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55화 (155/251)

#155 봉인(1)

샤를로트는 눈을 번쩍 떴다.

“윽!”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온몸이 저리듯이 아팠다.

책상에 오랫동안 엎드려서 잤을 때 팔이 저려오는 고통과 비슷했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했다.

발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었다.

“일어났니?”

샤를로트는 간신히 고개를 돌렸다.

그 옆엔 머리에 붕대를 감싼 로건이 애틋하게 샤를로트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빠.”

“그래.”

“그 붕대는 뭐야? 누구랑 싸웠어?”

로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티그리스랑 싸웠다.”

“뭐?! 아악!”

샤를로트가 발작하며 일어나려 하자 다시 온몸이 저려와 결국 누울 수밖에 없었다.

“마력 회로를 다쳤다고 하더구나. 당분간 일어나지 못할 거다.”

“아니, 그것보다 왜 티그리스랑 싸웠는데? 티그리스 걔는 괜찮대?”

“섭섭하구나. 샬롯. 나는 괜찮냐고 안 물어봐 주는 거니?”

“딱 봐도 괜찮아 보이니까 안 묻는 거지.”

로건은 샤를로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우아아악! 지금 뭐 하는 거야?! 느끼하게!”

“지금이 아니면 널 언제 괴롭혀 보겠니? 네가 어렸을 땐 네 볼이 솜뭉치를 만지는 것처럼 말랑말랑했는데 지금은 어느새 다 컸구나.”

딱! 딱!

샤를로트는 사냥개처럼 로건의 손가락을 물기 위해 이를 딱딱거렸다.

“당장 그 느끼한 손 치워!”

“알았다. 알았어.”

로건은 대신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그건 샤를로트도 막지 않았다.

“아무튼 티그리스…… 아니, 스승님은 좀 어떻대?”

“내가 이 정도로 다쳤는데 걔는 무사할 것 같으냐? 아주 혼쭐을 내줬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스승님이 얼마나 다쳤는데?”

“지금 네 옆에 누워 있잖니?”

샤를로트는 고개를 돌려 옆 침상을 바라봤다.

그곳은 비어 있었다.

샤를로트는 목각인형처럼 다시 입을 딱딱거리며 온몸을 비틀었다.

“끝까지 장난을 쳐?! 아빠답지 않게 왜 이래?”

“모르는 모양인데, 내가 옛날에는 널 놀리는 맛에 살았단다. 한번은 네가 하늘에서 왜 눈이 내리냐고 물었는데, 설산에 사는 설인들의 비듬이라고 하니까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도망쳤었지.”

로건은 한바탕 크게 웃곤 입을 열었다.

“티그리스 그놈은 괜찮다. 나보다 훨씬 쌩쌩해.”

“……장난 아니지?”

“진짜다. 실제로 난 그놈한테 졌으니까.”

샤를로트는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떡 벌렸다.

“뭐? 아빠가 졌다고?”

“그래. 정말 정말 강하더구나.”

로건은 그 얼음꽃을 부수지 못했다.

그 검술의 이름이 ‘설화(雪華)’라고 했던가?

로건은 샤를로트가 흐드러지게 피워낼 그 찬란한 얼음꽃을 도저히 부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고 말았다.

“……괜찮아? 아빠?”

“이제야 괜찮냐고 물어주는구나.”

로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음……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괜찮으면서도 안 괜찮다고 해야 할까?”

“……그게 무슨 소리야.”

샤를로트가 아름답게 피워낼 미래에게 졌으니 괜찮지만, 티그리스에게도 진 것이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뭔가 싱숭생숭한 기분이랄까?

“그런 줄로만 알고 있어라. 샬롯.”

“괜찮은 모양이네.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 보면.”

로건은 진지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샬롯.”

“왜.”

“결혼은 하지 않아도 좋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로건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내가 그 케케묵은 가헌을 좀 뒤져봤는데, 굳이 네가 결혼을 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더구나. 네가 백작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꼭 네 후손이 뒤를 이을 필요는 없다는 거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평생 독수공방하며 살 거라 생각하는데?!”

“뭐……?”

샤를로트는 이를 으드득 갈며 말했다.

“티그리스 그놈이 황녀님하고 매 새벽마다 테라스에서 꽁냥꽁냥거리는 모습이 얼마나 꼴사나운지 알아? 그럴 때면 아주 그냥 눈알을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짜증이 나서……!”

샤를로트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나도 그런 행복을 누려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아주 조금은 든다고.”

“정말이냐?”

“그래. 지금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긴 하지만……. 언젠간 운명처럼 내 사랑이 나타나지 않을까?”

그놈의 운명을 기다리다가 샤를로트가 늙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로건은 굳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티그리스 그놈은 별로냐?”

샤를로트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몰라. 그놈은. 그래도 내 이상형에 제일 가까운 사람이긴 하지. 하지만 레인로버 황녀님 걸 빼앗는 느낌이잖아. 나 레인로버 황녀님도 좋단 말이야. 싸우기 싫어.”

“그럼 레인로버 황녀님만 괜찮다면 티그리스도 괜찮은 거냐?”

샤를로트는 얼굴을 와락 구겼다.

“티그리스를 티그 / 리스로 조각내지 않는 이상 별 관심이 없네요. 난 나만 바라봐 주는 남자를 좋아한단 말이야. 딴 년…… 여자에게 눈 돌아가 있는 놈에게 어떻게 정을 붙이겠어. 나 질투심 많아서 그 꼴 절대 못 봐. 아마 화병 나서 죽일지도 몰라.”

로건은 허허 웃고 말았다.

“하긴 너라면 그럴 것 같았다.”

“그걸 아는 사람이 자꾸 티그리스를 들먹였던 이유가 뭐야?”

“모르겠다. 내 마음이 앞선 모양이지. 아니면 티그리스만큼 괜찮은 놈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 아무튼 내 마음이 급했다.”

“에휴……. 뭐, 됐어. 이젠 결혼의 결 자도 안 꺼낼 거지?”

“네가 먼저 말을 꺼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마.”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해.”

샤를로트는 간신히 새끼손가락을 움직여 후크 모양으로 만들었다.

로건도 새끼손가락을 구부려 샤를로트의 손가락에 걸었다.

“약속.”

“약속.”

“도장 쾅.”

“도장 쾅.”

“사인.”

“사인.”

샤를로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4살 때로 돌아간 것 같아.”

“원래 유치한 기억이 제일 오래가는 법이다.”

“그런가? 하긴 그래서 어릴 적 기억이 많이 나나 봐. 티그리스 그놈 어렸을 때도 기억이 나네.”

“그 어렸을 때 기억이 나?”

샤를로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놈 그때 진짜 귀여웠는데. 나보다 2살 어렸으니까 3살이었나? 2살이었나? 간신히 두 발로 걸어 다닐 때였던 것 같아. 날 어떻게든 달리기로 이겨보려고 안간힘을 썼는데, 결국 나 못 이겼잖아. 얼마나 분해하던지 결국 울더라니까?”

로건은 의외라는 듯이 샤를로트를 쳐다봤다.

“티그리스 그놈이 울었다고?”

“원체 안 우는 녀석이었는데, 내가 하도 놀리니까 울었지. 내가 그때 미쳤었나 봐. 어? 잠시만 그러고 보니 나 티그리스를 한 번 이겨 먹었네? 그럼 3대 1인가? 2번을 어떻게든 이기면 동점이네?”

로건은 이런 소소한 대화가 너무나도 즐거웠다.

아니, 그리웠던 건가?

로건은 샤를로트의 머리칼을 정리하며 말했다.

“본가에 좀 오거라. 네 엄마가 널 보고 싶어 하더구나.”

“하긴 너무 오랫동안 안 보긴 했지. 어차피 당분간 수련도 못 할 텐데 아빠랑 같이 본가로 올라갈까?”

“그것도 나쁘지 않구나.”

“그럼 스승님께 미리 말해둬야겠다. 그나저나 스승님은 어디 계시지?”

로건은 어깨를 으쓱였다.

“나도 모른다.”

“정말?”

“내가 이런 것까지 장난을 치겠느냐? 그냥 보이지 않던데? 놈도 뭔갈 정리할 필요가 있었던 모양이다.”

샤를로트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빠는…….”

“음?”

“아니다. 이건 내가 직접 물어보련다.”

“싱겁긴. 아무튼 넌 여기 가만히 있어라. 내가 티그리스를 찾아서 물어보고 오겠다.”

“아냐. 나 혼자만 가서 물어보고 올게. 둘이 싸워서 기분도 안 좋을 텐데.”

로건은 피식 웃었다.

“원래 사내는 치고받고 싸우면서 친해지는 법이다. 이번에 제법 친해진 것 같다.”

“그러고 보니까 둘이 정확히 왜 싸운 거야?”

“음…….”

로건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네가 다쳐서 화가 났다. 그리고 그게 전부 티그리스 탓이라 생각했지.”

“……뭐? 그게 왜 티그리스 때문인데?! 그냥 내가 무리해서 그런 건데!”

“네 잘못이 아니라 널 몰아붙인 내 잘못이다.”

“또 왜 아빠 잘못인데 그냥 내가 미쳐서 그런 건데.”

“아, 이 주제로 계속 대화를 하면 한도 끝도 없으니까 서로 잘못한 것으로 하자꾸나.”

“그거 엄마랑 말싸움하기 싫어서 자주 써먹는 방법인 것 같은데?”

“아…… 아무튼! 그래서 싸웠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거지.”

로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다치지 마라. 샬롯.”

“기사가 어떻게 안 다쳐.”

“그럼 조금만 아파라.”

“뭐, 그건 노력해 볼게.”

샤를로트는 로건처럼 피식 웃었다.

“어서 스승님이 왔으면 좋겠네. 황도는 다 좋은데, 프리하르덴의 하얀 설산을 보면서 따뜻한 핫초코를 먹는 그 맛이 없어.”

“아, 그러면 그 분위기를 조금 내볼까?”

로건은 휠체어를 끌고 왔다.

“……뭐야? 어딜 가려고?”

“요 앞에만 나갈 거다. 몸에 힘을 빼거라.”

로건은 샤를로트를 품에 안아 휠체어에 앉혔다.

그리고 구호소 밖을 나왔다.

샤를로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사시사철 따뜻한 황궁에 솜털처럼 부드러운 눈이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슈베어트가 한창인 연무장 한가운데엔 얼음꽃으로 만들어진 화원이 있었다.

보름달에서 발한 월광이 얼음꽃을 반짝이게 했다.

“우와…….”

“잠시만 기다려라. 코코아를 가져오마.”

“응.”

로건과 샤를로트는 밤이 새도록 얼음꽃의 화원을 보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 *

다음 날.

슈베어트가 모두 끝나 기사들은 황궁을 떠나고, 눈꽃들은 아침 햇살에 녹기 시작할 무렵.

티그리스는 드라코 레퀴엠 산을 올랐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네메시스나 소라, 샤를로트, 레인로버, 로건 등 티그리스와 연이 깊은 사람들은 함께 올랐다.

거기엔 심지어 토드 황제도 있었다.

베르강이 토드 황제의 옆을 호위하며 말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허허 괜찮네. 내 입장에선 여긴 동네 뒷산 수준이 아닌가?”

토드 황제의 나이대를 보면 도저히 이 가파른 산길을 오를 수 없을 거라 생각되었지만, 토드 황제는 생각보다 잘 걸었다.

물론 그 누구도 토드 황제가 자신의 몸에 ‘플라이’ 마법을 걸어 발이 땅에서 1㎝ 정도 떠서 올라가니 힘들 리가 없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옆에 슬쩍 붙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 데려가도 되는 거예요?”

티그리스는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슬쩍 쳐다봤다.

이 중에서 대부분은 자신이 왜 이 산을 오르는 것인지 모른다.

그냥 티그리스가 아침이 되었으니 산이나 오르자는 말에 모두 오르는 것이었다.

마치 직장 상사가 ‘주말에 심심하면 산이나 탈까?’라고 말하는 투였지만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었다.

“저들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레인로버는 로건의 등에 업혀 있는 샤를로트를 슬쩍 쳐다봤다.

샤를로트는 승차감이 어쩌네저쩌네 로건에게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에게 밤이 새도록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떻게 해결되었는지까지 모두 들었다.

물론 샤를로트와 로건의 입장도 들어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레인로버는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레인로버는 자신이 질투심이 있는 성격이란 것을 처음 알았다.

아니, 이건 당연한 걸까?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자신을 책임지라고 그렇게 큰 소리로 말했는데, 당연히 레인로버의 입장에선 화가 날 수밖에 없는 것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샤를로트는 레인로버가 굉장히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인데 이렇게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아무튼 레인로버는 굉장히 머릿속이 복잡해 어젯밤 잠도 자지 못했다.

드래곤 문제만 아니었다면 샤를로트와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눠봤을 텐데…….

레인로버는 세상에 근심 걱정 없이 해맑게 웃으며 로건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샤를로트가 뭔가 얄미워졌다.

자신은 이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도대체 샤를로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지금 이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걸까?

로건은 도대체 왜?

그때, 아모리스가 레인로버의 팔뚝을 잡았다.

-꺄아아아아아악!

귀곡성이 드라코 레퀴엠 산을 뒤흔든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일행들까지 모두 깜짝 놀라 발을 멈췄다.

“잡귀가 생각보다 많네요.”

레인로버는 어리둥절해서 아모리스를 쳐다봤다.

“잡귀요?”

“황녀님 지금 발 앞을 보세요.”

레인로버는 자신의 발 앞을 쳐다봤다.

그곳엔 깎아지르듯 떨어지는 절벽이 있었다.

한 발자국만 더 앞으로 갔다면 레인로버는 곧바로 떨어졌으리라.

티그리스는 레인로버의 팔뚝을 잡아 안쪽으로 이끌었다.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아, 네. 예.”

레인로버는 자신이 죽을 뻔했다는 생각에 살짝 떨고 있었다.

아모리스는 주변을 훑었다.

“마법적인 조치는 내 전문이 아니니까 뭐라는 못 하겠지만……. 주술적인 부분은 확실히 미흡하네요.”

황금용 아우로므의 봉인은 마왕을 봉인한 봉인술을 응용해 만든 봉인이다.

그러다 보니 이 드라코 레퀴엠 산이 포그우드와 비슷한 환경이 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아모리스는 베르강에게 물었다.

“이 봉인진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죠?”

“철혈 마법사들이 드라코 레퀴엠 산을 감싸고 있는 봉인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마법적인 부분만 확인하고 있었다는 뜻이네요? 따로 주술사를 부르거나 하지 않은 거죠?”

“예. 그렇습니다. 혹시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아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 주변에 잡귀가 너무 많아요. 아마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는 곳은 더 심각하겠죠.”

아모리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흠칫했다.

아이린이 당황하며 말했다.

“아우로므요? 제가 알고 있는 그 아우로므가 맞나요? 황금용 아우로므?”

아모리스는 티그리스를 보며 말했다.

“여기서는 말해도 괜찮지 않아? 이 주변에는 들을 만한 사람도 없으니까.”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더 올라가면 쉴 만한 공터가 나오니 거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지. 황제 폐하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토드 황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짐이야 지긋지긋한 아침 회의를 건너뛸 수 있으니까 나쁘지 않지. 그것보다 드라코 레퀴엠 산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굉장히 궁금하군.”

티그리스의 말대로 조금 더 올라가자 공터가 나왔다.

사람들은 그 공터에 둘러앉았고, 아모리스는 한가운데에 푸른 모닥불을 피웠다.

이 푸른 불꽃이 포그우드를 24시간 비추는 ‘푸른 불꽃의 주술’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티그리스는 홀로 일어나 설명을 했다.

“우선 설명을 하기에 앞서, 이 산에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다는 정보는 황국의 최고 등급의 기밀이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겁니다.”

사람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일단 가장 궁금한 점이 ‘왜 우리가 이곳을 오르는가?’일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오늘 황금용 아우로므를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티그리스는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황금용 아우로므를 봉인하고 있는 봉인진이 마법과 주술이 절묘하게 합쳐진 봉인진이라는 것과 이 봉인진을 창안한 사람이 페레이라와 아모리스라는 것까지.

아모리스가 그냥 대단한 혼령술사라고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최대한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경악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모두 설명을 드리기엔 너무 깁니다. 이 산을 내려가고 나면 다른 것들도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소라는 네메시스에게 작게 속삭였다.

“여기서 뭘 더 설명할 게 남았다는 거야.”

“……나도 몰라. 앞으로 또 뭘 듣게 될지 무섭다.”

티그리스는 아모리스를 보며 말했다.

“아모리스 님. 그것보다 이 산에 잡귀가 많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아모리스는 일어나 설명했다.

“큼!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까 반말…….”

아모리스와 라칸이 눈을 마주쳤다.

“아……. 아니다. 그냥 존댓말로 할게요. 일단, 이곳이 포그우드만큼 심각하진 않아요. 그러니까 잡귀들이 드라코 레퀴엠 산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한 거죠. 봉인진이 마법사 혼자서 만든 것치곤 잘 만들어진 것도 있고 드래곤이 살고 있다 보니 귀신이 잘 꼬이지 않는 점도 있죠.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요.”

“뭐가 달라진 건가요?”

“시간.”

아모리스는 공터 주변을 훑었다.

“거의 300년 동안 관리가 안 되다 보니까 부적들이 많이 망가졌어요.”

아모리스는 소라가 걸터앉은 작은 돌덩이를 가리켰다.

“소라가 앉아 있는 저 바위가 지금 영험한 부적인 줄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에?! 에?”

소라는 벌떡 일어나 돌덩이를 쳐다봤다.

돌덩이를 자세히 보니 알아보기 힘든 글씨가 써져 있었다.

“이거 부적이었어요?”

“그렇죠.”

사람들은 자기들이 걸터앉은 바위에 글씨가 써져 있지 않은지, 저마다 엉덩이를 들어 쳐다봤다.

“괜찮아요. 어차피 여기에 있는 것들은 모두 효력을 다한 부적들이라서 방석처럼 사용해도 상관없어요.”

네메시스가 손을 들며 말했다.

“그럼 더 문제가 심각한 거 아닌가요? 부적이 효력을 다했으면 봉인이 망가졌다는 뜻이잖아요.”

“음……. 그러니까 여기 드라코 레퀴엠 산 밖에 있는 것들은 봉인에 크게 영향을 미치는 부적들이 아니에요. 엄밀히 말하자면 예비용? 만에 하나 봉인이 풀렸을 때를 대비해서 만들어진 것이랄까? 그런 거죠.”

아모리스는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는 산 중턱을 정확하게 가리켰다.

“진짜 중요한 것은 저 위에 있는 거죠. 거의 300년 동안 관리되지 않은 부적이 가득할 거예요. 물론 봉인술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봐서 괜찮을 수도 있겠지만, 확실한 건 아니죠.”

아모리스는 베르강을 보며 말했다.

“그나저나 이 봉인진을 도대체 어떻게 관리해 온 거죠? 그래도 아우로므가 잘 봉인되어 있는지 구경이라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아우로므가 봉인되어 있는 동굴에는 짙은 안개로 막혀 있습니다. 마법으로도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는 상태라 아우로므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 이 봉인진을 어떻게 유지하고 보수한 거죠?”

“마법 분야는 철혈 마법사들이 관리해 왔습니다. 이 봉인진을 만드신 파테 님께서 철혈 마법사들에게 이 봉인진을 관리하는 법을 알려주고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따라만 하고 있는 중이죠.”

“그러면 그 사람들은 자기가 무엇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르고 이 봉인진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건가요?”

베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철혈 마법 병단장을 제외하면 그렇습니다.”

“참…… 배짱도 좋으시네요.”

아모리스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단 저 도마뱀…… 아니, 드래곤의 상태를 제가 먼저 보고 올게요. 일단 티그리스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여기서 대기하시는 편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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