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충돌(1)
티그리스가 영약을 찾았을 때 의외로 뮤네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섰다.
뮤네가 적극적으로 나선 이유는 티그리스 때문이 아니라, 티그리스가 사는 시대에 태어날 어린 세계수와 엘프들을 위해서였다.
어린 세계수 앞에서 열심히 물을 주고 있는 어린 엘프.
뮤네를 포함한 엘프들의 입장에서 그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 하면, 바람 부는 절벽 위의 촛불과도 같아 아찔해 보일 것이다.
그래서 뮤네는 어른 엘프도 없이 자라날 어린 엘프들이 빠르고 올바르게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영약들과 무기를 챙겨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것도 가져가라. 아, 이것도.”
뮤네는 영약과 무기뿐만이 아니라 엘프들을 돌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재도구를 포함해 옷과 신발까지 챙겨주었고, 세계수를 성장시킬 나무 영양제들까지 티그리스에게 건넸다.
“이 옷은 이렇게 끈을 둘러 입히는 거다. 그리고 신발은 총 다섯 종류다. 세계수님 앞에 나아갈 때 신는 ‘예화(禮靴)’와 평소에 신고 다니는 샌들…….”
“세계수님께서 새싹을 틔우시면 제일 먼저 이 영양제부터 드려라. 어느 정도 자라서 겉껍질이 단단해지는 시기가 오면 이것을…….”
티그리스는 뮤네가 건네주는 어마어마한 양의 물건들에 기가 질렸다.
“이 많은 것들을 다 가져가진 못한다.”
“성좌의 던전을 빠져나올 때 꼭 아공간 주머니에 있는 물건만 가져갈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가방을 만들어 메어줄 테니 잔말 말고 가져가라.”
명절이나 연말에 오랜만에 본가로 내려갔을 때, 느낄 수 있는 어머니의 정을 여기서 느끼게 될 줄은 몰랐기에 티그리스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하지만 뮤네를 포함한 엘프들의 마음을 쉽사리 거절할 수 없어 결국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들도 성좌의 던전을 통과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져가라.”
뮤네는 티그리스에게 작은 보석들을 건넸다.
루비, 사파이어, 에메랄드, 수정, 토파즈…….
이 보석들은 단순한 보석들이 아니었다.
이 보석들 안에는 각양각색의 정령들이 잠들어 있었다.
티그리스는 보석들을 하나하나 살폈다.
불의 정령이 담겨 있는 루비에는 열기가 느껴졌고 물의 정령이 담겨 있는 사파이어에는 청량감이 느껴졌다.
“성좌의 던전 내에 있는 생명체는 성좌의 던전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이 보석 안에 잠들어 있는 정령들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정령들이라서 정령이라기보단 보석에 가까운 상태다. 가져갈 수 있으면 가져가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지.”
어차피 세계수가 태어나면 정령들도 같이 만들어질 테니 그리 신경 쓸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엘프들이 태어나자마자 평생 함께할 정령이 담긴 보석을 건네주는 게 오랜 전통이다 보니 그 전통을 깨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이 정령들은 어떻게 깨우지?”
“세계수님이 어느 정도 성장하시고 첫 엘프를 만들어내시기 시작하실 때쯤, 이 보석들을 세계수 님 주변에 정갈하게 쌓아놓아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태어날 것이다. 네가 정령을 다룰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인들이나 교감 능력이 높은 소환술사에게 정령을 맡기면 도움이 될 거다.”
소환술사도 다룰 수 있다는 말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당연히 레인로버였다.
‘황녀님께 선물로 주면 되겠군.’
“물론 엘프들에게 정령을 맡기는 게 제일 좋으니까 웬만하면 갓 태어난 엘프들에게 정령들을 먼저 건네줘라.”
“그러도록 하지.”
이후 뮤네는 쉬지 않고 티그리스를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엘프들의 생활상과 문화를 눈에 담게 했다.
세계수의 앞에서 무녀복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나, 죽은 엘프 영웅들의 제사를 지내는 모습, 세계수가 엘프들을 만드는 모습까지 모두 보여주었다.
“……정말로 엘프는 세계수에서 열리는군.”
엘프가 괜히 세계수 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엘프는 열매가 맺히듯이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보통 세계수에 처음 열매가 맺히면 인간처럼 10달 정도 있다가 툭! 하고 떨어진다.
그 열매가 바닥에 추락해 깨지면 어린 엘프가 튀어나왔다.
‘사진기가 있었으면 더 좋았겠군.’
티그리스의 기억력이 나쁜 편은 아니지만,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순 없다.
그래서 티그리스는 엘프들의 입장에선 굉장히 불경하게도 나무로 만들어진 노트에 펜을 꺼내 대충 조감도를 그리거나 부연 설명을 적었다.
뮤네는 티그리스가 종이를 펜과 잉크로 난도질하는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네…… 네놈 지금 뭐 하는……!”
“그럼 노트 대신 사용할 다른 기록 아티팩트가 있나?”
“……젠장!”
뮤네는 부들부들 떨면서도 티그리스가 노트에 계속 적는 모습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3일이란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티그리스는 자신이 멘……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붙여진 짐들을 멍하니 쳐다봤다.
티그리스의 어깨와 양팔 그리고 허벅지까지 엘프들이 건네준 물건들로 가득했다.
뮤네는 티그리스의 검에 세계수의 씨앗을 걸어주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 더 필요할 것 같은데.”
“이제 그만.”
티그리스의 모습은 엉망진창이었다.
체면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티그리스로선 충분히 굴욕적이었기에 여기서 뭔가를 더 가져가라고 한다면 폭발할지도 몰랐다.
“아, 이걸 놓쳤군.”
뮤네는 품속에서 작은 다이아몬드 반지 두 개를 꺼냈다.
반지의 모양새는 나무 넝쿨이 보석을 감싸고 있는 모양새였는데, 이런 반지를 잘 볼 줄 모르는 티그리스도 순간 감탄할 만큼 굉장히 우아했다.
“이건 뭐지?”
“너와 네 약혼자 선물이다.”
다이아몬드에는 역시 작은 정령이 잠들어 있었는데, 무슨 정령인지 티그리스로선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약혼자가 제법 뛰어난 소환술사라고 들었다. 이 안에 있는 정령은 네 약혼자의 성격과 마나의 성질에 맞춰져 태어날 것이다. 네 경우엔 소환술사가 아니니 정령이 태어날지는 잘 모르겠군.”
“이 반지를 가져갈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고맙다.”
뮤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인간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뇌물 같은 거다. 이 정도로 귀한 선물을 받고서 입을 싹 닦진 않겠지.”
뮤네는 이 반지 두 개를 티그리스의 안주머니에 집어넣어 주었다.
그때, 한 무녀가 물의 정령을 데리고 오더니 뮤네와 티그리스에게 말했다.
“저쪽도 준비가 끝났다고 합니다.”
트리샤에겐 물의 정령 ‘엘리미아’가 있었는데, 그 물의 정령을 통해 엘프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원래는 지금처럼 멀리 떨어진 곳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세계수가 힘써준 덕분에 아주 간단한 소통 정도는 가능했다.
뮤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잘 가라. 티그리스. 세계수님을 부탁한다.”
티그리스는 뮤네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세계수를 쳐다봤다.
세계수도 인사를 하는 듯 나뭇가지들이 살랑살랑 흔들렸고, 세계수의 나뭇잎 하나가 티그리스의 머리 위에 부드럽게 올라탔다.
세계수 나름대로의 인사일 것이다.
티그리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도 잘 있어라.”
성좌의 던전에 남겨질 뮤네와 세계수 그리고 엘프들에겐 의미 없는 말이겠지만, 티그리스는 왠지 이런 말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 말이 끝나자 티그리스의 눈이 아득해지며 저절로 눈이 감겼다.
* * *
잠시 후 티그리스가 눈을 뜨자 동굴 특유의 습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돌아왔나……? 이거 돌아온 거 맞아요?”
근처에서 들리는 샤를로트의 목소리.
티그리스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이 어두컴컴한 동굴의 암흑을 빌려 온몸에 덕지덕지 붙은 가방들을 모두 내려놓는 것이었다.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레인로버에게 들키면 굉장히 수치스러울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티그리스는 0.5초도 되지 않아 모든 가방을 벗어 던졌고, 불이 켜졌다.
“아악! 잠시……!”
티그리스는 자신처럼 묵직한 것들로 가득 찬 가방을 내던지고 있는 레인로버와 눈을 마주쳤다.
오랜만에 만난 레인로버는 굉장히 휘황찬란했다.
목에는 굉장히 무거워 보이는 황금 목걸이를 차고 있었고, 머리에는 황금 왕관을 쓰고 있었다.
마치 한탕에 성공한 도굴꾼이 유적을 나오다가 경찰에게 들킨 듯한 모양새였다.
레인로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어졌다.
“아니……. 그러니까……. 이게…….”
티그리스는 다른 사람들이 정신이 없을 때,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 중 가장 큰 가방을 목 뒤로 슬쩍 둘러멨다.
“어? 오라버니……?”
리니아는 티그리스가 몸통만 한 가방을 우스꽝스럽게 둘러메고 있는 모습을 보자 순간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티그리스는 리니아의 열 손가락에 모두 껴 있는 두꺼운 황금 반지들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는 뭘 그렇게 많이 챙긴 것이냐.”
“아……! 아. 그게…….”
트리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티그리스 님도 굉장히 많이 챙기신 것 같은데요? 이게 다 뭐예요?”
티그리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엘프들에게서 받은 물건들이다. 다 필요한 물건들이니 하나도 빠짐없이 가져가도록.”
“아! 맞다! 세계수의 씨앗은요?”
티그리스는 샐러맨더의 검에 걸려 있는 주머니를 풀어 트리샤에게 건넸다.
“여기에 있다. 나보다 네가 엘프를 더 잘 알 테니 네가 보관하고 있도록.”
“우왁! 우아아와!”
트리샤는 세계수의 씨앗을 보자마자 탄성을 질렀다.
트리샤의 옆을 날아다니던 정령 엘리미아도 세계수의 씨앗을 보자마자 방방 뛰었다.
티그리스는 레인로버를 슬쩍 쳐다봤다.
레인로버는 뭔가 감동을 받은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티그리스는 그 눈빛이 조금 부담스러워 괜히 피하고 나달을 쳐다봤다.
나달은 티그리스에게 엄지손가락 한 마디만 한 작은 심장을 보여주었다.
“이게 철혈 심장입니다.”
철혈 심장은 겉보기에도 굉장히 영험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것을 먹기만 하면 인간이 최대로 도달할 수 있는 육체를 정확하게 1시간 정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티그리스의 기준으로 보자면 회귀 전 8번째 고리를 완성했을 때의 육체로 되돌아가게 만들어주는 비약이랄까?
1시간에 불과하지만 그 정도 시간이라면 아우로므의 목을 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티그리스는 동굴 입구에서 횃불을 들고 걸어 들어오는 황금 기사들을 쳐다봤다.
황금 기사들은 곧바로 예를 표했다.
“무사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짐들은 전부 저희에게 주십시오. 저희가 들고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트리샤를 포함한 대원들은 황금 기사들에게 짐을 모두 넘겼다.
한 황금 기사가 티그리스에게 다가오자, 티그리스는 아공간 주머니를 건네며 말했다.
“……어떻게 됐지?”
황금 기사는 티그리스가 어떤 소식을 듣길 원하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미리 준비해 둔 쪽지를 티그리스에게 건넸다.
티그리스는 횃불에 빛을 비춰 쪽지를 읽었다.
[베르강, 아모리스, 베오울프, 호른 생사 불명. 검은 늑대 기사단과 하얀 늑대 기사단 생사 불명.]
[습격자 4명의 생사 불명]
[도시 륑겐에서 남쪽으로 1.2㎞ 지점 침입 불가능한 결계 확인.]
티그리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 * *
달리는 열차 안.
베오울프는 안경을 쓴 채 한 서류를 유심히 훑었다.
그리고 서류에 몇 가지 내용을 끄적이더니 사인란에 사인을 했다.
“호른. 이대로 서기관에게 보내도록.”
검은 늑대 기사단장 호른은 서류를 받아 들곤 입을 열었다.
“각하. 이제 조금 쉬시지요. 잠을 안 주무신 지 벌써 36시간이 넘었습니다.”
“이거 하나만 더 보겠네.”
호른은 베오울프가 들리지 않게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망할 전문.’
어떻게 달리는 열차 안에 전문 송수신기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만 없었으면 베오울프는 적어도 달리는 열차 안에서만큼은 편히 쉴 수 있었을 것이다.
베오울프는 6성 기사다 보니 36시간 정도 안 잔다고 해서 몸이 망가질 리는 없겠지만, 나이가 50이 가까워졌다.
이제 머리가 희끗희끗해지고 몸이 말을 안 듣기 시작하는 나이.
블랙 마이스터인 베르강처럼 인간의 육체를 초월한 소드 마스터라도 되지 않는 이상 이렇게 계속 몸을 혹사하면 나중에 큰일이 날지도 몰랐다.
호른은 반대편 창가에 앉아 있는 베오울프의 부인을 쳐다봤다.
부인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이고 말려봤지만 의미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호른은 하는 수 없이 문을 열고 나가 옆방에 있는 비서관에게 향했다.
비서관의 탁자에는 타자기가 있었는데, 베오울프가 체크한 부분을 수정해서 양식에 맞게 서류를 다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서관의 탁자에는 쌓인 서류만큼이나 빈 커피 잔이 이리저리 흩어져 있었다.
“각하께서 수정해서 보내시라고 하셨네.”
비서관은 호른에게서 서류를 받으며 말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호른 경.”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아니라 혹시 각하께선 언제 주무시는지…….”
“하나만 더 보신다고 하셨습니다.”
비서관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비통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흐흐흑! 방금도 하나만 더 보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호른은 안타까운 눈빛으로 비서관을 쳐다봤다.
“노르베르드의 겨울은 지독하지 않습니까. 식량과 석탄 배급에 문제가 없는지 제대로 확인하시려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난 6성 기사가 아니란 말입니다. 꺼흐흑.”
호른은 비서관의 어깨를 두들겨 주며 말했다.
“그래도 각하께서 비서관이 고생하시는 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니 조금만 힘을 내시지요.”
“……알겠습니다.”
비서관은 호른이 건네준 서류를 건네받고 맥없이 타자를 치기 시작했다.
“이번 일만 끝내면…… 비서관직은 때려치우고 작고 아담한 소도시의 서기관이나 맡아야겠어. 그럼 우리 토끼 같은 마누라랑 휴일에는 감자 농사나 여유롭게 지으면서…….”
‘……비서관, 그건 다음 생에나 가능할 겁니다.’
일 잘하는 사람을 베오울프가 놓아줄 리가 없지 않은가?
비서관처럼 탈출을 꿈꾸던 서기관은 벌써 20년이 넘도록 베오울프의 옆에서 보좌하고 있다.
서기관은 베오울프의 곁을 떠나는 걸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포기하면 빠릅니다.’
호른은 그 말을 삼킨 뒤 비서관실에서 나왔다.
열차 복도로 나오자 상쾌한 밤공기 냄새가 호른의 코를 간질였다.
호른은 밤공기를 폐부 깊숙한 곳까지 들이마신 뒤 내뱉었다.
‘정신 차리자.’
호른의 역할은 베오울프의 근접 경호다.
황금 기사단 측에서 베오울프를 노리는 습격자가 있을 수 있으니 경계를 한시도 늦추지 말라는 전갈을 받았기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베오울프 님을 노린다는 거지?’
호른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누가 베오울프를 노리는 것인지 당최 감이 오지 않았다.
베오울프를 노린다는 소식을 듣고 하얀 늑대 기사들이 곳곳에 파견되어 정보를 모으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황금 기사단 놈들, 알려줄 거면 제대로 알려줄 것이지.’
호른은 투덜대며 복도에서 회중시계를 꺼냈다.
오전 1시 55분.
열차에 일반인으로 위장해 탑승해 있는 하얀 늑대 기사의 정기 보고 예정 시간이었다.
‘……뭐지?’
지금까지 하얀 늑대 기사들은 단 한 번도 정기 보고에 늦은 적이 없었다.
혹시 화장실을 가서 늦은 건가 싶었지만, 1분이 지나고 2분이 지나고 5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군.’
호른은 감지계 오러운용술 중 하나인 ‘마나의 실’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문 너머에서 탁한 회색빛의 마나의 실 뭉텅이들이 해류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미역들처럼 휘날리는 게 보였다.
‘이게 뭐지…….’
호른은 반사적으로 검 자루에 손을 올렸다.
저 탁하면서도 사악한 마나는 난생처음 보는 것이었다.
호른은 재빨리 말했다.
“기사들은 모두 각하를 지켜라!”
호른의 호령에 대기실에 잠시 눈을 붙이고 있던 비번 기사들을 포함해 복도에서 대기 중인 기사들이 모두 튀어나와 베오울프가 있는 방문 앞을 지켰다.
호른은 기사들의 제일 앞에 서서 검을 뽑아 든 뒤 문을 쳐다봤다.
그때, 차량을 연결하는 문이 벌컥 열리며 피가 묻은 검을 들고 있는 한 사내가 걸어 나왔다.
사내의 피부는 눈처럼 하얬고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으며 머리칼은 새하얬다.
“네놈은 누구냐.”
“나?”
사내는 좁은 복도를 마치 독사처럼 빠르게 달려와 검을 내질렀다.
호른은 사내의 검을 막았다.
끼기기기기긱-!
호른의 검에서 피어오른 푸른 검기와 사내의 탁한 잿빛 검기가 부딪히며 소름 끼치는 소리가 났다.
사내의 핏빛 동공과 호른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네 제자 될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