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화 – 수련의 숲(1)
평소보다 호화스러운 저녁 식사 자리.
레니는 이번에 요리 솜씨를 최대로 발휘했다.
오늘은 티그리스의 생일이기 때문이었다.
샤를로트는 입에서 녹아버리는 부드러운 스테이크에 깜짝 놀랐다.
거기에 달곰쌉쌀한 와인 소스가 스테이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아 자칫 밋밋해
질 수 있는 고기에 풍미를 더해주었다.
“우와 이거 정말 맛있는데?”
“에헴! 오늘 실력 좀 발휘해봤죠!”
“밑에 있는 끄띠아 레스토랑보다 훨씬 나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아, 이 양파 스프는 카렌이 만든 거예요. 드셔보세요.”
리니아의 전속 사용인인 카렌은 초조한 눈빛으로 리니아의 표정을 살폈다.
리니아는 양파 스프를 한입 먹곤 화들짝 놀랐다.
“우와. 이거 엄청 맛있다. 이거 정말 카렌이 한 거야?”
“네. 괜찮나요?”
“응. 엄청 맛있어. 양파가 이렇게 맛있는 건 줄 처음 알았어.”
“감사합니다.”
카렌은 리니아의 칭찬이 기뻤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최근 레니가 요리 아카데미에서 요리를 배워오면 카렌에게 알려주었는데, 덕
분에 카렌의 음식 솜씨도 덩달아 좋아졌다.
리니아는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더니, 식탁 아래에서 선물 상자를 꺼내 들었다.
“오라버니 생일 축하드려요.”
뒤이어서 샤를로트와 아이린도 선물을 꺼냈다.
“티그리스 교관님 생일 축하드려요.”
“축하드려요.”
티그리스의 생애에서 이렇게 많은 선물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설마 샤를
로트와 아이린도 생일 선물을 준비했을 줄은 몰랐다.
“···고맙다.”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와 아이린을 받아들인 뒤로, 회귀 전에도 몰랐던 것을 많
이 알게 되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항상 누군가가 자신을 기다려준다는 것과 맛있는 음
식을 먹으면 가져와서 같이 나눠 먹는 행동 하나하나가 티그리스의 표정을 다
채롭게 만들어주었다.
티그리스의 건조한 사막 같은 마음에 처음 발을 디딘 것은 후회의 눈물이었지
만, 그 후회의 눈물이 지나고 난 뒤에 행복과 기쁨이라는 감정이 푸른 새싹처
럼 피어올랐다.
인간을 성숙시키는 것은 실패와 후회지만 인간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행복
과 기쁨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는 것 같았다.
샤를로트가 티그리스의 표정을 곧바로 읽었다.
“어! 이거 설마 부끄러워하시는 건가요?!”
“아니다.”
“아닌데?! 그 표정 나 처음 본 건데? 티그리스 교관님도 부끄러워하실 줄은···”
“샤를로트 넌 내일 아침에 특훈이다.”
“아아악! 죄송해요! 죄송해요!”
“아침은 거르도록. 토할지도 모르니.”
“으악!”
왁자지껄한 식사가 끝이 나고 차를 마셨다.
티그리스는 쿠키를 입에 넣고 있는 샤를로트와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일정이 있다.”
“일정이요? 무슨 일정이요?”
“수련의 숲 정비다.”
수련의 숲.
제국대학과 제국대학 산하에 있는 레미온 검술 아카데미가 공동으로 관리하는
훈련장이다.
젊은 기사와 마법사들에게 부족한 실전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고안된 훈련장
이다보니 실제로 몬스터들이 살았다.
물론 대부분이 고블린이나 놀, 흰털 원숭이와 같은 7~9등급의 몬스터들이 대
다수였지만, 몬스터를 사냥해볼 기회가 거의 없는 젊은 학생들에겐 중요한 교
육 과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빅토리에에 계엄령이 떨어진 거 아니었어요? 수련의 숲에 갈 수
있나요?”
현재 키메라 실험실 사태 때문에 빅토리에는 그 누구도 들어올 수도 나갈 수
도 없는 상태다.
이번 키메라 실험실 사태와 관련된 범죄자들이 아직 다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
었다.
특히 이번 키메라 실험실 건축에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케일 자작과 그
직계 가족들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당분간 빅토리에에 그 누구도 들어올 수
도 나갈 수도 없었다.
“황제 폐하께서 특별히 허가하신 일이다. 그리고 계엄령은 그리 오래가지 않
을 것이다.”
“네? 왜요?”
“공장들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성문을 걸어 잠그는 것
하나만으로도 공장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고 있으니, 계엄령은 2달 이상 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계엄령의 목적은 현재 황도 안에 숨어 있는 범죄자들을 잡아내기
위함이다.
인퀴지터들이 열심히 활약해준 덕분에 키메라 실험실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인물들을 거의다 잡았기 때문에, 케일 자작과 그 직계 가족들이 모두 잡
히면 계엄령이 자동적으로 풀리게 될 것이다.
회귀 전, 키메라 실험실 사태가 터지고 난 후에도 계엄령이 3달 이상 가지 않
았다.
“그럼 서열전도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는 거네요?”
“그래.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그래서 수련의 숲 정비를 하는 것이다.”
티그리스는 수련의 숲 정비를 할 인원을 모집할 때 자원했다.
굳이 하겠다고 나선 이유는 수련의 숲에 ‘연인 자리’ 성물이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그 성물도 이맘때에 라칸이 발견한 것이지.’
라칸은 기이하게도 이런 성물이나 고대 유물과 아티팩트, 영약 등을 잘 찾아
냈다.
웬만하면 이런 기연들은 라칸이 발견할 수 있게 놔둘 예정이었으나, 그 성물
은 라칸에게 아직 위험했다.
그 성물 자체에 저주가 걸린 것은 아니지만, 그 성물을 만지는 순간 ‘성좌의
시련’이 치러지기 때문이었다.
아직 라칸은 그 성좌의 시련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티그리스가 성좌의 시
련을 깨고 성물을 회수할 예정이었다.
“그러니 아이린, 샤를로트. 너희도 준비를 하도록 해라.”
“어? 저희도 가나요?”
“너희는 교관 보조다. 내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같이 간다고 생각해라.”
그리고 기왕 가는 김에 둘에게 몬스터를 사냥하는 법을 알려줄 예정이었다.
전쟁과 몬스터 사냥은 단순히 검만 잘 휘두른다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 * *
티그리스와 아이린 그리고 샤를로트는 마차에서 내렸다.
수련의 숲은 황도 빅토리에에서 마차로 12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샤를로트는 등허리를 툭툭 쳤다.
“으··· 마차는 정말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아이린 넌 괜찮아?”
아이린은 대검을 크로스백 메는 것처럼 메며 말했다.
“네. 선배.”
“그런데 진짜 그 대검 꼭 들고 가야겠어? 그거 들고 행군하면 금방 지칠지도
몰라.”
“괜찮아요.”
예전에 아이린은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아 오래 걷거나 달리면 허리나 다리가
굉장히 아팠다.
하지만 거의 2주 넘게 대검을 놓고 티그리스가 알려준 ‘세포 성장술’로 몸을
회복하니, 몸의 균형이 어느정도 돌아왔다.
물론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라서 대검을 오래 휘두르면 몸의 균형이 다시
비틀릴 것이다.
“···뭐 네가 괜찮다면 어쩔 수 없지만.”
티그리스도 마차에서 내렸다. 티그리스는 평소의 제복이 아닌 얇은 코트에 오
래 걷기 좋은 신발을 신었다.
평소의 차가운 군인 같은 느낌이 아닌 모험가 느낌이 나는 스타일이었지만 굉
장히 잘 어울렸다.
-와··· 저분이 티그리스 교관님인가 봐.
-이번에 황제 폐하께 금십자 훈장도 받으셨다면서? 그거 받으면 가문을 새로
세울 수도 있는 명예 훈장이라던데.
-진짜 잘생기긴 했다. 한 번 꼬셔볼까?
-저게 그 유명한 티그리스 패션인가? 왜 티그리스 패션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다.
대부분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했지만 몇몇 교관들은 침을 퉤 뱉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게 뭐가 잘생긴 거야. 그냥 평범하구먼.
-내가 듣기론 그 변이체가 굉장히 약하다던데? 일부러 영웅 하나 만들려고 황
국에서 쇼한 거란 소문이 있어.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풍경을 찍는 척하면서 티그리스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눈치를 봤다.
티그리스도 험담을 들은 게 분명했지만, 표정에 변화 하나 없었다.
회귀 전에는 이보다 더한 질시와 혐오를 많이 받아봤기 때문이었다.
뒷담화하고 몰래 사진 찍는 것 정도는 애교 수준이었다.
저런 쓸데없는 것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간 피곤해질 뿐이었다.
“그럼 가지.”
“예. 교관님.”
샤를로트는 뒷담화하는 놈들을 살짝 째려보고 수련의 숲으로 들어갔다.
티그리스가 맡은 임무는 수련의 숲 내부 6등급 이상의 몬스터의 척결과 몬스
터 둥지 조사였다.
같은 임무를 받은 교관은 티그리스를 포함해 총 세 사람으로, 맡은 지역 구분
없이 전체적으로 조사한 뒤에 정보를 교차 검증하는 식으로 진행될 예정이었다.
때문에 티그리스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려 5일이었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을 가르치면서 조사를 하면 딱 마감일에 마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두 사내가 티그리스에게 찾아왔다.
“혹시 티그리스 교관님 맞으십니까?”
티그리스는 사내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한 사내는 갈색 콧수염을 기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내는 적발에 세검을 지팡
이처럼 짚고 있었다.
둘 다 모르는 사람이었다.
“그렇습니다.”
“아, 이렇게 뵈어서 정말 영광입니다. 저는 제국 대학 원소마법학 교관 제크
리 교관입니다. 그게 다름이 아니라··· 혹시 따로 얘기를 좀 할 수 있을지···.”
샤를로트와 아이린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둘에게선 뒤가 구린 냄새가 났다.
“여기서 하지 못 할 말이면 하지 마시오.”
“···아. 그게···.”
사내들은 아이린과 샤를로트를 흘금 보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지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제가 티그리스 교관님을 개인적으로
정말 존경하고 있습니다. 최연소 4성 기사가 된 것도 모자라···”
“본론만 말하시오. 우리가 그리 시간이 많은 편은 아닐 텐데?”
“···그러니까 빅토리에의 영웅이신 티그리스 교관님이 이런 험한 일을 하신다
는 것이 정말 아쉬워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티그리스 교관님께선 저희가 준비
한 마차를 타시고 근처에 있는 휴양지에서 편히 쉬시다가···”
제크리는 순간 입이 얼어붙었다.
티그리스에게서 느껴지는 진한 살기에 몸이 굳어버린 것이었다.
“내게 태업을 종용하는 것인가?”
“태···태업이라뇨. 그게 아니라···”
티그리스는 이런 종류의 쓰레기들을 제일 싫어했다.
황국을 좀먹는 벌레 같은 인간들.
이런 놈들 때문에 황국의 근간이 흔들리고 로타와 아르펨에게 황국이 무너진
것이었다.
“경고하나 하지.”
티그리스는 두 사내를 노려봤다.
“난 이 수련의 숲을 꼼꼼하게 수색할 것이오. 몬스터 둥지가 총 몇 개이며 개
체 수는 얼마나 되며 세력 구도는 어떻게 되는지, 6등급 이상의 몬스터가 어
디에 몇 마리가 있었으며 어떻게 처리했는지 꼼꼼하게 보고할 것이오.”
사내들은 입술을 벌벌 떨었다.
“그리 꼼꼼하게 하면 5일이 넘게 걸릴 수 있지. 아니 일주일이 넘게 걸릴 수
있소. 그러나 내게 시간은 중요치 않소. 내게 중요한 것은 임무의 완수요.”
티그리스는 놈들에게 한 발자국 다가갔다. 놈들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
음 물러섰다.
“만일 내가 적은 보고서와 당신들이 적은 보고서의 질과 양이 확연하게 차이
가 난다면, 나는 둘에게 교관의 자격에 관해 묻겠소.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아시오?”
“···그. 예···. 예. 알겠습니다.”
“그럼 이리 나를 붙잡을 시간이 없을 테니 가시오. 그런데···”
티그리스는 둘의 옷을 확인했다.
둘은 아예 놀러 올 생각으로 왔는지 면으로 된 얇은 와이셔츠와 고급 정장 바
지, 심지어 값비싼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다.
“복장부터 다시 갖춰 입으셔야겠군.”
티그리스는 멍하니 티그리스의 뒤를 쳐다보는 두 사람을 놓고 숲으로 들어갔다.
아이린과 샤를로트도 두 교관을 잠깐 쏘아본 뒤 티그리스의 뒤를 따라갔다.
* * *
샤를로트는 아직도 화가 덜 풀렸는지 눈썹을 찌푸렸다.
“아까 그 사람들 진짜 어이없지 않아요?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교관 자격
이 있나 몰라.”
“몬스터들이 있다. 지금부터 필요한 대화만 하도록.”
“···알겠어요.”
티그리스는 우선 지도를 펼쳤다.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여기다. 우리는 우선 이 강가를 따라서 이동할 것이다.”
강가는 일반적으로 몬스터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특히 고블린이나 흰털
원숭이, 놀같이 군집 생활을 하는 소형 몬스터들이 많이 모였다.
“왜 군집형 소형 몬스터들을 제일 먼저 조사하는지 아나?”
“···어.”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갑자기 던져진 질문에 잠깐 고민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아이린이었다.
“군집형 소형 몬스터의 생태를 먼저 조사하면, 그들을 사냥하는 포식자들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답이다.”
티그리스는 단순히 샤를로트와 아이린에게 몬스터를 죽이는 법을 가르쳐줄 생
각이 없었다.
어떻게 하면 사냥할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몬스터들의 위협으로부터
피할 수 있는지 알려줄 생각이었다.
“만약 우리가 전쟁 상태라면 제일 중요한 것은 보급과 지휘소의 위치 선정이
다. 평상시에는 안전한 성벽 안에서 지내기 때문에 크게 위협을 느끼지 못하
지만, 야전은 다르다. 몬스터들이 사는 야생지대에서 지휘소를 선정하고 물자
를 놓아야 한다.”
야전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근처에 있는 몬스터란 말은 지휘관들 사이에서 굉
장히 유명한 말이다.
만약 근처에 고블린이 있다면 물자를 털어가고, 오크 떼가 있다면 수시로 지
휘소를 공격해오며, 그리폰이 있다면 인간을 사냥해간다.
“인간과 인간 사이의 전쟁이든 몬스터와의 전쟁이든 간에 지휘소와 보급로 근
처에 무슨 몬스터가 살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위험한 몬스터가 살고 있다
면 피하고 안되면 완전히 격멸시켜야 한다.”
“음···.”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티그리스의 말을 경청했다. 몬스터학
과 군사학 수업에서도 듣긴 했지만 이렇게 밖에 나와서 들으니 귀에 쏙쏙 박
히는 것 같았다.
“근처에 고블린이나 놀, 흰털 원숭이같이 소형 몬스터들이 많이 서식하고 있
다면 크게 상관이 없다. 그 말은 놈들을 잡아먹는 범치나 샤벨 타이거와 같은
위험한 포식자들이 없다는 뜻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1km 근방에 소
형 몬스터들이 보이지 않는다면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위험한 몬스터가 있다는 뜻이군요.”
“그렇다.”
티그리스는 발을 옮겨 강가를 따라 움직였다.
발자국들이 곳곳에 보였다.
“이 발자국은 놀의 발자국이다. 진흙이 완전히 바싹 마른 것으로 보아 최소
하루나 이틀 전에 이곳에 온 모양이군.”
“그 말은 이 근처엔 위험한 몬스터가 없다는 뜻이네요?”
“확답은 할 수 없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다. 우선 놀들이 움직인 방향으로 가
보자.”
티그리스는 아이린과 샤를로트에게 놀들을 추격하는 법도 알려주었다. 놀들의
코는 인간의 세 배 이상 좋아서 항상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추격해야 했다.
티그리스는 오러로 청력을 강화했다.
-크릉! 킁!
-컹! 커겅!
놀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샤를로트와 아이린도 놀들의 목소리를 들었
는지 몸을 낮췄다.
“근처에 놀들이 있는 모양이군. 둥지 규모만 확인하고 돌아간다. 둘은 여기
가만히 있도록.”
티그리스는 놀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발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자 놀랐다.
티그리스가 펼치고 있는 보법은 제국 공통 오러 운용술 ‘소리 없는 발소리’가
분명했다.
소리 없는 발소리는 고급 등급의 오러 운용술이었기에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아직 사용하지 못했다.
티그리스는 놀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대략 12마리였다.
암컷과 수컷의 숫자가 같고 최근 사슴을 사냥한 듯 먹다 남은 사슴이 불가 근
처에 있었다.
그 말은 저 12마리가 끝이라는 것이었다. 놀은 불필요한 사냥은 하지 않는 게
으른 놈들이니까.
티그리스는 현재 위치를 확인하고 놀들의 개체 수와 새끼 놀들이 있는지 그리
고 놈들이 사용하고 있는 무기가 무엇인지까지 자세하게 적은 뒤 돌아왔다.
“되었다. 이곳에서 최대 3km 근방엔 몬스터가 없다.”
“네? 어째서요?”
“소형 군집을 이룬 놀의 영역은 최대 3km다. 놀은 사냥을 즐기는 성격은 아니
지만, 주변에 몬스터들이 자리를 잡으면 반드시 싸우는 호전적인 성격의 몬스
터다. 그러니 주변에 고블린이나 다른 놀들의 둥지가 없겠지.”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감탄했다. 티그리스는 단순히 검만 잘 다루는 줄 알았는
데 몬스터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것까지 다 아시는 거예요?”
“책을 읽어라.”
“···많이 읽는데요.”
“더 읽어라.”
티그리스가 독서를 많이 하는 것도 있었지만, 실전으로 다져진 경험 때문도
있었다.
“검은 단순히 휘두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해한 몬스터들로부터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휘두르는 것이지. 그러니 검술에만 집중하지 말고 몬
스터나 각종 전술과 관련된 지식을 폭 넓게 익혀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티그리스는 이어서 강가로 이동했다.
근처에 고블린 둥지도 몇 개 확인했고, 흰털 원숭이의 둥지도 확인했다.
몬스터들끼리 영역 싸움을 하는 광경도 지켜봤다. 몬스터들끼리 싸우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기에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봤다.
“고블린이랑 고블린끼리 싸우네요?”
“고블린은 탐욕이 많은 몬스터이자 인간과 가장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는
몬스터다. 한 집단에 리더는 반드시 하나가 있고, 그 리더가 시원찮으면 반역
을 일으켜서 죽이기도 하지. 심지어 같은 고블린을 노예로 삼곤 한다.”
“···우와. 진짜 신기하네요.”
“그리고 놀이나 흰 털 원숭이들은 인간을 무서워해서 잘 다가오지 않지만, 고
블린들은 탐욕스러워서 목숨을 걸고 인간들의 보급품을 노리고 들어온다. 그
래서 근처에 고블린이 둥지가 보이면 무조건 처리하고 보는 지휘관도 있다.”
그게 바로 티그리스였다.
회귀 전,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면전을 치르던 중 고블린 떼들의 습격으로 인
해 식량이 모조리 털려 후퇴했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항상 다른 몬스터들보다 고블린을 더 경계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군.”
한 무리의 고블린들이 기이한 행각을 보이고 있었다.
자신이 죽던 말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반대 측 고블린에게 달려들
었다.
그리고 고블린들이 주로 사용하는 독침이나 뼈 방망이가 아닌 돌멩이나 주먹
아니면 이빨로 죽이고 있었다.
‘도구 사용을 기피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단 하나뿐이었다.
“근처에 고블린 주술사가 있다.”
“고블린 주술사요?”
처음 들어보는 몬스터 이름에 샤를로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술을 쓰는 고블린이다. 녀석은 5등급 몬스터다.”
“고블린이 5등급이나 한다고요? 왜요?”
“놈이 쓰는 주술 때문이다. 발견하지 못했으면 위험할 뻔했군.”
고블린들이 쓰는 주술은 인간에게도 영향이 간다. 주술에 잘못 걸리면 영구적
인 육체적ㆍ정신적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티그리스는 둘에게 말했다.
“준비해라. 우리는 주술사를 사냥해야 하니.”
41. 수련의 숲(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