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22화 (122/251)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122화

철혈 심장

철혈 심장이라는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것은 나달이었다.

“철혈 심장이라면 연금학의 4대 난제를 말씀하시는 거군요.”

레인로버는 고개를 갸웃했다.

“4대 난제요? 성물이 아니고요?”

“연금술사들이 말하는 ?혈 심장과 성물 철혈 심장은 같으면서도 다릅니다. 혹시 연금술사의 4대 난제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대답은 티그리스에게서 나왔다.

“인간 창조의 호문쿨루스, 부활의 엘릭서, 만물 창조의 현자의 돌, 마지막으로 인간 초월의 철혈 심장 총 네 가지로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잘 아시는군요. 네 난제는 하나같이 연금술사라면 한 번쯤은 해결하길 꿈꾸는 문제들입니다. 그중 현자의 돌을 제외한 세 가지 물질은 선대 연금술사들이 완성시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나달은 양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제 존재 자체가 그 산증인이죠. 전 호문쿨루스니까요.”

“그런데 왜 난제죠?”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만들긴 했지만 다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알려지지 않거나 명예욕 때문에 거짓말을 하거나 연구 성과를 부풀리는 경우도 있었죠.”

나달은 차로 목을 축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티그리스 경의 회귀록에 따르면 로타와 아르펨 쪽은 호문쿨루스를 양산할 수 있는 듯하니 호문쿨루스는 난제에서 삭제되어야겠지만……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하죠.”

나달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부활의 엘릭서 그리고 인간 초월의 철혈 심장은 만들어진 기록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연구 결과 기록을 보면 연금술사들이 꿈꾸는 이상과는 거리가 있었죠. 엘릭서는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 못하고, 철혈 심장은 인간의 신체를 초월시키지 못했으니까요.”

티그리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데 라칸은 포인트 상점에서 엘릭서를 구매했었습니다. 죽어가는 레인로버 황녀님이나 프리하르덴 백작님을 엘릭서로 구하기도 했죠.”

“알고 있습니다. 듣기론 10만 포인트당 하나를 구매할 수 있다던가요? 나중에 포인트에 여유가 있으면 엘릭서를 하나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엘릭서가 연금술사들이 꿈꾸는 이상과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을지라도 엘릭서에 가장 근접한 물질일 테니까요. 아니면 실제로 부활이 가능한 엘릭서일지도 모르죠.”

“제가 생각하기론 그 정도로 대단한 치료수는 아닐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엘릭서로 당신을 살렸을 테니까요.”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아니면 그 엘릭서가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치료약의 한계일 수도 있겠죠.”

나달은 차를 한 모금 마셔 목을 축인 뒤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엘릭서 이야기는 나중에 미루고 철혈 심장에 대해 다시 이야기하죠. 티그리스 경이 말씀하신 성물 철혈 심장은 연금술사에게 제법 유명한 성물입니다. 연금술사들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철혈 심장을 만들어냈고 그 레시피를 널리 알렸거든요. 그래서 그 연금술사의 업적을 기리고자 연금술사들이 별자리를 하나 만들어냈으니, 그 성좌의 이름이 바로 ‘레기우스 자리’입니다.”

“가장 이상에 가깝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혈 심장의 이상은 말 그대로 인간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는 데에 있습니다. 가장 와닿는 예를 들자면 불로불사 정도가 있겠군요.”

“그러니까 철혈 심장을 먹게 되면 불로불사를 얻게 된다는 뜻인가요?”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육체를 초월해 거인이나 드래곤도 뛰어넘는 이해 불가능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는 영약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불로불사는 덤이고요.”

티그리스는 한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거군요.”

“예. 정확합니다. 그런 영약이 이 세상에 존재할 리 없죠. 그래서 대부분의 연금술사들은 레기우스가 만들어낸 철혈 심장을 인간이 제조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이라고 보고 있죠. 물론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바스티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도 그 레기우스의 연구 자료를 보았네. 하지만 그 재료 목록을 보니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게 있더군.”

“예. 그렇습니다. 대표적으로 거인의 심장이 그렇죠. 이미 거인은 멸종했으니까요.”

그 외에도 현재 구할 수 없는 재료는 무려 두 가지나 있다.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와 닉시의 눈물이다.

세계수 요정은 세계수가 죽으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고 닉시는 인간들의 과도한 남획으로 씨가 말라 버린 몬스터 중 하나였다.

“철혈 심장을 만들어내더라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철혈 심장은 인간을 초월하는 것이 아닌 해당 인간의 육체의 한계를 딱 1시간 동안만 경험하게 해주는 영약이라는 거죠.”

티그리스는 알고 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물의 효과도 동일합니다. 애초에 그 성좌의 던전의 극복 과정 자체가 철혈 심장을 제조하는 것이니까요.”

“하지만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경험하고 온 레기우스의 말에 따르면 극심한 허탈감과 무력감에 거의 1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건 지금도 제가 비슷하게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티그리스는 무려 8성 기사, 즉 인간이 순수한 단련만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육체를 가졌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우 5성 기사의 육체를 갖고 있느니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오히려 철혈 심장을 드시는 게 티그리스 경에겐 훨씬 나을 수도 있겠군요. 회귀 전의 육체로 돌아가실 수 있을 테니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육체를 가질 수 있겠죠.”

“예.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전 1시간 한정이겠지만 7번째 고리, 아니, 8번째 고리까지 완성시킬 수 있을 겁니다.”

“지금 티그리스 경의 고리가 총 5개니까 1시간 안에 세 개의 고리를 추가로 만들어야 할 텐데 가능하시겠습니까?”

“한번 걸었던 길이니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물론 철혈 심장을 얻기 전까지 6번째 고리를 완성시켜 놔두는 편이 좋겠죠.”

“6번째 고리를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이번 겨울 방학 전까지 가능할 겁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철혈 심장을 구하러 가면 되겠군요. 성물의 위치는 알고 계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티그리스는 트리샤가 갖고 있는 별바라기 천체지도를 통해 던전의 위치를 찾아냈다.

그 위치는 노르베르드 변경백령 안에 있었다.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정리하자면 프리하르덴 백작님으로부터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받는 것이 일단 첫 번째 문제고, 두 번째 문제는 철혈 심장을 얻기 위한 성좌의 던전에 진입해야 한다는 거네요.”

바스티얀이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골드 드래곤의 아우로므의 봉인을 풀어야 합니다. 봉인술식 안에서 드래곤의 목을 칠 수 없으니까요.”

“아, 그렇겠네요. 혹시 가능하시겠습니까?”

“다행히 파테 님께서 봉인마법을 푸는 방법을 남겨놓으셨습니다. 그러나 한번 봉인을 풀면 다시 거는 것은 불가능할 겁니다.”

“어차피 실패해도 텔레포트로 신비의 땅으로 옮겨 버리면 될 일이니 봉인 해제는 그리 문제는 안 되겠네요.”

레인로버는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럼 해결해야 할 문제는 두 개가 끝이겠네요. 프리하르덴 백작님을 설득하는 것과 성좌의 던전을 극복하는 것이요. 성좌의 던전은 둘째 치고 프리하르덴 백작님께 성물을 받아야 하는데 그게 문제네요.”

“프리하르덴 백작님께 회귀록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프리하르덴 백작님은 믿을 수 있는 우군이긴 하죠. 진실을 알린다면 아마 빌려주실 가능성이 높아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프리하르덴 백작님은 빌려주시고 싶으시겠지만, 가헌의 기사들이 막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가헌의 기사들이 있었죠.”

레인로버는 골치가 아픈 듯 눈썹을 찌푸렸다.

프리하르덴의 여름은 단순히 프리하르덴 백작만의 성물이 아닌 가문의 물건이다.

가헌의 기사들은 가문 외부의 사람이 프리하르덴 가문의 성물을 만지는 것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그럼 성물을 받는 것뿐만이 아니라 티그리스 경이 프리하르덴류 검술을 사용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나요?”

“예. 그렇습니다. 외부 사람이 프리하르덴류 검술을 펼치는 것을 보는 순간 프리하르덴 백작님께 결투를 신청하도록 종용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티그리스 경은 한번 검술을 보면 따라 할 수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지 않나요? 프리하르덴 가문도 아마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 텐데요?”

“알고 있는 것과 외부에 표출하는 것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샤를로트의 검술을 봐주고 있긴 하지만 직접 사용하고 있진 않습니다.”

“이거 쉽게 해결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워지겠네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방법은 있습니다.”

“네? 방법이 있다고요?”

“슈베어트를 이용하면 됩니다.”

검술 가문의 모임 슈베어트.

황국 전역에 퍼져 있는 검술 가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검술을 뽐내거나, 검술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일종의 축제.

“슈베어트에선 각 가문이 보유하고 있는 검술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하고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노르베르드 변경백의 후계자인 제가 프리하르덴 가문의 검술에 대해 논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죠.”

“그럼 그 자리에선 프리하르덴류 검술을 펼쳐도 상관이 없다는 뜻이네요?”

“슈베어트의 숭고한 법도에 따르면 상대 가문의 허가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물론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빌리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긴 하겠습니다만, 프리하르덴 백작님이나 가헌의 기사들이나 한 번쯤은 프리하르덴류 검술을 통해 드래곤의 목을 자르는 장면을 보고 싶을 테죠.”

레인로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올해 슈베어트를 황궁에서 열면 되겠군요. 그런데 슈베어트는 검술 가문이 주최를 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루체트 가문은 검술 가문이 아니라 엄연히 말하자면 마법 가문이에요.”

“이번에 노르베르드 가문이 주최하면 됩니다. 그리고 장소는 꼭 주최 가문의 영지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규정도 없습니다. 물론 황제 폐하께서 허가를 해주셔야겠지만요.”

“가능할 거예요. 아니, 무조건 허락을 받을게요. 그건 맡겨두세요.”

바스티얀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럼 남은 문제는 성좌의 던전 하나군. 던전에 들어갈 조건이 어떻게 되나?”

“나달이 성좌의 던전 공략에 참여한다면 가능합니다. 5서클의 연금술사 1명 이상 참여하기만 하면 되는 조건입니다.”

나달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개인적으론 성좌의 던전 공략을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 성좌의 던전 공략은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릴 겁니다. 앞서 말씀하신 대로 그 성좌의 던전 극복 조건은 철혈 심장을 만드는 것이니까요.”

“시간이 대충 얼마나 걸릴 것 같나?”

“레기우스가 재료를 모으는 데만 10년이 걸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만드는 것 자체는 거의 보름이 걸렸다고 하죠.”

“성좌의 던전에 진입하기 전에 미리 재료를 모아두고 진입하면 안 되나?”

“가능은 합니다만 닉스의 눈물과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 그리고 거인의 심장은 던전에서 구해야 할 겁니다.”

레인로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닉스의 눈물과 세계수 요정의 날개 가루는 둘째 치고 거인의 심장을 구하려면 설마 거인을 죽여야 하는 건가요?”

“빠른 시일에 철혈 심장을 완성하려면 거인을 찾아내 죽여야 할 겁니다. 레기우스처럼 우연히 거인 부족에게서 추방당해 죽은 거인의 심장을 구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바스티얀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일단, 성좌의 던전 공략도 아직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생각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던전에 참여할 멤버들을 모으기도 하고 자료도 찾아야 하니까요.”

바스티얀의 말은 일리가 있었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일단 슈베어트와 프리하르덴의 여름 문제부터 해결하고 보는 게 좋겠네요. 이번 주말에 폐하를 알현해야겠어요.”

티그리스는 매달 노르베르드에 정기적으로 보내는 전문에 슈베어트 내용을 집어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 *

베오울프와 토드 황제의 답변은 긍정적이었다.

“우리 약혼식도 있었는데,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었네요.”

레인로버와 티그리스는 아직 약혼식을 치르지 않았다.

약혼식을 치르기 위해 노르베르드 변경백이 황궁에 와야 했으니 그리 부담되지 않았다.

약혼식이 끝나도 슈베어트 진행을 위해 이틀 정도 더 황도에 머무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노르베르드 변경백이 황도에 머무는 동안 황금 기사들과 철혈 마법사들을 파견해서 노르베르드 장벽을 지켜주시기로 했어요.”

“다행이군요.”

황금 기사들과 철혈 마법병단이 파견된다면 로타와 아르펨이 이상한 수작을 부리더라도 잠깐이나마 마음을 놓을 수 있다.

그리고 노르베르드의 겨울철은 갈리아 산맥의 몬스터들이 그나마 잠잠할 때라 노르베르드 변경백도 가벼운 마음으로 황도에 올 수 있었다.

“이번 겨울에 변경백을 뵈면 얼마 만에 만나시는 거죠?”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군요.”

“변경백이 다소 놀라시겠네요. 티그리스 경이 이렇게 빨리 성장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을 테니까요.”

티그리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이번 겨울이 되면 베오울프와 동일한 6성 기사가 된다.

회귀 전 티그리스가 6성 기사가 되었을 땐, 당시 몸져누워 있던 베오울프는 안심했다.

티그리스가 노르베르드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오울프가 다소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베오울프의 바람을 이루지 못했다.

베오울프가 죽고 티그리스가 가주가 되자마자 노르베르드 가문은 몰락의 길을 걸었고, 장벽은 로타와 아르펨에게 넘어갔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다를 것이다.’

설령 로타와 아르펨이 직접 노르베르드 땅을 공격하더라도 티그리스는 반드시 막아낼 것이다.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니까.

“아, 맞다. 모르고트 왕자가 티그리스 경에게 면담을 신청을 했다는 거 들으셨어요?”

“아뇨. 아직 못 들었습니다.”

모르고트.

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이름이었다.

회귀 전에는 무너져 가는 대륙을 위해 길리온 왕국을 등진 양심 있는 기사였고, 지금은 매튜 왕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황국에 망명한 왕자였다.

워낙 바쁘게 살아온지라 모르고트를 만날 여유가 없었다.

“무슨 이유로 저를 만나고 싶다고 합니까?”

“티그리스 경에게 검술 지도를 받고 싶다던데요?”

모르고트는 티그리스가 인정하는 몇 안 되는 천재 중 하나였으나, 오랫동안 매튜 왕자의 견제에 시달려 검술 훈련을 하지 못했던 비운의 천재였다.

그가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검술을 배우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번 만나보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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