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30화
우로스(2)
성물 우로스의 공략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란티스의 공격을 버텨내며 우로스를 완성시키기만 하면 된다.
한마디로 우로스를 얼마나 빨리 만드냐에 따라 공략 속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트리샤는 황당하다는 듯이 물었다.
“숫자가 왜 그렇게 늘어난 거예요? 제가 고디바 왕국을 떠나기 전엔 10명이라고 하셨잖아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까 사흘 안에 끊으려면 100명을 모두 투입해야겠더라고.”
“10명만 가면요?”
“그러면 변수가 너무 많아져서 얼마나 늦어질지 모르네. 고대 문헌을 찾아봤는데 우로스 제작에 매달린 드워프의 숫자는 정확하게 100명이야. 만약 10명이 등장인물화 되면 아무리 빠르게 우로스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다른 고집 센 드워프들을 설득하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네.”
우로스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았다.
그란티스가 와이번과 권속들을 보내 공격하기 시작한 것은 거의 1달하고 보름 정도.
그 사이 우로스는 총 13번의 실패, 14번째 도전 만에 완성된 갑주였다.
“우리는 선조님들이 실패하신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한 번에 완성하려고 하는 거네. 그러니 그분들과의 의견충돌 없이 빠르게 완성을 지으려면 100명의 드워프가 한 번에 들어가 공략하는 것이 변수도 없고 빠르게 끝낼 수 있네.”
예상치 못한 변수에 티그리스는 한숨이 작게 새어 나왔다.
아이린은 긴장한 눈빛으로 티그리스를 슬쩍 쳐다봤다.
트리샤가 없는 동안 이번 공략의 준비는 아이린의 몫이었으니까.
티그리스는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드워프 100명이 모두 들어간다고 하면 총 몇 명이 이번에 들어가게 되는 거지?”
“말레우스 님을 포함한 드워프 100명에 스승님, 저, 트리샤, 샤를로트, 네메시스, 나달, 라칸, 레인로버 총 108명이 들어가게 됩니다.”
티그리스는 트리샤를 쳐다봤다.
“트리샤. 108명이 한 번에 성물 공략을 한다면 시간은 얼마나 줄일 수 있나?”
“……못 줄입니다. 108명은 너무 많아요. 시간을 2배로 줄인다고 해도 70명 정도가 최대입니다.”
“그럼 108명 모두 한 번에 성좌의 시련을 받을 수 있게 보조하는 것까진 되나?”
트리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돼요. 저번 철혈 심장의 성좌를 공략했던 것처럼 서로 손을 마주 잡기만 하면 되니까요.”
“좋다.”
괜히 시간을 아끼려다가 변수가 생겨 대형 사고가 터지는 것보단 낫다.
그리고 동쪽 국경에서 무슨 문제가 터진다고 한들 사흘 안에 티그리스가 뭔갈 해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신형 열차를 타고 이동하더라도 무조건 열흘은 넘는 거리니까.
“말레우스 님 혹시 또 다른 건 없습니까?”
“……없네. 일찍 말하지 못한 점 미안하네.”
“아닙니다. 원래 공략대로라면 2주 뒤에 하는 거였을 테니까요.”
티그리스는 잠깐 생각에 잠긴 뒤 입을 열었다.
“그럼 일정을 조금 당기기로 하죠. 다음 주에 시작하는 것이 아닌 나흘 뒤 토요일 아침에 공략하도록 하겠습니다. 말레우스 님 그전까지 준비를 끝내실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네!”
티그리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공략 준비를 최대한 서두르도록 합시다. 그리고 아이린.”
아이린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네?”
“잠깐 이야기하지.”
* * *
티그리스는 아이린과 함께 산책로를 걸었다.
아이린이 키가 커서 좋은 점이 있다면 나란히 걸어도 고개가 덜 아프다는 것이었다.
예전엔 티그리스랑 함께 걸을 땐 눈을 마주치려면 고개를 한참을 꺾어야 했는데, 지금은 살짝만 꺾어도 괜찮았다.
물론 지금은 기가 죽어 키가 1㎝ 정도 준 것 같다.
“아이린.”
“……죄송해요.”
“아니다. 원래 계획이라는 것이 그렇지. 네가 트리샤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것을 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래도 결과가 안 좋으면 아무 소용 없는 거잖아요.”
“군대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뭔지 아나?”
“……작전 계획을 세우는 건가요?”
“아니, 인원 파악이다. 어떤 녀석은 화장실 가느라 늦고, 어떤 녀석은 자신이 다친 것을 숨기고, 어떤 녀석은 꾀병을 부리지. 사람 일이란 게 다 그렇다. 가장 큰 변수는 사람에게서 나와.”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눈을 보며 말했다.
“나는 아직 네게 검술밖에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니 이번 실수로 난 널 질책하지 않을 것이다.”
티그리스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네게 과중한 업무를 맡긴 것도 사실이다. 사실 네가 완벽하게 일을 했다면 나는 오히려 더 불안했을 것이다. 넌 아직 무언가를 계획하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제가 실수하실 줄 아셨던 건가요?”
“그래. 이 또한 좋은 교육이 될 거라 생각했다. 물론 시기가 안 좋긴 했지만 괜찮다. 수습할 수 있는 정도야.”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러니 남들 앞에서 기죽은 표정을 짓지 마라. 약해 보이니까. 실수를 해도 당당하게 맞서라. 네가 한 가문의 가주가 될 거라면 그 정도 뻔뻔함은 갖출 줄 알아야 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표정이 풀리자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사실 너를 이리 따로 부른 이유는 한 가지 물을 게 있어서다.”
“그게 뭔가요?”
“그란티스의 공격이 정확하게 한 달 하고 보름 후가 맞나? 내가 우로스를 공략했을 땐 그랬는데.”
“네. 맞습니다.”
그란티스가 직접 화산지대로 날아와 바로 공격을 했다면, 당시 드워프들은 절대로 우로스를 완성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그란티스는 굉장히 오만하고 게으른 용이었기에 자신을 보내는 대신 자신의 휘하에 있던 와이번들과 용아병 그리고 몬스터들을 보내 화산지대를 공격하게 했다.
물론 한 달하고 보름 동안 기다려도 도저히 공략하지 못하자 결국 자신이 직접 쳐들어가긴 했지만, 드워프들이 만든 우로스를 보자마자 깜짝 놀라 도망을 쳤다.
“그전까진 어디에 있지?”
“화산지대에서 동쪽으로 약 50㎞ 정도 떨어진 그란티스 군도라는 곳에서 살고 있어요.”
아이린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왜 이런 걸 물으시죠? 설마 그란티스의 둥지를 가실 건 생각은 아니시죠?”
티그리스가 한동안 말이 없자 아이린은 발을 멈춰서고 티그리스를 쳐다봤다.
“……진짜 가실 생각이세요?”
“생각 중이다.”
“절대 안 돼요. 스승님도 직접 드래곤을 보셔서 알고 계시잖아요.”
티그리스는 그란티스를 총 3번 목격했다.
한 번은 티그리스가 용아병 ‘렐리우스’를 죽이자 그란티스가 티그리스에게 흥미를 가져 날아왔을 때 한 번.
다른 한 번은 와이번들의 대장 ‘시그마’를 사냥했을 때 한 번.
다른 한 번은 렐리우스와 시그마를 사냥하지 않고 우로스가 완성될 때까지 버텼다가 한 달하고 보름 만에 그란티스를 봤었다.
총 3번 중 티그리스가 그란티스와 눈을 마주쳐서 살아남은 적은 딱 1번이다.
“왜 그란티스와 싸우려고 하시는 거예요.”
“벨프 가문의 검술 때문이다.”
“……네? 제 가문의 검술이요?”
“그래. 말레우스 님께 들었는데, 용살과 관련된 검술서는 기록보관소에 없다고 하더군. 빈스모크 가문의 서고에서도 용살이 없었으니 용살은 사실상 유실된 것이나 다름이 없지.”
아이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벨프 가문의 용살이 어떤 검술인지 설명한 기록이 각 가문의 서고에 있다.”
노르베르드에도 있고 프리하르덴에도 있으며 아인볼프 가문에도 있고, 심지어 빈스모크 가문의 서고에도 관찰 기록은 남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벨프 가문의 용살의 아류작인 ‘용 가르기’가 아이린의 손에 남아 있다.
“나는 각 검술 가문들에게 요청해 벨프 가문의 용살에 대한 관찰 기록들을 요청했고 모두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록을 집대성해서 용살과 비슷한 검술을 하나 만들 수 있었다.”
티그리스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다소 두꺼운 노트 한 권을 꺼냈다.
“이게 바로 그 검술이다.”
“……그럼 집무실에서 그동안 열심히 뭔가를 적고 계셨던 게 이거였나요?”
티그리스의 집무실에 들어가면 항상 뭔가를 적고 있었다.
티그리스의 일은 보통 사인하는 게 일일 텐데 거의 뭔가를 적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걸 준비할 줄이야…….
“그래. 하지만 미완성이다. 단순히 글로만 전해져 내려온 것이라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도 아우로므의 비늘로 직접 연습해 보면서 검술을 사용해 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시도해 봤지만, 죽은 용의 비늘로 연습을 하니 뭔가 텅 빈 느낌이더군.”
“……그래서요?”
“벨프 가문의 가주가 베었다던 그란티스의 비늘과 살점을 베어보면 용살을 이론적으론 완성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그, 그게 정말인가요?”
“그래. 그렇다고 해서 벨프 가문의 가주가 만든 용살과 완전히 똑같은 검술이라고 할 순 없겠지만, 굉장히 흡사하겠지. 그래서 네게 물어보는 것이다. 그란티스와 직접 싸우는 것이 가능할지 말이다.”
“그건…….”
아이린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생각했다.
“그란티스를 사냥할 때, 루체트 황가가 갖고 있던 신의 창과 천공의 사슬로 그란티스의 움직임과 용언을 묶고 제 선조님이 용살이라는 검술로 그란티스의 목을 베었어요. 여기서 등장하는 사람은 총 2명뿐이지만 사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죠.”
“그래서 레인로버가 신의 창과 황금 벼락 지팡이를 갖고 왔다. 내겐 천공의 사슬이 있고.”
“그래도 너무 위험해요. 괜히 그란티스를 자극했다가 공략이 틀어지기라도 한다면…….”
“그래서 네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현시점에서 우로스 공략의 전체적인 그림을 알고 있는 사람은 너뿐이니까. 내가 나서도 되겠나?”
티그리스의 질문에 아이린은 깊게 고민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가능성이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있어요. 우로스를 완성시키기 직전에 용아병 ‘렐리우스’나 와이번 로드 ‘시그마’를 사냥하는 거죠. 그러면 그란티스가 화산지대로 날아올 거예요.”
“공격하기보단 화산지대에서 그란티스를 맞이하는 게 낫다 이 말이군.”
“네. 그렇게 한 후에 그란티스를 공략하면…….”
아이린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역시 안 되겠어요.”
“위험한가?”
“두말할 필요도 없이요.”
아이린은 주먹을 꽉 쥐었다.
“벨프 가문의 검술을 되찾는 것은 제게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만, 그보다 더 다급하고 중요한 것을 앞두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우로스에만 집중해도 늦지 않아요.”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나?”
아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급해질 필요는 없으니까요. 전 아직 시간이 많아요. 스승님께서 주신 이 검술서를 연구하다 보면 용살을 다시 완성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티그리스는 아이린의 결단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뜻이 그렇다면 받아들이겠다.”
“감사해요.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아이린은 검술서를 품에 꼭 안았다.
“그리고 벨프 가문의 검술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셔서.”
“스승이니 당연한 일이다.”
“아뇨. 지금까지 받은 것 중에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아이린의 눈물이 뚝 떨어졌다.
“저 진짜 열심히 할게요. 감사해요. 스승님.”
* * *
우로스의 공략은 황궁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우로스 공략대원 108명의 사람들을 모두 안전하게 지키려면, 황금 기사단과 철혈 마법사단의 도움을 받는 편이 나았기 때문이었다.
아모리스는 넓은 정원에 빙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을 보더니 휘파람을 불었다.
“성물 공략 역사상 이렇게 많은 숫자가 한 번에 들어가는 경우는 처음일 거야.”
티그리스는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절대 실패하지 말아야죠.”
“실패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아모리스는 티그리스의 번쩍이는 황금 갑주를 툭툭 치며 말했다.
“드래곤 비늘을 입고 드래곤의 권속들과 싸우는 건데 말이야. 용아병이 흠집이나 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100명이 넘는 드워프들이 몇 달동안 고생해서 만든 드래곤 비늘 갑주는 놀라울 정도로 가볍고 튼튼했다.
이렇게 단단한 비늘을 가지고 어떻게 이런 편한 갑주를 만들었는지 당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번쩍이는 갑옷을 입고 있으면 거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트리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등장인물화 때문에 전혀 이상하게 보지 않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싶죠. 물론 자신이 맡은 역할에서 벗어나면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긴 하는데 그거야 뭐 상관이 없죠.”
“너희는 우로스가 완성될 때까지 버티기만 하면 되니까?”
“네. 맞아요.”
아모리스는 저 멀리서 레인로버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바스티얀을 쳐다봤다.
“그나저나 바스티얀은 왜 못 들어간다는 거야?”
“할 일이 많으시기도 하고 이젠 연로하시니까요.”
“하긴……. 노인네를 저번에 너무 굴리긴 했어. 그럼 소라는?”
“누군가는 학교를 맡아야 하니까요. 소라도 이제 의젓해져서 제법 학생들을 가르칠 줄 알아요.”
“오오~ 그래?”
“나중에 소라가 학생들 가르치는 거 보면 신기할걸요? 사람이 확 달라졌다니까요.”
아모리스는 하늘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그건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고……이제 슬슬 시작할 시간이네. 우로스 공략을 새벽에 해야 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트리샤는 천체지도를 준비하며 말했다.
“뭐, 성물 사냥꾼들 사이에서 내려오는 미신 같은 거죠. 웬만하면 성좌가 보이는 시간대에 들어가면 재수가 좋다고 하던가?”
“그런 웃긴 미신도 있네.”
“재수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요. 물론 한시라도 더 빨리 우로스를 공략하려고 하는 것도 있긴 하지만요.”
트리샤는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기 시작한 해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이제 슬슬 성좌가 보이네요. 모두 준비하세요.”
트리샤의 말에 모두 손을 마주 잡았다.
아모리스는 괜히 휘말리지 않게 살짝 떨어졌다.
“마지막으로 장비 확인하시고 문제 있나요?”
“문제없다! 어서 들어가기나 하자!”
드워프들의 성화에 트리샤는 별바라기의 천체지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천체지도에서 흘러나온 검고 푸른 우주가 공략대원들을 집어삼켰다.
마지막으로 트리샤는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우로스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말씀드립니다! 공략에 들어가면 성 가장 안쪽에 있는 대장간으로 무조건 모이세요! 거기서 각자 자신들이 맡은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후 작전 계획을 세밀하게 수정하겠습니다!”
“오케이!”
“그럼 들어갑니다!”
트리샤의 손이 우로스의 가슴에 닿자 110명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을 잃었다.
* * *
티그리스가 정신을 차리자마자 검에 손을 올린 후 주변을 훑었다.
‘여긴…….’
굉장히 익숙한 광경이다.
회귀 전에 3번, 회귀 후에 오늘 1번 봤으니 익숙할 만도 하다.
이곳은 화산지대의 철옹성 같은 성벽 위.
매캐한 유황 냄새와 재 냄새가 뒤섞여 음산한 기운을 증폭시킨다.
티그리스는 물자들을 나르는 병사들을 봤다.
인간과 엘프 그리고 수인들이 대다수다.
이 시기의 인간과 엘프 그리고 드워프와 수인은 서로 혐오하는 관계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위기는 원수도 손을 잡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던가?
서로 싫어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도 그란티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화산지대에 터를 잡고 공격을 대비하고 있었다.
이제 슬슬 한 사람이 자신을 부를 때가 됐는데…….
“숄!”
숄.
그란티스에 의해 멸망한 동남쪽 작은 섬나라, 베키우 왕국의 소드 마스터.
그란티스의 공격으로부터 도피하다가 결국 이 화산지대까지 흘러들어왔고, 이곳에서 그란티스를 방어하기 위해 이종족 연합에 가세하게 된 인물이자, 티그리스의 역할이었다.
티그리스는 자신을 부른 쪽을 쳐다봤다.
그곳엔 제법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회색 늑대 귀에 풍성한 꼬리 그리고 티그리스보다 머리통은 하나 더 큰 사내.
수인족들의 대장로.
바야가였다.
바야가가 이제 다음에 해야 할 말은 하나다.
“좋다.
“싸우……어? 뭐야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고 있었나?”
“내게 할 말이라곤 그것밖에 없지 않나?”
티그리스는 검을 빼 들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시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