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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40화 (140/251)

#140 성좌의 던전(10)

뮤네는 자신의 오른쪽 허벅다리를 쳐다봤다.

허벅다리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와 무릎까지 내려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엘프들이 놀라 티그리스에게 살기를 쏘아 보냈다.

뮤네는 지금 허벅다리를 스치는 날카로운 통증보다 티그리스가 보여준 신묘한 검술에 정신적 충격이 컸다.

“어떻게…….”

뮤네는 티그리스가 어떤 방법으로 뮤네의 검술을 파훼한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엘프들의 검술은 기본적으로 마검술을 기본 베이스로 깔고 들어간다.

엘프들은 세계수의 축복을 받아 천성적으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 보니 검술에 마법이 섞이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들의 서클 마법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엘프들은 인간들이 사용하는 서클 마법이 아닌 세계수가 각 엘프들에게 친구로 붙여준 정령을 이용한 정령 마법을 사용하는데, 뮤네는 자신의 얼음 정령의 마법을 사용해 검기에 얼음 속성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티그리스는 그 얼음 속성이 담긴 검기를 완벽하게 상쇄시켜 버렸다.

“가벼운 마음으로 견제를 날릴 거면 아예 시도조차 하지 마라.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네 다리는 방금 잘렸을 거다.”

티그리스의 덤덤한 말투 속에 담긴 뾰족한 살기에 뮤네는 순간 오싹했다.

티그리스는 좀 전의 뮤네처럼 검을 손가락으로 굴리더니 똑같은 돌진 자세를 취했다.

“진심이 나오기 힘든 모양이군. 도와주지.”

티그리스는 발에 체중을 실었다.

그리고 돌진했다.

뮤네를 포함한 모든 엘프가 깜짝 놀라 입을 떡 벌렸다.

티그리스가 사용한 보법은 좀 전에 뮤네가 보여준 종달새 보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종달새 보법의 핵심은 불규칙한 패턴이나 돌진력이 아니다.

빠르게 앞으로 치고 나감에도 불구하고 나무나 풀을 다치지 않게 하는, 집착에도 가까운 엘프들의 식물 사랑이 만들어낸 기이한 보법이다.

풀이 햇빛을 보고 누워 있는 각도와 잎사귀에 묻어 있는 싱그러운 이슬과 나무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바람의 결에 따라 돌진 패턴이 무작위로 바뀐다.

이 종달새 보법은 겉보기엔 불규칙해 보이지만 주변 환경을 거스르지 않고 오히려 따라감으로써 적은 힘으로도 폭발적인 스피드를 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물론 이런 일이 가능한 이유는 엘프들이 주변 식물들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엘프의 체중을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는 풀과 땅이 어디에 있는지 세계수가 알려주기 때문에 종달새 보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순수한 감각만으로 따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자신의 민감한 감지 능력과 오러 운용력만으로 엘프들의 종달새 보법을 그대로 따라 했다.

티그리스는 뮤네에게 검을 내질렀다.

쩌엉-!

가공할 돌진력에 완벽한 검로가 합쳐지니 뻔히 보이는 공격임에도 불구하고 막아내기가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뮤네는 제자리에서 티그리스의 공격을 흘려내듯 막아냈다.

엘프들의 육체는 기본적으로 인간보다 튼튼하지 않다.

대신 주변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설정되어 있기 때문에 검술은 그리 발달하지 않고 정령 술사나 마법사 아니면 궁수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뮤네는 다르다.

뮤네는 천성적으로 다른 엘프들과 다르게 굉장히 근골이 튼튼하게 태어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육체의 민감도부터 시작해서 정령 친화도까지 모든 면모에서 가장 뛰어났다.

한마디로 뮤네는 타고난 천재였고, 현존하는 지성체 중에 자신보다 뛰어난 검사는 없을 것이라 확신했었다.

‘괴물……!’

하지만 천외천이라는 말처럼 뮤네는 티그리스의 놀라운 천재성에 혀를 내둘렀다.

웬만한 엘프들은 사용도 하지 못하는 종달새 보법을 단 한 번 보고서 따라 하는 것도 모자라 뮤네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정석적인 공격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훙-! 훙-!

뮤네 정도 되는 고수라면 티그리스가 무엇을 노리는지 알고 있다.

‘날 시험하고 있어.’

뮤네가 어떤 방법으로 이 압박에서 벗어나고 반격을 해올 것인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티그리스는 앞서 말한 대로 뮤네가 알고 있는 모든 검술을 보고 싶은 것이었다.

뮤네는 이를 악물었다.

뭔가 이 괴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분했다.

지금까지 자신 이외의 천재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녀장이자 밀림을 지키는 수호자로서 인간과 거인들의 습격을 방어하는,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최고의 전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인간에게 밀려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자존심이 상했다.

뮤네는 자신의 바람의 정령을 불러내 검기에 공기의 힘을 담았다.

콰아아앙-!

압축된 공기가 터지면서 티그리스를 강하게 밀어낸다.

티그리스는 순리에 거스르지 않은 채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방어를 준비했다.

어디에서 공격이 들어올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뮤네는 허공에 검을 내질렀다.

검기를 날리는 건가 싶었지만 공격은 뒤에서 날아왔다.

날카로운 바람이 종베기로 날아오고, 티그리스는 뒤로 돌아 칼처럼 날카로운 바람을 똑같은 종베기로 완벽하게 흩어냈다.

티그리스는 뮤네를 보며 말했다.

“이게 마검사의 방식인가?”

“……엘프의 방식이다.”

뮤네는 다시 검을 내질렀다.

이번엔 머리 위에서 바람이 내리꽂혔다.

티그리스는 제자리에서 검을 휘저었다.

그러자 바람이 흩어지는 게 아니라 정확하게 튕겨 나가 뮤네에게 날아갔다.

“큭!”

뮤네는 검을 들어 티그리스가 튕겨낸 자신의 공격을 흩어냈다.

티그리스는 뮤네의 기묘한 검술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검술의 원리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뮤네가 검을 내지르면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검기가 담긴 날카로운 바람이 날아온다는 것이었다.

그냥 일반적인 바람으로 만들어진 공격이었다면 단순한 정령 마법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바람에 검기가 실려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이했다.

티그리스가 지금까지 봐왔던 마검술은 라칸의 것밖에 없었다.

그것도 라칸은 마법과 검술의 조화를 해내지 못해 마법 따로 검술 따로 사용했다.

그나마 엘프들의 마검술인 ‘청염(靑炎)’을 사용하긴 했지만, 그것 외에 마법과 검의 조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진 검술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인간들 중에 네가 최강이라고 했을 땐 네가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아예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군.”

뮤네는 티그리스를 인정하기로 했다.

티그리스는 규격 외의 천재였다.

뮤네의 검기를 단순히 쳐내는 게 아니라 튕겨내 뮤네를 향해 보낼 수 있을 정도라면 세기의 천재…… 아니,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천재임이 분명했다.

“아마 지금이 네가 가장 약한 시기겠지. 인간은 빨리 죽는다곤 하지만 넌 죽을 날보단 살아갈 날이 더 많을 테니까.”

뮤네의 눈에서 진득한 살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넌 우리 어머니에게 너무 위협적인 존재다.”

뮤네의 검이 소리 없이 휘둘러졌다.

티그리스는 발목을 베어 들어오는 날카로운 기운에 방어를 하지 않고 점프를 했다.

그러자 풀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날카로운 무언가가 티그리스의 신발 밑창을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바람인가 싶었지만 바람은 아니다.

뭔가 기묘한 생명체였다.

티그리스는 떨어진 낙엽을 달고 다니는 한 줄기의 바람을 느꼈다.

그 바람에선 정령들에게나 느껴지는 깨끗하고 순수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졌다.

바람의 정령이었다.

정령은 뮤네의 신호에 맞춰 티그리스를 공격해 들어왔다.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공격.

오로지 마나 감지로만 알아챌 수 있는 공격이었기에 정령의 공격은 굉장히 까다로웠다.

뮤네는 이어서 티그리스에게 종달새 걸음으로 빠르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검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시리도록 차가운 얼음의 기운.

티그리스는 정령의 공격을 받아내곤 연속으로 뮤네의 공격을 받아냈다.

쩡!

검이 부딪히며 미쉬타에서 흘러나온 얼음의 기운이 형상화되며 날카로운 고드름으로 변했다.

일반적인 고드름이 아닌 날카롭고 단단한 오러로 벼려진 오러 그 자체였다.

고드름은 티그리스의 오른 어깨를 정확하게 노리고 들어왔다.

연속 공격이 들어올 줄은 티그리스도 예상치 못했기에 티그리스는 몸을 뒤틀어 피해냈다.

동시에 뮤네의 다리를 걸었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다리를 아주 손쉽게 들어 피해낸 뒤, 다시 검을 내질렀다.

이번에도 검에서 고드름이 튀어나올까 생각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땅을 뚫고 튀어나오는 거대한 고드름.

티그리스는 다리에 강하게 오러를 담아 고드름을 발로 차버렸고, 날카로운 고드름은 절반으로 뚝 갈라져 뮤네의 허벅지 안쪽을 베고 들어갔다.

베이자마자 주변 피부와 피가 얼어붙었다.

그러나 뮤네는 아랑곳하지 않고 연속으로 공격을 집어넣었다.

티그리스는 사각에서 날아오는 정령의 공격과 뮤네의 기이한 냉기 공격에 방어 일변도로 나섰다.

동시에 파악하기 시작했다.

바람의 정령을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뮤네의 보이지 않는 바람 검술을 사용할 순 없다.

냉기를 이용한 검술도 엘프의 몸에 최적화된 마검술이었기에 도저히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비슷하게는 가능하다.’

티그리스의 검에 서리가 맺혔다.

뮤네의 검과 티그리스의 검이 부딪히자 검에서 피어오른 얼음 결정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날아가자 엘프들은 날아온 파편들에 나무나 풀들이 다치지 않게 배리어를 펼쳐 막아냈다.

티그리스와 뮤네는 서로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뮤네는 분명히 티그리스의 오러 운용방식을 봤다.

저것은 마법이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검술이라고도 할 수 없는 기이한 방식의 운용이었다.

검기에 속성을 담는 것은 인간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궤가 다르다.

“……어떻게 한 거지?”

“무엇을 말이지?”

“어떻게 내 검술을 따라 한 것이냔 말이다!”

“이건 네 검술이 아니다.”

티그리스는 다시 뮤네에게 달려들었다.

뮤네는 검을 들어 막아냈다.

또다시 얼음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티그리스의 옷도 찢겨 나가고 뮤네의 얇은 성복도 찢겨 나갔다.

“네 검술에 영감을 받아 새롭게 만들어낸 검술이지.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하지만 곧 완성되겠지.”

티그리스는 계속 뮤네에게 공격을 퍼부으며 검술을 점점 완성시켜 나갔다.

고드름은 점점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졌으며, 이젠 검에서만 고드름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땅을 뚫고 나타나거나 뮤네의 등 뒤에서 나타나기도 했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정신 나간 공격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고드름은 고드름끼리 부딪히고 검은 검끼리 부딪치며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나뒹굴었다.

뮤네의 이마엔 피와 땀이 섞인 액체가 한 줄기 흘렀고, 티그리스의 옷도 넝마가 되기 시작했다.

검이 부딪힐수록 티그리스는 더더욱 발전하고 있다.

이 정신 나간 천재성에 뮤네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젠 티그리스의 고드름이 뮤네의 고드름과 부딪혀도 완전히 부서지는 게 아니라 점점 꿰뚫기 시작한다.

고드름의 형태도 순수한 수분의 형태가 아닌 오러가 변질된 형태로 만들어지며 부서지면 기화된다.

저 고드름 덩어리 하나하나가 검기가 아닌 검강과 비슷해진 강도로 변하기 시작하며 뮤네는 점점 구석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뮤네는 이를 악물고 세계수의 마나를 이용해 고드름의 크기를 키우고 강하게 만들어 버텨내지만, 그것도 한계가 왔다.

뮤네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고드름.

뮤네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이것은 막지 못한다.

뮤네는 눈을 감았다.

“……?”

목을 뚫고 들어오는 차가운 얼음의 고통을 기다렸으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뮤네는 눈을 떴다.

고드름은 눈앞에서 멈춰 섰다.

고드름 끝의 날카로움은 잔뜩 뭉개져서 흘러내리고 있었고, 물과 오러로 만들어진 액체는 결국 가을철의 가벼운 햇살과 함께 기화되어 사라졌다.

티그리스는 한쪽 손을 가슴에 올린 뒤 뮤네에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오늘 많이 배웠습니다.”

티그리스의 감사는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것이었다.

만약 뮤네를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완벽한 검술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난이도는 굉장히 어렵겠지만 샤를로트라면 충분히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뮤네도 갑작스럽게 존댓말을 하는 티그리스에게 순간 벙쪘지만, 그가 굉장히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뮤네도 엘프의 방식대로 예의를 갖춰 대련 상대에게 감사를 표했다.

뮤네는 심장께에 양손을 올려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머니께서 즐거우셨을 겁니다.”

뮤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 * *

엘프들은 고드름들로 난장판이 되어버린 공터를 정리했고, 뮤네는 티그리스를 데리고 어디론가 향했다.

“다리는 괜찮나?”

“비상용 약이 있어서 금방 나았다.”

뮤네의 팔다리는 고드름에 찔리거나 베인 자국이 가득했지만, 근육이나 뼈가 다치지 않도록 티그리스가 알아서 조절했기 때문에 크게 다치지 않았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몸을 보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신기하게도 하나도 다치지 않았군? 왜지?”

반면 티그리스의 옷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지만,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티그리스는 손가락을 들어 오러를 뽑아냈다.

“고드름 파편이 날아올 때 순간적으로 오러를 뽑아내 막아냈다. 일종의 배리어라고 생각하면 편하겠군.”

“……그런 것도 가능한가?”

“소드 마스터가 되면 온몸을 검강으로 뒤덮는 일도 가능하다.”

뮤네는 어처구니가 없는지 헛웃음을 쳤다.

“그런 일이 가능하다니 굉장히 신기하군.”

뮤네는 산들바람을 느끼며 말했다.

“네 덕분에 우리 엘프들이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아왔는지 알 것 같았다. 인간들은 치열하게 살아오며 기술을 발전시켜 왔는데 엘프들은 그러지 못했어.”

그게 아니라 자신이 독특한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티그리스는 말을 아꼈다.

“나무들을 가꾸는 일도 중요하긴 하지만 엘프들의 전력도 빠르게 성장시키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더군.”

뮤네는 뭔가 내려놓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질 만한 사람에게 졌다는 느낌이랄까?

티그리스 정도의 천재라면 져도 이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네게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한다. 엘프들의 검술 사범이 되어줄 생각이 없나?”

“……검술 사범?”

“그래. 넌 인간이지만 대단한 천재라고 생각이 된다. 엘프들과 인간의 육체 구조가 다르다곤 하지만 어느 정도 가르침을 줄 수 있겠지. 어쩌면 인간과 엘프들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검술을 창안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고.”

뮤네는 발을 멈춰 서고 티그리스의 눈을 보며 말했다.

“네게 엘프의 삶을 강요하지 않겠다. 하지만 20년…… 아니, 30년만 엘프들을 위해 일을 해다오. 아예 정착하면 더 좋고.”

티그리스는 뮤네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뮤네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거짓말이군.”

“…….”

“내가 검술 사범이 되길 바라는 게 아니지 않나? 그냥 내가 인간들의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두려운 거지.”

티그리스의 말에 뮤네는 피식 웃었다.

“이거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은 몰랐군.”

뮤네는 티그리스의 말대로 말레 왕국으로 돌아가는 게 살짝 두려웠다.

티그리스의 성격상 엘프들을 공격해 올 것이라 생각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뮤네는 티그리스가 엘프들의 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만약 거절하면 어떻게 할 셈이지?”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강했어. 널 놓아주면 무슨 후한이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날 믿어줄 수 없는 건가?”

“인간들의 약속은 너무 허무하게도 무너지지. 당시에는 반드시 지키겠노라고 맹세까지 했지만 그 누구도 지키지 못했어. 페레이라를 제외하곤 말이지.”

뮤네의 차가운 목소리에 티그리스는 발을 멈춰 섰다.

주변에는 엘프들로 가득했다.

일반적인 엘프들이 아닌 모두 실력이 출중한 전사들이었다.

“날 죽여서라도 막겠다는 건가?”

“네가 떠나지만 않으면 될 일이다.”

뮤네는 검 자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난 네가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네 검에는 살기가 담겼지만, 배려와 존중도 동시에 담겼지. 너와 같은 인간을 내 손으로 베는 일은 결코 하고 싶지 않다.”

뮤네의 목석같은 표정에서 처음으로 진짜 감정이 드러났다.

안타까움이었다.

“그러니 부탁하마. 가지 마라.”

티그리스는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어차피 성좌의 던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2주 정도다.

떠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한 뒤 엘프들과 함께 살아도 좋다.

뮤네와 다른 엘프들과 검을 부딪히며 엘프들의 검술을 배운 뒤, 현실로 돌아오면 될 일이었다.

“거절하마.”

그러나 티그리스는 거절했다.

왜인지는 정확한 이유를 말해줄 수 없었다.

그저 감정이 시키는 행동이었으니까.

그리고 이게 바로 티그리스였으니까.

“……왠지 그럴 것 같았다.”

뮤네는 티그리스를 많이 알지 못하지만 이런 대답을 할 것이라 예감했다.

뮤네는 검을 뽑아 들었다.

주변을 둘러싼 엘프들도 정령들을 소환하고 마법을 빚어내기 시작했다.

뮤네는 검을 부서져라 쥐었다.

“미안하다.”

뮤네가 티그리스를 향해 검을 내지르려 할 때, 땅이 급작스럽게 진동했다.

우우우우우웅-!

근원지는 세계수였다.

세계수는 태양처럼 찬란한 황금빛을 토해내더니 따뜻한 어머니와 같은 목소리로 엘프들과 티그리스에게 말을 걸었다.

[인도하라.]

세계수의 전언에 뮤네를 포함한 엘프들은 너무 놀라 모두 무기를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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