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182화 (182/251)

#182 갈등(2)

티그리스는 트리샤와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수강 신청과 졸업 프로젝트 계획서 제출도 저번 주로 다 끝이 났기에 오늘부터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수인들의 교양 수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맞나?”

“네. 맞습니다. ‘루체트 황국의 시작’이라는 과목입니다. 아마 지금쯤 수업을 듣고 있을 겁니다.”

“또 같이 듣는 사람이 있나?”

“루안과 빌, 그리고 노먼입니다. 세 명 모두 평민 출신이라 역사 교육을 받은 경험이 없어서 신청했습니다.”

티그리스는 이름을 듣자 속이 살짝 답답해졌다.

나려와 메이호, 마야, 겨루는 제국 공통어를 말하는 것과 듣는 것도 제대로 못 하고, 루안과 노먼은 글을 읽을 줄 모른다.

그나마 빌이 읽고 쓰는 게 가능하다고 하지만 무리에서 겉도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학생들이 제국 대학에서 수업을 듣는다?

“오늘 당장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겠군.”

트리니티 내부 사람들이야 수인들을 최대한 배려해 준다고 하지만 제국 대학 학생들은 다르다.

트리니티라는 제도 자체도 이해를 못 하는 부류들도 더러 섞여 있는 데다가 수인들을 아무 이유 없이 혐오하는 놈들도 있기 때문이었다.

트리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교양과목을 제국 대학에서 가르치는 건 역시 너무 이른 결정이 아니었을까요? 최소 이번 학기만이라도 트리니티 내에서 일반교양이나 핵심 교양을 가르치는 게 나았을지 모릅니다.”

“아니. 어차피 맞을 매라면 일찍 맞는 게 낫다.”

수인들을 언제까지 감싸고 돌 순 없다.

평생 트리니티에서만 활동하는 것도 아니고, 졸업 프로젝트를 위해 외부 활동도 해야 하는 만큼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작은 트러블이 생길 수 있지만 어느 정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제국도 이제 슬슬 적응해야지. 세계수가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엘프들도 다시 등장할 거다. 그러면 대륙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되겠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되는 것들이 사라지는 건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들까지 보듬어가며 이끌어가기엔 지금 사정이 좋지 못하다.”

티그리스가 트리니티 입학 홍보를 위해 전국을 순회하던 중, 아르펨이 기습적으로 황궁까지 들어왔다.

아르펨이 그 안에서 무엇을 얻고 갔는지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황국의 목에 단검을 들이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트리샤는 여자인 데다가 황국에 흔치 않은 히르페인이다.

거친 모험가 생활을 할 때, 겉모습이 황국인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시비를 걸거나 얕잡아 보는 사람들이 오죽 많았던가?

트리샤의 경우엔 쌈박질 한 번이면 웬만한 일들은 다 해결되었지만, 이곳은 교양을 가르치는 제국 대학이다.

수틀린다고 주먹을 날리면 그대로 다음 날 신문 사회면에 대문짝만 하게 나올 것이다.

“너무 학생들을 감싸고 도는 것도 교육에 별로 좋지 못하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어린 마야도 나이가 19이다. 사리 분별을 할 줄 아는 나이지.”

“음……. 역시 그러려나요?”

“그래. 아이들이 감당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나서주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존재하는 거니까. 아이들을 믿어보도록 하지.”

“네. 알겠습니다.”

그때, 저 멀리서 소라가 뛰어왔다.

“수석 교관님!”

트리샤는 소라의 표정에서 다급함을 읽었고 입맛을 쩝 다셨다.

“……뭔가 큰일이 일어난 것 같은데요.”

“음…….”

소라는 다급하게 말했다.

“제국 대학 쪽에서 일이 났습니다.”

트리샤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나려가 귀족의 뺨을 후려갈긴 거야? 걘 성질을 좀 죽여야 하는데.”

“아니.”

“그럼? 역시 마야구나.”

“마야도 아니야.”

트리샤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누가 문제를 일으켰는데.”

“루안.”

***

루안은 속으로 감탄했다.

“……팍스 황가가 부패한 결정적인 이유를 꼽자면 세도정치 때문입니다. 황가의 대표적인 외척인 아그드리안 공작가와 비에라과 후작가 간의 이권 다툼으로 인해 황국은 나날이 늘어가는 드래곤의 폭정에 대항하지 않고…….”

부패, 세도정치, 외척, 이권, 폭정.

루안은 살면서 저렇게 고급스러운 어휘를 손바닥에서 노는 검처럼 자유롭게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

그냥 교관님의 점잖은 말을 들을 뿐인데 저절로 경외심이 뿜뿜 솟아올랐다.

엄마가 왜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엄마…… 난 이 길이 아닌가 봐.’

너무 졸립다.

루안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군장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제일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리 눈을 뜨려고 해도 자꾸 눈이 감기고 고개가 절로 떨궈지는 게, 도저히 저항할 수 없었다.

루안은 잠도 깰 겸 옆을 슬쩍 쳐다봤다.

루안의 옆에는 나려가 있었다.

‘녀석.’

나려의 눈이 반쯤 풀려 있다.

건너편에 앉아 있는 메이호와 겨루 그리고 마야는 아예 엎드려서 잠을 자고 있다.

하긴 루안도 알아듣기 힘든 단어를 와다다다! 쏟아내는 걸 가만히 앉아서 듣기만 해야 하는데 안 졸릴 리가 있나.

역사 교관님의 눈동자가 슬쩍슬쩍 이쪽으로 향한다.

대놓고 자는 학생들을 깨우라는 무언의 압박이었지만, 루안은 애써 외면했다.

대신 루안은 뒤를 슬쩍 쳐다봤다.

빌과 노먼은 의외로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것 같았다.

눈이 제법 똘망똘망하다.

수업에 굉장히 열중하는 듯 노트 하나를 두고 열심히 연필을 놀리고 있었다.

녀석들 대단한…… 응? 노트 하나에?

“…….”

녀석들은 빈 노트에 틱택토를 하고 있었다.

노먼은 틱택토에 영 재능이 없는 듯 빌에게 연속으로 10번이나 졌다.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노먼하고 자리를 바꿔 앉는 건데.

‘쉬는 시간에 나려한테 틱택토를 알려줘야겠다.’

그럼 적어도 교관님의 눈치는 덜 보리라.

그때, 루안은 이상한 놈과 눈을 마주쳤다.

노먼과 빌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녀석이었다.

혹시 다른 녀석을 보는 건가 싶었지만 루안을 정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냥 쳐다보는 거라면 그러려니 넘기겠지만, 놈은 루안과 눈을 마주쳤음에도 불구하고 눈을 피하지 않았다.

딱 봐도 시비를 거는 거였다.

‘참자 참아.’

이곳이 주점이었다면 뭘 꼬라보냐며 술병으로 대가리를 깼겠지만, 루안은 이제 용병이 아니라 예비 귀족이 되시겠다.

그러니 저런 노골적인 시비는 넘기는 게 귀족답지 않겠는가?

그러려면 무사히 졸업을 해야 하는데…….

루안은 한숨을 내쉬며 칠판을 쳐다봤다.

“10분간 휴식하도록 하겠습니다.”

다행히 1교시 수업이 끝났다.

교관이 교실 밖으로 나가자 루안은 기지개를 한 번 켰다.

근처에 분명 매점이 있던 것 같던데…….

잠도 깰 겸 따뜻한 커피나 한잔 사야겠다.

루안이 일어나기 무섭게 뒤에서 뭔가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텁!

루안은 보지도 않고 잡았다.

“뭐지?”

끝이 굉장히 날카로운 몽당연필이었다.

루안은 뒤를 쳐다봤다.

뒤에서 기분 나쁘게 웃으며 쳐다보는 요상한 놈들이 눈에 걸렸다.

놈들은 루안이 뒤에서 날아온 연필을 잡을 줄은 몰랐던 듯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이거 네가 던졌냐?”

한 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닌데?”

딱 봐도 저놈이 던진 거다.

루안의 고개가 삐딱하게 돌아갔다.

“그럼 누가 던진 거냐?”

“몰라. 야 네가 던졌냐?”

“아니? 난 아닌데?”

루안의 인내심 게이지가 바닥나기 시작했다.

원래 같으면 다 엎어버렸겠지만 이곳은 귀족들도 다니는 제국 대학이다.

그리고 저놈 옷이나 재수 없는 표정을 봤을 때 저놈들도 귀족 같았다.

“여기 뒤에 너네밖에 없는데 또 누가 던져.”

루안의 좌석은 뒤에서 세 번째 줄 책상이다.

바로 뒤에는 노먼과 빌이 앉아 있고 그 뒤에 저놈들이 앉아 있었다.

빌하고 노먼이 루안에게 던질 일도 없으니 남은 건 저놈 둘밖에 없다.

“왜 우리밖에 없어. 내 앞에 두 명 또 있잖아. 얘네들이 던진 거 아니야?”

“빌하고 노먼이? 그럴 리가 있겠냐?”

“뭐, 아님 말고.”

와, 성질 건드리는 것이 수준급이다.

남의 성질 긁어본 게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

루안은 귀족들이 시비를 걸어올 거라곤 예상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쪼잔하게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남자답게 결투나 한판 땡기자 이럴 줄 알았지.

노먼이 불안한 눈빛으로 루안을 쳐다봤다.

루안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가 아니면 아닌 거겠지.”

루안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귀족을 괜히 건드려서 좋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눈 딱 참고 넘어가자.

그러자 나려가 수인어로 조곤조곤 말했다.

-던지는 소리……. ……뒤에서…….

말을 완벽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나려도 누가 던졌는지 알아챈 것 같았다.

-알아.

“이번만 참는 거야.”

루안은 일부러 크게 말했고 저놈들의 귀에도 분명히 들어갔을 것이다.

이게 정말 마지막 경고다.

만약 또 짜증 나게 굴면 뒤집어엎을 거다.

그때, 다시 뒤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루안은 들고 있던 만년필로 그걸 돌아보지도 않고 쳐냈다.

“아아아아악!”

비명이 뒤에서 흘러나왔다.

루안은 일어나 뒤를 쳐다봤다.

방금 자신을 노려본 귀족 놈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놈의 이마엔 날카롭게 갈린 몽당연필이 박혀 있었다.

옆에 있던 놈이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굴 상처 입혔는지 알아?!”

루안은 얄밉게 웃었다.

“아, 미안. 뒤에서 뭔가가 날아오길래 쳐냈는데, 그쪽으로 날아갈 줄은 몰랐지.”

“딱 봐도 노린 거잖아!”

“너도 노렸잖아.”

루안의 낮은 목소리에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던 귀족 놈의 표정이 굳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것이다.

루안은 목을 뚜둑 꺾으며 다가왔다.

“혹시 밀림에서 가장 무서운 게 다른 게 뭔지 알아? 다른 게 아니라 고블린의 독침이야. 고블린 놈들이 그 독침에 도대체 뭘 발랐는지 알 수 없어서 해독제도 미리 준비할 수 없어. 내가 친하게 지내던 용병 하나는 그거 팔뚝에 맞고선 팔 전체가 괴사해서 잘라내야만 했지.”

“그럼 어떻게 고블린 독침을 막느냐? 방법은 딱히 없어. 그냥 조심하는 수밖에. 내 경우엔 어디서 독침이 날아오나 항상 신경을 곤두세웠어. 그리고 독침이 날아오면…….”

루안은 만년필을 들었다.

“이 만년필 굵기만 한 레이피어로 쳐냈어.”

루안의 진득한 살기에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던 귀족의 하의가 축축 젖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뭐? 누가 몽당연필을 던졌는지 모른다고?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루안은 놈의 이마에 박힌 연필을 뽑아냈다.

놈의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아아아악!”

루안은 대신 손수건을 건네며 작게 속삭였다.

“혹시 나한테 몽당연필 또 던지려거든 제대로 던져야 할 거야. 이번엔 녀석이 운이 좋아서 이마에 박혔지만, 재수 없으면 날 꼬라봤던 그 재수 없는 눈깔에 박힐 수도 있으니까.”

“네…… 네놈이 지금 뭔 짓을 알아? 귀족에게 협박을 한 거다!”

루안은 어깨를 으쓱했다.

“왜? 제국 대학 내에선 계급이 없다면서. 그냥 학생 아니야? 그래서 난 레인로버 황녀 전하도 황녀 전하라고 안 부르고 레인로버 누나라고 부르는데?”

놈의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뭐, 그래. 네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면 그럴 수 있지. 그럼 어떻게 할래? 나랑 결투라도 할래? 네가 신청하면 받아줄게.”

으득!

놈은 이마에 피가 난 것보다 루안의 모욕적인 말투에 폭발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날아오는 몽당연필을 쳐내는 것도 모자라 되레 이마에 박아 넣은 실력자를 어떻게 이기라는 것인가?

그때, 놈의 시선이 이상한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좋다. 결투를 신청하지.”

루안은 놈이 진짜로 결투를 신청할 줄은 몰랐기에 살짝 놀랐다.

놈은 이마에 흐르는 피를 닦아내며 일어났다.

그리고 피가 묻은 손수건을 루안에게 던졌다.

“나 시몽 폰 로샹보는 루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루안이 못 배우긴 했지만 손수건이나 장갑을 던지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루안은 피 묻은 손수건을 받았다.

“받아들이지.”

***

시몽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건물 뒤편으로 향했다.

그곳엔 얼마 전 신문에 얼굴이 팔린 파스칼 드 올페르가 있었다.

“선배.”

“내가 시킨 일은 제대로 했나?”

“제멋대로 날뛰는 평민 따위 핸들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죠. 그것보다…….”

시몽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초대장은…….”

“여?다.”

파스칼은 작은 봉투를 품속에서 꺼냈다.

시몽의 표정이 밝아졌다.

시몽은 명망 높은 마법사 가문 로샹보의 이름을 잇고 있지만 직계가 아니다.

귀족 사회에서 직계가 아닌 방계는 귀족이라는 빛 좋은 개살구일 뿐.

평민에도 속하지 못하고 귀족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는 어중이떠중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초대장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이 초대장은 다음 달에 열릴 올페르 백작의 조카의 결혼식 초대장이다.

그곳에서 파스칼이 직접 올페르 백작에게 자신을 소개해 준다고 했으니, 올페르 백작의 포션 공방에 들어가는 것도 일이 아니다.

“감사합…….”

“그 전에.”

파스칼은 편지를 뒤로 살짝 뺐다.

시몽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지만, 재빨리 강아지처럼 해맑게 웃었다.

“내가 시킨 일이 정확히 뭔지 다시 설명해 봐라.”

“트리니티 놈들 중 하나를 도발하라고 하셨습니다. 잘 이행했지 않습니까?”

“그래. 하지만 도발하라고만 했지 결투를 하라곤 안 했다.”

“하…… 하지만 그때 제게 고개를 끄덕이시지 않았습니까? 결투를 신청하라는 뜻이 아니었습니까?”

시몽은 분명히 자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파스칼을 봤다.

결투를 신청하라는 뜻이라 분명히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난 잘하고 있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인 건데? 제멋대로 결투를 신청한 건 너잖아. 시몽.”

“선배!”

“놈은 귀족 사회나 제국 대학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평민이다. 살살 성질을 건드려서 실수하게 만들면 그만인데 일을 키운 건 너다. 시몽.”

시몽은 억울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하지만 자신을 살릴 수 있는 동아줄은 파스칼 하나밖에 없다.

파스칼은 루안과 결투를 해서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제발 알려주세요. 선배.”

파스칼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왜? 이길 자신이 없어?”

“솔직히 말하자면 파스칼 선배의 도움이 없으면 힘들 것 같습니다.”

시몽은 연금 마법 전문이다.

연금 마법은 시약이나 포션 아니면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것에나 관련이 있는 마법이지 결투엔 그리 유용한 마법은 아니었다.

그런데 상대는 실전에서 몇 년이고 구른 베테랑 중 베테랑 용병.

맞붙으면 거의 100% 시몽이 진다.

“에라이, 새끼야.”

파스칼은 시몽의 이마를 때렸다.

딱!

다친 곳을 정확하게 갈겨서 순간 욕이 나올 뻔했지만, 꾹 참았다.

“넌 나 없으면 어떻게 하려고 했냐?”

“여…… 역시 선배. 아니, 형님밖에 없습니다. 절 도와주실 거죠?”

“그래. 그래. 도와줘야지.”

파스칼은 시몽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제국 대학의 결투 규율 중 가장 엄격한 게 뭐지?”

“네? 그건…….”

“절대로 상대방의 몸에 복구 불가능한 상해를 입어선 안 된다는 말이었지?”

결투상 복구 불가능한 피해라고 함은 손이나 발이 잘리는 걸 의미한다.

“아……! 그놈의 손모가지를 자르라는……!”

“무슨 소리야 걔 손을 왜 잘라. 네가 잘려야지.”

“……네?”

시몽의 눈앞이 새하얘졌다.

드디어 파스칼이 노리는 바를 정확하게 알아낸 것이다.

루안이 시몽의 손가락이라도 자르는 순간 지엄한 황국의 법도를 따른다면 쫓겨나게 된다.

물론 트리니티 출신이니 다르긴 하겠지만, 티그리스나 바스티얀 교관이 감싸고 도는 순간 귀족파가 정치적으로 공격할 명분을 쥐여주게 된다.

“서…… 선배. 아무리 그래도…….”

“왜? 결투에서 내가 도와줄 방법이 있을 것 같아? 네가 아주 심하게 다치면 그때, 내가 네 복수를 도와줄게. 그리고 일이 잘 풀리면…….”

파스칼은 초대장을 시몽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이것도 주고.”

시몽은 침을 꿀꺽였다.

눈동자가 떨리는 게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었다.

“왜? 싫어? 싫으면 어쩔 수 없고.”

“아닙니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어딜 다칠 생각이지?”

“그…… 그게…….”

신체가 잘려 나가는 것은 둘째 치고 평생 바늘에 찔려본 적도 없는 시몽의 입장에선 고통이란 익숙지 않은 것이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

파스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고르기 어려운 모양이니까 내가 도와줄게.”

파스칼은 시몽의 새끼손가락을 가리켰다.

“왼쪽 새끼손가락 정도는 없어도 마법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이 개새끼……!’

왼쪽 새끼손가락 하나와 평생직장.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하…… 하겠습니다. 선배.”

시몽의 순종적인 눈빛에 파스칼은 만족스러웠다.

“잘해봐. 그러면 이 편지는 네게 될 테니까. 아, 그리고 입회자는 내가 적당히 골랐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까지 승부를 절대로 끝내지 않을 테니까…….”

파스칼은 시몽의 얼굴을 툭툭 쳤다.

“잘해봐?”

시몽은 떠나는 파스칼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

골목길을 주시하던 한 쌍의 눈동자의 앞에 창이 하나 떴다.

[신규 퀘스트!]

파스칼을 엿 먹여라!

보상: 500포인트.

라칸은 피식 웃었다.

“일이 재밌게 굴러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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