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51화 (151/251)

#151 슈베어트(2)

로건은 황당하다는 듯이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결투라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정말로 나와 생사결을 하자는 말인가?”

티그리스는 그것보다 결혼이라는 말이 굉장히 신경 쓰이긴 했지만, 일단 레인로버와 법리학자들이 머리를 맞대 내린 답을 말하기로 했다.

“결투를 하되 슈베어트의 독특한 규칙을 이용하자는 것입니다.”

“독특한 규칙이라면…… 슈베어트의 세 규칙을 말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첫째, 슈베어트 내에서 결투는 자유지만, 그 누구도 신체에 장애가 올 정도로 크게 다쳐선 안 된다.

둘째, 슈베어트 내에선 그 누구에게라도 결투를 신청할 수 있고 받아줘야 한다.

셋째, 슈베어트 내에선 타 가문의 검술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해도 된다.

“그중 첫 번째 규칙을 적용하면 저희는 베르강 님의 입회 아래 아무도 다치지 않고 결투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우리 둘이 목을 걸고 결투를 벌일 필요는 없다는 거군.”

“예. 그렇습니다.”

로건의 굳은 표정이 조금 풀렸다.

티그리스의 건방진 편지에 화가 났다고 한 뒤, 그에 따라 결투를 신청한다면 적어도 로건의 체면이 서게 되니까.

“그러면 그 결투에서 내가 자네에게 받아내야 할 것은 뭐지? 자네에게 사과를 받아내면 되나?”

“그렇긴 합니다만 백작님께서 이기실 순 없을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이번 결투는 제가 이길 거니까요.”

로건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자네가 나를 이긴다고? 지금 나보고 봐달라고 하는 건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백작님께선 저를 이기실 수 없을 거란 말입니다.”

로건은 지금 화를 내야 하는 시점인지 아니면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쳐야 하는 순간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로건은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자네가 굉장히 대단하다는 것은 알고 있네. 베르강도 인정하고 있기도 하고.”

로건은 그라데이션처럼 말을 하면 할수록 분노가 차올라 결국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하지만 그건 좀 시건방진 소리인 것 같은데? 자넨 이제 막 6성 기사가 되었고 전투 경험도 많지도 않고 말…….”

티그리스는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검강을 뽑아냈다.

로건은 지금 손가락에서 불쑥 튀어나온 검강의 자태에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노르베르드 가문 특유의 은빛 오러가 빚어낸 깨끗한 거울 같은 검강에 로건의 표정이 그대로 담겼다.

로건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그…… 그게. 아니, 그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자네가 검강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게?”

“예. 그렇습니다.”

로건은 베르강이 티그리스가 검강을 사용할 수 있다는 편지를 보냈을 땐 일종의 비유라고 생각했다.

검강처럼 깨끗하고 정제된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게 진짜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로건은 지금 티그리스의 심장에서 돌고 있는 고리의 개수를 다시 확인했다.

아무리 봐도 6개였다.

“……아니,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건가?”

티그리스는 이젠 모두 털어놓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저는 회귀자입니다.”

* * *

로건은 티그리스의 설명을 들은 뒤,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말한 뒤 테라스로 향했다.

티그리스가 왜 그렇게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는지, 왜 샤를로트와 아이린을 제자로 거둬 가르치기 시작했는지 항상 찝찝한 의문이 남았었는데 이제야 모두 풀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속이 시원하진 않았다.

샤를로트가 죽고 자신도 죽었으며 황국과 프리하르덴 가문도 멸망한 세상에서 다시 돌아온 티그리스.

그리고 라칸의 비밀까지.

단번에 모든 것을 이해하기엔 제아무리 로건이라도 시간이 좀 필요했다.

정오가 되자 샤를로트가 걸어왔다.

“아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로건은 샤를로트를 쳐다봤다.

아내를 쏙 닮은 코와 입술 그리고 로건을 닮은 벽안과 찬란한 금발.

로건이 살아가야 할 가장 큰 이유인 이 사랑스러운 아이가 죽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자기보다 일찍?

로건은 심장이 쪼그라드는 공포에 숨이 막혀왔다.

샤를로트는 로건의 표정이 굳어 있자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

로건은 티그리스의 마지막 말을 떠올렸다.

-아직 샤를로트는 모릅니다.

아직 샤를로트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판단한 것일까?

아니면 모르는 편이 나아서 그런 것일까?

로건은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열었다.

“넌 티그리스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샤를로트는 거실 창문으로 보이는 티그리스를 흘금 봤다.

티그리스는 네메시스와 소라에게 내일 슈베어트에서 만나게 될 귀족들의 명단을 보여주며 주의해야 할 사안을 알려주고 있었다.

네메시스와 소라의 귀가 축 늘어진 것으로 보아 그 많은 귀족들의 명단을 모두 외울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샤를로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뭐, 내가 옛날 같은 줄 알아? 지금은 다 털어냈어.”

“……뭘 털어냈다는 거냐?”

“예전에 내가 스승님을 굉장히 싫어했잖아. 제자로 들어간 이유도 뭐…… 스승님을 뛰어넘어 보겠다고 들어간 거고.”

샤를로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런데 누울 자리도 봐가면서 발을 뻗어야지. 이젠 스승님을 뛰어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되지 않아. 성격도 뭐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으니까. 무뚝뚝한 건 여전하지만.”

로건은 마음이 복잡했다.

훗날 있을 로타와 아르펨과의 전투에서 샤를로트가 제 역할을 하려면 빠르게 강해져야 한다.

그 때문에 티그리스는 샤를로트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그런 면으로 보자면 티그리스는 샤를로트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부모 된 입장으로써 속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아프고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티그리스의 말을 들어보니 단순히 그런 생각만으로 샤를로트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었다.

티그리스는 샤를로트에게 굉장히 미안해하고 있었다.

회귀 전 샤를로트에게 했던 모든 날 선 말과 무례한 행동 그리고 죽음까지.

샤를로트가 하루하루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을 가까이서 볼 때면 이렇게 대단한 기사에게 도대체 자신이 무슨 짓을 벌인 것인지 용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더더욱 열심히 가르치고 있노라고.

그리고 언젠간 모든 것을 고백하고 사죄할 것이라고.

로건은 무거운 입을 열었다.

“……샬롯.”

“왜?”

“넌 그렇게 티그리스랑 결혼을 하고 싶으냐?”

“……?”

“……?”

샤를로트는 로건의 말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포기했다.

“이게 지금 무슨 개똥 같은 소리야! 내가 왜 티그리스랑 결혼을 해?!”

샤를로트의 눈이 아내의 것처럼 매서워졌다.

로건은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츠러들었다.

“아……아니, 네가 4년 전에 분명히 네 이상형이 너보다 강한 기사라고 했었잖니? 그런데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사내 중 너보다 강한 기사는 티그리스밖에 없으니…….”

“무슨 4년 전 이야기를 들먹이고 있어?! 그리고 제정신이야? 티그리스는 이미 황녀님하고 결혼할 몸이잖아!”

“그럼 너랑 결혼을 할 수 있는 남자가 도대체 누가 있겠니?”

명절이나 연말에 오랜만에 모인 가족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올 법한 이야기가 흘러나오자, 샤를로트는 말문이 막혔다.

“나는 최대한 네가 원하는 사내를 찾으려고 사방팔방 다 찾아다녔다. 네 엄마도 수소문을 넣었고. 그런데 갑자기 네가 3성 기사가 되어버리니 갑자기 숫자가 확 주는 게 아니냐. 네가 원하는 사내를 찾으려면 30대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런 놈들은 다 하자가 있어서 네게 소개시켜 주기엔…….”

“아,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꺼! 진짜!”

로건은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신경 끄라니. 지금 그게 아빠한테 할 소리니? 그리고 넌 프리하르덴 가문의 후계자다. 너도 결혼을 해야 하잖니?”

“그건…….”

샤를로트의 사나운 눈매가 누그러졌다.

솔직히 말해서 샤를로트는 평범한 귀족 여자들 사이에선 혼기가 찬 게 맞다.

보통 귀족들은 20~26 사이에 결혼을 하니까.

예를 먼 곳에서 찾을 것도 없이 샤를로트의 친구인 에이든과 에프린은 결혼을 할 거라면서 샤를로트에게 약혼식 초대장을 보냈고,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도 어쩔 수 없이 취소되긴 했지만 결혼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샤를로트는 아직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열심히 검술 훈련을 하고 이 펜트하우스에서 지내는 매 순간이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런데 샤를로트는 프리하르덴 백작의 지위를 이어받을 후계자다.

샤를로트가 네 살 아이도 아니고 자신이 누린 모든 풍요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때가 왔음을 인지하고 있었다.

‘이런 느낌이었나?’

얼마 전 트리샤가 술을 마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자신은 사실 고디바 왕국의 공주라고.

그런데 결혼을 하기가 싫어서 고디바 왕국을 탈출했고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땐 그냥 그러려니 넘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샤를로트 본인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하필 티그리스야? 티그리스는 노르베르드 가문을 이어받을 가주잖아. 나는 프리하르덴 가문을 이어받을 가주고. 가주와 가주끼리 결혼하는 건 불가능하잖아?”

“만약 네가 티그리스와 결혼한다면 내가 가문과 황국법을 바꿔보려고 했다. 프리하르덴 백작 가문이 그 정도 힘이 없는 건 아니니까.”

“하! 하!!!”

샤를로트는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세상에 그 어떤 사람이 결혼을 하려고 황국 법을 바꾸…… 바꿨네?”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와 자신과의 결혼의 현실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라는 것을 깨닫자 머리를 망치로 크게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그래. 법을 바꿨다고 쳐. 세상의 절반이 남자인데 왜 하필 티그리스인데?”

“넌 티그리스에게 마음이 없는 것이냐?”

“뭐, 예전보단 훨씬 나아지긴 했지. 성격이 좀 무뚝뚝한 걸 제외하면 얼굴도 그 정도면 봐줄 만하고 말도 가려서 잘하고 똑똑하고 믿음직스럽기도 하니까.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어……?”

샤를로트는 티그리스의 모난 점을 찾아보려고 애썼지만 이상하게도 찾아지지가 않았다.

샤를로트는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아…… 암튼! 걔는 아니야! 절대 아니야!”

“그럼 도대체 누가 좋겠니? 최근 들어 대화하는 남자는 있니?”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없었다.

학교 수업을 듣고 나면 항상 펜트하우스로 와버리는 탓에 대화하는 남자라곤 티그리스 하나밖에 없었다.

“됐어! 그런 이야긴 좀 하지 마. 내 앞길은 내가 알아서 해.”

로건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큼 나랑 네 엄마가 고민하고 있다는 거 아니니? 나는 네가 행복한 결혼을 했으면 좋겠다. 나와 네 엄마가 그랬듯이.”

샤를로트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주말만 되면 와이번 타고 멧돼지 사냥 가면서 무슨. 얼마 전에 엄마한테 편지가 왔는데, 엄마가 펠레의 날개를 꽁꽁 묶어버리고 싶대.”

“커흠! 그건 사냥이 아니라 엄연히 정찰…… 미안하다.”

샤를로트는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샤를로트도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다.

애써 눈을 돌리고 외면해 봐도 현실은 현실이다.

그러고 보니 아이린도 결혼을 생각하고 있을 텐데 아이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큼! 아무튼 나랑 네 엄마가 네 혼사 문제를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만 이해해 줬으면 좋겠구나. 가장 좋은 방법은 네가 결혼할 남자를 데려오는 거겠지. 그러면 그 남자가 평민이든 귀족이든 상관없이 받아주겠다. 설령 티그리스라도!”

“그놈의 티그리스 이야기는 좀 빼!”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남자라도 받아줄 생각이 있으니까 남자 구실만 제대로 하는 놈을 데려오라는 거다! 샬롯!”

샤를로트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니, 뭔 그런 상스러운 소리를 해?!”

“샬롯. 그러니까 아무나 데려오라는 이야기다. 난 네가 베르강 그놈처럼 될까 봐 무섭다.”

“……베르강 님이 왜요?”

로건은 아차 한 듯이 입을 꾹 닫았다.

“베르강 님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데요.”

“베르강 그놈이 정말 늦게 결혼했잖냐? 뭐 그래서 그런 거지.”

그러고 보니 베르강이 결혼을 굉장히 늦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히 막내딸 나이가 6살이라고 했던가?

레인로버가 그 아이가 베르강과 달리 진짜 귀엽게 생겼다고 말한 기억이 있었다.

“그러고 보니 왜 베르강 님은 늦게 결혼을 하신 거죠?”

“……알 거 없다.”

샤를로트는 실눈을 뜨며 말했다.

“제가 못 알아낼 것 같아요? 어서 지금 말해요.”

로건은 눈을 슬슬 피하며 말했다.

“……그놈이 갑자기 소드마스터가 되고 싶다면서 가주 자리도 내팽개치고 여행을 떠났다. 네가 그렇게 될까 봐 나와 네 엄마가 굉장히 걱정하고 있는 거고.”

로건은 원래 샤를로트의 결혼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놈팡이가 우리 딸아이를 가져가려고 한다는 말인가?!’라며 반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최근 베르강의 6살짜리 막내딸 생일 선물을 고민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위기감을 느꼈다.

“얼마 전 베르강 그놈의 막내딸 생일 선물로 요즘 황국에서 제일 잘나가는 인형 놀이 세트를 선물했다. 난 네가 베르강 그놈과 비슷한 길을 걷게 될까 굉장히 걱정이 되는구나.”

돌연 샤를로트의 눈이 반짝였다.

뭔가 망망대해를 표류하던 배가 등대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흠……. 그래요?”

로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샤를로트 너 설마…….”

“내일 슈베어트에서 베르강 님과 깊은 대화를 나눠봐야겠네요.”

로건은 비명을 질렀다.

“절대 안 돼!!!”

* * *

점심을 먹은 뒤 로건과 티그리스는 서재에 다시 모여 앉았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로건은 메마른 화초처럼 시들시들거렸다.

마치 세상을 다 잃어버린 것 같은 표정이랄까?

테라스에서 샤를로트와 무슨 진중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긴 했다.

일부러 듣지 않았기에 둘 사이에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티그리스는 전혀 알지 못했다.

마지막에 ‘절대 안 돼!!!’라고 소리치는 건 듣긴 했지만…….

뭔가 대단한 대화가 오간 게 분명해 보였다.

“오늘따라 베오울프가 부럽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적어도 결혼 문제 때문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니까. 말일세.”

아, 그런 이야기였나.

샤를로트의 결혼 문제라면 충분히 이해가 간다.

“회귀…… 라고 했던가? 그러니까 자네의 과거에는 우리 딸이 결혼을 했던가?”

“안 했습니다. 물론 당시엔 결혼을 할 상황이 아니었으니 안 했을 겁니다.”

“상황이 아니었다는 게 무슨 뜻이지?”

“황국이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그 때문에 귀족들 사이에서도 혼사가 오가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로건의 눈이 반짝였다.

“그럼 샤를로트는 결혼을 할 수 있겠군!”

“물론 예전보단 상황이 낫긴 합니다만……. 샤를로트가 결혼을 하고 싶어 할지 모르겠군요. 성격을 알지 않습니까?”

로건의 표정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그렇겠지?”

로건은 한숨을 내쉬었다.

“샤를로트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네. 여자아이 같다기보단 남자아이 같았지. 위험한 나무를 오르고 바위를 뛰어다니고……. 지금은 검술에 푹 빠져서 헤어나오질 못하니……. 그게 나쁜 건 아니긴 한데…….”

로건의 깊은 시름이 담긴 말을 듣자, 티그리스는 문득 회귀 전의 베오울프의 말이 떠올랐다.

베오울프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소원이 티그리스가 결혼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던 것 같은데…….

워낙 가세가 많이 기울어서 결혼은 언감생심 꿈꿔보지도 못했었다.

“다 때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베르강 그놈처럼 늦은 나이에 결혼을 하면 안 되겠지. 그놈 큰아들이 이제 9살이네. 다행히 베르강 그놈은 소드마스터라서 살날이 나보다 길다곤 하지만 나는 아니야.”

티그리스는 살날이라는 말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로건은 티그리스가 회귀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굉장히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백작님께선 걱정이 안 되시는 겁니까?”

“뭐가? 아, 그 아르펨과 로타라는 놈을 말하는 건가?”

“예. 그렇습니다.”

“뭐, 그놈들에 대한 대비가 잘돼가고 있다고 하지 않았나? 물론 그 회귀록을 내가 보지 못해서 잘 모르긴 하겠네만, 지금 자네와 황국의 내정 상태를 보면 굉장히 나아졌다고 생각하는데?”

로건은 티그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아르펨과 로타를 때려잡은 이후를 생각하고 황녀 전하와 결혼을 하는 게 아닌가? 물론 황권 강화와 자네의 입지를 드높이기 위한 계책이라 할 수 있겠지만, 자네와 황녀 전하의 표정을 보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던데?”

티그리스는 정곡이 찔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로건은 진지한 눈빛으로 말했다.

“내가 자세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자네는 충분히 잘해왔네. 앞으로도 잘할 것이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잘할 것이지.”

로건의 따뜻한 격려의 말에 티그리스는 뭔가 큰 보상을 받은 느낌이었다.

회귀 전의 로건은 티그리스를 언제나 혐오해 왔다.

티그리스가 황국의 편이 아니었다면, 황국의 유일한 소드마스터가 아니었다면 티그리스를 당장에 죽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자가 티그리스를 믿는다고 말해주니 심장이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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