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33화
우로스(5)
-크아아아아아!
몬스터들은 티그리스를 향해 미친개처럼 달려들었다.
“숄 경을 지켜라!”
“마법사들은 뭐 하는 거야! 어서 공격해!”
“화살을 높이 들어 쏴라!”
티그리스가 제법 많은 숫자를 줄여놓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몬스터들의 숫자는 많았다.
본격적인 몬스터들과의 전쟁이 시작되자 티그리스는 적당히 싸워주다가 뒤로 물러나 방벽으로 대피했다.
티그리스가 일당백의 기사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많은 대군을 홀로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샤를로트가 티그리스가 돌아오자 입을 열었다.
“몬스터들이 스승님 말씀을 안 듣는데요?”
“내 경고를 알아들을 녀석들은 이미 알아들었을 거다.”
티그리스는 말귀 못 알아듣는 몬스터들을 대상으로 한 말이 아니다.
티그리스는 저 몬스터들 뒤에 숨어 있는 용아병들의 대장 ‘렐리우스’와 와이번들의 왕 ‘시그마’에게 한 말이었다.
쩌적!
살아남은 레비아탄 3마리가 온 힘을 다해 그레이트 실드를 깨부쉈다.
그러자 와이번들이 성곽 위로 비행하더니 발에 잡고 있던 몬스터들을 하나둘씩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티그리스는 와이번이 떨어뜨린 드래곤 터틀을 단단한 껍질째 잘라 버리며 말했다.
“그것보다 전투에 집중해라. 아직 완전히 이긴 게 아니니까.”
“네. 알겠습니다.”
* * *
용아병들은 수풀 속에 숨어 한창 전쟁 중인 방벽을 쳐다봤다.
그란티스 님이 노리시는 드워프들이 만든 방벽답게 굉장히 튼튼하면서도 안정적이었다.
와이번들이 날아가 몬스터들을 성벽 위에 뿌리는 데도 기다렸다는 듯이 그레이트 실드가 펼쳐지며 몬스터들을 튕겨냈고, 레비아탄이 성문을 열기 위해 몸통 박치기를 하는 데도 흠집만 갈 뿐 미동조차 없었다.
용아병들의 대장이자 그란티스의 총애받는 권속, 렐리우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 정도는 해줘야지.”
렐리우스도 쉽게 드워프들의 요새를 점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저 정도 튼튼한 요새는 지을 줄 알아야 그란티스의 둥지를 튼튼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 것 아닌가?
하지만 튼튼한 요새를 만드는 것과 전쟁은 별개의 문제다.
저렇게 병력을 한곳에 다 몰아놓으면 다른 쪽 방비는 허술한 법.
50명의 용아병들이 서문 공격에 성공해 문을 열면 제아무리 튼튼한 요새라고 할지라도 쉽게 공략이 가능했다.
‘이제 슬슬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그때, 와이번 하나가 날아왔다.
다른 와이번보다 훨씬 크고 흉터가 많으며 짙은 갈색 비늘을 가진 놈이었다.
와이번 로드 시그마였다.
시그마가 착지하자 거센 돌풍이 바닥을 때리며 나무를 부수고 흙먼지를 일으켰다.
렐리우스는 손을 한 번 휘저어 흙먼지를 모조리 걷어냈다.
“시그마. 서문 쪽은 어떻지?”
시그마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용아병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렐리우스의 표정이 구겨졌다.
“뭐? 설마 이쪽에서 전쟁이 시작된 걸 모르는 거냐?”
“아니, 누군가한테 죄다 당한 모양이더군.”
시그마는 발톱에 끼워두었던 새카맣게 타 죽은 용아병 시체를 렐리우스 앞에 놓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 버린 것이 좀 전에 황금빛 벼락을 내질렀던 그 마법사에게 당한 모양이었다.
“언제 당한 거지?”
“보아하니 이쪽으로 이동되자마자 당한 모양이더군.”
“용아병들이 그쪽으로 이동한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건가? 그게 말이 돼?”
“그걸 나한테 물어봐도 모르지.”
시그마는 한창 전쟁 중인 방벽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좀 전에 그 번쩍이는 황금 갑옷을 입은 기사 놈도 그렇고 이번 전쟁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렐리우스는 방벽을 쳐다봤다.
좀 전처럼 몬스터들이 열심히 방벽을 두들기고 올라서며 전쟁을 벌이고 있다.
좀 전엔 놈들이 열심히 발악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보인다.
‘설마 진다고?’
저 몬스터들은 그란티스가 렐리우스와 시그마에게 물려준 병력들이다.
저 병력들을 모두 잃으면 다시 그란티스에게 돌아가 새 병력을 달라고 요청해야 하는데…….
‘……그럴 순 없지.’
렐리우스는 이 문제를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무렵 시그마가 방벽을 쳐다봤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점이 있더군.”
“뭐가 이상하다는 거지?”
“그 황금색 갑주를 입은 기사 말이야. 뭔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나?”
“뭐가 익숙하다는 거지?”
“우리와 비슷한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냐 이 말이다.”
렐리우스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시그마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저 녀석도 용아병이라고?”
“아니, 그놈이 입고 있던 갑주에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저 갑옷이 드래곤의 비늘이나 뼈로 만들어졌다는 건데,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럴지도 모르지. 어디선가 드워프들이 주워서 만들었을지도.”
“말이 안 된다. 저렇게 황금빛으로 빛이 나는 비늘을 가진 드래곤은 골드 드래곤밖에 없다. 그런데 골드 드래곤은 이미 마왕의 시대 때 성산에서 모두 죽었어.”
“하나 남았지. 현재 드라코 레퀴엠 산에 계시는 아우로므 님.”
렐리우스는 황금색 갑주를 입은 기사를 쳐다봤다.
지금 보니 저 황금 갑주를 입은 기사들이 무려 4명이나 보였다.
“저것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베키우 왕국의 기사들이 아닐 수도 있어.”
“설마 드래곤 사냥꾼이라도 된다는 거냐? 그리고 아우로므 님이 저놈들에게 당했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나도 그런 불경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놈들의 갑주가 정말로 드래곤의 비늘로 만들어진 게 확실하다면 조금 더 신중해질 필요는 있다고 본다.”
시그마의 말에 렐리우스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렐리우스는 아우로므가 사냥당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저 인간들은 아우로므와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심술 많은 황금용이 이해 못 할 계략을 품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모종의 거래를 했을 수도 있다.
확실히 저놈들과 정확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떻게?’
렐리우스는 지옥불을 내뿜은 기사가 그어놓은 선을 쳐다봤다.
몬스터들이 짓밟으며 전진했음에도 불구하고 놈이 그어놓은 선은 여전히 선명했다.
저 선을 넘으면 곧바로 상대하러 오겠지.
솔직히 말해서 렐리우스도 그 기사와 정면으로 싸워서 이길 수 있다고 장담은 못 하겠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렐리우스는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을 가리던 검은 구름이 모두 걷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황금빛 벼락이 안 쏟아지는군.”
“그만한 벼락을 마구잡이로 내려칠 수 있었다면 이미 몬스터들이 죄다 죽었겠지.”
“남은 와이번 숫자가 얼마지?”
“대략 900마리 정도일 거다.”
렐리우스는 잠깐 생각을 다시 점검하더니 입을 열었다.
“한 500마리 정도만 서문으로 향해라. 그리고 용아병 50마리 정도만 태우고.”
“그 정도 병력으로 뭘 하겠다는 거지?”
“기만 작전이다. 50마리 정도만 떨어뜨려 놓고 나와 너 그리고 나머지 용아병들은 정문으로 향한다. 그리고 저 황금색 갑주를 입은 기사들 중 하나를 잡아 와 어떻게 된 일인지 이야기를 들어봐야겠어.”
“그 불을 뿜은 기사는 말고?”
“그래. 그 기사를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조금 수준이 떨어지는 것 같으니까.”
“제법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럼 내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겠다.”
“그래. 제대로 하려면 우리 둘 중 하나가 몸을 드러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그럼 용아병 50마리는 내가 알아서 챙겨 가겠다.”
렐리우스는 거센 돌풍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시그마를 보며 생각했다.
어쩌면 이번 공성전에 그란티스 님이 직접 움직여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 * *
아이린과 샤를로트는 서로 등을 맞대고 망루 위로 올라온 가고일들과 전투를 벌였다.
가고일들은 단단하기도 하지만 마법 공격이 거의 먹히지 않기 때문에 기사들이 처리해야만 하는 까다로운 몬스터였다.
“린!”
샤를로트의 외침에 아이린은 곧바로 샤를로트에게 붙었다.
샤를로트가 검을 내지르자 얼음창 3자루가 정면으로 쏘아져 날아가더니 가고일들의 가슴팍에 정확하게 명중했다.
끼기긱-
가고일은 얼음창에 적중당하자 몸이 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쳇.”
원래 단번에 가고일의 심장에 박혀 있는 핵을 노리려고 했지만, 아직 그만한 공격력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린은 얼어붙은 가고일들을 향해 돌진해 단칼에 가고일 3마리를 반절로 잘라 버렸다.
쿵! 쿵! 쿵!
가고일들의 눈에 빛이 사라지며 죽자 아이린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쩡!
아이린의 왼쪽에서 날카로운 강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린은 왼쪽을 쳐다봤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가고일이 마지막 힘을 모아 핼버트를 휘둘렀고, 샤를로트가 그것을 얼음창을 소환해 막아냈다.
아이린은 발로 강하게 밟아 가고일의 몸통을 부쉈다.
샤를로트는 아이린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아이린은 얼굴을 만졌다.
철 조각이 튀면서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 피가 흘렀다.
“……어. 괜찮아. 고마워.”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사방에서 터지고 비명 지르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것이 전쟁.
사방에 살기가 가득해 언제 어디에서 뭐가 날아올지 감도 잡을 수 없다.
신경을 날카롭게 만들어 정신을 집중하면 체력이 빠지고, 그렇다고 힘을 조금 빼면 지금처럼 예상치 못한 공격이 날아온다.
이런 전쟁을 스승님은 얼마나 많이 치르셨을까?
아니, 앞으로 벌어질 길리온 왕국과의 전쟁에서 아이린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쿵-!
방벽을 뒤흔드는 거대한 굉음에 아이린과 샤를로트는 정면을 쳐다봤다.
레비아탄 하나가 타티아나의 화살에 머리를 꿰뚫려 고개를 처박았다.
“……이런.”
문제는 레비아탄이 쓰러진 위치였다.
레비아탄은 그레이트 실드를 작동시키는 아티팩트 위에 그대로 누워 버렸고, 아티팩트가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급기야 몬스터들은 죽은 레비아탄의 몸을 교두보 삼아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야가가 기겁하며 말했다.
“당장 밀어내!”
“저걸 어떻게 밀어내라고?!”
“젠장할!”
몬스터들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다.
이 전쟁에 끝은 있는 걸까?
병사들의 눈에 절망이 담길 무렵,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모이더니 황금빛 벼락이 내리꽂혔다.
쿠궁!
벼락이 레비아탄의 몸통에 정확하게 직격하자 타고 올라오던 몬스터들이 죄다 타 죽었다.
그리고 놈의 단단한 피부와 살점이 벗겨지며 뼈가 드러났다.
“잘했다. 마법사!”
바야가는 죽은 레비아탄의 몸에 달려들어 강력한 펀치를 갈겼다.
우둑!
레비아탄의 단단한 목뼈가 그대로 으스러졌고.
레비아탄의 몸에 올라탄 몬스터들의 체중을 버틸 수 없던 근육들은 말랑한 고무처럼 휘어지더니 그대로 방벽 아래로 추락했다.
“어?!”
바야가는 무너지는 레비아탄의 몸을 타고 뛰어올랐다.
미끌-
“어?”
그러나 레비아탄의 몸에 묻은 피에 미끌려 제대로 도약하지 못했다.
바야가는 간신히 방벽 끝자락에 손톱을 박아 넣었지만, 바야가의 체중을 버티지 못하고 방벽이 뜯겨 나갔다.
바야가는 아가리를 벌리며 분노를 토해내는 몬스터들 사이로 추락했다.
후웅!
그때, 바야가의 몸에 돌풍이 불더니 바야가의 몸을 띄워 방벽 위로 올려주었다.
타티아나의 바람의 정령이었다.
바야가는 방벽 위에 누워 잠깐이나마 숨을 돌렸다.
바야가는 타티아나를 올려다보며 씨익 웃었다.
“귀쟁아 고맙다.”
“난 귀쟁이가 아니고 타티아나라고 했을 텐데?”
“고맙다. 타티아나.”
타티아나는 바야가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너도 제법 멋있었다.”
짧은 휴식이 지나가고 타티아나는 하늘 위를 쳐다봤다.
수백 마리의 와이번들이 하늘을 날아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커다란 와이번 하나가 앞장서서 용기병들을 태우고 날아갔다.
“……어디로 가는 거지?”
“서문이다. 서문으로 향하는 거야. 거기엔 지금 누가 있지?”
“서문엔 지금 소수 병력밖에 없을 텐데?”
타티아나는 바람의 정령을 불러 말했다.
“당장 셰리한테 전해! 서문으로 발빠른 엘프들을 급파…….”
“아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타티아나는 갑자기 자기 뒤에서 그림자를 타고 나타난 여우 수인에 깜짝 놀랐다.
네메시스였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는데 바야가의 감각으로도 눈치를 못 챌 정도라니.
우리 수인족 중에 이 정도의 실력자가 있었던가?
“지금 푸른 산호 마법단이 지금 그곳에 대기 중에 있습니다.”
“벌써?”
“네. 그러니 서문은 걱정 마시고 정면에만 집중하라는 공주님의 말씀입니다.”
바야가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넌 분명 수인 쪽 전령일 텐데 어째서 인간들의 말을 전하는 거지?”
“그럼 저는 이만.”
“야!”
네메시스는 그림자 속으로 이동해 사라졌다.
“허, 참나.”
“원래 수인들은 위계질서 같은 게 없나?”
“뭐, 우리야 같은 동지니까. 그런데 저건 좀 많이 이상하긴 한데…….”
그때, 하늘 위로 바위가 떨어졌다.
바야가는 발톱을 세운 후 하늘을 향해 그었다.
바위가 두부처럼 조각나며 사방에 흩어졌다.
“일단 눈앞의 적부터 신경 쓰자고.”
타티아나도 활 시위를 당겼다.
바야가의 말대로 눈앞의 적이 우선이다.
의문은 살아남고 나서 풀어도 된다.
* * *
나달은 와이번들이 날아오자 지원형 아티팩트에 최상급 마석 1개를 집어넣었다.
지금 시대에 보기 어려운 마법 증폭 아티팩트라 나달은 무리해서 아공간 주머니에 담아 가져왔다.
나달이 맡은 임무는 딱 한 가지.
서문에서 오는 모든 적을 막아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마법 증폭 아티팩트가 필수였다.
나달은 곧바로 탐지 마법을 사용했다.
증폭 아티팩트가 작동하며 탐지 마법이 무려 30㎞ 너머까지 작동했다.
“와이번이 503, 용아병이 50마리라…….”
나달은 곧바로 판단을 내렸다.
“기만 작전이군.”
그란티스가 갖고 있는 용아병의 숫자는 551마리다.
그중 50마리는 이미 타 죽었으니 놈들에게 남은 용아병의 숫자는 501마리가 남았다.
그런데 지금 와이번들의 등에 타고 오고 있는 용아병의 숫자는 겨우 50마리.
놈들은 용아병 50마리 정도만 떨어뜨려 놓고, 와이번은 그대로 돌아가 정문을 공략할 것이다.
나달은 죽은 와이번의 꼬리 조각과 타 죽은 용아병의 손을 매만졌다.
나달은 전쟁이 벌어진 지 약 3시간 동안 거의 한 게 없다.
아티팩트를 사용할 줄 아는 전투 마법사들만 정문에 배치해 두고 전부 서문으로 이동한 게 전부였다.
그 남는 시간 동안 나달은 최대한 와이번의 꼬리 조각과 용아병의 손을 분석하는 데 신경을 썼다.
그리고 좀 전에 와이번과 용아병의 구조를 모두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나달은 아티팩트에 최상급 마석 10개를 집어넣었다.
최상급 마석들이 단숨에 증발하며 나달의 마법 발현을 기다렸다.
나달은 마법을 빚었다.
푸른 산호 마법사들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기이한 형상의 마법진이 나달의 손에 펼쳐지자 이상하게 쳐다봤다.
7서클의 마법이 분명하긴 한데 정확하게 무슨 마법인지 알 수 없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와이번들이었다.
와이번들은 굉장히 빠르게 날아왔다.
와이번들이 약 500m 앞까지 다다렀는데도 나달이 말없이 계속 마법을 빚어내기만 하자 마법사들은 초조해졌다.
“단장님! 지금 와이번들이 지척입니다!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400m
300m
하지만 나달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마법을 빚어내기만 했다.
와이번들의 비늘이 보일 정도로 가까이 다가오자 마법사들은 도망쳐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때, 나달의 마법이 완성되었다.
나달의 양손에 쥐고 있던 꼬리와 용아병의 타버린 손이 잿빛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마법사들은 의아한 눈빛으로 나달을 쳐다봤다.
용아병의 손과 와이번의 꼬리가 먼지가 되어 사라진 것은 신기한 일이긴 하지만, 무슨 마법이 발동한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잿빛 가루는 와이번들과 용아병들을 향해 느릿하게 날아갔다.
오히려 와이번들이 날아오는 속도가 더 빨라 와이번들이 넓게 퍼진 가루를 향해 돌진하는 모양새였다.
와이번들은 나달의 마법을 무시하고 성벽을 향해 날아들었다.
무시의 대가는 참혹했다.
가루가 놈들의 몸에 닿자마자 몸이 죄다 분해되기 시작했다.
와이번들의 안구와 피막 그리고 단단한 비늘과 혈액이 분자 단위로 쪼개졌다.
비명조차 없었다.
놈들이 비명을 지를 성대나 기도가 죄다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니까.
용아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용아병들의 갑주 틈 사이로 잿빛 가루가 들어가자 분자 단위로 분해되었다.
분해된 가루는 다시 다른 용아병들에게 전염병처럼 퍼지며 다른 용아병을 집어삼켰다.
이것이 바로 나달의 고유 마법인 ‘유기물 분해’.
나달이 완벽하게 이해하고 분석한 유기물이라면 분자 단위까지 조각내 분해해 버릴 수 있었다.
“크아아아아악!”
가장 선두에 날아오던 시그마가 타는 듯한 통증에 등에 매달고 있던 용아병을 떨어뜨리고 하늘 위로 솟구쳤다.
시그마는 그란티스에게 특별한 축복을 받은 와이번이기에 일반적인 와이번 구조가 많이 다르다.
하지만 구조가 어느 정도 비슷하기 때문에 나달의 분해 마법에 큰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뒤따라오던 와이번들이 앞서가던 와이번들이 먼지가 되어 사라지자, 재빠르게 시그마처럼 하늘 높이 솟구쳤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나달이 아니었다.
“커다란 와이번을 제외한 다른 와이번들에게만 마법을 사용해라.”
“네!”
푸른 마법사단은 모두 와이번들을 향해 양력을 없애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와이번들은 마치 벽에 부딪힌 새들처럼 균형을 잃고 추락했고, 나달의 분해 마법이 와이번들을 집어삼켰다.
나달은 꽁무니를 빼는 시그마와 와이번들을 보며 수정구를 들었다.
“서문 방어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