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7화 – 복수(1)
혈귀는 아직도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존재다.
몬스터인지 아니면 인간인지 아니면 일종의 현상인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그저 5년 전부터 갑자기 허리케인처럼 나타나 모든 것을 쓸어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사라졌다.
그러나 한 가지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면 전쟁이 일어나는 중에 갑자기 혈귀가 나타났다는 것이었다.
당연하겠지만 벨프 백작 가문과 빈스모크 백작 가문 간의 전쟁에서도 나타났다.
빈스모크 백작의 남동생이 벨프 백작에게 살해당했다는 이유로 일어난 전쟁이지만, 빈스모크 백작의 남동생은 벨프 백작과 정당한 결투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기에 전쟁이 일어날 것까진 없었다.
하지만 명분은 말 그대로 명분일 뿐이다. 빈스모크 가문은 그 결투가 정당하지 않았다며 흠을 잡았고 선전포고를 했다.
사실 빈스모크 백작은 벨프 백작 가문의 영토를 집어삼키기 위해 10년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고, 빈스모크 가문의 야심을 알지 못했던 벨프 백작 가문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말았다.
결국 벨프 가문의 성까지 밀린 벨프 가문은 결국 황국에게 중재 요청을 했다.
황국은 베르강을 파견해 중재하려던 찰나 혈귀 사태가 일어났다.
아이린은 가끔 생각한다.
만약 빈스모크 가문이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만약 빈스모크 백작이 욕심만 부리지 않았다면 아이린은 오라버니의 대검을 들고 있었을까?
아이린은 혈귀를 죽도록 증오했지만 그만큼 빈스모크 가문도 증오했다.
아이린은 대검을 검집에서 뽑은 뒤 땅에 내던졌다.
분노로 점화된 복수의 불꽃이 뇌를 뜨겁게 달궜다.
“검을 뽑아라. 로이. 네놈에게 생사결의 결투를 신청한다.”
“참나 벨프 놈들 성질머리 하난 인정해줘야 해. 머리는 나쁜 데 성질이 더러우니 멸문을 당하지 쯧쯧.”
“···당장 뽑지 않으면 널 죽여버리겠다. 로이.”
로이는 어이없다는 듯이 아이린을 쳐다봤다.
“참나, 내가 격이 떨어지게 왜 너랑 결투를 하냐. 격이 맞는 상대 하고 결투를 해야지.”
아이린은 더 이상의 모욕을 견딜 수 없었다.
아이린의 몸이 로이를 향해 튕겨 날아가려던 찰나 누군가 앞을 막아섰다.
샤를로트였다.
“아이린 정신 차려.”
“선배. 비키세요.”
“야! 아이린!”
“전 지금 당장 저 자식을 죽여야겠어요.”
아이린의 눈동자가 이미 돌아갔다. 만약 아이린을 막는 사람이 샤를로트가 아니었다면 아예 무시하고 달려들었을 것이다.
샤를로트는 뒤를 흘금 봤다.
검녹색 머리칼의 재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내.
샤를로트는 저 새끼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봤다.
빈스모크 백작의 삼남 로이였다.
작년에 제국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으로 워낙 질이 좋지 않기로 소문난 녀석이라 샤를로트도 알고 있었다.
“아이린 네가 왜 화가 나는지 알겠는데 일단 참아. 로이가 뭔가를 노리고 널 도발한 거잖아.”
그래도 참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벨프 가문의 멸문을 촉발하고, 벨프 가문의 병사들과 기사들을 죽인 원수의 아들이 눈앞에 있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는가.
샤를로트는 더 일이 커지기 전에 아이린을 등에 지고 로이를 쏘아봤다.
“로이.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뭘 노리고 아이린 앞에 온 거야?”
“그냥 인사만 하려고 온 거지.”
“인사는 개뿔. 지금 네 가문하고 아이린하고 무슨 관계인지 몰라? 그런데 인사를 한다고?”
“그건 옛날 일이잖아. 그리고 이렇게 흥분할 줄은 몰랐지. 티그리스 교관님의 직속 제자가 되었다길래 사람이 변했나 해서 왔더니만 역시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네.”
아이린은 더 이상 모욕을 참을 수 없었다.
아이린은 샤를로트를 지나쳐 놈에게 돌진했다.
“아이린! 안돼!”
훙-!
아이린의 흑룡아가 놈에게 날아가자···
하늘에서 난데없이 거대한 거북이 하나가 떨어졌다.
쩡-!
거북이의 단단한 등껍질이 아이린의 대검을 막았다.
로이도 갑자기 하늘에서 거대한 거북이가 떨어지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나며 로이의 머리와 옷을 더럽혔다.
“지금 제국 대학 앞에서 무슨 추태죠?”
아이린과 샤를로트 그리고 로이는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레인로버 황녀였다.
샤를로트는 반사적으로 황녀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위대하신 황금의 일족을 뵙습니다.”
아이린도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고 예를 표했다.
주변에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로이는 황녀의 등장에 당황해 얼어붙었다.
“로이. 당신 무릎은 꽤 무거운가 봐요?”
“아···. 죄송합니다. 전하.”
로이는 황급히 예를 표했다.
로이는 입술을 깨물었다.
로이의 계획에 황녀는 전혀 없었다.
로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빈스모크 백작님의 명에 따라 아이린과 티그리스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데 있었다.
티그리스의 제자인 아이린이 무방비 상태의 기사에게 검을 휘둘렀다는 소문이 퍼지면, 둘 다 난감해 할 것이니까.
레인로버는 자이언트 터틀의 등껍질을 살폈다. 아이린의 대검과 부딪힌 자리에 흠집이 났다.
“괜찮니? 티티야?”
-하암~
자이언트 터틀은 느긋하게 하품했다. 레인로버는 자이언트 터틀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었다.
“나중에 약 발라줄게. 잠시 들어가 있으렴.”
레인로버는 회수 마법으로 자이언트 터틀을 소환 주머니에 다시 집어넣었다.
레인로버는 주변을 잠깐 살폈다.
이곳에서 로이와 아이린을 추궁하기엔 보는 눈이 너무 많았다.
게다가 아이린은 티그리스의 직속 제자다.
괜한 일로 구설수에 오르면 티그리스의 명예가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자리를 피해서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 알아내고 수습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이린, 샤를로트 그리고 로이는 절 따라오세요.”
* * *
제국 대학 내 작은 교실.
지금은 아무도 사용하지 않고 있었기에 텅 비어 있었다.
레인로버는 사일런스 마법을 펼치고 입을 열었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분히 얘기해주시겠어요?”
로이는 다급히 말했다.
“전 아이린에게 제가 로이 드 빈 스모크라고 밝혔을 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린이 저를 공격했습니다.”
“그게 맞나요? 아이린?”
아이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네. 맞습니다. 그런데 로이는 제 가문을 먼저 모욕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짜고짜 검을 휘두른 것은···!”
“둘 다 조용히 하세요.”
레인로버의 말에 둘은 입을 다물었다.
“샤를로트 당신이 최초 발견자인 것 같은데 둘 사이에 어떤 말이 오갔죠?”
“처음부터 들은 것은 아니지만 아이린은 로이에게 결투를 신청했고 로이는 격이 떨어지니 받을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레인로버는 로이를 쏘아보며 말했다.
“정말로 그렇게 말했나요? 로이?”
“그···그건 맞지만···.”
“그러니까 빈스모크 백작의 삼남인 당신이 아이린의 면전에 대고 벨프 가문의 멸문을 들먹이고, 게다가 결투 신청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격이 떨어져서 받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저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아이린도 잘못하지 않았습니까? 아이린은 제게 다짜고짜 대검을 휘둘렀습니다. 제가 피하지 못했다면 죽을 수도 있는 치명상이었단 말입니다. 죄의 경중을 따지자면 아이린 쪽이 더 큽니다.”
“그것은 아이린이 잘못한 것은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당신이 일부러 아이린을 도발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군요. 제 말이 틀렸습니까?”
로이는 식은땀을 흘렸다.
로이는 원래 이럴 계획이 아니었다.
로이는 아이린의 대검에 살짝 맞아 다칠 예정이었다. 무방비 상태인 사람에게 검을 휘두른 것은 아무리 상대방이 모욕했다고 할지라도 용납이 되지 않는 중죄였으니까.
그러면 빈스모크 백작님이 원하셨던 대로 티그리스와 아이린의 명예를 바닥까지 실추시킬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첫 공격을 그냥 맞을걸.’
아이린의 기습 공격이 워낙 매서웠던지라 자기도 모르게 피해버렸다.
그래서 뒤이은 공격을 막으려고 했지만, 하늘에서 자이언트 터틀이 떨어져 검을 막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제가 입회를 설 테니 둘은 서로의 명예를 걸고 결투를 하세요.”
“네?! 결투를 말씀이십니까?”
“아이린도 로이에게 검을 휘두른 것은 잘못한 일이고 로이 당신이 아이린에게 모욕을 준 것도 잘못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귀족이자 기사답게 해결해야죠.”
결투를 해선 의미가 없다.
로이는 결투를 통해 아이린을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린이 자신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했다.
결투로 사건이 모두 해결되어 버리면 빈스모크 백작님의 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아이린은 품에서 흰 장갑을 꺼내 로이에게 던졌다.
흰 장갑이 로이의 가슴팍에 맞고 바닥에 툭! 떨어졌다.
“나 아이린 드 벨프는 로이 드 빈스모크에게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결투를 신청한다.”
로이는 아이린을 쏘아봤다. 이걸 받지 않으면 더 큰 문제가 일어난다.
만약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결투를 받지 않으면 로이는 평생 결투를 피한 겁쟁이가 되고, 잘못하면 빈스모크 백작가에서 쫓겨날 수 있었다.
받긴 받아야 하는데 이래선 계획이 완전히 틀어져 버리고 만다.
로이는 이를 으득 갈며 장갑을 주웠다.
“결투를 받아들이지.”
로이는 레인로버 황녀를 보며 말했다.
“대신 지금 당장 결투하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제가 들고 온 이 검은 결투에 적합하지 않은 검이라 다른 검으로 아이린과 결투를 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건 핑계였고, 일단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빈스모크 백작에게 보고하고 지침을 받아야만 했다.
로이는 단순히 아이린에게 잘못을 유도하라는 지시만 받았을 뿐 일이 틀어졌을 시에 어떻게 진행하라는 지시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정당한 요구이니 받아들이겠습니다. 언제 결투할 건가요?”
“다음 주 수요일. 그때 진행하겠습니다.”
레인로버는 눈썹을 찌푸렸다.
“다음 주 수요일이 무슨 날인지 알고 있나요? 로이?”
“···네?”
“다음 주 수요일은 황제 폐하께서 모든 영주들에게 내부 점검 결과 보고를 받는 날입니다. 그 후에 빅토리에에 떨어진 계엄령을 해제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날이기도 하죠. 그 중요한 날에 꼭 결투를 해야겠습니까?”
그날 레인로버는 국정 업무 때문에 그날 입회를 설 수 없었다.
그것을 떠나 황국의 귀족이란 자가 황국의 중대사를 모르는 것은 수치스러워 해야 할 일이었다.
로이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다음 주 월요일에 하겠습니다.”
“그럼 월요일 오후 4시에 결투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입회자인 제가 장소를 섭외해 둘테니 그때까지 준비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로이는 이만 가보세요.”
명백한 축객령에 로이는 입술을 씹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만 가보겠습니다.”
로이는 문을 닫고 나갔다.
레인로버는 팔짱을 낀 채 아이린을 쳐다봤다.
“아이린.”
“···예. 황녀 전하.”
“지금 굉장히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거 알고 있죠?”
아이린은 고개를 떨궜다.
“예. 알고 있습니다.”
“스승이 제자의 잘못을 감싸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제자도 스승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죠. 이제 티그리스 경은 단순한 제국 대학의 교관이 아닙니다. 황도를 구한 영웅입니다. 그걸 잘 알고 계시잖아요.”
“···죄송합니다.”
아이린은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아이린은 다른 것들은 다 참을 수 있었다.
아이린의 대검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는 것도, 티그리스의 옆에 거머리처럼 붙어있다는 말을 듣는 것도.
하지만 벨프 가문을 모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그것도 벨프 가문의 멸망을 촉발했던 빈스모크 가문 사람이 모욕하는 것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샤를로트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아이린의 손을 잡아주었다.
“아이린···.”
레인로버는 아이린의 눈물에 가슴이 쓰려왔다.
만약 황국이 더 빨리 벨프 가문과 빈스모크 가문의 전쟁을 중재해줬다면 벨프 가문이 무너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레인로버는 아이린의 눈물에 책임감을 느꼈다.
레인로버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아이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이린 당신이 느끼고 있는 그 분노를 제가 감히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어요. 하지만 당신이 당한 모욕을 씻어낼 기회를 줬으니 잘 해봐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이것밖에 없네요.”
“···감사합니다.”
아이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반드시 로이와의 결투에서 승리하고 말 것이다.
* * *
철도 위를 달리는 열차 안.
루카스 드 빈스모크 백작은 막내 아들이 보낸 전문을 와락 구겼다.
“쓸모없는 놈. 그 쉬운 일 하나 제대로 못 하다니.”
루카스는 아들에게 정말 쉬운 일 하나를 맡겼다.
아이린을 도발하여 잘못을 유도할 것.
그 이유는 단순했다.
아이린을 타고 티그리스를 치고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잘하면 티그리스를 죽이거나 반병신으로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기회였는데···.’
빈스모크 백작은 티그리스를 찢어 죽이고 싶었다.
황도의 키메라 실험실을 찾아냈을 때 식은땀을 흘렸다. 키메라 실험실을 지을 자금 일부가 빈스모크 백작의 호주머니에서 나왔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케일 자작까지 티그리스가 잡아냈으니 황국은 빈스모크 가문이 키메라 실험실에 자금을 댔다는 명백한 증거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그럼에도 황국이 조용한 이유는 하나였다.
‘내 약점을 쥐고 흔들 생각이겠지.’
현재 황국 서쪽의 흑토 지대를 안정시킬 수 있는 가문은 빈스모크 가문 외엔 없다.
흑토 지대는 황국 최대의 곡창지대고 언덕이 없는 평지로 구성되어 있어서 지리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나 주변 영지 간 전쟁이 굉장히 빈번한 지역이었다.
대륙을 지배했던 여러 황국이 이 흑토 지대를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지만, 외세의 간섭을 극도로 꺼리는 흑토 지대의 가문들은 황국이 간섭하려 하면 단체로 들고 일어나 식량을 무기로 황국을 위협했다.
현재 루체트 황국도 흑토 지대만큼은 건들 수 없을 정도였고, 황국의 땅이긴 하지만 거의 길리온 왕국처럼 아예 다른 왕국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외세의 간섭을 꺼렸다.
이런 군소 영주들 간의 전쟁을 중재해줄 수 있는 정통성과 힘을 모두 갖춘 가문은 역사적으로 벨프 가문과 빈스모크 가문 두 가문밖에 없었다.
벨프 가문은 드래곤으로부터 흑토 지대를 구원한 구원자로 단숨에 권력을 쥐었고, 빈스모크 가문은 약 천 년간 흑토 지대에서 생존한 유서 깊은 귀족이었다.
그런데 현재 벨프 가문이 빈스모크 가문에게 멸문을 당했으니 흑토 지대 내 빈번히 일어나는 영주들 간의 싸움을 중재해줄 수 있는 가문은 빈스모크 가문밖에 없었다.
빈스모크 가문이 멸문당하면 빈스모크 가문이 지배하고 있던 영토를 집어삼키기 위해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면 다음 해 황국은 흑토 지대에 새 패권자가 등장할 때까지 대기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황국에게 약점이 잡혀 휘둘리는 것은 빈스모크 백작에게 있어서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빈스모크 백작은 백작으로 끝나고 싶지 않았다.
왕이 되고 싶었다.
황국에 세금을 매년 가져다 바치는 불합리한 관계에서 벗어나 길리온 왕국이나 고디바 왕국의 왕들처럼 왕으로 거듭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티그리스를 죽여야 한다.’
사실 티그리스를 건드는 것은 무의미하지만, 최근 벨프 가문을 멸문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던 아르펨과 레비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티그리스를 죽인다면 당장 왕이 될 수 있게 모든 지원을 다 하겠다고.
그래서 아이린을 노린 것이다.
티그리스에게 아이린의 죄를 묻고 빈스모크 가문의 최고의 기사이자 양자인 ‘오슬로’와 생사결을 벌여 죽일 예정이었다.
하지만 초장부터 일이 틀어져 버렸으니 답이 없었다.
루카스는 뒤에 있는 집사에게 말했다.
“로이에게 생사결을 하라고 말해라.”
“···생사결을 말씀이십니까?”
“둘 중에 누가 죽어도 상관은 없으니까.”
로이가 죽어도 티그리스에게 죽은 로이의 명예를 되찾아 주겠다며 티그리스에게 걸 수 있었고, 아이린이 죽어도 벨프 가문의 싹을 잘라버릴 수 있는 거니까.
둘 중에 무엇이 되었든 상관이 없지만 웬만하면 아이린이 죽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래도 빈스모크 백작 가문의 아들이 벨프 가문의 여식에게 죽었다는 건 별로 보기 좋지 못하니까.
루카스에게 있어서 아들들은 체스판의 말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