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아처(1)
티그리스는 친척들을 만나고 파티를 즐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파티는 티그리스가 고향 땅을 밟은 당일 저녁에 한 간단한 멧돼지 고기 파티면 충분했다.
그럼 남은 3일 동안은 무엇을 했느냐?
촤아악-!
티그리스는 오른손이 두 개 달린 변종 오우거의 목을 벴다.
오우거의 목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솟구치며 사방에 튀었지만, 티그리스는 이미 자리를 피한 상황이었다.
오우거의 피가 사방에 흩뿌려지자 뒤쫓아왔던 트롤들이 도망쳤다.
원래 피 냄새는 몬스터들을 흥분시키지만, 오우거 정도로 강한 몬스터의 피는 오히려 몬스터들을 내쫓는다.
오우거가 피를 흘릴 정도로 강력한 포식자가 주변에 나타났다는 의미니까.
이것도 갈리아 산맥에 사는 몬스터들의 생존 전략이라 볼 수 있겠다.
티그리스는 피가 멈추자 오우거를 가까이서 관찰했다.
오우거의 몸은 티그리스의 키의 네 배에 달했고, 오우거의 몸이 쓰러지며 부딪힌 아름드리나무가 단번에 부서질 정도로 무거웠다.
트리샤가 입을 열었다.
“이놈이 찾던 변종 오우거인가요?”
“아니다. 내가 찾는 오우거는 머리가 두 개 달린 놈이다. 이건 오른팔이 두 개 달렸지.”
티그리스는 품에서 사진기를 꺼내 오우거의 사체를 여러 각도에서 찍었다.
“그런데 자료를 왜 모으시는 건가요?”
“회귀 전과 지금은 너무 많이 바뀌었다. 노르베르드를 침공하는 오우거가 머리가 두 개 달린 게 아니라 오른팔이 두 개 달린 것일 수도 있지. 그러니 사전에 자료를 모으는 거다.”
“아하.”
뒤이어 네메시스와 소라가 풀숲을 헤치고 돌아왔다.
둘의 표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발이 세 개 달린 트롤을 찾았어요. 사진은 찍어두긴 했는데……. 우엑.”
소라는 헛구역질을 했다.
“왜 그러지?”
“발바닥에 똥구멍이 달려 있었어요. 발바닥으로 똥을 싸는 어우……. 오늘 저녁은 안 먹을래요.”
“고생 많았다. 위치랑은 적어왔나?”
“네. 여기요.”
티그리스는 네메시스가 건넨 지도를 확인했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위치를 정확하게 적었다.
“그나저나 갈리아 산맥은 참 신기하네요. 이런 변종 몬스터들이 많이 발생하고.”
“멸지와 가까워서 그렇다. 그래서 다른 지역보다 변종 발생률이 100배 정도 높지. 그런데…….”
티그리스는 수첩을 톡톡 두들기며 말했다.
“평상시보다 변종 발생률이 너무 높군.”
티그리스는 딱 사흘 정도 갈리아 산맥을 돌아다녔다.
그런데 변종 몬스터를 무려 9개체나 발견했고, 심지어 한 개체는 번식까지 성공한 케이스도 있었다.
그놈은 꼬리가 달린 오크였는데, 세대를 거칠수록 꼬리의 두께가 두꺼워지고 길어졌다.
한마디로 세대를 거치며 진화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나 높은데요?”
“보통 이맘때쯤 갈리아 산맥에서 발견되는 변종 몬스터의 숫자는 3~4개체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니 두 배 정도 뛴 거지.”
“우리가 너무 잘 찾아서 그런 거 아닐까요?”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일 수도 있지. 하지만 두 배 넘게 뛴 것은 경계할 만하다. 그 말은 잊혀진 평원에서 발생한 변종 몬스터들은 더 많다는 뜻이니까.”
“더 조사를 해봐야 할까요?”
티그리스는 고래를 저었다.
“아니. 남은 건 모르고트…… 아니, 바리안에게 맡긴다.”
“아, 그 왕자님이요? 그분이 잘하실 수 있을까요?”
“잘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조사하다가 죽지는 않을 거다.”
티그리스는 회중시계를 보며 말했다.
“이제 내려가지. 내려가면 식사 시간과 딱 맞겠군.”
소라는 흐흐 웃으며 말했다.
“오늘도 멧돼지 고기였으면 좋겠다.”
“너 비위 상했다면서?”
“그래도 멧돼지 고기는 못 참지.”
“으이구.”
***
샤를로트는 눈이 소복이 쌓인 연무장 한가운데 홀로 섰다.
들숨 날숨.
“하~ 좋다.”
오랜만에 느끼는 이 자유로움.
그동안 몸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답답했었는데, 이제 드디어 검을 들 수 있게 되었다.
샤를로트는 검을 빼어 들었다.
요양하느라 거의 1달이 넘도록 검을 들지 못해 검의 무게나 감촉이 너무나도 어색했다.
가볍게 검을 휘둘러 몸이라도 풀어볼까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기로 했다.
샤를로트는 검을 휘두르는 것보다 먼저 하고 싶은 게 있었다.
티그리스가 보여준 그 검술을 재연해 보는 것이었다.
샤를로트는 중단세를 취한 채 명상에 빠졌다.
그리고 슈베어트 때를 떠올렸다.
티그리스가 슈베어트 때 보여준 그 아름다우면서도 화려한 검술.
그 검술은 검술이라기보단 정교한 마법처럼 짜임새가 있었다.
검술과 마법은 본질이 같은 마나를 사용하지만, 그 구성과 사용 방식이 아예 다르다.
마법은 굉장히 기계적이지만 정확한 현상을 표현할 수 있고, 검술은 굉장히 감각적이지만 파괴적이다.
검술은 애초에 무언가를 부수고 앗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만, 마법은 본질이 파괴가 아니라 창조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래서 티그리스가 굉장한 것이다.
티그리스는 그 경계를 허물었다.
검을 단순히 휘둘렀을 뿐인데 주변 환경이 영향을 받아 마법과도 같은 현상을 일으켰다.
그것은 마치 그 옛날 페레이라가 이루었다던, 마법과 검술의 합일을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티그리스는 이것을 마법이 아닌 검술이라고 칭한다.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되짚어보자.’
티그리스는 검을 내려쳤을 때부터 아름다운 얼음 조각을 피워냈던가?
아니면 오러를 회전시켰을 때부터 주변이 얼어붙기 시작했던가?
분명히 후자다.
그 말은 검의 움직임보다 오러 운용이 우선된다는 뜻이 된다.
사실 오러 운용만으로 주변의 온도를 떨어뜨리는 것은 샤를로트도 가능하다.
프리하르덴류의 기본 오러 운용술인 ‘빙정(氷晶)’을 사용하면 검기가 냉기를 품어 주변 공기의 온도를 영하로 떨어뜨릴 수 있다.
하지만 티그리스가 보여준 검술은 프리하르덴류와 완전히 다르다.
티그리스는 분명히 오러 운용만으로 공기와 땅이 머금은 마나를 자극하여 얼어붙게 만들었다.
‘차라리 마법이라고 하면 믿겠어.’
어떻게 티그리스는 오러 유동만으로 육체에서 동떨어진 주변 환경에 영향을 준 것일까?
그때, 티그리스의 말 한마디가 스쳐 지나갔다.
-이해하려 들지 마라. 그저 따라 하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아기가 처음 몸을 움직일 땐 근육의 움직임을 완벽히 이해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오직 본능과 감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샤를로트는 다시 숨을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좋아. 일단 따라 해보라는 거지?’
샤를로트는 티그리스가 보여주었던 오러의 움직임을 떠올리며 차분히 따라 하기 시작했다.
티그리스가 보여주었던 오러 유동의 핵심은 규칙성이었다.
언뜻 보기엔 그저 쭉 이어진 실선과도 같은 고요한 움직임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동이 있었다.
마치 호숫가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치는 것과 같다랄까?
아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리듬이라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약하지만 분명한 리듬.
그 리듬을 따라 하는 것이다.
이해하지 말고.
샤를로트의 검에서 푸른 검기가 피어올랐다.
그 검기는 굉장히 얇아서 겉으로 보기엔 검기가 있는 건가 싶을 정도로 굉장히 옅었다.
뒤이어 몸 전체에서 검기와도 같은 옅은 푸른 불꽃이 피어올랐다.
이윽고 검과 몸을 둘러싼 푸른 불꽃이 작게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마치 모닥불 앞에서 북을 치면 불꽃이 춤을 추는 것처럼.
샤를로트는 마음속에 작은 북을 만들어 쳤다.
둥- 둥-
‘아니야. 이것보다 더 파동이 작았어.’
더 작고 세밀하게.
하지만 확실한 리듬을 갖고 움직였다.
둥- 둥-
‘그리고 이것보다 더 빨랐지.’
둥-둥-둥-둥-
샤를로트는 마음에 만든 북을 더 빠르게 쳤다.
더 빠르게.
더 빠르게.
그러자 주변 환경이 변하기 시작했다.
칼바람이 불며 하늘에서 내리기 시작한 눈 결정이 더욱 단단하게 굳어 바람에 상처를 낸다.
쩌적- 쩍-
검에 푸른 서리가 붙기 시작하며 샤를로트의 금발이 흰색으로 물든다.
샤를로트의 눈썹마저 서리로 물들기 시작할 때, 샤를로트는 눈을 떴다.
그리고 검을 내려쳤다.
검에서 발한 검기의 파동이 공기를 찢자 공기가 놀라며 급격히 얼어붙는다.
그리고…….
툭-!
검기로 만들어진 얼음 조각이 눈 위에 살포시 떨어졌다.
샤를로트는 눈에 파묻힌 얼음 조각을 내려다봤다.
크기는 손톱만 했고 손을 대면 부서질 것처럼 여렸다.
하지만 날카로웠다.
“됐다.”
샤를로트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축하한다. 샤를로트.”
로건이었다.
“대단하구나. 그 검술을 단번에 성공하다니.”
샤를로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그렇게 어렵진 않았어. 그…… 안 어렵단 건 아닌데, 내겐 쉬웠다고 해야 할까? 이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네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검술을 티그리스가 만들어주었으니 그럴 것이다.”
“그런가? 아무튼 스승님도 참 대단해. 어떻게 이런 검술을 만들 생각을 한 거지? 주변 환경을 변화시키는 검술이라니. 그 말은 주변을 지옥처럼 뜨겁게 만드는 검술도 만들 수 있다는 뜻이잖아.”
“만든다면 만들 수 있겠지. 물론 그 검술을 따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가정하에.”
“하긴 스승님이 아무 이유 없이 그런 검술을 만들 이유가 없지.”
로건은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저녁에 파티가 있는 거 알고 있겠지?”
샤를로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안 가면 안 되는 거지?”
“너는 프리하르덴 백작 가문의 후계자다. 오늘하고 내일은 프리하르덴 지역의 모든 귀족이 모이는 자리이니 네 얼굴을 보여줘야지.”
“하……. 알았어. 그런데 스승님은 내일 오는데, 왜 오늘도 파티를 하는 거야?”
“먼 곳에서 미리 온 귀족들이 많다. 그놈들이 엄한 곳 가서 술판 벌이다가 깽판 칠 바에는 내가 지정한 곳에서 깽판을 치라는 의미에서 미리 파티를 연 거지.”
“……뭐야 그런 시답잖은 이유였어?”
“그래. 이게 다 귀족들을 부리는 노하우다. 이제 슬슬 배워두도록 해라.”
샤를로트는 입술을 삐죽였다.
“스승님은 파티 같은 거 안 해도 귀족들을 잘 다루던데?”
“그럼 너도 소드마스터가 되거나 유명해져라. 그러면 놈들이 알아서 설설 길 테니까.”
“소드마스터가 되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 그런데 나 드레스 입어야 하는 건 아니지?”
로건은 콧방귀를 뀌었다.
“네가 드레스는 무슨. 입으라고 해도 안 입을 거면서.”
샤를로트는 피식 웃었다.
“아빠는 날 너무 잘 알아.”
“잔말 말고 어서 따라오기나 해라. 드레스는 안 입더라도 가벼운 화장은 해야 하니까.”
“으엑.”
***
해가 떨어지자 프리하르덴의 성에서 파티가 열렸다.
프리하르덴 지역의 유지나 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다 모였다.
프리하르덴 가문도 노르베르드 가문 못지않게 파티를 즐기는 타입이 아니기에, 이런 성대한 파티가 언제 또 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선남선녀들은 물론이고 이름 꽤 날린다는 기사들까지 모두 모인 자리였지만, 파티 주인공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샤를로트였다.
20대 초반에 4성 기사가 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티그리스의 제자이기까지 하니 앞으로 프리하르덴의 미래가 밝다는 평이 나돌았다.
그 때문인지 샤를로트와 대화라도 한번 해보기 위해 귀족들은 앞다투어 선물 공세를 해왔다.
“최근에 소더비즈 경매장에서 나온 한정판 화장품입니다. 햇빛에 달아오른 피부를 진정시켜 주고 백옥같은 피부를 유지시켜 준다고 합니다.”
“이것은 마나가 함유된 옥으로 만든 비녀입니다. 샤를로트 님과 정말 잘 어울릴 겁니다.”
“이건 조말론에서 나온 No.5라는 제품입니다. 아시겠지만 No.5는 사랑을 향기로 표현한 향수라고 하죠.”
화장품이니 비녀니 향수니 이런 것은 샤를로트의 관심사 밖이다.
전쟁터에서 향수를 뿌리며 전투를 하라는 뜻인가?
그 말은 귀족들이 샤를로트를 기사보단 ‘영애’로 보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물론 아직 기사서임을 받지 않아 기사는 아니긴 하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샤를로트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감사합니다. 그…….”
저 느끼한 콧수염을 기른 아저씨의 이름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뒤에 있던 시녀가 조용히 말해주었다.
“곤차르바 자작님의 차남 조지 경이십니다.”
시녀의 말을 듣곤 그대로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곤차르바 자작님의 차남 조지 경.”
“……아.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편하게 조지라 부르셔도 됩니다.”
“아, 제가 실수했네요. 미안해요. 조지 경.”
샤를로트의 표정을 보니 전혀 미안해 보이지 않았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조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나중에 따로 저녁이라도…….”
조지의 눈이 샤를로트의 아름다운 몸을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갔다.
제 딴에는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샤를로트는 조지의 눈에 담긴 음습한 감정을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샤를로트는 그냥 엎어버릴까 고민하다가 참았다.
“아뇨. 저녁은 별로고요.”
샤를로트는 살기를 담아 작게 속삭였다.
“결투라면 관심이 있는데?”
“……아하하하!”
조지는 등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아……. 예. 그 제가 샤를로트 영애에 비하면 아직 많이 모자라서…….”
“아쉽네요. 그럼 다음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니 비켜주시겠어요?”
“……네.”
조지는 잽싸게 뒤로 물러났다.
샤를로트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이래서 파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다.
프리하르덴 백작의 후계자로서 어쩔 수 없이 이런 의례적인 행사를 해야 한다는 게.
드레스까지 입었으면 아주 짜증이 폭발했겠지만, 그나마 덜 불편한 제복을 입고 있었기에 다행이었다.
다음은 부자 관계로 보이는 사내 둘이 왔다.
다소 거친 생활을 해왔는지 두 사람 손이 거칠고 흉터로 가득했다.
예복도 유행이 지난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다.
누추한 모습에 다른 이들은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반갑습니다. 샤를로트 영애. 저는…….”
“어? 아처?”
샤를로트는 반가운 표정을 지으며 젊은 사내의 이름을 불렀다.
“너 새 사냥꾼 아처 맞지?”
아처라 불린 사내는 무뚝뚝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영애.”
“와~ 세상에 진짜 반갑다.”
어렸을 적 샤를로트가 잘 어울렸던 친구가 있다면 바로 이 녀석이었다.
워낙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길 좋아하는 샤를로트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같이 사냥을 하고 들판에서 새고기를 구워 먹었던 녀석이 바로 아처였다.
“너 얼굴하고 목소리가 많이 바뀌어서 못 알아볼 뻔했어. 우리가 몇 년 만에 만난 거지?”
“12년 정도 되었습니다.”
“진짜 오래되긴 했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요새도 사냥 자주 해?”
“네.”
“요즘은 뭘 사냥하는데? 옛날엔 새를 많이 잡았던 것 같은데.”
“호랑이를 주로 사냥합니다.”
“와~ 너 꿈을 이뤘구나! 너 나중에 호랑이 사냥꾼 되고 싶다고 했잖아!”
“네.”
귀족들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샤를로트가 저렇게까지 호감을 표시하며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여태껏 없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샤를로트가 말을 더 많이 하고, 아처는 간단한 대답만 할 뿐이었다.
샤를로트는 아처가 어렸을 때부터 말이 별로 없는 성격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신경은 쓰지 않았지만, 옆에 있는 아처의 아버지 존은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존은 아처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처는 그제야 자신이 갖고 온 선물을 건넸다.
백호 가죽으로 만든 망토였다.
“여기. 선물입니다.”
샤를로트는 망토를 받자 진짜 감동한 듯이 눈빛을 반짝였다.
“와~ 너 약속 지켰구나? 나중에 나한테 백호 가죽으로 만든 망토 주기로 했잖아!”
“네.”
“정말 고마워. 진짜 잘 쓸게.”
“그리고 이것도…….”
아처는 칼집 허리띠를 건넸다.
“이건 굉장히 튼튼해 보이는데? 무슨 가죽으로 만든 거야?”
“회색 순록입니다.”
“프리하 산맥에 있는?”
“네.”
“정말 고마워. 마침 딱 필요하던 거였는데. 진짜 잘 쓸게.”
“그럼 저는 이만.”
“아, 잠깐만.”
샤를로트는 돌아가려는 아처를 붙잡았다.
오랜만에 만난 어렸을 적 친구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것도 있었고, 아처에게 궁금한 게 하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론 너 어렸을 때부터 활을 잘 다뤘었잖아. 날아다니는 새도 맞추고. 지금도 잘 다뤄?”
“네.”
“얼마만큼 잘 다루는데?”
아처는 답변은 담백했다.
“세상에서 제일.”
아처의 답변은 귀족들의 배배 꼬인 심기를 건드렸다.
샤를로트와 친근하게 대화하는 것도 불편해 죽겠는데, 활을 세상에서 제일 잘 다룬다는 오만한 소리를 해대니 귀족들은 질투심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인내심이 약한 어린 귀족들이 제일 먼저 나섰다.
“저 오만한 놈! 세상에서 제일 활을 잘 다룬다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말이야! 세상에서 제일 활을 잘 다룬다고?! 허!”
높은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샤를로트는 아처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이 덤덤하면서도 차가운 눈.
어디선가 많이 본 눈빛이다.
그래.
이 눈빛은 티그리스의 것과 비슷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