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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39화 (39/251)

#039화 - 훈장

슈비츠의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고 어금니는 모조리 박살이 났다.

끔찍한 고통에 고통을 더하는 일이었지만, 이 고통을 이겨낼 방법이 이를 악

물고 주먹을 쥐는 것밖에 없었다.

“끄으으···.”

온몸을 조각내고 인두로 지지는 듯한 고통이 며칠간 지속되자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 무엇보다 슈비츠를 미치게 하는 것은 왜 갑자기 이런 고통을 겪게 된 것인

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분명 황도 빅토리에에 문제가 생겼다는 것을 인지하고 분신에 영혼을 옮겼는

데, 그 이후 기억이 없었다.

끼익-

그때, 낡은 고철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꼴이 말이 아니군.”

슈비츠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피골이 상접하고 피부가 새하얗다 못해 창백한 사내가 슈비츠를 한심하게 쳐

다보고 있었다.

“레비스···!”

로타의 입 레비스.

저주술사이자 혼령술사인 레비스는 슈비츠의 영혼에 무슨 문제가 생겼음을 감

지하고 곧바로 슈비츠의 비밀 실험실에 찾아왔다.

슈비츠의 상태는 정말 레비스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육체는 마치 문둥병에 걸린 환자처럼 온몸이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건 그의 영혼이었다.

놈의 영혼은 무딘 톱으로 갈기갈기 찢고 불로 지진 뒤 실로 얼기설기 꿰맨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슈비츠가 자살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이상할 정도

로 끔찍했다.

“도···도대체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너도 알고 있을 텐데? 네 영혼이 상처를 입은 것이다.”

“그러니까 왜 상처를 입은 거냐고!”

“네 분신이 걸레짝이 되었으니까.”

레비스는 신문을 슈비츠 앞에 툭 하고 던졌다.

<충격! 빅토리에 지하에 키메라 실험실이 있었다?!>

<토드 데 루체트 황제, 치밀하게 작전을 계획해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번 작전의 일등 공신,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는 누구인가?>

쾅!

슈비츠는 근처에 집히는 집기를 내던졌다.

“그딴 건 나도 알고 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닐 텐데?!”

슈비츠는 기억이 아닌 신문과 각종 미디어로 자신의 분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

았다.

그리고 티그리스란 놈이 자신을 죽였다는 것도.

문제는 어떻게 4성 기사에 불과한 놈이 자신의 육체를 조각내고 영혼까지 상

처를 입혔냐는 것이었다.

레비스는 폐인이 되어버린 슈비츠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네 영혼이 그 모양이 된 건지 나도 모른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넌 혼령술

에 당한 것이 아니라 놈의 검술에 당한 것이다. 네 상처에 주술의 기운이 남

아있지 않거든.”

레비스도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말에 슈비츠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 슈비츠는

숨을 가쁘게 내쉬곤 입을 열었다.

“그럼···날 치료할 수 있나? 치료할 수 있다면 당장 해라.”

“부탁하는 주제에 태도가 불량하군.”

“닥치고 말해라. 지금 네놈의 아가리를 찢어버릴 수 있으니까.”

레비스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난 못한다.”

레비스는 혼령을 부리고 타락시키는 것을 할 줄 알았지, 상처 입은 혼을 회복

시키는 방법은 알지 못했다.

“애초에 혼령 술사도 아닌 주제에 영혼을 부린다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뿔의 기사를 만들기 위해 슈비츠는 대륙 곳곳에 키메라 실험실을 설치했다.

검기를 사용하는 키메라를 만들기 위해선 많은 실험과 연구가 필요했고, 특히

오러 고리를 가지고 있는 육체가 많이 필요했다.

그래서 황도 빅토리에, 길리온 왕국의 수도 마리나, 빈스모크 백작령, 고디바

왕국의 수도 사마곤 등 실험체를 많이 공수할 수 있는 지역에 실험실을 만들

었다.

그러나 그것들을 모두 관리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위험하기 까지 했다.

그래서 각 실험실마다 자신의 분신을 숨겨두었다.

만약 실험실에 문제가 생기면 연구원들을 대피시키고, 자료를 타 실험실에 넘

기기 위해서였다.

“지금까진 내가 도와줬지만 이제 분신을 사용하는 것은 안 된다. 분신으로 영

혼이 넘어가는 순간, 네 영혼은 조각나 사라질지도 모르니까.”

“젠장! 젠장!”

슈비츠는 분을 참지 못하고 난동을 부렸다.

마치 날개에 불이 붙은 나방처럼 생명력을 초 단위로 잃어가는 것 같아 애처

로웠다.

“물론 아예 방법은 없는 건 아니다.”

“방법···?”

“영혼을 낫게 해줄 수 없지만, 그 고통 속에서 해방해 줄 수는 있다.”

슈비츠의 눈이 희망의 빛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그게 뭐지? 당장 말해라.”

“워워. 진정하라고. 너도 신중하게 생각해야 하니까.”

레비스는 악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가 네게 ‘무감(無感)의 저주’에 내리면 고통은 싹 사라

질 것이다.”

“무감의 저주···? 내 몸에 감히 저주를 심겠다는 말이냐?!”

“이게 내 최선이다. 무감의 저주는 영혼까지 스며드는 것이니 네 상처 입은

영혼 자체를 치유하진 못하겠지만 아프지는 않게 해줄 수 있다. 대신 시각과

청각을 제외하면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그나마 마력을 움직이는 감각

은 살릴 수 있겠지만 당분간 꽤 연습이 필요하겠지.”

슈비츠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이 고통은 사람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슈비츠 정도나 되니까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통을 평생 안고 갈 바에는 그 저주를 받는 게 낫겠지.”

“그런데 그냥 해줄 순 없지.”

“뭐?!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일한 적이 있나? 네가 영혼을 옮기는 법을 알려달라

고 했을 때도 난 네게 대가를 받았다.”

슈비츠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래···. 분명히 그랬지. 이번엔 혼령 몇 개를 원하지? 원하는 숫자를 말해

라. 다 건네주겠다.”

레비스는 슈비츠의 이 절박한 표정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마치 알맞게 농익은 과일 같다랄까?

이제 수확만 하면 될 일이었다.

“오직 하나면 돼.”

“···하나?”

“그래. 바로 네 영혼이다.”

슈비츠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무슨 개수작이냐! 레비스!”

“왜 그러지? 난 수지타산이 꽤 맞는다고 생각하는데? 넌 절대로 그 고통을 평

생 안고 살 수 없다. 자살하거나, 아니면 로타 님께 찾아가는 수밖에 없겠지.”

레비스는 정말로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웃었다.

“그런데 로타 님은 지금 긴 잠에 빠져 계시는 중이고··· 만약 깨어나신다고

하더라도 고장 난 네 영혼을 보신다면 무슨 생각을 하실지 뻔하잖나?”

“아···아니다. 로타 님께선 나를 총애하셔서···”

“유능한 너를 총애한 것인지 지금처럼 폐인이 된 너를 귀중히 여기실지 모르

겠군. 그러면 넌 네 평생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죽고 말겠지.”

레비스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달콤했다.

슈비츠의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그러니 내게 영혼을 맡겨라. 당장 주라는 것도 아니다. 모든 대업이 끝나고

난 후에 네 영혼을 거둬가겠다. 서비스로 다른 동지들에게도 이 비밀을 지켜

주지.”

슈비츠의 몸이 덜덜 떨렸다.

슈비츠는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것은 고통도 아닌 희망이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거부할 수 없었다.

슈비츠는 결국 레비스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약속하지. 내게 무감의 저주를 걸어주면 내 영혼을 넘기겠다.”

그러자 리베르의 입이 쭉 찢어지며 틈 사이로 검은 연기가 흘러나왔다.

“넌 내게 약속한 것이다.”

검은 연기가 슈비츠의 몸으로 스며 들어갔다.

슈비츠의 영혼에 검은 주흔이 남았다.

“아아···.”

동시에 슈비츠는 눈알을 뒤집고 기절하고 말았다.

레비스는 바닥에 떨어진 신문 속 티그리스의 얼굴을 봤다.

레비스의 입이 비틀렸다.

“그래도 동지를 이렇게 만든 놈 얼굴이나 좀 구경이나 하러 갈까?”

* * *

사망자 3명.

중상자 10명.

경상자 232명

재산 피해액은 아직 추산할 수 없었지만, 이번 ‘두더지 몰이사냥’ 작전은 루

체트 황국 역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작전임은 분명했다.

티그리스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는 일어나라.”

황제 폐하의 명에 티그리스는 고개를 들고 일어났다. 토드 황제는 화려한 금

십자 훈장을 환관에게 건네받곤 티그리스의 가슴팍에 훈장을 달아주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에게 금십자 훈장을 하사한다.”

티그리스의 교관 복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십자 모양의 훈장이 달렸다. 금 십

자 훈장은 황국 신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명예 훈장이다.

티그리스는 이번에 키메라 실험실의 위치 파악과 강력한 변이체의 공격에서

민간인들을 지켜낸 공로를 인정받아 금 십자 훈장을 받았다.

인퀴지터의 수장인 ‘히드라’가 10년 전에 받았던 이후로 처음 나온 최고의 명

예 훈장이기에 황국은 떠들썩했다.

토드 황제는 티그리스의 어깨를 강하게 잡으며 말했다.

“자네는 황국의 보물이군. 너무나도 고맙네.”

“황제 폐하의 믿음에 보답을 했을 뿐입니다.”

“믿음에 보답하는 기사만큼 훌륭한 기사는 없지.”

황제는 모든 가신들이 보는 앞에서 선포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에게 1등 보고의 출입을 허하겠다!”

가신들은 모두 놀란 듯 눈이 크게 떠졌다.

1등 보고의 문은 루체트 황국 역사상 10번도 열리지 않았다.

1등 보고의 안에는 각종 영약은 물론이고 한때 나라나 민족을 구한 영웅들의

성물과 아티팩트들이 있었다.

성물과 아티팩트들의 능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굉장히 좋았고, 그 물건들

하나하나가 황국 전역에 퍼져있는 영주들 간의 세력다툼의 판세를 완전히 뒤

집을 정도였다.

각 지방 영주와 토호(土豪)로부터 뇌물을 먹던 가신들은 순간 반발을 하려 했

으나 입을 다물었다.

이번 사태를 완벽하게 막아낸 토드 황제 폐하의 위세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여기서 황제 폐하의 명에 거슬렀다간 목이 날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상을 티그리스가 받았다는 것이 중요했다.

티그리스는 북쪽의 변경백의 후계자다.

영주들의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서쪽의 흑토지대와 거리가 굉장히 먼 곳이었

다. 티그리스에게 1등 보고 안에 들어있는 성물이 들어가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섰다.

티그리스는 고개를 숙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앞으로 황국의 빛이 되어주길 바라네.”

그 이후로 베르강, 황녀 레인로버는 은 십자 훈장을 받았고 이번 작전의 숨은

공신인 라칸은 철십자 훈장을 받았다.

라칸은 철십자 훈장을 받자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허. 자네의 활약은 레인로버에게 들었네. 앞으로 황국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게.”

“큽! 감사합니다!”

라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퀘스트 달성!>

황제 앞에서 질질 짜기

<100포인트 획득!>

<현재 남은 포인트: 34,700포인트>

라칸은 남들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번 작전의 성공으로 인해 황도 내부에 잠자고 있던 악을 제거했노라. 그러

나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황제의 눈빛이 돌연 매서워졌다. 황제의 눈은 가신들을 향했다.

가신들은 황제의 분노에 몸을 떨었다.

“이 악마들이 황도 내부에 스며들도록 도운 이들과 감히 내 눈을 가린 이들을

하나도 남김없이 색출하여 그 죄를 피로 물을 것이다.”

이미 황국은 움직이고 있었다.

현재 인퀴지터의 고문실에서 많은 이름이 튀어나오고 있었다.

수도국장과 경찰청장을 비롯한 키메라 실험실에 물건을 댔던 공장 사장과 일

원들이 이 없이 말을 하고 있었고, 손톱 없이 글을 쓰고 있었다.

황제는 부르주아건 귀족이건 상관없이 그들의 입에서 이름이 튀어나오면 잡아

들였고,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릴 것을 알았는지 잠적해버렸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알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이름은 별거 아닌 쭉정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진짜는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이었다.

‘내 쪽에서 먼저 움직였으니 그쪽에서 움직임을 보일 것이 분명하다.’

티그리스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얻은 교훈은 적은 가만히 있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반드시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든지 티그리스에게 보복을 가할 것이 분명했다.

‘대비를 해두는 편이 좋겠군.’

티그리스는 이미 계책이 있었다.

* * *

로건은 티그리스와 차분히 대화를 나누고 싶었지만, 티그리스나 로건이나 둘

다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로건 쪽이 들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로건은 티그리스가 보여준 해괴한 검술을 홀로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티그리스가 그 변이체를 벤 검술에 관해 설명해준다고 하더라도 확실하게 이

해할 자신이 없었다.

-곧 슈베어트가 열립니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검술 가문 친목회 슈베어트.

올해 슈베어트는 빈스모크 백작령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티그리스는 이번 슈베어트에 참가하기로 했으니 그때 물어보고 싶은 것을 전

부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그때까지 로건은 가문의 서고에 들어가 티그리스가 보여준 검술에 대해 사전

조사를 하고 티그리스와 차분히 대화하기로 했다.

로건은 경비병에게 1급 패찰을 받고 봄의 궁전으로 향했다. 로건이 봄의 궁전

으로 향하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리하르덴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현재 황도 빅토리에는 계엄령이 선포된 터라 쥐새끼 하나 빠져나갈 수 없는

상태인지라, 열차를 이용해 프리하르덴으로 가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오직 프리하르덴 가문의 일원만이 사용 가능한 이동 방법을 선택해

야만 했다.

바로 와이번이었다.

로건은 황궁 들판에 앉은 채 맛있는 돼지를 먹고 있는 와이번을 향해 다가갔다.

그곳엔 레인로버 황녀가 와이번의 등을 쓰다듬고 있었다.

로건은 황녀에게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위대하신 황금의 일족을 뵙습니다.”

“반가워요. 프리하르덴 백작. 예를 푸세요.”

로건은 곧바로 일어나 와이번을 살폈다.

이 와이번의 이름은 펠레.

로건의 전용 와이번이자 오랜 친구였다.

“펠레가 레인로버 황녀님을 굉장히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펠레는 원래 먹을

때 건드리면 사나워지거든요.”

“그래요? 전 또 돼지에 정신이 팔려서 온순해진 줄 알았죠.”

“펠레 저놈이 얼마나 까탈스러운데요. 보십시오. 밥 먹는데 자꾸 자기 이름을

부르니까 째려보지 않습니까.”

레인로버는 깔깔 웃으며 펠레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너 프리하르덴 백작님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구나? 그럼 나한테 올래?”

-크릉!

펠레는 귀찮다는 듯이 콧방귀를 꼈다. 밥 먹는데 말 시키지 말라는 것이었다.

짜증을 내는 모습도 귀여운지 레인로버의 입가엔 미소가 가득 담겼다.

“그나저나 황제 폐하께서 이렇게 승인을 빨리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로건 백작님이 나서준 덕에 큰 피해를 막을 수 있었으니 이렇게라도 보답을

드려야죠.”

현재 황도 빅토리에에 계엄령이 떨어져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 황궁에 와이번

과 같은 나는 몬스터가 들어오려면 황제 폐하의 허가 없이 불가능했다.

“물론 제가 와이번을 보고 싶어서 조른 것도 있죠. 와이번을 보려면 프리하르

덴으로 가야 하잖아요.”

와이번과 같은 용족은 본래 소환 마법사가 길들일 수 없다. 워낙 지능이 높고

오만하며 마법 저항력이 높은 탓에 불가능했다.

그러나 프리하르덴 가문은 그 와이번을 길들이는 데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길들였다기보단 와이번들과 계약을 맺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와이번들이 프리하르덴 가문에 의해 완전히 멸종당할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대대로 프리하르덴 혈족의 명령에 따르며 살겠다는 주종 계약

을 맺었다.

그 신성한 계약은 로건이 차고 있는 ‘프리하르덴의 여름’에 기록되었고, 와이

번들은 3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를 이으며 프리하르덴을 섬겼다.

“그나저나 샤를로트는 왜 같이 안 왔나요?”

“검술 훈련을 한다고···.”

로건은 살짝 코끝이 매웠다.

“자식 키워봤자 다 소용없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보다 검술

훈련이 더 중요한 건지···.”

“샤를로트는 원래부터 검술 훈련을 좋아했잖아요. 그리고 티그리스를 이기려

면 한 시라도 시간을 소홀히 할 수 없겠죠.”

“음···.”

로건은 진지한 눈빛으로 잠시 생각하더니 무거운 입을 열었다.

“···아마 불가능할 것입니다.”

레인로버는 살짝 놀랐다.

로건은 지독한 딸 바보였다.

평소라면 빈말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가능할 겁니다!’라고 말했을 터였다.

“평생을 쫓아도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그 정도인가요?”

“제 딸도 천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천재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만약 베르강이라는 이해 불가능한 천재를 과거에 만나지 않았다면, 아둔한 눈

으로 티그리스의 실력을 폄훼했을지도 몰랐다.

왜 베르강이 티그리스를 보고 괴물이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전 아직도 티그리스가 황국에 충성하는 기사라는 게 너무나도 다행스럽습니

다. 만약 티그리스가 타국의 기사였다면 이 대륙의 판도는 뒤집혔을 것입니다.”

로건은 레인로버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러니 절대로 티그리스를 놓쳐선 안 됩니다. 황녀님.”

“알고 있어요. 황제 폐하께서도 충분히 알고 있는 사안이에요.”

토드 황제는 직접 티그리스에게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황녀에게 전했다.

티그리스는 최초로 20대에 소드 마스터가 될지도 몰랐다. 그런 인재에게 자원

을 아끼는 것은 멍청한 일이었다.

그래서 조만간 티그리스에게 일을 하나 부탁하고 그 보답으로 그의 성장을 도

울 수 있는 영약을 하나 하사할 예정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주고 싶었지만, 티그리스나 황녀나 주변 눈치를 봐야 하는

공인(公人)이다. 그냥 황국에서 영약을 준다고 하면 괜한 구설에 휘말릴 수

있었다.

황도 빅토리에의 영웅, 티그리스의 명성에 상처를 내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됐다.

그리고 황제는 가까이서 관심 있게 지켜보라고 했다.

관심 있게 지켜보란 말은 티그리스가 변절할 기색이 보이는지 지켜보라는 말

이었다.

티그리스가 변절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토드 황제나 레인로버도 알고 있었지

만, 손에 들어와 있는 황금도 누가 훔쳐 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것과 같은

마음이었다.

토드 황제는 6촌 내 결혼을 금지하는 법안을 폐지하고, 레인로버와 정략결혼

을 시킬까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혹시 황국의 평화를 위해 샤를로트와 결혼시키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로건은 결혼이란 말에 반사적으로 발작했다.

“안 됩니다! 아직 우리 샤를로트는···!”

레인로버는 허둥대는 로건이 웃긴 지 쿡쿡 웃었다.

‘결혼이라···.’

아직 레인로버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단어였다.

40. 수련의 숲(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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