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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94화 (94/251)

#094화 – 아모리스

제 아무리 티그리스라고 하더라도 표정관리를 할 수 없었다.

용사 페레이라와 함께 멸지의 마왕을 막은 영웅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의 표정이 굳자 아모리스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런데 나 마녀라고 불리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마녀는 엄밀히 말하자면 멸지의 마왕의 실험으로 인해 새롭게 탄생한 인종이었다.

멸지의 마왕은 수백만 마리의 몬스터들을 한 번에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중간 지휘관 역할을 할 존재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각 몬스터 종족의 대표이자 자의를 갖고 작전을 짜서 움직이는 대장군.

대장군을 보좌하며 몬스터를 생산하는 둥지장.

대장군이 내린 명령을 휘하 몬스터들에게 하달하고 개인적인 판단도 할 수 있는 우두머리 등.

멸지의 마왕이 탄생시킨 지휘 개체들은 굉장히 많았는데, 그중 마녀는 실패작이었다.

마녀는 몬스터들에 대한 명령 권한은 대장군과 동급인 데다가 심지어 대장군 개체보다 훨씬 더 많은 몬스터들에게 한 번에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러나 지배력과 자의식이 워낙 강력한 탓에 마왕의 명령을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고, 결국 폐기 처분 명령을 받았다.

폐기처분 되기 직전, 페레이라가 실험실에 난입하여 아모리스를 포함한 29명의 마녀들을 모두 구출했다.

그래서 그녀들은 멸지의 마왕이 붙인 ‘마녀’라는 이름을 굉장히 싫어했으며, 평범한 인간으로 불리길 바랐다.

티그리스는 그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진심으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모리스는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는 티그리스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티그리스가 사과를 했다는 말은 자신을 마녀가 아닌 영웅으로 생각해 준다는 거니까.

“너도 본의로 말한 거 아니잖아.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존댓말은 무슨. 그냥 좀 전처럼 편하게 반말해."

“대륙을 구한 영웅에게 반말은 할 수 없습니다.”

아모리스는 영웅이란 말을 직접 들으니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아모리스는 사실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영웅이라 불러주는 것이 처음이었다.

1,300년 전 몬스터를 조종해 마왕의 공격을 막아냈을 때도 대다수의 인간들은 마녀의 힘을 너무나도 두려워했기 때문에 영웅이라 불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도 미래엔 마녀라 불린 자신들을 영웅으로 대접해 줄 것이라 생각했지만 세상은 너무나도 차가웠다.

동화엔 아모리스의 이름이 빠져 있었고. 함께 지옥을 탈출한 자매들은 멸지의 마왕이 남겨놓은 악의 씨앗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에 너무나도 충격을 받아 포그 우드에 정착하여 세상과 등을 지고 은둔하여 살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황국 최고의 영웅이라는 자가 아모리스를 영웅으로 대접해 준다는 게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런데 날 어떻게 알아본 거지? 내가 페레이라의 연인······이라느니 동료였다느니 이런 것은 세상 그 어떤 역사서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을 텐데?”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서 읽었습니다.”

아모리스는 작은 탄성을 내질렀다.

“아, 맞다. 그 땅딸보 아저씨들. 그 아저씨들이 계속 기록으로 남겨뒀었지!”

아모리스는 자신이 순간 영웅으로서의 체통을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는지 헛기침을 했다.

“큼! 어. 그런데 그 기록 보관소는 들어가기 힘들 텐데 어떻게 들어간 거지? 내가 알기론 모든 드워프들이 동의해야 들어갈 수 있을 텐데?”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했다.

자신의 비밀을 드러낼 것인가 말 것인가.

‘······말하는 것이 맞다.’

티그리스는 단순히 과거의 영웅과 대화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투에서 도움이 될 인재를 영입하는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감춘 비밀을 드러내 확실하게 설명하는 것이 맞았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회귀했습니다. 회귀자라는 말의 의미는······.”

“······너도?”

티그리스는 ‘너도’라는 말에 움찔했다.

“······'너도'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기록 보관소 들어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페레이라에 대한 건 모두 알고 있을 텐데?”

“들어갔던 것은 맞긴 하지만 모든 비밀은 알지 못합니다. 당시 한가하게 과거 역사를 읽을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저 말고 또 누가 회귀를 했습니까?”

“내가 방금 말했잖아. 페레이라도 한 번 삶을 반복한 회귀자라고.”

티그리스는 너무나도 놀라운 진실에 순간 숨이 턱 막혔다.

페레이라가 자신과 같은 회귀자라니.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지?’

티그리스가 회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라칸 덕분이다.

라칸이 포인트 상점을 이용해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회중시계를 티그리스에게 넘겼고 회귀할 수 있었다.

‘그럼 라칸이 페레이라와 같은 존재인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검을 못 다루는데?’

분명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는 페레이라는 검과 마법을 모두 잘 다룬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소드 마스터에 대마법사.

그 둘을 모두 이룬 인간은 지난 1,300년 역사 동안 페레이라 하나뿐이었고, 그건 티그리스도 감히 도전해 보지도 못할 업적이었다.

‘그럼 라칸과 페레이라는 아예 다른 존재라고 보는 것이 맞는가?’

“티그리스 설마 너도 그 포인트 상점을······? 너도 설마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거니?”

“······아뇨. 그것은 아닙니다. 전 라칸이라는······ 전우가 절 되돌려 보내준 겁니다.”

“전우? 그런 오그라드는 말을 입에 올리는 사람은 처음 보네. 뭐, 아무튼 그 회귀의 힘을 너한테 사용했다고? 도대체 왜?”

전혀 예상치 못한 진실을 들어서일까?

티그리스는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설명을 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티그리스의 설명은 한동안 계속되었고 아모리스는 묵묵히 들었다.

티그리스는 회귀 전의 일을 모두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라칸과 자신의 관계 그리고 왜 자신이 로타와 아르펨을 노리는지까지만 설명을 했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라칸이 빙의자고 너는 회귀자며 세상은 또다시 멸망하려고 한다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그리고 너는 라칸이 도저히 감당할 수는 인성 파탄자라서 널 회귀시켜 버린 거고?”

“······예. 그렇습니다.”

아모리스의 언행은 생각보다 거침이 없었다.

원래 사람은 만나는 대상과 상황마다 성격이 조금씩 바뀐다고 하지만 아모리스는 자신이 멸지의 마왕을 봉인시켰던 영웅들 중 하나라는 것이 밝혀지자 티그리스를 아주 편하게 대하고 있었다.

그것이 불편한 건 아닌데 티그리스가 생각하던 영웅의 이미지와 달라 조금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얼마나 심각했길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딱 너처럼 굉장히 귀족적이고 검술에 미친 놈이 하나 있긴 있었지.”

“설마 검성(星) 호스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너도 잘 아는구나? 그 녀석이 얼마나 페레이라랑 사사건건 부딪혔는지······ 어휴 말도 못 해. 그때, 일반 병사들 먹일 식량을 덜어서 기사들에게 더 배분해야 한다고 아주 그냥 염ㅂ······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서 페레이라가 얼마나 골치를 썩였는데.”

“······그래도 호스가 한 말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모리스는 뜨악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설마 페레이라파가 아니라 호스파니? 하긴 그게 너답기도 하다.”

“······.”

아모리스는 순간 자신이 신나게 과거 이야기를 한 게 조금 부끄러웠는지 얼굴을 붉혔다.

“뭐······ 그런 시절이 있었다고. 우리도 막 영웅으로 치켜세워졌지만 뒤에선 못 볼꼴 다 보였어. 페레이라나 호스나 나나 실수는 엄청나게 많았지."

티그리스는 아모리스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전 회차에서 티그리스나 라칸이나 레인로버나 굉장히 많이 실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믿을 만한 사람을 선별해서 회고록을 건네고 그 회고록을 바탕으로 작전 계획을 세워 실수를 줄일 수 있었지만, 모리타와 같은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오곤 했다.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응. 말해봐.”

“제가 알기론 멸지의 마왕을 봉인하면서 페레이라 님과 함께 신비의 땅에 봉인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탈출할 수 있었냐고?”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그걸 설명하려면 신비의 땅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해야겠네. 혹시 신비의 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궁금한데 이야기 해줄 수 있어?”

티그리스는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 적혀있던 신비의 땅과 관련된 문서를 떠올렸다.

“신비의 땅은 특별한 지역이라기 보단 멸지의 마왕을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봉인식입니다.”

“주술로 시공간의 흐름을 비틀어 멸지의 마왕의 영혼이 신비의 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막고, 마법으로 멸지의 마왕의 육신을 단단히 봉인한 것이죠.”

그래서 티그리스가 레비스를 신비의 땅에 묻으려고 한 것이다.

신비의 땅은 마왕의 영혼과 육체도 빠져나오지 못했던 신비스러운 봉인식 그 자체이기 때문에 레비스가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멸지의 마왕이 신비의 땅에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극소수만이 알게 하기 위해 인식을 비트는 주술도 함께 사용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어느 정도 알고 있네. 그렇다면 좀 이상하지 않아? 주술은 나랑 페레이라가 희생해서 시공간을 뒤틀었다고 치자고, 하지만 마법은 달라. 마왕의 육체를 봉인하는 마법은 생각보다 엄청난 양의 마나를 잡아먹지. 그렇다면 어떻게 멸지의 마왕의 육체를 봉인할 수 있었던 걸까?”

“마법은 제 분야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멸지의 마왕의 몸에서 나오는 마나를 원료로 마법이 가동되고 있는 거야. 쉽게 설명하자면 아티팩트의 마석과 같은 역할이랄까?”

“마왕의 육체를 술식의 일부로 삼은 거란 말씀이십니까?”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놀란 표정이 웃긴지 풋! 하고 웃었다.

“그 표정 전에 본 적이 있어. 페레이라랑 내가 봉인술식을 만들었을 때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런 표정을 지었지. 뭐, 사실 거의 도박에 가깝긴 했어. 마왕을 봉인술식 안으로 유도해야 했고, 그 봉인술식 안에서 마왕을 완벽하게 제압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우린 성공했고, 마왕을 봉인할 수 있었지. 나랑 페레이라가 희생하긴 했지만 말이야.”

“1,300년 동안 봉인술식을 유지할 만큼 마왕이 갖고 있는 마나가 그렇게 많습니까?”

“이 포그 우드에 마나가 풍부한 이유를 잘 모르겠어? 공기 중에 떠다니는 이 마나들이 전부 마왕의 몸에서 나온 마나가 정화되어 나온 거야. 물론 1,3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보니 마왕의 마나도 거의 다 떨어져 가는 상황이긴 하지.”

티그리스는 이런 막대한 양의 마나를 가진 마왕을 어떻게 제압했으며 봉인까지 성공한 것인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 무엇보다 믿기지 않는 것은 마왕을 실제로 봉인한 사람이 티그리스의 눈앞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페레이라와 내가 육체와 영혼을 매개로 주술을 발동시킨 것까진 맞아. 하지만 내가 이 주술을 발현시킬 때 아주 작은 욕심을 부렸거든. 멸지의 마왕이 압도적인 시간의 무게에 짓눌려 자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멸아(滅我) 상태에 빠지면 우리의 영혼이 빠져나와 환생하는 거야. 물론 우리가 세상을 구한 영웅이었다는 기억은 잊겠지만 그래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길 바랐거든. 그리고 하늘이 허락해준다면 운명적으로 다시 만나 결혼하길 바랐어.”

아모리스는 왼손 약지에 걸린 작은 금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페레이라도 욕심을 부렸나 봐. 마법으로 육체를 속박했다고 했잖아? 마왕의 마나가 없어지기 시작하면 봉인식에 속박되었던 내 몸을 풀어주는 거지.”

“그럼 영혼이 환생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다시 되돌아간 겁니까?”

“맞아. 원래 영혼이란 것이 자신의 영혼과 맞는 육체를 찾아가게 마련이거든. 내 영혼에 가장 적합한 육체가 뭐겠어? 내 진짜 육체지. 그래서 난 100여 년 전에 신비의 땅에서 온전한 육체와 영혼을 갖춘 채 빠져나올수 있었던 거야.”

아모리스는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페레이라는 아직인가 봐. 분명 페레이라도 나와 함께하고 싶다면 마법술식에 자신의 육체도 벗어나게 했을 텐데. 마법술식이 꼬인 건지 아니면 나만이라도 풀려나길 바란 건지 모르겠지만······ 조금 외롭네.”

티그리스는 아모리스의 씁쓸한 말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표정을 보더니 애써 웃었다.

“네가 그렇게 안쓰럽게 쳐다보면 내가 진짜 불쌍한 것처럼 보이잖아. 이제 이런 우울한 얘긴 그만하고 건설적인 이야기를 좀 할까?”

아모리스는 레비스가 든 관을 가리키며 말했다.

“얘를 신비의 땅에 던져놓고 오겠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너무 위험해. 잘못하면 신비 현상에 사로잡혀서 시간을 얼마나 빼앗길지 모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입니다.”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그걸 꼭 네가 할 이유는 없잖아?”

“그럼 누가 합니까?”

“네가 붙여온 혹. 그 녀석이 하면 되지.”

아모리스는 곰방대에 타다 남은 담뱃재를 털어내며 말했다.

“그 혹 지금 여기에 있지? 한번 얼굴 구경이나 하러 갈까?”

* * *

모리타는 눈을 번쩍 떴다.

“헉······. 헉······.”

무슨 꿈을 꾸었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좋은 꿈은 아니었던 듯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모리타는 발을 움직여 보려 했지만, 모리타의 발은 밧줄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여긴 어디지······.’

침대는 굉장히 푹신했고, 눈길에 닿는 가구들은 굉장히 고급스러웠으며, 방 안 공기는 적당히 시원하고 맑았다.

모리타는 바로 옆 탁상에 놓인 물컵을 봤다.

모리타는 물컵을 집으려 양팔을 뻗어보았지만 발에 걸린 밧줄 때문에 집을 수 없었다.

“······젠장.”

목이 타 죽을 것 같은데 팔이 짧아 물컵을 집을 수 없자 짜증이 마구 솟구쳤다.

그렇다고 밧줄을 끊을 수 있는 힘이 남아있는 것도 아니었다.

쿵!

한동안 물컵을 잡으려 안간힘을 쓰다가 힘이 빠져 탁상에 머리를 박았다.

물컵이 쓰러지며 모리타의 머리에 물이 쏟아졌다.

고통과 함께 찬물이 모리타의 머리를 적시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지금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

모리타는 분명 죽으려고 했었다.

이젠 안간힘을 써서 이 세상을 살아갈 목표도 없었고 몸도 마음도 지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목이 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랄 염병을 떨며 물컵을 향해 손을 뻗다니.

이제 잠에서 막 깨어나 정신이 몽롱한 상태라고 하지만 생존 본능을 이기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했다.

모리타는 축축해진 침대에 누웠다.

물이 등을 적시며 불편해졌다.

자연스럽게 몸을 옆으로 뉘어 물이 젖지 않은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미치겠군.”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티그리스에게 죽여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몸을 비틀고 있다니.

모리타는 다시 똑바로 침대에 누웠다.

등을 타고 습기가 올라왔다.

그러나 모리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몸 좀 불편하면 어떤가?

모리타는 자신이 죽고자 했던 의지마저도 꺾이고 싶진 않았다.

끼익-

그때, 방문이 열리며 티그리스가 들어왔다.

“일어났나.”

티그리스의 손에는 따뜻한 고기 스튜와 부드러운 밀빵 그리고 고소한 베이컨이 있었다.

“식사부터 하지.”

“······싫다.”

모리타의 의지와는 다르게 몸은 솔직했다.

꼬르륵-

모리타는 자신의 배를 저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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