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19화
서고(2)
티그리스는 황궁으로 향하기 전 집으로 향했다.
티그리스는 레니에게 말했다.
“황녀님은 어디 계시지?”
“테라스에서 소환수들을 돌보고 계십니다.”
티그리스는 거실로 나와 테라스와 통하는 유리창을 통해 레인로버 황녀를 쳐다봤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가 온 줄도 모르고 열심히 소환수들을 돌보고 있었다.
레인로버가 이 집에 온 뒤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텅텅 빈 테라스가 꽉 채워졌다는 점이었다.
티그리스가 훈련을 하지 않을 때면 테라스에 소환수들을 풀어놓고 먹이를 주거나 일광욕을 시켰는데, 그 광경을 멀찍이 떨어져서 보고 있자면 알 수 없는 기묘한 감정이 꿈틀거렸다.
티그리스는 테라스 문을 열고 레인로버에게 다가갔다.
그때, 몇 달 전 베르강에게 선물 받은 모래 여우가 티그리스에게 총총 뛰어왔다.
모래 여우는 허공을 밟고 뛰어오르더니 티그리스의 어깨 위에 풀쩍 올라탔다.
모래 여우는 티그리스를 보면 항상 어깨 위에 올라타려고 했는데, 몇 번이고 떨어뜨려 놓으려고 해도 끈질기게 어깨에 올라타서 결국 포기했다.
“어? 티그리스 경. 일찍 오셨네요?”
레인로버는 밀림 토끼들에게 당근을 건네주곤 일어났다.
레인로버는 고급스러운 드레스가 아닌 마치 시골 아낙네가 입을 법한 갈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레인로버 특유의 고급스럽고 신비로운 이미지와 다른 풋풋한 모습이라 매번 볼 때마다 신기했다.
“프린스! 자꾸 티그리스 경 어깨 위에 올라타면 안 된다니까? 이리와.”
레인로버의 작은 호통에도 모래 여우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티그리스의 볼에 얼굴을 비볐다.
모래 여우의 털은 굉장히 따뜻하고 폭신했다.
레인로버는 한숨을 내쉬며 티그리스에게 다가가 모래 여우를 떼어냈다.
“미안해요. 우리 프린스가 티그리스 경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네요.”
“괜찮습니다.”
레인로버는 모래 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할 말이 있어 보이는데 왜 그러세요?”
“황궁 서고에 가고 싶습니다.”
“서고에요? 설마 벌써 그 많은 검술서들을 다 읽으신 건가요?”
“아뇨. 그건 아닙니다.”
티그리스는 진중한 눈빛으로 말했다.
“마왕과 관련된 정보를 열람하고 싶습니다.”
* * *
레인로버와 티그리스는 마차에서 내려 황궁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는 필요 없겠습니까?”
“괜찮아요. 티그리스 경하고 단둘이 걷고 싶거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레인로버는 황금 기사들의 안내를 부드럽게 거절하고 티그리스와 함께 길을 걸었다.
황궁 바깥은 늦여름에서 초가을로 접어드는 중이라 살짝 더웠지만, 황궁 내부는 사시사철 봄인지라 제법 시원했다.
레인로버는 황금 기사들과 제법 떨어지자 입을 열었다.
“루체트 황국이 갖고 있는 마왕과 관련 정보는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1,300년이란 시간은 제법 길다 보니 역사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유실되거나 훼손됐기 때문이죠.”
마왕의 시대가 끝난 후로 1,300년간 인간들만으로 구성된 왕국과 제국은 무려 58개나 된다.
그동안 인간들끼리 싸워서 사라지거나 수인과 엘프들과 영역 다툼을 하고 거인들의 분노에 뭉개지기도 하며 드래곤에 의해 하루아침에 멸망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마왕과 관련된 자료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자료도 구전되어 내려온 것들을 취합해 적은 게 대부분이라 신뢰성이 많이 떨어졌다.
“마왕과 관련된 정확한 정보를 원하시면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를 찾는 게 더 나으실 수도 있어요.”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 기록 보관소에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기도 하고,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는 없는 자료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는 모든 정보가 다 있는 게 아닌가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 저장될 수 있는 자료엔 몇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그러고 보니 레인로버 황녀님께선 기록 보관소를 보신 적이 없으시겠군요.”
“네. 맞아요. 두루마리 형태의 성물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어요.”
“인간들 사이에선 두루마리 형태라고 알려져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네? 그럼 어떻게 생겼는데요?”
“기록 보관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원래 그 성물의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 설명을 해야겠군요.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는 원래 엘프 종족의 것입니다. 실제로 엘프들의 별자리에서 탄생했고요.”
레인로버는 고개를 갸웃했다.
“엘프들 거라고요? 그런데 왜 저희는 드워프의 성물이라고 알고 있는 거죠?”
“엘프들의 성물이지만 관리하고 자료를 채워 넣는 일을 드워프들이 했기 때문에 그렇게 알고 있는 겁니다.”
“왜 엘프들이 기록 보관소의 관리를 드워프들에게 맡긴 거죠? 자신들의 성물이 아닌가요?”
“그건 드워프들이 한때 엘프들의 노예였기 때문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드워프들은 수많은 종족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살아왔다고 들었다.
그것은 엘프 종족이라고 해서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드워프가 엘프들의 노예였다면 제가 모르고 있었을 리가 없었을 텐데요?”
“마왕의 시대 이전 시대, 그러니까 ‘잊혀진 시대’에 모종의 계약이 오간 뒤 노예에서 벗어났다고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드워프들은 기록 보관소에 자신들만의 기록을 저장하기 시작했죠.”
“그럼 지금은 기록 보관소에 드워프들이 적은 책들로 가득하겠군요.”
“아뇨. 드워프들은 종이로 된 책으로 자료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게 엘프들의 기록 보관소를 사용하는 규칙 중 하나였거든요.”
“왜 그런 규칙을 정한 거죠?”
“엘프들이 나무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엘프들은 나무가 죽으면 땅에 묻어서 장례를 치르고, 나무 새싹이 땅을 뚫고 자라나면 잔치를 열 정도로 사랑한다.
그런 엘프들이 나무를 죽이고 갈아 말린 종이로 된 자료를 자신들의 기록 보관소에 집어넣는 불경한 짓을 저지를 리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엘프들이 마법용 사투티메오를 증오한 이유가 사투티메오가 날아다니면 나뭇잎이 떨어지기 때문이라는 걸 읽은 적이 있어요.”
“맞습니다. 그래서 원래 엘프들의 기록 보관소에는 돌로 된 비석들이 가득 차 있었죠. 기록 보관소에 들어가면 수천 년 전에 엘프들이 적어놓은 비석들을 볼 수 있습니다.”
“오, 되게 신기하네요. 엘프들은 그 비석에 뭐를 적어놨나요?”
“나무들이 탄생하고 죽은 날짜를 적어놓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엄연히 말하자면 기록 보관소는 인간으로 치면 납골당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뭔가 엘프들답네요. 아, 잠시만 그러면 그 기록 보관소는 설마 비석으로 만들어진 건가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기록 보관소는 비석 형태로 만들어졌습니다. 크기는 손바닥만하고 모든 엘프들이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복제 기능도 있죠.”
“우와. 되게 신기하네요. 그럼 그 비석만 있다면 언제든지 출입이 가능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드워프들은 종이가 아니라 비석으로 기록을 남겼겠네요?”
“아뇨. 드워프들은 철판으로 기록을 남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엘프들이 멸종해서 철판이 아닌 종이를 집어넣어도 되지만, 지금도 철판으로 만든 기록물만 기록 보관소에 집어넣고 있습니다.”
“세상에…….”
“하지만, 예외가 하나 있습니다.”
“예외요? 설마 그건 종이로 된 건가요?”
“네. 정확히 말하자면 두루마리로 되어 있습니다. 바로 페레이라의 모험기죠.”
“왜 페레이라의 모험기는 종이로 남겨둔 거죠?”
“세계수가 불타 사라질 뻔한 것을 구해준 게 페레이라니까요. 그래서 예외로 페레이라가 직접 적은 모험기 하나만큼은 영구보존 마법이 걸린 특수한 용기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럼 검성 호스의 검술서는요? 티그리스 경이 검성 호스의 검술서를 기록 보관소에서 봤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것은 드워프들이 철판에 옮겨 적어 집어넣었습니다.”
“아하……. 옮겨 적느라 정말 힘들었겠네요. 그럼 그 종이 원본은 어디에 있죠?”
“없습니다.”
“네? 그게 없다고요?”
“그게 기록 보관소에 들어가는 모든 자료들의 규칙입니다. 오직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자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왜 그런 규칙이 있는 거죠?”
“기록 보관소는 엄밀히 말하자면 나무들의 무덤입니다. 우리도 무덤을 만들 때, 하나만 만들지 두 개를 만들진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무조건 원본 하나만 기록 보관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기록 보관소에 집어넣고 다시 집필하면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그러면 성물의 능력에 따라 기록 보관소 내부에 있는 기록이 소멸합니다. 실험해 본 결과 원본과 90% 이상 동일한 자료가 작성되면 삭제된다고 합니다.”
잡담을 하다 보니 어느새 서고 앞에 도착했다.
티그리스는 서고에 들어가기 전 잠시 멈춰 섰다.
“그래서 드워프들이 기록 보관소의 출입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겁니다. 기록 보관소의 능력 덕분에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비밀들을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거든요.”
“그 비밀들이 뭐길래 그렇죠?”
“그건 저도 모릅니다. 제게 허락된 것은 검술과 관련된 내용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서고에 찾아온 겁니다.”
이 서고에 적혀 있는 마왕과 관련된 내용들은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 있지 않은 정보들이다.
서고에 있는 마왕과 관련된 정보가 맞건 틀리건 간에 일단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 없는 내용이기에 봐두는 편이 나았다.
“그럼 들어가시죠.”
* * *
황궁의 서고에는 고서(古書)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루체트 황국의 재무 기록, 회의록과 같은 루체트 황국의 탄생부터 쭉 이어져 내려온 기초 기록물부터 시작해서 각 가문 간의 결투 및 전쟁 기록과 황금 기사들의 작전 기록, 교리 등 루체트 황국의 역사가 모두 이 안에 담겨 있다.
당연하겠지만 루체트 황실의 추한 역사와 루체트 황국의 흑색 작전 기록, 인퀴지터의 요원 목록 등 국가 최고 등급 기밀도 이 안에 보관되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심지어 티그리스조차도 황녀의 부마가 된다고 한들 국가 최고 등급 기밀인 0등급 기밀을 열람할 권한이 없다.
1등급 이상의 기밀을 열람할 경우 황제 폐하의 재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티그리스는 국가 기밀에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황녀는 다르다.
황녀에게 허가된 보안 등급은 0등급으로, 황녀가 원한다면 그 어떤 기밀문서도 열람할 수 있다.
이건 단순히 황녀가 황제의 자식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최근에 티그리스의 회귀록을 본 뒤, 토드 황제가 특별하게 해리 황태자와 함께 허가해 준 것이다.
레인로버 황녀와 티그리스는 서고를 관리하는 사서에게 향했다.
“위대하신 황금의 일족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리면 되겠습니까?”
“마왕과 관련된 모든 자료를 주시겠어요?”
사서는 흐트러짐 없이 답했다.
“마왕과 관련된 자료 중 기밀로 분류된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들도 가져오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2번 개인 열람실에 계시면 모두 가져오겠습니다.”
당연하겠지만 티그리스나 레인로버가 일일이 문서들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서고에 있는 모든 기록물들의 숫자는 오직 사서만이 알고 있는데,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회의록들 때문에 매일같이 갱신되고 있다.
이런 문서의 지옥 속에서 가장 빠르게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방법은 사서에게 부탁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티그리스와 레인로버가 개인 열람실에서 기다린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사서 세 명이 개인 열람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의 양손에는 각각 붉은색, 노란색, 초록색 상자가 들려 있었다.
사서들은 책상 위에 순서대로 상자를 올려놓은 뒤 입을 열었다.
“붉은색 상자는 0등급부터 2등급 기밀 자료가 담겨 있고 노란색은 3등급, 초록색은 일반 등급의 자료들이 담겨 있습니다.”
사서는 품속에서 두 개의 안경을 꺼내 들었다.
“이것은 속독을 도와주는 아티팩트입니다. 빠르게 훑어보실 때 필요하실 것 같아서 가져왔습니다.”
“고마워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벨을 눌러주십시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서들은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빠져나왔다.
레인로버는 일단 붉은색 상자부터 열었다.
그 안에는 책이 1권 그리고 수정구 2개가 들어 있었는데, 하나같이 제목이 심상치 않았다.
[골드 드래곤 아우로므의 봉인]
[파테 폰 로드엘림의 신비의 땅 마법적 분석 결과 보고서]
[멸지 생태 조사 결과 보고서(루체트력 1년, 101년, 201년, 301년)]
골드 드래곤의 봉인은 루체트 황국을 세운 개국 공신 파테가 직접 실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테가 신비의 땅에서 마왕을 봉인한 페레이라의 봉인 술식에 영감을 받아 봉인술을 만들었다고 알고 있는데, 그와 관련된 디테일한 내용이 [골드 드래곤 아우로므의 봉인]에 들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개는 수정구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사진이 많거나 음성 기록이 필요한 경우 수정구의 형태로 보존하고 있었다.
“으음…….”
레인로버는 일단 [골드 드래곤 아우로므의 봉인]을 펼쳤다.
서책의 두께는 제국 공통어 사전보다 두꺼웠는데, 그 안에 담겨 있는 내용은 하나같이 복잡한 술식으로 가득 찬 지라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웠다.
“술식의 전개 방식은 저로선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네요. 바스티얀 학교장님도 이 술식을 완전히 이해해 보시려고 했지만 못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마왕과 관련된 내용이니까 그것만 빠르게 훑어보죠. 오늘 읽어야 할 책이 산더미니까요.”
“네. 그러죠. 기록용 수정구 사용 방법은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속독용 아티팩트를 착용하고 빠르게 자료들을 넘겨 읽기 시작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은 반복해서 읽기보단 그냥 훌훌 넘겼고, 마왕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준비한 노트에 옮겨 적었다.
그렇게 1시간 정도 흘렀을까?
레인로버와 티그리스는 붉은색 상자에 들어 있는 모든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인로버는 자신이 정리한 노트를 찬찬히 훑은 후 입을 열었다.
“우선 저부터 말해볼게요. [골드 드래곤 아우로므의 봉인]에 적혀 있는 내용에 따르면 아우로므를 봉인하기 위해 페레이라가 사용한 시공간계 봉인 마법을 사용했다고 적혀 있어요. 제가 이해한 마법 술식을 보면 아우로므의 드래곤 하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바탕으로 봉인식이 계속 유지되고 있네요.”
“그건 아모리스 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용사 페레이라도 마왕의 봉인을 위해 마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를 원천으로 봉인술식을 사용했거든요.”
“이어서 설명하자면, 아우로므를 죽이지 않고 굳이 봉인한 이유는 마왕처럼 ‘불멸의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적혀 있어요.”
“불멸의 존재요?”
레인로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우로므는 드래곤들의 성물인 ‘경외의 비늘’이라는 갑주를 입고 있었다고 해요. 말이 갑주지 외부 공격을 모두 차단하는 권능 같다고 적혀 있어요. 그래서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고 해요.”
“그 성물의 형태는 어떻게 되죠?”
“아우로므의 이마에 황금색 보석이 박혀 있는데 그게 경외의 비늘이라고 하네요.”
티그리스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회귀 전, 키메라화된 아우로므의 이마에 황금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가?
“회귀 전에는 아우로므의 이마에 경외의 비늘이라는 성물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을 거예요. 경외의 비늘은 봉인된 지 150년 만에 소멸했다고 해요. 성물이 소멸하는 이유는 아시죠?”
“경외의 비늘을 상징하는 별자리가 완전히 잊혀졌다는 거군요.”
“티그리스 경이 만난 연인 자리 성좌의 말이 맞다면 그렇게 되는 거겠죠.”
레인로버는 노트를 내려놓았다.
“이게 [골드 드래곤 아우로므의 봉인]에 적혀 있는 마왕과 관련된 내용 전부예요. 마왕은 ‘불멸의 존재’다. 길게 설명했지만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게 끝이네요. 조금 허무하지 않나요?”
“아뇨. 조금 이상한 게 있습니다.”
“네? 뭐가요?”
“아모리스 님께서 신비의 땅에 마왕이 봉인되어 있다는 사실은 극소수만이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봉인술식 안에 인식을 비트는 주술이 들어 있어서 사람들이 신비의 땅에 마왕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했죠.”
“그러고 보니 분명 그랬었죠? 그럼 어떻게 파테 님께서 신비의 땅에 마왕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아셨을까요?”
티그리스는 자신의 노트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확실하지 않지만 그와 관련된 것으로 추측되는 내용이 신비의 땅 마법적 분석 결과 보고서에 적혀 있습니다. 신비의 땅에 진입할 때 수인족 대장로인 ‘미리내’와 함께 들어갔다고 적혀 있습니다. 미리내 대장로님께서 알려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 그래서 티그리스 경이 레비스를 신비의 땅에 봉인할 생각을 했듯이 파테 님도 신비의 땅에 걸려 있는 마법 술식을 이용해 아우로므를 봉인할 생각을 했겠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찾는 성좌와 관련된 내용은 없었습니다.”
그저 마왕은 불멸의 존재고, 불멸의 존재인 마왕을 봉인한 신비의 땅의 마법 술식을 이용해 아우로므를 봉인했다는 내용이 끝이었다.
레인로버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나온 정보를 정리해 보면 아우로므의 경외의 비늘과 마왕의 존재가 동일한 불멸의 권능을 갖고 있다는 의미예요. 경외의 비늘은 성물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치면 마왕은 도대체 무슨 원리로 그런 막대한 힘을 얻은 거죠?”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마왕이 사용했던 성물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죠. 거기에 해답이 있을지 모릅니다.”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상자를 뒤져 마왕과 성물에 대한 자료를 빠르게 찾았다.
세 시간 후.
“마왕은 마왕의 검과 마왕의 갑주 이외에 다른 성물을 사용한 기록이 단 하나도 없어요.”
“마왕과 관련된 별자리가 무려 35개나 됩니다. 검과 투구, 갑주, 옥좌 총 네 가지 종류로 구분되고요. 하지만 35개의 별자리와 관련된 성물이 발견되었다는 자료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별자리가 있다고 해서 성좌의 힘이 발현되는 것만은 아니라는 거군요.”
“그러고 보니 페레이라와 호스의 별자리도 있는데 관련 성물이 발견되었다는 자료도 없습니다.”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는 한 가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진짜 마왕의 별자리는 인간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검성 호스와 페레이라를 상징하는 별자리도 마찬가지고요.”
“누가 의도적으로 숨긴 거군요. 그리고 숨긴 사람, 아니, 종족이 누군지 알 것 같아요.”
“바로 드워프들이죠. 드워프의 기록 보관소에만 진짜 마왕을 상징하는 별자리에 대한 정보가 있을 겁니다. 어쩌면 페레이라와 호스의 성물도 발견할 수 있겠어요.”
티그리스는 기록 보관소를 열람하기 전에 누구를 먼저 찾아가야 할지 알 것 같았다.
“트리샤에게 별바라기 천체지도를 보여달라고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