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미끼(4)
바질 교관은 가볍게 마법으로 자신이 접은 종이들을 죄다 태워 버렸다.
“차는 뭘 좋아하지?”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바질 교관은 마법으로 교관실 옆에 있는 탕비실에서 주전자와 찻잎을 가져와 즉석에서 끓이기 시작했다.
라칸은 바질 교관의 마법술식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굉장히 거창하게 마법을 운용하시네요.”
“내 마법술식을 알아보겠나?”
“염동 마법이 아닌 원소 마법이라는 것 정도랄까요? 제가 이제 막 3서클 마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라서 4서클 이상의 마법은 알아보기가 힘드네요.”
바질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바질이 사용한 마법이 원소 마법이라는 걸 알아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바질의 보안 술식을 뚫어냈다는 게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다.
“역시 그 마탄총의 보안 술식은 자네가 구상한 거였군. 내 보안 술식을 뚫는 데 얼마나 걸렸지?”
“2초 정도요”
“2초라……. 괴물이군.”
바질은 주전자를 기울이지 않고 찻물을 움직여 라칸의 앞에 놓인 찻잔에 따랐다.
향긋한 차향이 퍼지기 시작하자 라칸은 차를 마셨다.
“재스민 향이 참 좋네요.”
“내가 그 차에 뭘 탔을 줄 알고 그냥 마시는 거지? 내가 독이라도 탔으면 어쩌려고?”
“독을 안 탔으니까 마시는 거죠.”
“그걸 어떻게 확신하지?”
“재스민 향과 맛에 가려지는 독은 딱 세 종류밖에 없어요. ‘시끄러운 침묵’, ‘조여오는 공기’, ‘리드렌달의 독’. 시끄러운 침묵은 만들자마자 1시간만 공기에 노출시켜도 변질돼서 쓸 수 없고, 조여오는 공기는 물과 만나면 검은색으로 변하기 때문에 재스민 차에 집어넣을 수 없고, 마지막으로 리드렌달의 독은 복통을 유발하는 독이라 마셔도 크게 상관이 없죠.”
바질은 라칸이 기껏해야 ‘죽고 싶지 않으면 독 따위 넣었을 리 없다’ 이런 식으로 반협박이나 할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라칸은 바질의 예상을 한 번 더 깼다.
‘과연 천재라는 건가.’
과감한 행동력과 자신감의 원천이 자신의 지식이라는 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마공학에 조예가 깊은 줄 알았는데, 독이나 연금학에도 조예가 깊군.”
“모르시는 것 같은데, 제 전공이 연금술이고 마공학이 부전공이에요.”
“모르고 있었다. 기억해 두지.”
바질 교관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
“일단, 네가 무슨 제안을 하든 거절하도록 하지.”
“이유가 뭐죠?”
“올페르 백작이 이 상황을 예견하지 못하리라 생각했나? 올페르 백작은 원래 사람이나 상황을 잘 믿지 않는다. 확실한 증거만을 믿지.”
“그럼 파스칼은 왜 믿었던 거죠?”
“그건…… 노코멘트하지.”
라칸은 순간적으로 바질 교관의 눈썹이 꿈틀거린 것을 봤다.
기분이 나쁘다거나 생각도 하기 싫어서라는 단순한 감정 변화 때문이 아니다.
저건 분명히 갑작스럽게 찾아온 ‘고통’ 때문이다.
“역시 ‘노예 각인’을 하신 거군요.”
바질 교관은 진심으로 놀랐다.
보통 기껏해야 ‘마나의 계약’ 따위를 떠올릴 텐데, 단번에 노예 각인을 말하다니.
라칸이 말한 노예 각인은 ‘노예 상인의 인두’라는 성물을 이용한 일종의 저주다.
평생 주인을 배반할 수 없고, 주인이 내린 명령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저주.
그 악독함 때문에 룩스교 사제들이 지하 창고에 봉인해 두었지만 로타와 아르펨이 길리온 왕국을 지배하면서 다른 악독한 성물들과 함께 세상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황국의 정보력이 참 대단하군.”
“길리온 왕국에서 풀려난 수인들이 얘기해 줬거든요.”
바질 교관은 혀를 찼다.
“길리온 왕국 놈들도 굉장히 허술하군. 그런 고급 정보를 흘리다니.”
바질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튼, 올페르 백작에게 해가 되는 모든 행동은 불가능하다. 명령을 거부하거나 배신하려고 하면 인두가 지져진 자리가 불타오르거든.”
“그렇다고 가라앉는 배에 계속 타 있을 순 없잖아요.”
“…….”
라칸은 바질의 짧은 침묵 속에서 희미한 갈등을 눈치챘다.
역시 바질은 원해서 올페르 백작과 함께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싫건 좋건 올페르 백작을 따라야만 하기 때문에 따르는 것이었다.
“왜 노예 계약을 맺으신 거죠? 노예 계약을 받으면, 평생 올페르 백작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잖아요.”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협박이라도 당하셨나요?”
“아니. 나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다.”
바질은 올페르 백작을 싫어한다.
그러나 올페르 백작의 밑에서 남기를 결정했다.
그 말은 올페르 백작의 밑에 있어야 하는 이유가 반드시 있다는 뜻이었다.
그게 도대체 무엇일까?
“역시 올페르 백작의 밑에 있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군요. 그 이유가 뭐죠?”
바질 교관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야기할 것도 없다. 어차피 내 목표는 조만간 달성될 테니까. 너희들의 도움 따위는 필요 없다.”
“역시 나흘 뒤를 기다리는 건가요?”
“나흘 뒤?”
“파스칼의 처형식 말입니다.”
바질의 눈빛이 흔들렸다.
“바질 당신에 대해 제법 조사를 해봤습니다. 그런데 당신 주변에 아무도 없더군요. 부인이나 아들도 심지어 마음을 나눈 친구도 없고요. 바질 당신에게 남은 건 부모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굉장히 어렸을 적에 돌아가셨죠. 왜 돌아가셨는지 조사하느라 굉장히 힘들었는데 찾아보니……”
“그만!”
바질의 진득한 살기에도 라칸은 꿋꿋이 말을 이어나갔다.
“파스칼이 당신 부모님을 죽였더군요. 그것도 당신 부모님이 가꾸던 약초밭을 리뉴 가문의 가주에게 주기 위해서. 물론 파스칼은 죽었는지도 모를 거예요. 그냥 약초밭 하나 빼앗은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고요. 하지만 자신의 전 재산을 빼앗긴 교관님의 부모님이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돌아가셨다는 것은 아마 모르겠죠. 관심도 없었으니까요.”
“……할 말은 다 지껄였나?”
“아뇨. 하나 더 남았어요.”
라칸은 품속에서 작은 종이를 꺼내 바질에게 보여주었다.
면책부였다.
그것도 황제의 인장이 박혀 있는 실효성이 있는 면책부였다.
더더욱 믿기지 않는 것은 면책부 상단 이름에 ‘파스칼’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이었다.
“저는 지금 당장에라도 파스칼을 석방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면 파스칼은 올페르 백작가에 되돌아가겠고 당신은 복수를 성공할 수 없겠죠.”
바질은 결국 라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역시 평생 연구실에서 썩은 마법사가 보일 수 없는 첨예한 살기다.
라칸은 바질의 가장 큰 약점을 사로잡았음을 확신했다.
“너 이 새끼……! 지금 나랑 뭘 하자는 거야!”
“협상을 하자는 거죠. 저도 파스칼을 굳이 살려 보내고 싶지 않거든요.”
“협상? 너희들이 원하는 것은 뻔하지. 길리온 왕국과의 접선 방법과 밀수 루트 아닌가? 하지만 이걸 어쩌지? 난 정말로 모르거든. 그리고 성물의 저주는 마법으로도 풀 수 없다. 그건 아주 잘 알고 있을 텐데?”
성물을 통한 저주는 극복할 수 없다.
상식적으로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라칸은 성물을 통한 정신 공격을 극복해 본 경험이 있다.
‘분명 난 그 저주 인형의 공격을 받지 않았지.’
솜니움의 꿈속 세상에서 저주 인형의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공격도 받지 않았다.
그 말은 라칸의 시스템과 상점이 성물보다 우위에 있다는 말과 똑같았다.
“저는 그 저주를 풀어줄 수 있어요.”
“그 근거는?”
“근거 따위 보여주지 않아요. 결과로만 말할 뿐이죠.”
“전형적인 사기꾼의 대사로군.”
“믿든 말든 그건 바질 교관님의 선택이죠.”
라칸은 잡힌 멱살을 풀었다.
바질의 손에 힘이 없어 생각보다 가볍게 풀렸다.
바질이 갈등하고 있다는 게 확실했다.
“교관님이 올페르 백작을 배신하시면 올페르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어차피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으니까 몸만 오면 되겠네요.”
“……올페르 백작에게서 벗어나 봤자 의미가 있나? 내가 이미 올페르 백작의 사람이라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어차피 파스칼이 죽으면 나도 따라 죽으려고 했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거든.”
“그럼 파스칼을 평생 지하 감옥에 가둬둘까요?”
“……그럴 수 있나? 이미 신문에 파스칼을 죽이겠다고 전 국민에게 다 말했는데?”
“황국이 그런 억지 하나쯤 부릴 여유가 있다는 거 알고 계시잖아요.”
라칸이 그렇게 말을 하니 바질은 할 말이 없었다.
라칸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파스칼을 직접 죽일 수 있는 기회를 드리죠. 당신을 사형집행인으로 위장시키는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니까요.”
바질의 눈동자가 극심하게 흔들린다.
이날의 복수를 위해 10여 년을 아득바득 버텨왔다.
바질이 배신하지 않을 이유는 없었다.
치이이이이이-!
바질은 입술을 강하게 깨물었다.
배신하고자 하는 생각이 강해지자 살이 타는 냄새와 함께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 정도 고통은 매일같이 말라 죽어가는 부모님을 두 눈으로 보는 것보다 고통스럽지 않았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투명한 액체가 코끝을 따라 떨어졌다.
결정을 내렸다.
“……좋다. 네 제안을 받아들이지.”
“좋아요. 받아들인대요.”
“……뭐?”
라칸의 그림자로 네메시스가 나타났다.
바질은 너무 놀라 몸이 굳었다.
“어떻게 그림자를 타고……. 마나 반응이 하나도 없었는데?”
“내 숨겨진 재능 중 하나지.”
네메시스는 단검을 위로 휙휙 던지며 웃었다.
“그래도 협상을 질질 끌지 않아 다행이야. 지금 똥이 좀 마려워서 널 죽이고 화장실이나 갈까 생각하고 있었거든.”
“그래요? 그러면 빨리 끝내야겠네요. 바질 교관님을 좀 기절시켜 주시겠어요?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어요.”
바질은 라칸의 말에 순간 몸을 움찔했다.
“……뭐?”
퍽!
네메시스는 순식간에 바질의 뒤로 돌아가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바질은 맥없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라칸과 네메시스는 땅에 널브러진 바질의 등을 쳐다봤다.
“미친…….”
바질의 등 한가운데가 불에 그을려 뻥 뚫려 있었다.
구멍 사이로 불에 지진 인두 자국이 보였는데, 절로 눈썹이 찌푸려질 만큼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저주를 풀 거야?”
“포인트 상점엔 없는 거 빼고 다 있더라고요.”
“없는 거 빼고 다 있다고? 그건 또 무슨 말장난이야?”
“웬만한 건 다 있다는 얘기죠.”
라칸은 일단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 ‘최상급 탐색’을 사용했다.
[노예 상인의 인두의 저주가 발동 중이다.]
[성물을 통한 저주이기 때문에 절대 해주할 수 없다.]
[대신 포인트 상점의 기술란 ‘Lv. 1 저주하는 자, 무덤을 두 개를 파라’의 능력으로 저주를 비틀 수 있다.]
해주는 불가능하지만, 저주를 비틀 수 있다.
그 말은 저주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지만, 저주의 방향과 목적지를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라칸은 최근 아모리스에게 배운 저주에 대해 떠올렸다.
-저주는 여타 다른 주술과 달리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게 아니라 쌍방으로 흘러. 저주술사도 원래 ‘저주’를 받고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말과 똑같지.
-그럼 왜 저주술사는 저주에 안 걸리는 것처럼 보이느냐? 저주술사는 ‘대가’를 통해 그 저주를 막고 있는 거야. 타인의 목숨이든 피든 아니면 영혼이든.
-그 로타의 입 ‘레비스’는 어떻게 그냥 말로 저주를 걸었냐고? 나도 잘 몰라. 아마 자기 육체를 대가로 바쳤던 거겠지. 호문쿨루스라면서? 나도 그렇게 자주 육체를 갈아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어.
분명히 ‘노예 상인의 인두’는 ‘저주’를 이용해 노예가 주인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든다고 들었다.
특히 이런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명확한 저주의 경우엔 쌍방으로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성립이 된다.
하지만 올페르 백작만이 바질에게 명령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노예 상인의 인두’가 대가를 치르고, 올페르 백작에게 적용되는 ‘피지배’의 저주를 막았기 때문이다.
그럼 라칸이 할 일은 간단하다.
올페르 백작이 갖고 있는 ‘지배권’만 빼앗아 오기만 하면 된다.
라칸은 포인트 상점을 열었다.
그리고 ‘Lv. 1 저주하는 자, 무덤을 두 개를 파라’를 선택했다.
[Lv. 1 저주하는 자, 무덤을 두 개를 파라]
저주의 방향과 목적지를 비틀 수 있다.
[자세히 보기]
가격 : 10,000포인트 → 8,000포인트
* 주술과 저주에 대한 이해도가 ‘어느 정도’ 있음으로 20% 세일되었습니다.
설명을 보면 ‘저주의 방향과 목적지를 비틀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라칸이 올페르 백작이 갖고 있는 바질에 대한 ‘지배권’만 빼앗아 오면 바질은 올페르 백작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거다.
물론 이것도 ‘기술’이기 때문에 숙련도가 높으면, 역으로 바질이 올페르 백작에게 명령할 수 있게 만들 수 있겠지만, 그것까진 불가능하다.
‘그리고 굳이 바질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을 버릴 필요가 있나?’
바질이 갑자기 미쳐서 라칸을 배신하면 어쩌려고.
최소한 이번 일이 끝날 때까진 바질이 멋대로 움직이지 않게 목줄을 채워놓을 생각이다.
[‘Lv. 1 저주하는 자, 무덤을 두 개를 파라’를 구매하셨습니다.]
현재 남은 잔여 포인트: 34,620
□이름: 라칸
□체질: 오러 고리 1개, 정순한 마나
□스테이터스
[근력: 중하(24/100)]
[체력: 중(13/100)]
[내구: 중하(40/100)]
[민첩: 중하(52/100)]
[마력: 상(15/100)]
□기술: Lv. 6 최상급 탐색, Lv. 0 명경지수의 정신, Lv. 8 상급 보안 술식의 이해, Lv. 2 중급 마공학, Lv. 1 아모리스의 봉인술 외 19개.
* 기술란에 ‘Lv. 1 저주하는 자 무덤을 두 개 파라’가 추가되었습니다.
1년 전과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성장했다.
하지만 라칸은 아직 만족할 수 없었다.
‘조금만 더.’
라칸은 아직 쉴 수 없다.
자신은 실제 전쟁이 터지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라칸은 전투 요원이 아니니까.
그러니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
뚝 뚝
바질의 등으로 선홍색 핏물이 떨어졌다.
네메시스가 깜짝 놀라 손수건을 건넸다.
“라칸, 괜찮아? 코피가…….”
“아, 고마워요. 최근에 무리를 좀 했나 봐요.”
“……이번 일이 끝나면 좀 쉬는 게 어때?”
네메시스는 라칸의 살인적인 루틴을 알고 있었다.
라칸은 거의 잠을 하루에 3시간도 자지 않는다.
하루 종일 배우고 연구하고 마탄총 사업을 관리하는 등 라칸은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움직이고 있다.
그러니 체력적으로 당연히 부칠 수밖에…….
라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럴게요.”
“거짓말이 늘었어. 라칸.”
“아, 아직 ‘하급 연기’밖에 되지 않아서 들켰나 보네요. 연기 연습을 좀 해야겠어요.”
“그게 아니라 저번에도 마탄총 설계도 작업만 끝나면 쉬겠다고 했지만 안 쉬었잖아.”
“아, 그랬었나요? 그래도 그만큼 이번 사안이 중요하니까 그런 거죠. 이번 일만 끝나면 좀 쉴게요.”
“그럼 아모리스 님께 그렇게 말해둔다?”
라칸은 피가 묻은 손수건을 품속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제가 나중에 말하면 안 될까요?”
“에휴……. 난 모르겠다.”
라칸은 멋쩍게 웃었다.
“일단, 이 문제부터 빨리 끝내볼까요?”
“그래. 그리고 잠깐 눈 좀 붙여.”
“네.”
라칸은 ‘저주하는 자, 무덤을 두 개 파라’를 사용했다.
이 기술도 엄연히 ‘주술’에 속하기 때문에 대가가 필요했다.
그 대가는 특이하게도 ‘체내 마나’.
라칸이 체내에 갖고 있는 마나의 총량을 빼앗아 가는 것이었다.
마나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의 크기 자체가 줄어드는 거라 평범한 마법사라면 절대로 하지 않겠지만, 라칸은 달랐다.
이번 기회에 항상 상태창을 볼 때마다 거슬렸던 ‘오러 고리 1개’를 없앨 생각이었다.
오러 고리는 엄연히 말하자면 ‘엔진’에 가까웠지만 저것도 체내 마나로 구성된 놈이다.
저걸 대가로 주술을 발동시키면 될 것이다.
‘드디어 내 체질창이 깨끗해지겠네.’
항상 상태창을 볼 때마다 ‘오러 고리 1개’가 자꾸 거슬렸는데, 이번 기회에 없앨 수도 있으니 나쁘지 않았다.
라칸의 몸속에서 마나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라칸은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집중할 시간이다.
이 저주는 ‘성물’이 제작한 저주다 보니 제법 까다롭다.
올페르 백작의 지배권을 가져오려면 제법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잠시 후.
[퀘스트 성공!]
바질을 회유하라!
[8,000포인트를 획득!]
현재 남은 잔여 포인트: 42,620
[체질란에 ‘오러 고리 1개’가 사라졌습니다.]
[마력: 상(15/100) → 상(12/100)]
라칸은 흐르는 땀을 피 묻은 손수건으로 닦은 뒤 웃었다.
생각보다 잃은 게 거의 없다.
그에 비해 얻은 것은 굉장히 크다.
라칸은 기절해 있는 바질을 슬쩍 쳐다봤다.
이제 이 똑똑한 연금술사는 라칸의 노예 1호다.
이제 웬만한 잡일은 다 맡기면 알아서 처리할 거다.
평생 놓아주지 말아야지.
“흐흐흐…….”
라칸의 낮고 음흉한 웃음에 네메시스는 굉장히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라칸 역시 좀 자는 게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