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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85화 (85/251)

#085화 – 경호(10)

바로스 후작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티그리스와 트리샤를 쳐다보고 있었다.

“지금 저것들이 뭘 하는 거지······?”

현재 트리샤와 티그리스는 바로스 후작의 결계 안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런데 마치 산책 나온 것처럼 결계 외곽만 돌면서 결계의 매개를 하나씩 하나씩 파괴하고 있다.

티그리스를 죽이기 위해 하루를 꼬박 만들어낸 바로스 후작의 정수가 담긴 결계가 약화되어 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보고만 있자니 눈알이 뒤집힐 것만 같았다.

‘내가 듣기론 마법사와 싸워본 경험이 전혀 없다고 들었는데?’

바로스 후작의 정보통에 따르면 티그리스는 기사들하고만 제대로 싸워봤지 마법사와 정식적으로 붙어 싸워본 적이 없었다.

기껏해야 슈비츠의 변이체와 싸워본 것뿐인데, 그런 하등한 마법하고 결계 마법은 다르다.

결계 마법은 고대 마법인 ‘룬’ 마법을 사용할 때부터 발전해 온 것으로 모든 마법 분야 중에 가장 역사도 깊고 효과적이다.

특히 지금 사용한 결계 마법은 '기사의 무덤’이란 마법으로, 바로스 후작령에 있었던 ‘라야칼’이란 고대 마법사의 결계 마법을 현대적인 서클 마법으로 재해석하여 만든 마법이다.

‘티그리스는 그렇다 쳐도 적어도 저 여기사 놈은 정신 계열 마법에 걸려야 하는 게 정상인데······.’

효과는 총 세 가지.

결계 안에서 검기나 마법을 발현하면 오러를 빼앗고.

쉽게 지치게 만들며. 정신을 혼탁하게 만든다.

그중 정신계열 마법은 특별한 마법 저항훈련을 거치지 않으면 절대로 버틸 수 없다.

트리샤의 손에 들려 있는 황금빛 오오라를 뿜어내는 저 검이 트리샤의 정신을 맑게 해주는 모양이었다.

으득-!

이대로 가다간 당하는 것은 바로스 후작일 것이다.

이 결계 마법은 마법의 핵이 부서지지만 않으면 유지되긴 하지만, 결계 마법의 효과를 증폭시키고 범위를 늘리는 것은 저 마석들이니까.

티그리스와 트리샤가 마석을 전부 파괴해버리면 바로스 후작은 독 안에 든 쥐 신세를 면치 못할 테니까.

그러면 방법은 한 가지다.

바로스 후작이 죽기 전에 놈을 죽이는 것.

바로스 후작은 음침한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는 커다란 검은 마석에 손을 뻗었다.

* * *

트리샤는 마석을 부수며 말했다.

“어휴······ 이거 조금 했다고 뭔가 지치는 기분이네요.”

트리샤의 목에는 송골송골 땀이 맺히고 있었다.

트리샤가 부순 마석의 개수는 총 19개.

티그리스가 이전에 부쉈던 것이 3개니까 총 22개를 부쉈다.

“마나의 실은 몸보단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는 고난이도 오러 운용술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데 연속으로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

“아, 그런가요?”

“이제 그만하고 체력 안배를 하도록.”

“네. 알겠습니다.”

이젠 티그리스가 직접 나서서 마석들을 부수기 시작했다.

“그런데 마석이 진짜 많네요. 바로스 후작가가 수인으로 돈을 좀 벌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많은 마석을 공급받기란 쉽지 않았을 텐데요.”

“나도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회귀 전의 바로스 후작이 마석을 많이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로타나 아르펨에게 공급을 받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도 마석을 사용하기 바빠서 마석 공급량이 굉장히 부족한 상태다.

연구실을 돌려야 하기 때문이다.

티그리스는 마석이 바닥에 떨어지자 주워들었다.

흑마법에 오염된 마석이라고 하더라도 굉장히 질이 좋았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상급, 아니면 최상급 마석임이 분명했다.

마석은 아티팩트와 스크롤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주원료다 보니 중급 이상부터는국가 단위에서 물량을 통제하고 관리한다.

그런데 한두 개도 아니고 이런 최상급 마석 수십 개를 사용한다?

바로스 후작의 자금력은 둘째치고 이 정도 최상급 마석을 황국의 눈을 피해 어떻게 얻은 것인지 당최 알 수 없었다.

'아이작이 알고 있겠지.'

바로스 후작의 후계자인 아이작이라면, 이 비정상적인 마석량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다.

‘이걸 최우선적으로 알아보라고 해야겠군.’

티그리스가 나무에 검을 꽂아 넣으려는 그때, 나무가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티그리스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트리샤도 눈치 좋게 나무와 일정 거리 이상 떨어졌다.

- 우어어어어어!

사방에서 나무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마석이 들어 있던 나무는 주변에 있던 나무들을 집어삼키는 듯 몸을 불리기 시작하더니 몸이 오우거의 두 배 이상 커졌다.

트리샤는 활활이를 강하게 잡았다.

“역시 나무들이 죽을 때 꿈틀거리면서 죽더니만······.”

마석이 들어 있는 나무들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티그리스와 트리샤를 향해 뿌리와 줄기를 이용해 공격해 왔다.

뿌리들과 줄기들은 하나같이 티그리스의 허리보다 굵은 것들이었다.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에 불을 붙이고 최대한 오러를 사용하지 않은 채 나무에게 돌진했다.

티그리스는 오러를 단 한 줌도 사용하지 않았지만, 그 굵은 나뭇가지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잘라내며 전진했다.

그리고 결국 나무의 본체 앞에 다다랐다.

티그리스의 오러 고리 5개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검에 아주 얇은 검기가 맺혔다.

서걱-!

티그리스는 검을 횡으로 그어 나무를 절반으로 토막 냈다.

나무 안에 들어 있던 마석이 정확하게 두쪽이 나며 타들어 가더니 나무는 재로 변해 사라졌다.

트리샤는 그런 티그리스의 검술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티그리스는 마석의 힘으로 더욱 단단해지고 질겨진 나무줄기들을 단순한 힘으로 베어내는 것이 아니라 결을 따라서 갈라낸 것이었다.

티그리스의 압도적인 테크닉에 트리샤는 입을 쩍 벌리고 볼 수밖에 없었다.

“넌 검기는 최대한 사용하지 마라. 역시나 검기를 사용하면 결계가 오러를 빨아들이니까.”

“그런데 티그리스 님은 검기를 어떻게 사용하신 건가요?”

“방법이 있다. 그건 지금 가르쳐 주기엔 시간이 촉박하니 나중에 알려주지."

“아······ 예. 알겠습니다.”

“신체를 강화하는 것까진 가능한 것 같으니 신체 강화까지만 사용하도록.”

트리샤는 뒤에서 날아온 촉수 같은 나무줄기를 향해 검을 내질렀다.

퍼석!

티그리스와 달리 단면이 깔끔하진 않았지만 잘라낼 수 있었다.

트리샤는 티그리스의 옆에 섰다.

“오른쪽은 내가 맡을 테니 왼쪽은 네가 맡아라. 잘라낼 생각은 하지 말고 나뭇가지들을 쳐내기만 해라.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결계의 핵까지 단번에 치고 들어가겠다. 잘 따라오도록.”

지금까지 느긋하게 마석들을 부순 이유는 체력 안배를 함과 동시에 마석들을 부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바로스 후작이 나무들을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체력을 갉아먹는 디버프 마법이 사라졌다.

이제 체력이 떨어질 걱정이 없으니, 결계의 핵까지 단번에 달려가서 놈의 목을 치는것이 맞았다.

- 구어어어어어!

티그리스는 전방을 가로막는 나무줄기의 벽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러자 나무줄기의 벽은 마치 폭탄처럼 터지며 활활 타올랐다.

샐러맨더의 검의 효과로 나무줄기들은 마치 불판 위에 올라간 문어들처럼 미친 듯이 트위스트를 췄다.

트리샤는 티그리스가 어떻게 저 나무의 벽을 부순 것인지 똑똑히 봤다.

주변 결계가 검기를 미친 듯이 빨아들인다고 하지만, 검기를 빨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티그리스는 결계 마법이 검기를 감지해내 빨아들이는 타이밍을 쟀고, 검기를 감지하고 빨아들이기 직전까지의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하여 검식을 완성한 것이었다.

검식을 완성하기까지 0.02초?

아니, 0.01초 만에 검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모자라 검식을 완벽하게 구사하다니.

기존의 상식이 완전히 부서지는 것 같았다.

결계에 다가갈수록 마법의 효과는 진해졌다.

달콤한 향기가 티그리스의 후각을 자극하며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역시 환각 마법이 짙어지는군.’

나무 곳곳에서 티그리스가 알고 있던 사람들이 나타났다.

온몸이 걸레짝이 되어 죽어가는 샤를로트, 포만의 저주에 걸려 몸을 덜덜 떨며 죽어가는 베오울프, 기억을 잃고 티그리스에게 검을 치켜세운 리니아까지······

그들은 모두 원망의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들의 처절한 눈빛이 티그리스의 심장을 난도질했다.

심지어 주변이 그날의 붉은 피로 물든 전장으로 변하기 시작하며, 부서진 대적자의 검과 드윈의 검도 보이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저 멀리 왼쪽 팔을 잃은 라칸이 원망의 눈으로 티그리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으득-!

티그리스는 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입안에 비릿한 혈향이 퍼지며 티그리스는 정신을 차렸다.

티그리스는 상급 오러 운용술 중 하나인 ‘전사의 영혼’을 사용했다.

전사의 영혼은 맨몸 하나로 용과 거인 그리고 마녀들을 대적하던 고대 바바리안 전사들이 만들어낸 오러 운용술 중 하나였다.

강인한 정신력을 증폭시켜 지금처럼 환각이나 환청 마법을 무시하는 능력이었다.

그러자 흐려진 눈이 다시 제대로 돌아오며 환각이 보이지 않았다.

‘트리샤는······ 괜찮군.’

성화의 검에서 피어오른 오오라가 트리샤의 몸을 확실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숨을 한번 내쉬었다.

‘완전히 극복하진 못한 모양이군.’

환각 마법을 한 번 걸린 것만으로 멘탈이 많이 흔들렸다.

티그리스는 이런 불안정한 마음을 분노로 치환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극시킨 바로스 후작를 토막 내 죽여 버리고 말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은 멀지 않았다.

“네놈이 어떻게······!”

바로스 후작은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놀라 자빠졌다.

티그리스는 바로스 후작의 앞에 있는 검은색 마석을 봤다.

검은색 마석은 일반적인 마석들과 달리 기이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손가락뼈?’

정확히 표현하자면 인간의 손가락 끝마디를 한 100배 정도 키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인체 구조에 해박한 티그리스이기 때문에 알아차린 것이지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거대한 마석으로 착각할 것이다.

일단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스 후작은 재빠르게 마법을 구현했다.

“체인 라이트닝!”

바로스 후작의 완드 끝에서 튀어나온 검은색 번개가 티그리스와 트리샤를 향해 달려들었다.

트리샤는 반사적으로 성화의 검에 들어있는 ‘마법 보호막'을 펼쳤다.

그러자 황금빛 배리어가 트리샤의 몸을 보호했다.

파지지지직!

바로스 후작의 마법은 트리샤의 마법 보호막을 꿰뚫지 못했고 사방으로 방전되었다.

티그리스는 놈의 마법 술식을 보자마자 번개 종류의 마법임을 눈치채고 주문 사냥의 술을 사용했다.

티그리스의 검에 닿자 번개가 사라졌다.

바로스 후작이 당황할 새도 없이 티그리스는 바로스 후작의 코앞에 나타났다.

바로스 후작은 반사적으로 메모라이즈한 배리어 마법을 사용했으나 티그리스의 검을 막을 순 없었다.

쩡-!

바로스 후작의 배리어 마법이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동시에 완드를 들고 있던 오른손이 잘려 나갔다.

“크아아아악!”

티그리스는 바로스 후작의 옆에 있던 거대한 마석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마석이 둘로 잘려 나가면서 검은빛을 잃었고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사방에서 날아오던 굵은 나뭇가지들의 움직임도 동시에 멈췄다.

바로스 후작은 패닉 상태가 되어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네······ 네놈이 어떻게 내 결계 마법을······ 우리 바로스 가문의 비전 마법을······.”

그러거나 말거나 티그리스는 품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들었다.

회중시계는 은사로 변했고, 은사는 바로스 후작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나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는 황제 폐하의 수사관으로서 베일 드 바로스 후작에게 반란 및 명령 불복종에 대한 죄를 피로 단죄하겠다.”

“자······ 잠깐······! 나를 이렇게 죽이면······!"

바로스 후작은 자신의 목을 정말로 칠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네 죽음으로 황제 폐하의 권위와 위엄을 세울 것이다.”

“날 죽이면 이 남부 국경은 무너진다! 수인족들이 황국을 침공할 것이고 길리온 왕국이 가만히 있을 것 같으냐!”

“그렇게 황국을 생각했다면 넌 황제 폐하를 배신하면 안 되었다.”

티그리스는 검을 치켜세웠다.

“말이 길었군. 죽어라.”

“안······!”

티그리스는 가차 없이 바로스 후작의 목을 베었다.

바로스 후작의 목이 날아가며 늙은 몸뚱이가 바닥에 쓰러졌다.

바로스 후작이 죽었다.

트리샤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수인들을 납치하고 감금해 팔아넘긴 악마가 죽은 것이다.

그런 자가 이리도 쉽게 죽었다니.트리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끝났군.’

티그리스는 다른 것들보다 속이 후련했다.

드디어 황국 내부 청소가 끝이 났다.

빈스모크 백작과 바로스 후작이 죽으면서 황국 내란의 빌미는 완전히 사라졌으며, 로타와 아르펨은 큰 조력자 둘을 잃었다.

대신 황국은 바로스 후작의 목을 바탕으로 수인족과 수교를 체결하고, 더욱 끈끈한 연을 맺어 길리온 왕국을 압박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타와 아르펨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건 티그리스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은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은 황국에 투자했던 그 모든 자본과 인적자원을 송두리째 잃었다는 사실이다.

이 점을 황국과 티그리스가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향후의 길고 긴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결정짓게 될 것이다.

티그리스는 은사를 통해 말했다.

“통신. 베일 드 바로스 후작 반란 및 명령 불복종에 따른 즉결 처형. 현재 위치로 시신 수습 요청 바람.”

* * *

바로스 후작이 죽은 후 하루 만에 황국 전역에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바로스 후작 반란죄로 즉결 처형!]

[바로스 후작 테호 대장로의 목숨을 노렸나?]

[바로스 후작 암살자들과 밀렵꾼들 고용.]

[바로스 후작을 처형한 비밀 수사관은 누구인가?]

[황국 비밀 수사관이 반란 모의 확인 후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즉결 처형한 것으로······]

[정치범 수용소에서 탈출한 A씨, 그곳은 지옥이었다.]

바로스 후작과 아이작의 죽음은 그날 아침, 황국 전역에 대서특필되었다.

이미 인퀴지터들이 바로스 후작령의 지역 신문사 사장들을 모아놓고 황실에서 내린 보도 지침에 따라 기사를 적게 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주인을 잃은 바로스 후작령의 영토를 황실에서 직접 관리하기로 결정을 내렸는데, 제2황자 에이미로가 남부사령관의 직책을 받고 직접 통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너무나도 발 빠른 대처에 이미 바로스 후작을 살해를 계획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들이 나왔지만, 그런 것은 바로스 후작령 내에선 상관이 없었다.

“와아아아아아아!”

“폭군 바로스 후작이 죽었다아아아!”

할키스를 포함해 테론과 같은 바로스 후작령의 시민들은 모두 뛰쳐나와 바로스 후작의 사망을 반겼다.

그리고 바로스 후작의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다가 목이 매달린 숭고한 희생자들을 수습해 공동묘지에 이관했다.

이제 바로스 후작이라는 구심점을 잃어버린 부패한 군인들은 백성들이 바로스 후작가를 모욕해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백성들에게 관심을 가질 여력이 없었다.

어서 장부를 정리하고 부정을 저지른 증거들을 싹 없애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인퀴지터들은 놈들이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쾅-!

“할키스 경비대장. 당신을 뇌물수수 및 방관 죄, 수인 밀렵 죄로 구속하겠소.”

“젠자아아앙!”

경비 대장이 난동을 치려 했지만 이미 인퀴지터들의 손에는 5서클 속박 마법 걸린 아티팩트 ‘탈진 사슬’이 들려 있었다.

탈진 사슬은 경비대장의 몸을 속박했고, 경비대장은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축늘어졌다.

경비대장 외에 물자 열차를 점검하던 관세청 및 철도 관리국 공무원들을 모조리 제압했다.

자잘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은 현재 인퀴지터의 전력으론 감당할 수 없었고, 그 대신 굵직굵직한 범죄자들만 잡아 감옥에 가뒀다.

그러나 자잘한 범죄를 저지른 잔챙이들은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저놈이야! 저놈이 우리 아들을 잡아갔어!”

“돌로 쳐 죽여!”

영주민들이 이리 떼처럼 몰려와 놈들을 잡아서 공개처형을 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내용을 신문으로 접한 레비스는 신문을 내려놓곤 잠시 생각에 빠졌다.

‘바로스 후작을 그냥 죽여 버릴 줄이야······.’

이런 과감한 판단을 어떻게 내린 것인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현재의 황실의 권력이 하늘을 모르고 치솟고 있다고 하지만 남부 사령관의 목을 칠 용기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다.

‘게다가 티그리스 그 녀석의 실력은 내가 가늠할 수가 없다.’

철옹성 같은 바로스 후작의 결계 마법을 뚫고 죽이다니.

황실의 과감성도 그리고 티그리스의 무력도 오판한 레비스의 명백한 실수였다.

그때 한 사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레비스 님 저희는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현재 테호 대장로를 칠 준비는 모두 완료된 상태였다.

“지금 테호 대장로를 죽여봤자 의미가 없겠지.”

정확히 말하자면 테호 대장로를 치는 것은 굉장히 위험했다.

바로스 후작이나 아이작이 죽기 전에 레비스가 테호 대장로를 노린다는 이야기를 했다면, 티그리스가 노리고 들어올 게 분명했다.

“테호 대장로는 포기한다.”

테호 대장로를 노리는 이유는 하나다.

수인족 자치구와 황국 간의 관계 개선을 막는 것.

하지만 황국이 수인족 밀렵에 대한 죄를 물어 바로스 후작의 목을 쳐버렸으니 수인족 자치구와의 관계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에 ‘야생의 본능’이라는 전략적 무기를 드러내는 것은 옳지 못했다.

“너희는 모두 길리온 왕국으로 향하도록. 열차는 타지 말고 밀림을 통해 은밀히 이동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럼 레비스 님께선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레비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리프 자작 영지.”

그곳에 티그리스의 대적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모리타 디 그리프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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