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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69화 (69/251)

#069화 – 휴식(2)

트리샤는 샤를로트가 드로어즈를 하나만 구매하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왜 이거 하나만 사시는 거예요?”

“예? 이거 하나면 되는 거 아닌가요?”

“당연히 여분도 있어야죠. 오랫동안 모험할 때 이게 있고 없고가 얼마나 다른데요.”

“아······ 알았어요! 더 살게요. 사.”

“당장 각자 세 개씩 더 사세요. 밀림 한복판이나 던전에서 이런 물건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땐 금화가 백 개 천 개 있어도 못 사니까 지금 당장 사요. 아니다. 답답하니까 내가 그냥 다 골라줘야지.”

트리샤는 여성용 드로어즈를 가리키더니 말했다.

“이거 정열적인 붉은색이랑 귀여운 핑크색, 그리고 섹시한 보라색 한 장씩 주세요. 혹시 되면 이런 드로어즈가 아니라 레이스 달린 거로······”

샤를로트는 다급하게 종업원에게 말했다.

“안 돼! 검은색! 검은색으로 주세요!”

“좋아요. 그럼 핑크색 두 장이랑 검은색 한 장. 레이스는 필수예요.”

“그냥 검은색 세 장 주세요!”

결국 세 사람은 트리샤와 아멜리아의 추천으로 여성용 아티팩트 몇 가지를 더 구매했다.

아이린은 쇼핑백에 담긴 아티팩트를 보며 손을 덜덜 떨었다.

“도대체 얼마나 쓴 거야······.”

“지금 티그리스 님 호주머니 걱정하시는 거예요?”

“아뇨. 이렇게 돈을 많이 써도 되나 싶어서······.”

“이 정도 각오도 안 하고 티그리스 님이 백지수표를 줬겠어요? 그것보다 이것 보세요.”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체스?”

“그냥 체스가 아니에요. 무려 춤추는 체스라고요. 잘 보세요.”

트리샤는 체스판 위에 체스 기물을 올려놓더니 목소리를 가다듬고 말했다.

“큼! 얘들아 춤춰봐.”

그러자 체스들이 움직이더니 너 나 할 것 없이 신명 나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둥기기-둥기기-둥기기-둥기기-

심지어 체스판에선 굉장히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하얀색 말이든 검은색 말이든 상관없이 체스판 위에서 하하호호 신명 나게 손을 잡고 추는 게 퍽 귀여웠다.

그러다 검은색 킹과 하얀색 퀸이 눈을 맞았는지 서로를 향해 키스하려고 하자, 검은색 퀸이 의자를 들고 검은색 킹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윽고 춤추는 체스판이 난장판으로 변하자 트리샤는 깔깔대며 웃었다.

아이린은 어이없다는 듯이 트리샤를 쳐다봤다.

“······이런 건 왜 사신 거예요?”

“내 돈 주고 사기 아까워서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사겠어요.”

“그래도 필요한 걸 사는 게 좋지 않아요?”

“아이린 씨. 우린 필요한 걸 사러 온 게 아니라 스트레스를 풀러 온 거예요. 본 목적을 잊으면 안 되죠.”

트리샤의 말에 아이린은 말문이 막혔다.

트리샤는 아이린의 쇼핑백을 낚아챈 뒤 바로 옆 종업원에게 넘겼다.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쇼핑을 시작해 볼까요?”

“네? 이제 끝난 거 아니에요?”

“무슨 소리예요. 아직 밤은 길다고요. 이 정도론 종업원들 야근 수당도 안 나와요. 어서 따라와요.”

트리샤는 아이린의 팔뚝을 잡고 여성 의류 매장으로 데려가 마구 갈아입혔다.

하늘하늘한 원피스부터 시작해서 굽이 높은 구두, 챙이 큰 하얀 모자까지 전혀 기사답지 않은 물품들이었다.

“어머어머 너무 예쁘다. 이건 내가 사줄게요! 꼭 입어요!”

“······안 입을 거예요.”

“뭐가 됐든 티그리스 님 통장에서 나오는 건 똑같아요. 어서 다른 것도 사러 가요!”

트리샤는 이 순간을 온전히 만끽하려는 듯, 꽃 사이를 날아다니는 벌처럼 반짝이고 예쁜 것만 보면 입어보거나 입혔다.

“이거 깔별로 주세요.”

“여기부터 여기까지 주세요.”

“이거 DP된 대로 주세요.”

“이거 어떡하지? 너무 귀여운데? 뭘 어떡해?! 다 사면 되지!”

트리샤의 밝은 기운에 감화되듯 세 사람도 이곳저곳을 누비며 쇼핑을 시작했다.

세 사람은 기사로 자랐지만 결국 여자로 태어났다.

특히 비율도 좋고 외모도 잘 받쳐주었기 때문에 무엇을 입고 걸쳐도 완벽했다.

예쁘고 아름다운 것은 보기만 해도 기분 좋은데, 그게 자신의 몸에서 더 완벽해지니 묘한 쾌감이 있었다.

“도대체 이런 외모랑 몸매를 썩히고 있는 거예요! 아주 내가 답답해 죽겠네. 이러니까 남자 친구가 없지!”

샤를로트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그런 트리샤 씨는 남자 친구가 있어요?”

“어머 궁금하세요? 제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 장르가 확 변하는데?”

“아······ 아뇨.”

“왜요. 지금까지 전체 이용가였잖아요. 가끔 리미터 해제하고 선을 넘어보는 것도······.”

“아아악!”

괜히 반격이랍시고 나섰다가 침몰당한 샤를로트는 트리샤에게서 도망쳤다.

‘귀여워~’

* * *

한바탕 밤샘 쇼핑이 끝나고······.

트리샤와 세 사람은 백화점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종업원들이 타준 시원한 아이스티를 마시며 늘어졌다.

“우와~ 죽겠다.”

트리샤는 리니아를 흘금 봤다.

리니아는 평소에 입던 칙칙한 회색 트레이닝복을 벗어 던지고, 새하얀 치마에 하늘색 블라우스를 입었다.

다리 아래가 허전한 게 조금 부끄러운 듯 다리를 꼬았지만, 계속 정면에 있는 거울을 응시하며 머리를 다듬는 것을 보아하니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리니아 씨는 검술 아카데미에 다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맞죠?”

“아, 네. 맞아요.”

“혹시 아카데미에서 마음에 드는 남자 있어요?”

“······예?! 예?”

“‘예’라는 말은 있다는 뜻인가요?! 오! 세상에 누구예요? 어떻게 생겼어요?!”

리니아의 얼굴이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아뇨! 없어요! 그냥 다 친한 동기들일 뿐이에요.”

“흐흐흐······. 정말요? 진짜?”

“네. 진짜요. 그냥 같이 검술 훈련하는 사람들뿐이에요······.”

“그럼 이상형은 어떻게 되는데요? 제가 소개해 줄까요?”

“이······ 이상형이라니. 그런 건······.”

“으음~ 이거 딱 관상을 보아하니······ 다정다감한 스타일보단 나쁜 남자한테 홀릴 상이네요. 막 관심 없는 척하다가 무심하게 툭 ‘오다 주웠다’라는 말 한마디에 뻑 가는 소설 속 여주인공 스타일!”

“아녜요!”

“그럼 이상형이 어떻게 되는데요? 제가 그래도 리니아 씨보다 좀 더 많이 살아봤잖아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요.”

리니아는 결국 트리샤의 질문 공세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냥 저는 저보다 강한 남자? 그런 남자면 좋을 것 같아요.”

“아······. 이거 심각한데?”

“······왜요?”

“리니아 씨 평생 혼자 살겠네. 리니아 씨 나이대에서 리니아 씨보다 강한 남자가 어디에 있다고 그래요. 아, 그 라칸 씨 정도면 되려나?”

“그건 안 돼!!!”

아이린과 샤를로트는 동시에 소리쳤다.

“깜짝이야. 왜 안 되는데요?”

“······아. 그게.”

“혹시 둘이 좋아하시······ 아 그건 아니구나.”

아이린과 샤를로트가 무섭도록 정색하자 트리샤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허우대도 그 정도면 나쁘지 않고 대화해 보니까 꽤 멀쩡해 보이던······ 안 그런가 보네.”

아이린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라칸은 좀 독특한 녀석이에요.”

“독특하다고요?”

“그러니까······. 조금······ 답답한 걸 싫어하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이렇게 하니 뭔가 뒷담화하는 것 같아 아이린은 곤혹스러웠다.

샤를로트는 그냥 거침없이 말했다.

“걔 노출증이에요.”

“······네?”

“학교에 트렁크 팬티만 입고 돌아다닌다고요. 심지어 그 차림으로 제 학교 선배한테 러브레터를······ 여기까지만 말할게요.”

트리샤는 정말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쩍 벌렸다.

“세상에······ 사람은 겉모습만 보면 안 된다더니······. 그런데 그런 사람을 왜 티그리스 님이 왜 가까이하시는 거죠?”

“어제 한번 보시긴 하셨겠지만, 눈이 굉장히 좋잖아요. 정확히 말하자면 관찰력이 좋다고 해야겠죠.”

아이린은 샤를로트의 말에 동의했다.

“맞아요. 며칠 전에 서열전을 같이 치렀는데, 진짜 관찰력 하나만큼은 대단한 것 같더라고요. 라칸이 보는 시각하고 우리가 보는 시각하고 좀 많이 다른가 봐요.”

“들어보니까 마법도 꽤 잘 쓴다면서?”

“마법 캐스팅 속도나 이런 건 평범한데 적재적소에 마법을 잘 사용하는 것 같아요. 마법을 배운 지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고 하니까 그 정도면 꽤 나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트리샤는 뭔가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딱 동료 관계로만 지내고 싶은 그런 관계라는 뜻이죠?”

“네. 그게 제일 정확한 표현인 것 같아요. 그 이상 가까워지기엔 그······ 뭔지 아시죠?”

“그럼 티그리스 님은요?”

트리샤의 질문에 샤를로트와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요?”

“티그리스 님은 남자로 안 보이냐 이거죠. 라칸 씨야 뭐 그런 사정이 있다곤 하지만 티그리스 님은 다르잖아요.”

샤를로트는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뭐, 사람으로만 보면 좋죠. 가문도 좋고 얼굴도 그만하면 나쁘지 않고 검술 천재에 황도의 영웅이시기까지 하니까요. 인성도 예전엔 정말 개차반······ 아니, 그리 좋진 못했는데 지금은 나쁘지 않죠.”

“그런데 왜요?”

“저는 프리하르덴 가문의 후계자고 스승님은 노르베르드 가문의 후계자시잖아요. 저희가 결혼한다고 칠게요. 그럼 노르베르드 가문하고 프리하르덴 가문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어······.”

가문 문제가 나올 것이라 생각을 못 했기 때문에 트리샤는 순간 말을 잃었다.

“모르시겠죠? 저도 모르겠어요. 아, 둘 다 정말 험난한 인생을 살 거란 건 확답을 드릴 수 있겠네요. 그 험난한 가시밭길을 걸을 정도로 스승님을 사랑하느냐? 아니, 사랑할 수 있느냐? 지금은 아니라고 답을 드릴 수 있겠네요.”

아이린도 입을 열었다.

“저도 벨프 가문을 다시 세워야 하는 입장이에요. 만약 스승님하고 결혼을 한다고 하면······ 벨프 가문이 다시 세워지는 건 불가능하겠죠.”

트리샤는 둘의 덤덤한 눈길을 피했다.

둘 다 진짜 사랑을 하기엔 너무나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는 것 하나만큼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샤를로트는 바로 옆에서 눈치 보고 있는 리니아를 콱! 껴안으며 말했다.

“뭐, 그리고 우리 리니아하곤 언니 동생 하기로 했거든요. 그러니 스승님하고 결혼하는 건 말도 안 되겠죠?”

이게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한 샤를로트의 배려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트리샤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큼! 맞다. 제가 좀 재밌는 이야기 하나 해줄까요?”

“어떤 이야기요?”

“용사 페레이라와 관련된 이야기에요.”

트리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곡검을 꺼냈다.

전에 아이린에게 보여주었던 그 곡검이었다.

“이 성물의 이름은 테티우스예요. 혹시 테티우스가 뭔지 아시나요?”

테티우스란 말에 세 사람은 크게 놀랐다.

“테티우스면 ‘아하드’가 사용하던 검 아닌가요? 설마 그 검이······.”

“네. 맞아요. 이 검은 그 용사 페레이라의 동료 중 한 사람이었던 아하드가 사용하던 검이에요.”

불굴의 전사 아하드.

멸지의 마왕을 봉인시킨 페레이라의 동료 중 한 사람이자

고디바 사막에 흩어져 있던 수십 개의 민족을 통일시켜 멸지의 마왕에게 맞서 싸웠던 사막의 왕이었다.

아이린은 트리샤가 전에 보여주었던 그 여우를 떠올렸다.

“그럼 그 여우는···.”

“아하드가 키우던 불꽃 여우예요. 이 검을 지키는 수호신 같은 거랄까요? 악한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메메가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검을 조각내 없애 버린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어떻게 얻으신······ 아 맞다. 그게 있었구나.”

아이린은 트리샤에게 별바라기의 천체지도가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이걸 얻으려면 당연하겠지만 성좌의 시련을 깨야만 했어요. 아하드의 오른팔이라고 불리는 ‘미쉬타’가 돼서 고디바 사막으로 몰려오는 마왕의 군세를 막아내는 거였죠. 그때 정말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아무튼 그 얘긴 중요한 게 아니니까 나중에 하고.”

트리샤는 아이스티를 한 모금 마셨다.

“성좌의 시련 막바지에 용사 페레이라 님과 아주 잠깐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그 전설적인 영웅과 대화를 나눠봤다는 말에 세 사람은 등허리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요? 어떻게요?”

“제가 찾아간 것도 아니고 페레이라 님이 찾아오셨어요. 그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리네요.”

“왜 페레이라 님이 찾아오신 거예요?”

“음······. 그러니까.”

트리샤는 그날을 회상했다.

* * *

트리샤는 탈진한 채 쓰러진 아하드에게 생수를 쏟아부었다.

“젠장······. 또 죽으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데. 살아라. 제발! 살아!”

트리샤는 이미 이 사막 대전쟁을 무려 48번이나 반복했다.

만약 아하드가 또 탈진 때문에 숨이 넘어가 죽으면, 그 지옥 같은 전쟁을 다시 해야 했다.

이젠 트리샤의 인내심도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에 또 전쟁을 치르면 멘탈이 부서질지 몰랐다.

“야. 이거 받아.”

그때, 옆에서 처음 듣는 목소리가 들렸다.

트리샤는 고개를 돌려 자신에게 최상급 포션을 건네는 사내를 봤다.

“어?! 이건!

“뭐 해. 어서 이 등신 같은 녀석 살리라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트리샤는 포션 마개를 열어 아하드의 입에 조심스럽게 흘려 넣었다.

그러자 아하드의 메마른 입술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됐다! 살았다!”

트리샤는 거대한 사막 오우거의 시체에 등을 기대며 만세를 불렀다.

이제 현세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때, 페레이라가 입을 열었다.

“야.”

“아! 맞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최상급 포션을 가지고 계셨죠?”

“······너 나 몰라?”

“네?”

트리샤는 고개를 들어 사내의 얼굴을 쳐다봤다.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금발의 사내였다.

“나 페레이라잖아. 미쉬타.”

“페······ 페레이라?!”

페레이라의 얼굴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당시에는 사진기에 있는 ‘장면 포착’ 마법이 개발되지 않았던 터라, 트리샤는 페레이라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나마 페레이라의 초상화가 빅토리에 미술관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트리샤가 페레이라의 얼굴을 대충이나마 알아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페레이라는 어이가 없다는 식으로 트리샤를 쳐다봤다.

“허······ 너 열 때문에 맛이 갔······ 어?”

페레이라는 허공을 잠시 응시하더니, 갑자기 트리샤의 목에 서슬 퍼런 검을 가져다 댔다.

“너 미쉬타가 아니구나.”

트리샤는 엄청 놀라 침을 꼴깍였다.

성좌의 시련 내에서라면 그 누구든 지 간에 분명 등장인물화로 인해 트리샤를 ‘미쉬타’로 인지해야만 했다.

그런데 용사 페레이라만은 ‘미쉬타’가 아니란 것을 단숨에 꿰뚫어 봤다.

“말 없는 거 보니까 미쉬타가 아닌 건 확실한가 보네. 도플갱어는 아닌 것 같고······. 너 뭐냐?”

트리샤는 자칫 잘못하면 페레이라에게 목이 베어 성좌의 시련을 다시 시작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급해져서 뇌를 거치지 않고 그냥 막 말했다.

“전 성좌의 시련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전 이 대사막 전투의 미쉬타가 되어 정사(正史)대로 극복하고 있었습니다.”

“성좌의 시련? 지금 이 개고생이 전부 헛짓거리였다는 말이냐?”

“예?! 아니······ 그게······.”

“와 진짜 어이가 없네. 그럼 이렇게 힘들게 올 필요도 없었다는 거네? 그런데 원래 이게 이렇게도 되나? 보통 성좌의 시련이면 나도 널 미쉬타로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아, 그래서 내가 처음에 널 의심하지 않은 거구나. 대충 이해했다.”

페레이라는 용사의 검을 치웠다.

“······제 말을 믿어주시는 겁니까?”

“뭐, 믿어줄 수밖에 없지. 원래라면 너 이 전투에서 왼팔이 잘려야 하거든.”

“네?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 네 미래는 다른가? 뭐, 됐어. 궁금증은 풀렸으니까. 덕분에 퀘스트도······.”

그때 고디바 사막을 침공한 마지막 몬스터의 목이 잘려 나가면서 성좌의 시련을 극복했고, 현세로 돌아왔다.

* * *

이야기를 다 들은 샤를로트는 고개를 갸웃했다.

“퀘스트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글쎄요. 저도 개인적으로 찾아봤는데 잘 모르겠더라고요. 뭐, 1,200년 전에 주로 사용하던 독특한 단어나 유행어일 수도 있죠.”

트리샤는 아이스티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아무튼 페레이라는 비범한 인물인 것은 확실해요.”

리니아는 부러운 눈빛으로 트리샤를 쳐다봤다.

“저도 페레이라를 직접 보고 싶네요.”

“이게 성물 모험가의 묘미죠. 정말 힘들긴 하지만 페레이라처럼 전설의 레전드와 대화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전설의 레전드요?”

“아, 이건 600년 전에 유행하던 유행어예요. 그냥 대단한 과거의 영웅들이라는 뜻이에요. 그냥 무시하세요.”

“아, 퀘스트도 그런 의미일 수도 있겠네요.”

트리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어깨를 으쓱였다.

“뭐, 그럴 가능성이 높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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