉장히 쉬웠다. 티그리스 마음에 딱 들어맞게 쓴 사람

은 총 세 명.

샤를로트, 아이린 그리고 에이든 셋이었다.

<샤를로트 드 프리하르덴>

총 네 가지의 내려치기로 구분될 수 있다.

처음으로 보여준 묵직한 내려치기는 오러를 이용하여 근육에 저항감을 일부러

줌으로써 근력에 더욱 치중된 내려치기다. 검풍이 심각하게 부는 이유는 오러

운용술의 기본 중 하나인 ‘발산’ 때문이며 발산의 힘을 검에 담음으로써···

샤를로트의 필체는 귀족답게 굉장히 유려했다. 내용도 기승전결이 잘 맞아떨

어졌고 읽기가 굉장히 편했다.

그 무엇보다 자신이 본 내용을 정확하게 글로 설명할 수 있다는 점이 훌륭했다.

보통 기사들이 검술을 가르칠 때, ‘거목을 가르는 느낌’이라거나 ‘바람을 타

는 느낌’이라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설명한다.

그게 틀렸다는 소리가 아니다. 샤를로트나 아이린 같은 인재는 그렇게 설명하

는 것이 오히려 더 빠르게 익힐 수 있다.

하지만 평범한 기사들에겐 그런 시적인 감각을 들먹여봤자 의미가 없었다. 그

들은 천재들이 느끼는 그 감각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러나 샤를로트는 티그리스가 사용한 네 종류의 내려치기를 구체적이고 분석

적으로 잘 설명했다.

샤를로트는 100점 만점 중 100점이었다.

다음은 아이린이다.

아이린은 글보단 그림으로 설명을 많이 했다. 인체 구조도를 그려 내려치기를

할 때 어느 부분에 오러가 집중되었으며 어느 근육이 사용되었는지 알기 쉽게

표현했다. 이런 그림으로 설명한 것은 아이린이 아직 정확한 검술 용어를 모

르기 때문이었다.

‘아직 19살이기도 하고 아카데미도 나오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아이린은 가정 형편 때문에 홀로 검술을 배웠다. 벨프 가문은 혈귀 사건이 일

어난 후 완전히 몰락해버렸기 때문에 검술을 그 누구에게도 지도받지 못했다.

그러나 그림으로 굉장히 잘 설명했기 때문에 그녀는 90점이었다.

마지막으로 에이든은 샤를로트보다 본 것이 좀 적었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있

는 듯했다.

그래서 샤를로트와 티그리스와 결투를 할 때 입회인을 선 모양이었다.

각설하고 검술의 구조보단 이후 파생되는 동작에 집중했다. 샤를로트와 아이

린은 분석가라고 한다면 에이든은 전략가 같은 느낌이었다.

에이든은 티그리스의 검술을 어디에서 쓰면 좋을지 자세히 적어두었다.

그는 100점 만점 중 80점이었다.

이젠 불합격자들 사이에서 이제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을 고르는 작업이 남았

다. 티그리스는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점수를 매겨놨기 때문에 점수가 높은 사

람들부터 차례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라칸은 역시 불합격했군.’

라칸의 총점은 0점이다.

검술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눈먼 장님이 쓰는 것이 훨

씬 나을 정도로 악필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수준 높은 검술을 펼칠 수 있던 것이지?’

라칸은 정말로 이상한 녀석이었다.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 같지도 않고 여자

들한테 고백하다 차이는 이상한 녀석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급격하게 성장

했다.

그가 펼치는 검술은 기계처럼 딱딱했지만 틀리지 않았고, 마법 캐스팅 하나는

대마법사도 이기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김유신, 상태창, 시스템···. 이 세 개가 녀석의 성장 비결인 게 분명하다.’

똑-똑-

그때 티그리스의 집무실 문을 누군가 두들겼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부르셔서 찾아왔습니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내는 라칸이었다.

티그리스는 집무실에 있는 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의자를 끌고 와 내 앞에 앉게.”

“네.”

라칸은 당당하게 의자를 끌고 티그리스의 앞에 앉았다. 마치 뭔가를 믿는 구

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자신감이 넘쳤다.

티그리스는 이 시절의 라칸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라칸은 티그리스의 눈에 들지 못할 정도로 수준이 형편없었으니까.

그냥 평민임에도 불구하고 왕처럼 사는 녀석이라고만 기억했다.

그런 라칸이 변한 때는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지만 1학년 기말시험이 끝나고

난 직후로 알고 있었다.

‘가만보니 황도 대학살 사건 이후였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 라칸은 티그리스가 아는 신중하고 까칠한 녀석으로 바뀌게 되었다.

“혹시 무슨 일 때문에 부르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티그리스는 우선 라칸의 몸을 스캔했다.

근육도 제대로 성장되어 있지 않고 손에는 굳은살도 없었으며 목이 굽고 허리

도 살짝 굽어 있었다. 검사의 몸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부족했다.

이런 몸으로 7년 만에 6개의 오러 고리와 6개의 서클을 완성 시켰다는 것은

전혀 말이 되지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네. 말씀하십시오.”

“김유신, 상태창, 시스템이 뭐지?”

자신만만하던 라칸의 표정이 처음으로 깨졌다. 마치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멈춘

사람처럼 얼굴도 새하얘졌다.

라칸은 손을 파르르 떨며 외쳤다.

“너도 설마 지구에서 온 거냐?!”

28.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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