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 입학(3)
티그리스는 겨루를 데리고 기숙사 앞 작은 뜰에 데리고 갔다.
-받아라.
티그리스는 겨루에게 작은 상자를 건넸다.
-이게 뭔가요?
-세계수의 씨앗.
-네?!!
겨루는 깜짝 놀라서 상자를 떨어뜨릴 뻔했다.
무슨 세계수의 씨앗을 저렇게 담담하게 넘기나?
눈빛이나 표정으로 보면 가정통신문을 건네는 줄 알겠다.
-테호 대장로님께서 네겐 세계수의 씨앗에 대해 이야기해 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었나?
-아뇨. 알고 있긴 하죠……. 그런데 제가 보게 될 줄은 몰랐죠. 혹시 열어봐도 되나요?
겨루의 꼬리가 빳빳하게 세워지고 끝이 아주 살짝 흔들렸다.
얼른 상자를 열어서 안을 확인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물론이지.
겨루는 침을 꿀꺽 삼키며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책자와 여러 씨앗과 독특한 향기를 내뿜는 물약병들과 한가운데에 주먹만 한 크기의 씨앗이 있었다.
-와…….
겨루는 작게 감탄사를 내뱉더니 입을 열었다.
-크기만 클 뿐이지 되게 평범해 보이네요.
부정하기 힘들었다.
그냥 겉모습으로만 보면 이게 세계수의 씨앗이 아니라 그냥 돌멩이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평범하게 생겼으니까.
하지만 세계수의 씨앗이 맞다.
-이걸 네게 보여주는 의미를 알겠나?
겨루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제 재능 때문인가요?
-그렇다.
겨루의 재능은 나무지기.
식물을 관리하고 성장시키는 데에 있어서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의 재능이었다.
나무지기의 재능이 그리 희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상급으로 나온 건 500년 만에 처음이라고 들었다.
겨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잘할 수 있을까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보단 낫겠지. 그리고 넌 어려서부터 나무들을 관리하는 나무지기였다고 들었다. 맞나?
-네. 맞아요. 열대우림에서 나무 관리는 필수거든요! 그래야 나무들과 저희 부족의 촌락과 상생할 수 있으니까요.
수인들도 엘프들 못지않게 나무를 사랑한다.
물론 부족마다 식물에 대한 관점 차이는 다를지라도 웬만하면 나무를 베거나 나뭇가지를 부러뜨리지 않는다.
엘프들이야 세계수로부터 나왔으니 식물을 관리하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수인들이 왜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엘프들과 밀림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나무를 조심스럽게 다루다 보니 좋아졌다라는 설도 있고, 수인들도 엘프들처럼 처음부터 식물을 좋아했다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은 학설일 뿐이고, 수인들이 나무를 소중하게 다루는 이유는 따로 있다.
-아, 티그리스 님은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왜 나무지기가 필요하냐면요…….
-대충 안다. 몬스터들을 막는 결계의 역할을 한다지?
-와! 진짜 많이 아시네요!
겨루는 정말 신이 났는지 눈빛을 반짝였다.
-나무지기는 테호 대장로님이나 마야처럼 주술사가 주술을 부릴 수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나무들을 관리해요. 나무들이 오래 산다고 하지만 결국엔 죽잖아요? 부적 역할을 하는 나무가 늙어서 죽으면 그 자리를 대신할 어리고 싱싱한 나무를 심거나 찾아야 하거든요. 제가 바로 그 나무들을 찾고 관리하는 역할을 해요! 그리고…….
겨루는 자기 전문 분야가 나오자 와다다다! 말하기 시작했다.
주술적으로 영험한 나무들의 종류는 크게 다섯 가지로 상수리나무, 호두나무 그리고 티그리스가 아직 배우지 못한 단어로 조합된 세 개의 나무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부터 시작해서 그 어린 나무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까지 꼬리를 살랑이며 말했다.
게다가 겨루는 5살 때부터 나무들을 관리해 왔으며 자기 아빠와 엄마도 나무지기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었고 테호 대장로님과는 굉장히 먼 친척이라는 것과 마야는 굉장히 착한 친구이고 어렸을 때부터 친하게 지낸다고까지 말해왔다.
‘듣던 대로 말이 끊이질 않는군.’
겨루가 사람의 혼을 쏙 빼놓는 이야기꾼이라는 걸 테호 대장로에게 듣긴 들었는데, 이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제 레니가 야식으로 만들어준 닭고기 감자 스튜? 그거 정말 맛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채식은 못 해서요……. 미안해서 감자는 남기고 말았어요. 레니에게 사과를 하는 게 좋을까요?
-내가 레니에게 네가 채식을 못 한다고 이야기해 주마.
-아! 정말요? 그럼 제가 왜 채식을 못 하게 되었냐면요…….
티그리스는 잔뜩 흥분한 겨루를 제지했다.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는 것으로 하지.
-아, 죄송해요. 제가 너무 혼자서 이야기를 했죠. 제가 기르는 나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좋아하다 보니 말이 너무 많아졌어요. 이런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겨루의 귀와 꼬리가 축 내려앉았다.
뭔가 물벼락 맞은 고양이…… 아니, 호랑이 같아 불쌍해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또 말꼬를 틔워주면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듣게 될 것 같아 무서워 말을 빠르게 돌렸다.
-아무튼, 그 상자에 세계수를 관리하는 법이 적힌 책과 필요한 영양제들이 있다. 세계수를 지키는 수호목들 후보들과 정령석도 그 안에 있으니 같이 관리하면 될 거다.
-넵.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네 졸업 프로젝트다. 세계수를 이곳에서 잘 키운 후 밀림에 옮겨 심으면 된다.
겨루의 눈이 반짝였다.
-세계수를 밀림에 옮겨 심는다고요? 정말 세계수를 밀림으로 다시 보내주실 건가요?
겨루는 졸업 프로젝트라는 말보다 세계수를 다시 밀림으로 되돌려준다는 게 굉장히 반가운 모양이다.
-그래. 그게 약속이니까.
뮤네가 떠나기 전 세계수를 어디에 심든 상관이 없지만 밀림에 다시 심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심는 이유는 혹시나 로타와 아르펨이 세계수가 탄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계수를 죽이러 밀림을 공격해 온다면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수가 적당히 성장하면 밀림으로 옮겨 심을 생각이었다.
-잘할 수 있겠나?
겨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좋은 엄마가 될게요!
엄마는 모르겠고, 겨루의 진심이 느껴져 티그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
루안과 노먼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교실로 향했다.
원래라면 자유 시간이지만 루안과 노먼은 특별한 수업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제국 공통어 수업이었다.
“너도 글을 못 읽는구나.”
노먼은 부끄러운지 뺨을 긁적였다.
“……응.”
“평민이 글을 못 읽는 건 그리 부끄러운 건 아니지. 안 그래?”
“마…… 맞아.”
루안의 말대로 평민이 글을 못 읽는 것은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물론 최근에 신문이 발달하면서 글을 대충이라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모르는 사람들은 많았다.
“그래도 네가 있어서 다행이다. 난 혼자 글공부하는 줄 알고 진짜 쪽팔릴 뻔했는데.”
노먼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나도 수인들 사이에서 혼자서 수업을 들을까 봐…… 정말 걱정 많이 했어.”
“그래도 우리가 수인들보단 낫지 않겠냐? 우리가 그래도 짬밥이 있지.”
“맞아.”
“그런데 너 왜 이렇게 숫기가 없냐? 너 길거리 공연하면서 먹고살았다면서.”
“그거야…… 일이니까……. 배고프면 뭐든 하게 돼.”
노먼의 짠 내 나는 과거사가 루안의 심장을 흔들었다.
루안도 어머니가 몸져누웠을 때, 빵 하나 구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했던가?
그땐 정말 어렸을 때라 용병 일도 하지 못할 때라 불공정 계약인 것을 알면서도 이를 악물며 일을 했어야 했다.
루안은 왠지 모르게 노먼에게 정이 자꾸 갔다.
“큼……. 그렇구나. 아,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 물어봐도 돼?”
“응? 나한테?”
루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런 너 말고 여기에 다른 사람이 어딨냐?”
“미……미안.”
“됐고. 내가 알고 있기론 길거리 공연보단 주점이나 식당에 고용되는 게 돈을 더 잘 벌 텐데. 주점에서 일을 안 한 거야?”
노먼은 낡은 바이올린 케이스를 매만지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사…… 사실 주점이나 식당에 고용되는 게 제일 돈을 잘 벌긴 하는데…….”
“그런데?”
“사장님들이 자꾸 내 음악이 이상하다면서…… 돈을 제대로 주질 않아서…….”
루안은 어이가 없었다.
트리니티에 들어올 정도로 음악 천재인 노먼이 바이올린 실력이 모자라서 돈을 제대로 안 챙겨준다고?
이건 한마디로……
“그러니까 호구 잡힌 거네?”
“……아. 아냐. 내가 진짜 그땐 모자라서…….”
“그랬으면 길거리 공연으로 먹고살진 못했겠지. 사람들 인심이 얼마나 팍팍한데.”
“……맞아.”
“내가 봤을 땐 네 진짜 문제는 글을 모르는 게 아니라 자존심이 없는 거야. 나도 글을 몰라서 너처럼 사기를 많이 당했거든? 하지만 난 그 사기당한 돈을 거의 다 회수했어. 아니지, 오히려 돈을 벌었지.”
노먼은 눈을 반짝였다.
“어…… 어떻게?”
“간단해.”
루안은 검지손가락으로 노먼의 어깨를 푹 찔렀다.
“악!”
“여기를 레이피어로 찌른 다음에 마구 휘저어 버렸지. 그러면 없던 돈도 생긴다고. 크크크.”
노먼은 이제야 루안이 거친 용병 생활을 해온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저렇게 흉악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다니.
물론 말뿐만은 아닐 것이다.
노먼은 침을 꿀꺽이며 말했다.
“하지만 난 피만 봐도 무서운걸?”
“누가 너보고 칼침 놓으래? 적어도 큰 목소리는 낼 수 있어야지. 아니면 그 빌이라는 녀석처럼 눈매가 사납든가.”
“음…….”
“지금이야 트리니티에서 널 지켜준다고 하지만 졸업하고 나면 널 지켜줄 사람은 없어. 남들 앞에서 그렇게 기죽은 채로 살면 네가 제아무리 보물을 들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 뺏기게 마련이라고. 너 평생 귀족들 연회장에 불려가서 바이올린이나 켜는 인형이 되고 싶은 거야?”
노먼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음…….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퍽!
“악!”
“새끼가 빠져 가지고. 그럴 거면 당장 이곳을 나가서 돈이나 한 푼 버는 게 낫지. 적어도 여기에 들어왔으면 음악으로 모든 여자들을 다 꼬시겠다 이런 생각은 하고 들어와야 하는 거 아니야?”
“난 그냥 먹고살 수만 있으면 되는데…….”
“어휴 답답하네. 지금이야 먹고살기만 하면 좋겠지. 하지만 나중에 욕심이 안 생기겠냐? 더 맛있는 음식. 더 좋은 옷. 더 좋은 집. 내 등 긁어줄 수 있는 예쁜 부인까지!”
루안은 교실 문손잡이를 잡았다.
“하지만 넌 돈도 없고 아무것도 없으니까 일단 여자부터 시작해 보자고.”
“여……여자?”
“그래. 여자.”
루안은 문을 열었다.
교실에는 수인 네 명이 오순도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안은 네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야. 좋아해? 음악?
나려는 고개를 갸웃했다.
-너 수인어 할 줄 알아?
-남쪽. 출신. 조금. 알아.
루안은 수줍어하는 노먼을 교탁 앞으로 데려갔다.
-얘. 이거. 끝내줘.
루안은 바이올린 켜는 흉내를 냈다.
나려는 루안이 뭘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악기 말하는 거지? 우리야 좋지.
루안은 노먼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자. 이제 여자들 꼬실 시간이야. 어서 해봐.”
“하지만…… 수인들이잖아.”
“지금 종족 차별하는 거야?”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면 어서 해봐. 나도 네 실력 보고 싶으니까.”
노먼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결국 바이올린을 꺼냈다.
낡고 때가 많이 탄 고물이다.
현이 정상적으로 네 개 달려 있긴 했지만, 저런 것으로 연주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외형은 심하게 낡았다.
“후…….”
노먼은 심호흡을 한번 하곤 턱밭임에 턱을 올려놓았다.
그러자 눈빛이 바뀌었다.
노먼은 익숙하게 몇 번 현을 당겨 튜닝을 단숨에 끝내고, 바로 연주를 시작했다.
“……미친.”
노먼의 음악은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었다.
저음을 연주할 땐 루안의 심장을 울렸고 고음을 연주할 땐 등골이 오싹했다.
빠르게 연주할 땐 절로 신이 나 발이 저절로 리듬을 탔고, 느리게 연주할 땐 눈이 저절로 감겼다.
‘얘 진짜 천재긴 한가 보네.’
노먼의 음악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 녀석이 길거리 공연만으로 어떻게 먹고살았나 했더니만, 지금에야 이해가 된다.
나려를 포함한 수인들도 귀를 쫑긋 세우고 꼬리를 살랑거리며 노먼의 음악을 들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심으로 좋은 모양이었다.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끝이 나고 노먼은 바이올린을 내려놓았다.
“어…… 어땠어?”
노먼의 말에 나려가 답했다.
“고기 스튜만큼 좋았어!”
최고의 찬사였다.
***
티그리스는 트리샤의 보고를 받았다.
“그 세 사람이?”
“네. 나려에게 개인적으로 물어봤는데, 그 루안, 레니 그리고 노먼 덕분에 트리니티에 잘 녹아들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레인로버와 라칸에게 수인들이 따돌림당하거나 괜한 시비에 걸리지 않도록 조율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른 사람들이야 잘 알고 있으니 괜찮았지만, 성향을 거의 모르는 루안이나 아처, 빌, 노먼이 수인들과 마찰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였다.
“저녁만 되면 레니가 야식을 준비하고 노먼이 식당에서 즉석 공연을 연다고 합니다. 그 덕분에 에이든이나 루안, 아처도 훈련이 끝나고 수인들과 함께 교류를 한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빌도요.”
티그리스는 지금까지 맛있는 음식과 예술은 삶의 필수 성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사람의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거나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부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소 무시했던 음악과 예술이 수인과 인간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다.
평생 검 하나만 보고 살아온 티그리스로선 굉장히 특이한 일이라 신선했다.
“그럼 지금도 공연이 열리고 있겠군.”
“네. 맞습니다. 찾아가 보시겠습니까?”
티그리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중에라면 모를까 지금은 학생들끼리 서로를 알아갈 수 있게 최대한 지켜만 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다른 교관들에게도 그리 전하겠습니다.”
“흠……. 그나저나 레니와 노먼이 지금이야 즐겁게 요리를 준비하고 음악을 연주한다고 하지만 그게 한 달이 넘고 두 달이 넘으면 부담을 느끼겠지.”
“아마 그렇긴 하겠죠.”
“저들끼리 문제를 해결하면 최고겠지만 그런 일을 쉽게 해결할 수 있게끔 제도적으로 뭔가 도와줬으면 좋겠어.”
티그리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수인들과 노먼과 루안이 매일 저녁마다 제국 공통어 수업을 듣는다고 했지?”
“네. 맞아요.”
“그 위치를 교실에서 식당으로 옮기는 것으로 하지.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모일 수 있게. 그리고 차차 수업이라는 딱딱한 호칭도 없애고 대신 동아리를 만드는 것으로 하지.”
“아, 그러면 동아리 지원 명목으로 지원금도 줄 수 있겠군요.”
“그리고 내년이 되면 또 수인들이 들어오고 글자를 모르는 평민들도 들어올 거다. 그들이 잘 섞이려면 이런 가벼운 동아리 정도는 있는 편이 좋겠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동아리 방을 따로 제공해 주는 것도 좋겠어.”
트리샤는 살짝 감탄했다.
“와,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셨대요?”
“배웠다.”
티그리스는 트리니티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제국 대학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배우면 배울수록 제국 대학이 생각보다 많이 썩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특히 마법학부 쪽이.
“그러고 보니 제국 대학 학생회나 마법학부 측에선 별말이 없나?”
“네. 예상보다 잠잠하네요.”
“때를 기다리는 거겠지. 최근 조코비치 교관이 트리니티 쪽으로 옮기면서 올페르 백작의 조카가 대신 연금학 교관으로 들어왔다고 들었다.”
트리샤의 표정이 굳었다.
“바질 교관을 말하는 거군요. 안 그래도 주시하고 있습니다.”
바질 교관은 인퀴지터 내부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다.
밝혀진 건 올페르 백작이 아끼는 조카이자 연금술의 대가라는 것 정도랄까?
듣기론 올페르 백작이 운영하는 포션 공방의 수석 연구원으로 일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인재가 갑자기 제국 대학에 들어왔다는 뜻은 분명히 뭔가 노리는 바가 있다는 것일 것이다.
“알겠다. 그러면 퇴근해 보도록.”
“네. 알겠습니다. 먼저 퇴근해 보겠습니다.”
원래 상사보다 일찍 퇴근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트리샤는 눈치 있게 인사를 건네며 나갔다.
약 5분 후, 수석교관실의 문이 열리며 레인로버가 들어왔다.
“교관님~ 오늘은 무슨 책을 읽을까요?”
티그리스는 작게 웃었다.
“지금은 퇴근했습니다.”
“그럼 자기?”
“…….”
레인로버는 티그리스의 어머니와 대화를 나눈 이후부터 굉장히 적극적이었다.
그게 싫은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훅 치고 들어올 때면 티그리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책이나 읽죠.”
티그리스와 레인로버의 독서 데이트는 밤이 새도록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