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 아센시오(3) >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00화
아센시오(3)
라칸은 나달에게 배운 첫 마법이 바로 청소 마법이었다.
청소 마법은 생활상에 가장 밀접하면서도 마법 적응 훈련에 있어서 이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물건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물건에 묻은 먼지를 닦아내는 세밀한 마력 조절과 대상이 유기물이냐 무기물이냐에 따라 엮어내야 할 술식이 달라졌다.
아무튼 마법 훈련에 있어서 이보다 더 훌륭한 것은 없다면서 매일같이 인퀴지터 본부에 올 때면 심문실 청소를 시켰다.
처음엔 구역질도 나고 힘들었는데, 그때 배운 일들 덕분에 마법을 더 정밀하고 빠르게 사용이 가능했다.
‘지금에도 유용하고 말이지.’
라칸의 손짓 한 번에 바닥과 벽 그리고 천장이 제 색깔을 찾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벽에 달라붙은 먼지가 딱딱하게 굳어 벗겨내기 힘들었지만, 지금의 라칸에게 있어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택이 생각보다 크구나.’
겉으로 봤을 땐 다 무너져 내려가는 저택이라서 별거 없어 보였는데 구석구석 돌아다녀 보니 숨겨진 방도 꽤 있고, 지하실도 있었다.
지하실엔 오래된 고서들이 가득 쌓여 있었는데, 라칸은 이 고서들을 염동 마법으로 띄워 차곡차곡 옆으로 쌓았다.
빚쟁이들이 책만큼은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안 가져간 것 같긴 한데,보다 보니 꽤 값어치가 나가는 마법서들도 섞여 있었다.
라칸은 일단 마법서는 따로 분류해 두고 지하실 청소를 했다.
‘음?’
책과 먼지들 때문에 가려서 보이지 않던 바닥이 드러나자 라칸의 최상급 탐색이 자동으로 발현되었다.
[인조적으로 만들어진 틈.]
[바람이 새어 나온다.]
[안에 비밀 지하실이 있다.]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기계 작동형이다.]
[스위치가 이 인근에 있다.]
라칸은 주변을 둘러봤다.
스위치가 인근에 있다면 어디에 있을까?
그 해답은 멀지 않았다.
다 부서져 가는 쓰레기들과 가구 사이로 유독 멀쩡한 놈이 하나 있었다.
벽걸이 전등.
라칸은 전등을 살짝 당겼다.
“끙!”
라칸이 체중을 실어서 당겨도 부서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대충 만들어진 물건은 아니다.
물론 당겨서 작동하는 방식도 아니다.
그러면 이걸 어떻게 사용하는 걸까?
‘잠시만 여기에 구멍이······.’
비밀을 알아내려던 찰나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나달이었다.
“그건 그렇게 사용하는 게 아니다.”
나달은 좀 전에 아센시오 남작이 사용했던 가문 인장을 품속에서 꺼내더니 전등 위에 숨겨져 있는 작은 구멍에 집어넣었다.
딸깍-
경쾌하게 열리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있던 지하실 문이 열렸다.
당연히 계단이 있을 줄 알았는데, 계단이 아니라 꽤 고급스러운 원목 엘리베이터가 쭉- 올라왔다.
“타라.”
오랫동안 작동하지 않은 엘리베이터라 괜찮을까 싶었지만, 생각보다 부드럽게 내려갔다.
애초에 깊지도 않았다.
체감상 2~3m정도랄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니 라칸에게 굉장히 익숙한 광경이 드러났다.
“여긴 심문실 같은데요?”
“맞다.”
인퀴지터의 심문실 복도가 딱 이런 모습이다.
깨끗한 하얀색에 양옆으로 두꺼운 문과 방이 있는 모습.
이곳만큼은 털어가지 못했는지 제법 깨끗했지만, 오래된 먼지와 함께 거미줄이 쳐 있었다.
나달은 거미줄과 먼지를 앞으로 쓸어내며 전진했다.
“이 방들은 도대체 뭘 할 때 쓰던 방인가요?”
“심문할 때 사용하지.”
“······그건 저도 알아요. 왜 가문 저택 지하에 이런 심문실이 있는 건지 궁금한 거죠.”
“그 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케케묵은 이야기를 꺼내야겠군.”
루체트 황가에 충성하는 가문이야 여럿 있다고 하지만 음지에서 일하는 가문도 있게 마련이다.
아센시오 가문이 특히 그런 가문이었다.
“9년 전 멸문한 가문을 기억하나?”
“9년 전이라면 사피아 가문이군요. 빛을 이용한 독특한 경신술로 유명한 기사 가문이라는 것까지만 알고 있습니다.”
“정확히는 어둠을 타고 움직이는 경신술로 유명한 가문이지. 나는 마법사긴 하지만 기사라고 하면 주군을 지키는 검술을 사용한다는 것쯤은 안다. 암살을 하거나 어둠을 틈타 몰래 움직이는 검술은 사용하지 않는다. 그건 기사가 아니라 암살자라고 부르지.”
“그러면 설마 사피아 가문은······.”
“그래. 사피아 가문은 선동가들과 반역자들의 피를 먹고 자란 암살자 가문이다. 아센시오 가문 또한 마찬가지고.”
아센시오는 가장 깊숙한 방문을 열었다.
그러자 오래된 해골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사피아 가문이 반역자들을 아센시오 가문의 심문실로 데려오면 우리가 심문하고 그 정보를 황제 폐하께 보고하는 식으로 운영이 되었지.”
“이 일을 지금 남작님은 알고 계셨나요?”
“아니. 모른다. 전대 가주님께서 이 비밀을 나만 알고 계시라고 하셨으니까.”
“그럼 인퀴지터는 왜 생겨난 건가요? 인퀴지터의 목적은 반역자 또는 테러범와 같은 강력 범죄자들을 잡거나 조사하는 일이잖아요. 사피아 가문과 아센시오 가문이 하는 일이 겹치는데요?”
“인퀴지터는 원래부터 사피아 가문과 아센시오 가문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점점 인퀴지터가 하는 역할이 커지다 보니 하나의 기관으로 성장한 거지.”
나달은 이어서 복도 끝에 있는 작은 방에 데려갔다.
그곳에 있는 작은 스위치를 누르니 기계가 작동하며 방 전체가 위로 움직였다.
“이것도 설마 엘리베이터인가요?”
“그래. 이곳은 가주의 개인 서재와 직통으로 연결된 곳이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나달은 벽을 살짝 밀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벽은 부드럽게 밀리며 텅 빈 서재가 나타났다.
서재는 방금 전에 청소를 한 듯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나달이 3층부터 청소를 먼저 하길래 왜 하나 했더니 서재 청소부터 한 모양이었다.
“이곳은 전대 가주님께서 가장 오랫동안 집무를 보신 곳이다. 지금은 없지만 아센시오 가문이 탄생한 이후로 쭉 사용되었던 원목 탁자가 있었지. 이곳엔 소파와 탁자가 있었다. 항상 마법 공부를 할 때 나는 이 소파에 앉아서 공부를 했다.”
나달은 덤덤히 서재 곳곳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창가 쪽에 있는 책상에는 항상 빳빳한 보고서가 놓여 있었고.
책상 오른쪽 상단과 소파 탁상 중앙엔 라벤더 방향제가 놓여 있었는데, 아센시오 남작의 몸에서 나는 피 냄새를 지우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마고는 틈만 나면 오래된 고전 소설을 읽는 것을 즐겨해 책상에 앉았을 때를 기준으로 오른쪽 책꽂이에 해어진 소설책들이 놓여 있었다.
나달의 설명은 굉장히 구체적이었기에 그냥 듣기만 해도 이 텅 빈 공간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었다.
“조금 아쉽네요.”
“어떤 점이?”
“여기가 멀쩡했다면 제가 직접 볼 수 있었을 것 같아서요. 가구 같은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래. 전부 빚쟁이들이 가져갔다.”
“왜죠? 적어도 이 서재에 있는 가구는 사두시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요.”
“가주 님의 유언이었다. 마고 님은 아센시오 가문의 명맥이 내 세대를 끝으로 종식되길 바라셨다. 그래서 가문이 진 빚을 일부러 갚지 않고 파산하도록 놔둔 거지. 물론 내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제법 오랫동안 남작 가문의 명맥이 이어져 내려오긴 했지만 오늘로 끝이다. 아센시오 가문은 이제 없어.”
라칸은 나달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도대체 왜 마고는 아센시오 가문의 명맥이 끊기길 바란 걸까?
“왜 전대 가주님께서 아센시오 가문의 명맥이 끊기길 바랐는지 궁금하겠지. 나도 그랬다. 하지만 그 답은 죽을 때까지 들을 수 없었다.”
“아······. 그렇군요.”
나달이 딱히 숨기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나달도 진짜 모르는 듯했으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마고가 의심스럽다.
비밀 지하실까진 이해할 수 있는데, 왜 가문이 멸문하길 바란 걸까?
티그리스에게 ‘왜 가문이 멸문되어야 할까요?’라고 물어보면, 오히려 가문이 멸문되면 안 될 이유를 100가지는 차분하게 설명해 줄 것 같다.
“그나저나 퀘스트는 성공했나?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저택의 비밀이긴 한데?”
나달이 왜 이렇게 열심히 설명하나 했더니만 라칸의 퀘스트 때문에 깊게 설명해 준 모양이었다.
라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퀘스트 성공 메시지는 안 떴어요.”
“이게 내가 알고 있는 저택의 비밀의 전부인데······. 그럼 내가 모르는 비밀이 이 저택에 있는 모양이군.”
나달은 창문을 뚫고 들어오는 창백한 달빛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밤이 늦었군. 오늘은 이곳에서 자고 내일부터 조사하는 걸로 하지.”
“네. 알겠습니다.”
“방은 알아서 잡아서 자도록 해라. 난 여기서 자겠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
라칸은 더 궁금한 점이 있었지만, 나달이 혼자 있을 시간을 주기로 했다.
나달도 사람이니까.
* * *
라칸은 벽난로에 땔감을 적당히 집어넣고 불을 피웠다.
정상적인 침대도 없고 맨바닥에 침낭을 깔고 자야겠지만 창문이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라칸은 레인로버가 맞춰준 고급 양복을 아공간 주머니에 집어넣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낭 안으로 들어가 불멍을 잠시 때렸다.
“흠······.”
라칸은 눈앞에 아른거리는 퀘스트창을 쳐다봤다.
“지하실은 비밀이 아닌 모양이지?”
아센시오 가문과 사피아 가문의 비화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퀘스트 성공 메시지가 뜨지 않았다.
이보다 더 기가 막힌 비밀이 있다는 걸까?
잠이 오지 않는다.
라칸은 잠도 오지 않는데 그냥 저택을 돌아다녀 보기로 했다.
“아, 맞다.”
라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꺼내 불에 태웠다.
그러자 라칸의 몸에 푸른색 불꽃이 스며들더니 사라졌다.
아모리스가 선물로 준 부적인데 불에 태우면 웬만한 악령은 라칸을 쳐다도 보지 못하게 만들어준다고 했다.
저택 지하실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사람이 죽어 나간 데다가 사람도 거의 살지 않았으니 이 저택에 잡귀나 악령이 살 수도 있었다.
남작의 상태가 제법 좋았던 것으로 보아 악령은 없는 것 같았지만, 이 으스스한 저택에 잡귀라도 만나면 심장에 좋지 않으니 그냥 편하게 부적을 사용하기로 했다.
‘맞다. 나달 님도.’
라칸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부적 하나를 더 꺼내 나달이 자고 있는 서재 문에 붙였다.
‘이제 시작해 볼까?’
라칸은 본격적으로 저택 탐험을 시작했다.
저택 곳곳을 깔끔하게 청소해서 거미줄이나 먼지 따윈 하나도 없었다.
부서지거나 망가진 가구도 모두 마당에 차곡차곡 쌓아놓았기 때문에 저택 내부엔 아무것도 없었다.
시선을 어디에다가 두든지 회색빛 콘크리트만이 가득했기 때문에 저택의 구조만 살펴보기로 했다.
‘흠······. 별거 없는데?’
‘최상급 탐색’의 능력으로 훑어봐도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비밀 문이라든가 비밀 방이 있나 툭툭 두들겨 보고 탐색 마법을 사용해 봐도 비밀 지하실과 연결된 엘리베이터를 제외하면 저택 안에 비밀 공간은 없었다.
‘아, 잠시만.’
그러고 보니 뭔가 이상한 게 딱 한 가지 있었다.
라칸은 지하실로 향했다.
지하실로 향하자 라칸이 좀 전에 차곡차곡 정리해 둔 고서들이 라칸을 반겨주었다.
오랫동안 습기 가득한 지하실에 무방비로 방치되어 있던 탓에 책들은 잔뜩 해어지고 망가져 있었다.
‘왜 이 책들은 가져가지 않은 걸까?’
라칸은 따로 정리해 둔 마법서들을 확인했다.
마법서들은 보존 마법 처리되어 있어서 상태가 괜찮았다.
그렇기에 이상하다.
빚쟁이들이 왜 마법서는 건들지 않은 걸까?
돈 되는 거면 다 가져가는 게 맞을 텐데.
‘여기에 분명 비밀이 숨겨져 있을 거야.’
라칸은 최상급 탐색을 사용했다.
마법서를 제외하곤 다른 책들은 분류하지 않았기에 다른 책들을 나름대로 분류해 보기로 했다.
‘이건 철학이고 이건 소설이고, 이건 제목을 읽을 수 없네. 기타로 놓자.’
라칸은 행여나 책들이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염동 마법으로 들어 올려 차곡차곡 분류했다.
워낙 많이 훼손된 것들이 많아서 제목을 읽을 수 없는 것도 많았다.
그런 건 책 내용을 펼쳐 대충 읽어본 다음 나름대로 분류했다.
철학, 종교, 자연과학, 마법학, 미술, 음악, 언어학, 문학, 주술, 의료학, 기타 총 11가지로 구분 지은 후 다시 세분화했다.
철학이나 종교, 미술, 음악, 언어학은 시대별로 정리하고 자연과학과 마법학, 의료학, 기타는 저자별로 정리하고 문학은 고전 소설과 근현대 소설로 정리했다.
주술은 점성술과 저주에 관한 내용뿐이라 출간 연도별로 정리했다.
정리가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분석하는 일뿐이었다.
[기타를 제외하고 가장 적은 유형은 문학이다.]
[가장 많은 유형은 마법학이고 연금술이 가장 많다.]
[연금술로 유명한 아센시오 가문치고 4대 난제(호문쿨루스, 철혈 심장, 현자의 돌, 엘릭서)와 관련된 서적이 단 하나도 없다.]
[의료학과 연계된 연금학이 의외로 많다.]
[의료학 서적의 대부분이 근육과 신경계 쪽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노엘의 병명은 근위축성 측삭경화증(ALS). 희귀병이다.]
[의료학 서적에 동일한 글씨체의 낙서가 많다. 마고의 펜글씨일 가능성이 높다.]
역시나 마고는 노엘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모든 수를 썼다.
좋은 포션부터 시작해서 성수, 마법사라면 극도로 멀리하는 주술까지 섭렵한 모양이었다.
라칸은 마고의 펜글씨가 의료학 서적 곳곳에 적혀 있는 만큼 깊게 조사하기 시작했다.
[성수도 의미가 없다. 성수를 마셨을 땐 하루나 이틀 정도는 괜찮지만, 다시 원상태로 복구된다. 체질의 문제다.]
[엘릭서를 만들어도 소용이 없다. 엘릭서는 시간과 관련되어 있는 전설의 영약임으로 시간을 되돌려 몸 상태를 원상태로 복구시키는 것은 의미가 없다.]
[철혈 심장 쪽이 그나마 연구해 볼 가치가 있다.]
[철혈 심장의 핵심 재료는 거인의 심장이다. 그 외에 구할 수 없는 희귀 재료들이 너무 많다. 포기한다.]
[대신, 새로운 육체를 만들어 영혼을 옮기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어?”
마고는 현대 의료학에서 해답을 찾아내지 못하자 연금학의 4대 난제를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고는 호문쿨루스에 대한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영혼을 옮기는 것은 주술의 영역이다.]
[그러나 새로운 육체를 만드는 것은 연금술의 영역이다.]
[인체 연성의 가장 큰 문제점은 신경계와 뇌의 개발이다. 고대부터 영혼은 뇌에 담긴다고 했다. 세밀한 조합법이 필요하다.]
[그런데 빈 육체에 영혼을 담는다면 그건 노엘일까? 아니면 새로운 무언가일까?]
마고는 호문쿨루스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인체 해부학은 기본이고 신체를 부위별로 연성하는 부위 연성법을 채택하여 실험하고 있었다.
실험체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인퀴지터에 잡혀 온 반란 선동가들 또는 강력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다.
라칸은 마고의 낙서를 읽을 때마다 마고의 잠잠한 광기와 아들을 위한 애절함에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마고는 아들을 위해 인간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노엘을 구하기 위해 비밀 지하실에서 인체 실험을 감행했고, 주술사를 불러 영혼을 옮기는 실험도 진행했다.
‘확실해. 마고는 호문쿨루스 연구를 했어.’
라칸은 기타로 분류해 두었던 책들을 꺼냈다.
그중에 마고의 글씨체로 적힌 노트를 찾았다.
거기엔 평범한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없는 암호문으로 적혀 있었지만, 라칸은 읽을 수 있었다.
이건 인퀴지터가 사용하는 암호기법이었으니까.
[#158번 로드리 베커. 키 172㎝ 체중 66㎏. 영혼 추출 성공. 보관 실패. 마석 4% 함양 유리병 실패.]
[#159번 힐만 우드. 키 173㎝ 체중 91㎏. 영혼 추출 성공. 보관 실패. 마석 5% 함양 유리병 실패.]
······
[영혼은 유리병에 담지 못한다. 오직 인간의 몸에 담아 보관해야 한다는 가설이 확실하다.]
[문제는 죽은 시체에 담지 못하고 살아 있는 육체에 담아야 하나 살아 있는 육체엔 영혼이 담겨 있어서 밀어내지 못한다.]
라칸은 읽어 내려갈수록 소름이 돋았다.
얼마나 많은 실험체들이 죽은 걸까?
심지어 이 실험은 마고만의 독단적인 실험이 아니었다.
마고처럼 아픈 아들이나 딸을 둔 귀족들이나 부호들의 지원을 받아 실험을 진행했다.
‘이렇게 열심히 실험을 했는데 호문쿨루스와 관련된 서적이 없다고?’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보다 나달은 과연 이 잔혹한 실험이 일어났다는 걸 알까?
아마 모를 것이다.
나달은 이곳에 마고가 죽은 이후에 처음 오는 거라고 했으니까.
라칸은 노트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과 계약했다.]
[노엘 드 아센시오. 키 172㎝ 체중 59㎏ 영혼 추출. 보관 성공.]
[노엘은 새로운 이름으로 살아가리라.]
[날 구원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구세주.]
[나달.]
마고는 결국 호문쿨루스 연성에 성공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