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 순회(4)
레인로버는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제가 돕긴 했지만, 제가 한 일은 아니에요. 폐하께서 한 일이죠.”
에이미로는 충격을 받아 순간 표정이 무너졌지만, 정치꾼답게 금방 감정을 다스렸다.
에이미로는 와인을 모조리 삼키며 깊게 생각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자신을 실각시킨 장본인이 바로 앞에 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무렇지 않은 듯 능청을 떠는 일이었다.
“이젠 말장난도 제법 하는구나. 네가 일을 꾸며서 폐하를 움직였다면 네가 한 일이다.”
“정말이에요. 전 조언을 드렸을 뿐이지 결정은 아버지의 몫이었죠. 오라버니도 아랫사람에게 조언을 듣고 결정을 내리시지 않나요? 그거랑 똑같은 거죠.”
“넌 황녀이긴 하지만 일개 제국대학 학생이기도 하다. 네가 잘나고 말고를 떠나서 폐하께서 네 의견을 들을 이유가 없다는 거다. 넌 그럴 자격이 없으니까. 하지만 폐하께서 네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은 네 조언이 폐하의 입맛에 맞았다는 뜻이겠지. 어떻게 한 거지? 레인로버?”
당연히 회귀록 덕분이다.
티그리스는 검술에만 매진했기 때문에 황도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암투에 대해 알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기억력 하나는 뛰어나다.
누가 끝까지 루체트 황국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며, 누가 제일 먼저 배신했는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보 하나만 알고 있으면 된다.
토드 황제는 인퀴지터를 활용해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매국하고 있는 귀족들을 찾아내 골라 죽였다.
하지만 이를 설명할 수 없으니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처럼 행동했다.
“그건 제 비밀이니 말씀드릴 수 없죠.”
“이젠 아예 대놓고 뻔뻔하게 나오는군.”
“오라버니만 할까요? 오라버니가 제위를 욕심낸다는 건 사교계에서도 널리 퍼진 이야기예요. 해리 오라버니도 알고 계실 정돈데요. 하지만 루체트 황국은 생각보다 보수적이어서 큰 문제만 일어나지 않으면 장자에게 황제가 이어지죠.”
에이미로는 주먹을 꽉 쥐었다.
저 빌어먹을 장자 중심 구조 때문에 에이미로는 무엇 하나 제대로 하기가 힘들었다.
해리 황자에게 기본적으로 주어진 ‘장남’이라는 타이틀은 넘어설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오라버니가 귀족들과 야합을 하든 사교 모임을 자주 갖든 상관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키메라 사건은 선을 넘으셨어요.”
“그건 형님도……!”
“해리 오라버니는 길을 걷다가 바지에 진흙이 묻은 정도예요. 황도가 그리 썩어 있을 줄을 어떻게 알았겠나요? 누구처럼 키메라 연구를 직접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른 척’하진 않았죠.”
티그리스는 살짝 놀랐다.
에이미로 황자가 키메라 사건의 연루자였나?
회귀 전엔 밝혀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왜 이런 중요한 사실을 티그리스는 모르고 있었던 걸까?
티그리스가 레인로버를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레인로버는 애써 눈을 피했다.
“도대체 아버지께선 어디까지 알고 계신 거냐……. 해리 형님은 알고 계신 거냐?”
“해리 오라버니는 글쎄요……. 모르겠네요. 솔직히 해리 오라버니가 최근 정신이 바짝 드셔서 흑토지대도 다녀오시고 여러 방면으로 움직이고 계시긴 하지만…… 아시다시피 삽질을 하고 계시잖아요?”
에이미로의 말대로 해리 황태자가 안전하게 제위를 세습받으려면, 중앙 귀족을 만날 것이 아니라 티그리스에게 집중해야 했다.
해리 황태자의 입장에선 이미 티그리스는 낚은 물고기라고 생각하고, 불평불만을 토로하는 중앙 귀족들을 만나 달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수였다.
그놈들은 격변하는 세상에 휘말려 죽을 피라미들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달라요. 아버지께서 괜히 지금까지 온건하게 국정운영을 해오신 게 아니에요. 그게 최선이니까 그렇게 해온 거죠. 오라버니의 수족을 자르신 것도 그것이 최선이니까 자르신 거고요.”
“……해리 형님이 황제가 되는 게 최선이라는 그 말이냐?”
솔직히 레인로버의 관점에서 봐도 에이미로가 더 황제감이긴 하다.
더 정치적이고 이해득실이 빠르고 욕심도 많으니까.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다.
에이미로 황자를 따르는 귀족들은 기껏해야 끈 떨어진 연에 불과한 남부 출신 귀족들.
지금 에이미로가 권력을 틀어쥐는 순간 해리 황자와 필연적으로 부딪힐 것이고, 필연적으로 하나로 뭉친 황권이 흔들리게 될 것이다.
큰 전쟁을 앞둔 이 상황에서 황제의 권력이 분산되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무슨 대답을 원하시는지 알겠는데, 그건 제가 답할 수 없는 문제라는 건 알고 계시죠?”
“…….”
에이미로는 말없이 와인을 마셨다.
자신을 밀어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이 자리에 둘을 불렀건만 계속 이야기를 듣다 보니 자신의 자리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세상의 흐름이 에이미로를 거세게 막고 있었다.
에이미로의 눈빛이 절망의 색으로 물들기 시작하자 레인로버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오라버니를 유배시키려고 했다는 건 오해예요. 만약 유배시키려고 한다면 데킴 고원으로 보냈겠죠. 적당히 감자 농사나 지으면서 여생을 살라고 말이죠.”
데킴 평원은 흑토지대의 일부이긴 하지만, 흑토의 축복을 받지 못한 폐지(廢地)다.
정치적으로도 실리적으로 모든 것이 부족한 땅.
정말로 그곳에 가게 되면 에이미로는 평생 감자 농사만 지어야 한다.
에이미로 황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지금 만나고 계신 마법사 가문들과 자주 연락하고 지내지 마세요. 그놈들은 바스티얀 학교장님께서 벼르고 계시니까요.”
“……바스티얀이?”
“오라버니시니까 특별히 말씀드릴게요. 바스티얀 학교장님의 부모님을 살해하는 데 일조한 가문들이 바로 오라버니가 자주 연락하고 계신 그 가문들이니까요.”
“바스티얀이 그것을 알고 있는데 참고 있다고? 왜지?”
“그만큼 길리온 왕국의 일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요?”
에이미로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얌전한 고양이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발톱을 숨긴 암사자였군. 네가 막냇동생이라서 다행이다. 네가 내 형님이었다면 난 네 처우를 두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을 테니까.”
“황제가 왜 그리 되고 싶으신 건가요?”
“너답지 않게 멍청한 질문을 하는군. 레인로버.”
에이미로는 깍지를 끼며 말했다.
“한낱 인간이 거인과 드래곤을 멸종시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권력욕’이다.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고자 하는 욕구와 욕망. 그것이 없었다면 인간은 평생 드래곤과 거인의 노예로 살아왔을 것이다. 난 그 누구보다 내 욕망에 솔직했을 뿐이다.”
“혈육을 짓밟고 올라설 만큼요?”
“당연하지.”
에이미로 황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가만 보면 참 이상하구나, 레인로버. 네가 바라는 게 뭐지? 난 네가 욕심이 많은 아이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황국의 지엄한 법도를 비틀고서라도 티그리스를 붙잡았다고 생각했지. 안타깝게도 넌 막내로 태어나는 바람에 정치적 지지 기반이 없으니까. 결혼을 통해 그 지지 기반을 다지려는 것으로 생각했다.”
“헛소리예요! 전 진심으로 티그리스 경을 사랑하고 있어요. 전 티그리스 경을 이용해 제 욕심을 채울 생각은 전혀 없어요.”
“그럼 티그리스의 욕심인가? 티그리스 경 혹시 황제의 자리에 관심이 있나?”
티그리스는 에이미로를 노려봤다.
“불경한 말씀은 삼가주십시오. 황자 전하.”
“그러면 너희들이 원하는 바가 뭐지? 뭐길래 가만히 놔둬도 상관이 없는 수인족과 수교를 맺고 길리온 왕국과의 전쟁을 준비하냐는 말이다.”
“저는 그저 황국의 위협을 배제시키고자 할 뿐입니다.”
“그러니까 그 위협이 도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길리온 왕국이 그만큼 위험하다는 말이냐? 내가 봤을 땐 그렇게 위험해 보이진 않는데? 오히려 나라면 길리온 왕국과의 관계를 이 상태로 유지할 것이다.”
“그게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옛말에 성벽 너머의 괴물은 민중을 다스리는 회초리라는 말이 있다. 길리온 왕국이란 괴물을 살려둠으로써 황국을 하나로 단합시킬 수 있지. 하지만 길리온 왕국을 무너뜨린다면? 더 이상 자신들을 위협할 괴물이 없기 때문에 모래알처럼 흩어질 것이다. 황권 강화와 안정된 황권 세습을 목적으로 한다면, 길리온 왕국은 필요악이라는 말이다.”
에이미로 황자는 티그리스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티그리스의 감정 변화를 어떻게든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너희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움직이고 있어. 난 기사는 아니지만 검을 찌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시선 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티그리스 경 자네는 분명히 누군가의 목덜미를 노리고 검을 향하고 있어. 내가 판단했을 땐 그건 길리온 왕국이 아닌 것 같아.”
티그리스를 계속 떠보려고 했지만, 티그리스의 감정은 고요했다.
에이미로는 계속 시도했다.
“길리온 왕국 놈들은 말벌과도 같다. 말벌이 무서운 이유는 독 때문도 아니고 날아다니는 소리 때문도 아니라 침에 맞으면 굉장히 아프기 때문이야. 말벌의 침에 맞을 각오를 하고 죽이려고 한다면, 이렇게 요란스럽게 전쟁을 준비할 필요는 없어. 괜히 벌집을 툭툭 건드릴 필요가 없다는 거지.”
티그리스는 대답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에이미로는 티그리스와 레인로버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히 있다고 확신했다.
“그럼 도대체 나를 왜 이곳에 보낸 거지? 내가 미친 척하고 길리온 왕국과 손을 잡고 황국을 치면 어쩌려고? 수인족과의 수교를 강제로 끊고 자치령을 침공해 수인족들이 황국을 믿지 못하게 하면 어쩔 셈이지? 제위에 오르지 못하는 차남이 외세의 힘을 빌리는 것은 역사서에서도 흔히 등장하는 사건이다.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 확신하나?”
레인로버는 차분히 말했다.
“길리온 왕국을 이용하면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미치지 않았으니까요. 아직까진 말이에요.”
레인로버는 품속에서 황금색 봉투를 하나 꺼냈다.
루체트 황국을 상징하는 벼락 문양의 인장이 박힌 종이였다.
에이미로 황자의 눈이 번뜩였다.
“아버지의 뜻인가?”
“네.”
“해리 형님은? 이 사실을 알고 있나?”
“그건 저도 몰라요.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굉장히 고민하시고 결정을 내리셨다는 거예요.”
레인로버는 시종에게 교지를 건넸고, 에이미로 황자는 봉투를 받았다.
가볍다.
그러나 무거웠다.
“내가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지?”
에이미로의 시선은 레인로버가 아닌 티그리스를 향했다.
티그리스는 입을 열었다.
“전 황제 폐하의 뜻을 따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자네가 그리 말을 하니 무섭군.”
에이미로 황자는 품에 봉투를 집어넣었다.
“……루카스 후작과 관련된 자들의 목은 웬만하면 다 쳤지만, 주방장만큼은 살려두었지. 죽이기엔 스테이크 맛이 환상적이라서 말이야. 와인하고 잘 어울리지.”
에이미로 황자는 시종장에게 말했다.
“식사를 가져와라.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구나.”
에이미로의 말대로 스테이크는 훌륭했다.
***
에이미로는 페이퍼 나이프로 봉투를 잘랐다.
망설임은 없었다.
담긴 내용은 간단명료했다.
가만히 있어라.
대신, 길리온 왕국을 주겠다.
“……공수표 남발하시는 법도 아시는 분이셨군.”
길리온 왕국이 이미 멸망한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오늘 티그리스와 레인로버를 보니 아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왜 자신을 남부 사령관이라는 직책으로 보내나 했더니만, 길리온 왕국의 첫 침공을 준비하라는 뜻이리라.
“하지만 이게 최선이겠지.”
레인로버에게 욕심을 은근히 내비쳤지만, 이미 황제가 되는 건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레인로버와 티그리스가 해리 황태자를 지지할 것이다.
황권 강화를 위해?
그런 것은 레인로버나 티그리스의 관심사가 아니다.
해리 형님은 에이미로보다 다루기 쉬운 인형이니까 그럴 것이다.
“왕이라.”
황제보단 별로지만 나쁘지 않은 울림이다.
에이미로는 와인잔에 남은 반쯤 남은 와인과 와인병을 창가로 던져 버렸다.
이제 술은 끊어야지.
앞으로 준비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
다음 날, 티그리스가 향한 곳은 거인들의 무덤을 남부 철도와 연결하는 철도 공사 현장이었다.
원래라면 홍보만 하고 돌아오려고 했으나, 언제 또 에이미로 자치령에 들어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기에 기왕 내려온 김에 공사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다.
티그리스가 공사 현장에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변방의 귀족들과 기사들이 죄다 몰려들었다.
그리고 콧대 높으신 양반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드니 당연하게도 여기저기서 싸움이 일어났다.
-야 저리 안 비켜! 내가 누군지 알아?!
-네가 누군데! 으잉?!
-난 드미트리 남작님의 남동생 미켈란의 차남 존슨이다! 이 새끼야!
-뭐야?! 그러니까 그냥 방계도 아닌 찌끄래기라는 거 아니야?
-뭐?! 이 새끼가!
티그리스는 그런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왔지만, 굳이 교통정리를 하러 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을 대비해 황금 기사들을 데려왔으니까.
“레인로버 황녀 전하의 앞에서 허락 없이 검을 뽑으시면 황족 시해죄로 처벌받으실 수 있습니다.”
황금 기사들의 살벌한 눈빛과 목소리에 어중이떠중이들은 모두 입을 꾹 닫았고 그제야 티그리스는 편안하게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현장소장은 현황판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말했다.
“투입된 인부들은 4,831명, 마법사는 총 44명이나 투입이 되었고, 황국 역사상 이리 큰 규모의 토목공사는 없었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조속히 철도를 완공하라는 명을 받들어, 밤낮없이! 휴일 없이! 3교대로! 빠르게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법사들 관리는 잘되고 있나?”
“먼지 마시는 일을 처음 해보는 거라 빨리 지치긴 하는데, 괜찮습니다. 에이미로 황자 전하께서 이번 공사만 잘 도와주면 정상 참작해서 감형해 주시기로 했거든요.”
바로스 후작의 밑에서 악독한 짓을 벌이던 수십의 마법사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공사 현장에 투입되었다.
고차원의 마법을 개발하던 마법사들은 1서클 디그 마법과 인부들이 춥지 않게 곳곳에 발열 구슬을 놓는 등 일하는 기계가 되었다.
“다행이군. 그러면 완공 기일은 언제라고 생각하나?”
“이 정도 속도라면 완공은 내후년 중순에서 내후년 말에 완공될 것 같습니다.”
“속도가 생각보다 나지 않는군.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아하하……. 그것이…….”
현장소장은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워낙 관리가 안 된 지역이다 보니 몬스터들이 너무 많습니다. 땅을 파헤치다가 동면하고 있는 숲지기나 룬 베어를 깨울 때도 있고, 심지어 오크들의 군락과 마주칠 때도 있었습니다.”
“오크들을?”
“예. 그땐, 간담이 서늘했었죠. 겨울철 오크들은 워낙 드세기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눈이 붉게 물든 오크들 500마리가 갑자기 기습을 해왔는데……. 그땐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인부들의 피해는 없었나?”
“예. 다행히 A등급 용병단 하나가 오크들의 진격을 지연시켜 준 덕분에 크게 문제는 없었습니다.”
“겨우 A등급 용병단 하나가? 그게 가능한가?”
A등급 용병단의 기준은 100명 이상의 용병들을 보유하고 있어야 하고, 고리 3개짜리 용병 5명, 고리 2개짜리 용병 10명을 보유하고 있어야 된다.
S등급 용병단은 검기를 사용할 수 있는 고리 4개짜리 용병 하나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긴 하는데, 보통 검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면 다른 귀족들이 스카웃을 해가기 때문에 S등급 용병단은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러니 A등급이라고 하면 용병단 중에서 최상급이고, 순수하게 구성만 놓고 따지자면 제법 짜임새 맞게 구성된 기사단과 동일하다.
하지만 용병들의 특성상 전술 훈련이 부족하고 워낙 제멋대로 이기 때문에, 오크 500마리를 상대로 한 지연작전을 펼치는 건 거의 불가능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네. 저도 처음엔 믿지 못했습죠. 하지만 정말로 해냈습니다.”
“그 용병단엔 피해가 없나?”
“괴멸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계약을 이행하고 있는 거고요.”
티그리스는 문득 그 용병단의 단장이 누군지 궁금했다.
500마리의 오크를 상대로 지연작전을 펼칠 수 있을 정도라면, 단장의 리더십과 전술 역량이 뛰어나다는 뜻이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탐이 났다.
“그 용병단장을 한번 만나보고 싶군. 혹시 그 용병단 이름이 뭐지?”
“붉은 이리 용병단입니다. 톰이라는 용병단장이 운영하고 있죠.”
붉은 이리 용병단의 톰.
티그리스는 이 이름이 굉장히 익숙했다.
‘아.’
누구인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