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3화 – 마녀
티그리스는 기절한 모리타를 호텔방 침대에 던져놓았다.
그리고 레비스가 든 관도 그 옆에 두었다.
티그리스는 다소 짜증 난 눈빛으로 모리타를 내려다봤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일이 터지는군.”
모리타와 함께 텔레포트로 이동한 것은 좋았다.
하지만 티그리스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으니, 모리타의 체력이었다.
텔레포트는 굉장히 성능 좋은 공간 이동기이지만 거리에 따라 순간적으로 온몸에 충격이 발생한다.
전문용어로 ‘공간 충격’이라고 하는데, 텔레포트 마법의 원리가 특정 공간과 특정 공간 사이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어 그 안으로 인체를 밀어 넣어 이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인체에 많은 부하가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인체를 보호해 주는 마법 술식이 같이 들어가긴 하지만, 공간 충격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될 수 없기에 모리타처럼 체력이 떨어진 상태이거나 체력 자체가 부족한 일반인의 경우에는 블랙아웃이 오곤 한다.
‘모리타가 하이덴 숲에 올 때 기절한 것을 떠올렸어야 했는데.’
여러모로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던 탓에 실수하고 말았다.
티그리스는 모리타의 건너편 침대에 걸터앉아 잠시 생각했다.
계획대로라면 호텔 방에 들어와 모리타에게 티그리스가 모리타의 양팔을 잘라 버린 이유와 레비스가 모리타를 노리는 이유까지 모두 설명하려 했다.
그리고 모리타의 반응을 봐서 두 가지의 선택지를 주려 했다.
하나는 모리타를 인퀴지터에게 맡겨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이는 것이다.
모리타가 갱생의 여지가 있고 티그리스를 더 이상 질투하거나 노리지 않는다고 판단이 되면 대륙의 극서부에 있는 바야 열도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해줄 생각이었다.
바야 열도는 배편으로 거의 한 달 넘게 이동해야 하는 외진 곳이긴 하지만 자급자족이 가능한 곳이기도 하다.
모리타는 4성 기사이니 팔이 없더라도 그곳에서라면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고 적어도 굶어 죽진 않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냥 죽이는 것인데, 모리타가 갱생의 여지가 없거나 그냥 죽여달라고 부탁을 하면 최대한 편안하게 보내줄 생각이었다.
모리타 일을 마무리 짓고 내일 새벽 일찍 신비의 땅으로 이동할 예정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모리타는 일어날 기색이 없었다.
침대에 던졌을 때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보면, 내일 아침까지도 안 일어날 가능성이 컸다.
‘모리타는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티그리스에게 남는 것이 시간이었다.
바로스 후작과 레비스의 죽음.
로타와 아르펨의 권속들은 이 문제를 놓고, 대처 방안을 짜는 것만으로도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레비스의 영혼도 천공의 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기 때문에 영혼이 빠져나갈 염려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자 티그리스는 마음이 편해지며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포그 우드에 그 노파가 있었지.’
회귀 전, 라칸과 티그리스에게 로타의 키메라 실험실이 있던 곳을 알려주었던 의문의 노파.
‘키메라 실험실의 위치를 알려주고 제인의 위치를 제대로 알려주기도 했으니 로타나 아르펨의 권속과 관련 있는 인물은 아니다.’
지금까지 워낙 바빠서 노파에 관심을 가질 여력도 없었고, 포그 우드에 굳이 올 이유도 없었기에 관심을 끄고 살았지만 마침 시간이 남았다.
티그리스는 몸을 일으켰다.
‘한번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영기 나침반과 부적들을 구매해야 하기도 했고.’
티그리스는 레비스가 든 관을 둘러메고 밖으로 나섰다.
물론 나올 때, 모리타가 침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발을 묶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 * *
포그 우드에서 관을 들고 다니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죽음을 다루는 혼령술사라는 이미지 때문은 아니고, 혼령술사들은 부업으로 관을 짜거나 장의사 일을 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파처럼 효험 있는 부적이나 주문박이를 파는 사람이 더 드물 정도다.
그래서 티그리스가 황금빛 사슬로 칭칭 동여맨 관을 들고 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저 무거운 관을 한 손으로 둘러메고 다닐 수 있는 완력이 있다는 것을 굉장히 신기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노파의 집]
이미 해가 다 지고 어둑어둑하지만 노파의 집은 영업 중이었다.
티그리스는 노파의 집을 열고 들어갔다.
‘여긴 여전하군.’
레니가 보자마자 울음보를 터뜨릴 정도로 기괴한 주술 도구들이 가득했다.
살아 움직이는 눈알, 새끼손가락을 떠는 말라비틀어진 손, 턱이 부서진 해골 등 해가 진 저녁에 와서 보니 더욱 기괴했다.
노파는 흘흘 웃으며 말했다.
“반년이 조금 넘었나? 제법 유명 인사가 되었던데?”
노파는 티그리스가 누구인지 곧바로 알아챈 모양이었다.
티그리스는 폴리모프 마법을 해제했다.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자네처럼 업이 많이 쌓여 있는 영혼은 드물지. 그 관에 들어 있는 놈만큼은 아니지만 말이야.”
티그리스는 레비스가 든 관을 카운터 앞벽에 세워뒀다.
“이 관에 들어 있는 놈이 누군지 아나?”
노파는 곰방대 재를 털어내곤 입을 열었다.
“분명 한 15년 전쯤에 저놈이 나한테 로타라고 소개했었지.”
“······뭐?”
티그리스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노파가 로타를 알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레비스가 로타라는 말에 더더욱 놀란 것이다.
“이 녀석의 이름은 레비스다. 로타가 아니고.”
“이름이야 취향껏 바꾸면 그만이지. 물론 놈의 영혼을 보니 15년 전과 좀 다른 게 있군.”
노파는 곰방대를 들어 관을 내려쳤다.
딱!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관에서 울려 퍼지는 귀곡성에 티그리스는 순간 검을 빼어 들 뻔했다.
“평범한 인간의 격이 아닌 드래곤이나 거인의 영혼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격이 높아. 하지만 예전하곤 많이 다르군. 자신의 격을 일부러 격하시키고 둘로 나누었어. 왜 이런 짓을 한 거지?”
노파는 다시 관을 때렸다.
-끄아아아아아아!
“아하, 그렇군. 그래. 저주의 대가를 회피하기 위해서군. 저주의 대가는 영혼이 아니라 육체에 쌓이니까. 몇 번이고 육체를 갈아탄 흔적이 있어. 그런데 신기하군. 보통 다른 육체로 갈아타면 육체에 남은 기억 때문에 인격이 오염되게 마련인데 어떻게 감당하려고 이렇게 자주 몸을 갈아탄 거지?"
노파가 다시 관을 때리려 하자 티그리스는 노파의 곰방대를 잡았다.
“영혼을 그만 자극해라. 봉인이 풀릴 수 있으니.”
“천공의 사슬에 단단히 영혼이 잡혀 있는데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겠나? 놈이 드래곤도 아니고 말이야.”
노파는 관을 둘러싼 황금 사슬의 정체도 단번에 파악한 모양이었다.
“도대체 네 정체가 뭐지?”
노파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한다고 해서 믿을 수 있겠나?”
“듣고 판단하지.”
노파는 티그리스의 눈을 쳐다봤다.
티그리스의 눈에서 무언가를 읽으려는 듯 집중해서 보기 시작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고압적이면서도 강압적인 말투는 전형적인 귀족 같지만 반년 전과 달리 독기가 빠져 있군. 그땐 고급스러운 검집에 들어가 있는 날카로운 검 같았는데······ 지금은 날이 무뎌졌어. 그러니 혹을 결국 잘라내지 못하고 이곳에 온 거겠지.”
노파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미련인가? 아니면 죄책감인가? 아니, 후회로군.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돌다리도 두들겨 보는 마음으로 검을 내지르는 것을 신중하게 하는 것이야.”
“그래. 날이 무뎌진 게 아니야. 자넨 쉬운길을 놓고 복잡하고 어려운 길을 걸으려고 하는군. 하긴 도려내는 것은 쉽지만, 한번 도려내고 나면 되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실제로 많은 사람을 죽이기도 했고.”
노파는 티그리스의 얼굴만으로 티그리스의 인생을 축약해 설명했다.
그건 테호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넌 확실히 인간은 아니군.”
“너도 평범한 인생을 살아온 것은 아니야. 겨우 20살짜리가 겪을 수 있는 눈동자가 아니거든.”
“넌 누구지?”
“그럼 너는 누구지? 티그리스? 넌 네 정체를 알려줄 수 있나?”
“없다.”
“그래. 나도 그럴 수 없어. 우린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하나씩 있거든.”
노파는 곰방대에 담뱃잎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구가 될 수 없다는 건 아니지. 너와 나는 공통적인 적을 마주하고 있으니까.”
“그게 로타다?”
“뭐, 그런 셈이지.”
“분명 15년 전에 로타를 만난 적이 있다고 했었지. 그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놈이 내가 관리하는 악령들을 훔쳐 가려고 했었지. 그 악령들은 풀려나면 포그 우드가 아니라 빅토리에 지역까지 영향을 미칠만큼 끔찍한 놈들이라고. 그런 악령들을 훔쳐서 뭐에다 쓰려고 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딱 봐도 좋은 취지는 아닌 것 같았지.”
노파는 티그리스에게 성냥을 건넸다.
“불 좀 붙여주겠나?”
티그리스는 성냥 머리를 엄지손톱으로 튕겨 불을 붙였다.
전장에서 불을 피울 때 사용하던 버릇이었다.
“불을 붙이는 모양새가 굉장히 노련한 군인 같군.”
티그리스는 말없이 노파의 담뱃잎에 불을 붙였다.
노파의 손이 티그리스의 손등에 닿았다.
자글자글한 주름진 손이 아닌 따뜻하고 보드라운 깃털을 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노파는 검은 머리칼의 매혹적인 젊은 여자로 변해 있었다.
“이게 본 모습인가?”
“뭐, 그런 셈이지.”
외부 마나의 변화도 없이 저절로 변한 것이다.
한마디로 폴리모프 마법과는 다른 주술을 이용한 외모 변화라는 것인데, 티그리스가 알기론 그런 주술은 수인족의 ‘변장 마법’만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수인족은 아닌 것 같은데 수인의 변장 마법을 사용하는군.”
노파, 아니, 여인은 연기를 내뿜었다.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키는 주술은 수인족의 것 말고도 무수히 많았지. 계승이 되지 않았을 뿐이란다.”
여인은 본 모습으로 돌아오자 마치 티그리스를 어린아이 대하듯 말했다.
“넌 얼마나 영혼을 옮긴 거지?”
“설마 내가 영혼을 다른 육체로 옮기며 삶을 연명했을 거라 생각하는 거니? 그런 짓은 하고 싶지도 않고 불가능해.”
“레비스는 그런 짓을 수차례나 했다. 이 녀석의 혼령술의 수준이 너보다 높은 건가?”
“도발하는 법은 아직 미숙한 것 같네. 그래도 넌 귀여우니 설명해 줄게.”
여인은 날아다니는 파리 하나를 잡았다.
여인은 주먹을 여러 번 흔들어 파리를 기절시킨 뒤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유리병 안에 담겨 있던 살아 있는 귀뚜라미 하나를 꺼내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귀뚜라미는 비틀거리더니 파리와 똑같이 기절했다.
“난 이제부터 이 귀여운 두 녀석의 영혼을 바꿀 거야. 그럼 어떻게 될까?”
“영혼에 기억이 담겨 같이 움직이지 않는 이상 별 차이는 없다.”
“정답이야. 하지만 난 제법 하는 혼령술사거든. 이 녀석들의 기억을 온전히 보전한 채 영혼을 바꿀 수 있어. 잘 보라고.”
여인은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곤 내뱉었다.
그러자 연기가 귀뚜라미와 파리를 감싸더니 기이한 다리가 만들어졌다.
여인이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그 다리를 타고 귀뚜라미와 파리의 영혼이 교환되는 모습이 한눈에 보였다.
파리와 귀뚜라미의 영혼이 완벽하게 교환이 되자 여인은 손바닥으로 연기를 날렸다.
‘저 곰방대도 일반적인 주술 도구는 아니군.’
영혼을 교환하는 주술은 굉장히 고난이도 주술 중 하나다.
아무리 벌레의 영혼을 교환한다고 할지라도 이렇게 약식으로 주술을 펼칠 수는 없다.
저 곰방대는 주술용 성물일 가능성이 클것이다.
“이제 잘 보라고.”
여인은 탁상을 탁! 쳤다.
그러자 파리와 귀뚜라미는 정신을 차리더니 기이한 모습을 보였다.
파리는 귀뚜라미처럼 뛰어다녔고, 귀뚜라미는 날개를 이용해 날아다녔다.
“여기서 문제를 하나 내볼게. 이 파리는 귀뚜라미일까? 아니면 파리일까?”
“귀뚜라미도 파리도 아니겠지.”
“정답이야. 영혼이 다른 육체로 들어가면 인격이 오염되게 되어 있어. 영혼의 기억과 육체의 기억이 충돌하면서 전혀 다른 인격이 탄생해. 한마디로 얘는 파리도 귀뚜라미도 아닌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거지.”
파리는 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병에 걸린 것 같았다.
“그리고 신체 구조도 완전히 다르다 보니 몸에 익숙해지는 데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지. 만약 이 짓거리를 두세 번만 더 하면 미쳐 버리고 말걸?”
“그 말은 영혼을 다른 육체로 옮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는 건가?”
“목숨을 내놓는 일보다 쉽지 않은 일이지.”
티그리스는 슈비츠의 일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럼 지능이 떨어지는 키메라의 몸에 자신의 영혼을 담는 거라면?”
“그나마 낫긴 하지만 위험해. 조금 정도야 더 버틸지 모르지만 계속 반복하면 인격이 오염돼서 미쳐 버리고 말걸?”
그러고 보니 슈비츠는 레비스와 달리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포악하게 변했었다.
생살을 씹어 먹거나 혼잣말을 자주 하거나 다중 인격 장애를 겪는 듯 싸우는 도중에 인격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
레비스는 다르다.
호문쿨루스라는 기억이 아예 없는 육체에 영혼을 옮김으로써 인격이 훼손될 리가 없는 것이다.
“이해했다.”
여인은 카운터 앞으로 몸을 쭉 내밀어 티그리스에게 다가왔다.
“너 뭔가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런 셈이지.”
여인은 티그리스의 눈을 집요하게 쳐다봤다.
“이 확신에 찬 눈빛을 보아하니 재미있는 비밀을 알고 있는 모양이네? 혹시 알려줄 수있어?”
“그 대가는 뭐지?”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혼령술에 대해 알려줬잖아. 그거면 되지 않을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 그리고 그건 내게 있어서 그리 중요한 정보는 아니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까 점점 애가 타네. 아~ 나 이런 호기심에 진짜 약한데.”
여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 그럼 삼문답으로 할까? 난 네가 묻는 그 어떤 질문에도 응하겠어. 대신 질문의 개수는 총 세 개고 내 정체에 대한 질문은 하지 않는 걸로.”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을 거란 보장이 어디에 있지?”
티그리스는 표정과 생체 신호로 거짓말을 감지해 낼 수 있다.
하지만 신체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이 기괴한 주술사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거짓말과 진실을 구분하지 못하게 주술로 표정을 바꾸거나 생체 신호를 조작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티그리스는 이 여인이 단순한 혼령술사라고 생각이 되지 않았다.
티그리스의 순수한 감이지만 드래곤과 같은 격이 높은 존재일 가능성이 컸다.
“정말 신중하네. 하긴 이 녀석과 관련된 일이라면 신중할 필요는 있겠지. 보니까 정말 힘들게 잡은 것 같거든.”
여인은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러자 여인의 몸을 연기가 감싸더니 목에 회색 줄 세 개가 만들어졌다.
“고대 주술 중 하나인 진실의 족쇄라는 거야. 내가 하는 말이 참이라면 이 족쇄가 풀어질 것이고, 만약 거짓을 말하면 풀리지 않지. 이 정도까지 해줬는데 못 믿겠다면······뭐 내가 직접 나서서 알아봐야겠지? 귀찮긴 하겠지만 말이야.”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 주술을 경험해 보고 싶군.”
“안 될 건 없지. 어차피 너도 나한테 진실을 말해야 할 테니까 말이야.”
여인은 다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그러자 티그리스의 목에 회색 줄 하나가 만들어졌다.
“그럼 네가 먼저 대답을 해볼래? 어째서 로타가 인격의 훼손 없이 자유자재로 새 육체로 영혼을 옮길 수 있는 거지?”
“로타는 기억도 인격도 아무것도 없는 호문쿨루스의 육체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티그리스가 진실을 말하자 목에 걸려 있는 회색 문신이 사라졌다.
여인은 예상치 못한 답변을 들었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건 말도 안 돼. 인간이 호문쿨루스를 만드는 건 불가능해.”
“로타는 인간이 아니지 않나?”
“아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야. 영혼이 없는 인간 자체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영혼이 들어갈 수는 없어. 마치 고깃덩이로 인간의 영혼이 들어가는 거나 다름이 없다고.”
“난 진실만을 말했을 뿐이다. 난 호문쿨루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까진 설명해 줄 수는 없어.”
“네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니고?”
“그럴 일은 없다. 난 지금도 살아 있는 호문쿨루스를 알고 있으니까.”
“그동안 세상 일과 너무 동떨어져 있었던 것 같군.”
여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뒤가 좀 찝찝하긴 한데 그래도 성심성의껏 질문에 답해줬으니 나도 최대한 잘 설명해 줄게. 뭐든 질문해 봐.”
“너와 로타 그리고 아르펨의 관계는 어떻게 되지?"
“로타는 내가 관리하는 악령들을 훔쳐 가려 했던 도둑놈이었어. 하지만 워낙 미꾸라지처럼 도망간 탓에 놓치고 말았지.”
“그러니까 좋은 관계는 아니라는 뜻인가?”
“아주 찢어 죽여도 모자랄 녀석이지. 내가 관리하는 악령들이 풀려나면 대륙 남부 전체는 횡액이 가득해져 사람이 발도 들이지 못할걸? 푸른 등불로도 잠재우지 못할 테니까. 아르펨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잘 모르겠어.”
여인의 목에 걸린 문신 하나가 사라졌다.
그 말은 진실이라는 뜻이었다.
티그리스의 눈으로 봤을 때도 여인의 말은 진실이었다.
적어도 로타와 좋은 관계는 아닌 듯했다.
“그럼 왜 그런 위험한 악령들을 관리하는 거지?”
“생각보다 질문이 날카로운데? 두 번째 질문 맞지?”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의 눈동자가 살짝 깊어졌다.
티그리스가 감히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케케묵은 오래전 이야기를 떠올리는 듯했다.
“음······ 저주라고 해야 하나?”
“저주?”
“주술적인 의미의 저주는 아니지만······ 그렇게밖에 설명을 하지 못하겠네. 난 죽지도 못하고 악령들이나 지키고 있으니 말이야.”
여인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눈이 굉장히 슬퍼 보였다.
“아니, 가만 생각해 보니 저주는 아닌 것같아.”
“그럼 뭐지?”
“사랑인가 봐.”
여인의 목에 걸린 문신 하나가 또 깨졌다.
여인은 적어도 진실을 말하고 있는 듯 했다.
여인은 슬픔을 털어내며 웃었다.
“그런데 너무 노골적으로 내 정체를 알아내려고 하는 거 아니야? 내 정체를 알아도 네가 좋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티그리스는 문득 회귀 전 드워프의 기록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던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티그리스는 여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왜 그래? 내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나? 아니면 반하기라도 한 건가?”
“아니.”
티그리스는 기억력이 제법 좋은 편이다.
물론 검술 한정이긴 하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보단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특히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 있는 기록들은 하나하나가 세상에 파란을 일으킬 역사가 적혀 있기 때문에 최대한 꼼꼼하게 기억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 같아서.”
“날? 어디서?”
“책에서.”
티그리스는 문득 멸지의 마왕을 쓰러뜨린 페레이라의 일대기를 담은 모험기가 떠올랐다.
페레이라의 모험기는 워낙 유명해서 황국내에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그 모험기는 1,300년이란 세월 동안 많은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변질되었다.
어떤 것은 과장되고 어떤 것은 축소되었으며, 어떤 것은 삭제되었다.
특히 마녀의 시대를 거치면서 페레이라의 모험기에서 한 여인의 이름이 삭제되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분명······.
“아모리스 미아.”
여인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잠시만······.”
“용사 페레이라의 동료 중 유일한 마녀이자 연인.”
티그리스는 여인의 떠는 눈동자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넌 아모리스 미아가 맞나?”
여인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결국 입을 뗐다.
“······맞아.”
그녀의 목에 걸린 문신이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