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4. 길 잃은 자의 낙원(3) >
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14화
길 잃은 자의 낙원(3)
라칸네가 고디바 왕국의 수도 사마곤에 도착한 것은 빅토리에에서 떠난 지 열흘하고 이틀이 지난 후였다.
그나마 왕국의 수도 사마곤까지 직통으로 운행하는 열차가 있어서 다행이지, 중간에 갈아타야만 했다면 2주가 넘었을 것이다.
열차가 플랫폼에 점점 가까워지자 트리샤는 레인로버와 아모리스에게 검은색 천을 건넸다.
“이건 니캅이라고 하는 거예요. 고디바 지역의 전통 복장이죠. 제가 한번 보여줄 테니 따라 써보세요.”
트리샤는 익숙하게 니캅을 썼다.
니캅을 쓰니 트리샤의 눈을 제외하곤 머리카락부터 얼굴 전체가 검은 천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레인로버는 신기하다는 듯이 트리샤가 쓴 니캅을 쳐다봤다.
“고디바 왕국의 여자들은 이런 걸 쓴다고 들었는데 진짜 신기하네요. 얼굴이 아예 보이질 않네.”
“무슨 도적 떼 같죠?”
“사막 한가운데에서 마주치면 멈칫할 것 같긴 하네요.”
“맞아요. 실제로 그런 효과도 있어요. 여성들이 니캅을 사용하게 된 계기가 도적 떼들을 피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도 있죠.”
아모리스는 니캅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전통이라고 하기엔 나 때는 이런 거 없었던 것 같은데?”
“정말요? 제법 오래된 전통 복장으로 알고 있는데요.”
“적어도 1,300년 전엔 이런 건 없었어. 그런데 제법 불편할 것 같은데?”
“생각보다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실크 재질이라서 숨쉬기도 편하고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피부도 지켜줄 수 있죠. 그 무엇보다 귀찮게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도 있죠.”
“그 말도 맞긴 하네. 그래서 이건 어떻게 쓰는 거야? 다시 보여줄 수 있어?”
“네~ 도와드릴게요. 할머니.”
“이 자식이!”
라칸을 포함한 네 사람은 열차 여행 중에 제법 친해졌다.
길고 지루한 열차 여행 중에 할 만한 것은 대화 밖에 없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제법 친해지게 되었다.
트리샤는 다시 한번 친절하게 레인로버와 아모리스에게 니캅을 쓰는 법을 알려주었다.
니캅을 쓰는 두 사람을 보며 라칸이 말했다.
“혹시 저도 주실 수 있어요?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하면 조금 불편해서요.”
폴리모프 마법은 체형부터 시작해서 얼굴 전체를 변형시키는 마법이다.
그래서 자기 몸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몸으로 움직이는 기분이라 생각보다 불편하다.
물론 적응한다면 적응할 수 있긴 한데 덥고 발이 푹푹 빠지는 사막을 폴리모프 마법을 쓴 채로 건넌다는 건 고역이나 다름이 없었다.
“라칸, 니캅은 여자만 착용하는 복장이라서 필요 없어. 그리고 네가 니캅을 쓰면 오해를 받아.”
“뭐라고 오해받는데요?”
“도적이라고.”
“엥? 도적이요?”
“몇몇 악질 도적들은 니캅을 쓰고 도적질을 하거든. 그래서 남자는 니캅을 쓰지 않고 밝은색 계열의 터번을 쓰지.”
“아아······.”
열차가 멈췄다.
트리샤는 짐을 들며 말했다.
“니캅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설명해 줄게. 그것보다 일단 숙소부터 잡자.”
“숙소 걱정은 하실 필요 없어요. 인퀴지터들에게 숙소를 미리 준비해 달라고 부탁했거든요. 몸만 가면 돼요.”
트리샤는 의외의 눈빛으로 라칸을 쳐다봤다.
“준비성이 철저한데? 리더님?”
“이 정도는 기본이죠. 절 따라오세요.”
라칸은 폴리모프 마법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흔하게 볼 법한 중년의 히르페인으로 변했다.
코가 매부리코로 변하고 피부가 구릿빛으로 변했으며 속눈썹이 진해지고 수염도 숭숭 났다.
거기에 토브를 입고 터번을 쓰니 영락없이 고디바 왕국인 같았다.
모든 채비가 끝나자 라칸은 열차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후끈한 사막의 열풍이 밀려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 뜨겁네요.”
지금까지 열차 내부엔 온도 조절 장치가 있어서 사막의 열기를 느끼지 못했다.
창문에 비치는 뜨거운 태양을 보며 제법 뜨겁겠다고만 생각했을 뿐이지 이 정도로 더울 줄은 꿈에도 몰랐다.
“9월이라서 그나마 시원한 거야. 앞으로 더 더워지겠지.”
“생각보다 사막 여행이 쉽지 않겠네요.”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주르륵난다.
푹푹 찌는 사막을 폴리모프 한 상태로 걸을 생각 하니 끔찍했다.
역을 벗어나자 라칸은 발을 멈췄다.
갑자기 라칸이 발을 멈춰 서자 트리샤가 다가왔다.
“왜 그래 라칸?”
“여기 뭔가 익숙해서요. 약간 이집트 같아요.”
“이집트?”
“제가 살던 지구에 있던 사막 나라 이름이에요. 물론 피라미드 같은 건 안 보이지만 분위기가 이집트 같네요.”
“오, 그 이집트라는 덴 가봤어?”
라칸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런 곳에 가볼 여력이 있었겠어요. 그냥 교과서나 사진으로만 본 거죠.”
레인로버나 트리샤는 라칸의 말에 신기하다는 듯이 눈을 초롱초롱 반짝였지만, 아모리스는 굳은 표정으로 라칸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페레이라도 처음 고디바 사막에 발을 들이자마자 한 말이 이집트 이야기였다.
지금처럼 뜬금없이 라칸에게서 페레이라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되면, 자꾸 페레이라가 살아 돌아온 것만 같아 심장이 아팠다.
“거기는 나일강이라는 큰 강이 흐른다고 하는데······”
아모리스는 라칸의 말을 잘랐다.
“우리 너무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 같은데. 어서 갈까?”
“아, 그러게요. 길거리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었죠.”
라칸은 지도를 보며 미리 잡아둔 숙소로 향했다.
* * *
숙소는 그렇게 좋다고도 할 수 없고 안 좋다고 할 수 없는 평범한 고디바 왕국 양식의 집이었다.
거실 하나 방 두 개 화장실 하나가 끝이었다.
“호텔이 아니네?”
“누가 좀 전까지 쓴 것 같기도 하고.”
라칸은 폴리모프 마법을 풀며 말했다.
“인퀴지터 요원 하나가 숙소로 쓰던 곳이에요. 24시간만 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아~”
“일단 오늘은 여기서 묵을 거니까 짐부터 정리하고 모이죠.”
네 사람은 간단하게 짐 정리를 끝내고 거실에 모였다.
거실 한가운데에 라칸은 지도를 펼쳤다.
“우선 우로스의 위치가 변하진 않았죠?”
“응. 오늘 아침에 확인해 봤는데 변한 건 없었어.”
라칸은 지도에 찍힌 붉은 점을 짚었다.
“그러니까 여기라는 거죠?”
“응.”
라칸과 레인로버 그리고 아모리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마곤에서 남동쪽으로 약 250㎞떨어진 사막 한가운데.
40㎞ 근방에 오아시스 도시도 없는 허허벌판 위다.
여길 도대체 어떻게 가야 할 것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사막을 일직선으로 횡단하는 건 불가능하겠죠?”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디바 사막은 밀림 같은 곳이야. 수인들이 사는 마을 주변은 몬스터 정리가 되어 있지만, 그 외의 지역엔 위험한 몬스터들이 득실득실한 것처럼 여기도 똑같아.”
물론 네 사람이 고디바 사막의 토종 몬스터들을 해치우지 못할 정도로 약한 건 아니다.
하지만 몬스터들을 일일이 제거하며 전진하면 체력적으로 무조건 지칠 것이고 사막 횡단이 생각보다 더 길어질 것이다.
“그리고 단순히 몬스터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건널 수 없는 위험한 지역도 수두룩해.”
“예를 들면요?”
“우선 여기.”
트리샤는 사마곤에서 남동쪽으로 약 50㎞ 떨어진 절벽을 가리켰다.
“여긴 뱀이 지나간 절벽 정도는 아니지만 폭이 30m정도 갈라진 절벽이 있어. 물론 부유 마법으로 그냥 건너갈 수도 있긴 하지만 이 지역 인근엔 하울러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굉장히 곤란하지.”
“하울러요?”
몬스터 전문가인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하울러는 박쥐 머리에 독수리 날개가 달린 몬스터야. 집단 생활을 하고 음파 공격을 퍼부어서 먹잇감의 뇌를 진탕으로 만들지. 그 무엇보다 성격이 지독해서 먹잇감을 한 번 물면 끝까지 쫓아와.”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심지어 사막 한가운데에서 하울러에게 쫓기면 온갖 몬스터들이 다 달려들기 때문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전투를 해야 할 거야. 그러니까 여긴 반드시 피해야지.”
“그럼 어떻게 이동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리를 잘 모를 땐 정공법이 최고지.”
트리샤는 펜을 들어 오아시스 마을에 체크 표시를 했다.
“큼직한 오아시스 마을들을 중간중간 들러서 가는 편이 나을 거야. 쌍봉낙타를 타고 이동하면 체력도 많이 보존할 수 있을 거고 물이나 식량 보급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겠지.”
“하지만 단점도 있겠죠?”
“사람이 자주 오고 가는 곳이다 보니 도적 떼가 많아.”
레인로버는 눈썹을 찌푸렸다.
“좀 전에도 말하긴 했는데, 정말로 지금 시대에 도적 떼가 있나요?”
“고디바 왕국은 애초에 오아시스 유목민들이 하나로 뭉쳐서 만들어진 곳입니다. 높은 성벽을 쌓을 수 있을 만큼 지반이 안정된 곳도 아니고 수십만 명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수원(水源)이 확보된 곳도 아니죠. 그나마 사마곤이 거대 도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마곤강이 흐르기 때문이죠.”
성벽도 없고 오아시스가 메마르면 움직여서 새로운 오아시스를 찾아 떠나는 유목 생활을 하는 부족들이 대다수다.
그렇다고 고디바 왕국에서 병사들을 파견해 도적 무리를 완전 박멸하기엔 사막이 너무 광활하다.
그러다 보니 도적 떼가 들끓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고 안전한 길을 따라 걷게 되면 도적 떼들을 감당해야 할 겁니다. 우리가 들르는 오아시스 마을이 도적 떼에 의해 점거된 도시일 수도 있죠.”
“도적 떼들의 수준은 어떻게 되나요?”
“루체트 황국의 용병들을 떠올리면 쉽습니다. 오러를 쓸 수 있는 사람은 극도로 적고 검술도 체계적으로 익히지 못해 중구난방인 경우가 많죠.”
아모리스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지역을 거의 모른다는 게 문제긴 하네. 놈들은 그걸 노릴 거고.”
아모리스의 말대로 라칸 일행은 고디바 사막에 대해 잘 모른다.
그나마 트리샤가 이곳 태생이라 어느 정도 알고 있을 뿐이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다.
각 오아시스 마을을 점거하고 있는 호족들의 성향이라든가 민도(民度), 지형지물 등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그나저나 티그리스 경은 이곳에 와봤다고 하지 않았나요?”
“아뇨. 티그리스 경은 고디바 왕국에 단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습니다. 회귀 전의 저와 라칸이 방문했다고 했었죠.”
그래서 레인로버도 현재 고디바 왕국의 상황을 잘 모른다.
그나마 알고 있는 내용이라고 해봤자 카이라가 고디바 왕국 곳곳에 자신의 심복을 심어놨다는 것 정도뿐.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절대 정체를 들키지 말라고 한 것이었다.
“혹시 방법이 없을까요?”
“일반적인 도적들은 간단한 통행료만 받고 지나가는 일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들도 굳이 피를 봐가면서 싸울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돈만 있다면 생각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다는 건가요?”
“아뇨. 추가로 어떤 브로커를 고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죠.”
“브로커요?”
“도적들과 주기적으로 소통하는 브로커들이 있다고 보면 됩니다. 도적들은 그 브로커를 통해서만 돈을 주고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안전하게 남쪽으로 가려면 좋은 브로커를 섭외하는 게 좋겠죠.”
레인로버는 살짝 표정을 굳혔다.
“여기서 브로커를 고용하는 건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요? 그러면 저희 모두 24시간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하고 다녀야 하고 편하게 의사소통하는 데에도 많은 제약이 걸릴 거예요.”
“다른 방법이 있다면 오아시스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있는 사막 지도를 산 뒤 우리끼리 이동하는 방법도 있겠죠. 하지만 그 지도가 정확하리란 보장도 없습니다.”
레인로버는 라칸을 쳐다봤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이야?”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판단은 리더가 내려야 한다.
라칸은 눈을 감고 고민했다.
어떤 게 옳은 선택인가?
라칸의 무거운 입이 열렸다.
“이건 지금 당장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트리샤 경도 고디바 왕국을 떠난 지 오래돼서 현재 고디바 왕국 상황이 어떤지 잘 알지 못하기도 하고요.”
트리샤도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다면 이곳 현지인과 대화를 나눠봐야 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겠어?”
“생각보다 찾기 쉬울 겁니다.”
“엥? 어떻게?”
“고디바 왕국에 잠입해 있는 인퀴지터 요원들이 있지 않습니까?”
트리샤와 레인로버 그리고 아모리스는 감탄했다.
라칸이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티그리스와 뭔가 결이 다른 든든함이다.
라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현지 요원들을 좀 만나서 대화를 나누고 오겠습니다. 그동안 조금 쉬세요. 9시간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아모리스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갈게. 너 혼자선 위험하니까.”
“네. 그래주시면 좋죠.”
라칸은 트리샤에게 수정구를 건넸다.
“만약 무슨 일이 있으면 이걸로 얘기하세요. 저도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연락드리겠습니다.”
* * *
라칸과 아모리스가 숙소를 떠나고 난 이후에 트리샤와 레인로버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필요한 물건은 이미 다 준비한 상태라 시장에 가서 살 것도 없었다.
사람이 아무것도 할 게 없으면 잡념에 빠지고, 잡념은 걱정을 낳는다.
‘아빠······ 괜찮을까?’
트리샤에게 있어서 아빠는 좋은 기억밖에 없었다.
언제나 트리샤를 사랑해 주고 배우고 싶은 게 있다면 배우게 해주었다.
마지막에 나이 차가 엄청 나는 남자랑 결혼하라고 했을 때만 제외하곤.
당시엔 배신감 때문에 아빠가 정말 죽을 만큼 미웠다.
하지만 나중에 아빠가 고디바 사막을 탈출할 수 있게 손을 써주었다는 걸 알고 난 이후론 아버지를 용서했다.
그래서 갈등하는 것이다.
지금 아빠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고 떠나느냐 아니면 작전에만 집중을 하느냐.
“트리샤.”
“네?”
“물이 넘치고 있어요.”
주전자가 활화산처럼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트리샤는 아차 했다.
“앗뜨거!”
트리샤는 급하게 주전자를 잡다가 손이 데고 말았다.
레인로버는 의자에서 일어나 트리샤에게 다가왔다.
“괜찮아요? 트리샤?”
“그냥 깜짝 놀랐던 것뿐입니다.”
레인로버는 트리샤의 손을 확인했다.
트리샤의 말대로 손이 빨갛게 달아올랐을 뿐 물집이 잡히거나 하지 않았다.
6성 기사다 보니 평범한 인간과는 내구도 자체가 다른 모양이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레인로버는 북극성의 망토에서 화상 치료제를 꺼냈다.
“괜찮습니다. 알아서 나을 거예요.”
“기사는 손이 생명이잖아요. 어서 내놔요.”
트리샤는 결국 레인로버에게 손을 내어주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손에 약을 바르니 굉장히 빠르게 치료가 되기 시작했다.
레인로버는 트리샤의 손을 잡은 채 입을 열었다.
“트리샤.”
“······네.”
“원래 안 물어보려고 했는데, 트리샤의 상태를 보니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레인로버는 트리샤의 눈을 봤다.
“그 편지에 무슨 내용이 써 있던가요?”
트리샤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대했지만, 역시 레인로버를 속일 순 없었던 모양이었다.
걱정은 전염병처럼 옮는다.
남에게 걱정을 말하면 그 사람도 같은 주제로 걱정을 하게 된다.
우로스 획득 작전만 생각해도 머리 아픈데 레인로버와 다른 팀원들에게 자신의 걱정을 옮기고 싶지 않았다.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말아요. 저 눈치 빠른 거 알죠?”
하지만 레인로버의 곧은 눈을 마주하니 도저히 거짓말이 입밖으로 나올 수 없었다.
트리샤는 긴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아빠에 대한 소식이 들어 있었어요.”
“아빠라면 고디바 왕국의 국왕 폐하를 말씀하시는 거죠?”
“네.”
트리샤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툭 떨어졌다.
항상 강인하고 쾌활했던 트리샤의 눈에서 눈물이 진주처럼 떨어지자 레인로버는 살짝 당황했다.
“아빠가······ 아빠가 곧 돌아가신대요.”
레인로버는 트리샤를 품에 안았다.
트리샤는 레인로버의 품에 안겨 어린아이처럼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