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6화 – 모르고트(1)
빅토리에 길거리 한복판.
수많은 시민이 거리에 나와 길리온 왕국의 외무대신 미카엘과 제2왕자 모르고트의 행렬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
-여길 어디라고 오는 거냐 이 새끼들아!
-당장 네놈들 나라로 안 꺼져?!
-살인마는 물러가라!
-네놈들이 그러고도 룩스 교인이라고 할수 있는 거냐?!
몇몇 시민들은 길리온 왕국의 외무대신과 모르고트가 탄 마차와 성기사들을 향해 계란과 돌멩이를 던졌다.
마차는 배리어 마법이 펼쳐져 있어서 괜찮았지만, 성기사들의 갑주는 썩은 계란 냄새로 진동했다.
성기사들은 그런 시민들을 쏘아봤지만 할수 있는 것은 없었다.
시민들의 분노는 정당했기 때문이었다.
성기사들은 돌멩이와 함께 묶여 날아온 신문 헤드라인을 보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길리온 왕국 출신 성기사들은 모두 강력범죄자 출신이다?!]
[충격! 프란체스코 추기경은 길리온 왕국의 스파이.]
[충격 사실! 룩스교 사제, 전과 5범 사기꾼······]
황국의 언론들이 길리온 왕국 출신 성기사들과 사제들이 과거 강력 범죄를 저지른 전적이 있다는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원래 언론은 날아다니는 새와 같아서 빵조각이 바닥에 뿌려지면 잽싸게 날아와 뭉쳐서 쪼아 먹는 법.
언론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룩스교를 향해 비난의 화살을 쏘아댔고, 심지어 길리온 왕국 출신 사제들과 성기사 목록을 만들어 쫙뿌렸다.
루체트 황국의 백성들의 대다수가 룩스교를 믿는 만큼 배신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결국 룩스교의 교황은 루체트 황국에 파견했던 사제들과 성기사들을 모두 길리온 왕국으로 송환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저 새끼 이온 아니야?! 길리온 왕국에서 아이만 골라 죽인 쓰레기 같은 놈이라고 들었는데?
-저 새끼를 당장 찢어 죽여야 하는데! 야! 비켜봐! 저런 살인범 놈들은 내 새끼손가락 하나면 충분하니까!
-어서 비키라니까?! 너도 룩스교 따까리냐?
몇몇 성난 시민들은 마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만든 병사들을 밀치고 난리가 났다.
그때, 한 사내가 병사들이 치켜세운 방패를 밟고 넘었다.
“어?! 어!?”
사내는 품속에서 단검을 꺼내 성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죽어라!”
돌발 상황에 성기사들이 검을 빼려는 찰나 아멧 투구를 쓴 황금 기사 하나가 사내를 순식간에 제압했다.
황금 기사는 검도 빼지 않고 사내의 팔을 꺾고 발을 걸어 바닥에 깔고 뭉갰다.
사내는 온몸을 비틀며 저항했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저 새끼가 내 여동생을 건드렸다고!”
그러나 황금 기사는 흔들림이 없이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기사에게 다가온 군인에게 사내를 인도했다.
사내는 자신을 막은 황금 기사를 향해 피섞인 침을 뱉었다.
황금 기사는 피할 수 있었지만, 피 섞인침을 맞았다.
“으아아아아! 네놈은 성기사들이 X발 무슨 짓을 했는지 알면서 지금 저놈들을 지키는 거야?! 어?!”
사내는 군인들에게 끌려가면서도 황금 기사를 향해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댔다.
“어서 말해! 어서 말하라고! 루체트 백성을 지켜야 할 기사가 왜 저딴 놈들을 지키고 있냐고 묻잖아!”
황금 기사는 사내의 절규를 외면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서 대답하라고오오오!”
그때, 아멧 투구를 쓴 황금 기사 중 하나가 다가왔다.
가슴팍엔 부기사단장의 상징인 세 쌍의 황금 날개 브로치가 걸려 있었다.
부기사단장 밀러는 입을 열었다.
“잘했다. 샤를로트.”
샤를로트는 밀러를 잠깐 보더니 입을 열었다.
“······맡은 임무를 다했을 뿐이에요.”
“계속할 수 있겠나?”
“예. 해야죠.”
밀러는 샤를로트의 대답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끝까지 부탁하지.”
“예. 알겠습니다.”
샤를로트의 쥔 주먹이 살짝 떨렸다.
* * *
샤를로트는 아멧 투구를 벗었다.
샤를로트의 황금빛 머리칼은 땀으로 푹젖어 피부에 달라붙었다.
“후······.”
샤를로트는 아멧 투구를 내려다봤다.
아멧 투구엔 피가 묻어 있었다.
샤를로트는 건틀릿으로 피를 닦아냈다.
그러나 잘 닦이지 않았다.
그저 번질 뿐이었다.
“언니.”
샤를로트는 뒤에서 들려온 리니아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리니아는 샤를로트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고마워. 리니아.”
샤를로트는 리니아가 건넨 손수건으로 아멧 투구를 닦았다.
그제야 아멧 투구는 황금빛으로 번쩍였다.
“······아까 저 봤어요. 괜찮으세요?”
샤를로트는 애써 웃으며 말했다.
“뭐, 어쩔 수 없었잖아? 그 테러범을 막을 수 있는 건 나밖에 없었으니까.”
샤를로트는 아멧 투구를 관물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밀러 부단장님이 말씀하시기도 했고. 난 나름대로 잘 대처했다고 생각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샤를로트는 아직까지 사내의 절규가 귓가에 맴돌았다.
자신의 첫 상대가 피아 구분이 확실한 적국의 병사나 기사가 아니라 힘없는 루체트 백성일 것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정확한 것은 모르겠지만 가족 문제가 얽혀 있는 것 같던데······.
샤를로트가 잘못한 것은 없지만 그 사내의 표정과 절규를 떠올리면 뭔가가 울컥이는 것이 있었다.
리니아는 고개를 푹 숙인 샤를로트를 말없이 뒤에서 안았다.
딱딱한 갑주 때문에 온기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위로가 되었다.
“고마워. 리니아.”
샤를로트는 눈을 감고 리니아의 위로를 받으며 좀 전의 우울한 기분을 털어버렸다.
그러자 새로운 감각이 샤를로트를 자극했다.
샤를로트의 코가 움찔했다.
“······그런데 혹시 계란 맞았니?”
“······아, 맞다.”
“아아아악!”
“죄송해요! 죄송해요!"
리니아가 손수건으로 샤를로트의 갑주와 머리칼을 닦아주는 사이, 탈의실 문이 열리며 아이린이 들어왔다.
아이린의 아멧 투구와 갑주에 피가 묻어있었다
샤를로트는 깜짝 놀랐다.
“아이린! 어디 다쳤어?”
“······내 피 아니야.”
아이린은 관물대에 아멧 투구를 올려놓으며 말했다.
“호송 마차에서 한 녀석이 자살 소동을 벌였어.”
“뭐? 정말?"
“치료 마법사가 급하게 치료해서 살긴 했는데······ 앞으로 평생 수프 맛은 못 느끼겠지.”
샤를로트는 좀 전에 닦았던 손수건을 아이린에게 건넸다.
“고마워.”
샤를로트는 설마 하는 마음에 물어봤다.
“그 사람 혹시 갈색 머리칼에 주근깨가 있는 남자였니?”
아이린은 샤를로트를 흘금 보더니 고개를저었다.
“아니. 언니가 제압한 그 사람은 아니야.”
“휴······다행이다.”
벅- 벅-
아이린은 신경질적으로 아멧 투구를 닦으며 말했다.
“오늘 느낀 건데 이 기사란 직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명예로운 직업은 아닌 것같아.”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기사라고 하면 선량한 백성들을 구하거나 자신의 주군을 지키는 일을 할 줄 알고 있었는데, 정작 계란을 맞거나 혀 깨물고 자살하려는 걸 막는 일이나 하고 있었다.
심지어 열심히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 생전 일면식도 없던 수만 명에게 욕이나 들었다.
“그런데 스승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걸 배우라고 하신 걸까?”
아이린의 공허한 질문에 샤를로트와 리니아는 침묵했다.
둘도 답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 두 달 동안 세 사람이 배운 것은 굉장히 다양했다.
경계법, 수화법, 요인 경호법, 감지계 오러 운용술, 암행 순찰, 추적을 떼어내는 방법등 굉장히 여러 가지를 익혔지만, 검술 발전과 거의 관련 없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지금까지 세 사람이 봐온 티그리스의 모습은 멋지게 키메라를 죽이고 사람들을 구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검술을 더더욱 갈고 닦아야 하는게 아닌가 싶었지만, 밀러 부단장님께선 검술을 봐주기는커녕 개인 훈련 때를 제외하면 검을 건드리지도 못하게 했다.
샤를로트는 건틀릿을 벗으며 말했다.
“······무슨 뜻이 있으시겠지.”
그래도 군말 없이 세 사람이 성실히 훈련을 받은 이유는 티그리스를 믿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가 쓸데없는 훈련을 시킬 리가 없으니까.
리니아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내기 위해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오늘부로 훈련은 끝이잖아요. 어서 나갈 준비 하죠.”
“응. 맞아.”
지난 두 달 동안 황금 기사들이 머무는 숙소에서 지냈다.
숙소가 불편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뭐니 뭐니 해도 집이 최고였다.
그리고 집에 간다는 말은 티그리스를 드디어 만날 수 있다는 뜻과도 같았다.
“밀림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들어봐야겠다.”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서둘러 답답한 갑옷을 벗어 관물대에 던졌다.
* * *
세 사람이 황궁을 빠져나온 것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이었다.
그동안 챙겨준 밀러 부기사단장과 선배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니 시간이 제법 지체되고 말았다.
레니와 제인은 집 청소를 한다고 먼저 집에 돌아갔기 때문에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면 되었다.
“레인로버 황녀님께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네."
“바쁘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 나중에 한번 찾아뵈어야지 뭐.”
황궁에서 세 사람을 잘 챙겨준 것은 레인로버 황녀였다.
주말만 되면 찾아와서 훈련을 받느라 세상 돌아가는 일을 모르던 세 사람에게 여러가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바로스 후작 관련 이야기, 수인족 자치구에서 거인들의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등 앞으로의 루체트 황국은 과거와 확연히 달라질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당연히 티그리스가 있겠지만, 레인로버는 일부러 티그리스 관련 소식은 답변을 피했다.
-티그리스 경 이야기는 직접 듣는 편이 더 재밌지 않겠어요?
그 대답이 세 사람을 더욱 미치게 만들었지만, 티그리스가 벌인 일들이 죄다 기밀이라서 대답을 회피하는 것이란 것을 어렵지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렇게 여유롭게 걸으니까 정말 좋다.”
“그러니까.”
세 사람은 황궁에서 집까지 마차를 타고가는 대신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지난 두 달 동안 세 사람은 황궁 밖으로 나와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보안 문제 때문에 황궁 내에서 세 사람이 오갈 수 있는 곳은 굉장히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황궁 내에서조차 자유롭게 움직이는 것이 불가능했다.
물론 오늘 경호 체험 때문에 밖으로 나오긴 했었지만, 계란을 맞고 성난 시민들 사이에서 거동 수상자를 찾아내느라 신경을 곤두세운지라 자유를 느낄 수는 없었다.
“우리 외식이나 할까? 어차피 레니도 집청소하느라 정신이 없을 텐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세 사람은 맛있는 음식점이 몰려있는 미들타운으로 향했다.
물론 세 사람은 유명 인사였기 때문에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를 썼다.
리니아가 뒤를 흘금 돌아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파파라치가 또 꼬인 것 같아요.”
샤를로트는 한숨을 내쉬었다.
“얘네는 우리가 마스크까지 꼈는데 어떻게 알아보는 거야."
“황궁 입구에서부터 대기한 것 같아요.”
“외식 한번 하기 힘드네.”
그때, 아이린이 발을 멈추더니 급하게 거리를 뛰어다니는 한 사내 무리를 쳐다봤다.
사내들은 한곳에 모여 작은 목소리로 쑥덕이더니 사방으로 흩어졌다.
겉보기에도 굉장히 수상해 보였다.
샤를로트와 리니아도 그 사내들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저 사람들 성기사들 맞지?”
“맞아. 요인 인사 목록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아.”
오늘 경호 임무 때문에 익혀둔 요인 인사 목록에서 저 사내들의 얼굴이 있었다.
특히 중절모에 동그란 안경을 쓴 사내는 제2왕자 모르고트를 근접 경호하는 고리 6개짜리 성기사 레오파드 경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왜 성기사들이 제복도 입지 않고 돌아다니는 거지?”
“글쎄.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급한 일이 일어난 게 분명해.”
세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사건의 냄새가 진하게 났다.
원래라면 그냥 무시해도 좋겠지만, 세 사람은 최근 사건에 굶주려 있던 차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티그리스에게 자신들이 유용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다.
“무슨 일인지만 조금 알아볼까?”
샤를로트의 말에 둘은 고개를 끄덕였다.
샤를로트는 곧바로 황금 기사단에서 배운 수화법으로 지시를 하달했다.
-로미오 포인트, 30분, 집결.
로미오 포인트는 오늘 경호 임무의 최종목적지 켈틱 호텔을 말하는 것이었다.
리니아와 아이린은 샤를로트의 수화를 알아듣곤 곧장 사방으로 흩어졌다.
“어?! 어!”
순식간에 골목으로 사라진 세 사람의 모습에 파파라치들은 재빠르게 쫓아가 봤지만 결국 놓치고 말았다.
* * *
30분 뒤, 세 사람은 켈틱 호텔 앞 카페에 모였다.
세 사람은 서로의 옷차림을 보더니 피식웃었다.
세 사람의 옷차림은 30분 전과 아예 딴판이었다.
마치 모험가나 용병을 연상케 하는 옷차림으로 마스크는 쓰지 않았지만, 안경과 모자로 인상착의를 최대한 숨겼다.
“뭔가 황금 기사단에서 아예 쓸모없는 걸 가르친 건 아닌 것 같네.”
아이린의 말에 샤를로트와 리니아는 피식-웃고 말았다.
세 사람은 카페에서 최대한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켈틱 호텔 주변을 훑었다.
호텔 주변은 굉장히 난잡했다.
제복을 갖춰 입은 성기사들이 호텔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이나 나오는 사람들의 신분을 조사하고, 호텔 직원들은 사방을 뛰어다니고 있었다.
길리온 왕국 측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분명했다.
샤를로트의 눈에 제법 눈에 익은 사내의 얼굴이 보였다.
미카엘 외무대신이었다.
샤를로트는 청각을 강화해 성기사들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들었다.
-당장 나가서 찾아! 인퀴지터들이나 황금기사들이 먼저 찾게 해선 안 돼!
-그 벨보이는 도대체 누구야?
-톰 우드라는 녀석인데 호텔 측에서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랍니다.
-보아하니 인퀴지터겠군. 젠장, 눈뜨고 코를 베였어. 여긴 최소 병력만 남기고 모두 나가서 찾아. 아직 멀리 가진 못했을 거다.
-예. 알겠습니다.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길리온 왕국이 뭔가 귀중한 걸 잃어버린 게 분명해 보였다.
“도대체 뭐를 잃어버렸길래 저 난리를 치는 거지?”
“글쎄요. 뭔가를 도난당했으면 경찰을 부르는 게 상식일 텐데 주변에 경찰이나 군인들은 보이지 않아요.”
“황국의 도움을 받지 않고 길리온 왕국 측이 먼저 발견해야 하는 중요한 거라는 뜻인데······.”
“일단 더 지켜보죠.”
그러나 15분이 지나고 30분이 지나도 중요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사복을 입은 성기사들이 떼를 지어 밖으로 나갔다는 것과 누가 신고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찰들이 켈틱 호텔로 몰려와 조사를 시작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만 돌아갈까? 우리가 할 수 있는건 없는 것 같아.”
샤를로트의 말에 리니아와 아이린은 입맛을 쩝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호기로운 마음에 무턱대고 조사를 시작하긴 했지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너무 한정적이었다.
세 사람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은 없어보였다.
“이제 집에 돌아가자.”
“잠시만요.”
그때, 아이린의 눈에 뭔가가 걸렸다.
경찰복을 입은 사내 둘이 켈틱 호텔 정문을 빠져나오고 있었는데, 한 사내의 얼굴이 굉장히 익숙했다.
“저거 라칸 아니에요?”
가짜 콧수염을 붙이고 있긴 했지만, 아이린의 눈썰미는 피해갈 수 없었다.
저건 분명히 라칸이었다.
“잠깐만요.”
정문을 지키던 성기사가 라칸과 뚱뚱한 경찰을 멈춰 세웠다.
세 사람은 침을 꿀꺽 삼켰다.
라칸은 발을 멈추고 성기사를 향해 돌아섰다.
뚱뚱한 경찰은 조사 수첩을 보는 척하며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라칸은 아주 태연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조사에 도움이 될만한 정보가 있으신가요?”
라칸의 표정과 말투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아이린도 순간 속아 넘어갈 뻔했다.
성기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라칸을 위아래로 훑었다.
한동안 쳐다보던 성기사는 입을 열었다.
“······아뇨. 아닙니다. 제가 착각한 모양이군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라칸과 뚱뚱한 경찰은 성기사의 의심을 피하고 정문을 빠져나왔다.
세 사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라칸이 또 이상한 사건에 연루된 게 분명했다.
레인로버 황녀의 생일파티 때처럼 라칸은 정말 신기하게도 굵직한 사건에 자주 휘말렸으니까.
“······라칸 쟤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르고 다니는 거야.”
라칸과 뚱뚱한 경찰은 그 후로 다른 성기사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켈틱 호텔 바깥문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제야 라칸의 표정에 안도가 묻어 나왔다.
그때, 한 사내가 뚱뚱한 경찰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모르고트 님?”
라칸은 소매에 감추고 있던 완드를 꺼내 재빨리 마법을 엮었다.
비록 1서클 마법이긴 했지만, 발동까지 0.5초도 걸리지 않았다.
“라이트!!!”
“악!”
라칸은 사내의 눈앞에 라이트를 먹이곤 뚱뚱한 경찰, 아니, 모르고트에게 말했다.
“저쪽으로 도망치세요!”
라칸이 가리킨 손가락은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를 향하고 있었다.
“······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