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37화 (137/251)

#137 성좌의 던전(7)

그렌은 갑자기 날아온 단검을 쳐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아무리 방심을 했다고 하지만 6성 기사인 그렌의 감각을 비틀고 암기를 날릴 수 있는 자가 대단치 않을 리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 암살자는 자신에게 유리한 공격자로서의 이점을 모두 버리고 검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감인가? 아니면 무슨 목적이…… 아.’

그렌은 암살자가 호송 마차에 있는 샤를로트를 자꾸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을 곧바로 눈치챘다.

100% 동료가 있을 것이다.

트리샤에게 신경을 쓰는 사이 호송 마차에 있는 샤를로트를 구할 생각이다.

하지만 뻔하기에 치명적이다.

그렌은 현재 마누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고, 저 암살자의 동료의 수나 실력 등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마누는 트리샤의 살기에 몸을 덜덜 떨며 말했다.

“그…… 그렌 경! 잘 처리할 수 있지? 자네는 6성 기사이지 않나?”

그렌은 고개를 저었다.

“마누 님. 잘못 걸린 것 같습니다.”

그렌이 갖고 있는 검은 일반 아티팩트에 불과하다.

경량화 마법에 닉스를 사냥하기 위한 화염 마법 인챈트가 된 것 정도랄까?

하지만 딱 봐도 트리샤가 갖고 있는 검은 단순한 검처럼 보이지 않았다.

트리샤가 들고 있는 검에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티팩트는 아니다.

하지만 마법처럼 성화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피로 만들어진 검을 뽑아내는 것으로 보아 저것은 무조건 성물임이 분명했다.

장비부터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인데 맞부딪히면 무조건 진다.

그럼 샤를로트를 인질로 삼는 것은…… 그렌의 위치상 불가능하다.

노렸는지 모르겠지만 암살자와 샤를로트 사이의 거리가 마누와 샤를로트 사이의 거리보다 더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다른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리기엔 작전의 디테일도 부족하다.

그렌은 곧바로 판단했다.

“텔레포트 스크롤을 사용하시죠.”

“무…… 무슨 소린가! 그게 얼마짜린데! 그리고 내 병사들은!”

“병사들은 포기해야 합니다. 현시점에선 마누 님은 도망가시고 저는 따로 도주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저 여자 하나 때문에 100여 명의 기사들과 병사들을 모두 포기하고 도망쳐야 한다니.

마누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마누는 침을 튀기며 말했다.

“내가 그러라고 봉급을 주는 줄 알아? 저년을 당장 찢어 죽이라고!”

“제게 주어진 명령은 오직 주군을 지키는 것입니다. 병사들까지 지키는 것은 불가능……!”

트리샤는 그렌이 마누와 작전 회의를 끝내기 전에 범처럼 그렌에게 달려들었다.

그렌은 오러를 최대한 뽑아내 검에 검기를 두텁게 쌓아 올렸다.

콰아앙-!

성화의 검과 그렌의 검이 부딪히자 끔찍한 폭음과 함께 마누는 뒤로 나동그라졌다.

삐이이이이-

이명이 들리고 하늘이 핑핑 돌아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누는 간신히 고개를 들어 그렌과 트리샤를 쳐다봤다.

그렌과 트리샤의 검이 부딪칠 때마다 공기와 함께 오러가 터져 나갔다.

마법사인 마누의 눈으론 도저히 쫓아갈 수 없는 속도전에 입을 쩍 벌리고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

마누의 기사들이 마누에게 달려와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마누는 도저히 기사들이 뭐라고 하는지 알아듣질 못했다.

마누의 고막은 이미 터져서 귀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마누의 어깨를 흔들고 있던 기사의 옆구리로 넝쿨 하나가 파고들었다.

“컥!”

피를 머금은 넝쿨은 뒤이어 다른 기사들에게 뻗어 나가기 시작했고, 기사들은 겁에 질려 넝쿨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그러나 땅이 갑자기 솟구치거나 꺼지고 기사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벽을 만들어 버리는 탓에 기사들과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마누 님을 지켜라!”

그렌의 명령에 병사들과 기사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누를 중심으로 방어진을 짜기 시작했다.

방어진을 짜니 넝쿨에 어느 정도 대처할 수 있었다.

넝쿨의 강도는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았고, 발목을 노려오는 암습에만 주의하면 되었기 때문이었다.

끼이이이-

그때, 열리는 호송 마차의 철창.

병사들과 기사들은 반사적으로 호송 마차를 쳐다봤다.

“……!”

빈 포션병을 던지며 천천히 걸어오는 샤를로트.

샤를로트의 눈은 마치 악귀처럼 번들거렸고, 그녀의 오른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다.

“아이린, 리니아 고마워.”

“몸은 괜찮아요?”

“어. 괜찮아.”

뒤이어 레인로버도 숲에서 걸어 나왔다.

레인로버의 옆에는 넝쿨 여왕과 땅 두더지가 호위하듯 같이 나왔다.

레인로버는 샤를로트를 보며 말했다.

“싸울 수 있겠어요? 샤를로트?”

“당연하죠. 아니,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샤를로트의 눈은 분노로 차갑게 물들었다.

그러나 마누를 감싸고 있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방호는 굉장히 단단해 보였다.

게다가 마누는 4서클 마법사다.

레인로버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마법사.

지금이야 패닉 상태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하지만,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정신을 차리면 마법을 난사할 것이다.

샤를로트는 아직 저놈들이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때 바로 공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B포메이션으로.”

그러자 아이린은 흑룡아를 들고 제일 선두에 서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샤를로트와 리니아가 섰다.

레인로버는 곧바로 세 사람에게 미리 메모라이즈 해두었던 보조 마법을 사용했다.

‘매끄러운 바람’과 ‘이중 배리어’는 일단 기본으로 깔아두고 마지막으로 아이린에게 단독으로 ‘헤이스트’ 마법을 걸어주었다.

아이린은 몸이 굉장히 가벼워진 것을 느끼자 곧바로 돌진했다.

아이린은 평소보다 거의 3배 이상 빨라진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안정적이었다.

“막아!”

아이린의 대검이 무자비하게 횡으로 그어졌다.

콰아아앙!

아이린의 검이 병사들의 방패와 부딪히자 방패가 산산조각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병사들의 몸이 하늘 높이 날아갔다.

마치 오우거의 방망이를 맞은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심지어 제일 처음으로 부딪힌 병사는 허리가 반 토막이 나 피를 뿌리며 하늘 높이 날아갔다.

아이린은 첫 살인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침착했다.

언제고 겪게 될 일이라 이미 생각하고 있었고 그게 오늘일 뿐이었다.

아이린의 빈틈을 비집고 기사의 검이 날아들었다.

그러나 아이린은 방어하지도 않고 오히려 방패를 든 병사들을 향해 대검을 휘둘렀다.

기사는 아이린이 혈기에 취한 것이라 판단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갑자기 아이린과 기사 사이에 나타난 거대한 돌벽에 검로가 뒤틀렸다.

레인로버의 땅 두더지가 타이밍 좋게 땅을 뒤틀어 벽을 세워 버린 것이었다.

돌벽에 끼여 버린 검들.

덕분에 아이린은 기사들을 무시하고 제일 앞에 서 있던 병사들만 집요하게 공격해, 샤를로트와 아이린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만들 수 있었다.

샤를로트와 리니아가 아이린이 만들어낸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리니아는 방패와 검으로 샤를로트의 오른편에서 날아오는 검을 막아내는 데 집중하고 샤를로트는 정면을 돌파했다.

샤를로트가 잡혀 있었을 때 매질을 했던 놈들이 전부 눈앞에 있었다.

침을 뱉고 머리를 짓밟고 치욕적인 욕설을 내뱉은 개 같은 새끼들.

샤를로트는 그 굴욕을 피로 갚아줄 생각이었다.

샤를로트는 프리하르덴 가문의 검술 칼바람을 사용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처럼 싸늘하고도 날카로운 수십 개의 검로가 전방을 난도질했다.

마노를 지키던 기사들은 샤를로트의 검을 막아내려 했지만, 샤를로트의 분노가 담긴 검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다.

선혈이 낭자하고 신체가 조각나 하늘 높이 날아간다.

샤를로트는 첫 살인에 대한 망설임을 분노와 복수로 덧칠해 지워 버렸다.

샤를로트의 보조를 하는 리니아는 샤를로트의 잔혹한 손속에 침을 꿀꺽 삼켰다.

지금까지 봐온 샤를로트는 이렇게 잔인하지 않았다.

친언니같이 친근하고 웃음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갑자기 돌변해 피에 취한 악귀처럼 날뛰니 리니아는 샤를로트가 조금 낯설었다.

‘집중하자.’

리니아는 약속대로만 움직이면 된다.

B 포메이션의 핵심은 아이린이 외부에서 흔들고 샤를로트와 리니아가 적진을 한 번에 관통해 전열을 흩뜨리는 것에 있다.

그 비워진 틈을 레인로버가 땅 두더지와 넝쿨 여왕을 이용해 작은 조각으로 더 나눈 뒤, 충분히 조각나면 각개격파 하는 E포메이션으로 넘어가는 게 중요했다.

그러니 샤를로트가 이 진형을 완전히 부숴 나눠 버릴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중요했다.

기어코 샤를로트는 진형의 가장 중앙에 있는 마누와 마주쳤다.

마누는 겁에 질린 채 샤를로트를 쳐다봤다.

샤를로트는 피로 샤워라도 한 듯 온몸이 붉었다.

마누는 무슨 마법이라도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

마누는 목이 뜨뜻해지며 갑자기 하늘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건 착각이 아니었다.

샤를로트의 검이 마누가 눈치도 채지 못하는 순간에 목을 쳐버렸기 때문이었다.

마누의 목이 날아가자 기사들과 병사들은 단체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으아아아아아!”

병사들과 기사들은 걸음아 나 살려라라며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저들을 추적하려고 했으나, 발을 멈춰 섰다.

호수 위로 작은 물방울들이 총총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물방울들은 작은 요정으로 변하더니 도망치는 병사들과 기사들을 향해 분노의 포효를 터뜨렸다.

호수 물이 수십 개의 손으로 변해 도망치는 병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손들은 병사들의 몸 전체를 집어삼킨 뒤 끌어당겨 호수 가장 밑바닥으로 처박아 버렸다.

닉스는 물의 요정이 몬스터화된 것이기 때문에 선천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서 닉스는 호숫가에서 벌어지는 웬만한 싸움이나 전투에는 그리 크게 반응하지 않지만, 지금은 그 정도를 넘겼다.

“모두 피해요!”

레인로버의 말에 샤를로트와 아이린 그리고 리니아는 곧바로 호수와 최대한 떨어졌다.

물의 손이 세 사람을 노리고 왔지만 차분하게 쳐내며 뒤로 빠졌다.

다른 기사들이나 병사들이 빠져나오려고 할 때면, 땅 두더지와 넝쿨 여왕들이 발목을 잡아 닉스들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막았다.

그러다 보니 이제 호숫가에 남은 것은 트리샤와 그렌뿐이었다.

아무리 닉스라고 할지라도 트리샤와 그렌의 공방에 끼어들 수 없는 듯했다.

물의 손이 뻗어 나갈 때면 트리샤와 그렌의 검이 부딪히면서 나온 충격파에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었다.

리니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트리샤가 이길까요?”

“무조건 이길 거야.”

샤를로트가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그렌의 검의 상태 때문이었다.

그렌의 검은 블리더와 성화의 검과 부딪힐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내구도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얼마 가지 않으면 그렌의 검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 것이다.

그렌과 트리샤의 검술 실력의 고하를 굳이 나누자면, 그렌이 조금 더 위다.

그렌은 트리샤의 자유롭고 공격적인 검술 패턴을 완벽하게 방어하고 있었고, 중간중간에 반격까지 찔러 넣고 있었다.

그러나 트리샤는 아무리 두들겨도 그렌의 방어를 벗겨낼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트리샤가 이렇게 밀어붙일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활활이와 콸콸이 덕분이었다.

피를 잔뜩 머금은 날카로운 블리더가 그렌의 검기를 마구잡이로 헤집어 검의 피로도를 높였고, 성화의 검에서 흘러나온 황금빛 성화가 검을 타고 그렌의 양팔에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주고 있었다.

그렌의 양팔은 성화의 불꽃에 화상을 입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고, 검은 잔뜩 금이 가 있었다.

과거의 트리샤라면 쾌재를 부르며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마냥 좋지가 않았다.

뭔가 알 수 없는 불편함이 트리샤의 마음을 지렁이처럼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내가 왜 이러지?’

목적 달성만을 추구하는 모험가가 아닌 정의와 과정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사가 되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티그리스와 함께 몇 달을 보내면서 달라진 것일까?

트리샤는 이기고 있어도 이기는 기분이 아니었다.

뭔가 제대로 붙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쯤…….

쨍그랑!

그렌의 검이 결국 연속된 충격을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다.

그렌의 양팔은 성화의 불꽃에 집어 삼켜져 불타 완전히 익어버렸다.

엄청나게 고통스러울 텐데도 불구하고 눈썹 하나 찌푸리지 않았다.

그렌은 검이 부서지자마자 추하게 덤비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그렌은 트리샤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렌의 눈빛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트리샤는 그렌에 대해 뭔가 이해할 것만도 같았다.

“잘못된 주군을 섬겼군요…….”

“내 주군을 모욕하지 마라. 이름 모를 기사.”

그렌은 트리샤를 일개 검객이 아닌 기사로 보고 있었다.

갑주를 입은 것도 아니고 기사다운 검술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렌은 트리샤를 기사로 보고 있었다.

트리샤는 블리더를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양손으로 성화의 검을 잡았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그렌은 샤를로트를 쳐다봤다.

“고의가 아니었다.”

자신의 유품을 가족에게 전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저주의 말을 내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그렌의 모습에 샤를로트는 복잡미묘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마누의 명령으로 그렌이 샤를로트를 사로잡긴 했지만, 그렌은 다른 기사들이나 병사들과 달리 자신을 모욕하지 않았다.

그저 그렌은 마누의 명령을 따르는 기사일 뿐이었다.

샤를로트는 그렌과 눈을 한동안 마주쳤다.

주군의 저열한 탐욕을 충족시켜 주기 위해 무력을 사용한 것은 만민에게 지탄받아야 할 반인륜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기사는 주군에게 명령을 받으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든 정의롭지 않은 일이든지 간에.

샤를로트는 기사 가문에서 나고 자랐기에 기사 그렌으로서의 결정과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샤를로트는 고개를 끄덕인 뒤 고개를 돌렸다.

그렌은 샤를로트가 용서를 해주자 그제야 만족하고 고개를 떨군 뒤 눈을 감았다.

트리샤는 그렌의 목에 검을 가져다 댔다.

“티그리스 디 노르베르드의 기사 트리샤다.”

“마누 드 하폰스의 기사 그렌이다.”

서걱!

트리샤는 그렌의 목을 성화의 검으로 깔끔하게 갈랐다.

그렇게 그렌은 죽음을 맞이했다.

-스스스스스스!

그렌은 죽었지만 아직 남은 것이 있었다.

바로 분노한 닉스들이었다.

“어……!”

리니아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엔 온통 물이 가득했다.

닉스들이 한동안 조용하다 싶었더니만, 물을 통째로 들어 올려 하늘을 뒤덮은 것이다.

마치 깨끗한 호수 밑바닥에서 태양을 보는 듯한 느낌이라 아름답기도 했고, 저 막대한 양의 물이 머리를 덮치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게 분명했기에 기묘한 두려움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닉스들은 하늘을 메운 물을 곧바로 떨어뜨렸다.

그때, 레인로버가 튀어나왔다.

“잠까아아안!”

레인로버의 고함에 당장에라도 쏟아질 것 같은 물이 우뚝 멈췄다.

레인로버의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닉스들은 화가 잔뜩 난 것처럼 보였지만, 레인로버에게 모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황녀님!”

“괜찮아요. 제가 설득해 볼게요. 그래서 제가 여기 팀에 있는 거잖아요.”

레인로버는 유일한 소환술사다.

그리고 소환술사에게 있어서 제일 중요한 점은 바로 몬스터와의 ‘감응 능력’이다.

감응 능력이란 레인로버의 감정과 생각을 몬스터에게 전할 수 있고, 몬스터의 감정을 소환술사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 몬스터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소환계 마법들은 소환술사의 감응 능력이 없다면 사용이 거의 불가능한 능력이다.

레인로버는 닉스와의 아무런 접점도 없고 길들이지도 않았지만 닉스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었고 반대로 닉스에게 레인로버의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다.

“미안해! 모두 잠을 자고 있었는데 깨워서.”

닉스들은 말없이 레인로버를 쏘아봤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 자체가 조금 누그러든 것 같았다.

말 한마디로 이렇게 변할 줄은 트리샤도 전혀 몰랐기에 멍하니 레인로버를 쳐다봤다.

“당연히 맨입으로 미안하다고 하는 건 아니지. 이거면 화가 좀 풀릴까……?”

레인로버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파이어를 꺼내 들었다.

바다를 닮은 듯한 짙은 푸른색의 사파이어가 햇빛에 반짝이자 닉스들의 눈이 귀엽게 변했다.

호수 물들이 쏙 들어가고 닉스들은 하나둘씩 조심스럽게 레인로버의 앞에 몰려들었다.

마치 우연히 만난 길고양이의 경계심을 줄이기 위해 육포를 흔드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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