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는 천재가 가르친다. 237화
우로스(9)
그란티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굉장히 익숙한 기운이 근처에서 느껴졌다.
미약하지만 이건 분명 드래곤의 기운이다.
“…….”
그란티스는 눈을 감고 굉장히 고민했다.
설마 아우로므, 그 어린 용이 나타난 건가?
그렇다면 그란티스는 드워프들을 모두 빼앗기기 전에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란티스는 굉장히 피곤한 상태였다.
오랜만에 용언을 쓰기도 했고 잠들려던 찰나 시그마가 중간에 와서 잠을 방해했기 때문이다.
“후…….”
그란티스는 한숨을 크게 내쉬고 눈을 떴다.
‘추잡하군.’
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어린 용과 드워프 따위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성산이 있었을 땐 그란티스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을 텐데.
이젠 자기가 세상의 주인인 것처럼 행패를 부리며 기어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
“정말 정말 귀찮군.”
결국 그란티스는 몸을 일으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결정은 내렸지만 실제로 움직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딱 반나절만 더 자야겠군.’
잠과 잠을 깨는 시간은 별개니까.
* * *
레인로버는 이를 악물며 벼락을 내리꽂았다.
레인로버는 갑작스러운 탈력감에 비틀거렸다.
하지만 무리해서라도 벼락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용아병들이 너무 많습니다!”
“용아병들이 그레이트 실드를 부수고 있습니다!”
놈들의 공격 방식은 굉장히 단순했다.
몬스터들이 철문을 공략하는 사이 용아병들은 와이번을 타고 방벽 뒤로 넘어가 적진을 흔든다.
천 년 전에도 존재한 클래식한 전술이지만,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아주 오래전부터 먹혀온 전술이란 뜻이다.
실제로 아직 방비가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용아병들이 방벽 너머의 마을에 떨어지자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 처할 뻔했다.
다행히도 수성용 아티팩트가 빠르게 설치되고 바야가와 타티아나가 내부를 정리해 준 덕분에 위험한 순간은 넘겼으나 손실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창고에 쌓아두었던 예비용 아티팩트들과 최상급 마석이 많이 부서지고, 식량 창고 하나가 박살이 났다.
심지어 위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다른 몬스터들은 그레이트 실드에 닿자마자 미끄러져 추락했지만, 용아병들은 검기를 사용해 그레이트 실드에 칼을 꽂아 넣어 버텨냈다.
그리고 손과 발을 이용해 그레이트 실드에 구멍을 낸 뒤 몸을 집어넣어 방벽 안으로 어떻게든 꾸역꾸역 들어왔다.
그런 식으로 들어와 피해를 입은 아티팩트만 무려 10개.
라칸과 드워프들이 바쁘게 예비용 아티팩트들을 꺼내 설치하고 있다지만, 이제 남은 아티팩트가 하나도 없었다.
“으아아아아!”
트리샤는 성화의 검으로 용아병의 검을 받아내고 블리더를 용아병의 폐부에 깊숙이 꽂아 넣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아병은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듯 꼬리를 이용해 트리샤의 다리를 공격했다.
트리샤는 위로 점프해 꼬리를 피해내고 블리더를 강하게 끌어당겨 척추를 끊고 뒤로 넘어갔다.
용아병은 핏물 속에서 잠깐 허우적거리다가 죽었다.
트리샤는 다리에 힘이 풀려 철푸덕 자리에 앉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헉……. 헉…….”
용아병은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검술 실력은 그저 그랬으나 몸에 돋아난 비늘은 너무나도 단단해 칼이 박히지 않았고, 완력과 반응속도는 트리샤와 비견되거나 더 좋았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트리샤의 노련함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구멍이 뚫린다! 마법사들은 어서 몰아내!”
트리샤가 일어나려던 찰나 저 멀리서 잿빛 먼지가 날아들었다.
나달의 분해 마법이었다.
구멍을 뚫고 들어온 용아병들의 몸이 천천히 분해되더니 오래된 석상처럼 무너져 내렸다.
나달의 분해 능력은 용아병과 와이번을 상대로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극심한 단점이 있다면 7서클 마법답게 마나를 너무 많이 소비한다는 것.
그래서 증폭 아티팩트가 거의 필수지만 용아병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기어코 증폭 아티팩트를 망가뜨린 바람에 본연의 마나로만 마법을 사용해야만 했다.
비틀-
힘든 내색 하나 없이 마법을 뿌리던 나달도 이제 슬슬 한계에 다다랐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쿵! 쿵!
그런 나달의 앞에 두 용아병이 떨어졌다.
트리샤는 재빨리 나달의 앞을 가로막으며 검을 치켜들었다.
마법에 맞아 한 놈은 팔이 없었지만 개의치 않는 듯, 트리샤를 향해 검을 들고 걸어왔다.
트리샤가 막지 못한다면 나달이 죽는다.
그러면 더 많은 용아병들이 내부로 침투할 것이고 서쪽 방벽은 놈들의 손에 넘어간다.
두 발과 손이 떨릴 정도로 체력이 소진되었지만, 트리샤는 기합을 넣었다.
“와라!”
티그리스가 말했듯 중요한 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과 그것을 이어나갈 수 있는 기세다.
용아병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우뚝!
그때, 용아병들이 발을 멈추고 트리샤가 아닌 뒤로 시선을 옮겼다.
트리샤도 무슨 일인가 뒤를 쳐다봤다.
망루 위에 좀 전까지 티그리스와 싸우고 있었던 렐리우스가 오른팔과 꼬리를 잃은 채 매달려 있었다.
‘티그리스 님이 이겼구나!’
병사들이 환호성을 지름과 동시에 용아병들은 급격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용아병들은 기본적으로 그란티스의 명령을 듣지만, 그란티스가 보이지 않을 땐 렐리우스를 통해서 디테일한 명령을 하달받는다.
그런데 렐리우스가 지금 적에게 포로로 잡혀 있다는 건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령관을 잃었다는 말과 똑같다.
그래서일까?
그레이트 실드에 매달려 있던 용아병들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더니 결국 마법을 맞고 떨어졌다.
“이 멍청한 것들아 어서 공격해! 승기를 거의 다 잡았잖아!”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시그마가 피를 토하며 분노했다.
하지만 용아병들은 시그마가 아닌 오직 렐리우스와 그란티스의 명령만 듣는다.
용아병들은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하던 중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렐리우스를 구한다.”
용아병들은 모두 렐리우스가 매달린 망루 방향으로 달렸다.
* * *
말레우스를 비롯한 드워프들은 쉼 없이 망치를 두들겼다.
말레우스와 드워프들이 번갈아가며 힘껏 때리고 있는 금속은 다름 아닌 월광.
월광은 불에 녹지 않고 오직 충격을 가해야만 녹는 성질이 있는 특이하면서도 신비로운 금속이다.
물론 요즘은 마공학 기술이 접목된 단조 프레스가 있어서 굳이 손으로 직접 가열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무조건 손으로 때려야만 했다.
땅!
말레우스의 손에 들려 있는 하얀 망치가 푸른 불똥을 터뜨리며 비명을 지른다.
말레우스의 손에 들려 있는 망치는 드래곤 아우로므의 뼈를 깎아 만든 망치.
이 드래곤의 뼈로 만든 망치로 월광을 때리면 월광의 성질이 조금씩 드래곤에게 친숙해진다.
그렇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월광이 갖고 있는 ‘정화’의 기운이 드래곤에게만 먹히지 않게 된다.
말레우스가 노리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마왕의 대장군 중에서도 공포를 상징하는 불멸의 대장군의 흉골 위에 길들여진 월광을 덧입히면 오직 드래곤만이 흉골에서 뿜어져 나오는 공포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말레우스의 망치가 부딪히자 발갛게 달아올랐던 월광의 겉부분이 흐물흐물하게 녹으며 액체가 되었다.
“지금!”
그러자 옆에서 보조하고 있던 젊은 드워프가 재빨리 고로를 가져와 액체로 변한 월광을 담는다.
흉골을 완전히 뒤덮기 위해서 필요한 월광의 양은 총 10㎏.
현재 모인 월광의 양은 8㎏.
앞으로 2㎏이 남았다.
“교대!”
말레우스는 뒤로 물러나 한숨을 내쉬며 시계를 봤다.
벌써 공략이 시작된 지 36시간이 지났다.
과연 밖에선 잘 싸우고 있을까?
말레우스는 흥건한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다시 망치를 들었다.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저들을 위해서라도 말레우스의 팔이 멈출 자격은 없다.
말레우스는 땀을 닦아내며 망치를 들었다.
“교대!”
* * *
용아병들이 시그마의 명령을 듣지 않고 오직 망루로만 공격을 퍼부은 지 6시간 가까이 지났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공격 방향이 단순하면 수성하는 입장에선 화력을 집중하기 좋다.
물론 메인 딜러인 나달과 레인로버의 마력이 거의 없어 마법을 쓸 순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여분의 공격용 아티팩트들이 남아 있었다.
놈들이 방벽을 타고 오를 때마다 익스플로전 마법이나 체인 라인트닝 마법을 갈겨 용아병들을 떨어뜨렸다.
시그마는 용아병들이 자신의 명령을 듣지 않자 와이번들 용아병을 강제로 집어다가 동문과 서문에 강제로 떨어뜨렸다.
그 때문에 가끔 굉장히 아찔한 상황이 오긴 했어도 연합군은 생각보다 잘 막아냈다.
급기야 공세가 옅어지자 로테이션을 돌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젠장! 젠장! 젠장!”
벌써 해가 중천에 떴고, 공략을 시작한 지 42시간이 지났다.
몬스터들의 숫자는 급격하게 줄어만 갔고 초반에 출혈을 감수하고 깊숙하게 공수 공격을 가했던 터라 와이번들의 피해도 급격하게 늘었다.
렐리우스만 있었다면 어떻게든 전쟁을 끌어볼 수 있겠지만, 놈은 비참하게도 망루 위에 기절한 채 누워 있는 상태다.
무의미한 소모전만 반복할 뿐.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패배가 확실하다.
‘도망치자.’
어차피 시그마는 이번 공략을 성공해도 질책을 피할 수 없고, 실패하면 무조건 죽는다.
아우로므나 아니면 현재 권속을 모두 잃은 사투티메오에게 투신하면 어쩌면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른다.
시그마는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았다.
방향은 사투티메오가 있는 북쪽.
시그마가 날개짓을 할때마다 비늘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때, 굉장히 익숙한 기운이 동쪽에서 느껴졌다.
시그마는 두려운 눈빛으로 동쪽 하늘을 쳐다봤다.
동트는 해를 가리는 자욱한 먼지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바다 한가운데에 사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저렇게 자욱한 먼지구름이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딱 한 가지를 의미한다.
“서, 설마.”
시그마의 눈은 잘못되지 않았다.
위대한 용 그란티스가 거대한 날개를 펼친 채 날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향해.
‘죽는다!’
시그마는 바쁘게 북쪽으로 날았다.
그러나 그란티스의 날개 속도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어느 정도 가까이 오자 그란티스가 입을 열었다.
[멈춰라.]
그란티스의 용언에 시그마는 그대로 얼어붙어 땅으로 추락했다.
고목을 부수며 땅에 널브러진 시그마의 위로 거대한 그란티스가 내려 앉았다.
그란티스는 시그마의 몸통을 발톱으로 눌렀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 중이지?”
“그, 그것이 그란티스 님께…….”
“내게서 도망치는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인가?”
시그마는 공포에 젖어 그대로 졸도할 것 같아 도저히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것보다 아우로므는 어디에 있지?”
“예? 예?”
“아우로므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다른 드래곤의 기운이 느껴졌었는데? 아우로므가 아니었던가?”
시그마가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그란티스는 한숨을 내쉬며 시그마를 용언 마법으로 공중에 띄웠다.
“되었다. 지금은 아우로므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오자마자 도망을 친 모양이군.”
“그, 그것이.”
“하지만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네 기억을 좀 봐야겠군.”
“아, 안 돼!”
그란티스의 입이 쩌억 벌어지며 시그마를 단숨에 집어삼켰다.
와이번들의 왕이라 불리는 자의 최후라고 보기엔 너무나도 허무했지만, 위대한 용 그란티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용언 마법으로 놈의 기억을 빠르게 훑을 뿐이었다.
그란티스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 아우로므가 안 왔다고? 그럼 그 기운은…… 렐리우스의 것이었군.”
그란티스는 더 깊이 시그마의 기억을 엿봤다.
“렐리우스는 반송장이 되어 매달려 있고, 용아병과 와이번도 절반 가까이 잃었다라…….”
그란티스는 짜증이 나 눈썹을 찌푸렸다.
“역시 직접 나서야 하나.”
드워프 500마리 때문에 자신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것이 너무 치욕스럽기도 하고 짜증이 났지만 어쩔 수 없었다.
기왕 이렇게 된 김에 렐리우스를 저 모양으로 만들어놓은 그 기사에게 이야기를 좀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그란티스는 날개를 한 번 펄럭였다.
* * *
그란티스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타이케스가 하늘을 날면 불바다가 되고
사투티메오가 하늘을 날면 마력 폭풍이 일어나며
아우로므가 하늘을 날면 벼락이 떨어진다.
그란티스가 하늘을 날면 절망의 먼지가 대기를 가득 메워 숨을 쉬는 모든 이들의 폐부를 갈기갈기 찢어놓는다.
실제로 몬스터들은 흙먼지를 들이켜자 고통스러워하며 몸부림을 치다가 풀썩풀썩 쓰러졌다.
“모두 그레이트 실드 뒤로 이동해!”
레인로버의 다급한 명령이 없어도 병사들은 모두 그레이트 실드로 모여들었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한 병사들은 목을 부여잡으며 쓰러졌다.
“사, 살…… 쿨럭!”
피와 먼지가 섞인 기침을 토해내며 죽어가는 병사들.
병사들은 날카롭고 메마른 먼지에 갈기갈기 찢겨 나가 오직 뼈와 갑주만 남기고 사라졌다.
레인로버는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그란티스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수백의 병사들이 죽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지만 지금은 죽어가는 병사들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후우우우웅-!
그레이트 실드를 때리는 먼지들과 바람들 때문에 실드는 위험한 소리를 내며 크게 요동쳤다.
마나 소모가 얼마나 빠른지 드워프들과 마법사들은 아티팩트에 마석을 자루째로 집어넣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그란티스의 등장에 아이린의 머리가 멍해졌다.
도대체 왜?
렐리우스가 죽거나 시그마가 죽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그란티스가 움직였는가?
설마 렐리우스가 크게 다친 것 때문에?
아니면 우리가 너무 공세를 잘 막아내서?
무엇이 되었든 답은 하나다.
“공략 실패야…….”
이제 이틀째 아침이다.
앞으로 그란티스의 공격을 24시간이나 버텨야 한다는 건데 그건 불가능에 가깝다.
거센 바람과 함께 먼지구름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앞에 드래곤이 나타났다.
렐리우스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
단순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방벽의 높이와 비슷할 정도다.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병사들이 하나둘씩 졸도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풀썩- 풀썩-
몇몇 심약한 자들은 심장을 부여잡으며 그대로 쓰러졌고, 긴급하게 치유술사들이 달려들어 치유를 시작했다.
저것이 드래곤 피어.
그란티스를 본 것 하나만으로도 정신이 버티지 못해 기절하거나 죽는다.
심지어 아이린조차도 가만히 서서 드래곤을 보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어떻게 선조들은 저런 것을 상대할 수 있었던 거지?
그란티스의 눈이 아이린을 향했다.
아이린은 정신이 아득해지며 기절할 뻔했으나, 가까스로 견뎌냈다.
하지만 다리가 풀리는 것은 멈출 수 없었다.
그란티스는 아이린의 갑주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아우로므의 비늘로 만든 갑주라니. 굉장히 이상하군.”
그란티스는 이어서 샤를로트와 트리샤의 갑주도 훑었다.
모두 아우로므의 비늘로 만든 갑주를 입고 있었다.
“미련한 것들아, 한 가지만 묻겠다. 어떻게 아우로므의 비늘로 만들어진 갑주를 입은 거지?”
그란티스의 물음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란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죄다 입을 갖고 있지만 벙어리들 뿐이군.”
그때, 망루 위로 황금 갑주를 입은 사내 하나가 걸어 나왔다.
티그리스였다.
그란티스는 자신과 눈을 마주쳐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티그리스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강인한 영혼을 가진 인간이군. 네가 렐리우스를 저 모양으로 만든 놈인 듯한데. 맞나?”
“그렇다.”
그란티스는 말이 짧은 티그리스가 굉장히 건방졌지만 동시에 욕심이 났다.
현재 그란티스는 무능하지만 편리했던 렐리우스와 시그마를 잃은 상태다.
만약 그 둘이 없다면 앞으로의 둥지 생활은 제법 불편할 터.
저렇게 강인한 영혼을 가진 사내가 자신의 권속이 된다면 제법 유용할 것 같았다.
“네게 한 가지 제안을 하지. 내게 충성을 맹세해라. 그렇다면 너는 살려주도록 하지.”
그때, 옆에 서 있던 레인로버가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할 셈이지?”
그란티스는 레인로버도 흥미롭다는 듯이 쳐다봤다.
“너도 제법이구나. 너도 내게 충성해라. 그렇다면 너도 살려주마.”
“질문에 대답해.”
그란티스는 오만한 눈빛으로 다른 사람들을 쓸어 봤다.
“나약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런데…….”
그란티스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말이 좀 짧구나.]
레인로버의 숨이 막혀왔다.
레인로버는 순간 무릎을 꿇고 목을 켁켁거렸다.
티그리스의 검이 번뜩였다.
정확하게 그란티스의 눈으로 향하는 검강.
그러나 그란티스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용언 마법으로 티그리스의 검강을 막아냈다.
“허억……. 허억…….”
덕분에 레인로버는 막혔던 숨이 다시 되돌아왔다.
그란티스의 눈이 살벌해졌다.
“감히 내게 검을 휘두르다니……!”
그란티스의 매서운 눈이 티그리스를 향했다.
하지만 레인로버의 손이 더 빨랐다.
레인로버는 아공간 주머니에서 번개 덩어리를 꺼내 들었다.
신의 창이었다.
그란티스는 신의 창을 보자마자 기겁했다.
“그 불경한 게 어떻게……?!”
레인로버는 신의 창을 던졌다.
그란티스는 용언 마법으로 신의 창을 막아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신의 창은 그란티스가 만들어낸 배리어도 뚫고 비늘을 정확하게 뚫고 지나가 드래곤 하트를 꿰뚫었다.
“끄아아아아악!”
그란티스는 구름을 몰아낼 정도로 거대한 비명을 터뜨렸다.