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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50화 (50/251)

#050화 – 루카스(1)

레니는 조간신문을 가져오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우와···. 오늘도 장난 아니네···.”

엘리베이터 스크린에 비친 노르베르드 타워 아래엔, 개미들이 사탕에 몰려든 것처럼 기자들이 노르베르드 타워를 둘러싸고 있었다.

티그리스가 변이체를 죽이고 난 후에도 기자들이 많이 모이긴 했는데, 아이린이 로이를 이긴 후부터는 인근 도로를 꽉 채울 만큼 사람들로 가득했다.

띵-!

레니는 1층에 내려오자마자 엘리베이터 바로 앞에 놓여있는 신문을 빠르게 집었다.

그때, 기자들이 레니를 향해 질문을 다급히 던져댔다.

“어?! 저기요! 인터뷰 좀 해줘요!”

“혹시 오늘 티그리스 경께서 몇 시에 나오십니까?!”

“아이린 씨는 오늘 기자 회견을 하실 수 있다고 하십니까?”

“죄···죄송합니다아아아!”

레니는 빠르게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레니의 심장은 콩닥콩닥 뛰었다.

레니는 아직 사람들의 관심이 익숙하지 않았다.

레니는 떨리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신문들을 거실 테이블 위에 하나 그리고 티그리스의 서재에 하나 올려놓았다.

제인은 재빠르게 거실 벽을 통과해 레니에게 달려들었다.

“레니이이~ 신문 왔어?!”

“아, 네. 지금 보시게요?”

“응!”

제인은 요즘 신문 보는 맛에 살았다.

제인이 신문을 보기 시작한 건 티그리스가 변이체를 죽이고 굉장히 유명해졌을 때부터였다.

기자들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진실보단 자극적인 내용을 적기 바빴다.

이미 티그리스는 5개 고리를 완성했다고 하는 기자도 있었고, 티그리스의 실력은 황국 내 20위 안에 들 것이라 말하는 기자도 있었다.

‘멍청한 녀석들. 티그리스는 겨우 그 정도 수준이 아니라고.’

티그리스의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제인은 기자들이 쏟아내는 추측보다 훨씬 뛰어난 존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졌다.

“흥~ 흥~”

제인은 헤드라인을 재빠르게 훑었다.

<티그리스, 오늘 황궁에서 논공행상이 있을 예정···>

<케일 자작을 잡은 티그리스, 수사 능력까지 있었나?>

<티그리스의 심복 라칸은 누구인가?!>

<아이린 드 벨프, 빈스모크 백작 가문의 삼남 로이를 상대로 완승.>

<아이린, 기자 회견할 생각 없어···.>

기자들은 열심히 티그리스와 아이린의 비밀을 캐내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지만, 아이린과 티그리스는 테라스에서 여유롭게 개인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아이린은 기자 회견을 정말 할 생각이 없대?”

“네. 그런 것 같아요.”

“흠~ 뭐, 나 같아도 절대 안 해주겠다.”

3년 전 벨프 가문이 멸문당했을 때, 기자들은 아이린과 그녀의 어머니 로라 드 벨프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루카스가 금화로 기자들의 눈을 가리고 펜을 꺾었기 때문이었다.

<빈스모크 백작, 흑토 지대 내 기자들에게 보도지침을 내렸나?!>

<아이린 드 벨프의 외가 벨리우스 자작가는 왜 두 모녀에게 도움을 주지 않았는가?!>

제인은 신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이렇게 티그리스처럼 신비주의 노선을 타는 것도 나쁘지 않긴 하지. 알아서 일해 주잖아?”

어설프게 언론 플레이를 할 바엔 이렇게 침묵하는 게 나았다.

기자들이 애가 타서 아이린과 관련된 내용을 스스로 발굴해 신문에 실었으니까.

한창 제인이 신문에 빠져있을 무렵, 티그리스와 샤를로트 그리고 아이린과 리니아는 거실로 들어왔다.

레니와 카렌은 네 사람에게 수건과 함께 생수를 건넸다.

티그리스는 수건으로 땀을 닦은 뒤 레니에게 말했다.

“곧 황궁에 가야 하니 준비를 부탁하마.”

“예. 알겠습니다.”

오늘은 지방 영주들의 내부 점검 보고와 함께 논공행상이 있는 날이었다.

동시에 빈스모크 가문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러 가는 날이었다.

* * *

티그리스와 아이린은 마차에 올라탔다.

아이린은 오전에 학교 수업이 있어서 같이 가기로 했다.

마차 문을 닫자 기자들의 시끄러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이린은 마차가 출발하자 입을 열었다.

“스승님. 감사합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이 왜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는지 알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어머니, 로라가 기자들에게 휩쓸릴 것을 예상했다.

그래서 로라가 일하고 있는 미들타운의 청과점에 베이튼을 보내 고급 호텔 스위트룸에 머물게 했다.

“별것 아니다.”

아이린은 작은 주먹을 꽉 쥐었다.

티그리스는 그냥 말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아이린에겐 아니었다.

아이린은 티그리스가 정말 고마웠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말하거라.”

“왜 저를 이렇게 챙겨주시는 것입니까?”

아이린은 지금까지 티그리스의 제자가 된 이유는 샤를로트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샤를로트 혼자 수련하는 것보단 함께 수련하면 더 오래 할 수 있고 자극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로이 사건을 겪으며 티그리스가 아이린에게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해주었는지 알 수 있었다.

반동 검술을 파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고, 결투 전후에 티그리스가 함께 있어 주었으며, 미처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던 어머니를 챙겨주었다.

그리고 이번 결투에서 로이가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을 황제에게 고발할 예정이었다.

티그리스는 스승으로서 해줄 수 있는 것 그 이상을 아이린에게 해주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입을 열었다.

“넌 내 제자다. 그 이유 하나면 충분하다.”

“정말 그 이유 하나뿐입니까?”

아이린의 눈은 진실을 원하고 있었다.

“물론 너도 눈치챘다시피 네게 바라는 게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을 떠나 네가 나와 사제의 연을 맺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말이다.”

“제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강해져라. 네가 만족할 때까지.”

붉은 혈귀는 6성 기사였던 아버지를 죽였다.

아이린은 붉은 혈귀에게 복수할 것이기에 최소 6성 기사 이상의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 말은 티그리스는 아이린이 소드 마스터가 되길 바란다는 말과 똑같았다.

아이린은 왜 그렇게 강해져야 하는지 캐묻지 않았다.

티그리스가 언젠가 아이린에게 부탁할 날이 오면, 아이린은 기꺼이 티그리스의 검이 되어 목숨이라도 내놓을 테니까.

“네가 온전히 홀로 설 때까지 네 우산이 되어주마.”

“···예. 알겠습니다.”

7개의 고리를 만들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 * *

황궁의 회의실.

황제로부터 봉토를 받아 관리하는 총 374개의 귀족 가문 중 노르베르드 가문과 프리하르덴 가문을 제외한 모든 가문이 도착했다.

노르베르드 가문과 프리하르덴 가문은 멸지를 지켜야 하는 의무를 지니고 있었기에, 황제에게 특별히 그 두 가문은 서면으로 보고를 받기로 했다.

“···황제 폐하께서 많이 늦으시는군.”

회의 시간이 지난 지 이미 1시간이 넘었지만, 황제는 나타나지 않았다.

루카스는 이게 영주들을 길들이기 위한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불만이 가득 찼지만, 지금은 넙죽 엎드려야 할 때다.

오늘은 내부 점검 보고를 빙자한 처형식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황제는 빈스모크 백작 가문을 포함해 황도 지하에 있는 키메라 실험실에 자금을 댄 자들의 목록을 갖고 있었다.

별것 아닌 가문들은 오늘 이 자리에서 파리처럼 쓸려나갈 것이다.

“황제 폐하 납시오!”

오직 황제만이 드나들 수 있는 문으로 토드 황제가 들어왔다.

그러자 모든 영주와 가신들은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토드 황제는 황좌에 앉았다.

토드 황제의 표정은 마치 굶주린 호랑이 같았다.

루체트 황국은 과거 팍스 황국처럼 중앙집권이 강한 황국이 아니었다.

팍스 황국의 황제가 군대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면서 지방 영주들은 용들의 습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황제의 외가(外家)가 황제를 쥐락펴락하면서 황국이 심하게 부패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참지 못한 루체트 가문이 반란을 일으켜 팍스 가문을 몰살시켜버렸고, 용들을 사냥하기 위한 인류 연합군을 구성한 것이 루체트 황가 탄생의 시초였다.

그래서 루체트 황가는 팍스 황국의 과오를 답습하지 않기 위해 지방 영주들에게 많은 권한과 자유를 부여했고 세금도 덜 걷었다.

토드 황제는 당시 선조들의 선택이 분명히 옳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오래된 법도를 300년 동안 지속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고 시대가 변했으면 그에 맞는 법도를 세워야 했다.

토드 황제는 오늘 새로운 질서를 황국에 새기기로 결심했다.

“짐이 하나 약속하겠다.”

토드 황제의 입이 열리자 모두 숨을 죽였다.

“지금 스스로 죄를 고백한다면 관련자 외 후손들은 건들지 않겠다.”

토드 황제는 환관에게서 두루마리를 건네받았다.

“이 안에 케일 자작과 그 아들들이 토해낸 악독한 자들의 명단이 있다. 그리고 황도뿐만이 아니라 각 영지에 숨어 있는 키메라 실험실의 정확한 위치도 있지.”

황제는 식은땀을 흘리는 영주들을 훑었다.

“내가 두루마리를 열고 지금 읊기 시작하면 그 가문 전체는 내 칼날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죄를 고하라.”

키메라 실험과 인체실험이 금지된 이유가 무엇일까?

도덕적인 이유도 있고 황국의 법도로 금지하기도 했지만, 그건 고대 멸지의 마왕이 몬스터를 만들어낸 방식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왕의 시대가 끝나고 마녀의 시대가 도래했을 때, 모든 왕국은 키메라 실험과 인체실험을 금지했다.

또 다른 마왕을 탄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끔찍한 행동을 황도 지하에서 실시했으니 그건 죽어 마땅한 일이었다.

그때, 네 명의 영주들이 황제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모두 흑토 지대를 다스리는 남작과 자작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대표로 브란코 자작 가문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데오 디 브란코 외 세 가주는 황제 폐하께 죄를 고합니다.”

토드 황제는 데오가 아닌 루카스를 노려봤다.

루카스는 이렇게 될 것을 예상하고 희생자를 미리 준비했다.

루카스는 단 한 번도 직접적으로 케일 자작에게 자금을 넘긴 적이 없었다.

모두 브란코 자작을 포함해 네 귀족을 한번 거쳐서 자금을 전달했다.

한 마디로 자금 세탁을 했다는 뜻이었다.

케일 자작의 입에서 빈스모크 백작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물증이 없는 한 루카스를 구속하거나 사형을 시킬 수 없었다.

그리고 루카스의 영지 안에 키메라 실험실이 있긴 했으나, 그 키메라 실험실 관리와 감독은 저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마노 남작을 거쳐서 진행했다.

그 키메라 실험실은 황도에 오기 전에 싹 정리하라고 했으니 인퀴지터가 지금 쳐들어간다고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었다.

뒤이어 여섯 가문의 가주가 무릎을 꿇었다.

모두 바로스 후작의 영향권에 있는 가주들이었다.

“고루 드 벤딩크 자작 외 다섯 가주는 황제 폐하께 죄를 고합니다.”

베일 드 바로스 후작도 루카스와 마찬가지로 자금 세탁을 돌렸고, 후작령 내부에 있는 키메라 실험실도 이미 정리했다.

그 외에 여섯 가문도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그들은 개인적으로 케일 자작에게 자금을 지원하거나 키메라 실험실을 지었던 가문이었다.

총 열여섯 가문이 목을 내밀었지만 토드 황제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저들은 모두 잔챙이들이다.

진짜 머리는 루카스와 베일이었다. 저 둘의 머리를 지금 당장 쳐야 하지만 치는 순간 황국은 전쟁통에 휘말린다.

현재 길리온 왕국이 호시탐탐 황국의 영토를 넘보고 있는 상황에서, 두 가문과 전쟁을 동시에 벌이면 황국은 산산조각이 난다.

이게 루체트 황국의 현실이었다.

황국의 최고 존엄이라 불리는 황제가 저 간악한 빈스모크 백작과 바로스 후작의 머리를 치지 못하는 게 작금의 상황이었다.

토드 황제는 드디어 자신의 위치가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았다.

“약속대로 네놈들의 목을 치되 관련되지 않는 자들은 건드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귀족의 지위와 권리는 모두 박탈당할 것이며 그대들이 축적한 모든 재산은 황국에게 귀속될 것이다. 또한 해당 영지는 짐이 파견한 행정관들에 의해 직접 통치될 것이다.”

황제는 황금 기사단들을 보며 말했다.

“뭐 하느냐. 당장 죄인들을 하옥하라.”

“예. 폐하!”

가주들은 기사들에 의해 모두 끌려갔다.

모두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끌려 나갈 때, 비명은 없었다.

살아남은 귀족들은 모두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토드 황제는 두루마리를 환관에게 다시 넘겼다.

지금은 이쯤에서 만족해야 한다.

한 번에 저 두 가문을 모두 쳐내버리면, 황제야 마음이 편하겠지만 백성들이 큰 혼란에 빠진다.

그러나 한 놈씩 한 놈씩 차례대로 쓸어버릴 것이다.

토드 황제는 자신의 자리를 해리 황자에게 물려주기 전에 저들의 목을 모조리 쳐버릴 생각이었다.

토드 황제가 잘못한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처리하는 것이 맞으니까.

“각 영주들의 내부 점검 보고는 듣지 않겠다. 귀가 썩을 것 같으니 이번 주 중으로 서면으로 꼼꼼히 작성해 보고하라.”

“예. 폐하.”

“그리고 짐의 수사관들을 각 영지에 파견할 것이다. 만일 보고한 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가문들은 짐의 분노를 피해 가지 못할 것이다.”

“예. 폐하.”

환관은 고개를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그럼 곧바로 논공행상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리하라.”

토드 황제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이번 케일 자작을 잡은 티그리스와 라칸에게 상을 내리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티그리스와 라칸이 당당하게 걸어왔다.

티그리스와 라칸은 중앙에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맞습니다.”

“라칸 우드,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맞습니다.”

황제는 직접 일어나 둘에게 다가갔다.

“둘은 모두 예를 풀라.”

황제는 둘을 마치 아름다운 보석을 보듯이 쳐다봤다.

이 둘이 없었다면 케일 자작을 잡아내지 못했을 것이고, 썩어빠진 가주들의 목을 치지 못했을 것이다.

황제는 티그리스의 어깨를 잡았다.

어깨에 닿은 황제의 손은 뜨거웠다.

“티그리스, 자네가 있어서 정말 든든하네. 정말 고맙네.”

“황제 폐하의 믿음에 보답했을 뿐입니다.”

황제는 환관이 가져온 커다란 황금색 상자를 티그리스에게 건넸다.

“수인족 자치구의 밀림에서 얻은 붉은 마나초 10뿌리일세. 자네에게 영약이 필요할 것 같아 준비했네.”

마나초 중 최고로 치는 붉은 마나초는 굉장히 보기 드물고 영험한 기운이 있는 영약이었다.

물론 별빛을 머금은 얼음 정수보단 못하긴 하지만 야생에서 얻을 수 있는 영약 중에서 거의 최고급 영약이었다.

이걸 하나도 아닌 10뿌리나 주었으니 당분간 영약 걱정은 없었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앞으로 더 정진하게. 제자 둘을 받았다고 하니 그 둘에게도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 같군. 다시 한번 진심으로 고맙네.”

황제는 다음으로 라칸을 봤다.

“라칸, 이번 케일 자작을 찾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들었네. 정말 고맙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라칸은 이번엔 울지 않았다.

관련 퀘스트가 뜨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2등 보고의 문을 허락할 테니, 황국에 원하는 보물이 있다면 가져가도 좋네.”

“황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황제는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티그리스 자네가 짐에게 할 말이 있다고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폐하.”

루카스는 눈썹을 찌푸렸다.

‘저놈이 또 무슨 짓을 벌이려고···.’

티그리스가 움직일 때면 자꾸 예상치 못한 곳에서 손해를 입는지라 루카스는 짜증이 났다.

“이틀 전, 루카스 드 빈스모크의 아들 로이가 제게 죄를 고백했습니다.”

루카스는 움찔했다.

토드 황제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무슨 죄를 고백했지?”

“아이린과의 결투 직전에 루카스의 아들 카터에게 ‘찰나의 순간’이라는 약물을 받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루카스는 아차 했다.

저놈이 하필 이런 안 좋은 상황에 저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루카스는 다급하게 말했다.

“황제 폐하.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그것은 아이린과 로이의 개인적인 결투 문제이옵니다.”

황제는 손을 들어 루카스의 말을 막았다.

“일단 더 들어보도록 하지.”

티그리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이는 오로지 검만을 사용해 결투하겠다는 신성한 약속을 어긴바, 아이린의 명예를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백성의 작은 고충도 황제의 고충이니, 티그리스 경의 고충도 짐의 고충이다. 짐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면 해줘야겠지. 티그리스 경은 내게 무엇을 원하는가?”

“아이린이 스스로 명예를 되찾기엔 아직 미약하니, 스승 된 자로서 대신 아이린의 잃은 명예를 되찾아 주고자 합니다.”

티그리스는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는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저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는 카터 드 빈스모크에게 생사결을 청하고자 하니, 황제 폐하께서 친히 입회를 서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루카스는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이건 분명 약속된 대화였다.

루카스에겐 로이를 제외하면 아들은 두 명뿐이다.

하나는 카터, 하나는 최근에 양자로 들인 오슬로다.

만에 하나 카터가 티그리스에게 죽는다면 양자 오슬로에게 빈스모크 가문의 후계 자리가 넘어가게 된다.

‘오슬로는 안된다.’

오슬로는 현재 5성 기사로 티그리스에 버금가는 천재적인 검사임이 틀림이 없었지만, 정신 상태가 워낙 이상한 터라 가문 내에서도 말이 많은 녀석이었다.

만약 오슬로가 후계자가 되면 후계자의 적합성을 놓고 빈스모크 가문의 방계 출신들이 치고 들어와 루카스를 흔들 것이다.

버틴다면 버틸 수 있겠지만, 루카스는 왕을 꿈꾸는 자다.

가뜩이나 희생자를 골라내느라 루카스의 권위가 흔들린 상태인데, 여기서 더 흔들려버리면 왕은커녕 빈스모크 가문의 존속도 보장할 수 없었다.

‘저놈이···!’

만약 티그리스가 루카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면, 신성한 결투의 규칙에 따라 다른 사람을 대리로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후계자인 카터를 노려버렸으니 어떻게 할 수 있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로이가 정말로 말한 게 맞는가?! 그대가 협박한 것이 아니고?”

“정 믿지 못하겠다면 로이에게 직접 확인받으면 되겠소?”

“···뭐?”

티그리스는 황제에게 고개 숙여 요청했다.

“빈스모크 백작이 믿질 못하는 것 같으니 로이를 불러도 되겠습니까?”

“그리하라.”

드르륵-

문이 열리며 로이가 절뚝이며 들어왔다.

루카스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로이를 쳐다봤다.

본래 찰나의 순간을 복용하고 나면 극심한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저런 또렷한 눈으로 황제 폐하를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설마 후유증을···.’

티그리스가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로이의 후유증을 고친 게 분명했다.

낭패였다.

“위대하신 황제 폐하를 맞습니다.”

로이는 불편한 다리로 황제 폐하에게 예를 표했다.

“예를 풀고 말해보라. 로이 자네는 아이린과 결투를 할 때 부정한 방법을 사용했는가?”

로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예. 그렇습니다. 저는 카터 드 빈스모크에게 찰나의 순간이란 약물을 받아 복용했습니다. 찰나의 순간이란 약물은 신체의 민감도를 높이는 일종의 각성제입니다. 그리고···”

“로이!!!”

환관들은 루카스를 노려봤다.

“빈스모크 백작은 황제 폐하께 허락을 받고 말씀하시오.”

“폐하! 이건 모함입니다!”

황제는 루카스를 보며 말했다.

“그럼 말해보시오. 찰나의 순간이란 약물이 무엇인지 아시오?”

루카스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카터를 잃으면 빈스모크 가문에 미래는 없다.

루카스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모릅니다. 허나, 아들의 잘못은 제 잘못이기도 합니다.”

루카스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그러니 결투의 대상자를 카터가 아닌 저로 변경해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그 무엇도 잃지 않는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루카스가 티그리스를 죽이고 카터를 살리는 것이었다.

루카스는 옛 소문이 되어버린 티그리스의 오만함을 믿어보기로 했다.

티그리스는 피라미를 노리다가 월척을 낚은 기분이었다.

“좋습니다.”

< 51. 루카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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