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58화 (158/251)

#158 봉인(4)

나달이 봉인을 푸는 사이, 사람들은 아모리스가 잡은 아우로므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네메시스는 유리통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와……. 얘가 드래곤이라고?”

“왜 드래곤보고 도마뱀이라고 얕잡아 불렀는지 알 것 같아. 진짜 날개 달린 걸 빼면 도마뱀처럼 생겼네.”

“뭔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진짜 귀엽다.”

드래곤이라고 하면 언제나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는데, 손바닥 반절만 한 크기로 작아지니 애완용 도마뱀 그 이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작은 녀석이 몇백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호령하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일반적인 도마뱀보다 더 귀여웠다.

“아모리스! 그런데 얘 말 못 해요?”

아모리스는 아우로므가 마치 도마뱀처럼 몸을 말고 얼굴도 내밀지 않는 모습을 보곤 피식 웃으며 말했다.

“말을 할 수 있긴 한데 말하고 싶지 않을걸요? 저 같으면 쪽팔려서 혀를 깨물고 자살하고 싶을 거거든요.”

아우로므는 차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에 몸을 덜덜 떨었다.

작은 벽돌 뒤에라도 숨고 싶었지만, 이 유리통은 사방이 다 뚫려 있어서 어디 숨을 곳도 없었다.

아이린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열었다.

“왜 떨지? 추운가?”

“담요라도 덮어줘야 하나?”

“혼령이 추위도 느끼던가?”

“그거야 모르지. 아, 나 목도리 있는데 그거라도 둘러줘야겠다.”

유리통에 목도리가 둘리니 뭔가 이상했지만, 덕분에 아우로므는 숨을 곳을 찾았다.

아우로므는 마치 도마뱀이 벽돌 틈에 몸을 숨기는 것처럼 그늘에 몸을 숨겨 이를 갈았다.

-젠장. 젠장. 내가 왜 이런 꼴을…….

아우로므가 밀물처럼 몰려오는 수치심에 질식당해 죽어가던 중 드디어 봉인이 풀렸다.

나달은 라칸에게 받은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말했다.

“봉인은 모두 해제되었습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모리스는 아우로므가 든 통을 들었다.

“구경은 여기까지예요. 이놈은 제가 잠깐 보관하고 있을게요.”

아모리스는 곰방대를 꺼내고, 그 연기 속에 아우로므를 쏙 집어넣었다.

만에 하나 아우로므가 봉인을 뚫고 탈출해서 육체에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정말 대형 사고다.

아우로므는 자기가 죽건 말건 상관없이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을 죽이기 위해 난동을 부릴 테니까.

티그리스는 나달에게 다가갔다.

“지금 들어가도 문제는 없습니까?”

“마법적으론 문제없습니다.”

아모리스도 거들었다.

“주술적으로도 문제없어요. 들어갔다가 길을 헤매거나 악령을 만나거나 그러진 않을 거예요.”

티그리스는 검을 빼 들었다.

“그럼 바로 들어가죠.”

동굴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더더욱 넓어지는 구조였다.

기둥 하나 없이 어떻게 이 동굴이 버티고 있는지 신기할 정도였다.

샤를로트는 동굴 벽을 유심히 쳐다봤다.

“이 동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자연적인 동굴이라기보단 누군가가 인공적으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동굴 벽은 거뭇하긴 했지만 굉장히 매끈했으며 굉장히 이상적인 타원형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샤를로트는 검으로 벽을 살짝 긁어봤다.

그러나 벽에는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샤를로트가 들고 있는 미스릴 검으로도 흠집이 나지 않는다는 건 이 벽은 미스릴과 비슷한 강도거나 그 이상의 강도를 갖춘 소재로 만들어졌다는 뜻이었다.

샤를로트가 티그리스에게 물었다.

“스승님. 이거 설마 미스릴인가요?”

답은 토드 황제에게서 나왔다.

“미스릴과 흑철을 일정 비율로 섞어 만든 합금이네.”

“이 벽 천제를 미스릴과 흑철 합금으로 만들었단 말씀이십니까?”

흑철도 굉장히 비싸긴 하지만 미스릴은 같은 무게의 금과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비싼 소재다.

그 비싼 미스릴로 마감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트리샤는 벽을 만지며 조용히 혼잣말을 했다.

“이게 무슨 돈지랄인지…….”

“단순히 돈 때문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미스릴 합금으로 벽을 마감한 것이네. 이만한 크기의 통로를 기둥 하나 없이 깔끔하게 만들려면 미스릴만 한 소재가 없거든.”

트리샤는 멋쩍은 듯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선조 님들께서 아우로므를 봉인하기 위해 정말 공을 많이 들이셨군요. 이렇게 대단한 함정을 팔 정도면.”

토드 황제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는 아우로므를 봉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니라 아우로므의 둥지였네. 전해 듣기론 드워프들이 이 둥지를 설계하고 만들었다고 했네.”

“그럼 아우로므와 전투를 벌인 곳과 봉인된 곳이 다르다는 건데……. 어떻게 이곳까지 아우로므를 옮긴 거죠?”

“아우로므를 천공의 사슬로 묶고 신의 창으로 용언과 체내 마력 흐름을 막은 후 텔레포트를 이용해 이곳으로 옮긴 거지.”

소라는 뺨을 긁으며 말했다.

“그 정도로 꽁꽁 묶을 수 있으면 차라리 아우로므를 죽이는 게 더 낫지 않았나요?”

“아우로므는 경외의 비늘이라는 성물이 있었네. 그 성물 때문에 그 어떤 날붙이로도 아우로므의 비늘에 상처하나 내지 못했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봉인을 한 거네.”

“아, 맞다. 그런 성물이 있었죠.”

아우로므를 죽일 수 있었다면 루체트 황가와 파테는 수십 번이고 죽였을 것이다.

이런 허술한 봉인술로 아우로므를 봉인하는 게 아니라.

잡담을 하다 보니 저 멀리 황금빛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일동 잡담을 멈추며 숨을 죽였다.

긴 통로를 벗어나자 거대한 공동이 드러났다.

공동 주변에 놓인 찬란한 보물들과 거대하고 아름다운 조각품들엔 사람들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오직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채 잠이 들어 있는 아우로므를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드래곤이다.”

황금용 아우로므.

왜 아우로므를 보고 황금용이라 부르는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우로므의 비늘은 마치 황금처럼 번쩍였다.

주변에 광원이 없는 데도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것을 보면 드래곤의 비늘은 야명주처럼 자체 발광하는 능력이 있는 듯했다.

비늘에서 발한 황금 물결이 공동을 가득 메워서 횃불 따윈 필요 없을 정도로 밝았다.

그것보다 사람들을 압도하게 만드는 것은 그 크기였다.

몸을 웅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직 높이가 노르베르드 타워에 견줄 정도였다.

단순히 크기만으로도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놀라웠다.

토드 황제는 황금용 아우로므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러자 황금용 아우로므의 등 뒤로 붉고 기다란 번개가 죽순처럼 솟아 올랐다.

파직- 파직-

사람들은 말하지 않았지만, 저 붉은 번개가 무엇인지 알아챘다.

루체트 황가의 잃어버린 보물이자 용의 시대를 끝낸 방점.

신의 창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토드 황제는 감격스러운 눈빛으로 신의 창을 쳐다봤다.

“내가 살면서 이 창을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군.”

루체트 황가가 왜 칭송을 받는가?

루체트 황가는 대륙 곳곳에 퍼져 있는 드래곤들의 사냥에 관여했다.

사막의 지배자 화염룡 타이케스.

흑토 지대의 군림자 노룡 그란티스.

프리하르덴 지역의 서리용 프리하.

마지막으로 황금용 아우로므까지.

엘프들과 밀림을 양분했던 마법용 사투티메오와 노예 드워프들의 반란으로 쫓겨난 마테인 두 마리를 제외하면 루체트 황가가 개입하지 않은 드래곤 사냥은 없었다.

그리고 그 드래곤 사냥에 있어서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사용되었던 성물이 바로 이 ‘신의 창’이었다.

샤를로트가 로건에게 물었다.

“도대체 선조님께선 이런 드래곤을 어떻게 사냥하신 거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냥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데요?”

“지금의 프리하르덴 가문을 만드신 요나스 드 프리하르덴 님께서 서리용 프리하를 죽인 것이 맞긴 하다. 하지만 드래곤의 날개를 꺾고 날카로운 서리바람을 막아주며 서리용의 단단한 무릎을 꿇게 만든 건 프리하르덴 가문이 아니다.”

로건은 토드 황제를 보며 말했다.

“모두 루체트 황가의 귀족들과 철혈 마법 병단이 한 일이지.”

동화나 소설은 미화되기 쉽다.

악독한 드래곤을 혈혈단신으로 맞서 싸워 이긴 것으로 묘사되지만, 세상에 1대 1로 드래곤을 죽일 수 있는 인간은 역사상 없다.

“세상에 알려지기론 요나스 님께서 싸우다가 지친 프리하를 단번에 목을 베었다고 전해지지만 그것도 진실이 아니다. 드래곤의 비늘은 단번에 베어낼 수 있는 물질이 절대 아니야.”

“그럼 어떻게 프리하를 죽인 거죠?”

“잘라낼 때까지 내려치면 된다.”

동화 속에선 요나스가 단번에 프리하의 목을 베어낸 것으로 묘사되지만, 사실 요나스는 프리하의 목을 총 23번에 걸쳐서 잘라냈다.

그 과정에서 프리하가 고통에 몸부림을 치며 난동을 부리는 것을 모두 받아낸 것은 요나스가 아닌 루체트 황가의 마법사들이었다.

“……왜 전 그 사실을 몰랐죠? 아니, 왜 이런 진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거죠?”

이 진실은 샤를로트 뿐만이 아니라 벨프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 아이린도 알지 못했다.

왜 이런 정보를 꽁꽁 숨긴 걸까?

답은 토드 황제에게서 나왔다.

“그 당시엔 영웅이 필요했으니까.”

드래곤을 죽인다고 해서 모든 게 끝이 아니다.

프리하르덴 지역은 멸지와 근접해 있는 곳이라 주기적으로 몬스터들이 남하했다.

예전에는 프리하가 알아서 그 몬스터들을 처리했다고 하지만 이제는 오로지 인간이 해결해야만 했다.

“남하하는 몬스터 떼들을 막으려면 당연히 기사들이 많이 필요했고 성벽이 필요했지. 한 마디로 인력이 많이 필요했다.”

“흩어진 사람들을 모으고 규합하는 데는 영웅만 한 것이 없지. 그래서 루체트 황가는 요나스 드 프리하르덴을 영웅으로 만드는 데 서슴지 않았다.”

“소설가들을 모아 동심을 자극할 동화를 만들고 악사들을 모아 기사들에겐 명예욕을 자극하는 ‘여름 찬가’라는 노래도 만들었다. 350년 전에는 ‘여름 찬가’라는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지.”

로건은 프리하르덴의 여름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과정에서 성물이 탄생할 거라곤 아무도 예상을 못 했지.”

“……세상에.”

샤를로트는 프리하르덴의 여름의 숨겨진 이야기를 여기서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프리하르덴 가문의 가주가 바뀔 때면 황제 폐하께 허가를 받으러 가는 것이다. 프리하르덴 가문은 루체트 황가에게 빚을 진 게 많거든.”

소라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러면 노르베르드는요? 노르베르드 가문은 드래곤을 죽이지 않았는데, 왜 변경백의 지위를 보장받은 거죠?”

티그리스가 입을 열었다.

“노르베르드 지역은 척박하고 농사 하나 짓기 힘든 땅이지만 남하하는 멸지의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지.”

원래는 드래곤과 거인들이 매년 돌아가면서 노르베르드 지역을 지켰다.

하지만 700여 년 전에 노르베르드 가문이 그 땅에 터전을 잡고 살아가기 시작하자 멸지의 몬스터들을 노르베르드 가문에게 모두 맡기기로 결정을 내렸다.

“당시 드래곤들은 드윈의 검을 주며 노르베르드 가문과 백성들을 핍박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거인들은 멸지와 노르베르드 지역을 가로막는 갈리아 산맥을 선물했다고 하지. 그게 700년 전 일이다.”

그래서 노르베르드 가문만큼은 유일하게 황제에게 귀족 지위 세습에 대한 승인을 받지 않고도 세습이 가능했다.

그래도 황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세습이 끝나고 나면 황도로 가서 황제 폐하께 인사를 드리는 게 전통이 되었다.

소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뭔가 굉장히 복잡한 것 같네. 인간들의 삶은.”

“수인족의 부족 단위 생활도 인간들의 입장에선 복잡하다. 문화가 다른 것이라고 해두지.”

“아, 그렇겠네.”

아모리스는 하품을 하며 말했다.

“됐고 이제 마무리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오늘 점심 먹기 전까진 밑으로 내려갔으면 좋겠는데.”

그때, 라칸이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그래도 단체 사진 정도는 찍어둬도 되지 않을까요?”

“……단체 사진?”

“아우로므가 마지막 드래곤이니까 살아있을 때 한 번쯤은 찍어두는 게 좋잖아요. 저희가 단체로 찍은 사진이 없기도 하고.”

어디 소풍을 온 것도 아니고, 단체 사진을 찍자는 말에 사람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토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허. 라칸의 말대로 아우로므의 살아 있는 마지막 모습인데 기념 촬영도 나쁘지 않지. 그런데 사진기가 있나?”

라칸은 기다렸다는 듯이 아공간 주머니에서 사진기와 함께 직접 만든 거치대를 꺼냈다.

“다 준비했죠, 자, 이쪽을 보고 나란히 서세요.”

사람들이 어색하게 줄을 서기 시작할 때, 아모리스가 라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속삭였다.

“설마, 그거 퀘스트인가요?”

라칸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티가 났나요? 하하.”

아모리스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진짜 시스템은 참 말도 안 되는 걸 시킨다니까.”

“아모리스 님도 어서 가서 서세요. 제가 타이머를 맞추고 빨리 갈게요.”

라칸은 아우로므의 머리가 나오게 사람들을 배치했다.

“이거 역광이라 얼굴에 그림자가 지는데……. 아, 맞다.”

라칸은 얼마 전에 배운 빛 반사 마법을 등 뒤에 띄웠다.

그러자 황금용 아우로므의 비늘에서 발한 은은한 빛이 빛 반사 마법을 타고 사람들에게 향했다.

“오케이. 됐다.”

라칸은 타이머를 돌린 뒤 재빠르게 달려갔다.

그리고 아모리스의 옆에 섰다.

“그럼 모두 김치~”

“……김치?”

사람들은 모두 어리둥절했지만 아모리스는 자연스럽게 라칸의 말을 따라 했다.

“김치~”

동시에 아모리스는 라칸의 팔에 팔짱을 슬쩍 꼈다.

찰칵!

라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떴다.

[퀘스트 성공!]

살아있는 아우로므와 함께 단체 사진 찍기.

100포인트 획득!

[퀘스트 성공!]

아모리스와 함께 사진 찍기.

50포인트 획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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