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 트리니티
[특별 인재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은 파격 그 자체였다.
평민이고 귀족이고 인종이고 가릴 것 없이 순수하게 재능이 있는 자들을 긁어모아 빠르게 성장시킨다는 교육 정책은 현재 귀족 사회의 전통을 정면으로 부수겠다는 말과 똑같았다.
현재의 귀족 사회가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가문의 고유 기술을 후대에 계속 전승하고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평민들은 아무리 죽어라 훈련을 해도 고리의 개수를 늘릴 수 없다.
왜?
그들은 수백 년간 쌓아 올린 노하우가 없기 때문이다.
각 가문의 검술과 오러 운용법 등은 귀족들의 산물이고, 이 기술들은 엄격하게 관리되고 있다.
그나마 전쟁 용병들이 몰락한 귀족들의 기술을 훔쳐 자기들만의 검술을 만들고 오러 운용술을 배운다고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자식에게 전승하지 않는다.
애초에 티그리스 정도의 천재가 아닌 이상 검술 서적만으로 배운 검술을 제대로 따라 할 수도 없거니와 실제로 따라 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다른 종류의 기술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간혹가다가 고든과 같은 천재들이 용병들 사이에서 나오긴 하지만, 그런 극소수의 천재들은 베르강이 수제자로 삼은 것처럼 결국 귀족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아니면 전장의 이슬로 화해 죽거나.
그런데 이 특별 인재 교육 프로그램은 이 귀족과 평민들 사이의 장벽을 부숴 귀족들에게만 허락된 고급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것이었다.
말레우스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황국의 서고에 있는 몰락한 가문의 기술서나 오러 운용술, 고유 마법들을 풀어 각 인재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하여 가르치겠다라······ 이게 가능하겠습니까?”
말레우스는 황국에 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귀족들이 얼마나 자기 가문이 갖고 있는 기술력과 노하우 그리고 데이터에 집착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물론 몰락해 버린 가문들의 기술들을 평민들에게 풀겠다는 것이니, 상관할 바가 아니지 않냐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귀족들이 기술력과 노하우에 집착하는 이유가 단순히 역사와 전통 때문이 아니라, 자기 밥그릇 빼앗기기 싫어서라는 아주 근본적인 욕망 때문이라는 것을 아주 잘알고 있었다.
바스티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려하시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귀족들이 단체로 반발하지 않을까 우려하시는 거겠죠."
개나 소나 고리 3개, 4개를 갖는다면 귀족과 기사들의 존재 가치가 없어진다.
그러니 귀족들은 철저하게 성장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고, 기술력이 노출되면 가헌의 기사들을 출동시켜 곧바로 처단하는 것이다.
마법은 더욱 심하다.
마법사가 허락되지 않은 평민에게 마법을 가르친다면, 그자는 마법사 가문들에서 사냥꾼을 파견해 이유를 불문하고 무조건 목을 친다.
기사 가문들은 적어도 휘하의 기사들에게 가문의 아류 검술을 가르쳐 주기라도 하지만, 마법사 가문들은 아예 마법을 평민들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황국은 이런 폐쇄적인 귀족 사회의 풍조를 어떻게 부술 것인가?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특별 인재 교육 프로그램을 모두 통과한 모든 평민에게 황제 폐하께서 친히 작위를 내리실 겁니다.”
테호는 고개를 갸웃했다.
“제가 인간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진 못하지만, 귀족 작위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내리는 게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평민이 귀족이 되려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고든처럼 세기에 한 명 나올 법한 재능을 갖고 있거나, 나라를 구하는 등 말도 안 되는 업적을 세워야 가능하다.
그런데 단순히 이 교육 프로그램을 통과했다고 작위를 준다?
귀족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절대로 아니었다.
“맞습니다. 그러나 현재 황국 내 귀족들의 숫자가 많이 줄어든 것도 맞습니다.”
루체트 황국이 세워졌을 때 귀족 가문의 숫자는 무려 984가문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3분의 1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이렇게 숫자가 급감한 이유는 단순했다.
바로 욕심이었다.
과거에는 드래곤, 마녀, 거인 등 인류를 위협하는 종족들이 있어서 함부로 세력을 넓히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제 더 이상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는 없었다.
인류를 위협하는 것은 오직 두 가지로 몬스터와 바로 옆에 있는 귀족이었다.
그들은 더 좋은 땅을 얻기 위해.
자기 가문의 세력을 넓히기 위해.
생존하기 위해.
각양각색의 이유로 전쟁을 벌였고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히며 숫자가 급감했다.
“게다가 흑토 지대의 귀족 가문들이 청산을 당하면서, 그 지역을 다스릴 귀족들이 필요하던 차였습니다. 언제까지 행정관들이 그 지역을 다스릴 수 있는 노릇도 아니고, 그 지역을 다스릴 영주가 필요하죠. 그것도 황국에게 진정으로 충성하는 귀족들 말이죠.”
명분은 충분하다.
흑토 지대의 땅을 가만히 놀려둘 수는 없다.
그러니 평민들 중 황국에 크게 도움이 될만한 천재들을 등용하여 귀족 작위를 준 후 봉토를 하사한다.
원래라면 이런 것도 황제에게 권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만, 현재 황제의 권력은 하늘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중이니 단번에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테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수인들이나 드워프 종족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인간들이야 평민들을 귀족으로 등용한다고 하면 어느 정도 납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수인들이 인간들의 기술력을 배운다고 하면 반발을 하지 않겠습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도 바스티얀이 생각한 방법이 있었다.
“대신 수인들도 인간들에게 기술력을 제공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기술이라면 주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예. 그렇습니다. 물론 그것 외에도 분명 수인들이 인간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술들이 분명 있을 겁니다.”
토드 황제가 입을 열었다.
“황국은 수인족 자치구에 기술 동맹을 제안할 것입니다. 분명 인간들 중에서도 주술과 관련된 재능을 갖춘 사람들이 있겠지요. 그들을 가르쳐 주는 대신 저희도 인간들의 기술을 가르쳐 주는 교환 방식으로 진행할 겁니다.”
“그리고 황국은 여기서 끝을 낼 생각이 없습니다. 황국은 수인과의 기술 동맹에서 더 나아가 경제 동맹, 군사 동맹까지 자연스럽게 추진할 생각입니다.”
테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길리온 왕국을 압박할 수 있겠군요.”
“예. 그렇습니다. 수인족 자치구에 문제가 생기거나 황국에 문제가 생겨도 서로에게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요.”
티그리스는 뭔가 탐탁지 않게 서류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말레우스를 보며 말했다.
“말레우스 님.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흠······.”
말레우스는 뜸을 들였고, 서류를 내려놓았다.
“인간들도 발전하고 수인들도 발전한다면 서로 윈-윈이겠지. 하지만 드워프의 입장에선 이건 별로 매력적인 제안이 아니네.”
“왜 그렇습니까?”
“드워프들이 갖고 있는 각종 공학 기술과 인챈트 기술은 인간들의 것보다 몇 단계는 더 위에 있네.”
드워프들은 1,000년을 사는 장수 종족인데다가, 인간처럼 개발한 기술을 꼼꼼히 적어두었다가 후대에 전승한다.
그러다 보니 공학 기술력만큼은 인간들보다 몇 세기 앞서 있다.
“오만하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인간들이 드워프들에게 전수해 줄 수 있는 기술은 거의 없네. 드워프들이 검술이나 마법을 잘 다룰 수 있는 종족도 아니고 흥미도 없으니까.”
바스티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런데 인챈트는 마법 아닙니까? 마법 기술은 인간들이 가르쳐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드워프들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고 무기에 마법을 부여하는 기술을 갖고 있네. 그걸 우린 마공학이라고 부르지.”
“마공학이라고 한다면 인간들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열차가 그 마공학의 산물이 아니겠습니까?”
말레우스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장난감 기차 같은 것은 드워프의 것과 비교하면 안 되지. 아직까지 증기기관의 동력으로 작동하는 엔진으로 굴러가는 모양인데, 우리는 순수한 마나의 힘만으로 작동하네. 우리는 그걸 마력 엔진이라고 부르지”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드워프들은 로타와 아르펨에게 패배했습니다. 밀림이 황폐화되어 식량이 떨어지고, 월식 기사와 검은 사신이 강철 성벽을 뚫고 드워프들을 도륙 냈습니다. 드워프들이 갖고 있는 그 어떤 무기들도 혼령을 막아낼 수 없었으니까요.”
“커흠······ 그렇긴 하지만 지금부터 노력해서 만들기 시작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그 기술 개발을 화산 지대가 아니라 황국에서 공동 개발을 하면 서로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군. 그런데 그 꼰대 녀석들이 과연 그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일지······ 뭐, 그건 내가 설득할 일이겠군.”
하나부터 열까지 황국이 다 해주길 바라는 것은 솔직히 너무한 이야기다.
황국뿐만이 아니라 드워프와 대륙 전체의 미래가 달린 일인데, 드워프들이 개발한 몇가지 기술을 푸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바스티얀은 테호와 말레우스를 보며 말했다.
“혹시 또 궁금한 점이 있으십니까?”
“한 가지 있습니다.”
테호와 말레우스가 아닌 베르강이 입을 열었다.
“회귀록으로 보증된 인재들을 불러 모아 교육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티그리스 경이 발견하지 못한 인재들이 분명히 황국 전역에 있을 겁니다. 그들을 끌어모으지 못한다면 이 프로젝트는 길어봤자 2년에서 3년이면 끝나지 않겠습니까?”
베르강은 프로젝트 마지막 쪽을 확인했다.
“그런데 제국 대학 부지를 더 늘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특별반들을 위한 숙소와 함께 훈련장과 공방 등을 세우겠다고 되어 있습니다. 회귀록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투자라고 생각되지만, 다른 귀족들이나 제국 대학의 학생들과 교관들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바스티얀은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강 경이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건 단기 프로젝트가 아닙니다. 최소 100년은 갈 장기 프로젝트죠.”
“그럼 혹시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성물이나 기술이 있는 겁니까?”
바스티얀은 고개를 끄덕였다.
“황국에는 없지만 수인들에게 마침 그런 성물이 있습니다.”
테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왠지 이틀 전, 마사라이의 뼈 바늘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시더니 이런 이유에서였군요."
테호는 마사라이의 뼈 바늘을 꺼내 들었다.
“이 마사라이의 뼈 바늘엔 상대방의 잠재되어 있는 재능과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저는 그 능력을 보고 해당 수인에게 알맞은 문신을 새겨주는 것이죠.”
“그게 인간들에게도 작용되는 능력입니까?”
“재능을 확인하는 능력은 인간이건 엘프건 드워프건 상관없이 볼 수 있습니다. 티그리스 경을 한번 예로 들어보죠. 가까이 와주시겠습니까?”
티그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테호에게 향했다.
테호도 일어나 티그리스와 마주 보고 섰다.
그리고 눈을 감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자 마사라이의 뼈 바늘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티그리스를 감싸기 시작했다.
그러자 티그리스의 손과 가슴에 총 8가지의 붉은색 문양이 나타났다.
테호는 티그리스의 붉은색 문양을 보더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8개는 살면서 저도 처음 보는군요. 저도 가장 많이 본 것은 5개가 끝이었는데 말이죠.”
“문양의 개수가 많을수록 좋은 겁니까?”
“그만큼 재능의 방향이 다각도로 열려 있다는 뜻이니까요. 물론 문양의 등급에 따라 다르긴 합니다만······ 8개면 그 유명한 검성 호스의 개수와 똑같군요.”
베르강은 살짝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티그리스 경의 재능에 대해 설명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등급 구분은 필요가 없겠군요. 전부 최상입니다. 일단 검술이 하나 있고, 순발력, 정교함, 오러 운용, 오러양, 민감함, 육성······ 그리고 하나는 저도 처음 보는 거라 알지 못하겠군요.”
티그리스의 가슴엔 우주를 담은 눈이 하나 그려져 있었다.
이건 테호도 처음 보는 것이라 알 수 없었다.
“이건 나중에 확인을 해봐야겠군요. 티그리스 경의 고유 능력일 수도 있겠습니다.”
“고유 능력이란 게 무엇입니까?”
“세상에 오직 티그리스 경만이 갖고 있는 능력이라는 겁니다. 네메시스의 그림자 이동과 같은 능력이죠. 밀림에 돌아가면 이 눈이 과거에도 있었는지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테호가 주술을 끊자 몸이 붉게 빛나던 문양이 사라졌다.
“재능을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쳐도 테호 대장로님과 마사라이의 뼈 바늘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럼 테호 대장로님이 황도로 오시거나 예비 입학생들이 밀림으로 향해야 한다는 건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테호 대장로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밀림으로 올지도 모르고 인간들이 밀림에 들락날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배타적인 수인들도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황도로 올라가는 게 맞겠죠.”
“굉장히 번거로우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매년 수인들을 황도로 올려보내야 할 테니 같이 가도 괜찮겠지요. 아니면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도 있으니 이동은 그리 문제는 되지 않을 겁니다.”
테호가 흔쾌히 허락하자 회담장 분위기가 굉장히 밝아졌다.
“그럼 이제 특별 교육반의 이름을 결정해볼까요? 가제로 '특별 인재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적긴 했지만 이걸 그대로 쓸 수 없으니 말이죠.”
말레우스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스페셜 클래스는······.”
테호가 눈썹을 찌푸렸다.
“조금 촌스럽군요.”
“난 의견도 못 내나? 그리고 스페셜이 뭐가 어때서! 그럼 테호 대장로 네 생각은 뭔데?”
테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엘리트 클래스.”
“구려.”
“더 히어로?”
“구려.”
“미라클?”
“구려.”
테호는 손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건 몰라도 미라클은 괜찮지 않습니까? 기적을 만드는 영웅들이라는 의미에서······.”
레인로버와 베르강 심지어 티그리스가 난색을 표하자 테호는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면 다른 분들은 무슨 생각 없으십니까? 저도 의견을 냈을 뿐입니다.”
“방금 내가 한 말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 군.”
“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제가 생각해놓은 게 한 가지 있는데요. 트리니티(Trinity)가 어떻습니까?”
“트리니티?”
“인간, 수인, 드워프 세 종족이 모여서 대륙의 발전을 위한 인재들을 양성한다는 의미죠.”
레인로버는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조금 이상하면 다른 것도 괜찮고요.”
토드 황제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도 꽤 나쁘지 않은지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제국 대학 부지 내 만들어질 특별교육 프로그램의 이름은 ‘트리니티’로 결정이 되었다.
* * *
회의가 끝나자 바스티얀이 티그리스를 불렀다.
“잠깐 산책 좀 할까? 여기 황궁 정원이 산책하기 참 좋지.”
티그리스는 바스티얀이 또 손녀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이야기가 더 나을 뻔했다.
“자금이 부족하네.”
티그리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돈이 부족합니까?”
“흑토 지대에 일어난 내란을 잠재우느라 생각보다 많은 자금이 들어갔네. 바로스 후작령 안정화 문제도 그렇고. 이 트리니티가 장기적으로 생각하면 돈을 벌 수밖에 없는 구조이긴 하지만 언제나 돈은 멀리 있고 가까이에 있지 않지.”
“국채를 더 발행하는 것은 어렵겠습니까?”
“국채를 발행한다고 해서 바로 돈이 들어오는 게 아니란 것을 알고 있지 않나? 8개월, 아니, 적어도 반년 내로 부지를 구매해 필요한 건물을 빠르게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당장 쓸 자금이 필요하네. 특히, 건축 마법사가 문제지.”
트리니티의 출범일은 내년 3월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니 그 안까지 빠르게 필요한 건물을 올리려면, 건축 전문 마법사들을 고용하는게 필수였다.
“그 돈 먹는 하마들이 필요하다는 거군요.”
노르베르드 타워와 같은 고층 빌딩이나 노르베르드 장벽과 같은 거대한 방어 건축물이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은 건축 마법사들 덕분이다.
간단히 땅을 파는 일도 마법사는 그냥 ‘디그’ 마법 하나면 순식간에 해낼 수 있지만, 인부들이 하나하나 삽을 들고 땅을 파려면 며칠이 걸리니까.
물론 고고한 귀족 출신 마법사들이 이런 먼지 마시는 일을 할 리 없고, 맨땅에 헤딩하는 가난하고 급 낮은 평민 출신 마법사들이 주로 하다 보니 인력 수급도 굉장히 적은 편이다.
당연히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수요는 많은데 공급은 적으니 이런 건축 전문 마법사들의 몸값은 천정부지로 솟구친다.
“알다시피 그 건축 전문 마법사들은 대부분 마법사 가문들에서 평생 일하기로 계약한 마법사들이네. 그 마법사들의 고용 여부는 그 마법사 개인이 아니라 마법사 가문과의 협조가 필수네.”
당장에 로드엘림 가문만 하더라도 그런 평민 출신 마법사만 50명이 넘어간다.
물론 로드엘림 가문의 마법사들은 바로스 후작처럼 고리로 돈을 빌려 뼛속까지 뽑아먹진 않는다.
그렇기에 로드엘림 가문 휘하에 있는 평민 출신 마법사들은 더더욱 이 험한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
공방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마법 연구할래? 아니면 퀘퀘한 먼지 마시면서 땅 팔래?라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개인 연구하고 싶다고 하니까.
“로드엘림 가문에서 10명 정도 뽑아올 수 있고 철도 관리국에서 대여한 마법사들 5명 정도를 빌려올 수 있네. 하지만 그것만으론 택도 없지. 최소 50명 정도는 필요하네.”
“최소 몇 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 필요한겁니까?"
“적어도 콘크리트를 평탄화시키고 빠르게 굳힐 수 있는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3서클 이상의 마법사들이어야겠지.”
“3서클이면 정말 어렵겠군요.”
이건 그냥 돈의 문제가 아니다.
인력난.
이것을 해결해야만 내년에 제대로 된 교육이 진행될 수 있다.
“그래서 자네의 힘이 필요하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황제 폐하께선 다음 주 금요일에 파티를 여실 생각이네. 혹시 참석해 줄 수 있는가? 다른 부탁은 하지 않겠네. 그냥 파티에만 참석해 주게.”
말이 파티지 돈이랑 마법사 좀 빌려달라고 조르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티그리스는 이런 파티는 정말 싫어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람이 언제나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는 법은 아니니까.
“예.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