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3화 – 1등 보고
티그리스는 눈을 떴다.
티그리스의 눈앞에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샤를로트와 아이린이 있
었다.
“어? 티그리스 교관님! 몸은 괜찮으세요?”
티그리스는 말없이 일단 주변부터 확인했다. 기절했던 놀들은 아이린과 샤를
로트가 한쪽 구석에 몰아 두었고, 별달리 느껴지는 위협은 없었다.
“조금만 더 늦었어도 사람을 부를까 했어요. 성좌의 시련은 극복하신 거죠?”
“그래. 그것보다 성물은?”
연인 자리 성물은 쌍둥이 형 성물이다.
페르셴과 아드네.
티그리스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페르셴이고 다른 하나가 또 존재해야 했다.
“그게 티그리스 교관님께서 눈을 뜨기 직전에 갑자기 다른 쪽 성물이 빛무리
로 변하더니 그 목걸이로 들어갔어요. 모양도 좀 바뀌고요.”
티그리스는 의아한 눈으로 자기 손에 들린 성물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성물의 모습이 이상했다. 페르셴과 아드네는 평범한 금줄에 붉은
루비가 박혀 있는 목걸이였는데 모양새가 달라졌다.
네모난 루비가 조금 더 커지고 둥그런 모양으로 바뀌었으며 그 안에 14개의
하얀 점들이 수 놓아 있었다.
연인 자리였다.
‘도움을 준다는 게 이런 걸 의미하는 거였나?’
페르셴과 아드네의 목걸이가 하나로 합쳐진 것으로 보아, 티그리스가 알던 능
력이 아닌 다른 능력으로 변한 모양이었다.
페르셴과 아드네의 목걸이의 능력은 순간이동과 위험 감지다.
페르셴을 차고 있는 사람은 아드네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이 죽을 위기에 처하
면 위험을 감지하고 그쪽으로 순간이동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반대로 아드네도 페르셴을 착용하고 있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면 위험을 감지
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
그런데 목걸이가 하나로 바뀌었으니 뭔가 새로운 능력으로 바뀌거나 새 능력
이 추가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황성에 들러야겠군.’
이 성물의 능력을 감별할 수 있는 건, 황궁의 보고를 지키는 보고지기 마테오
뿐이었다.
어차피 1등 보고에서 성물을 고르기도 해야 했으니 겸사겸사 들르기로 했다.
“별일 없으면 바로 돌아가는 걸로 하지.”
“네.”
* * *
4일 차 수련의 숲 정비도 끝이 나고 5일 차도 별 탈 없이 지나갔다.
티그리스와 함께 수련의 숲 내부 몬스터 수색 임무를 맡았던 두 교관은 티그
리스가 성물을 얻었다는 말에 이를 갈았지만 그뿐이었다.
두 사람은 수련의 숲 정비 첫날에 티그리스에게 단단히 혼이 났음에도 불구하
고, 자신이 맡은 임무를 제대로 다 하지 않은 것이었다.
만약 둘이 꼼꼼하게 수련의 숲 수색을 했다면 티그리스보다 먼저 성물을 발견
했을지 몰랐다.
물론 성좌의 시련을 극복했을 진 모르겠지만.
그렇게 맞이한 월요일 아침.
티그리스는 계획했던 대로 연인 자리 성물을 들고 황궁의 보고(寶庫)로 향했다.
“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저도 당황스럽긴 하군요.”
보고지기는 마테오는 티그리스가 건넨 연인 자리의 성물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확인했다.
본래 연인 자리의 성물은 각각 페르셴과 아드네로 불렸지만, 하나로 합쳐진
이상 어떻게 불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능력을 검사하나?”
“성물의 능력을 알아내는 ‘모험가의 돋보기’란 성물이 따로 있습니다. 진짜
성물인지 아닌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합니다.”
마테오는 티그리스가 가져온 연인 자리 성물을 다시 돌려주었다.
“1등 보고에 들어가시기 전에 우선 이 성물이 무엇인지 확인부터 해봐야겠습
니다. 만일 다른 성물에 영향을 주는 성물이라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마테오는 앞에 있는 벤치를 가리켰다.
“잠시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금방 모험가의 돋보기를 가져오겠습니다.”
“알겠네.”
마테오가 안으로 들어가자 티그리스는 벤치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연인 자리 성물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둘째치고, 1등 보고에서 무
슨 성물을 고를지 고민이 되었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 1등 보고에 들어갈 기회가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년 후, 제국력 344년 3월에 일어난 빅토리에 대 침공 사건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하여 금십자 훈장을 받았다.
그때 똑같이 1등 보고에서 성물 하나를 받을 기회를 얻었지만, 베오울프가 죽
고 노르베르드 가문이 갖고 있던 모든 광산이 키메라들과 몬스터들에게 부서
진 탓에 가세가 심하게 기울었다.
그래서 1등 보고 출입권 대신 황국으로부터 금화 50만 개와 20년간 세금 면제
권을 받았다.
당시 티그리스에겐 노르베르드 가문의 보검인 드윈의 검이 있기도 했고, 1등
보고에 있는 성물보다 노르베르드 가문의 존속이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리 결
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바로 다음 해 로타와 아르펨은 황국을 상대로 전면전을 걸어왔다.
노르베르드는 제1순위 공격 대상이었다.
놈들은 티그리스를 죽이기 위해 식탐을 깎아내는 자 템페, 분노를 깎아내는
자 페이라, 로타의 입 레비스, 로타의 뿔 슈비츠 네 명을 보냈다.
그때 티그리스는 살아서 황도 빅토리에로 도망쳤지만, 노르베르드는 놈들에게
빼앗기고 말았고 노르베르드 가문의 기사들을 모두 잃고 말았다.
그리고 아르펨의 꾐에 넘어가 리니아가 슬픔을 깎아내는 자가 되고 말았다.
차라리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면 1등 보고에서 좋은 성물을 하나 가져오는 편이
나았을 것이었다.
그랬다면 그때 로타의 입 레비스 뿐만이 아니라 분노를 깎아내는 자 페이라까
지 죽이고 도망칠 수 있었을 테니까.
그때,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레인로버 황녀였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에게 예를 표했다.
“위대하신 황금의 일족을 뵙습니다.”
“예를 푸세요. 티그리스.”
평소라면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구냐고 한 소리 했겠지만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키메라 실험실 사태 이후로 티그리스와 레인로버 황녀 사이에 알 수 없는 벽
이 세워진 기분이었다.
티그리스는 일어났다.
황녀는 티그리스의 손에 들린 연인 자리 성물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게 그 수련의 숲에서 발견된 성물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연인 자리의 성물입니다.”
“연인 자리 성물은 원래 쌍둥이형 성물이라서 두 개라고 알고 있었는데 왜 한
개죠?”
티그리스는 수련의 숲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략히 설명해주었다.
물론 우노와 관련된 얘기는 하지 않았고 성좌를 만났다는 것과 페르셴과 아드
네의 이야기를 바꿨다는 내용만 말했다.
“그 페르셴과 아드네의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끝낼 수도 있군요.”
레인로버는 티그리스가 성좌를 만났다는 것보다, 둘의 사랑 이야기가 비극이
아닌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다는 것에 놀라워했다.
“그건 티그리스 교관이라서 가능한 거였겠죠?”
“프리하르덴 백작님 정도라면 제가 본 이야기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음···.”
황녀는 ‘그럼 티그리스와 프리하르덴 백작과 실력이 비슷하다는 것인가?’라는
짓궂은 질문이 순간 떠올랐지만 질문하지 않았다.
이런 장난스럽고 가벼운 대화가 오가기엔, 티그리스의 사회적 지위가 너무 높
아졌다.
티그리스는 악독한 키메라들로부터 황도 빅토리에를 구한 영웅이 되었고, 대
륙에 티그리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황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티그리스에게 이런 영웅 이미지를 심은 것은 황국
의 국방력과 안보력이 허술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한 시선 돌리기였다.
하지만 황국이 예상했던 것보다 티그리스의 유명세는 황국을 위협할 정도로
급격하게 성장했다.
현재 수많은 방랑 기사들이 명예를 얻고자 노르베르드 가문으로 몰리고 있었
고, 제국 대학의 예비 졸업생들도 학과를 따지지 않고 황국이 아닌 노르베르
드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노르베르드는 그 뛰어난 인재들을 모두 포용할 수 있는 막대한 재력까지 갖추
고 있었기에, 내부에서 노르베르드를 견제해야 할 수도 있다는 말이 오가고
있었다.
한 마디로 이제 티그리스와 황녀는 가벼운 농담을 나눌 수 있는 가벼운 관계
가 아닌, 세상을 움직이는 대화를 나눠야 하는 딱딱한 관계가 된 것이다.
그게 조금 슬펐다.
레인로버 황녀는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제가 티그리스에게 찾아온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한 가지 미안한 부탁할 게
있어서 온 거예요.”
“어떤 부탁이십니까?”
“케일 자작을 찾아주세요.”
케일 자작은 현재 황국에서 제일 유명한 현상 수배범이었다.
빅토리에 경찰국장, 수도국장, 환관 등 황국의 주요 인사들에게 뇌물을 먹이
고 키메라 실험실을 건축한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경찰국장과 수도국장을 심문해봤지만 왜 케일 자작이 황도에 키메라 실험실을
설치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 모두 키메라 실험실을 모른 척해준 끄나풀일 뿐이었다.
이번 사태가 일어난 원인을 심층적으로 파고들기 위해선 케일 자작을 찾아내
심문해야만 했다.
“현재 인퀴지터는 과부하 상태예요. 경찰들이 상상 이상으로 부패했다 보니
그들을 믿을 수 없는 노릇이고··· 믿을 사람이 티그리스밖에 없어요. 혹시 케
일 자작을 잡아주실 수 있나요?”
티그리스는 즉답했다.
“예. 알겠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외부에서 사람 한 명을 기용하고 싶습니다.”
“외부 사람이라면 누구죠? 아, 설마···.”
“라칸입니다.”
티그리스는 자신의 한계를 알았다.
티그리스가 키메라 실험실을 찾아낼 수 있었던 이유는 키메라 실험실의 위치
가 하수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케일 자작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몰랐다. 케일 자작을 찾으
려면 라칸의 도움이 필요했다.
레인로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제 직권으로 허가할게요. 라칸이라면 믿을 수 있죠.”
라칸이 굉장히 이상한 녀석은 맞긴 했지만, 그간 대화를 나눠본 결과 꽤 괜찮
은 사람이란 걸 알아챘기 때문이었다.
물론 사람만 서글서글하고 좋은 게 아니라 능력도 있었다.
라칸이 황궁에서 잠시 지내면서 키메라 실험실과 내통하는 환관을 잡아내기도
했고, 현장에서는 키메라 실험실에 물자를 대는 공장 세 곳을 잡아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인퀴지터는 라칸의 성향과 과거 조사가 끝나는 대로 등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혹시 라칸을 거두실 생각인가요?”
“라칸을 가신으로 삼겠냐는 질문이십니까?”
“네. 맞아요.”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했다.
라칸이 자신의 밑에서 지내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
‘라칸은 인퀴지터에 가는 것이 맞다.’
라칸이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펼치려면 인퀴지터에 들어가는 것이 나았다.
그곳에서 수사기법을 배우고 갖가지 퀘스트를 깨고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
이다.
“아닙니다. 라칸은 제 밑에 있는 것보다 다른 곳에서 성장하는 것이 훨씬 나
을 겁니다.”
“다행이네요. 사실 인퀴지터에서 라칸을 등용할지를 두고 내부 회의 중이거든
요.”
“라칸이라면 인퀴지터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 겁니다.”
회귀 전에도 크게 활약했으니 라칸은 인퀴지터에서 자신의 재능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티그리스 교관은 은근히 라칸을 챙기는군요?”
“재능이 있는 사람은 쉽게 구할 수 있으나 황국에 충성할 사람은 구하기 힘듭
니다.”
그때, 라칸은 분명히 자신이 과거로 돌아올 수 있었음에도 그 기회를 티그리
스에게 줬다.
티그리스는 아직도 라칸이 무슨 마음으로 자신에게 이 기회를 주었는지 감히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 자신과 황국의 운명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보통 용기로 불가능하기 때
문이다.
“라칸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황국을 위해 헌신할 인재입니다. 그러니
아낄 수밖에 없습니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목소리와 눈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의 편린이 느껴졌다.
레인로버가 감히 공유할 수 없는 깊고 쓰라린 종류의 감정이라 말문이 막혔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요.”
“하문하십시오. 전하.”
“티그리스 경은 왜 황국을 왜 그리 사랑하시는 거죠?”
“애국에 이유를 물으면 답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건 이성이 아닌 감정의 영
역이기 때문입니다.”
티그리스의 답변에 문득 레인로버는 며칠 전 황제 폐하께서 하신 말이 머릿속
을 스쳐 지나갔다.
-티그리스와 결혼을 해야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그때, 레인로버는 ‘황국을 위해서라면 하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티그리스가 좋아서 아니라 황국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것이었다.
레인로버는 황녀로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대가가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만약 티그리스와 결혼을 한다면, 황국이 내게 해준 것이 있으니 그 보
답을 해야 한다는 상인의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그러나 티그리스의 대답을 들으니 눈이 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애국을 이성이 아닌 사랑과 기쁨과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하자 왜 황녀가 티그
리스와의 결혼을 받아들였는지 진짜 이유를 깨달았다.
황녀는 황국을 사랑했다.
황국을 위해 자신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와 결혼을 해야 한다면 할 수 있겠느냐?
황제 폐하, 아니 아버지가 만약 그 질문을 다시 하신다면 황녀는 이렇게 대답
할 것 같았다.
티그리스가 준비되었다면 언제든지.
레인로버는 황국을 사랑하는 것을 떠나 오늘 티그리스에게 반하고 말았다.
그녀가 황국을 사랑하듯이 그 또한 황국과 백성들을 위해 목숨이라도 내던질
각오가 된 영웅의 눈빛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인로버는 화끈거리는 얼굴에 부채질하며 말했다.
“큼!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전 이만 가봐야겠어요.”
“···그렇습니까?”
“아, 네. 원래 잠깐 얼굴만 보고 가려고 했어요. 그러니 너무 섭섭해하지 마
세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이상한 것 같긴 하지만 황녀 전하가 바쁘
시다는 데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음에 기회 되면 여유롭게 차나 한잔해요. 그럼···”
“황녀님.”
황녀는 급하게 떠나려다가 발을 멈췄다.
“네?”
“전에 약속하신 연극은 언제 보시겠습니까?”
황녀의 얼굴이 더욱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티그리스가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
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6월 11일이 제 생일이에요. 그날 보러 가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중에 뵈어요.”
황녀는 잰걸음으로 떠났다.
황녀가 떠나자 때마침 마테오가 나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황녀가 갈 때까지 기다린 것이었다.
마테오는 황족을 모시는 그람 가문 출신답게 황녀와 티그리스가 나눈 이야기
를 엿듣지 않았다. 그저 황녀가 가길 가만히 기다린 것이었다.
이 정도 센스가 있어야 황궁의 보고를 지키는 보고지기가 될 수 있는 모양이
었다.
마테오는 평범한 돋보기 같은 것을 하나 들고 왔다.
“성물을 지금 검사해도 되겠습니까?”
티그리스는 연인 자리의 성물을 마테오에게 건넸다.
마테오는 돋보기로 연인 자리의 성물을 가까이서 들여다봤다. 그리고 고개를
곧바로 끄덕였다.
“검사가 끝났습니다. 다행히 보고 안에 있는 성물이나 아티팩트에 영향을 끼
칠 성물은 아니군요.”
“그렇게 빨리 끝나나?”
“그게 이 성물의 능력입니다. 티그리스 공자님도 살펴보십시오. 그냥 돋보기
로 성물을 들여다보시면 됩니다.”
티그리스는 마테오에게 돋보기와 연인 자리의 성물을 받곤 들여다봤다.
그러자 이 연인 자리의 성물의 능력이 무엇인지 곧바로 이해했다.
“이 성물은 굉장히 특이하군.”
연인 자리의 성물이 아니라 이 모험가의 돋보기를 뜻하는 것이었다.
제국 공통어와 같은 언어체계로 성물의 능력이 무엇인지 설명해주는 것이 아
니라 그냥 직관적으로 이해시켜주었다.
“이 성물의 정확한 능력이 뭐지?”
“이 모험가의 돋보기는 유일하게 무슨 능력이 있는지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는 성물입니다.”
“···우문이었군.”
성물의 능력 무엇인지 알려면 이 모험가의 돋보기가 필요하지만, 이 모험가의
돋보기론 이 모험가의 돋보기 자체를 확인할 수 없었다.
그저 성물을 확인하는 도구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아무튼 이 모험가의 돋보기 덕분에 이 연인 자리의 성물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기존 연인 자리의 성물인 페르셴과 아드네의 능력의 큰 차이는 없었다.
상대방이 위험에 처하면 위험을 감지할 수 있고 그 상대방이 있는 근처로 순
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여기에 세 번째 능력이 추가되었는데, 그건 바로 복제 능력이었다.
이 연인 자리 성물 자체를 총 5개까지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복제품의 위험 감지와 순간이동 능력의 발현은 오직 진품을 들고 있는 사람에
게만 발동된다는 점이 아쉽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일단 리니아와 샤를로트 그리고 라칸에게 복제품을 건네주면 총 두 개가 남
는군.’
나머지 2개의 여유분은 상황에 맞춰서 사용하면 될 것 같았다.
“그럼 바로 1등 보고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이 성물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았으니 이제 1등 보고에서 성물을 하나 받는 일
만 남았다.
“그러지.”
티그리스는 보고로 들어갔다.
전과 똑같이 어두컴컴하고 구불구불한 내부를 지나가니 어느새 3층에 위치한
1등 보고에 도착했다.
1등 보고 내부는 2등 보고와 많이 달랐다.
우선 2등 보고는 각종 성물과 아티팩트가 마치 도서관의 책들처럼 꽉꽉 차 있
는 느낌이었다면, 1등 보고는 미술관에 걸려있는 예술품 같았다.
한 10분 정도만 시간이 주어진다면 세어볼 수 있을 정도로 적었지만, 그만큼
각각의 성물들과 아티팩트들에게선 영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테오는 티그리스에게 모험가의 돋보기를 건넸다.
“1등 보고에 있는 성물들의 능력은 제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그 돋보기로
확인해보시는 편이 훨씬 나으실 겁니다. 아티팩트나 영약을 찾으시는 거라면
제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알겠네.”
영약이나 아티팩트는 볼 필요도 없었다.
쓸만한 영약의 위치는 티그리스가 알고 있었고, 아티팩트는 수준 높은 마법사
들이 많은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에게 무용지물이었다.
티그리스가 고를 것은 성물밖에 없었다.
티그리스는 성물이 모여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안에 있는 성물들은 모두 하나같이 나라와 민족을 구한 서사가 담겨 있는
성물이기에 어마어마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수십 개의 성물 중에 티그리스의 시선을 끄는 성물이 하나 있었다.
수려한 은빛을 토해내고 있는 폭이 좁은 롱소드였다.
‘현자의 검이 여기에 있었군.’
라칸이 회귀 전에 사용했던 주 무장이자 ‘현자의 눈’ 자리를 상징하는 성물이
었다.
44. 케일 자작(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