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98화 (98/251)

#098화 – 모르고트(3)

모르고트의 찢어진 경찰복, 절뚝거리는 발은 이목을 집중받기 너무 좋았다.

이대로 가다간 10분도 채 되지 않아 성기사들에게 들킬 것이다.

실제로 사람들은 모르고트를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수군거리고 있었다.

‘살고 싶다.’

생의 갈망은 평생 해보지 못한 것을 해내게 한다.

모르고트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반사적으로 알아차렸다.

다만 각오가 필요한 일이었다.

평생 살아온 왕자로서의 권위와 명예를 바닥에 내팽개쳐 버릴 각오.

‘이미 망명을 결정했을 때부터 왕자의 삶은 포기하기로 했다.’

모르고트는 근처 마구간에 들어갔다.

마구간 바닥은 말들의 똥과 오물들로 가득했다.

모르고트는 심호흡을 한번 한 뒤, 경찰복이 똥과 오물로 완전히 가려질 때까지 바닥을 굴렀다.

“지······ 지금 뭐를······.”

마구간지기가 똥밭을 구르는 모르고트를 당황한 눈초리로 쳐다봤다.

그러거나 말거나 모르고트는 자기가 해야할 일을 했다.

모르고트는 경찰복에 달려 있는 금색 단추와 금줄도 떼어 버렸다.

너덜거리는 바지도 강하게 뜯어 짝짝이 반바지로 만들어 버렸으며, 어울리지도 않는 가발과 콧수염도 떼어버렸다.

대신 얼굴과 머리칼에 똥칠을 했다.

그 누구도 자신이 모르고트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웁!”

얼굴에 오물을 묻힐 땐, 순간 구역질이 나올 뻔했지만 모르고트는 참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냄새가 지독해서 순간 구역질이 나올 뻔했다.

마구간지기는 얼굴에 똥칠하는 모르고트가 진짜 미친놈 같아서 건드리지도 못했다.

원래 미친놈은 건드리는 게 아니니까.

할 일을 마친 모르고트는 절뚝이며 일어났다.

“미안하오.”

모르고트는 그 말 한 마디를 하고 마구간을 나왔다.

마구간지기는 뭐라 말도 하지 못하고 떠나는 모르고트를 멍하니 쳐다봤다.

모르고트의 기행의 효과는 대단했다.

사람들은 모르고트를 보자 반사적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도움을 줘야 할 존재가 아닌 상종하지 말아야 할 더러운 거지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거지로 쳐다보는 게 아니라 실제로 모르고트는 거지가 맞았다.

호주머니에 흔한 동화 하나 없었고, 모양새도 거지꼴이었으니까.

심지어 사복을 입은 성기사 하나가 모르고트를 알아보지 못하고 스쳐 지나갔다.

저들은 모르고트가 이렇게까지 할 것이라곤 생각도 못 한 모양이었다.

‘됐어. 이제 된 거야.’

코를 찌르는 악취와 눅눅한 옷, 혐오 가득한 시선 속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느꼈다.

이제야 새 삶을 시작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모르고트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모르고트는 동네 거지들이 그렇듯 어둠속에 스며들었다.

거지들은 모르고트가 자신들에게 다가오자 순간 경계했지만, 그에게서 나는 악취가 자신의 것들과 같은 것임을 알게 되자 다시 자세를 고쳐 누웠다.

모르고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악취는 일반 시민들의 눈썹을 찌푸리게하지만, 같은 거지들에겐 안도를 심어준다.

물론 저들의 차가운 무관심도 모르고트를 안도하게 만들었다.

모르고트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가장 바깥에 누웠다.

다리는 아프고 바닥은 딱딱했으며 습기가 올라왔지만, 그 어떤 푹신한 침대보다도 편안했다.

모르고트는 콩 벌레처럼 몸을 말아 누웠다.

이대로 잠이 들면 내일 아침까지 쭉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르고트는 미래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냥 이대로 잠이 들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골목길로 두 사내가 들어왔다.

모르고트는 다른 거지들과 마찬가지로 경계하는 눈빛으로 슬며시 눈을 떴다.

성기사는 아니었다.

곤봉을 든 경찰들이었다.

“튀어!”

거지들은 경찰들을 보자 바퀴벌레들처럼 도망을 쳤다.

모르고트는 어리둥절한 채로 경찰들을 쳐다봤다.

“뭐 해. 안 일어나나?”

“예?”

모르고트는 루체트 황국의 경찰들이 자신에게 무엇을 할 것인지 알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든 곤봉이 모르고트에게 무엇을 할지 전혀 몰랐다.

경찰들은 곤봉으로 모르고트의 푸짐한 등짝을 내려쳤다.

퍽-!

“억!”

모르고트는 정말 오랜만에 겪는 묵직한 고통에 몸을 움츠렸다.

암살자들이 자신을 덮쳐왔었지만, 그 누구도 곤봉으로 모르고트를 때려 죽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음식에 독을 타거나 단검으로 찔러 죽일 생각을 하지.

그래서 누군가에게 사정없이 맞는 경험은 기사들과의 대련 때를 제외하면 경험해 본적이 없었다.

“그만······! 그만! 그만해 주십시오!”

“이 새끼 딱 보니까 어디 사업하다가 말아먹은 놈이구먼. 그러니까 이렇게 얼타지.”

경찰은 다시 모르고트의 등짝을 때렸다.

퍽!

곤봉이 모르고트의 푸짐한 살점을 파고들어 갔다.

“억!”

“딱 봐도 신분증은 없어 보이고······ 어디서 굴러들어 온 뼈다귀인지 모르겠지만 미들타운에선 구걸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거 모르나? 네놈이 살 곳은 여기가 아니라 그레이 타운이다.”

경찰이 모르고트를 향해 곤봉을 다시 휘두르려고 하자 모르고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죄······ 죄송합니다! 전혀 몰랐습니다!”

경찰들은 모르고트의 움츠린 어깨와 내리깐 눈빛을 보며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야 네가 뭘 해야 할지 알겠지? 좋은 말할 때 따라와라.”

“예. 예. 알겠습니다.”

무자비한 폭력은 오크도 잡는 사냥개를 길들인다.

모르고트는 3성 기사로 원한다면 경찰들을 충분히 때려눕힐 수 있었지만, 소란을 일으켰다간 성기사들에게 들킬지 모른다는 공포심에 고개를 떨며 그저 경찰들의 뒤를 쫓았다.

모르고트는 주변을 계속 훑었다.

혹시나 성기사들이 자신을 알아보는 게 아닐까?

그 좁은 골목에 계속 누워 있었다면 다음날 아침까진 안전하게 있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모르고트는 괜한 불안함에 주변을 계속 살폈다.

“뭘 그렇게 주변을 흘금흘금 쳐다보지? 빚쟁이들한테 후장이라도 따일 것 같나?”

경찰의 걸쭉한 농담에 모르고트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루체트 황국의 경찰이 이상한 것인지 아니면 모든 경찰이 다 그런 것인지, 평민들이라면 이런 농담은 기본인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겠지만 저들의 언어폭력은 모르고트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모르고트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경찰들은 저들끼리 낄낄거리며 웃었다.

“걱정 마. 빚쟁이들도 네 꼴을 보면 불쌍해서 손도 안 댈 테니까.”

“그나저나 뭘 하다가 그렇게 쫄딱 망한 거야?”

모르고트는 잠시 생각을 했다.

어떤 거짓말을 해야 넘어갈 수 있을까?

모르고트는 침을 꼴깍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냥 작게 길리온 왕국 쪽과 무역업을 하다가······.”

경찰들은 혀를 찼다.

“쯧쯧. 이번에 길리온 왕국 놈들이 대금을 안 준 모양이지?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썩을놈들.”

“······.”

과연 저들은 알까?

지금 자신들이 끌고 가는 사람이 단순한 길리온 왕국 사람이 아니라 길리온 왕국의 왕자라는 사실을.

모르고트는 괜히 찔려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 걷던 경찰 하나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대금은 왜 안 준 거래?”

“물어봐 뭐 해. 최근 길리온 왕국으로 향하는 모든 화물 열차가 바로스 후작령에서 멈췄잖아?”

“어? 왜?”

“세관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수인족들을 화물칸에 실어 날랐다고 하더군.”

“정말? 아주 죽일 놈들이구먼. 그런데 왜 수인족들을 모으는 거래?”

경찰이 주변을 살피더니 소곤소곤 말했다.

“내가 듣기론 제2왕자 모르고트 있잖아? 그 녀석이 수인족들의 피로 목욕을 하는 놈이라고 하더구먼.”

모르고트는 어깨를 움찔했다.

‘······내가 그런 놈이라고?’

모르고트는 루체트 황국 내에서 자신에 대한 어떤 소문이 났는지 전혀 몰랐기에 귀를 쫑긋 세워 경찰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뭐? 그거 루머라고 하던데?”

“그래? 메리츠 신문에선 그렇다던데?”

“예끼 이 사람아. 메리츠 신문은 찌라시 날리기로 유명한 놈들이잖아. 그리고 수인족 피로 목욕해서 뭐에다가 쓰겠나?”

“그런가? 그럼 자네는 어느 신문을 보는데?”

“난 데일리 신문을 보지. 거기선 모르고트가 수인들의 살점을 구워서 먹는다고 하던데? 이게 더 신빙성이 있지 않나?”

“오······ 그러고 보니 모르고트 그놈 엄청살이 뒤룩뒤룩 쪘다던데 그것 때문이겠군.”

‘둘 다 아니야!’

모르고트는 자기 변론을 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미치고 팔짝 뛸 것만 같았다.

경찰들은 모르고트를 쳐다봤다.

“아, 그러고 보니 자네는 길리온 왕국과 무역을 했다고 했지. 어느 쪽이 진짜지?”

“아니면, 둘 다 하나?”

모르고트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어······ 수인들을 먹거나 피로 목욕을 한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경찰들은 한심한 표정으로 모르고트를 쳐다봤다.

“아이고 이 사람아. 아직도 그렇게 당하고도 길리온 왕국을 믿나? 내가 봤을 땐, 수인들을 잡아먹는 게 분명해. 야만인 새끼들.”

진실을 말하는 모르고트의 말보다 광고료를 벌기 위해 자극적인 기사를 내는 기자들의 말을 더 믿다니.

모르고트는 아무리 변명을 해도 경찰들의 의식을 돌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냥 모르고트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그나저나 들었나? 모르고트가 켈틱 호텔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하던데?”

모르고트는 자신의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 왜 난 들은 게 없지?”

“나도 순찰 교대하다가 우연히 듣게 된 건데, 황금 기사들이 나서서 찾고 있다고 하더군. 경찰들은 움직이지 말라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대.”

“왜 그렇지? 모르고트를 찾는 게 우선이 아닌가?”

“나야 알 길이 있나. 그냥 그러라고 하니 그러는 거지.”

“기왕이면 내가 만났으면 좋겠군. 잡으면 무조건 포상 휴가든 포상금이든 줄 텐데 말이야.”

“그런데 모르고트 얼굴은 아나?”

“······모르는데?”

“참나. 얼굴도 모르는데 잡기는.”

모르고트를 잡아놓고 모르고트를 잡겠다고 말하는 경찰들의 모습에 모르고트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터질 지경이었다.

하긴 자신이 끌고 가는 거지가 모르고트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이상했으니까.

왕자가 자기 얼굴과 옷에 똥칠할 거라 어느 누가 감히 상상할 수 있을까?

그렇게 경찰들의 수다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루체트강이 보였다.

루체트강을 가로지르는 레인보우 브릿지엔 가로등이 탁한 빛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제 저 강을 건너기만 하면 그레이 타운이다.

그레이 타운은 모르고트도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거지들의 보금자리이자 온갖 쓰레기가 넘쳐흐르는 곳.

저런 곳에서 숨어 지내면, 성기사들보다 황금 기사들이나 인퀴지터들이 자신을 찾아낼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레이 타운은 갱단들과 거지들이 즐비해서 아무나 들어가거나 나올 수도 없는 곳이니까.

물론 황금 기사들이 자신을 찾을 때까지 제법 고생은 하겠지만, 모르고트는 자유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모르고트만 하는 게 아닌 듯 사복을 입은 성기사들이 레인보우 브릿지 근처에서 돌아다니고 있었다.

경찰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았지만, 모르고트를 보름이 넘게 감시한 놈들인 만큼 저들의 얼굴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모르고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이 모습을 알아볼 가능성은 굉장히 적겠지만, 그래도 괜한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절대 금지다.

모르고트와 경찰들은 레인보우 브릿지 입구에 다다랐다.

어서 이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길 바라는 모르고트의 마음과 달리 경찰들은 경비들과 반갑게 인사했다.

“헥터 오늘 네가 근무야?”

“뭐 그런 셈이지. 그나저나 한 놈 잡았나보네?”

“미들타운 쪽에서 잡아 왔지. 다른 놈들하고 다르게 멀뚱멀뚱하게 날 쳐다보고 있더라고.”

경찰들과 경비들은 심지어 느긋하게 파이프를 태우기 시작했다.

모르고트의 심장이 바쁘게 뛰기 시작했다.

주변엔 성기사들로 가득했고, 성기사들이 뚱뚱한 모르고트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것이다.

“배가 좀 나온 걸 보니까 딱 봐도 사업 실패하고 주저앉은 놈인 모양이군.”

“길리온 왕국하고 교역을 하다가 쫄딱 망했다던데?”

“길리온 왕국이 애꿎은 사업가 나리 모가지를 날려 버렸군. 쯧쯧.”

성기사들이 천천히 걸어오기 시작했다.

'제발 오지 마라. 제발 오지 마라.'

모르고트의 애원과는 달리 성기사들은 경찰들과 경비들 앞에 섰다.

경찰들과 경비들은 그제야 성기사들을 향해 눈썹을 찌푸렸다.

“네놈들은 뭐냐?”

경찰들이 험악한 표정으로 사내들을 쏘아보자 성기사들 중 하나가 품속에서 여권을 꺼냈다.

“저는 룩스 여신님을 섬기는 성기사이자 길리온 왕국 백사자 기사단의 기사 스콧이라고 합니다.”

성기사란 말에 경찰들의 표정은 싸늘하게 변했다.

“아~ 그 잘나신 성기사 양반들이시로군. 그런데 무슨 이유로 찾아온 거지?”

“혹시 이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스콧의 손끝이 향한 것은 모르고트였다.

경찰들은 헛웃음을 쳤다.

“아, 들었어. 길리온 왕국의 왕자님이 도망을 쳤다면서?”

“······도망친 게 아니라 잠깐 외출을 나가셨다가 실종되신 겁니다.”

“뭐, 그렇다고 치자고. 그런데 길리온 왕국의 왕자님은 똥으로 목욕하는 습관이 있나?”

“그건 아니지만 한 번만 얼굴을 확인하겠습니다.”

“아니지. 그럴 만도 해. 네놈 아가리에선 똥내가 가득하거든. 네놈들은 똥을 입으로 처먹고 오줌을 물 대신 마시는 것 같은데?”

모르고트는 순간 속이 뻥 뚫리는 쾌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경찰들의 험한 입담은 기사들이나 평민이나 가리지 않았다.

처음엔 이 경찰의 무례한 말투에 화가 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그냥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경찰은 곤봉을 들고 스콧의 앞에 삐딱하게 섰다.

그리고 경찰은 파이프 연기를 스콧의 면상에 내뿜었다.

“이봐. 여기가 길리온 왕국인 줄 아는 모양인데 여기는 루체트 황국이야. 그것도 황국의 수도 빅토리에다. 네놈들이 함부로 황국 백성을 조사하고 다닐 권한 따위 없다는거지. 지금 이거 월권행위인 거 알고 있나?”

아무 말도 없이 곤봉으로 내려치던 무자비한 경찰이 저런 논리정연한 말도 할 줄 알았던가?

경찰들의 강경한 대응에 스콧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냥 얼굴만 확인하면 안 되겠습니까?”

경찰은 스콧의 가슴을 팍 쳤다.

“내가 말했잖아. 이건 명백한 월권행위라고. 꼬우면 정식 절차를 밟고 수사를 해.”

스콧의 손가락이 꼼지락거리는 것이 당장에 경찰의 목을 쳐버리고 싶은 것 같았다.

그러나 경찰의 말대로 이곳은 루체트 황국이다.

성기사들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곳이다.

스콧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이건 길리온 왕국과 루체트 황국 사이에 불쾌한 일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한 일임을 모르시는 겁니까? 잠시면 되니 수사에 협조해 주십시오.”

“불쾌? 불쾌한 일은 네놈들이 먼저 했잖아. 등신들아. 범죄자 새끼들을 루체트 황국의 성기사와 사제들로 위장시켜 보낸 놈들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경찰은 목을 뚜둑 꺾었다.

“오늘 네놈들한테 날아오는 계란하고 돌멩이를 맞은 군인들이 몇 명인 줄 알아? 그리고 성난 시민들을 잠재우느라 다친 경찰들은 몇 명이고? 내가 네놈들이라면 쪽팔려서 얼굴 못 들고 다닐 것 같은데?”

경찰은 곤봉으로 스콧의 가슴팍을 밀었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경고할게. 꺼져. 안꺼지면 공무 집행 방해로 루체트 황국의 감옥이 어떤 곳인지 구경시켜 주지.”

스콧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보다 심한 모욕은 최근 들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스콧은 경비들의 몸에 가려진 모르고트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조사한 사람들 중 가장 모르고트를 많이 닮은 사람이다.

저만한 키에 살이 찐 사람을 발견하는 것은 거의 없으니까.

그러나 경찰들과 마찰을 빚는 일은 최대한 피하라는 미카엘 외무대신의 명령이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주먹이 오갈 것 같았다.

‘······물러나야겠군.’

저 사내가 모르고트라는 확신도 없는데 경찰들과 괜히 싸워 부스럼을 만들면, 길리온 왕국의 일에 큰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내일 미카엘 외무대신이 루체트 황국에 정식적으로 수사권을 얻어 오겠다고 했으니 그때까지 참기로 했다.

그렇게 발을 돌리려던 찰나 스콧의 눈에 뭔가가 걸렸다.

오물이 묻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굉장히 익숙한 흉터가 보였다.

‘저건?’

모르고트의 목에 난 흉터와 굉장히 흡사했다.

“뭐 해. 안 꺼지고.”

“얼굴을 확인하게 해주십시오.”

경찰의 목덜미에 핏줄이 섰다.

“난 충분히 경고했다고 본다. 아주 콩밥을 먹여주지.”

경찰은 파우치에서 수정구를 꺼냈다.

경찰도 성기사들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을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 있던 경비들과 경찰들을 끌어모은다면 놈들을 결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스콧은 경찰의 수정구를 순식간에 낚아채 가져갔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외교적 결례가 있다면 충분히 감당하겠습니다. 하지만 이건 저희 길리온 왕국에게 굉장히 큰 문제라서 말이죠.”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

“그러니 미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저지르는 죄는 훗날 룩스 여신님께 죗값을 받겠습니다.”

“이 개새······ 아악!”

스콧은 경찰의 팔을 꺾은 뒤 경찰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수갑으로 팔을 묶었다.

너무 순식간이라 제대로 반항도 하지 못했다.

“네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줄 아는거냐?! 루체트 황국의 경찰을 겁박하는 거라고!”

경찰의 말에도 스콧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른 성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책임은 내가 진다. 어서 놈의 얼굴을 확인해라!”

“이 새끼들이!”

경찰들과 경비들이 곤봉과 창으로 성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성기사들은 모두 2성에서 3성 기사들이다.

고리도 없는 일반 경찰들이나 경비들을 제압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성기사들은 순식간에 경비들의 창을 빼앗아 땅에 내던지고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단 3초 만에 모두 제압된 경비들과 경찰들.

모르고트는 재빨리 판단을 내렸다.

“으아아아아!”

모르고트는 무작정 레인보우 브릿지를 달렸다.

다리가 엄청나게 아파왔지만 신경 쓰지않고 오러 고리까지 돌리며 미친 듯이 달렸다.

그러나 스콧이 빠르게 달려들어 모르고트를 제압했다.

“얼굴만 좀 확인하겠습니다.”

경찰들을 때려눕힌 이상 이미 스콧은 돌이킬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사람은 반드시 모르고트여야만 했다.

스콧은 장갑으로 모르고트의 얼굴에 묻은 오물을 닦아내려고 했다.

그때, 스콧의 옆구리에 묵직한 무언가가 날아와 꽂혔다.

우득-!

“컥!”

스콧은 레인보우 브릿지 밖으로 튕겨 날아가더니 그대로 루체트 강가로 떨어졌다.

모르고트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괜찮으십니까?”

어디선가 들어본 목소리였다.샤를로트였다.

“아니······ 어째서······.”

“일단 그건 나중에 생각하시고 여길 벗어나죠.”

샤를로트는 모르고트의 오물이 묻은 손을 아랑곳하지 않고 잡아 일으켜 세웠다.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아, 예. 가능합니다.”

다리 입구엔 리니아와 아이린이 성기사들을 상대하고 있었는데, 제법 쪽수가 많은지라 고전하고 있었다.

“일단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저놈들부터 처리하고 오겠습니다.”

모르고트는 찬란한 조명 뒤로 사라지는 샤를로트를 멍하니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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