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서열전(1) >
#054화 – 서열전(1)
제인은 소파에 편하게 누워 신문을 봤다.
[흑토 지대 전 지역 계엄령 선포.]
[빅토리에에 있는 모든 흑토 지대 출신 영주들 체포돼······.]
[빈스모크 가문을 포함해 흑토 지대 내에 있는 모든 귀족 가문들이 키메라 실험실과 연관되어 있어······.]
[토드 황제 폐하, 흑토 지대 안정화에 최선을 다할 것.]
“이거 일이 참 재미있게 흘러가네.”
카터는 장부를 비롯해 흑토 지대의 가주들과 토호들끼리 나눈 편지와 계약 문서들까지 전부 들고 황궁으로 향했다.
그리고 어떻게 자금 세탁이 이루어졌으며 키메라 실험실과 관련된 가문이 어느 가문인지까지 단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진술했다.
당연히 계엄령 때문에 빅토리에에 아직 남아 있던 흑토 지대의 가주들은 날벼락을 맞았고, 그들은 모두 긴급 체포되어 인퀴지터의 심문을 받고 있었다.
대다수의 사람은 카터가 왜 갑자기 변심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제인은 왜 카터가 모두 말한 것인지 알고 있었다.
이틀 전, 티그리스가 식사하면서 카터에 관한 이야기를 잠깐 해줬기 때문이었다.
-카터는 이번 키메라 실험실과 관련된 정보를 모두 알려주는 대신 로이와 무고한 자들의 목숨만 살려달라고 부탁했다.
루카스가 죽은 후 황제가 흑토 지대를 제일 먼저 조사하겠다고 선포했을 때, 흑토 지대의 귀족들은 한자리에 모여 연합군을 구성할 계획을 짰다.
흑토 지대의 귀족들은 순순히 황제의 칼날을 받을 인물들이 결코 아니었다.
자신의 손에 들린 것을 절대로 놓지 못하는 욕심이 가득한 돼지들이라 어떻게든 반항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루카스도 없고 레비스도 없으며 명분도 없는 상황에서 흑토 지대의 귀족들이 황제의 군대를 막을 수 있을 리 없었다.
1년도 채 되지 않아 흑토 지대는 완전히 제압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흑토 지대의 귀족들이 연합군을 구성하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저들은 백성들과 식량을 인질로 삼으려는 것이다.
지금은 막 밀을 파종한 시기였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이번 연도 밀 농사가 완전히 망하기 때문에, 황제가 전쟁을 벌이길 꺼릴 것으로 판단했다.
당연히 헛소리였다.
이미 머리끝까지 분노한 황제가 확실한 명분이 있는 전쟁을 피할 리가 없었다.
저들은 어떻게든 살고 싶어서 이 암울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애쓰는 것이었다.
카터는 이게 바로 레비스가 노리는 그림이라고 판단했다.
티그리스와 루카스와의 결투로 인해 흑토 지대에 대한 민중의 관심도는 극에 달했고, 신문이나 다른 매체에서 바로스 후작령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
황제와 민중들의 시선을 흑토 지대로 고정해 바로스 후작령에 대한 관심도를 낮추기 위한 공작이란 것을 바로 눈치챈 것이었다.
루카스의 몸에 저주를 심어 루카스와 빈스모크 가문의 명예를 바닥까지 추락시킨 레비스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줄 수 없었다.
그래서 황도 빅토리에에 내려진 계엄령이 해제되기 전, 황궁에 찾아가 모든 죄를 다 고백한 것이었다.
흑토 지대가 더 이상 전쟁으로 고통받지 않도록
그리고 레비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카터는 이 사태가 빠르게 잠잠해지길 바란 것이다.
“참 정치는 골치 아픈 일이야. 나라에 도둑놈들이 많아서 이런 거야. 어떻게 제대로 된 사람이 하나도 없냐.”
제인은 혀를 차며 신문을 넘겼다.
[서열전 시작! 과연 누가 1등을 할 것인가?]
제인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어,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시작할 때가 됐나?”
제인이 아침에 소파에서 편하게 누워서 신문을 볼 수 있는 이유는 티그리스가 집에 없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현재 제국대학 서열전의 감독관으로 파견을 나간 상태였다.
물론 샤를로트와 아이린도 서열전에 참가했다.
“아이린이 이번에 샤를로트를 꺾어보겠다고 벼르고 있던데, 과연 되려나 모르겠네.”
[데이아나 기자의 제멋대로 제국대학 서열전 1등 후보 목록]
1. 샤를로트(무투학부 검술학과)
2. 아이린(무투학부 검술학과)
3. 테인(마법학부 원소마법학과)
4. 에이든(무투학부 검술학과)
5. 코냐(마법학부 전투마법학과)
6. 바세르망(무투학부 권술학과)
······
10. 라칸(무투학부 검술학과)
제인은 발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뭐, 좋은 팀원을 만난다면 1등을 할 수도 있겠지.”
* * *
이슬이 조용히 내려앉은 아침.
수련의 숲은 군청색 텐트들로 가득했다.
네이션 학과장은 종을 울렸다.
땡- 땡- 땡-
“전원 기상! 30분 내로 씻고 전투식량을 받아 갈 수 있도록!”
텐트 문이 열리고 학생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햇살을 맞이했다.
“으······ 허리가 찌뿌둥해.”
“서열전 장소를 왜 하필 이런 곳에 잡은 거야······.”
“생각을 좀 해라. 그렇다고 황도 바로 앞에 몬스터들을 풀어놓을 순 없잖냐.”
“······음. 그런가?”
서열전을 몇 번 치러본 학생들은 능숙하게 씻고 대충 머리를 손질한 뒤 식사를 받으러 갔다.
“오, 그래도 3형으로 주네.”
“전투 식량이 거기서 거기긴 한데 그래도 3형이 그나마 먹을 만하지.”
그때, 학생들의 시선이 두 사람에게 꽂혔다.
아이린과 샤를로트였다.
둘은 티그리스의 제자가 된 이후로 짝꿍처럼 같이 붙어 다녔는데, 오늘 2인 텐트에서 잠을 잘 때도 둘이서 같이 잤었다.
학생들은 입맛을 쩝 다셨다.
“······둘이 같은 팀을 하려나.”
“그럼 최악인데.”
“티그리스 교관님의 제자이니까 같은 팀을 하지 않을까?”
“아냐, 2일 차에 무조건 둘이 다른 팀을 해야 하니까 의미가 없어져.”
서열전은 간단히 말해 포인트를 더 많이 얻은 사람이 1등을 하는 구조다.
고블린을 한 마리를 잡으면 1포인트, 자신과 다른 팀을 기습하거나 결투해서 승리하면 20포인트를 얻고 반대로 사망 처리를 당하면 20포인트를 차감하는 직관적인 구조다.
이런 포인트제에서 2인 1조로 팀을 구성하면, 같은 팀원들끼리 점수를 공유하기 때문에 서열을 나누기 힘들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한 번 사망 시 같은 팀원과 팀을 다시 할 수 없다는 조건이 붙기 때문에, 의외로 공동 등수는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만약 일일 공동 1등을 연속으로 이틀간 하는 팀은 무조건 갈라져야 하는 규칙이 있어서, 최상위권 실력을 갖춘 두 명이 포인트를 독식하는 일도 없었다.
“그런데 아이린이랑 샤를로트는 같은 팀을 할 리 없을걸?”
“응? 왜?”
“티그리스 교관님이 둘은 같은 팀을 하지 말라고 하셨대.”
“오, 그래? 그럼 우리한테도 1등의 기회가 오는 건가?”
“꿈 깨. 어떻게 고리 3개짜리를 이기려고. 우린 3등을 노리는 게 맞아.”
그때, 한 사내가 전투식량을 받기 위해 다가왔다.
라칸이었다.
라칸은 팬티 차림에 갈색 부츠를 신고 전투식량을 받았다.
“······따뜻할 때 먹어라.”
“감사합니다. 교관님.”
평소라면 라칸에게 주의를 주었겠지만, 철십자 훈장을 받는 것도 모자라 또 최근에 황제 폐하께 상을 받자 교관들도 쉽게 건들 수 없는 사내가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한번 친해져 보려고 노력했지만, 팬티 차림으로 돌아다니는 라칸과 편견 없이 친해지기엔 세상은 덜 진보되었다.
“······쟤는 도대체 뭘까?”
“천재의 생각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냐.”
“쟤가 천재라고? 그러고 보니 중간고사 때 잘 본 것 같긴 하던데······ 샤를로트나 아이린에 비하면 뭔가 부족하지 않냐?”
“쟤 마검사야.”
“뭐? 마검사?”
“어. 다른 얘들이 봤대. 쟤 1서클 공통 마법은 다 사용할 줄 안다던데?”
“정말? 마법을 어떻게 배웠대? 스승님이 있대?”
“몰라. 최근에 도서관에서 마법서를 뒤적거리는 것 같더니만 그냥 바로 익힌 것 같아.”
“진짜 천재긴 천잰가 보네. 아 설마 그래서······.”
라칸은 다른 녀석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홀로 텐트 앞에 앉아 전투식량을 퍼먹었다.
‘음······ 꽤 맛있는데?’
이제 다른 사람의 시선들 따위 아무렇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퀘스트 달성!]
팬티 차림으로 전투식량을 받아먹기.
50포인트 획득!
[현재 남은 포인트: 17,250.]
라칸은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이제 포인트가 짜네.’
원래는 팬티 차림으로 전투식량을 받는 것 하나가 50포인트, 먹는 것 하나가 50포인트 해서 100포인트 정도를 받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젠 최소 두 임무를 동시에 해야 50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이젠 너무 쉬운 일이라고 해서 그런가?’
이제 라칸은 이런 퀘스트가 뜨는 순간 화장실에서 옷을 벗지 않고 길가에서 벗을 수 있을 정도로 무덤덤해졌다.
난이도가 낮아질수록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적어진다는 가설이 맞다면, 라칸이 수치심을 덜 느끼고 강해질수록 포인트를 얻기 힘들어진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최근 이런 종류의 퀘스트는 잘 뜨지 않고, 조금 난이도가 높고 보상이 큰 퀘스트를 자주 줬다.
[신규 퀘스트!]
아이린과 서열전에서 같은 팀이 되어 5등 안에 들기.
보상: 1,000포인트.
라칸은 반사적으로 먹잇감을 노리는 사자처럼 아이린을 쳐다봤다.
‘흠······.’
아이린은 라칸의 시선을 느끼자마자 손가락을 움찔했다.
* * *
티그리스는 이번 서열전의 감독관이자 보안 담당관으로서 수련의 숲을 정찰하고 돌아왔다.
저번 주에 용병들과 교관들이 한 번 더 추가 점검을 하긴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돌아본 것이었다.
“아, 교관님 식사 아직 안 하셨죠? 드시겠어요?”
“감사합니다.”
티그리스는 조금 전에 데워진 듯한 전투식량을 들고 교관들 전용 텐트로 들어가 식사를 하려 했다.
그때, 라칸이 다가왔다.
“티그리스 교관님.”
“무슨 일이지?”
“잠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라칸의 표정이 꽤 진중해 보였기에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라칸의 눈에 뭔가가 보인 것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와 라칸은 한적한 곳에 들어갔다.
“저 퀘스트가 떴습니다.”
“무슨 퀘스트지? 혹시 수련의 숲에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아이린과 같은 팀이 돼서 5등 안에 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생각보다 맥빠지는 내용이었지만, 그래도 라칸에겐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건 티그리스가 도와줄 수 없는 일이었다.
“교관은 학생들의 서열전에 관여할 수 없다. 아무리 아이린이 내 제자라고 하지만 너와 같은 편이 되라고 부탁할 수 없지.”
“알고 있습니다. 전 그런 걸 부탁드리려고 온 게 아닙니다.”
“그럼 뭐지?”
“이번 서열전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제가 아이린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걸 어필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여쭈어보고 싶습니다.”
라칸의 눈은 진지했다.
라칸은 그냥 아이린에게 빌붙어서 5등 안에 들 생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주제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아이린은 3성 기사고 라칸은 이제 겨우 1서클 마법을 좀 사용할 수 있는 마검사에 불과하다.
아이린이 기사와 같은 팀이 되겠다면 2개 고리를 가진 기사와 함께 팀이 되면 되고, 마법사와 같은 팀이 되고 싶다면 2서클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마법사와 팀이 되면 된다.
아무리 퀘스트라고 하지만 라칸은 스스로 아이린에게 불필요한 존재라 생각된다면 퀘스트를 포기할 생각이었다.
그건 아이린에게 민폐니까.
‘뭔가 내면적으로 많이 성장한 것 같군.’
라칸은 케일 자작을 찾아낸 이후로 꽤 진중해졌다.
사람이 죽는 것을 눈앞에서 봐서 트라우마에 걸리지 않았을까 내심 조금 걱정했지만 잘 극복한 것 같아 조금 대견했다.
“그런 것이라면 조금 도움을 주겠다. 현재 무슨 마법을 사용할 수 있지?”
“1서클 공통 마법은 다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마탄부터 시작해서 마나 배리어, 발화, 윈드, 땅파기, 턱 만들기, 진동 감지 알람 마법 이런 것들이요.”
“시전 속도와 정확도는?”
“집중한 상태로 한다면 5초 안에 캐스팅해서 발현시킬 수 있고, 검을 휘두르는 도중이라면 30~50초, 10m 범위 내에서라면 1㎝ 이상 오차가 나지 않고 50m를 넘어가면 30㎝ 이상 차이 나요.”
“정확도는 괜찮지만 시전 속도가 너무 느리다.”
“아이린에게 별 도움이 안 될까요?”
티그리스는 냉철하게 말해주기로 했다.
“시전 속도를 더 빠르게 할 방법이 없다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1서클의 공통 마법은 그렇게 유의미한 효과를 낼 수 없다. 기껏해야 생활에 편리한 수준이니까.”
“······그렇군요.”
라칸의 어깨가 살짝 처졌다.
“역시 포기해야 하나······.”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넌 어떻게 한 달 만에 공통 마법을 모두 익힌 거지? 내가 마법에 대해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1서클 공통 마법을 한 달 만에 모두 익히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 포인트로 ‘서클 마법의 구조적 이해’를 배워서 그래요.”
“서클 마법의 구조적 이해?”
“네. 2만5천 포인트나 하는 기술이긴 한데요. 서클 마법을 구조적으로 이해하고 마법을 시전하는 데 도움을 주는 패시브 스킬······ 그러니까······ 시스템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1서클 마나 배리어 마법을 배운다고 하면 라칸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번역을 해서 알려주고, 만약 사용한다고 하면 현재 상황에서 어떻게 마법을 사용하면 좋을지 올바른 길을 안내해 주는 보조용 기술이었다.
이것도 ‘상급 탐색’처럼 시스템의 힘을 빌린 기술이었다.
“그러니까 검술로 치면 검술을 시전할 때 몸의 움직임이 어떻게 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현 상황에서 어떤 검술을 사용하면 될지 알려주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나?”
“네. 맞아요. 물론 빠른 영창처럼 비교적 싸고 효과 좋은 기술도 있긴 한데요. 그러면 결국 제 본실력은 늘지 않을 것 같아서 제가 마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먼저 골랐어요.”
라칸은 회귀 전에 자신이 7서클에 다다르지 못한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 이유는 쉽고 빠른 길을 선택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고 생각했다.
빠른 영창은 굳이 라칸이 영창을 읊지 않아도 알아서 입이 움직여 빠르게 영창을 하게 도와준다.
그러면 1서클 공통 마법쯤은 5초가 아니라 2초 안에 완성시킬 수 있다.
발화나 마나 배리어와 같은 1서클 공통 마법도 1,000포인트씩만 투자하면 굳이 시간을 들여 공부할 필요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길은 아마 회귀 전의 라칸이 걸었던 길일 것이다. 지금도 라칸은 빠른 영창이나 2서클 마법을 구매하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그러나 라칸은 검을 버리고 마법의 길을 선택하기로 했으니 기초부터 차근히 시간을 들여서 배워보기로 했다.
그러면 어쩌면 정말 7서클의 마법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지금 당장 아이린에게 도움이 될 만한 마법사가 될 순 없었다.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이린에겐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육체 자체가 대검에 맞지 않는 몸이다 보니 한두 번 싸우는 거면 상관이 없지만 5일 연속으로 포인트를 쫓으며 전투를 치르면 몸에 많은 무리가 갈 것이다. 아마 5일 차가 지나면 아이린의 몸 상태는 많이 안 좋아져 있겠지.”
“치유 마법은 4서클 이상이라서 사용을 못 하는데요······.”
“하지만 아이린의 컨디션 조절을 하는 덴 도움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더위를 씻어낼 수 있는 윈드 마법도 있고 알람 마법을 걸어 불침번을 서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다. 그 외에 전투 시에도 보조할 방법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아이린의 서포터를 하라는 건가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직접 싸울 생각을 하지 말고 서포터가 되겠다고 말해라. 원래 마법사는 화려한 마법을 사용하는 전투 마법사도 있지만, 기사들의 몸에 축적된 피로를 풀어주거나 전투를 보조해 주는 서포터형 마법사도 있다.”
“근데 그게 아이린에게 메리트가 될까요? 다른 마법사들도 다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다른 마법사들에겐 있지만 너만 없는 게 있다.”
라칸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뭔데요?”
“수치심.”
“······그게 도움이 될까요?”
“전 학년을 통틀어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 마법사는 30명도 채 되지 않는다.”
마법은 평민들이 접하기 힘든 기술 중의 하나다.
마법은 검술과 비교해 진입 장벽이 굉장히 높다. 마법을 배우려면 마법서를 사는 게 아니라 마법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데, 웬만한 마법사들은 다 귀족이다.
결국 평민이 마법을 배우려면 귀족에게 부탁해서 배워야 한다는 것인데, 일단 귀족과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세상이다 보니 배우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고 보니 웬만한 마법사분들은 귀족이셨죠. 교관님들도 죄다 귀족이셨고.”
“그러다 보니 마법사들은 기사들보다 콧대가 높다. 그들 중에 아이린이 힘들면 윈드 마법을 걸어주고, 발이 아프면 붕대를 감아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같나?”
“어······ 아뇨.”
“현재 아이린에게 2성 기사나 2서클 마법사를 한 명 데리고 다니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샤를로트를 제외하면 현재 제국대학 내에서 아이린을 이길 수 있는 학생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아이린의 몸에 쌓인 피로를 풀어줄 사람이 더 필요하겠지.”
라칸은 티그리스의 말을 곧바로 이해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아이린에게 필요한 건 마법사가 아니라 서포터라는 거군요.”
“그렇다.”
라칸의 눈이 반짝였다.
그런 것이라면 라칸도 할 수 있었다.
“저 아이린한테 가볼게요.”
“그래. 좋은 소식이 있길 바라마.”
라칸은 쏜살같이 텐트로 향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린이 자신을 받아줄 수 있을까?
어떻게 말하면 자신이 아이린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사람임을 어필할 수 있을까?
저 멀리 밥을 다 먹고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는 아이린이 보였다.
라칸은 곧바로 아이린에게 직진했다.
아이린은 라칸이 갑자기 다가오자 굉장히 이상한 듯 쳐다봤다.
“아이린. 아직 팀 안 구했지?”
“······어.”
라칸은 숨을 크게 들이켜며 말했다.
“내가 네 노예가 될게. 나랑 같은 팀이 되어줘.”
아이린의 숟가락이 바닥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