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37화 (37/251)

#037화 – 작전(1)

다음 날.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오랜만에 외출을 나갔다.

전에 약속했던 연극을 보기 위해서였다.

“큼! 그럼 나도 가볼까?!”

로건이 사람 좋게 웃으며 자연스럽게 끼어들려고 하자 샤를로트는 얼굴을 와

락 구기며 말했다.

“아빠가 왜 따라와!”

“아니 딸이랑 같이 연극을 안 본 지 오래돼서 말이야. 이 아빠도 같이 따라가

면 안 되겠니?”

“안돼! 절대 안 돼! 그리고 지금 점심이 다 지났는데 왜 돌아가지 않는 거야!

일 안 바빠?”

“아침 먹으면서 얘기했잖니. 내일 아침에 출발하겠다고.”

“어휴 머리야···!”

그때,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샤를로트.”

“왜!······요. 교관님도 따라오려고요? 교관님은 괜찮···”

“얼마 전에 얻은 뮤지컬 티켓이다. 받거라.”

“···엥?”

티그리스가 건넨 것은 ‘거지 백작과 부자 시종’을 썼던 극작가의 차기작인

‘사랑은 다리 위에서 만나’였다.

7월까지 예약이 꽉 찬 탓에 구하기 굉장히 힘든 티켓이었다.

“게다가 VVIP석이라니···. 이걸 어떻게 얻은 거예요?”

“노르베르드 가문은 그 뮤지컬이 열리는 황금의 전당의 최고 후원 가문이다.

덕분에 표를 쉽게 얻을 수 있었지. 나는 일이 있어서 보지 못하니 너희들이

보도록 해라.”

티그리스가 건넨 표는 총 네 장이었다.

“잠시만 우린 셋이라 그럼 하나가 남는데···.”

로건은 씨익 웃었다.

“그럼 내가 가면 되겠군!”

“···이거 솔직히 말해봐요. 둘이 짜고 친 거죠.”

샤를로트는 골치 아픈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뭐···. 어쩔 수 없네. 대신 아빠 또 저번처럼 재미없다고 졸면 나 화낼 거야.”

“암! 절대 안 자마.”

“그럼 빨리 따라와. 우리 남는 시간 동안 쇼핑하기로 했으니까 나 옷 좀 사줘.”

로건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티그리스에게 전음을 보냈다.

[고맙네.]

티그리스가 표를 구한 것은 로건 때문이 아니었다.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를 지킬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이 만약 티그리스가 예상치 못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적어도 세

사람은 로건이 지켜줄 테니까.

“그럼 나중에 보겠네.”

“예.”

로건과 네 사람은 집을 나섰다.

잠시 후 티그리스는 경갑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왔다.

“레니.”

“예. 티그리스 님.”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집에 가만히 남아 있도록 하거라. 알겠나?”

레니는 심상치 않은 티그리스의 말에 곧바로 대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제인은 만약 무슨 일이 터지면 내게 바로 보고해라.”

제인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말했다.

“···오늘 무슨 일 있는 거지? 그 뮤지컬 티켓 어제 저녁에 급하게 베이튼이

구해온 거잖아.”

“이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별일이 없을 거다. 그러니 문단속을 잘하도록.”

“알겠어. 내가 명색이 수호령인데 그것 하나 못 할까 봐?”

티그리스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저녁은 먹지 않을 테니 준비하지 말 거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레니는 불안한지 손을 두 손을 꼭 잡았다.

“···무슨 일없으시겠지?”

* * *

작전명 ‘두더지 몰이사냥’은 적을 기만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황제 폐하께서 시찰하시는 길목이다! 꼼꼼하게 살펴라!”

황금 기사단은 물론이고 철혈 마법 병단은 번지르르한 복장을 갖춰 입고 대로

변을 점검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

-못 들었어? 황제 폐하께서 이번 실종 사건 관련해서 직접 시찰하시겠다고 나

섰더구먼.

-황제 폐하께서 이 더러운 곳을?

-귀족들이랑 기사들이 몇 명 죽어나니까 황제 폐하도 눈치가 보이시나 보지.

내가 정보 길드에서 들은 얘기가 있는데 사실 일주일 전부터 인퀴지터들이 이

곳 주변을 싹 훑었다더군.

-그런데 황제 폐하가 여기 와서 뭘 하시겠다고?

-뭐, 정치적인 이유 아니겠어?

황금 기사단과 철혈 마법 병단 수백 명이 쫙 깔려서 구석구석을 뒤지고 다니

니 사람들은 대로변으로 다니지도 못했다.

심지어 마차도 통제했기 때문에 대로변이 일시적으로 교통 마비가 올 정도였다.

그 사이 철혈 마법 병단 인원 중 몇 명은 은밀하게 맨홀 뚜껑에 마법을 부여

했다.

인퀴지터의 수장인 ‘히드라’가 특별 제작한 고정 마법이었다.

실험해본 결과 5성 기사도 맨홀을 열지 못할 정도였으니, 키메라들이 강제로

열려다간 손톱이고 뼈고 모조리 박살이 날 것이다.

아침 댓바람부터 이 난리다 보니 키메라 연구실도 반응했다.

“이게 밖에 지금 무슨 난리지?”

연구실장의 말에 연구원은 재빨리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보고드린 적 있지 않습니까? 황제가 이번 실종 사건과 관련해서

내일 이 인근을 시찰한다고 합니다.”

“설마 하수구까지 점검하는 건 아니지?”

“하수구로 들어오진 않았습니다. 입수한 작전 계획서를 보니 주변 건물과 대

로변만을 대상으로 조사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연구실장은 펜을 질근질근 씹으며 말했다.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최근 인퀴지터들도 이 주변을 어슬렁거렸다면서.”

“그건 실종 사건 수사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흠···.”

연구실장은 품속에서 통신 구슬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이 키메라 실험실의 최

고 후원자 슈비츠와 직통으로 연결된 통신 구슬이었다.

“슈비츠 님께 보고드릴 생각이십니까···?”

연구실장은 고민했다. 지금 보고하면 슈비츠 님이 이곳에 바로 오실 수 있었다.

‘···그러면 난 죽은 목숨이다.’

최근 실험체를 구하지 못하는 통에 실험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렇다 보니 ‘뿔의 기사’의 연구는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

연구실장은 품속에 통신 구슬을 집어넣었다.

“아니. 일단 지켜본다. 키메라들이 하수구로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제

대로 통제해.”

“알겠습니다. 아, 그나저나 ‘그 녀석’은 어떻게 할까요?”

그 녀석이란 말에 연구실장은 잠시 고민했다.

그 녀석은 전대 연구실장으로 슈비츠의 눈 밖에 났다가 괴물이 되어버린 놈이

었다.

키메라들은 연구원들이 통제할 수 있었지만, 그 녀석은 달랐다.

녀석은 슈비츠가 지시한 명령만 따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녀석은 어디에 있지?”

“하수구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젠장.”

슈비츠가 떠나기 전 그 녀석에게 하수구를 수색하라고 지시해두었기 때문에

홀로 하수구를 떠돌고 있는 것이었다.

“일단 놔둬.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괜히 하수구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상 큰

문제가 될 게 없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만약이라는 것이 있으니 실험은 중단하고 미리 텔레포트 스크롤과 연

구 자료들을 정리해두도록.”

“예. 알겠습니다.”

* * *

이미 실험실의 위치가 발각된 이상 승리는 기정사실이었다.

키메라들의 숫자가 많고 뿔의 기사들이 강력해도 황금 기사단과 블랙 마이스

터 베르강, 철혈 마법 병단, 인퀴지터와 그들의 수장 코드네임 히드라가 작전

에 투입되는데 패배란 있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단 하나였다.

얼마나 피해를 적게 보느냐다.

피를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작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피가 죽음을 각오한 기사와 마법사들의 피냐, 민간인들의 피냐가 중요했다.

“준비 완료했습니다.”

연락장교의 말에 베르강은 전음을 보냈다.

[모두 전투 준비.]

황금 기사단은 칼을 뽑았다.

총원 381명이 검을 동시에 뽑았지만, 옷 스치는 소리만 날 뿐 검이 뽑히는 날

카로운 소리는 일절 들리지 않았다.

여기에 모인 이들은 모두 고리 4개 이상 갖고 있는 최정예 기사들이었다.

뒤이어 철혈 마법 병단도 완드를 꺼내 들었다. 철혈 마법 병단은 작게 중얼거

리며 각자 준비한 마법을 완드에 심기 시작했다.

검은색이었던 완드는 피처럼 붉은색으로 물들며, 마치 시위가 당겨진 화살처

럼 술사의 명령을 기다렸다.

베르강은 회중시계를 확인했다.

작전 실행시간 10초 전이었다.

[전원 위치로.]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발 빠르게 자신이 맡은 하수구로 향했다. 오물을 토해내

고 있는 27, 29, 35번 하수구에 자리한 기사들은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베르강은 29번 하수로 앞에 섰다.

작전 실행시간 3초 전.

[전원 마스크 착용.]

모두 산소마스크를 동시에 착용했다.

베르강은 우렁찬 목소리로 답했다.

“진입!”

촹-!

제일 앞에 서 있던 두 기사가 검기를 만들어 하수구를 막고 있는 철창을 잘라

냈다.

그리고 그들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진입했다. 오물이 발목까지 차 들어와

양말을 적셔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진했다.

하수구 입구에 배치된 알람 마법이 작동했다.

웨에에에에엥-!

하수로 전 구역을 울리는 경고음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다만 전진할 뿐이었다.

-키에에에에!

숫자를 알 수 없는 키메라들의 발소리와 고함이 하수구에 울려 퍼졌다. 하수

구는 비좁고 어두웠기에 얼마나 멀리서 달려오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갈림길을 만났다.

작전대로 절반씩 나뉘어 진입했다.

갈림길을 만나면 절반으로 갈라졌고, 또다시 갈림길을 만나면 갈라졌다.

뒤를 지켜줄 동료의 숫자가 줄어든다는 공포심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지만,

황제를 향한 충성심과 사람들을 지키겠다는 굳센 신념 앞에 산산이 조각나 사

라졌다.

이윽고 베르강은 키메라와 마주쳤다.

샤벨 타이거, 고블린, 괴물 두더지 등 온갖 것들이 뒤섞여 같은 형체를 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마지 지옥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끔찍한 모양새에도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눈

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선봉에 선 베르강은 검에 오러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검에 얇은 암청색 오러가 덧씌워졌다. 오러는 불꽃처럼 일렁이지 않았

고, 마치 강철처럼 단단했다.

검에 심상을 담는 자가 얻을 수 있다는 검강이었다.

키메라들은 돌진하다가 넘어졌다. 생존 욕구가 거세되었지만 베르강의 농축된

살기에 키메라들의 근육이 뒤틀린 것이었다.

뒤에서 따라오던 키메라들과 몸이 뒤엉켜 벽이 되어버렸다.

가장 밑에 깔린 놈 중에는 압사당해 죽어버리는 녀석들도 있었다.

-케에에에에! 케에에엑!

베르강은 검을 땅과 수평이 되게 세우고 머리 위로 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태풍이 수시로 몰아치는 폭풍의 절벽을 떠올렸다.

태풍엔 물의 마나가 가득 담겨 있어 태풍의 눈 한가운데로 물방울이 모여들었

다. 그 물방울들은 볼록 렌즈의 역할을 하며 빛을 한 점으로 모았고, 그 빛은

마주치는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어버렸다.

베르강은 그 압도적이고 폭력적인 자연재해 속에서 공포 대신 검을 읽었다.

베르강의 심상은 ‘자연’

베르강은 자신이 보고 이해한 자연 현상을 검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경지에 이

른 소드 마스터였다.

베르강은 차갑고 어두운 태풍 속에서 모든 것을 분쇄하는 빛을 떠올리며 검을

찔러넣었다.

검에서 발한 직선의 빛이 키메라들의 육체를 불태웠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비명은 없었다. 모두 빛의 울음에 그저 집어 삼켜질

뿐이었다.

드래곤의 브레스라 불려도 될 정도의 놀라운 기적에 뒤를 따라오던 기사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후끈하게 달아오른 열기에 온갖 독성 물질들이 기화되었지만, 미리 착용하고

있던 마스크에 모조리 걸러졌다.

베르강은 붉게 달아오른 검신을 한번 휘저으며 말했다.

“전진한다.”

뻥 뚫린 대하수로.

베르강은 선봉에 섰고 다만 전진할 것을 명했다.

황도의 쓰레기들이 모조리 사라질 때까지.

* * *

연구실은 난리가 났다. 갑자기 하수구의 입구로 수백의 기사들이 진입을 시도

한 것이었다.

“이런 개 같은!”

연구실장은 재빨리 연구 자료들을 챙겼다.

“실장님! 기사들의 전진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그걸 보고라고 하고 있냐! 이 새끼야?! 당연히 잔뜩 준비하고 왔을 테니 빠

르겠지! 그따위 보고할 시간에 빨리 실험체들 정리하고 연구 자료 챙겨!”

연구실장은 입술을 피나도록 씹었다.

분명 수도국은 물론이고 경찰청 심지어 황궁의 환관들까지도 뇌물을 줬건만,

아무도 이곳을 쳐들어온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

통신구를 통해 물어봐도 자기는 몰랐다고 반복할 뿐이었다.

“실장님! 연구 자료를 모두 모았습니다!”

그나마 좀 전에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탈출 준비를 해놨던 게 다행이었다.

“탈출한다. 모두 텔레포트 스크롤 꺼내!”

실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꺼냈다. 한 장당 무려 10골드나

하는 물건이었지만 목숨보단 비싸지 않았다.

주우우욱-!

실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텔레포트 스크롤을 찢었다.

스크롤에서 빛이 반짝이더니 그대로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그러나 텔레포트가 작동되지 않았다.

“···어? 이게 무슨···.”

연구실장은 여분의 스크롤을 찢었지만, 똑같이 잠깐 반짝일 뿐이었다.

“당했다···!”

황국이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었다. 텔레포트 스크롤이 작동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 근방에 안티 스크롤 마법이 흩뿌려져 있는 모양이었다.

연구실장과 연구원들이 패닉에 빠져 있을 때, 연구실 문이 벌컥 열렸다.

“너···너는!”

피와 오물로 더럽혀진 하얀 가운을 입은 사내가 좀비처럼 비틀거리며 연구실

장에게 다가왔다.

전대 연구실장이자 슈비츠가 만든 괴물이었다.

괴물은 피부 대신 왕도마뱀의 골편처럼 하얗고 작은 뿔 수백 만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고, 머리에는 소뿔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뿔 두 개가 하늘 높이 치솟

아있었다.

연구실장을 비롯한 연구원들은 그 괴물이 천천히 자신들의 앞에 올 때까지 움

직이지 못했다. 그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사이한 기운에 몸이 얼어붙은 것이다.

괴물은 입을 열었다.

-무···문제가 생겼다···?

연구실장은 물론이고 다른 연구원들도 당황했다. 저 정체 모를 괴물은 지금까

지 단 한 번도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습만 기괴할 뿐이지 여타 다른 키메라들처럼 이성을 잃은 채, 주어진 명령

만 따르는 꼭두각시 같은 놈이었다.

“네···네놈이 어떻게···!”

-무···문제. 문제가 생기면··· 슈비츠 님···께 보고··· 아···.

녀석의 눈이 회까닥 뒤집혔다.

그리고 벌벌 떨리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멈춰진 기계처럼 몸이 멈췄다.

그리고 놈의 눈이 돌아왔다.

뭉개진 동공은 그대로였지만 시선은 똑바르게 연구실장을 보고 있었고, 자세

또한 올곧았다.

-문제가 생긴 모양이군.

연구실장은 저 괴물이 슈비츠란 걸 바로 눈치챘다.

어떻게 괴물의 몸에 슈비츠의 정신이 빙의할 수 있는 것인지 마법적으로도 연

금술적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현상은 확실했다.

연구실장은 곧바로 넙죽 엎드렸다.

“죄···죄송합니다! 슈비츠 님 그것이···.”

슈비츠는 눈을 감고 기운을 퍼뜨렸다. 기사들이 곧 이곳에 들이닥칠 예정이었다.

대화를 나눌 시간은 거의 없었다.

-변명하기 전에, 연구 자료를 들고 탈출할 길은 있나?

“죄송합니다···. 안티 스크롤 마법 때문에 탈출할 수 없습니다.”

-쓸모가 없군.

슈비츠의 무미건조한 말에 연구실장은 몸을 떨었다.

-그럼 가치 있게 죽는 수밖에 없겠어.

“슈비··· 컥!”

슈비츠는 연구실장의 목을 낚아챘다.

슈비츠의 손톱이 길게 늘어나더니 연구실장의 목을 파고들었다. 그러자 연구

실장의 몸에 동충하초처럼 뿔이 자라나기 시작하더니 마치 촉수처럼 주변 연

구원들을 꿰기 시작했다.

“컥!”

“도···도망쳐!”

연구원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만, 뿔은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연구원들을

모조리 꿰뚫었다. 그리고 뿔은 그들의 생기를 모조리 흡수했다.

거죽만 남은 연구원들은 바닥으로 나풀거리며 추락했다.

이윽고 연구실장도 거죽만 남고 모조리 흡수되자 괴물만이 남았다.

하얀 뿔로 만들어진 피부는 검붉은색으로 변했고, 두 개뿐이던 뿔은 무려 네

개로 변했다.

-크하하하하!

슈비츠는 끓어오르는 힘에 웃음을 터뜨렸다. 간지럼을 태울 때 웃음이 나는

것처럼 막강한 힘에 취해 웃음이 터져 나왔다.

슈비츠는 눈을 감고 기억을 더듬었다.

생기를 흡수하면서 동시에 연구원들의 기억 또한 흡수한 것이었다.

슈비츠는 바닥에 널브러진 실험체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완성되기 일보 직전이었군.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뿔의 기사’가 완성되었을 테지만, 황국 놈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눈치를 채는 게 빨랐다.

-그래도 이 정도면 만족할만하지.

이 육신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지식을 다른 실험실에 넘기면 금방 뿔의 기

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이제 여기에 있을 이유는 없다.

슈비츠는 무릎을 구부렸다. 그리고 발을 굴렀다.

신형이 하늘로 솟구쳤다.

콰아아아아앙!

연구실에서 수직으로 땅을 뚫고 튀어나왔다. 피처럼 붉은 노을이 슈비츠의 눈

을 간지럽혔다.

슈비츠는 땅에 내려왔다.

사방에는 대피 중인 시민들로 가득했다.

“모두 도망쳐! 괴물이다!”

“꺄아아아악!”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슈비츠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슈비츠는 이 육신이 마구 뿜어내는 각종 호르몬 때문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마치 양 떼를 만난 늑대처럼 모조리 물어 죽이고 집어삼키고 싶었다.

-···잠깐 놀다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이 욕망을 이성으로 억누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해소해주고 가야만 했다.

슈비츠는 도망치는 시민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뿔의 공포를 영혼까지 새겨라!

슈비츠의 양 손가락에서 튀어나온 뿔들이 레볼루션 브릿지를 향해 날아갔다.

다리를 무너뜨려 사람들이 대피하지 못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그때, 아름다운 은빛 호선이 10개의 뿔을 모조리 잘라냈다.

괴물은 자신의 뿔을 잘라낸 사내를 노려봤다.

푸른 귀기를 뚝뚝 흘리고 있는 사내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날카로운 살기의

끝을 사내를 향해 치켜세우고 있었다.

티그리스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슈비츠.”

-어떻게···!

슈비츠는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것에 경악했다.

티그리스는 오러를 날카롭게 벼려 검에 덧씌웠다.

티그리스 특유의 오러 색깔인 은빛이 아닌 푸른 귀기(鬼氣)가 뚝뚝 흘렀다.

“오늘, 네 영혼에 고통을 새겨주마.”

38. 작전(2)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