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11화 (111/251)

#111화 – 회색 쥐(3)

티그리스는 라칸이 솜니움의 ‘공유몽’에 제 발로 들어가겠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안된다는 말이 튀어나오려 했다.

공유몽의 세상은 온갖 사람들의 악몽들이 하나로 엮인 지옥 같은 곳이다.

그러나 티그리스는 지금까지 라칸이 직접 나서서 잘못된 일이 하나도 없다는 점을 떠올렸고, 이건 자신이 결정할 일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솜니움의 공유몽 속 세상은 내가 솜니움을 찾아내 죽인 후에도 거의 한 달 동안 악몽에 시달렸을 정도로 끔찍한 것들로 가득했다.”

티그리스의 갑작스러운 경고에 라칸의 자신만만한 표정이 눈 녹은 듯 사라졌다.

“명경지수의 정신이 정확히 어디까지 네 정신을 보호해 줄 수 있는 능력인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겪은 솜니움의 공유몽 속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마. 내 경험을 듣고도 네가 가겠다고 한다면 말리지 않겠다.”

티그리스의 가라앉은 목소리에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내가 솜니움의 공유몽을 돌아다닐 수 있었던 이유는 내 트라우마를 내 의지로 극복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트라우마 극복은 솜니움의 공유몽을 돌아다닐 수 있는 입장 티켓일 뿐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굉장히 힘들다.

수만 명의 병사들과 민간인들이 나이트메어에 감염되었지만, 유일하게 티그리스만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했으니까.

“아마 너도 나이트메어에 감염되는 순간 네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될 거다. 넌 그것을 순수한 네 의지로 극복해야 한다.”

“티그리스 교관님은 어떻게 극복하셨는데요?”

“난 오만함으로 극복했다.”

“······오만함이요?”

“솜니움의 나이트메어 따위가 내 정신을 오염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었지.”

어떤 독은 약으로 작용하는 법.

티그리스를 좀먹었던 오만이라는 감정은 그 공유몽 속 세상에선 날카로운 무기가 되어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었다.

“그 오만함 덕분에 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공유몽 속 세상을 탐험할 수 있었다.”

“······뭔가 티그리스 교관님께서 직접 공유몽 속 세상에 들어가신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 전장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병사들과 시민들 사이에서 반란의 조짐이 일어나자 조사에 착수했다. 그리고 네가 그 원인이 나이트메어라는 것과 어떻게 하면 나이트메어를 제거할 수 있는지도 알아냈지.”

“그런데 왜 나이트메어를 감염당하실 생각을 하신 거예요?”

“당시 설탕과 깨끗한 물이 귀했다.”

머릿속에 침투한 나이트메어를 빼내려면 평균 10% 농도의 설탕물 100ml 정도가 필요했다.

그러면 한 사람당 필요한 설탕의 양은 10g정도.

그러나 당시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병사와 시민들의 숫자는 약 5만 명으로, 500㎏ 정도가 필요하다.

지금이야 사탕수수 재배를 통한 설탕 보급이 원활하다고 하지만, 사탕수수를 재배할 수 있는 남부 지방이 모조리 로타와 아르펨에게 점령당했다.

심지어 깨끗한 생수의 보급도 원활하지않아 오염된 물을 마시고 배탈이나 쓰러지는 병사들도 수두룩했다.

“제가 포인트로 설탕이나 물을 구매할 수 있었을 텐데요?”

“네가 그걸 포인트로 구매할 수 있는지는 난 알지 못했으니 그건 대답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설탕과 깨끗한 물의 보급량에 비해 나이트메어의 증식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다.”

솜니움의 나이트메어가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다.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병사들과 시민들은 자신의 공포를 주변 사람들에게 증식시킨다.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사람들이 공포심을 자극하니 그러면 괜찮았던 병사들도 자기도 모르게 공포에 전염당해 나이트메어에 감염되고 말았다.

“물론 그것들은 다 핑계일 뿐이고, 솜니움을 내가 직접 잡아 죽이고 싶었다. 그래서 네가 솜니움의 공유몽에 들어가겠다는 것을 무시하고 내가 먼저 감염을 당했다.”

라칸은 지금 잘못 들었나 귀를 의심했다.

“······네?”

“네가 약간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의 나와 회귀 전의 나는 거의 딴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난 당시엔 레인로버 황녀님의 명령도 일부러 곡해해서 처리할 정도로 오만한 놈이었으니까.”

회귀록을 본 레인로버나 바스티얀 그리고 나달은 티그리스의 말을 어느 정도 이해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의 티그리스가 연합군 내에서 제일 강하지만 않았어도, 레인로버가 제일 먼저 죽여 버렸을지도 모를 만큼 암적인 존재였으니까.

“예전에도 듣긴 했지만, 잘 상상이 안가는데요?”

“굳이 네가 상상할 필요는 없다. 지금 이 상황에서 그리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까.”

티그리스는 계속 이어서 설명했다.

“나는 내가 솜니움을 직접 처리할 수 있을 것이란 오만함을 무기 삼아 공유몽에 들어갔다. 결과적으론 그 오만함 덕분에 솜니움의 공유몽 세상에서 버틸 수 있었고, 네 경우에는 ‘명경지수의 정신’이 도움이 되겠지.”

“그곳이 얼마나 끔찍하길래 그렇죠?”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숙주의 악몽 속 괴물들이 그곳에 득실거린다. 내 경우에는 전장 공포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키메라들과 시체들이 즐비했지.”

라칸은 마른침을 삼켰다.

말만 들어도 눈앞이 캄캄해질 정도로 끔찍했다.

“그곳에선 검술도 마법도 아무것도 쓸모가 없다. 오직 강철 같은 의지와 정신력 하나만으로 극복해야만 한다. 내 경우에는 좀 전에 말했듯이 오만함으로 공유몽 속 괴물들을 죽였고, 결국 솜니움의 위치 정보가 담긴 기억 파편을 찾아냈다.”

“꿈속 괴물들을 죽인다고요? 그게 가능해요?”

“난 꿈속에서 검을 만들어 괴물들을 베어냈다.”

“꿈속 괴물들이 베어져요?”

“난 됐다. 넌 모르겠지만.”

“아······. 네.”

티그리스가 가능했다는 데 뭐라고 할 건가.

라칸은 계속 설명을 들었다.

“일단 가장 경계해야 하는 문제가 있다. 네가 그 꿈속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네 트라우마를 솜니움도 보게 될 것이라는 거지. 명경지수의 정신이라는 능력이 정신 공격을 막아주는 게 확실하다면 넌 솜니움의 공격에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제 트라우마를 보게 된다는 게 문제군요.”

“맞다. 만약 네 트라우마가 이 세계가 아닌 ‘한국’에 살던 김유신의 것이 보여진다면, 솜니움은 네가 이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챌 테니까.”

티그리스의 말에 라칸을 포함해 레인로버와 바스티얀 그리고 나달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고 보니 그걸 생각 못 했네요. 만약 라칸이 이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솜니움이 알아챈다면 문제가 심각해질 텐데요.”

“이세계인이라는 것이 들키더라도 상태창과 포인트 상점의 능력은 들키지 않을 테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라칸을 더더욱 경계할 것이란 건 명확해지겠죠. 지금은 로타와 아르펨이 티그리스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라칸이 이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목표를 바꿀지도 몰라요.”

라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트라우마를 자극하고 보여주는 것 자체도 정신 공격이 아닌가요? 그러면 명경지수의 정신의 능력으로 막아낼 수 있을 텐데요.”

“물론 그렇게 된다면 최고의 시나리오겠지. 네 트라우마를 보여주지 않고 공유몽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다는 거니까.”

“으음······결국은 공유몽 속에 들어가 봐야 안다는 거네요.”

“그렇다.”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질 무렵 바닥에 누워 있던 테인의 호흡이 가빠지더니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으아아악!”

테인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는데, 악몽을 꾼 모양이었다.

테인은 바스티얀과 티그리스, 나달, 레인로버 황녀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자 몸이 굳었다.

“왜 제가 여기에······.”

티그리스는 테인을 무시하고 라칸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 저녁까지 충분히 생각을 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해라.”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 * *

라칸은 외출권을 받곤 제국 대학 밖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오늘 오후에 티그리스의 강의 오리엔테이션이 잡혀 있긴 했지만, 출석 문제는 고민하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밖을 나올 수 있었다.

라칸은 자신이 갖고 있는 포인트의 양을 확인했다.

[현재 보유 포인트:50,310]

키메라 실험실 사건.

케일 자작 사건.

레인로버 생일파티 테러 사건.

각종 인퀴지터 임무들과 일일 퀘스트를 끝내고 반드시 필요한 것들만 구매하고, 그 외엔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은 것들이었다.

‘확실히 비싸긴 하네.’

5만 포인트를 사용하면 마력을 중(中)에서 중상(中上)으로 단번에 올릴 수 있고, 3서클 공통 계열 마법까지 익힐 수 있다.

이런 막대한 양의 포인트를 애매한 정신공격 방어 능력에 투자하는 게 맞는 걸까?

물론 퀘스트만 잘 해결하면 투자금 회수는 일도 아니다.

그냥 도전만 해도 3만 포인트에 기여도에 따라 6만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어렵겠지.’

지금까지 제국 대학의 마법학부로 전과하라는 퀘스트가 5만 포인트로 제일 보상이 많은 퀘스트였다.

전과 퀘스트의 난이도는 생각보다 있는 편이었다.

다른 교양 과목들은 괜찮았지만, 문제는 검술 과목이었다.

검술에 재능이 거의 없는 데다가 앞으로 써먹을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노력할 의지가 솟구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인트로 검술 실력을 늘리자니 너무 아깝고.

그런 딜레마 속에서 라칸은 마법 훈련과 병행하며 검술과 체력 훈련을 했고 결국 저번 학기에 아슬아슬하게 A학점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이번 학기에 티그리스의 강의를 들어도 검술 관련 과목을 3개나 들어야 하는데, 어떻게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지 한숨만 새어 나왔다.

‘일단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자.’

여기서 대학 문제까지 고민할 시간은었다.

라칸은 어느새 자신이 레인보우 브릿지 앞에 서 있었다.

이 다리를 건너면 그레이 타운이고 나이트메어에 감염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회색 쥐’들이 사는 곳이다.

‘그러고 보니 왜 그레이 타운의 평민들을 감염시킨 걸까?’

귀족 마법사들과 회색 쥐들은 전혀 다른 목표를 갖고 있었다.

귀족 마법사들은 트리니티의 출범을 방해하려는 목적이고.

회색 쥐들은 티그리스를 신봉하는 것이 목적이다.

라칸은 문득 전혀 상관이 없는 두 집단의 행보에 사실 공통점이 있는 게 아닌가란 의심이 싹텄다.

라칸은 자연스럽게 레인보우 브릿지를 향해 걸어갔다.

라칸은 레인보우 브릿지를 지키는 경비들에게 학생증을 넘겼다.

경비들은 라칸이 평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친근하게 말을 걸어왔다.

“자원봉사 할 시기는 아닌데 왜 온 거니?”

“아, 저 제국 대학 신문 동아리에요. 최근에 그레이 타운에서 티그리스 교관님을 찬양하는 시민들이 있다고 해서 인터뷰하러왔어요.”

라칸은 이제 거짓말도 매끄럽게 술술 나왔다.

경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라칸에게 학생증을 넘겼다.

“아~ 그 회색 쥐들 말하는 거니?”

“네. 맞아요.”

“음······그래? 그런데 인터뷰는 좀 힘들텐데?”

“네? 왜요?”

경비는 뺨을 긁적이더니 입을 열었다.

“최근 그레이 타운 놈들이 머리가 회까닥 돌아가 버렸는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거든. 말도 안 통하고······ 아무튼 그래.”

“시민들이 난동을 부린다고요? 제가 알기론 그냥 찬양 집회만 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요?”

“네가 방금 말한 티그리스 교관님을 찬양하는 ‘회색 쥐’들에 갱들이 들어오면서 굉장히 난폭해졌어. 심지어 무기를 들고 위협까지 해오는 상황이지.”

이건 모르고 있던 정보였다.

라칸이 직접 그레이 타운에 잠복 수사를 진행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회색 쥐들은 보통 노약자들이나 과부들과 같은 그레이타운 중에서도 약자 계층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레이 타운의 포식자로 활동하는 갱들이 회색 쥐에 가입하다니.

‘설마 갱들도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건가? 아니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건가?’

갱들이 사는 곳은 거지들과 똑같이 그레이 타운이다.

같은 곳에서 먹고 자고 잠까지 자니 당연히 나이트메어가 번식하기엔 최적의 장소일 것이다.

심지어 그레이 타운의 시민들은 갱들이고 거지들이고 구분할 것 없이 공통적으로 황국에게 버려졌다는 피해 의식을 갖고 있었다.

나이트메어가 그 트라우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라면, 갱들도 충분히 나이트메어에게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가까이 다가가서 인터뷰하는 것은 안 되고 레인보우 브릿지에서 집회를 구경하는 것까진 허락해 주마. 가볼 테냐?”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경비는 품속에서 여분 마스크를 꺼냈다.

“마스크 안 들고 왔지? 그레이 타운은 냄새가 지독하니 이걸 사용하도록 해라.”

“감사합니다.”

라칸은 경비가 건네준 마스크를 착용하고 경비와 함께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넜다.

그레이 타운에 가까워질수록 악취가 심해지며 회색 쥐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티그리스 님! 저희를 구원하소서!

-티그리스 님! 저희에게 빵을 내려주소서!

-티그리스 님이야말로 황제에 적합하다!

-티그리스 님! 오! 티그리스 님!

라칸은 레인보우 브릿지 중간에 멈춰 섰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레인보우 브릿지 주변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자리 잡아 강변을 향해 목소리 높여 티그리스를 부르고 있었다.

수십 명의 경비들과 경찰들은 중무장을 한 채 눈을 부릅뜨고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레인보우 브릿지가 뚫릴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단 2주 만에 이렇게 되다니······.’

2주 전까지만 해도 회색 쥐들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그때의 광기도 장난이 아니었지만, 수천명이 모여서 집회를 여니 라칸은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쳐졌다.

옆에 서 있던 경비가 입을 열었다.

“어때? 인터뷰할 마음이 싹 사라지지?”

“회색 쥐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많아진 거예요?”

“이렇게 천 단위로 모인 것은 얼마 안 됐어. 2일 전부터인가? 그랬지.”

라칸은 좀 더 가까이 가서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라칸이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얼마 전까지 레드 파우더와 밀주를 팔았던 ‘레드 팜’의 행동 대장도 보였고

레드 파우더만 취급하는 '블랙 캣’의 보스도 보였다.

“이건 황국에서 무슨 대책을 내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요?”

“경비대장님이 위에서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곤 하는데 잘 모르겠다. 그래도 해가 지면 한 놈도 빠짐없이 자기 집에 들어가니 그나마 버티고 있는 거지. 만약 24시간 동안 계속 집회를 열었으면 내가 미쳐서 돌아버렸을지 몰라.”

라칸은 심각한 표정으로 저들을 쳐다봤다.

‘원래 내부 조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래선 조사가 불가능하겠어.’

그래도 확실한 것은 있었다.

하루라도 빨리 나이트메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제국 대학도 그레이 타운처럼 난리가 날 것이다.

* * *

라칸은 저녁이 되자 제국 대학 내에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바스티얀 학교장님은 결국 32명의 귀족 마법사들을 따로 격리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현재 해당 귀족 가문들의 빗발치는 항의에 학교장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하긴 자기 아들이 세뇌 마법에 당했다고 하는데, 어느 가문이 가만히 있겠는가?

바스티얀이 로드엘림 공작 가문 출신인데다가 7서클 대마법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 그나마 버티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스티얀 학교장이 외부 문제를 해결하는동안, 나달과 티그리스, 레인로버 그리고 라칸은 병동에 모였다.

“라칸. 각오는 되었나?”

“네.”

그레이 타운을 다녀오니 라칸의 의지는 더욱 굳건해졌다.

오늘 밤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안 그러면 제국 대학은 물론이고 황국 전체가 위험해진다.

레인로버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칸의 트라우마 문제는 어떻게 하죠? 라칸은 한국에서 한 번 죽은 경험이 있어요. 그게 트라우마로 작용하면 로타와 아르펨에게 라칸이 이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들킬 수도 있잖아요.”

그때, 나달이 입을 열었다.

“그 문제는 제가 해결책을 가져왔습니다.”

“그게 뭐죠?”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환자들이 꾸는 악몽을 볼 수 있는 마법을 좀 전에 개발했거든요. 만약 라칸이 이세계 악몽을 꾼다면 바로 제가 깨우겠습니다.”

“마법의 발동 시간은 얼마나 되죠?”

“현실 시간으로 0.5초면 충분합니다. 솜니움이 라칸의 꿈을 처음부터 노리고 들어오는 것이 아닌 이상 라칸이 이세계인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나이트메어에 감염된 사람들이 수천 단위를 넘어가니까요.”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솜니움도 나이트메어라는 숨겨진 수를 드러냈는데, 저희도 위험을 감수해야겠죠.”

레인로버의 허락이 떨어지자 라칸은 준비된 침상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솜니움의 위치 정보가 담긴 파편은 어떻게 찾죠? 그게 있어야 솜니움을 찾을 수 있잖아요.”

“솜니움이 정신적인 큰 충격에 빠지면 순간적으로 최신 기억들이 꿈속에 전염될 거다. 난 그 기억 파편들을 바탕으로 솜니움을 찾아내 죽였다.”

“그 정신적 충격을 어떻게 주냐는 게 문제네요.”

“답은 간단하다. 녀석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면 된다.”

티그리스는 가방에서 하얀 토끼 인형을 꺼내 들었다.

황국 내에서도 제법 유명한 '리본 토끼’라는 캐릭터였다.

“녀석의 약점은 이 토끼 인형과 불이다.”

“그걸 어떻게 아셨······ 아, 솜니움의 트라우마를 보셨다고 했죠?”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도 정확한 솜니움의 트라우마 스토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이 토끼 인형과 불을 이용하면 놈의 트라우마를 촉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꿈속 세상에서 어떻게 이 리본 인형과 불을 만들어내죠?"

“그 세상은 솜니움의 꿈속 세상이긴 하지만, 그 세상은 네가 상상만 한다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낼 수 있는 네 꿈속 세상이기도 하다.”

“그럼 이 토끼 인형을 꿈속에서 기억만 해내면 된다는 거네요?”

“그렇지.”

라칸은 리본 토끼 인형을 구석구석 훑어 ‘수사 메모장’에 집어넣었다.

꿈속 세상에서 상태창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해두는 편이 나을 테니까.

라칸은 토끼 인형의 촉감까지 모두 기억한 뒤 입을 열었다.

“기억했어요.”

“그럼 바로 시작하는 거로 하지.”

“네.”

[명경지수의 정신을 구매하셨습니다.]

순식간에 5만 포인트가 증발하며 라칸의 상태창 기술란에 ‘Lv. 0 명경지수의 정신’이 들어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준비됐어요.”

라칸은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나달의 손에서 마법진이 그려졌다.

“조심히 다녀오도록 해라.”

나달의 슬립마법과 함께 라칸은 정신을 잃었다.

* * *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로 '트라우마 촉발'에 면역이 됩니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로 ‘트라우마 증폭'에 면역이 됩니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로 ‘꿈 조작’이면역이 됩니다.]

라칸은 눈앞에 뜬 메시지를 치웠다.

“여긴······.”

라칸의 목소리가 기이하게 울렸다.

공기에 습기가 많아 꿉꿉했고 중력도 이상하게 작용하는 듯 라칸의 몸을 상하좌우로 가볍게 잡아당기는 기분이 들었다.

라칸은 반사적으로 위를 올려다봤다.

“왜 땅이 하늘에 있지?”

라칸이 밟고 있는 땅이 아래에 있었고 위에도 있었다.

라칸은 주변을 훑었다.

세상은 만들다 만 게임 세상처럼 뒤죽박죽이었다.

으리으리한 저택과 함께 낡은 판자촌이함께 있었고

강아지와 온갖 쓰레기들이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이상한 점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경찰과 기사와 마법사들과 갱들과 몬스터들과 빼빼 마른 거지들이 라칸을 쳐다보고 있었다.

꿀꺽-

라칸은 마른침을 삼켰다.

[명경지수의 정신의 효과로 ‘공포심 조장'이 면역이 됩니다.]

공포는 없었지만, 목이 뻐근하게 당기도록 아팠다.

“······이거 도망쳐야 하나?”

[탐색 결과]

1. 그걸 말이라고 합니까?

2. 당장 튀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