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76화 (176/251)

#176 아처(2)

사방에서 힐난이 날아오자 존은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하나뿐인 아들이 귀족들의 자존심을 건드렸으니 큰 화가 밀려올 것이다.

존은 물론 황국의 자작 가문 중 하나인 빌튼 가문의 성씨를 쓰고 있긴 하지만 직계가 아닌 방계다.

그것도 방계 중 방계.

귀족들의 분노를 받는다면 존과 아처 그리고 존이 다스리는 낡은 성채는 하루아침에 쓸려 나가고 말 것이다.

심지어 샤를로트의 눈빛도 심상치 않다.

말없이 아처의 눈을 바라보기만 한 지가 벌써 5초째.

존의 입술은 말라가고 등허리에 땀이 흐른다.

그렇다면 존이 해야 할 일은 하나다.

철없는 아들 대신 용서를 비는 것.

존은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 아들이 멋모르고…….”

“증명할 수 있어?”

샤를로트는 존의 말을 무시하고 아처만을 보고 있었다.

존은 고개를 슬며시 들어 샤를로트를 봤다.

샤를로트는 슬며시 웃고 있었다.

“네가 세상에서 제일가는 궁수라는 말 증명할 수 있겠냐고.”

아처는 담백히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좋아.”

샤를로트는 아처의 재능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날아다니는 새를 슬링과 화살로 맞히고 다니는 녀석인데 재능이 없을 리 없었다.

문제는 아처가 처한 상황이다.

샤를로트도 아처는 일반 귀족이 아닌 방계 출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처에게 필요한 것은 방계 귀족이라는 족쇄를 끊어낼 단 한 번의 기회였다.

그것도 굉장히 강력한.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아침 네 실력을 보고 싶어. 괜찮을까?”

“네. 좋습니다.”

샤를로트는 로건을 슬쩍 쳐다봤다.

로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아처의 활 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얼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나 뛰어난지는 로건도 몰랐다.

트리니티에 합격할 수준으로 재능이 출중하다면, 반드시 품어야 하는 사람이니 미리 품어둬야 한다.

“내일 아침 와이번 비행장으로 나오도록.”

아처와 존은 고개를 숙였다.

“예. 감사합니다.”

***

존과 아처는 파티가 끝나기 전에 성을 나와 근처에 있는 싸구려 여관으로 향했다.

다른 귀족들은 좋은 호텔이나 아니면 저택에서 머물 테지만, 아처와 존은 그럴 돈이 없었다.

물론 샤를로트에게 방 한 칸 내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말없이 밖으로 나왔다.

아처와 존은 별이 총총히 빛나는 길을 걸었다.

“아들아…….”

별과 달마저 침묵한 외로운 길가로 추레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가로질렀다.

아처는 아버지의 부름에도 고개를 돌려 쳐다볼 수 없었다.

그저 발을 멈춰 설 뿐이었다.

“네. 아버지.”

“……미안하다.”

아처는 과묵하고 표정이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해서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검도 못 쓰는 주제에 네까짓 게 귀족이냐면서 아버지와 자신을 욕할 때, 아처는 분노가 들끓었다.

하지만 아처가 나서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처는 평민보다 높지만 귀족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방계 출신이다.

이 출신 성분으로 평민 무리에도 낄 수 없었고, 귀족의 반열에도 오를 수 없었다.

검에 재능이 없어 기사가 될 수 없고, 방계 출신이긴 하지만 귀족이라는 딱지 때문에 대놓고 용병 일을 할 수도 없는 신분이다.

양쪽에서 질투와 혐오를 받으며 살아가던 그런 나날 속에서 아처를 구해준 사람은 오직 하나였다.

샤를로트.

샤를로트는 프리하르덴의 후계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처를 제대로 봐주었다.

산과 들로 돌아다니며 사냥을 할 때는 자신이 누구인지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오직 샤를로트의 친구.

그것만 기억해 낼 수 있었다.

그래서 샤를로트가 검술을 본격적으로 배우겠다며 사냥 놀이를 멈췄을 때, 아처도 자신의 이빨을 갈고닦기 시작했다.

아처는 자신에게 무슨 재능이 있는지 알고 있었다.

1㎞ 밖에 있는 참새의 움직임도 포착할 수 있는 놀라운 시력과 궁술이었다.

아처는 매일같이 손에 피가 날 때까지 활을 연습했고, 그 노력을 드디어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왜 사과를 하십니까. 제가 잘못한 것을요.”

아처도 자신이 경솔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파티장에서 보여준 아처의 돌발 행동은 존과 성채를 위험에 처하게 했다.

존과 성채는 방구석에 스며든 곰팡이처럼 존재감 없이 살아왔다.

그것이 존과 아처 그리고 성채의 생존 방식이었다.

귀족들의 눈에 띄면 밟혀 죽을 수 있기에 숨죽이며 살아온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로건과 샤를로트에게 자신의 재능을 증명받을 기회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자신의 재능에 자신이 있었으니까.

“네게 도움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존은 아처의 재능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처의 출신 때문에 아처는 그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채, 마치 나뭇가지에 매달린 겨울눈처럼 봉오리를 꾹 닫은 채 살아왔다.

어렸을 때 들과 산으로 뛰어다니며 같이 놀았던 친구는 재능을 꽃피웠지만, 자기는 갑갑하게 살아야 한다는 현실에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 사과하는 것이다.

내 아들은 자신이 품기엔 너무 큰 존재이기에.

그 마음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처는 메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께서 호랑이를 잡을 땐, 단 하나의 화살로 잡아야 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엄한 곳에 맞거나 빗나가면 죽는 것은 저라고요. 그러니 쏠 때는 신중하게 그리고 침착하게 반드시 죽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 그리고 각도에서 화살을 날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처는 달빛에 반짝이는 늙은 아버지의 눈물을 보며 말했다.

“전 시위를 놓았고, 범에게 화살이 날아가는 중입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이 화살이 범의 급소를 꿰뚫고 죽이지 못하면 아처가 죽는다.

그러나 아처는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화살은 반드시 놈의 급소에 맞을 겁니다.”

아처는 별과 달이 축복하는 길을 걸었다.

***

다음 날 아침.

약속한 대로 아처는 자신의 활을 들고 프리하르덴의 와이번 비행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활을 들고 온 사람은 아처 만이 아니었다.

다른 귀족들과 기사들도 활을 들고 있었다.

“지가 얼마나 잘 쏜다면 얼마나 잘 쏜다고.”

“우리가 그냥 검만 쓸 줄 아는 놈들로 아는 모양이지? 우린 프리하르덴이야.”

프리하르덴 지역의 기사들은 다른 지역의 기사들과 다르다.

프리하르덴 지역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활과 투창을 다룰 줄 안다.

프리하르덴 가문이 친교를 목적으로 와이번을 하나씩 선물해 주는데, 그 와이번을 타고 검을 휘두를 수 없어 활이나 투창을 사용해 몬스터들을 사냥하기 때문이었다.

“난 와이번을 타고도 토끼를 잡아본 몸이야. 평지에서 표적 맞히는 건 일도 아니지.”

“저 오만한 놈의 손을 꺾어버려야지.”

그래서 귀족들은 모두 기세등등한 상태였고, 아처를 반드시 이겨서 샤를로트와 로건의 총애를 받으리라 다짐했다.

그때, 샤를로트와 로건이 와이번 펠레를 타고 나타났다.

샤를로트는 어제 아처가 준 백호 가죽 망토와 오우거 가죽 벨트를 착용한 채였다.

그 모습에 귀족들의 질투심은 하늘을 찌를 듯이 올라갔다.

샤를로트와 로건은 와이번에서 내려왔다.

로건은 귀족들의 활을 보며 말했다.

“오늘 아처의 활 솜씨만 보기로 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프리하르덴 지역의 귀족들 중 프리하르덴 가문 다음으로 명망 높은 빌튼 자작이 앞으로 나와 설명했다.

“아처에게 황국이 얼마나 넓은지 깨달음을 주고자 나섰습니다.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냥 아처의 콧대를 눌러주고자 온 것이다.

로건은 그런 귀족들과 기사들의 속내를 알고 있었기에 피식 웃었다.

“흐음~ 역시 그랬군. 그나마 다행이군. 혹시나 해서 화살하고 투창을 넉넉히 준비해 왔거든.”

촤라락!

기사들이 화살 50개와 투창 20개를 내려놓았다.

로건은 아처를 보며 말했다.

“아처. 혹시 투창을 사용해 본 적은 있는가?”

“없습니다.”

“그래? 그러면 투창은 빼는 게 좋겠군.”

“하지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처의 말에 로건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좋네. 그러면 자네 말대로 투창도 사용하도록 하지.”

로건은 귀족들을 보며 말했다.

“화살과 투창엔 개수에 제한이 있다. 아처를 제외한 경기에 출전할 선수 9명을 10분 내로 뽑도록. 난 그동안 표적을 준비하도록 하지.”

귀족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샤를로트가 아처에게 다가왔다.

“너무 일이 커진 것 같은데 괜찮아?”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길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믿을게.”

이미 대충 이야기가 되었는지, 9명은 금방 뽑혔다.

모두 전용 와이번이 하나씩 있는 기사 출신이었다.

로건은 기사들 앞에서 규칙을 설명했다.

“규칙은 간단하다. 내 와이번과 묶어놓은 붉은 나무토막이 보일 거다. 저 나무토막을 많이 맞힌 사람이 이기는 것이다.”

“……설마 날아다니는 와이번을 맞히는 겁니까?”

“그 정돈 되어야 활을 잘 다룬다고 할 수 있겠지. 안 그런가?”

와이번은 현존하는 몬스터 중 제일 빠른 몬스터다.

날아다니는 새를 맞히는 것도 힘든데, 와이번의 등허리에 묶여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무토막을 맞히라니.

기껏해야 멀리 떨어진 표적을 누가 더 많이 맞히나로 대결하는 줄 알았던 기사들은 아연실색했다.

“그럼 와이번은 누가 모는 겁니까?”

“그거야 당연히 내가 해야지. 펠레의 등에 탈 수 있는 건 나랑 샤를로트뿐이거든.”

“네?!”

귀족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금 로건 백작님이 날아다니는 와이번을 맞히라는 뜻입니까?”

“왜? 자신 없나?”

“그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로건 백작님의 와이번을 맞히라는 건…….”

“나를 맞히는 게 아니라 와이번이 묶고 달리는 표적을 맞히라는 걸세. 그리고 와이번과 표적 사이의 거리는 대략 20m일세. 그것도 못 맞힐 거면 경기에 나오지 말아야지 않겠나?”

“아니, 그래도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나와 와이번 쪽으로 날아오는 표적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말게.”

로건의 말에 기사들은 손을 떨었다.

로건은 기사들의 두려움을 읽곤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자신이 없으면 빠지게.”

로건의 말에 물러나는 기사들은 없었다.

자존심으로 먹고사는 종족답게 한 번 나서기로 한 이상 죽이 되는 밥이 되든 해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원래 아처의 실력만 보려고 했지만 일이 커졌으니 내기가 걸려야겠지. 이 경기에서 이긴 사람은 내가 직접 티그리스에게 소개해 주는 것뿐만이 아니라 작은 소원도 하나 들어주겠네. 이 정도면 나쁘지 않겠지?”

로건은 와이번 등허리에 꽁꽁 묶인 나무토막을 다시 점검한 뒤 와이번 위에 올랐다.

“그럼 바로 시작하겠네. 제한 시간은 30분일세. 누가 더 많은 화살과 투창을 맞혔는지 표적을 보면 알겠지?”

샤를로트는 아처를 쳐다봤다.

아처는 무심하게 녹색 마크 표시가 된 투창과 화살을 점검하고 있었다.

과연 아처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샤를로트는 내심 기대가 되었다.

***

로건이 하늘을 날고 난 후 정확하게 30초 후 경기가 시작되었다.

출전한 기사들은 섣불리 투창과 화살을 던지지 못하고 있었다.

와이번은 평소보다 천천히 날고 있었지만, 혹시나 로건을 맞히지 않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처가 활시위를 당겼다.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아처를 쳐다봤다.

아처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오러의 움직임 때문이었다.

아처는 오러 고리를 무려 2개나 돌리면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아처의 활은 평범한 활이 아니었다.

오우거의 힘줄을 특수 약품 처리하여 인장강도를 10배 이상 올린 괴물 같은 놈이었다.

몸체는 탄력 있고 단단하기로 소문이 난 프리하르덴산 철목으로 만든 것으로, 활시위의 힘을 버티기 위해 없는 돈을 끌어모아 강화 마법 인챈트까지 한 놈이었다.

물론 이 활로 죽인 호랑이만 해도 20마리는 넘어갔기 때문에 본전은 뽑았다.

아처는 표적을 쳐다봤다.

표적은 느렸다.

저 정도면 눈감고도 맞힌다.

아처는 바람의 흐름을 느끼며 시위를 놓았다.

퉁-!

바람을 찢는 소리와 함께 화살은 매가 토끼를 사냥하는 것처럼 빠르게 날아갔고 표적을 물어뜯었다.

퍽!

아처의 화살은 표적의 중심부를 정확하게 맞혔다.

화살에 담긴 힘이 얼마나 강한지 화살 깃만 남기고 모조리 파고들었다.

아처는 활을 내려놓고 기사들과 귀족들을 쳐다봤다.

자신은 맞혔으니 어서 쏘라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기사들은 이를 갈며 시위를 놓았다.

당연하겠지만 대다수는 표적을 맞히기는커녕 허공을 갈랐다.

‘저 녀석은 맞혔는데 왜?!’

쉬워 보인다고 해서 쉬운 게 아니다.

기사들은 제발 하나라도 맞아라 하는 식으로 남은 화살들을 전부 다 쏘았다.

하지만 표적엔 한두 개를 제외하곤 맞지 않았다.

로건은 몇몇 화살들이 표적에 맞자 이번엔 더욱 빠르고 불규칙하게 날아다녔다.

아처는 그제야 활을 다시 들었다.

그리고 기사들은 경악했다.

아처는 시위에 화살을 2개나 걸었다.

아처는 활을 놓았고, 화살 두 개가 각기 다른 바람을 타고 날아가더니 표적을 물어뜯었다.

사람들은 믿기지 않는 듯 아처를 쳐다보았지만, 아처는 다시 시위를 당겼다.

이번엔 활시위에 세 개의 화살이 걸렸고, 또다시 놓았다.

곡예와도 같은 비행을 하며 날아가던 화살은 다시 표적을 물어뜯었다.

마지막으로 투창.

‘설마 투창까지…….’

아처는 자신에게 검술의 재능이 없음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에 던지는 근육을 발달시킴과 동시에 오러 운용술 또한 개발했다.

비록 화살이나 투창에 강기를 담지 못해 명확한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아처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아처는 투창을 연속으로 두 번 던졌다.

어떤 것은 느리게 어떤 것은 빠르게 날아간 투창은 와이번의 불규칙한 움직임을 명확하게 포착해 표적을 동시에 명중시켰다.

그 곡예를 본 기사들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처가 제법 뛰어난 사냥꾼이란 건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로건은 선수들에게 남은 투창과 화살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내려왔다.

그리고 표적을 확인했다.

표적에 박혀 있는 화살과 투창의 개수는 합쳐서 총 7개.

모두 녹색 마크 표시가 된 것이었다.

분명 몇몇 귀족들의 화살과 투창이 꽂혔었는데, 보이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표적을 맞힌 화살과 투창들은 모두 아처가 날린 화살과 투창에 의해 모조리 파괴되었기 때문이었다.

날아다니는 표적도 모자라 다른 사람이 맞힌 화살과 투창까지 부수며 맞힌 기예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소름이 돋았다.

“누가 이겼는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되겠지?”

기사들과 귀족들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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