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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84화 (84/251)

#084화 – 경호(9)

레인로버와 베르강 그리고 라칸은 예복을 갖춰 입은 뒤 황제를 알현하기 위한 알현실로 향하고 있었다.

베르강의 손에는 묵직한 가방이 하나 들려 있었는데, 그 안에는 티그리스의 회고록이 담겨 있었다.

“드디어 끝이네요.”

레인로버는 조금 후련한 듯 발걸음이 굉장히 가벼웠다.

티그리스가 건네준 15권의 회귀록 그리고 10권의 인명록은 레인로버의 손을 거쳐 회귀록은 17권 분량으로, 인명록은 14권 분량으로 늘어났다.

제국 대학도 때려치우고 거의 밤낮을 지새우며 첨삭에 몰두했다 보니 시력도 나빠진 기분이었다.

이제 이 회고록을 황제에게 건네주고 설명하기만 하면 모두 끝이었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고생은요. 베르강 경이 제일 고생이 많았죠.”

베르강은 현재 입지가 굉장히 많이 흔들린 상황이었다.

룩스 교단뿐만이 아니라 대신들도 베르강이 괜한 짓을 하는 것 아니냐며 압박을 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베르강이 놈들을 감금한 지 보름 정도가 지나자 티그리스의 회고록에 나온대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었다.

놈들은 밥을 먹어도 빼빼 말라가고 있었으며 머리털은 숭숭 빠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놈들은 피의 갈증을 참을 수 없는지, 대신 물과 와인으로 버티고 있었지만 곧 그 인내심도 바닥나게 될 것이다.

“라칸, 혹시 오늘 그 퀘스트란 게 떴나요?”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무슨 퀘스트죠?”

“······.”

라칸답지 않게 조금 주저하는 듯하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 앞에서 춤을 추라고······.”

“······그럼 몇 포인트죠?”

“500포인트요.”

“······.”

“그런데 웃옷을 벗고 하면······.”

“거기까지. 웃옷을 벗고 추는 건 제가 도와드릴 수 없어요.”

그렇게 하면 1,000포인트 더 벌 수 있는데 아쉬웠다.

라칸은 이제 수치심이 아닌 국가 권력으로부터 저항해야 하는 퀘스트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궁정 앞뜰에서 미친 척 고함을 지르고 달린다거나, 황성 담벼락을 넘는다거나 하는 범죄행위 정도는 해야 포인트를 얻을 수 있었다.

솔직히 이제 그런 퀘스트들이 나올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무슨 춤을 추실 건가요?”

“아,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셔플댄스를 좀 췄거든요. 친구들 사이에서 이게 굉장히 유행이었죠.”

“셔플댄스······?”

“지금 보여 드릴까요? 어제 진짜 열심히 연습했는데.”

레인로버는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어차피 조금 이따가 볼 수 있을 텐데 그때 보도록 하죠.”

티그리스가 라칸만 보면 가끔 아찔해질 때가 있다고 하던데, 왜 그런 말을 한 건지 레인로버는 이제야 이해가 가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때, 알현실 문이 열리며 환관이 나왔다.

“황제 폐하께서 들라 하십니다.”

레인로버와 베르강 그리고 라칸의 눈빛이 변했다.

이제 오늘 이후로 세상은 180도 변하게 될 것이다.

“그럼 들어가죠.”

* * *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약속한 물레방앗간 앞에서 모였다.

트리샤는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상태였다.

“어?! 티그리스 님!”

온몸에 피가 덕지덕지 묻은 채로 해맑게 웃으니 티그리스도 조금 흠칫할 정도로 기괴했다.

“저 클린 아티팩트 좀 주실 수 있나요? 피냄새가 너무 나서요.”

티그리스는 트리샤에게 클린 아티팩트를 건네며 말했다.

“평소에 전투를 할 때도 피를 많이 묻히는 편인가?"

트리샤는 부끄러운 듯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제 전투 스타일이 조금 그래요. 저도 싫은데 버릇이 들어버린 터라 어떻게 고쳐야할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매번 피로 샤워를 하듯이 싸우는 것은 별로 좋은 습관은 아니다.

사람 피는 몰라도 몬스터들의 피에는 독성이 있는 것들이 있어서 잘못되면 중독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피 냄새는 몬스터들을 끌어모으는 주범이다.

이 주변에 몬스터가 없어서 다행이지 만약 고블린이나 오크와 같은 몬스터들이 있었다면 트리샤는 물레방앗간에서 전투를 한번 더 치렀어야 했을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한번 손을 보는 게 낫겠군.”

트리샤는 클린 아티팩트를 티그리스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티그리스는 기존에 사용하던 일반 검과 가면을 집어넣고 샐러맨더의 검을 꺼냈다.

“어? 이제 가면도 안 쓰시게요?”

“바로스 후작은 6서클 결계 마법사다. 만반의 준비를 하는 것이 맞겠지.”

“음······.”

트리샤도 가면을 벗어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럼 이 가면은 쓸 필요가 없던 거 아닌가요?”

"혹시나 민간인들에게 들킬까 사용한 것이다. 바로스 후작은 이 결계 안에 있으니 민간인들은 당연히 없을 테지.”

“그럼 바로스 후작은 어떻게 하실 셈이신가요?”

티그리스는 담백한 말투로 말했다.

“보이는 즉시 죽인다.”

“······정말요?”

리베르에서도 바로스 후작 암살을 계획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바로스 후작을 죽이면 수인족 자치구에 악영향만 끼칠 것이라는 판단이 서서 결국 암살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데, 티그리스는 단번에 죽인다는 말을 내뱉으니 뭔가 기묘했다.

황국은 바로스 후작을 죽인 후 빠르게 수습할 자신이 있다는 걸까?

트리샤는 솔직히 바로스 후작을 죽이는 것보다 바로스 후작이 죽은 후에 황국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가 굉장히 궁금했다.

“바로스 후작이 죽으면 남부 지방은 다소 혼란에 빠지긴 하겠지. 하지만 리스크를 판단했을 때, 지금 바로스 가문을 뿌리째 뽑아 없애 버리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황제 폐하께서요?”

“그래. 그리고 다시 수인족 자치구와 친밀한 수교 관계를 맺으며 밀렵꾼들에 대한 강경책을 펼칠 것이다.”

밀렵꾼들을 수수방관한 것도 모자라 오히려 독려하며 블랙 마켓도 운영했던 바로스 후작은 죽어 마땅했다.

앞으로의 인류를 위해서든 수인족을 위해서든.

그리고 남부 지방이 완전히 황제 폐하의 치하에 들어오게 되면 포그우드와 길리온 왕국 간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기면서 ‘악령 키메라’들을 생산하는 데도 차질이 벌어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보면 티그리스는 로타와 아르펨에게 경계심을 심어주고 시간을 버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 시간을 얼마나 알차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티그리스는 트리샤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용병들을 모두 죽이고 물레방앗간까지 달려오느라 지쳤던 몸이 회복된 것 같았다.

“그럼 출발하지. 그리고 기왕 이렇게 된 김에 기사가 결계 마법을 파훼하는 방법도 알려주마.”

“그렇게 느긋하게 해도 돼요? 바로스 후작은 그래도 6서클 마도사잖아요.”

“원래 결계 마법의 파훼는 조급하면 안 된다. 마치 거미줄을 빠져나가려고 벌레가 힘껏 발버둥을 치다가 오히려 몸이 더 엉키는 것처럼 말이다.”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천천히 숲을 거닐었다.

여름철의 밀림답게 밤에도 후끈했지만, 긴장감 때문인지 트리샤는 목덜미가 서늘했다.

바로스 후작의 무서움은 수인족 자치구에서 유명했다.

어린 수인을 납치한 밀렵꾼들을 쫓아간 밀림의 수호자들이 결계 마법에 걸려 되레 모두 당하고 말았다.

당시 밀림의 수호자들은 모두 마사라이의 뼈 바늘의 문신을 받은 베테랑 전사들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이후로 바로스 후작이 걸어놓은 결계안으론 절대 들어가지 않는 것이 밀림의 수호자들의 주 지침이 되었다.

트리샤는 티그리스를 흘금 쳐다봤다.

티그리스는 평소와 다름없이 마치 산책이라도 나가는 것처럼 편하게 걸었다.

'긴장 안 되시나?'

바로스 후작의 결계 마법을 경험해 보는 것은 처음일 텐데.

티그리스가 지금까지 말도 안 되는 일들을 해왔기 때문에 믿는 거지, 티그리스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였다면 이 결계 마법안으로 절대 들어가지 않았을 것이다.

“혹시 결계 마법을 겪어본 적은 있나?”

“네. 이 은묘의 망토를 얻을 때 겪어본 적이 있죠. 좀 끔찍하긴 했지만요.”

트리샤가 겪은 결계 마법은 현대적인 서클 마법이 아닌 원시적인 룬 문자를 통해 만들어진 결계 마법이었다.

원시적인 마법이라고 해서 끔찍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트리샤는 당시 같은 자리를 계속 맴돌게 만드는 미궁 결계에 걸렸었는데, 도저히 파훼할 수가 없어서 죽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 뒤로 결계 마법은 보면 피하게 되는 마법 중 하나가 됐죠. 결계 마법은 다른 마법들과 달리 단순한 무력으로 해결할 수가 없으니까요.”

트리샤는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그런데 티그리스 님은 어떻게 결계 마법을 파훼하실 건가요?”

“이렇게.”

티그리스는 나무 하나를 푹 찔렀다.

오러도 사용하지 않고 그냥 옹이구멍에 찔러 넣은 것이지만, 썩은 나무토막에 검을 집어넣은 것처럼 쑥 들어갔다.

샐러맨더의 검 자체가 좋은 것도 있었지만, 이 나무 자체가 기묘한 것도 있었다.

- 키아아아아아아아!

나무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나무줄기와 뿌리가 요동쳤다.

하지만 샐러맨더의 검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나무를 말끔히 불태워 버렸다.

툭-!

나무가 완전히 연소되어 사라지자 새까만 돌 하나가 떨어졌다.

“······이게 뭐죠?”

“결계를 구축하는 데 사용된 마석이다. 정식적인 명칭은 매개체라고 하지.”

“혹시 티그리스 님 마법사는 아니시죠?”

“기사라고 해서 마법을 전혀 모르면 안 된다. 특히 주문 사냥의 술을 배우고 싶다면 어떤 마법이 날아올 것인지 예측 정도는 할 수 있어야지.”

“······공부할 게 늘었네요.”

“아직 넌 배워야 할 것이 많다.”

티그리스는 마석을 주워 들곤 한 번 쓱 보더니 강하게 쥐어 으스러뜨려 버렸다.

그러자 검은 연기와 함께 마석이 사라졌다.

“그런데 마석이 왜 이렇게 새까맣죠?”

“일반 마법으로 구축한 것이 아닌 흑마법을 이용한 것일 테니까. 아니면 이렇게 하루만에 이런 효력 있는 결계 마법을 펼치진 못했겠지.”

“그럼 이걸 어떻게 발견하신 거예요?”

“마나 감지라는 관찰계 오러 운용술로 찾아낸 것이다.”

“마나 감지요? 그런 오러 운용술도 있었나요?”

“최상급 오러 운용술 중 하나다. 황궁 서고에만 있는 오러 운용술이라 잘 알려지지 않았고 물론 익히기도 쉽지 않지."

티그리스와 트리샤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워낙 어려운 오러 운용술이라 당장 익히는 것은 불가능하니 이런 결계 마법에 들어왔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마.”

티그리스는 오러를 일으켜 검기를 만들어냈다.

그러자 은빛으로 일렁이던 검기가 마치 바람 앞 등불처럼 휙 하고 꺼졌다.

“어? 갑자기 검기가 왜 사라졌죠?”

“대다수의 결계 마법은 마나를 잡아먹는 양이 끔찍하게도 많다. 그래서 웬만한 마법사들도 자신의 몸에 축적되어 있는 마나가 아닌 마석의 힘을 빌려서 사용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부족할 때가 있다.”

티그리스는 천천히 숲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똑같이 나무에 샐러맨더의 검을 꽂아 넣어 불꽃을 피어 올렸고, 검은 마석도 툭! 하고 떨어졌다.

티그리스는 검을 내리쳐 마석을 산산조각냈다.

“그래서 이 결계 안에 들어온 기사나 마법사들의 마나를 빼앗는 ‘흡수’ 관련 술식을 집어넣는다. 침입자의 오러나 마나를 빼앗는 것과 동시에 빼앗은 오러와 마나를 결계 유지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으니까.”

“오······.”

트리샤는 티그리스의 박식함에 입을 벌리고 경청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리고 뭔가 안도감과 함께 경계심도 사라지는 것이 노곤해졌다.

짝!

그때 티그리스가 트리샤의 뺨을 후려쳤다.

“정신 차려라. 트리샤.”

트리샤는 얼얼해진 뺨을 붙잡으며 말했다.

“예?! 예?”

“이런 결계 마법에 정신을 혼탁하게 만드는 술식이 안 들어가 있을 리 없으니까.”

트리샤는 순간 눈을 뒤집으며 기절할 뻔했다는 사실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트리샤는 성화의 검을 들고 디버프 마법 면역 효과를 켰다.

그러자 트리샤의 몸에 황금빛 오오라가 생기며 몽롱했던 정신이 돌아왔다.

“후······ 이거 활활이를 계속 사용하고 있어야겠네요.”

“디버프 마법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이 있나?"

“네. 정확히 말하자면 마법뿐만이 아니라 전투 지속에 해가 되는 모든 마법들을 제거해 주는 효과가 있어요.”

“그럼 공격 마법도 막아낼 수 있나?”

“공격 마법을 막아내는 마법 배리어가 따로 있죠. 우리 활활이가 일을 잘해요.”

“거의 마법에 관해선 만능이군.”

“언제나 활활이에게 신세를 많이 지고 있죠. 아 물론 콸콸이도요.”

티그리스는 또다시 마석을 하나 파괴했다.

“트리샤, 네가 사용할 수 있는 감지 계열 오러 운용술은 뭐가 있지?”

“복합 감지하고 육감 발현까지요.”

“오러의 유동을 읽어내는 ‘마나의 실’이라든가 ‘파동 감지’ 같은 건 아직 못 익혔나?”

“······넵. 그건 평민이 익힐 수 없는 고급 오러 운용술이라서요. 웬만한 것들은 제가 다 익히는데 그건 아직까진 못 익혔죠.”

“그럼 잘 됐군. 우선 '마나의 실’부터 가르쳐 주지.”

“그런데 진짜 여기서 오러 운용술을 가르쳐 주셔도 돼요? 뭔가 상황이 좀 그렇지 않아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는 결계의 외곽 중 외곽이다. 결계의 핵심과 굉장히 동떨어져 있는 곳이라서 바로스 후작이 영향력을 발휘하기 힘든 곳이지. 그리고 이렇게 결계 외부를 돌며 결계 술식의 매개를 부수며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스 후작이 오히려 달아오를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도 작전이라는 말씀이시네요?”

“그런 셈이다. 다른 결계 마법에도 통용되는 방법이니 기억해두도록 해라.”

트리샤는 티그리스가 도대체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 것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바로스 후작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결계 마법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인지.

티그리스의 강의는 곧바로 진행되었다.

“일단 기존의 감지계 오러 운용술들은 오감을 민감하게 만들어 감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육감 발현부턴 달라지지. 상대방의 시선과 살기 그리고 오러의 파동과 같은 정보를 복합적으로 처리하여 상대방의 위치와 노리는 목적까지 유추해 내는 것이 바로 ‘육감 발현’이다.”

트리샤는 학생 모드로 들어가 티그리스의 수업을 경청했다.

“그러나 그런 육감 발현은 굉장히 모호하지. 육감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몸에는 육감을 느낄 수 있는 감각기관이 없으니까. 그래서 육감 발현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촉각’을 이용하는 것이다.”

마치 보이지 않는 바람이 등 뒤에서 불어오면 촉각이 먼저 감지하듯이, 상대방의 시선과 살기를 촉각이라는 감각기관을 거쳐 감지해 내는 것이다.

“와······ 진짜 교관님이 맞으시긴 한 것 같네요. 전 육감 발현을 그냥 무식하게 맞으면서 배웠는데. 그런 원리는 전혀 알지 못했어요.”

“그게 제일 빠르게 배우는 방법이긴 하지. 결국 내 설명을 들었어도 눈을 가리고 맞는 것은 동일했을 것이다.”

“그럼 티그리스 님도 맞으면서 배우셨나······?”

“아니, 난 육감 발현을 배우기 전에 파동감지를 먼저 배워서 배울 필요가 없었다.”

“······젠장 불공평해.”

티그리스는 또다시 마석 하나를 부쉈다.

“각설하고, 마나의 실 또한 외부의 오러나 마나의 유동을 ‘시각’이라는 감각기관으로 읽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마나를 두 눈으로 보게 만드는 거라는 거죠?”

“그래. 정확히 이해했다. 그리고 그건 넌 이미 할 줄 안다.”

“제가 할 줄 안다고요?”

“검기를 만들어 낼 수 있지 않나? 검기는 오러의 유형화다. 물론 네 오러를 이용해 유형화시켰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번엔 역으로 사방에 퍼져 있는 마나들에 네가 자극을 주어 네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것이다. 마치 이렇게.”

티그리스의 몸에서 기묘한 오러의 파동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사방에 살아 있는 은빛 오러 실들이 나풀거리며 하늘을 유영하고 있었다.

그 광경은 마치 바닷속 물고기들과 함께 수영을 하는 것 같아 기묘하면서도 신비로웠다.

“······세상에.”

“물론 지금처럼 남의 눈에까지 보이게 하려면 굉장히 힘들고 오러도 많이 들어서 비효율적이지. 그러나 네 눈에만 보이게 하는 것은 생각 외로 쉬울 거다.”

트리샤는 한 나무로 향했다.

그 나무엔 은빛 실들이 몰려 있었다.

트리샤는 성화의 검에 담겨 있는 ‘성화(聖火)’를 발현시켜 쿡! 찔러 넣었다.

그러자 나무는 비명을 지르며 펑! 하고 터졌고, 티그리스와 달리 마석도 떨어지지 않았다.

성화의 능력 자체에 부정한 것을 태우는 능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흑마법과 극상성이었다.

애초에 흑마법이 마녀의 산물이니 마녀를 사냥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화의 검에 맥을 추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어떻게 하는지 대충 알겠나?”

“무슨 감각인지 알 것 같아요. 그러니까 보이지 않는 마나를 제 눈에만 보이게 만드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주변에 퍼져 있는 마나들을 제 눈에 보이게끔 자극시키면 된다는 건데······.”

트리샤는 잠시 생각하더니 티그리스가 한번 보여줬던 자극을 떠올렸다.

분명 순간적으로 주변에 있던 모든 마나들이 티그리스의 고유 오러 파동 주기와 똑같아졌다.

주변의 마나를 자신의 고유 오러 파동과 일치시키면 트리샤의 눈에 보이게 되지 않을까?

트리샤는 천천히 온몸을 이용해 오러를 내뿜었다.

단순히 내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ㅈ오러 주파수와 진폭이 맞아 떨어질 수 있게 자극을 주었다.

그러자 트리샤의 눈에 아주 잠깐 보라색 실들의 물결이 보였다.

“어! 보였어요! 아주 잠깐이지만 보였어요.”

“굉장히 빠르게 익히는군.”

“헷! 이 정도는 껌이죠.”

“그럼 다음 결계의 매개를 네가 찾아봐라.”

“네. 잠시만요.”

트리샤는 다시 한번 마나의 실을 사용했다.

그러자 또다시 번쩍이며 눈앞에 보랏빛 마나의 실이 보였다.

트리샤는 마나의 실들이 뭉쳐 있었던 나무를 향해 걸어갔고 검을 찔러 넣었다.

- 키에에에에에에에!

그러자 나무와 함께 마석이 불타오르며 사라졌다.

트리샤는 어린아이같이 활짝 웃으며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세상에······ 저 천재일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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