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27화
끝없는 전투(2)
안개는 포그 우드의 것과 성질이 조금 달랐다.
포그 우드의 안개처럼 마나가 풍부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대진 않는다.
그리고 냄새가 많이 다르다.
포그 우드의 안개엔 숲의 시원한 향기가 뒤섞였지만, 이 사막에선 메마른 먼지 혹은 재의 냄새가 났다.
“……뭔가 기분이 굉장히 나쁘네요.”
트리샤의 말에 라칸과 레인로버는 공감했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쾌하고 발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뭔가 작은 계기가 하나 주어진다면 바로 뒤로 돌아가 버리고 싶은 기분이다.
이러니 안개의 사막에 사람들이 잘 들어오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조금 익숙해요.”
“아우로므를 봤을 때 같죠?”
“맞아.”
아모리스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말은 우리가 잘 찾아온 거라는 얘기겠지.”
아모리스는 앞장서서 걸었다.
“어서 가자. 여기도 시간의 흐름이 뒤죽박죽이니까 후딱 해치우고 나가야 해. 그리고 길 잃어버리지 않게 딱 붙어서 이동하고.”
아모리스의 말에 셋은 어미 닭을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꽁무니에 딱 붙었다.
사막의 특성상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거의 없다.
높은 사구 정도가 끝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주변을 배회하는 혼령들이 포그 우드보다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여, 여긴 어……어디야.
-뜨거워. 아파…….
-또……. 또야. 또…….
-지겨워…….
혼령들은 모두 결손된 부분이 하나씩 있었다.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가 없거나 심지어 머리나 하반신이 없는 혼령도 있었다.
그리고 공통적으로 옷이나 머리칼이 불에 그을린 것처럼 탔으며 불똥이 일렁거렸다.
트리샤는 그 혼령들의 옷차림과 무기들을 보더니 살짝 떨었다.
“저 사람들 모두 타이케스를 사냥했던 사막의 전사들이에요.”
트리샤는 한 사막 전사의 창 자루에 박힌 푸른색 인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건 아즈라크 가문의 일원임을 증명하는 인장이에요.”
이어서 발목이 사라져 절며 걸어가고 있는 사막 전사를 가리켰다.
“저 악어 문양은 이미 사라지고 없어진 히미크마 가문이고요.”
패잔병들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사막의 전사들은 모두 고통에 신음하며 괴로워하고 있었다.
“아모리스 님. 부탁이 있습니다.”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아. 저들을 위령해 달라는 말 아니야?”
“……저분들은 이렇게 고통을 받으셔야 할 분이 절대 아니에요. 죽어서까지 이렇게 힘들어하시는 걸 그냥 지켜만 보는 건 선조에 대한 예우가 아니잖아요.”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아는데 저 녀석들은 지금 내가 뭘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네?”
아모리스는 트리샤의 눈을 보며 말했다.
“혼령들이 이 세상에 머무는 이유는 바로 한이 남았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 한이 풀리지 않으면 절대 혼령은 이승을 떠날 수 없지.”
“그 말씀은 저들을 얽매고 있는 한이 이 땅에 남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아. 그게 해결이 안 되면 저 혼령들은 영원히 이 땅을 배회해야만하겠지.”
“그게 뭔가요?”
아모리스는 손가락을 정면으로 향했다.
“저 사구를 넘어가면 저 녀석들을 얽매고 있는 원인이 나올 거야.”
아모리스와 세 사람은 높은 사구를 넘었다.
그리고 트리샤와 라칸 그리고 레인로버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세상에.”
짙은 안개로도 가리지 못할 거대하고 검은 그림자가 몸부림을 치고 있다.
그 검은 그림자가 한 번 움직이면 지형이 뒤바뀌고 주변에 가득한 마나가 놈의 의지대로 흉포하게 날뛰었다.
그리고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해 사막의 모래알처럼 많은 혼령들이 비틀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설마 저게…….”
“맞아.”
-벌레 같은 놈들이이이!!!
“저게 화염룡 타이케스의 악령이야.”
넷은 높은 사구를 사막 전사들과 함께 내려갔다.
-싫어…….
-정말 지긋지긋해…….
-힘들어.
혼령들은 고통에 신음했다.
하지만 결코 그들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놈을 막아내지 않으면…….
-우리 아들 딸들이…….
-내 가족들이…….
-죽어.
그들이 아니면 타이케스를 막아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타이케스에게 다가갈수록 사막의 전사들의 몸이 천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팔이 돋아나고 잘려 나간 발목이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이 사용했던 애병.
무려 300년 넘게 휘둘러 왔던 낡은 창과 칼, 활, 방패.
그리고 각 가문을 상징하는 영광스러운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와아아아아아아아!
-영원한 사막을 위하여!!!
우레와 같은 목소리와 함께 타이케스를 향해 몸을 던졌다.
-귀찮은 것들!!!
그러나 그들의 용맹함은 타이케스의 작은 꿈틀거림에 너무나도 무너졌다.
그의 신경질적인 앞발질에 수십 명의 사막 전사들이 머리를 잃었고.
타이케스의 브레스에 한 줌의 재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기어코 극소수의 전사들이 타이케스의 빈틈을 노리고 칼과 창을 박아 넣지만, 그들의 힘은 미천하여 타이케스의 단단한 비늘을 뚫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타이케스의 입장에서 개미나 저들과 아무런 차이가 없을 것이다.
개미가 물어뜯나 칼을 박아 넣나 생채기 하나도 나지 않는 건 동일하니까.
하지만 그 작은 자극과 귀찮음 그리고 모멸감이 타이케스를 노리는 다른 사막 전사들에게 큰 기회가 되었음은 명실상부했다.
타이케스의 꼬리에 칼을 박아 넣는 사막 전사들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타이케스의 옆에서 치고 들어온 강인한 혼령들이 타이케스의 목을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크아아아악!
처음으로 타이케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목에 깊은 상처가 남기며 검은 연기가 풀풀 흘러나왔다.
방금 타이케스의 목을 향해 검을 내지른 사내가 누구인가?
아모리스는 저 사내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봤다.
“……미쉬타?”
아하드의 오른팔이라 불렸던 사내이자 아하드의 명령을 죽는 날까지 관철하다 불멸의 대장군에게 살해당했던 영웅 중 하나였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강인한 기백을 가진 혼령들이 더러 보였다.
아모리스의 눈에 익숙한 전사들도 보였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아는 사람은 마왕의 시대 때 아하드와 함께 사막을 누볐던 전사들이었고, 모르는 자들은 타이케스와 전투를 하다가 사망한 전사들이었다.
그들의 강인한 혼백만큼 타이케스의 영혼에 깊은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상대는 드래곤이다.
타이케스는 이가 갈리는 모멸감과 들끓는 분노를 바탕으로 몸을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놈들……!
화가 잔뜩 난 타이케스는 사방에 브레스를 뿜으며 미쉬타를 포함해 다른 혼령들까지 집어삼켰다.
“왜 타이케스가 쓰러지지 않는 거죠?”
“이 수호령들이 사라지지 않는 거랑 똑같은 원리지.”
악령이든 혼령이든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한’ 때문이다.
그 혼령들을 강력하게 만드는 것 또한 ‘한’이고.
타이케스와 사막의 전사들은 서로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며 원한을 주고받고 있고, 그 복수심은 다시 한이 되어 수호령과 악령을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타이케스를 포함해 여기에 있는 모든 혼령들은 무한히 돌아가는 쳇바퀴를 달리는 거나 다름이 없어. 서로 상처를 입히면 그 감정이 증폭되어 한이 되고 그 한이 강해지면 상처 입은 혼령이 다시 회복되는 거야.”
아모리스는 입술을 씹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이 모든 짓거리들이 개짓거리라는 의미지.”
아모리스는 품에서 건틀릿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이 개짓거리가 끝날 거야. 내가 이 끝없는 전쟁에 마침표를 찍을 테니까.”
아모리스는 손을 뚜둑 꺾었다.
“모두 나서지 마. 잘못하면 휘말리니까.”
“저희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아모리스는 트리샤를 보며 말했다.
“지금 도울 건 없어. 무식한 일은 나 혼자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아모리스는 빗자루를 밟고 타이케스에게 총알처럼 날아갔다.
타이케스는 저 멀리서 날아오는 여인의 얼굴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너, 넌……!
아모리스는 빙긋 웃었다.
“오랜만이야. 배신자.”
-네가 어떻게?!
“꼴도 좋아. 게헨나와 가족들을 버리고 도망칠 땐 세상을 다 제 것으로 만들 것처럼 도망치더니. 역시 세상은 배신자를 가만히 두는 법이 없나 봐.”
-오, 오지 마!
타이케스는 브레스를 아모리스를 향해 내뿜었다.
아모리스는 품속에서 낫을 꺼내자마자 손가락으로 한 바퀴 굴렸다.
그러자 수천 명의 혼령들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 버렸던 브레스가 산산이 흩어져 사라졌다.
“어휴 입 냄새.”
아모리스는 빗자루 위에서 점프했다.
그리고 양손에 깍찌를 낀 채 온 힘을 다해 해머링을 갈겼다.
“양치 좀 하고 살아!”
쿵!
타이케스의 단단한 정수리에 아모리스의 해머링이 박혔다.
-케에에에에엑!
타이케스는 지금까지 겪어보지 못한 아찔한 고통에 정신이 반쯤 나가 버렸다.
달려오던 혼령들은 타이케스의 기괴한 비명에 당황해 발을 멈췄다.
아모리스는 똑같은 곳을 또다시 한 대 주먹으로 갈겼다.
같은 곳을 또 맞은 타이케스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고 말았다.
“내가 아우로므도 싫어하지만…… 너를 특별히 더 싫어하는 거 알지?”
-그, 그만……!
“게헨나랑 다른 레드 드래곤들이 마왕군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을 때, 넌 게헨나랑 가족들의 둥지에 들어가서 보물들을 훔쳐 달아났었지.”
아모리스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그렇게 이기적으로 살았으면 남부럽지 않게 잘살든가. 지금 이게 무슨 꼴이냐?”
타이케스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팔을 휘둘렀지만 아모리스의 날카로운 낫이 놈의 팔을 통째로 날려 버렸다.
-크아아아아아!
“내가 지금까지 오래 산 이유가 너를 조지기 위해서였나 보다.”
아모리스의 우악스러운 손길이 타이케스의 큰 뿔을 부러뜨렸다.
-미, 미안하다. 그러니 제발 목숨만은……!
“그래. 목숨만은 살려주마. 그런데.”
아모리스는 악귀처럼 웃었다.
“영원히 내게 고통받을 각오는 하고 말하는 거겠지?”
타이케스는 자신이 실언했음을 그제야 눈치챘다.
* * *
아모리스가 타이케스를 주먹 크기만큼 다져놓은 건 20분도 채 지나지 않았다.
“후~ 이 짓도 하다 보니 느네.”
아모리스는 타이케스의 영혼을 주먹만 하게 만들고 봉인 유리병에 가뒀다.
그러자 주변을 떠돌던 사막의 전사들은 그 조그만해진 타이케스를 신기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 아예 죽일까?”
아모리스는 타이케스가 든 병을 마구 흔들었다.
통- 통- 통- 통-!
-으아아아아악! 우에에에엑!
타이케스가 비명을 지르며 구토를 하자 혼령들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죽는 것보다 아모리스의 손에 놀아나는 게 훨씬 더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까 생각이 든 것이다.
아모리스는 타이케스가 든 병을 아공간 주머니에 대충 집어넣은 뒤 트리샤와 레인로버 그리고 라칸을 불렀다.
“이제 준비를 좀 도와줘.”
“무슨 준비요?”
“이제 이 녀석들은 가야 할 곳으로 가야지.”
“아.”
아모리스가 왜 준비를 도와달라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할 것 같았다.
혼령들의 발을 묶었던 원한의 원인이 사라졌으니 이제 묵은 한을 털어내고 가야 할 곳으로 갈 때가 되었다.
“라칸은 제사상 차리는 거 좀 도와주고, 둘은 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떠도는 혼령들이 있다면 모두 불러 모아줘.”
“그런데 안개 때문에 길을 잃어버릴 것 같은데…….”
“아, 맞다. 그게 좀 문제네. 이걸 어떻게 하지?”
그때, 아모리스의 옆으로 혼령 하나가 다가왔다.
키는 거의 티그리스만큼이나 크고 근육이 우람하지만 눈에는 총기가 가득한 사내.
미쉬타였다.
-제가 길을 잃지 않게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모리스 님.
미쉬타의 말에 아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라면 믿을 수 있지. 고마워.”
-예. 알겠습니다.
혼령들을 모으는 일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막 전사들은 본능적으로 타이케스가 있는 방향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인로버와 트리샤가 할 일은 좌절하고 쓰러져 있는 혼령들만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서 데려오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을 줄이야.”
싸울 때도 보긴 했지만, 사막 전사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엄청 많았다.
안개 때문에 가려서 그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니 최소 만 명은 넘어 보였다.
저 많은 사람들이 모두 타이케스의 폭정을 막아내기 위해 목숨을 버린 영웅들.
그들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다는 생각에 트리샤는 물론이고 레인로버와 라칸도 심장이 절로 두근거렸다.
“그럼 시작할까?”
아모리스는 정갈한 흰옷을 입고 그들의 앞에 섰다.
라칸에게 있어서 아모리스는 언제나 멋있고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지금처럼 혼령을 달래는 의식을 진행할 때만큼은 너무 신성해 보여 감히 말조차 걸기 힘들 정도로 우아했다.
아모리스는 짧은 침묵으로 혼령들을 주목시키고 입을 열었다.
“얼마나 슬펐더냐? 죽음 때문에 너희들의 희생이 올바른 곳에 쓰였는지 알 수 없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느냐? 너희들의 눈앞에 영원히 죽지 않는 악이 있었으니.”
“그러나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다. 전투는 끝이 났고, 오늘은 너희들만을 위한 잔칫날이다.”
잔칫상이라고 해봤자 만 명이 먹고 마실 만한 크기는 절대로 아니다.
기껏해야 10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을 정도랄까?
갖고 있던 비상식량들을 죄다 털어서 만든 것인지라 양이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사막 전사들은 차려진 잔칫상에 침을 꿀꺽 삼켰다.
“먹고 즐기고 마셔라. 춤도 추고 실수하며 방탕해져라. 너희는 그럴 자격이 있는 자들이다. 너희들의 희생으로 네 자식들과 네 후손이 숨을 쉬며 번성하고 있노라.”
아모리스는 술잔을 들어 술을 가득 부었다.
“나 아모리스는 너희들의 피와 땀에 절여진 땅 위에 곡식을 뿌려 살아가고 있는 산 사람으로서…….”
아모리스는 술을 들이켰다.
“너희들에게 경의를 표하마.”
그러자 혼령들은 칼과 창 그리고 깃발과 방패, 활을 내팽개치고 잔칫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술과 음식을 맹렬하게 물어뜯으며 즐겼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 * *
음식이 식듯이 사막 전사들이 가야 할 곳으로 떠나갔다.
그러나 남기를 바라는 자들도 있게 마련이다.
“역시 네가 남았구나.”
미쉬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뿐만이 아닙니다. 이 은혜를 갚고 싶어 하는 자들이 제법 있습니다.
남은 숫자는 총 12명.
모두 하나같이 타이케스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던 영웅들이었다.
-이들이 말하길 폐가 되지 않는다면 아모리스 님의 수호령이 되어 아모리스 님을 보필하고 싶다고 합니다.
“내 옆에 있어봤자 고생밖에 안해. 나 봐. 이 나이 먹도록 먼지 마시며 구르고 있잖아.”
-그렇기 때문에 돕고자 하는 겁니다. 그 고생을 덜 수 있다면 저들에게 큰 행복일 겁니다.
“말 참 안 듣네. 이제 훌훌 다 털어버려도 된다니까?”
-오히려 돕지 못한다면 한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 너희들 속 편한 대로 해라. 그럼 너희들 모두 내 수호령이 되는 건가?”
미쉬타는 레인로버를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저와 후마윤 그리고 아만은 이분을 섬기겠습니다.
아모리스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희라면 그럴 줄 알았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레인로버는 그제야 티그리스가 말했던 자신을 따르던 고대의 영혼이 바로 미쉬타임을 깨달았다.
아하드의 오른팔이자 강력한 혼령.
하지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왜 저를 따르려고 하시는 거죠?”
미쉬타는 레인로버…… 아니, 레인로버 안에 있는 마리아의 영혼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아하드 님께서 저희에게 명령을 내리셨기 때문입니다.
“아하드 님께서?”
-네. 당신이 죽는 그날까지 지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전 당신이 죽을 때까지 그 소임을 다하겠습니다.
미쉬타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부디 아하드 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저희를 받아주십시오.
레인로버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미쉬타. 마리아는 이미 죽었습니다. 저는 레인로버 데 루체트예요. 아예 다른 사람이라는 거죠. 그러니 아하드 님과의 약속은 이미 끝난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전 당신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저와 아모리스 님이 상대해야 할 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레인로버는 미쉬타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니 레인로버로서 부탁드리겠습니다. 제가 상대해야 할 적이 사라질 때까지 저를 도와주세요. 그 이후에 편히 눈을 감으세요. 그게 제 조건입니다.”
미쉬타와 아만 그리고 후마윤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도 억지를 부렸다는 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레인로버 님의 부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미쉬타는 레인로버의 손을 잡고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